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꼴라'에 해당되는 글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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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6.25 거미줄을 걷자 1
  3. 2009.01.29 오스떼리아 일 구포 5
  4. 2008.08.27 발레타의 짧은 여행
한국 Korea 160409~2009. 7. 2. 21:02

왼쪽은 개량스푼이고 오른쪽은 개량컵이다.
어제 방산시장에서 각각 4천원씩 주고 구입했다.
시장의 한 좁은 골목길에 주욱 늘어선 각종 조리도구와 식재료들을 둘러보는 내내
 놀이동산에 놀러온 어린애 기분처럼 들뜨고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그야말로 어른들의 신나는 장난감들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방산시장에 가기 전,
당산에 있는 한 요리학원에서 오리엔테이션이 있어 참석했고
학원 강사는 개량스푼과 컵을 가져오라고 당부했다.
가져가야 할 것은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칼이 그렇고
행주와 앞치마도 포함돼 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매주 5일씩 4개월에 걸쳐 '호텔조리'라는 이름으로
요리스쿨이 진행되는데 며칠 전 수강을 등록했던 것.

이제야 말로
낯설고, 그리고 평생을 갈 기나긴 길에 본격적인 첫 발을 디뎠다고 봐야 하는건가?


적어도, 칼과 행주, 앞치마 따위를 가져오라는 강사의 말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요리란
사진으로 보여지는 화려함과 그 세계의 온갖 무용담들, 
그리고 누구누구의 명성들로 버무려진 추상의 영역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주와 앞치마가 풋내기의 오만함을 그렇게 꺾어줄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ㅋ


+++



바질은 잘 자라고 있다.
땅만 있으면 몇 평정도 가꾸고 싶은데 흙만 있다.




쁘레쩨몰로는 건강하지만 성장이 빠르지는 않다.
요리에 쓸 정도라면 적어도 아래처럼 풍성해야 할텐데
아무래도 파종량을 늘려야 할 모양이다.
해서 작은 화분들에 씨를 잔뜩 뿌려 싹이 트길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씨앗은 이틀만에 발아가 되서 깜짝놀라고 있다. 




베로나에 머물 때 컵에 담아놓고 먹었던 쁘레쩨몰로.
파 썰듯이 아끼지 말고 사용해야 제 맛이 난다.




루꼴라도 쑥쑥 올라온다. 
못쓰는 김치통을 화분삼아 파종했던 것을 일일이 파내 작은 화분에 옮겨 심었다.
저것들이 동시에 잎을 피워내면 샐러드 무쳐먹기에 부족함이 없겠지..ㅋ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09. 6. 25. 18:15

블로그.. 그간 여기저기 거미줄 많이 쳐졌다. 귀국 후 사람들 만난다는 핑계로 관리를 게을리 한 탓도 있고 '이제 뭘 쓰나' 하며 마음을 못잡은 것도 있다. 여전히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제 더이상 그곳이 아니라 한국에 있다는 점에서 지나간 옛이야기나 풀어내는 것이 괜한 궁상은 아닐까 하는
자기검열(?)도 발목을 잡았고..

그리고 도저히 어쩔수 없는 그것, 게으름.. 아무튼 바질은 나름 쑥쑥 커가고 있는데 종이컵에 담긴 그 모습을
이제는 갈아치워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Soo & Kim's salone의 식당을 열기위한
한국에서의 여정이 시작된 셈이니 그 여정의 자잘한 일들도 기록해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1년 훌쩍 떠났던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 아니던가! 
(우리 스스로도 여전히 의심스러운 계획이지만..)

sss


 

바질(Basilco)는 제법 많이 자랐다. 지난 주에 인근 야산에 올라 모기에 뜯겨가며 붉은 마사토와 검은 낙엽토를 퍼와 섞은 뒤 스치로폼 박스에 옮겨심는 대대적인 분갈이를 했다. 규모로 보면
소꼽장난같은 일이지만 흙을 퍼담고 비율을 맞추고 햇살과 바람에 신경쓰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며 성장에 방해가 될 만한 요소가 무엇인지 몇 번씩 고민하는 과정 모두가
스스로에게 중요한 경험이자 정보일 수 밖에 없다.

바질의 경우 햇살을 굉장히 좋아해서 적어도 6시간 이상은 햇빛을 보게 해주라는데 집의 위치가 좋지 않아
하루 3시간 정도가 고작이다. 그래도 큰 탈 없이 자라고는 있으니 다행이다. 
떡잎을 내고 이후 본잎이 자란 뒤 새 잎들이 나오는데 처음 나온 본잎이 제법 커지면서
양분을 저 혼자 독차지하는 것 같아 과감히 '가지치기'를 해줬다. 
잎을 따내니 손에서 바질향이 진동한다. 슬쩍 물에 휘저어 한 잎 넣고 씹자 
진한 향이 가득 퍼진다. 음.. 역시.. ㅋㅋ



잎을 쳐낸 자리에는 새로운 잎이 그 두 배의 숫자로 나오니 아까워할 이유는 없다. 
이탈리아에서 바질은 제노베제(Genovese)와 나폴레따노(Napoletano)로 나눠지고
각각 제노바(Genova)와 나폴리(Napoli)에서 유래된 듯 싶은데 
일반적으로 파스타에 소스로 비벼먹는 바질 페스토는 제노베제로 만들어 맛이 감미롭다는 특징을 갖고
 나폴레따노는 맛이 강해 피자나 샐러드용 소스로 만든다고 한다. 
책에서 일러주는 내용이 이렇고 바질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 식재료 풍토에선
뭐가 됐건 시중에서 만나는 것 만으로도 반가울 듯 싶다. 참고로 우리가 이탈리아에서 사온
씨앗은 제노베제고 국내 종묘사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 역시 제노베제가 주류를 이루는 듯 싶다.
그리고 보니 몰타에선 나폴레따노를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여름에 쏟아져 나오는데 한움큼 쥐어지는 넉넉한 다발에 잎들이 무성히 붙어있고
개중에 봉오리 진 꽃도 붙어 있었다. 우리돈 3천원 가량을 주고 사와서 흐르는 물에 씻고
잎을 뭉쳐 단단히 잡은 뒤 칼로 얇게 저미고 다져주어 다진마늘, 다진 잣, 소금,
그리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에 담가내면
 싱그러운 향과 고소한 맛이 일품인 바질 페스토가 완성된다. 
바질 페스토는 스프링처럼 꼬불꼬불 꼬인 파스타인 푸실리(Fusilli)에 비벼먹으면
아주 맛있다. 
바질아, 네가 좋아하는 여름이 오는구나. 무럭무럭 자라거라. 


영 시원찮은 성장을 보이고 있는 쁘레쩨몰로(이탈리안 파슬리). 우리에게 파슬리라면 그저 요리의 조연,
그것도 먹지않는 장식용으로나 쓰인다.
생김새 탓에 컬리(Curly-오글오글, 꼬불꼬불) 파슬리라고 불리며 
좀 더 짙은 녹색에 쪼글거리는 잎이 제법 풍성해 보여서인지
요리를 맛이 아닌 눈으로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만 머물러 있을 뿐이다.
사실 서양요리에서도 컬리 파슬리는 식용보다는 장식이나 기타 다른 가공제품의 재료로 주로 쓰인다는데
국내에 먹는 파슬리가 아닌 보는 파슬리가 대중화된 배경은 아무래도 패스트푸드를 중심으로 전파된
어설픈 서양요리의 태생적 한계 때문은 아닐까 추측해 볼 뿐.
아무튼 서양요리에선 파슬리의 역할이 결코 적지 않아서
해산물 요리에선 저게 없으면 요리가 안될 지경이고 후추처럼 모든 요리의 대미를 장식하기도 한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과일안주에 낑겨나오는 컬리 파슬리와는 모양이 많이 다르다. 
잎도 가지런하고 모양도 제법 봐줄만 하다.
그렇다면 맛과 향에서 각기 모양이 다른 두 종류의 파슬리는 얼마나 다를까?
이를 입증할만한 객관적 데이터는 없다 ^^. 다만 요리해보고 먹어본 경험에서 보면
 사진에서 보는 이탈리안 파슬리가 조금 더 향과 풍미가 좋다. ('~인 것 같다'가 아님!!)
파슬리를 뭉쳐 움켜쥐고 도마위에서 사각사각 잘게 썰어보면
그 차이를 대번에 느낄 수 있는데, 
줄기에 수분이 많아 썰리는 소리가 경쾌하고 시원하면서 향이 금방 올라오는 반면 
컬리 파슬리는 느낌이 둔하고 향도 떨어진다.
이탈리안 파슬리 역시 바질, 루꼴라(채소로 분류됨), 그외 여러 식용 허브와 더불어 시중에서 구하기
진짜 어려운 허브로 집에서 솜씨를 뽐내고 싶다면 직접 재배하는 수고 말고는 현재로선 없다.

3주째 생육이 멈춰있어 뭐가 문제일까 생각하다가 분갈이중에 실뿌리가 제법 튼실히 뻗어가는
힘있는 광경을 믿고 잎줄기를 몽땅 잘라냈다. 
힘을 키워가는 하체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한거다.
튼실한 잎줄기가 쑥쑥 나올까?


모셔만 두고 있던 루꼴라를 며칠 전 파종했고 3일만에 저처럼 싹이 나왔다.
그 어느 것들 보다도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에 살짝 감동했다.

바질이나 쁘레쩨몰로가 요리에 풍미를 더해주는 역할이라면 루꼴라는 그 자체를
양과 맛으로 즐기는 채소 아니던가.
고소하다고 해야할까?
때론 매운 뒷맛을 남기지만 특유의 맛을 한 두 번 즐기다보면 어느새 중독되고 만다.
샐러드로 많이 먹고 피자나 파스타에도 듬뿍 얹어 먹는데 조화가 아주 좋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어느 식당에서 루꼴라 피자를 한 번 먹은 적 있는데
야박한 양에 아쉬웠다가 이탈리아에선 무슨 나물 먹듯이 젓가락으로 듬뿍듬뿍 집어가며 먹었었다.
저놈들 생육을 지켜본 뒤 성장에 큰 문제가 없다면 제법 큰 화단을 꾸며
상추 키우듯이 해서 그때그때 수확해 먹으려고 한다.

이상의 것들은 지금이야 재미삼아, 실험삼아, 경험삼아 키워보고 있지만
식당 오픈을 앞두게 되면 그때는 별도의 공간을 어떻게든 마련해서 본격적인 재배에
돌입할 생각인데 마땅한 장소나 임자를 만날 수 있을런지 원.. 
 

Posted by dalgonaa


자, 오늘은 또 다른 근사한 식당 하나 만나보자. 오스떼리아 일 구포(Osteria Il Gufo), 우리말로 '올빼미 식당' 되겠다. '구포'가 올빼미. 우리집에서 무척 가까운 식당으로 메뜨로를 타러 가거나 광장에 다녀올 경우 항상 식당 앞을 지나게 된다. 오며가며 볼 때마다 뭔가 내공이 느껴지는 집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난 주 우리에게 달미꼬꼬를 추천했던 안드레아는 이 식당도 적극 추천했다. 구포는 저녁에만 문을 열고 금요일 저녁은 손님들로 북적인다. 그러나 어제 찾은 식당은 2시간에 이르는 식사 내내 우리가 유일한 손님이었으니 어찌된 영문인지 원.. 그래도 뻬루자 사람들에게 저렴하면서 맛있는 식당으로 정평이 난 식당이니 괜한 걱정은 접기로 했다.

서점에서 요리책을 사들고 나오니 8시, 뱃속에서 허기가 으르렁 거린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언니가 친절하게 테이블로 안내한다. 식당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구석자리. 테이블 상판이 대리석이고 의자도 꽤나 무겁다. 의자 빼는데 그 무게 때문에 살짝 애먹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저렇고

정면을 보니 저렇다.

벽에 걸린건 올빼미들. 소박하지만 식당 이름에 대한 애정이 내부에서도 잘 드러난다. 어떤 식당(지역, 국가를 막론하고)들은 이름과는 전혀 관계 없는, 또는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안은 곳도 많은데 이곳은 다르다.

와인을 담아낸 술병에도 어김없이 올빼미가 등장.

메뉴는 그간 식당 앞을 오가며 봐뒀었지만 폰트가 아니라 실제 필기로 적어놔 읽는데 애를 먹어 가격만 파악하는 정도. 가격은 여느 평범한 식당과 크게 다르지 않고 안티파스토와 육류와 생선을 제공하는 세꼰도는 메뉴가 다양한 반면 프리모인 파스타는 종류가 다른 식당의 1/3 수준이라는 점이 심하게 아쉽다. 자리에 앉으니 메뉴판이 아니라 A4용지에 복사한 메뉴종이를 건네준다. 식당 앞 메뉴판에 걸려 있던 그 종이다. 유심히 훑어보지만 여전히 알쏭달쏭, 결국 주문한 것은 미리 염두에 뒀던 19유로짜리 코스요리. 달미꼬꼬보단 비싸지만 여전히 저렴한 가격이다. 많은 식당들이 코스 요리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만큼 구포의 내공이 이 모두에 들어있으리란 기대로 주문했다. 와인리스트는 반듯한 메뉴판으로 건넸으나 살짝 훑어보다가 곧 500ml 하우스와인(5유로)으로 주문. 와인보단 요리맛에 집중하는 식사 아닌가.


친절한 언니, 원래 코스에 없는 거라며 작은 접시에 담긴 샐러드를 가져다준다. 환대가 담긴 서비스 접시에 기분이 좋아진다. 볼잘 것 없는 작은 양이지만 맛 탐험에서 그건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배터지기 마련인 코스식사 아닌가? 뭐든 주기만 하면 우린 언제나 맛 볼 준비가 돼 있다.


모양새나 씹히는 식감이나 영락없이 보리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보리 맞다^^. 찐보리를 리코타치즈에 버무려 낸 일종의 샐러드. 비슷한걸 시에나에서도 맛봤으니 적어도 중부지방에선 보리를 된장이나 고추장이 아닌 올리브유와 치즈에 비벼 먹는다걸 알겠다. 간이 안돼 있어 맹숭맹숭한데 위에 얹어낸 녹색이 그 역을 대신한다. 녹색이 뭐냐고 힘겹게 물어보니 루꼴라와 잦을 갈아 소금 살짝 넣고 올리브유에 버무렸단다. 바질만 그렇게 먹나 싶었는데 루꼴라도 그러는걸 보니 녹색 채소라면 뭐든 저렇게 먹을 수 있겠다. 달콤한 식전주를 곁들였다면 심심하고 담백한 맛 때문에 궁합이 좋았을 메뉴.

안티파스토 등장. 접시가 운동장처럼 넓다. 캐스팅을 살펴볼까?


우선 훈제로 향을 입힌 쫀득한 생모짜렐라 두 덩이, 말린 토마토, 야생(추정) 루꼴라, 그리고 휀넬 씨를 살짝 뿌린 뒤 올리브유로 마무리. 그리고보니 접시 가장자리엔 파프리카 가루도 눈에 띈다. 간단하지만 정성이 느껴지는 접시, 새로운 만족감이 밀려온다.


이 접시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야생으로 추정되는 저 루꼴라. 수퍼에서 구입하는 루꼴라는 저렇게 넓고 빳빳한 잎이 아니다. 맨날 흐느적거리는 속성 재배 루꼴라만 먹다가 식당에 와서야 저런걸 맛보니 입맛이 한층 성숙해짐을 느낀다. ^^ 강한 향, 거친 맛. 한국에서도 저런 놈을 재배할 수만 있다면.. 쌀 알 같은 휀넬씨를 씹자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정도로 향이 강하다. 조화가 멋지다.


스파게티, 펜네, 푸실리, 링귀니, 페투치네, 마카로니.. 그럼 저 파스타의 이름은? 사전을 뒤져보니 '리가토니'란다. 비슷한 모양으로 '까넬리니'가 있는데 그건 줄무늬가 없으니 그럼 리가토니다. 복잡한 저것들을 '파스타'라는 단일 명사로 묶어내지 않았다면 얼마나 피곤했을까.. 아무튼 파스타가 나왔다. 움브리아의 깊은 골짜기 마을, 노르치아(Norcia)에서 잡은 멧돼지를 프로슈또로 만든 뒤 이를 다져서 올리브유에 볶고 거기에 리가토니를 버무려 낸 것으로 가정집 풍이란다. 돼지기름 향도 강하고 후추향도 강하다. 치즈가루로 부드러움을 얹어냈으니 맛은 적당히 타협선을 찾았다.


다소 뜻밖의 맛에 놀라면서도 남김없이 맛있게 먹긴 했지만 한국에선 외면받을 파스타. 이탈리아 여행온 한국인이 수백종의 파스타 가운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연찮게 이 파스타를 맛본다면 돼지기름 냄새에 놀라겠지 싶다.


깨끗이 비운 파스타 접시를 걷어간 웨이트리스 언니, 부지런히 세꼰도 접시를 날라오신다.


캐스팅이 다채롭다. 고기와 석쇠에 구워낸 빵, 햄, 감자, 그리고 올빼미 눈을 연상시키는 호박과 당근의 조합. 주방장의 장난끼로 치부했지만 이곳이 '올빼미'식당이 아니었다면 식당의 격을 한참 깎아먹었을 엉뚱한 가니쉬(곁들임 음식)였을테다.


고기부터 시작해볼까? 포크로 고정하고 나이프로 살며시 그어보니 오랫동안 푹 익혀서인지 살이 결대로 부드럽게 베어진다. 골고루 돌려가며 소스를 묻힌 뒤 한 입 쏙. 진한 고기맛, 맛있다. 메뉴에는 'Wild pork and Fennel(회향풀로 맛을 낸 멧돼지)'이라고 나와있지만 먹는 내내 '쇠고기가 아니고?'하는 의문을 가질 정도로 쇠고기 맛이 났다. 속였나? 그건 아닐테고 주방장만의 비법? 소스는 고기와 뼈를 우린 육수에 레드와인, 토마토, 당근, 샐러리 등, 각종 채소를 넣고 오랫동안 푹 끓여 걸쭉하게 걸러낸 폰드소스로 추정. 그리고 보니 재작년인가? 회사일로 스위스를 다녀오는 길에 홍콩에서 갈아탄 대한항공이 기내식으로 제공했던 고기요리가 이 맛과 흡사했다. 이코노미 기내식이란게 별게 있겠냐만 그날 와인을 추가해가며 먹은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진짜 좋은 고기, 좋은 부위라면 별 양념없이 불에 익혀먹는 것으로 훌륭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채소와 양념 등을 아낌없이 사용해서 맛은 내주는게 좋다. 깊고 진한 맛을 내주는 이런 요리는 그야말로 와인 도둑이다.


이미 고기가 있는 웬 햄? 허나 무슨 상관이랴? 맛만 좋은걸!


감자도 그냥 익혀낸 것만이 아니라 일일히 으깨서 모양까지 냈다. 저걸 뭐라고 부르는데 이름이 도무지 기억이 안난다. 아무튼 달미꼬꼬와 확연히 비교되는 맛, 비주얼, 정성이다. 6유로의 가격차 치곤 꽤 간격이 크다.


우리도 저런 근사한 벽을 가질 수 있을까? 흉내는 낼 수 있겠지. 바탕이 좋으면 뭘 걸어놓아도 멋지다.


이미 배는 빵빵하지만 디저트가 나왔다. 놀라운 구성, 쵸콜라또 젤라또, 생크림, 케잌, 감 셔벗이 한 접시고


다시 생크림, 케잌, 감자에 아몬드로 맛을 낸 푸딩이 또 한 접시. 시작부터 끝까지 한치 흐트러짐 없이 만족을 안겨준다.

젤라또도 맛있고

감 셔벗도 맛있고


감자+아몬드 푸딩도 맛있다. 허나 고칼로리의 부담감이 풍선처럼 부풀다가 마지막 디저트에서 결국 폭발하는 느낌. 단 맛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좋지만 역시 한국인은 과일로 마무리하는 것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싶다.


이걸로 끝이다 싶었는데 접시를 걷어간 언니가 다시 쟁반에 뭘 담아 온다. 소주잔 크기의 잔에 담아온 것은 '리모네쩰로'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레몬술이다. 레몬 자체로 술을 냈는지 그라빠에 같은 독주에 즙을 섞었는지 알 수 없으나 첫 맛은 달고 진한 레몬이고 뒷맛은 알콜의 화(火)기가 확 오르는 명백한 술. 최소 30도는 되지 싶다. 독주는 홀짝이는 것 보다 단숨에 들이키는 것이 제맛 아닌가? 처음에 살짝 맛만 본 뒤 단숨에 들이켰다. 어우.. 확 오른다. 이탈리아 식탁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까페(커피)겠지만 어떤 이들은 그라빠(Grappa)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라빠는 포도로 만드는 브랜디로 이탈리아의 꼬냑이라고 보면 된다. 40도의 이 독주를 커피를 마신 뒤 마지막 입가심으로 한 잔 들이키는게 진정 식사의 마무리라는 것. 리모네쩰로는 그 그라빠를 대신하는 의식이 아닐까 싶다.


테이블 차지 4유로가 붙을 줄 알았는데 식사값과 와인값, 추가로 마신 커피 값 뿐, 테이블 차지는 없단다. 오호.. 올빼미, 너 정말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파스타 라인업이 부족한게 아쉬움이지만 어느날 고기요리가 심하게 땡긴다면 주저없이 달려 올빼미 품에 안겨야겠다. 어제는 배가 터질 듯 해서 사온 요리책을 보기도 싫었는데 하루가 지난 지금, 벌써 그 맛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앞으로 최소 1번 이상은 다시 찾지 않을까 싶다. 근데 평일엔 왜 그렇게 손님이 없는거니? 

부지런히 음식을 날라주고 엉금엉금 거리는 우리 질문에 정성스레 답변해주던 웨이트리스 언니. 주문을 하며 우리가 먼저 '미안하다, 이탈리아어가 서툴다'라고 하니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럼 너희는 한국말로 해라, 나는 이탈리아말로 하겠다'라는 재치를 발휘하며 긴장을 풀어줬던 세심한 언니.

Posted by dalgonaa

요 며칠 몸이 피곤할 정도로 정신없이 바빴다. 8월 26일 화요일 이날도 중요한 일 때문에 몰타의 수도 발레타를 다녀와야 했는데 오전중으로 일이 마무리되다 보니 몸도 지치고 해서 점심은 그냥 이곳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역시 수도는 수도인가 보다. 사진에서 보이는 중앙대로 'TRIQ IR REPUBBLIKA' 엔 어느새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대단한 볼꺼리가 있는 것도 아니건만..



저들 중 아마 절반 이상은 관광객.(몰타 인구 40만, 여름철 관광객 수 120만) 그들이 이곳에 온 이상 꼭 둘러봐야 할 곳이 있다면 바로 아래다.



성 요한 성당(St. John's co - Cathedral). 밖에서 볼 때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이 성당에 저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줄을 서는 이유는 뭘까? 그 옛날, 이슬람과 기독교간 쟁탈전이 자주 벌어진 곳의 하나가 이곳 몰타였다. 덕분에 이곳엔 유럽 본토에서 파견된 연합 기사단들이 많았고 그들이 죽으면 이곳 성당 바닥에 뭍어 화려한 대리석으로 그 위를 치장했다고 하니 이는 관광객으로 하여금 아련한 역사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입장료 5.80유로, 우리돈 9천원을 내고 저 문을 들어서려는 진짜 이유는 카라바조의 그림, '세례 요한의 참수' 때문일 듯 싶다. 살인을 저지르고 평생 쫓기는 삶을 살아야 했던 그 유명 화가는 유독 '목 잘린'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이곳에 걸려져 있는 '걸작' 또한 그 가운데 하나다.



이탈리아를 떠돌다 기사단에 묻혀 몰타로 들어온 카라바조는 1608년 이 작품을 그렸고 가로폭이 5미터를 넘는다고 하니 그 압도감이 어떠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림에 관련된 내용이 궁금한 이들은 아래 주소로 들어가 보시길..
http://blog.naver.com/charmed11?Redirect=Log&logNo=40037625316

이날 일을 마치고 그림을 보려했으나 어차피 금요일에 다시 발레타를 와야 해 그날로 관람을 미루기로 했다. 그림 하나에 거금을 내는 만큼 가급적 사전 지식을 충분히 쌓고 아주 천천히 그림을 음미할 생각이다.

점심시간. 에어컨 나오는 시원한 실내 식당을 찾아봤으나 쉽게 눈에 띄질 않는다. 그 발품이 더 힘들어 서둘러 성당 옆 야외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아 고개를 돌리니 성당의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는 좋은 자리다. 한 컷 찍어주시고..



그늘에 앉으니 역시 시원하다. 웨이트리스가 14유로 짜리 특선 생선요리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려는 것을 점잖게 물리치고 '바질 페스토 파스타''치즈 에그 버거'를 주문했다. 그리고 10분 뒤 음식들이 나왔다.



크림소스로 버무린 바질 페스토. 아무래도 수퍼에서 파는 병에 든 바질 소스를 들어부어 요리해 낸 것으로 의심된다. 그 맛이 병에든 소스를 사다 먹었을 때와 유사했을 뿐만 아니라 바질 잎의 입자가 그것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 아무래도 바질 페스토는 묵힌 맛이 아니라 신선한 맛이 으뜸인데 5.90유로 짜리 식사가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라곤 하지만 너무 한다 싶다. 지난 번 어떤 얼뜨기에게 요리해 준 뒤 남겨뒀던 소스를 냉장고 구석에서 찾아내 마저 소스팬에 툭툭 털어냈을 주방을 상상하니 살짝 약도 오른다.

주재료는 바질이지만 연상되는 맛은 봄철에 나는 쑥이다. 그 맛도 그닥 나쁘진 않았지만 신선한 바질은 허브로서의 프레쉬한 풍미가 강하고 맛도 자극적인 법. 그맛에 먹건만.. 올리브유의 부드러움을 대신한 크림은 처음엔 괜찮았으나 시간이 지나자 매우 퍽퍽해졌다. 또 다시 먹겠냐고?  No.



치즈 에그 버거. 5.60 유로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만 사진에서 보듯 대수로울 게 없다. 치즈와 계란 후라이를 얹으면 '치즈 에그 버거'가 되는 식이다. 다른 점이라면 빵을 덮지 않고 따로 분리해 낸다는 것. 뭔가 새로운 시도긴 한데 별것도 없는 내용물을 보고 나니 오히려 실망스럽다. 사실 버거 자체보다는 곁들여 나올 풍성한 샐러드에 기대를 걸었었다. 언젠가 버거 요리를 먹는 이들의 접시에 풍성하게 곁들여진 샐러드를 보고 "저게 이곳 식인가 보군"하고 은근히 마음에 묻어두고 있었기 때문. 허나 저런 결과를 접하자 기대를 걸었다는 사실 자체가 민망스럽다.

패티는 버거킹만도 못했는데 일단 너무 태웠고 기름기는 쏙 빠져있었다. 뭣보다 패티를 씹는 동안 질기고 딱딱한 부위가 많이 씹혀 꽤나 거슬렸는데 뼈에 붙은 고기까지 갈아낸 저질 패티라는 반증이다. 그래도 알뜰히 먹었다. 본전 생각때문이기도 하지만 가까운 누군가(기억 안남)로부터 자꾸 '음식 남기는 것도 죄'라는 얘기를 못이 박히게 들었던 탓에.. 맛이야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접하는 맛이니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 또 먹겠냐고?  Never.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에 서니 카라바조의 그림이 들어간 와인 세트가 눈에 띈다. 성당을 찾는 관광객을 노린 해묵은 상술에 픽 웃음이 나 한 컷.






몰카 처럼 찍히고 만 카페 풍경.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 나오다가 골목의 채소가게를 발견하곤 슬쩍 다가가 본다.



규모가 제법 크고 품목도 많다.



다소 시들긴 했지만 푸른 바질도 나와 있다. 바질페스토는 바로 저 놈을 다져 만든 것. 빨간 방울 토마토와 함께 있으니 색감이 제각각 돋보인다.



루꼴라. 영어 이름은 로켓. 이탈리아 요리에서 바질과 더불어 빠지지 않는 인기 허브로 피자 위에도 자주 올라가고 아주 얇게 슬라이스한 파마산 치즈와 함께 프로슈토(돼지 뒷다리살을 1년간 묵혀 얇게 저며낸 생 햄)에 둘둘 말아 전채(Starter)로도 자주 제공된다.

풋익은 것은 쌉싸름한 맛이 강하고 잘 익은 것은 특유의 향과 더불어 고소한(?) 맛을 내는데.. 즐기는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일전에 이곳 유학생들에겐 쑥갓으로 오인되어 어렵사리 끓인 매운탕에 마지막을 장식했다가 매운탕이 악몽의 맛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전에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맛을 가늠해보니 읔...



씨알이 작은 것이 우리나라에서 즐겨먹는 캠벨포도는 분명 아니고 건포도나 와인 제조에 주로 쓰일 듯 싶은데..



앵두와 블루베리도 빛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음식이란 대개 맛으로 평가하기 마련이지만 저런 이쁜 모양과 매혹적인 색감이 무시된다면 분명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다행히 저런 예쁜 과일은 많은 경우 디저트 류에서 제 모습으로 살아 남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과일로 이곳에서 부르는 이름은 피클리피어. 저놈을 잉태한 나무는 다름 아닌 선인장이다. 아래 사진을 보라.



학원 가는 길에 아침마다 접하는 선인장 군락. 제멋대로 자란 주인 없는 선인장으로 낮은 곳에 맺힌 열매는 누군가 다 땄고 높은 곳에 매달리 저놈들은 태연히 남아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든다. 가시가 솟아 있어 특별한 장구 없이 섣불리 덤볐다간 다칠 수 있다.



껍질을 벗겨내면 이 같은 속살이 나온다. 다소 괴상하게 생겼고 아주 달지는 않지만 제법 과일다운 단맛을 내고 과즙도 풍부하다. 다만 촘촘히 박혀 있는 씨가 장애물인데 과일을 먹는다기 보다는 씨를 먹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씨가 많다. 미끄덩 거리는 것이 식감도 썩 좋지는 않지만 좋아 하는 사람들은 씨까지 덥썩덥썩 삼킨다. 보드카에 과즙을 섞어 칵테일로 차게 해 마시면 그 맛이 또한 독특하다. 마셔봤냐고?  Yes. 또 마시겠냐고? Of cause.

피클리피어에 대해 얘기를 나눠본 몰티즈들은 한결같이 "It's my favorite"이라는 반응이다. 피클리피어는 그 자체로 독주를 만들어 즐긴다는데 아직 이를 접해보진 못했다. 기회를 찾아봐야지..



발레타를 빠져 나오며 한 컷. 오랜 건축물과 높이 자란 나무가 드리워낸 그늘 아래 사람들은 이야기도 나누고 계단에 앉아 쉬기도 하고 노점을 기웃거리며 어설픈 예술가(?)들의 재주를 구경하기도 한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