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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07 철거 9
  2. 2013.10.14 주방의 숙원사업 하나
  3. 2013.09.28 누군가의 겨울
  4. 2013.04.30 4월의 단상 1
  5. 2013.03.25 봄 도래
  6. 2013.01.14 새해근황 4
  7. 2012.12.20 선거요약 2
  8. 2012.12.18 선거 단상
  9. 2012.11.19 달고나 난방의 새 장을 열다 (연탄난로 설치기) 4
  10. 2012.11.19 벙커침대
한국 Korea 160409~2013. 11. 7. 21:56

시즌 2의 새로운 시작은 철거서부터다. 

철거는 화요일에 진행됐고 그 전날에는 주방의 모든 집기와 도구들을 

몽땅 홀과 뒷편 주차장 한 구석에 쌓아두었다. 

코스트코에서 사다리 하나 사면서 박스는 산더미처럼 싣고 왔는데

그것도 모잘라 안써서 먼지가 얇게 앉은 고무다라까지 동원됐다. 

최대한 보기좋고 깔끔하게 정리한다고는 했지만

쌓여있는 모습들을 보노라니 그 심란한 풍경이 남들 볼까 두려울 지경이다. 

이사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가장 궁상스레 보여지는 것들은 

역시 냄비와 밥그릇, 국자 따위의 주방집기들 아니던가.







화요일 아침 8시. 

미니 포크레인이 트럭에서 내려지고 있다. 

철거는 동네 상수건축 사장님에게 의뢰를 했다.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작업이 많으신 분인지라 2주 전부터 캐스팅 전화를 돌렸는데

철거 들어가기 3일 전에서야 겨우 시간을 내서 가게를 찾으셨다. 

사장님의 분야는 딱히 정해져있지 않아서

수도꼭지 가는 것에서부터 건물 신축까지 모두 해낸다. 


저간의 상황을 설명드렸고 철거 당일 날 인부 몇 명 데리고 오실 줄 알았는데

요즘은 미니 포크레인이 훨씬 수월하다며 포크레인 기사를 한 명 캐스팅해 오셨다. 

 트럭에 업혀다니는 저놈은 원래 농촌에서 각종 농사일, 가령 수로를 내거나

과수원의 땅을 파는 용도 등으로 개발이 됐다가 지금은

도심의 마이크로한 현장에 투입돼 그 진가를 뽐내고 있다고.

쓰임이 워낙 좋다보니 대형 포크레인이나 저 미니 포크레인이나 

하루 대여료가 거의 같다는 말에 깜놀.  

건물 꼭대기층에 엘리베이터도 타고 올라간다는 말에 다시 깜놀.

 







일명 '쁘레카' (breaker)를 장착하고 시멘트 벽에 대고 몇 번 치니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벽체들. 

1시간이 채 안되서 벽 하나를 모두 털어내는 모습에 정말 입이 쩍 벌어졌다. 

큰 덩어리로 떨어져 나오는 벽체도 몇 번 콩콩 찍어내니 잘게잘게 부서져버린다.

그렇게 쌓인 돌덩이들은 다시 바가지로 갈아 끼운 뒤 슥슥 긁어모으고 퍼담아

옆에 대기하고 있는 트럭에 부지런히 쏟아부으니 그게 또 금방이다.









저 작업을 인력으로 덤볐다면 하루로도 부족할 일이다.

높은 곳엔 아시바를 설치해 그곳에 딪고 올라가 작업을 해야 하지 않던가.

그렇게 쏟아진 돌멩이는 다시 포대자루에 일일히 손으로 담아 등짐을 지고 

차로 옮겨 실어야 하고..

얼마나 번거롭고 힘들고 오래걸리고 위험하기 짝이 없나 말이다. 

 오래전부터 늘 그렇게 해왔던 일이지만서도 

저런 기계의 거짓말같은 속도와 능력 앞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처럼 공구 욕심이 많은 남자들이라면 결국 이렇게 혼자 나즈막히 속삭일테다.


'하나 갖고싶다'







오른쪽이 기존의 우리 가게.

왼쪽이 새로 사용하게 될 공간.

정확히 두 배가 넓어지는 건 아니고

원래 왼쪽 공간의 뒷쪽 일부분을 벽을 세워 주방으로 사용해오다가

이번 기회에 완전히 확장해서 사용하기로 했다. 

암튼 왼쪽공간은 모두 주방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좁고 필요한 장비를 놓을 공간이 부족하긴 마찬가지. 

그래서 사전에 각종 기구 배치를 반복 시뮬레이션하며 작은 빈틈이라도 

허투루 쓸 수 없도록 생각을 많이 투자했다. 








벽체를 모두 털어냈고 홀보다 약 20센티 높았던 주방 바닥도

모두 긁어내 홀과 높이가 같아졌다. 

주방 바닥이 높았던 이유는 상하수도 배관을 설치하고 

그것의 보호를 위해 그 위에 시멘트를 부어 발랐기 때문이다. 

새로 꾸미게 될 주방은 몇 가지 아이디어를 통해 단을 높이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오른쪽에 보이는 경사로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의 지붕 부분인데

그 윗부분은 비록 평탄치 못하지만 저렇듯 빈 공간이어서 

역시 역면의 벽을 털어냈고 앞으로 달고나의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게 될

중요한 공간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주방 바닥은 타일을 붙일꺼고 트렌치는 역시 따로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이 사진은 오늘 목요일의 모습.

바닥은 콘크리트 가루 범벅이고 쌓아올린 집기들은 비닐도 벗겨져 나가 

먼지를 그대로 뒤집어 썼다. 

40미리짜리 각 파이프가 쌓여있고 그 위를 용접선이 어지럽게 지나간다. 

이미 금속작업은 시작됐는데 홀과 주방을 나누는 경계의 벽은

저처럼 각파이프를 사용하기로 했고 석고보드 등으로 속을 채운 뒤

표면은 흰색 타일을 두를 계획이다. 


상수동 까페의 주인은 친구인 홍마담이지만 그 공간을 만든 사람은 '형님'이다.

우리는 그를 그렇게 부른다. 

그리고 우리 가게의 수쉐프인 쏭지는 나를 '목수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형님과 목수님이 힘을 합쳐 달고나를 만들고 있다.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3. 10. 14. 15:26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이들이라면,

특히 기름을 많이 쓰는 요리를 하는 이들이라면

언제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주방배기의 문제인데,

그 중 유증기의 문제는 쉐프의 양쪽 어깨에서 한쪽을 내리누르는 커다란 문제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외부공기 유입 문제. 천천히 설명드리겠다)


서양요리의 경우 한식에 비해 기름을 많이 사용하므로

불가피하게 유증기가 발생하게 된다. 

고열로 달궈진 기름이 피어오르는 것도 그것이지만

이른바 플람베(와인 등으로 불꽃을 일으키는 작업)를 할 때

불길과 함께 다량의 미세 기름도 공기중에 피어오른다.

이것이 배기구를 타고 밖으로 빨려나가지만

그렇지 않은 미세기름들은 후드 표면에 달라붙게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면 흘러 떨어지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청소를 해주지 않으면

각종 오염물질과 뒤엉겨서 아주 볼썽사나운 기름떡을 만들어내곤 한다.


나 역시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해 언제나 고민을 안고 살아야 했다.

현재 나는 어렵게 얻은 부직포를 일정크기로 잘라 후드의 배기구멍에 고정시킨 뒤

거기에 바람구멍을 내서 어느 정도 유증기가 일으키는 부작용을 겨우 피해가고 있다.

이것도 이틀에 한 번씩은 갈아줘야 기름오염으로터 벗어날 수 있는데

이게 결코 쉬운 작업만은 아니다. 

그래서 일부 고급 주방에는 기름필터, 또는 배플필터를 사용해 유증기 문제를 최소화시키고 있다.

바로 이렇게 생겨먹은 놈이다. 





스텔레스(또는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이것은 꺽여진 날개를 앞뒤로 장착한 형태로

45도보다 가파른 각도로 후드의 크기에 맞춰 여러개를 장착하면 된다.

후드를 작동시키면 공기가 끌어당겨지고 피어오른 유증기는 꺾여진 날개 사이를 통과하면서

표면 장력에 의해 날개 표면에 들러붙게 된다. 

표면에 기름이 모이면 이것이 걸쳐놓은 각도의 가파름에 따라 표면을 타고 흐르게 되고

그것이 파여진 홈으로 모여 떨어지면 별도의 관을 따라 한곳에 모은 뒤 처리하면 끝. 


위생, 건강, 편의성, 영구적 사용 등등 주방에서 없어선 안될 필수품인 셈.

서양요리주방은 물론 중국요리주방에서 이건 필수로 보인다.

그곳은 언제나 유증기가 화산처럼 폭발하는 곳 아닌가.

(중국집 주방이 고요하다면 그집은 피하는게 좋다)



이걸 구하기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여러곳을 수소문해봤지만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닥트, 후드 업체는 논바닥에 볍씨 뿌려놓은 것 처럼 많아도

그들에게 이것에 관해 물으면 대부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평생안고 사는 관절염마냥 나도 그렇게 살았다.


헌데 이제 이것을 다시 시도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이 기회에 살짝 밝히는 바지만

가게를 같은 자리에서 조금 확장하기로 했다.

공사시기는 11월 초로 잡고 있으며 약 2주간의 공사를 통해

만 4주년이 되는 날 달고나의 시즌 2를 선보일 예정이다. 

시즌2 메뉴에 관해선 나중에 다시 자세히 얘기하기로 하자. 



암튼 이번 확장의 핵심은 주방공간이고

저 배기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요리하는 사람으로써 오랜 숙원이기도 하다. 

결국 국내에선 마땅한 업체를 찾지 못했고 수소문끝에

중국 광주에 있는 한 업체와 연결이 돼서 그곳에서 필요물량을 받기로 했다.

현재 이메일을 통해 트레이딩이 진행중인데 

물량이 100개 이상의 단위여서 엄두를 못내다가 10개 단위를 취급하는 업체를

겨우 알아내서 연락을 했고 그쪽에서 오케이가 왔다. 


중국쪽에 이런 업체가 많은 이유는 아무래도 그들의 요리 특성때문이지 싶다. 

커다란 기름팬에서 지지고 볶고 하니 거기서 발생하는 오염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은

중국에선 이미 전부터 이어져온 고민이 아니었을까?

반면 우리나라에선 기름보다는 수증기가 많은 것이 특징.

하나 더해 중국은 식당을 차릴 경우 주방에 대한 규정이나 규제가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까다롭다고 들었다. 

이런 점들도 중국주방의 현대화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일 듯.

(현대화? 얼마나 안다고 막 갖다 붙이네..)



이번 주방확장에서 배기시스템이 안착되면 아예 그쪽 시공전문으로 나서볼까?

그리고 아까 설명하지 못한 주방 배기의 또 다른 문제.

바로 외부공기의 유입인데..

이게 뭐냐면..


외부에 연결된 시로코팬을 작동시키면 그 강력한 모터가

후드를 통해 주방의 공기를 끌어당기게 되고 이를 통해 유증기나 각종 연기, 냄새등이

외부로 빨려나가게 되는데 문제는 대개의 주방이 홀과 연결돼 있고

또한 칸막이가 없는 형태가 많아서 결국 주방의 공기만 빨려나가는게 아니라

홀의 공기까지 빨려나가게 된다.

이는 결국 출입문이나 창문, 기타 틈새를 통해 외부의 공기가

실내로 빨려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는 냉방, 난방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초래한다.


우리도 처음에는 이 문제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유증기로 가득 찬 주방을 환기시키기 위해 팬을 돌리면

힘이 엄청나서 홀 출입문을 안쪽으로 당기는 것은 물론 문 틈 사이로 주사바늘처럼

새들어오는 바람에 일부 손님들이 불편해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인근의 아는 어느 식당 사장님은 작은 가게지만 주방과 담배피는 홀 양쪽에 각각 

1개의 팬을 작동시킨다는데 그 힘이 워낙 쎄서 밖에서 들어오는 손님들이

문을 못 열 지경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홀과 주방을 완전 격리시키거나

주방과 홀로 통하는 통로를 최소화하는 것 외엔 없으나

이를 현실적으로 가능케하기는 쉽지 않다.  

오픈 주방을 선호하는 소비자 입장을 생각해도 그렇고.


결국 나의 대안을 이랬다.

조광기(필라멘트 조명의 밝기를 조절하는 스위치)를 연결해

그것으로 시로코팬의 전류를 조절, 풍압을 조정하는 것으로 대체했다는 것. 

ㅋㅋ

그야말로 잔머리.. 

헌데 이것도 모든 상황에 맞는 건 아닌가 보다.

적어도 팬의 용량과 조광기의 수용용량을 계산해서 연결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렇다고 또 이게 꼭 들어맞지도 않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조광기는 저항이고 팬은 유도이기에 발생하는 차이때문이 아닐까 추측. (더 이상 알려하지 말라 --;)

우주탄생의 숱한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과학자들이 있다면

나는 조광기와 시로코팬의 풀리지 않는 상관관계의 숙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실제로 나는 이 둘의 기계적 특성과 역할적 교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지만 그럴만한 시간도

의지와 동기도 아직은 부족하다. 

당장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라는 문제로 이미 머리는 터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주방확장공사 계획짜기와 더불어.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3. 9. 28. 16:02

오래 전 포스팅이 걸려있는 블로그. 

늘 맘 한구석이 불편하고 거슬리고 마냥 숙제 미루는 못된 아이가 된 느낌.

오늘은 그 숙제를 좀 풀어야겠다.

그리고..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좀 성실히 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늘 하는 다짐이지만..


그럼 시작. 



***



바야흐로 가을. 

뒷마당에 봄에 심었던 모든 풀떼기들이 서서히 잎을 떨구거나 앙상해져가기 시작했다. 

여름못지 않은 뜨거운 햇살의 양분도,

뿌리까지 닿아라 열심히 물을 뿌려주는 정성도 이제 더 이상은 소용이 없다. 

그리고 조용히 깨닫는다. 

'곧 겨울이 오겠구만!'



이미 마음적으로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진O상회(익명처리)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집이다.

주로 민어, 병어 등의 고급 생선은 물론 대중적인 고등어, 삼치 

그리고 오징어도 취급하는데 우리는 이 집에서 오징어를 규칙적으로 구입해왔고 

때론 삼치나 고등어를 우리먹을 밥반찬 용으로 조금씩 사곤 한다.  

헌데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후유증이 바다건너 이곳 진O상회에까지 닿고 말았으니..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외면으로 이집 매출이 예전같지 않은 것이다. 


얼마 전, 노량진에 가리비 파동이 닥쳤었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가리비가 수입이 금지되면서 중국산 가리비의 물량 사재기가 겹치자

시장에서 가리비가 종적으로 감춰버린 것이다. 물론 잠시였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거치면서

메뉴에서 '후루띠 디 마레'를 당분간 메뉴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다.

조개를 비롯해 새우, 오징어, 가리비 등 해산물이 풍부하게 들어가는 이 메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날로 예민해지는 것을 마냥 모른 척 할 수는 없었기 때문. 



상황이 이렇게 되니 오징어를 쓸 일이 없어졌고 결국 진O상회를 찾는 우리의 발길도 뜸해져버렸다.

십여미터 떨어져있는 조개집은 매일 가다시피 하는데 이 집은 그렇질 못하니 마음 한 켠에 

부채가 쌓이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욱이 이 집 사장님 내외는 얼마나 친절한가 말이다.

솔질히 아저씨는 친절하긴 해도 괜히 덤을 주거나 하는 일은 극히 드문 반면 

아주머니는 아저씨 눈치를 살짝 본 뒤 내게 언제나 덤을 챙겨준다. 



추석을 몇 일 앞둔 어느날, 작은 추석선물을 담은 쇼핑백을 들고 가게를 찾았다. 

오징어도 모처럼 구입하고 선물도 건네며 인사를 나눴다. 

으례 해왔듯이 건네는 선물이었고 으례 그렇듯 손사레를 치며 겸연쩍게 선물을 받으셨다.

아주머니는 "그래도 추석은 추석인가봐, 요즘은 고등어도 좀 나가네" 하신다. 



방사능 공포의 긴 터널은 과연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당국자들, 듣고있나?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3. 4. 30. 16:35

지나 겨울의 강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자

노량진엔 숭어가 매일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듯 하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생선 장을 보는데

겨울엔 마땅히 쓰기 좋은 숭어가 잘 안보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 좋아져서 크기도 적당하고

가격도 괜찮은 숭어가 넘치고 있다. 

하지만 날씨가 따뜻해지자 숭어 까르또쵸(종이찜) 주문이

반비례로 줄어들고 있다는..




3월 말에 겨울메뉴로 늘 내놓는 볼로녜제를 철수시켰다. 

라구 소스를 이번 다가올 겨울까지는 더 이상 안만들어도 되고

더불어 생면도 스톱이다. 

브레이크 타임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 여유를 뒷마당 화단 돌보는데 쓰는 것도 작은 재미.

바질은 작은 싹을 내기 시작했고 올해는 쁘레쩨몰로도 재미로 키워보려고 한다. 

몇 가지 꼭 키우고싶은 허브가 있는데 이 종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제 1순위는 커먼타임.

양재동에 가면 레몬타임만 잔뜩이고 커먼타임은 없다.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지만 언제나 없다.  

한 달 전에 롯데백화점 식품매장에 소량 포장돼 진열된

커먼타임과 세이지, 마조람을 보고 열광했고 좀 더 찾아보면 

종자를 구할 수 있을꺼라는 기대를 갖게 했는데

여지껏 종자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커먼타임은 거의 모든 요리에 사용하기 좋은 허브이고

특히 까르또쵸와 살시챠에 넣으면 독특한 풍미를 내주는 보석같은 존재.

오픈 초기에 가락동에서 종종 구할 수 있었는데

2년 전 부턴 통 보기가 힘들다. 

   마죠람은 마지막에 부어 나가는 라구 소스에 살짝 섞어주면

역시 좋은 풍미를 선사하는 매력적인 허브지만 이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세이지는 돼지고기 요리에서 거의 빠지지 안은 허브.

허나 잘 어울릴 것 같진 않는데..




가게 앞 화단에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풀또기'라는 다소 촌스런 이름의 이 나무는 분홍색의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며

봄소식을 알리는 전령꽃의 하나.

작년에 꽃봉오리를 잔뜩 머금었을 때 구입해

가게 앞 화단에 심었으나 갑자기 달라진 환경,

즉 소음과 매연과 정오를 넘어서면 닿지 않는 햇살 등의 이유로

꽃도 활짝 못피우고 비실비실 거리다 지난 겨울을 맞았었다.

추위가 물러가고 남쪽에서 벚꽃 소식이 들려올 즈음

크게 기대를 안했는데 1년새 이 혹독한 상수동에 나름 적응을 하셨는지

올해는 보란듯이 분홍색의 꽃을 활짝 터뜨려 주시면서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게 기특해서 요즘엔 물도 열심히 준다. 

길쭉한 화단에 단촐하게 서 있는 이 기특한 나무가 좀 심심해 보여

뒷마당에서 키우려던 한련을 일부 떠다가 한켠에 옮겨 심었다. 

식물들에게 가게 앞과 뒤는 천국과 지옥과도 같다. 

가게 앞은 소음, 매연, 부족한 햇살로 악조건이고

뒤는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일조량도 풍부하고 평화롭기 때문.

그래서 여기선 다들 잘 자란다. 

작년에 모종을 사와 심었던 한련이 이곳에서 그야말로 떠들썩한 

시절을 보냈는데 근 2달 가까이 폭죽과도 같은 꽃을 연일 터뜨렸었다. 

그 모습을 감상하는 재미가 참 쏠쏠했었다. 

그때 받아놓은 씨를 잘 보관했다가 추위가 물러간 뒤 올해 3월에 심었고

그것들이 단 하나의 낙오도 없이 모두 싹을 틔어 나를 놀라게 했다. 

하찮은 식물과의 이런 정서적 교감은 애나 어른이나 살아가면서 꼭 필요하다. 

암튼 이 가운데 몇 포기를 정성스레 떠서 지옥에 옮겨심었는데 

아기 손가락같은 작은 잎을 겨우 내놓기 시작한 이것이

혹독한 환경에 잘 적응해 작년과 같은 매력을 발산하게 될지 어떨지.. 


한련은 90세가 넘어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셨던 

나의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던 꽃이었다. 





지난주에 부산을 다녀왔다.

일요일 영업을 한 시간 일찍 마치고 8시40분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역시 기분좋은 여행은 피곤도 잊게 만든다. 

1박2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래서 더 알찼던.

국제시장의 즐비한 구제가게에서 단돈 천 원짜리 티셔츠를 몇 개 샀고

유명한 부산오뎅도 두 봉다리나 샀다. (2만원어치)

남포동에서 유명하다는 씨앗호떡도 맛봤는데

씨앗호떡 관계자가 전하길 곧 홍대에서 등장할꺼라고.. (로얄티받고 전수하신 듯)

점심으로 밀면을 먹기위해 가게를 물색하다가

개금밀면으로 결정.

비록 밀가루 면이지만 밀면도 엄연히 냉면이니 반주가 빠질 수 없다. 

자고로 냉면은 '선주후면' 아니던가.

헌데 부산의 밀면집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는.. 

다행히 우리가 발딛고 선 곳이 개금시장.

주위를 몇 걸음 걷자 술 한 잔 마시기 좋은 허름한 가게 하나가 눈에 띈다.

4명이 점심햇살 드는 식당 창가에 앉아

명태전(대가리붙은 명태를 통으로 부쳐내는 독특한 스타일에 깜놀)과

부추전, 홍합탕, 세 가지를 안주삼아 C원소주 3병 격파하고 나니

개금시장이 어찌나 정겹게 느껴지던지..

알록달록 소쿠리에 소복히 쌓인 나물도 사고싶고

설탕범벅의 꽈배기도 사먹고 싶고 

갓튀긴 튀김들이 켜켜히 쌓인 떡볶이집에서 2차도 하고싶고..


정신차리고 개금밀면집에 입성.

비빔 하나와 물 3개 시켜서 후루룩 짭짭.

가격은 5천원. 개금밀면을 최근 확장공사를 해서 

내부 인테리어가 깔끔해졌다. 그래서 좀 실망했다는..

넓어진 홀과 벽 하나에 투사되는 오케스트라 연주 영상(이건 뭥미?)의 생경함과

선불하고 입장해서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면 '띵동'하고 쟁반에 담긴 밀면이 나오는 시스템.

혹시 잊은 손님들을 위해 남자직원이 마이크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번호를 불러준다. 

"243번 손님,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원칙은 먹고난 빈그릇도 식기반납함에 갖다놓고 나오는 시스템인데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한 부산친구는 완전 실망한 모습.

누구는 깔끔해져서 좋다고도 하겠지만

그런 변화가 싫은 이도 있다. 

음식장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맛을 최우선 가치로 얘기한다.

허나 그 맛이란 단지 혀의 감각에만 그치는 문제는 아닐뿐더러 

특히 단골이라는 특수한 사람들에겐 공간과 소품으로 확장된 '맛'의 개념을 무시해선 안된다. 

확장이나 이사를 신중히 해야하는 이유다.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건 아닌데..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3. 3. 25. 23:29

3월 하순. 햇살도 좋고 벚나무에 꽃망울도 곧 터질듯 한껏 부풀었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모습도 기대되지만

시시각각 무르익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즐겁긴 매 한가지. 

봄햇살 아래 조용히 앉아 손에 뭔가 마실 것 하나 쥐고

벚나무의 꽃봉오리를 하루종일 올려다보고 싶다. 

만사 제치고 말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잘 사는 사람. 


 


지난 주 쉬는 날 난로를 정리했다.

지난 겨울 남하하는 강력한 추위를 강한 열기로 막아서

달고나 매출의 추락을 막아낸 북방의 믿음직스런 장수같은 존재.

연탄의 잔재와 살짝 부식된 녹찌꺼기를 철브러쉬로 박박 긁어내고

다시 조립한 뒤 신내동 어머니집 내방 한 켠에 비닐로 잘 싸두었다. 

무겁고 번거롭지만 몸소 난로와 그런 씨름을 벌이는 것도

생활의 분명한 이유이면서 동시에 재미다.

장담컨데 출퇴근에 2시간 이상을 만원 버스에 시달리고

같잖은 상사가, 또는 조직이 던져놓는 정체불명의 지시를 저항없이 수행하는

이 시대의 아빠들 중 많은 이들이 나의 이런 시덥잖은 일들을

부럽게 생각할테다.  아닌가?


주물 난로여서 관리만 잘 하면 거의 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연탄은 좀 많이 남았다. 연탄 한 장에 550원.

200장이 주문의 최소 단위인데 이번 겨울을 나는데

총 두 번 주문했으니 난방비로만 22만원을 썼다. 

헌데 50장 가량이 남았으니 19만원 정도 든 셈.

남은 연탄은 잘 뒀다가 다가올 겨울에 쓸 것이고

그 전에.

몇 장은 뒷마당에서 고기 구어먹는데 쓸 계획. 낄낄..

강양이 평소 갖고싶어하는 것이 옷, 레티나 맥, 제주도 평생 항공권 등이지만

불고기 불판도 그 중 하나. 

황동 주물로 찍어낸 그건 누가 봐도 모양이 범상치 않을 뿐더러 

가격도 비싼데 가끔 황학동에 나가면 매번 마주치게 되는 물건이기도 해서

언젠가 저걸 사야할 이유가 생긴다면 주저없이 구입하겠다고 다짐했었다

난로를 치우고 주차장 한 켠에 두둑히 쌓인 연탄을 보노라니 

이제 저 불판을 사야할 때가 된것 같다. 

지난 겨울에 따로 사 둔 연탄화덕에 연탄불을 지피고

그 위에 석쇠를 올리면 돼지고기 굽는 날이고

불고기판 올리면 불고기 굽는 날이 되는 셈.

벚꽃 빵빵 터져 흐드러질 때 그 아래서 소고기 굽겠지.

뒷마당엔 재작년에 심어놓은 벗나무가 있다. 


연탄배달을 하는 노부부가 있다.

이들이 손발 척척 맞춰가며 연탄 쌓는 모습을 지켜보다

한 마디 건넸다.


"이것도 겨울 한 철이니 여름에 한가하시겠네요?"


"그래도 요즘엔 연탄쓰는 고깃집이 많아서 괜찮아. 

오히려 우린 여름이 좋아. 일 많지 않아서 남는 날엔 놀러 다니거든" 


댕~ 하고 한 대 얻어맞은 기분. 

당신들이 정답이싶니다요. 




봄이 오니 할 일이 많다. 

난로 정리는 그 시작이고

뒷마당에 창고처럼 사용할 선반을 만들어야 하고

화단도 다시 재정비 해야한다. 커먼타임과 마조람 씨앗을 구해

올해는 이놈들을 집중 육성해야 하는게 씨앗을 손에 넣기가 쉽지 않다.

홀도 대대적으로 바꿀 계획.

테이블을 기존대로 가지만 강양이 사용하는 카운터쪽은

지금의 냉장쇼케이스를 처분하고 그 자리에 작업대를 만들고

그 작업대 아래에 미니 냉장고와 다른 한 켠에 230리터짜리

일반 냉장고를 각각 배치할 계획이다. 

이는 주방에서 전담하는 파스타와 요리 외에 홀에서 가볍게 

다룰 수 있는 샐러드나 미니 플레이트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음료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좋도록. 

미니 싱크대도 놓을 계획이고

홀의 썰렁한 흰 벽에 그림도 걸 생각이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나름의 설계도를 지금 짜야 하는데

지금 그거가 잠깐 하기 싫어서 이렇게 포스팅하며 빈둥거리는 중..

헌데 포스팅도 쉬운건 아니다. 그냥 누워서 멍하니 EBS를 보고싶다. 

하늘에서 바라본 한반도를 하는 중. 영상도 목소리도 따분하니 좋다.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3. 1. 14. 11:40

2차 멘붕도 어느정도 진정된 요즘.

텔레비전 뉴스는 거의 안보기도 하고 

포털의 뉴스검색도 하지 않으니 그런가 싶은데

갑자기 쓰러진 몸을 요양하기 위해 산깊은 곳에서

맑은 공기만 마시며 세상 끊고 사는 것 같아서 그런거겠지.

뉴스를 보면 다시 발작을 일으킬까 두려운..



+++



겨울메뉴로 내는 볼로네제의 라구 소스가 3년만에 만족스러워졌다.

주방에서 함께 일하는 쏭지에게 내가 원하는 맛에서 85점 수준에 도달한거 같다고도 말했다.

처음 시도했을 때는 50점도 안되는 맛이었고

최근까지도 70점이 못됐다고 나름 평가해왔는데

이제 라구 소스에 대해선 내 자신에게 작은 칭찬정도는 해도 될 듯.

더불어 손님들에게도 좀 더 자신감이 생겼으니

혹여 맛없다고 포크 내려놓는 이가 있다면 보다 당당하게

'그래도 돈은 내고 가슈'

라고 할 수 있겠다 ^^.


헌데 쏭지가 '근데 목수님(날 부르는 호칭)의 라구 기준은 뭐에요?'라는 질문에

잠깐 고민하다 

'내 머릿속 상상의 맛?'

이라고 대답. 




+++




우리가 가게를 시작하기 전부터 옆에서 장사를 하던 옷가게가 

인상된 월세를 이기지 못하고 인근으로 이사했다.

그간 자잘한 음식과 선물 따위로 친목을 나누던 사이였는데..

이사하면서 버리고 갈 것들 중 일부를 내게 양도했는데

민속주점에나 어울릴법한 큰 통나무를 그대로 잘라낸 의자(?)와

잘라낸 자작나무에 가짜 나뭇잎을 덧붙인 인테리어용 나무 등이 그것.

마땅히 둘 곳도 없어 주차장 한켠에 가지런히 세워놨다. 

아무리 찬바람에 흰눈이 내려도 주차장은 봄일세.

이사때 빌려간 내 전동공구는 돌려주셔야 할텐데 소식이..


옷가게가 나간 자리에 지금 술집공사가 한창이다. 

어떤 컨셉일지 궁금하면서 동시에 걱정도..

과연 잘 될지..



+++



최근 홍대 상권(그래봐야 내가 체크(?)하는 상권은 상상마당 남쪽)에 

덩치가 큰 가게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큰 주택 전체를 리모델링한 음식점도 있고 

4층 건물 하나를 통으로 꾸민 서양식당도 있고

삼거리 포차도 성형미인처럼 완전히 탈바꿈해 재등장했고

연면적이 200평은 돼보이는 3층 건물을 역시 단일 종목으로 꾸민 식당도 문을 열었다. 

특히 이 3층 건물은 낡은 사무실 건물을 뼈대만 남기고 벽을 턴 뒤 

구조용 H빔과 블록으로 보강해 모던심플하게 연출하고

내부는 철거의 속살을 과감히 드러내는 헤이리스런 실험을 선보였는데

규모와 시도를 지켜보면서 과연 뭐가 들어올지 시종 내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공사가 마무리돼 갈 즈음에 작은 간판이 조용히 하나 걸렸으니

다름아닌 식당, 그것도 '이탈리언'.

오 허..

심사가 잠깐 복잡해지다가 진정되고 곧 기대와 우려가 교차.


괜찮게 하는 식당이 들어서는 건 나도 반가운 일이지만

그게 또 나랑 겹치면 살짝 긴장감이 도는 것도 사실인데

그게 거의 공장 수준의 규모로 생긴다면 걱정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다. 

아기자기한 구멍까페 힘들여 열었더니 

근처에 스타벅스가 며칠만에 뚝딱 오픈할 때의 심정같은 거?


 만약 이 덩치가 맛, 가격, 서비스에서 흠잡을데 없는 기량을 펼친다면

우리는 물론 인근에 서식하는 고만고만한 이탈리언들을 몽땅

집어삼킬 수 있겠다는 불길한 상상도 종종 밀려왔다. 

가령 한 층에선 정말 나폴리식으로 단순, 터프하게 화덕피자를 구워내고

또 한 층에선 자신있는 파스타 몇 가지와 요리를 집중적으로 내고 (역시 터프하게)

또 한 층은 샐러드나 음료를 뷔페식으로 해서 이 세 가지를 유기적으로 돌린다면

그야말로 홍대의 핫플레이스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럼 우리는.. 손님 발길 끊기고 가격을 내리고 봉골레의 조개를 줄이고

크림양도 줄이고 루꼴라도 빼고 치즈도 적게 갈아주고 손님은 더 안오고

월세 못내고 직원 퇴직시키고 강양이랑 매일 다투고

결국 부동산에 가게 내놓고..  으앙..


그리고 최근.

이 집이 자신의 맨 얼굴을 드러냈는데

헐..

요란하게 등장한 종편의 시청률을 보는 심정이랄까..

그간의 내 고민이 민망할 정도랄까..

한편으론 화가 나기도 하고..


값비싼 인테리어를 마친 대형 유리창에 

종이박스를 찢어 그 위에 매직으로 '미친 오픈중'이라고 써서 붙이더니

다음날엔 역시 같은 종이박스를 찢어 이렇게 썼다.

'파스타, 샐러드, 떠먹는 피자.   지기네!'


수억원을 들였을 거대 프로젝트니 만큼 혹시 종이박스와 매직,

그리고 저 경박한 문구도 사실 오픈컨셉의 치밀한 전술은 아닐까?..

애써 그 의도를 풀어보려 했으나 도무지 답도 안나오고 이해도 안되지만

그래도 맛을 보지 않고선 판단을 내릴 수 없으니 지난 주 쉬는 날

방문해보기로 하고 발길을 향했다.


잠시 가게에 들렀다 오니 그 가게 먼 발치서 기다리던 강양의 거친 한 마디,

'꿈도 꾸지 마'


3년간 수많은 접시를 나르며 손님 시중을 들어온 그녀에겐

분명 나도 넘볼 수 없는 그녀만의 '촉'이 있다. 

단호한 그 한 마디엔 결기까지 더해졌으니

이거 뭐 설득, 눈치, 미련따위를 가질 틈도 없다.

그녀가 마음을 싹 접은 이유는 

출입구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요상한 복장을 입고 춤을 추며 

자신을 향해 들어오라는 제스쳐를 취하더라는 것.

   음..  




이후 인터넷을 통해 정체를 좀 더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미 강남에 매장이 있는 프렌차이즈다. 

아마 홍대가 가장 큰 규모의 가게가 아닐까 싶은데

시장분석을 과연 얼마나 한 것인지 의문이 간다. 

인터넷으로 메뉴를 검색해보니 큰 반향을 일으키는데는 한계가 있어 보이고

메뉴보다는 인테리어와 독특한 컨셉, 노이즈한 서비스에 무게를 두는 집이지만

음.. 떡볶이가 홍대 외식계를 견인하는 특이한 구조속에서

돌발적으로 등장한 이 공룡이 버틸 수 있을지..

무엇보다도 가게가 너무 크다. 홍대에서 이건 데미지.




앞서 언급한 대형식당 몇 곳도 쉽지 않아보인다.

마당까지 있던 3층 단독주택을 식당으로 꾸민 음식점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분위기다. 이 가게는 한 번 다녀왔는데

그때 느낌은 나쁘진 않으나 이 규모는 홍대에선 크다는 판단을 내렸다.

최근 소셜커머스 쿠폰을 발행하고 있으니 경영상 고민이 많다는 반증.


4층을 통으로 쓰는 또 다른 식당 역시 힘겨워 보인다.

이 집은 입구에서 메뉴만 훑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인테리어는 돋보이는 면이 있지만

내 흥미를 잡아끄는 메뉴는 없었기 때문이고

가격이라도 비싸면 어떤 재료를 쓸지 궁금해서라도 들어갔을텐데

가격도 저렴하니 이건 척 답이 나온다. 

무엇보다 출입문 너머로 손님을 살피는 가게는 NO NO.



인근에 넓은 2층 주택을 개조한 어느 식당도 방문하고서 경악했는데

까페베네 인테리어를 해놓고 부루스타 올리고 소주를 팔면 어쩌자는건지..


절박한 생계형 장사가 아니라서 그런가?

나름 다 절박한 이유들은 있을텐데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셈법으로

들어서는 가게들을 보노라면 가게 주인들을 인터뷰하고싶다는 불쑥불쑥 든다. 




장사를 복싱에 비유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펀치를 어떻게 날리고 발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복싱에서 기본이다.

챔피언의 탄생은 그 기본에 끈기와 집념, 그리고 자신만의 기술이 더해져야 가능하다. 

좋은 신발과 글러브도 챔피언의 조건일 수 있겠지만 

그게 우승의 이유였다고 말하는 챔피언은 단 한 명도 없다. 

장사도 마찬가지.

메뉴와 재료, 서비스와 위생은 기본기이고

나머지 성실과 약속주의, 레시피가 더해지면

장사는 잘 된다.



+++



어제 아침, 가게앞을 빗자루질 하다가 이 동네만 30년 이상인 상수건축 사장님을 만났다.

내가 이 동네서 존경하는 몇 안되는 분. 

철거서부터 건축, 수도꼭지 교체까지 못하는게 없고

부르면 차에 공구통 싣고 어디든 가시는 그 분.


어제 대화중에서 두 가지 가르침을 배웠으니


'젊어서 크게 실패해봐야 한다' 와


'장사도 망하기 시작하면 무슨 수를 써도 막을 수 없다' 는 것.


낯선 가르침을 아니지만 좀 더 무겁게 새겨들을 말들이다.

이번 대선에서 저력을 보여준 실버파워를 생각하면 익숙한 가치들을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하나 더, '시간 만들어서라도 건강검진해라'.

가게 맞은 편 건물 사장님이 최근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것.

인사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지만 오며가며 모습을 봤었고

자기건물과 주변 관리를 깨끗하게 하기로 소문난 나름 이 동네 재력가인데

종양발견이 늦어 손도 못써보고 가셨다고.



친구 홍시인이 세 번째 가르침을 좀 잘 새겼으면 좋겠구만..




+++




우리 주방에서 잠깐이나마 함께 일했던 영화계 김PD가 최근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 투자됐어!'


이 친구 정말 영화를 찍는건가?

그간 맘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기에 우리도 주방에서 기쁨을 나눴다.

로케이션 들어가면 우리 가게서도 찍으라고 했는데.

곧 술 마시러 온다했으니 비굴하게라도 앞으로 잘 보여야지 낄낄. 




+++




그리고 내 얘기..

올해 한 해, 난 결심했다.

무.


동치미도 담가먹고 깍두기도 담가먹는 바로 그 무.

올해를 시작으로 그 무와 고락을 함께하기로.

라디오 광고에서 빛나는 은퇴설계는 KB금융그룹과 함께하라는데.. 뽕이다.

내 은퇴설계는 무와 함께다.

이 이상은 밝힐 수 없다. 으하하하

뭐 궁금하지도 않겠지만 ㅋㅋ




새해 복들 많이 받으시고 

박근혜정부 5년, 자 알 살아보세.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2. 12. 20. 13:02





'애플에 다니는 자식에게 부모가 기어이 공구상자 들려보낸 선거'


또는


'첫출근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기어이 자신의 노란샤쓰 입혀보낸 선거'


...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2. 12. 18. 00:42


문재인의 승리를 전제하고 잠시 끄적이자면,

이번 선거과정 중에 박근혜가 결정적 승기를 잡는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박근혜가 그것을 감행했다면 

아무리 안철수라도 그것을 돌파해내긴 힘들었을 것이란게 내 생각이다.


바로 최측근이었던 이춘상 보좌관의 사고사가 그것인데..

유세일정을 무리하게 진행하다 자동차 사고가 났고 결국 숨을 거두었으니

자신의 본분에서 최선을 다하려던 욕심이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니만큼

캠프 사람들은 물론 사건을 접한 일반인들도

안타깝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소식을 접한 박근혜는 우선 잡힌 일정들을 소화한 뒤

곧바로 고인의 빈소ㄹ로 달려갔다고 한다.

오랫동안 최측근에서 보좌해온 분신이 사고로 떠났으니

그 슬픔과 상실감은 컸으리라 짐작되고

더욱이 대통령 선거라는 일생최대의 공동목표를 코앞에 두고

일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그 허망함은 더욱 컸으리라 또한 짐작되는데..



여기서 만약 박근혜가 모든 유세일정을 중단하고 이보좌관의 장례를 발인까지 성심껏 치른 뒤

다시 유세에 나섰다면 거기서 이번 대선은 게임이 끝났다는게 내 생각이다.

대선을 치르면서 이런저런 사건사고들은 늘 터지기 마련인데

그것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엔 기술적인 요령도 있겠지만

정말 한방에 가는 것은 '감동(또는 거역할 수 없는 공감)'이기 때문이다.


설사 그 감동이 '기술'이라 해도 사람들에겐 다음 메시지를 각인시키게 되는데

전시 상황에서도 부하의 장례를 성심껏 치르는 장수의 결단력, 또는 통솔력,

그것을 통해 쌓이는 의리, 또는 신뢰,

그리고 이 모든 행위를 통해 전달되는 진정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아버지 박정희와 연결되면서 향수를 일으키고

여기에 평소 박근혜에게 입혀진 '가련'의 이미지가 겹쳐지면

대중들은 '동정'이라는 비타협적 정서로 그녀를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거나

또는 그 공격을 애써 외면하지 않았을까?


'박근혜의 힘'이란 결국 박정희로 상징되는 지도력,

육영수로 상징되는 동정과 연민으로 어우러진 '이미지의 힘' 아니던가?

이보좌관의 사고는 그것들을 하나로 보여줄 수 있는, 위기면서 기회였다는게 내 생각.



선거가.. 이제 자정이 넘었으니 하루 앞으로 다가온 셈.

글은 위와같이 끄적였지만 난 정권교체의 기운을 느낀다.

가슴 한 구석에서 올라오는 어떤 뜨거움이 있는데

이게 10년 전 느낀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밖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더해질수록, 

선거일이 가까워 올수록 더욱 크게 타오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닐 것.

들불처럼 번져간다는 표현을 종종 접하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들불정도가 아니라 진화가 불가능한 엄청난 불길로 타오르고 있다.

그야말로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하다.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2. 11. 19. 10:36



우리 어렸을 적엔 주변에 태울게 많았다.

난 유년시절을 경기도 구리에서 보냈는데 시골이나 다름없던 당시의 그곳은

 주택건설이 한창이라 어딜가나 못박힌 폐기목들이 넘쳐났다. 

종종 시커먼 기름을 뒤집어쓰기도 한 그것들을 줏어모으면 불을 질렀다.

동네 형들은 주위를 살피며 담배를 빨았고 우린 불꽃이 사그라들까

부지런히 장작을 구해다 불꽃을 키웠다. 

태울 수 있는건 다 태웠던거 같다. 

버려진 옷가지, 비닐하우스의 폐비닐, 어디선가 가져온 전화번호부책. 

깜깜해진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옷에선 탄냄새가 진동했다.

요즘 엄마들이라면 애를 잡았을텐데 그때 엄마들은 안그랬다.

연탄냄새, 남편 담배냄새, 밥타는 냄새, 언수도 녹이느라 왕겨 태우는 냄새 등.

하여튼 뭔가 타는 냄새가 일상이었기 때문일까?


아무튼 겨울엔 불장난이 최고였고 그게 문제가 안되던 그 시절이 그리운 요즘.

그런 연관인지 남자들은 애나 어른이나 불을 지배하고 싶어하는 어떤 욕망이 있는게 아닐까?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그이가 남자에게 어떤 DNA를 심어줬는진 모르겠지만

 겨울이 닥치기 전에 연탄난로를 놓기로 올 가을에 난 마음을 굳혔다.

내 불장난을 위해서도 그렇고 문가에 앉은 손님들의 따뜻함을 위해서도 그렇고.

그 계획을 밝히자 달고나 식구들간에 가뜩이나 좁은 실내 문제로 잠깐의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따뜻한 겨울을 나자는 것에는 모두 한 마음. 



사실 요즘 도시난방의 대세는 전기이고 우리 가게도 냉난방 겸용의 천정형 에어컨을 쓰고 있는데

이게 전력도 많이 먹으면서 난방력은 떨어지고 무엇보다 '열풍'방식이기 때문에

그 바람을 맞으면 메말라가는 느낌이 썩 안좋다는 점이다. 

따뜻함에도 품질이 있는 법.

제일 좋은 품질은 복사열 난방일테고 그 분야의 최고는 역시 직접 불을 때는 난로다.

화목난로든 연탄난로든 기름난로든.


난로를 설치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아주 큰 산이 하나 있다. 

바로 연통을 밖으로 빼내기 위해 벽의 구멍을 확보하는 것이 그것. 

연통 구멍이 유리창 따위나 허술한 얇은 벽이라면 문제가 간단하겠지만

두터운 콘크리트 벽이라면 각오 단단히 하고 도전해야 한다. 






아래쪽 구멍은 3년 전 가게 공사를 하면서 뚫은 것인데 왜 뚫었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아저씨 두 명이 흰 먼지를 잔뜩 뒤집어써가며 애썼던 기억은 생생하다. 

새로 뚫어야 할 위치는 기존 구멍에서 수직으로 올라가 가스배관이 지나는 바로 아래다. 






집에 에어컨을 놓을 때 설치기사가 쓰는 장비중 하나가 바로 저거다. 

'코아드릴'이라고 부르는데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콘크리트 벽체를 

동그랗게 뚫어준다. 그 구멍으로 에어컨 동파이프와 배수파이프를 통과시키게 되는데,

에어컨용 설치를 위해선 50mm 정도의 구멍을 뚫으면 충분하지만 

우리 가게에 놓을 연통구멍의 폭은 110mm다.

따라서 최소한 110mm 이상의 구멍을 확보해야 한다. 


자주 사용하는 장비면 아마 내가 구입을 미뤘을리가 없겠지.

저건 종종 이용하는 공구상을 찾아가 빌리기로 했다.

벽을 깨부수는데 쓰는 해머드릴 하루 빌리면 2만원이 채 안되는데 저건 3만원을 달란다. 

왜 이렇게 비싸냐니까 날 값이 비싸서라고 한다. 아무래도 닳아 없어지는거니까.. 

무게는 10kg 정도. 역시 만만치 않을 것 같은 예감..

125mm 날을 장착한 저놈을 빌려와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신분증을 잃어버려 여권으로 대신하고 있는데 마침 여권을 안갖고 갔더니 그 마저 확인안하면

못빌려준다길래 두 번이나 왕래하는 번거로움끝에 손에 넣었다. 공구상을 자주 이용하시는

상수건축 사장님과도 친분이 두텁다는 것으로 신분확인을 대신해보려 했으나 돌아온 답이 걸작이다.

"문제가 생기면 그분한테도 피해가 생겨서 곤란해요"  왜 남을 파냐는 얘기의 다른 표현. 

두 말 않고 되돌아가 여권을 가져왔다) 





공업용 다이아몬드가 날 끝에 박혀있다.






은근히 고공작업이다. 살짝 다리가 후들거리는 높이.

코아를 들자 전반적인 무게가 앞으로 쏠리면서 균형잡기가 쉽지가 않다. 

버튼을 당겨 회전시켜 벽체에 대자 계속 튕겨 나가기만 하고 몇 차례 고전이 계속됐다. 






다시 심호흡한 뒤 들이댄다. 튕겨나가려는 것을 제압하며 온힘과 집중력을 쏟으니

그제서야 겨우 자리를 잡는데 성공. 저 코아작업을 할 때 간혹 앵커(고정)작업을 병행하는걸 

봤는데 이제서야 그 이유를 알겠다. 튕겨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동시에 정확한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






50mm 정도 뚫으니 저렇게 벽돌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나마 다행인건 저 벽이 콘크리트 타설로 메워진 벽이 아닌 조적벽이라는 점.

콘벽이면 밀도도 높고 철골도 심어졌을테니 그러면 작업은 몇 배 더 힘들어질테다.

그에 비해 시멘트 벽돌은 밀도가 좀 낮고 충격에 약하니 그에 비하면 한결 수월한 셈.

사실 이 점을 이미 아래쪽에 먼저 뚫어놓은 코아 작업에서 알았기 때문에

이번 도전에도 직접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역시 힘들긴 엄청 힘들다. 






코아가 커팅하고 지나간 뒤 가운데 남아있는 벽의 심지는 

저렇게 망치와 정으로 일일히 깨며 파낸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서 땀이 난다. 

옷도 벗어던지고 난로를 향한 집념은 계속된다.

다이아몬드 날의 고속회전도 엄청난 힘이지만 단단한 벽체가 지닌 힘도 엄청나서

종종 회전하던 드릴의 날이 벽체에 끼면서 급브레이크처럼 순간 서버리는데

그러면 반작용으로 튕기듯 드릴 몸체가 회전하고 그걸 제압하는데 순간 큰 힘을 쏟아야 한다.

벽의 저항이 충격으로 온몸으로 전달되는 셈. 

잠시 쉬어가며 그렇게 1시간을 씨름했을까?






드디어 반대쪽 벽에서 흰 먼지가 피고 마침내 벽이 뚫렸다. 

끼야호!






우승 트로피를 받은 것과 비슷한 감정.






달고나 난방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두께를 재보니 정확히 285mm.

이쯤되면 시시콜콜 별 사진을 다 올린다 하겠지만 그만큼 힘들었다는 것을

이렇게라도 확인받고 싶은 심리랄까 ㅋㅋ







연통되시겠다. 

동네 철물점에서 구입하니 하나당 3000원.

대략 12~13개가 필요하다.

길이가 1미터인줄 알았는데 재보니 91cm.

이런 기준은 어떻게 생겨난건지 궁금하다. 






엘보우와 T도 각각 필요.

엘보우는 3개, T는 하나면 충분. 






이놈이 바로 주인공 되시겠다.

인터넷에서 15만원 줬고 공장은 인천에 있는 주물공장인 듯. 

강양에게 어떠냐고 물으니 '멍청하게 생겼다'는 답이 돌아온다.

원래 좀 멍청하게 생긴 디자인이 어려운 일을 묵묵히 해낸다. 






아래엔 재받이와 그에 붙어있는 공기구멍.

저거 전부 열면 거의 3~4시간 만에 홀라당 타버리고 

꽉 닫으면 12시간은 충분히 가는 듯 싶다. 

조잡해보이지만 임무가 대단하다. 






내부의 화덕. 

어렸을 적에 본 화덕은 대개가 어디서든 쉽게 구하던 황토나 토기 화덕이었던 듯 싶은데

요즘은 대개 시멘트로 비벼서 만드나 보다. 

삼각형의 각 모서리에 연탄 석 장이 나란히 들어간다.

실제 넣어보니 빈틈이 없을 정도로 딱 들어맞는 사이즈.

연탄들이 비좁게 낑겨서 활활 잘 타라고 그리 했나 싶은 생각이..






연통들은 호일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가스 새는데 없도록 견고하게 고정시킨다.






뚫린 벽으로 연통도 꽂아 넣고.

보람찬 순간.






밖에서 봐도 참 잘 빠졌네 ^^






벽을 뚫어 연통길을 내자 이후 작업은 정말 일사천리다. 

연기가 잘 빠지도록 비스듬히 경사각을 주고 그 각을 유지하기 위해

천정에서 철사줄로 연통을 지탱하는 과정을 마치면 기본적인 난로설치는 끝.






설치가 잘 됐는지 신문지에 불을 붙여 난로에 넣고 뚜껑을 덮으니






연기가 솔솔 잘도 피어나오는구나.


이제 남은건 안전펜스 설치.

각파이프를 구입하려고 동네 철물점(그래도 규모가 제법 큰 곳)에 가니 여기선 취급안하고

영등포 문래동에 가야 구할 수 있단다. 해서 차 몰고 영등포로.

문래동의 위상은 한 때 대단했었다. 

청계천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산업화의 숨은 역군들이 

엄청난 양의 철과 사투를 벌이는 곳이었기 때문.

지금은 주위에 세련된 백화점과 속속 들어서는 아파트, 주상복합에 포위되어

과거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지만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서울과 수도권에 엄청난 양의 철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그 덕에 나도 손쉽게 30mm 각 파이프를 손에 넣었다.






손그라인더로 쇠를 자르고 절단면을 안다치게 잘 다듬은 뒤

조립과 분해가 쉽도록 나사로 고정시켰다. 

용접 때린것 처럼 견고하진 않지만 쓰기에 지장은 없다. 





내친김에 번개탄 구해다가 불도 지펴본다.

헌데 수퍼에서 파는 번개탄이 우리가 예전에 쓰던 번개탄이 아니다.

요즘 번개탄은 한마디로 '바베큐탄'. 

고기 굽는 용도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연탄불 피우는 용도로는

그 화력이 떨어진다. 처음엔 활활 잘 타지만 오래가지 못할 뿐더러

타고 남은 재는 힘없이 무너져서 연탄이 기우뚱 넘어지고 만다.

예전 번개탄은 뭉근히 타면서 다 타고 나면 그 재도 원래의 형태를 유지했던걸로 아는데..

아무튼 몇 번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

낭패감에 젖어 잠시 망연해 있다가 떠오른 생각.

까짓꺼..






낯선 풍경이긴 해도 안될 이유가 없잖은가.

하지만 저 방식도 가스불 강하게 해서 1시간은 태워야 겨우 불이 붙는 식이니

한계가 있는 셈. 매번 저럴 순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무래도 요리하는 조리대에서..^^


연탄집에 전화를 걸어 200장(장단 550원, 11만원)을 주문하면서

상황을 설명하고 번개탄에 대해 물으니 연탄용 번개탄이 따로 있다는 반가운 말씀.

그럼 그렇지. 






그렇게 해서 저기에 저렇게 연탄 200장을 들여놨고 왼쪽 귀퉁이 끈으로 묶여진 번개탄도 들여놨다.

내가 아는 번개탄은 탄 밑에 톱밥이 묻어있는 모습인데 역시 이놈이 그렇다. 

헌데 신기한건 연탄에 불을 붙일 정도로 화력도 쎄고 확실히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타고나면 흔적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베큐탄은 무너지는 식으로 재를 상당히 남기던데..

저 하찮은 번개탄에도 스마트기술이?

암튼 꽃들이 만발하던 화단자리에 화분을 치우고 연탄을 주인공으로 모셨다.

예전 어른들 겨울 앞두고 김장하고 연탄만 들여놓으면 걱정이 없다 하셨으니

딱 그 심정 ㅋㅋ.

살면서 보람이라는거?  저런 작은거에 다 담겨있다. ^^


200장이면 일주일에 5일 영업하는 우리 가게 기준으로 보자면

한 달하고 보름 가까이는 쓰지 않을까..

강추위가 닥친다면 그보단 좀 더 빨리 쓰겠지만..






발그레한 빛으로 잘 타고 있는 연탄. 

뚜껑을 오래 열어놓으면 특유의 가스냄새가 코를 찌른다.

뚜껑을 덮거나 뚜껑 사이즈의 주전자를 얹어놓으면 가스냄새도 안나고 

김 모락모락 피어나는게 보기도 좋다. 


지난 한 주 제대로 피워서 운영해보니 손님들 반응이 좋다. 

출입문쪽에 난로를 둬서 그쪽 자리에 앉은 손님들이 이번 겨울엔 좀 더 따뜻하게

식사를 할 수 있게 됐으니 덩달아 우리도 좋다. 

완전 추운날은 9장의 연탄을 몽땅 넣고 불구멍 확 열어버리고

그렇지 않은 날은 상황을 봐가며 양도 조절하고 불구멍도 조절하면 그만.

여기에 애초 사용하던 천정형 에어컨의 난방을 약하게 돌려주면 위로 몰리는 

열기를 구석구석에 골고루 퍼뜨릴 수 있지 않을까.



 실제 운영되는 난로 인증샷이 없는데 다음에 찍어 올려야겠다.


그리고 달고나 월동 준비가 아직 하나 남았다.

종종 밖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추위에 무방비로 노출되는게

여간 걸리는게 아니었다. 해서 여기저기 뒤진 끝에 전기온돌판넬을 손에 넣었고

그걸 설치할 수 있는 벤치를 만들 계획. 

비록 추운 밖이지만 따뜻한 바닥에 앉아 뜨거운 차 한 잔 손에 쥐고 있으면 한결 낫지 않을까?

그 이야기도 포스팅 대기중이니 기대하시라.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2. 11. 19. 01:57

일요일. 남들은 다음날 출근을 앞두고 아랫배가 살살 아프면서 우울감에 젖어들겠지만

우리에겐 오늘이 이틀간의 휴일을 앞둔 주말. 

식당 일이란게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기 때문에

때론 이틀 쉬는 것 만으로도 부족할 때가 있다.

암튼 이틀 휴일을 앞둔 여유에서 이렇게 블로깅도 오랫만에.


지난달 하순경에 강양의 조카 생일선물로 침대를 만들어줬다.

이층침대면서 아래는 각종 수납공간으로 활용하는 식인데 

이런 방식을 벙커침대라고 부른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름이야 어찌됐건 어렸을 적 누구나 이층침대를 갖는 소원을 품지 않았던가.


어른된 입장에서 이층침대에서 자는 것이 대수로운 일도 아니고

실제 그 생활이란 것이 여간 불편한게 아니겠다 싶은데

역시 애들은 그렇지가 않은지 얼굴에서 기대와 기쁨이 가시질 않는다. 





아무튼 오래전에 침대를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해놨었고

어느덧 생일이 있는 11월이 코앞에 다가왔다. 

어떤식으로 만들어야할지 며칠을 머릿속에 도화지를 펼쳐놓고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다음과 같은 형태로 결론을 내렸다.






책장과 옷장을 만들고 그 위에 침대를 얹는 아주 단순하고 심플한 방식.

책장과 옷장은 자연스레 침대를 떠받치는 기둥이기도 하다.

이런식을 벙커침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나무는 30mm 스프러스 집성과 역시 같은 수치의 아카시아.

그리고 몇 가지 종류의 구조목이 전부. 

도안이 나왔으니 이제 나무를 주문하고 몇 가지 필요한 공구를 구입하면 준비완료.






청계천 공구상.  아름다운 풍경이면서 동시에 행복한 마음.

여자들이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즐거움과 다를게 하나도 없다.

다 갖고 싶어라..

나사못을 많이 사용할 계획이어서 기동성 좋은 충전드릴과 

본드로 집성한 나무를 꽉 물어 고정시켜줄 클램프 몇 개를 구입했다. 

며칠전 계양 충전드릴의 가격을 물었을 때 바쁜 사장님은 

7만원에 준다길래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발길을 돌렸는데

막상 구입하러 들른 이날은 12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땐 바빠서 가격을 정확히 파악 못했다고 하시니 뭐..  그때 냉큼 살껄..

가만 보면 바쁘다는 핑계가 아니라도 저 많은 것들의 가격을 일일히 외우는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어떤건 싸게 어떤건 바가지를 쓸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냥 운이겠거니 하고 말아야지 뭐.

가끔 어떤 물건은 사장님도 정확한 가격을 몰라 한참 고민하다가

'그거 만원 훨씬 넘는건데 그냥 만원만 줘요' 하는 경우도 있지 않던가? 

이럴 땐 기분이 좋지.






집에 도착. 주차장 한 켠을 점령한 뒤 작업 시작. 

두께 30mm의 판재를 길게 켜는 일은 역시 온전한 사람 힘만으로는 역부족.

기계의 힘을 빌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시간도 그렇고 정확성도 그렇고.






소리가 요란하다. 톱밥도 많이 날리고.

원래 목공용 작업대를 갖추고 있으면 좀 더 손쉽게 작업할 수 있다. 

작업대 아래에 저 톱을 거꾸로 매달아 고정시키면 평평한 작업상판위로 톱날만 솟게 된다.

그러면 웬만한 사이즈의 재료는 손쉽게 원하는 각으로 잘라낼 수 있다. 훨씬 안전하기도 하고.







치수대로 잘라낸 판재를 조립한 뒤 자리를 잡는 모습.

깊은 상자가 옷장으로 쓰일 놈이고 왼쪽에 나란히 있는 것은 책장 용도.

30mm 판재여서 무거우면서 동시에 견고하다. 

이날 작업을 다 끝내지 못했고 다음날 하루 더 와야할 상황.

얼핏 예상은 했지만 제법 시간이 걸린다. 

아무래도 벙커침대는 처음 작업이라 자잘한 시행착오가 많았다. 

밤 9시가 넘어 일단 상황정리.


그리고 다음날. 






자리만 잡아놓은 독립된 가구들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작업. 

이중기리로 나사못이 들어갈 길을 트고 곧바로 

나사못을 박아넣는, 반복작업이지만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역시 나무가 무겁고 견고해선지 위의 침대와 하나로 결속되고 나자

흔들어도 꿈쩍임이 없다. 

저런 가구는 화려함보단 견고함이 우선.







이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저런식의 계단 형태로 마무리.

그래야 침대 아래층의 빈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동선이 나온다.

저 계단은 옮길 수도 있고 계단에 걸터 앉을 수도 있다. 






완성된 벙커침대.

나무에 색을 입히고 나니 한결 안정되고 아늑해졌다.

조카는 입이 귀에 걸렸다. 

가까운데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던 조카는

이날 이후로 출입을 끊었다고 한다. 

아이만 좋아하는게 아니다. 엄마아빠도 아이 못지않게 

좋아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좋아하신다. 

애가 저렇게 좋아하고 신이 난 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기쁘고 

굳이 애 마음을 헤아리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침대가 당신들 눈에도 당연히 좋아보이기 때문일테다.

이건 슬쩍 내 자랑질 ^^






나무값만 거의 40만원 선.

다행히 나무는 지인을 통해 공짜로 받았지만

좀 저렴한 합판으로 만들면 20만원 선에도 얼마든지 가능하겠더라. 

암튼 이틀간의 작업을 저것으로 종료.




아이가 침대를 얻은 며칠 후,

나는 이걸 얻었다.





목공용 다기능 테이블. 

컷 쏘, 직쏘, 루터 등 다양한 전동장비의 탑재가 가능하고

작업시 능률을 높이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가 곳곳에 녹아있다.

모닝 승용차에도 충분히 실리는 사이즈. 


내게 목공은 돈벌이가 아니라 즐거운 공작놀이다. 

앞으로도 이 놀이는 계속될텐데 그때마다 받는 수고비는 

저런 장난감사는데 몽땅 재투자할 생각. 


그리고 사진 우측에 연탄난로 보이나?

지난주에 저거 설치하느라 역시 쉬는 날 이틀을 몽땅 난로에 털어넣었다.

난로 설치기도 곧 올릴 예정이니 혹시 올 겨울

연탄난로로 난방걱정을 덜어보려는 사람은

살짝 기대하고 계시라.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