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니 이탈리'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4.05 비니탈리 Vinitaly (1) 2
  2. 2009.04.04 어제 아침까지의..
  3. 2009.03.25 새로운 숙소 외.. 14
  4. 2009.03.22 베로나, 석 달 만에 다시 그 자리로. 8

일요일. 비니탈리 행사도 이제 월요일 하루만을 남겨놓고 있다. 와인에 대해 전문지식이 있었다면 이것저것 떠들 얘기도 많았을텐데 짐작하듯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경험과 지식이 있다고 해도 이곳 사람들과 속시원하게 소통이 안된다면 그것 또한 답답한 노릇이긴 마찬가질 터. 관심분야에 대해 전문가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인데 그게 또한 술이라니!! 기품있는 수염을 가진 노신사가 와인을 시음하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떼지어 몰려다니며 술을 해치우는 혈기왕성한 젊은 친구들이 와인 프로듀서들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고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분위기가 고조되는 모습은 우리의 호기심과 답답함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부족한 지식과 경험, 언어를 원망하면서도 한국에서 소주라는 종목 하나만 놓고 이런 행사가 열린다면 눈과 입으로만 어슬렁거리다가 마는게 아닌, 만든이와 먹는 이가 자신들의 경험과 느낌에 대해 속 깊게 얘기나눴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동시에 들게했으니.. 우물쭈물이 아닌 오랫동안 다져진 경험과 자신감, 그리고 자신의 안목을 갖고 말이다!^^ 

비니탈리는 판매자와 구매자간의 치열한 비즈니스 장이다. 짐작컨데 COEX 전시장은 비교가 안되고 일산의 킨텍스 전체를 통틀은 공간에 와인 부스가 마련돼 있다고 보면 맞을 정도의 규모. 그곳에서 이탈리아 전역에 걸친 거의 모든 와이너리들이 참가하고(헌데 우리가 꼭 만나려 했던 시칠리아의 Cielo와이너리의 언니를 참가하지 않았더라는..) 한국은 물론 전세계에서 질좋은 와인을 구입하기 위해 바이어들이 몰려온다. 일본은 밀라노 등지에 상주 사무실을 차려놓고 와인을 수입해가고 있고 한국에서도 많은 바이어들이 행사장을 찾는다. 다만 올해는 경기침체와 고환율의 직격탄을 맞아 한국 바이어들의 발길이 많이 줄었단다. 1년 전 로마 체류할 때 만났던 소믈리에를 혹시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그 역시 이번 행사는 건너뛰기로해 여간 아쉬운게 아니다. 

행사 이틀째에는 '한국과 카자흐스탄 시장의 공략기법(?)'이란 주제로 세미나가 열려 눈길을 끌었는데 아침 10시 30분 행사여서 가보지는 못했다. 볼로냐에서 오전에 베로나로 출발하는 기차는 7시와 10시, 11시에 있고 집을 나서 행사장까지 도착하는데는 2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아침 7시차를 타는건 우리에겐 아무래도 무리다. 존재감이 카자흐스탄과 비슷하다는 점은 한국의 주당들에겐 좀 서운하게 들리지 모르겠다. 헌데 세미나까지 열린거 보면 한국 와인시장이 여전히 개척의 여지가 많다는 반증. 유행이 아닌, 시류에 편승한 거품이 아닌 진정한 입맛으로 기회가 넓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우리도 굴뚝같다. 값싸고 질좋은 화이트와인, 스파클링 와인을 집에 재놓고 마시고 싶단 말이다.

그럼 행사 첫 날부터 어제 토요일까지 찍었던 사진들을 중심으로 떠들어보자.


베로나 역에 내리고 보니 셔틀버스 운행 간판이 눈에 띈다. 저 뒤로 녹색 칼라에 와인병 그림. 베로나의 중심인 BRA광장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이곳으로 와 다시 사람을 태우고 행사장으로 가는 식인데 버스가 도착하면 필사적으로 뛰어들어 타야한다. 안그럼 20분을 마냥 기다리던지 걸어가던지 비싼 택시타던지. 사진에서 보듯 첫 날에 비가 내리더라는. 출발 당시 볼로냐엔 비가 안내렸건만..



콩나물 버스에서 내리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저 건물. 한때 이탈리아 음식의 수도 볼로냐가 주도로 있는 에밀리아 로마냐의 행사장이 눈길을 잡는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와인, 환상의 세계'라는 조금 싱거운 카피..^^


저런 보기드문 차도 주변에 어슬렁거려야 분위기가 띄어지는 법. 그래도 토리노 슬로푸드때 처럼 비행선 정도는 띄어야..



출입 ID카드를 만들어주고 계신 프레스 신청 데스크의 관계자들.  와인 행사라고 모두 빨간 유니폼을.


프레스센터. 규모는 슬로푸드 프레스센터의 4배 정도 규모. 아무래도 와인 산업이 훨씬 더 클뿐 아니라 관련 매체도 더 많을테니 당연하다. 취재보단 경험이 목적인 우린 이곳에서 오래 지체할 이유가 없다. 쌓여있는 홍보책자 중 자료로 삼을만한 것 뭐가 있을까 좀 둘러보다가 기자실에서 제공하는 와인 한 잔씩을 마시고 물 한 병 꿰찬 뒤 행사장으로 나갔다.



마침 프레스센터가 입주해 있는 건물이 롬바르디아주의 행사장이니 자연스레 롬바르디아주의 와인들이 제일 먼저 우리를 맞는다. 길게 깔린 카페트와 반짝이는 조명이 고급스러움을 더해주는 공간. 다만 천정고가 낮아 조금은 답답한 느낌. 허나 무슨 상관이랴? 와인맛 보러왔지 인테리어 구경하러 왔나?



기자실의 와인을 빼면 행사장에서 처음으로 맛본 와인, 끼아레또와 루가나. 끼아레또는 좀 생소하고 루가나는 처음 이탈리아에 도착해 베로나에 머무는 동안 가까이 두고 마셨던 와인. 친구인 엘리자베따의 추천으로 찾게 된 것이 어느새 우리 입맛과도 친숙해졌다. 돌이켜보면 와인을 잘 모를 때는 무조건 레드를 찾았지만 이것저것 맛을 보고난 지금은 화이트에 기호가 더 기울어져 있지않나 싶다. 고기를 먹을 때도 화이트가 더 땡기니 말이다. 좀 더 미묘한 맛의 변화를 알아가는 중이기도 하지만 역시 화이트의 시원한 청량감을 더 선호하는 탓 때문이 아닌가도 싶고.. 특히 날씨가 조금씩 따뜻해지고 기분이 살짝 들뜨니 그것을 뒷받침하는데는 화이트만한게 없지 싶다. 비단 우리만이 아니더라도 알맞게 식혀져 있는 맛있는 화이트는 사람들의 기분을 정말 좋게 해주는 술임에 틀림없다. (물론 축제주로 최고인 스파클링 와인이 있지만..^^) 



왼쪽은 로제와인 끼아레도, 오른쪽이 화이트와인 루가나. 사실 드넓은 우주에 지구가 티끌 하나일뿐인 것 처럼 수천 수만의 와인을 두고 이런 나열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 그러니 그냥 우리 아는 사람들끼리만 보고 낄낄, 끄덕끄덕 거리며 보자구요~



스파클링 와인의 등장.  스파클링 와인은 정말 지구상 최고의 만찬주, 축제주가 아닐까? 물씬 피어오르는 기분좋은 향, 조금만 머금어도 입안 가득 꽉 차는 과일과 꽃내음의 달콤함, 혀를 마비시키는 발포의 청량감. 이런저런 수사를 동원했지만 먹고죽자식의 자리가 아니라면, 정신놓지 않으면서 유쾌한 기분을 쭉 끌고 가줄 수 있는 술이 바로 스파클링 와인 아닐까? 그래서 궁금해 죽겠다. 과연 한국에 돌아가 소매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스파클링 와인을 무엇이 있고 가격이 얼마일지..



개인적으로 맘에 들어하는 디자인의 병. 모두 스파클링 와인.



저분들도 모두 스파클링 와인 마시는 중. 잔 모양이 다소 특이한데 스파클링 와인 전용 잔이다. 좁고 긴 몸통을 가진 잔이 일반적이지만 이탈리아는 대개 저런 디자인. 바닥면적을 좁혀 기포의 발생량을 줄여 맛과 향을 오래가도록 하는 것이 스파클링 와인잔의 설계 포인트가 아닐까 하는데.. 맞나요?

부스를 지나면서 한 잔 청해 마실 수 있고 일행이 있다면, 그리고 와인에 관련해 좀 더 자세히 얘기들으며 마시고 싶다면 안쪽에 자리를 잡아도 얼마든지 환영이다. 허나 이런 자리에서 단연 최고의 손님은 수입업자, 즉 바이어. 프레스가 회색 비표, 단순 입장객이 노란 비표라면 그들은 목에 빨간색의 비표를 매고 다니는데 가장 HOT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어느 프로듀서가 그들을 무시하겠는가? 



호사로운 와인 버켓. 얼음을 채워넣은게 아니라 버켓 자체가 얼음이고 꽃도 함께 얼려 신비감까지 더했다. 


와인에 있어 문외한이지만 멀쩡히 보이는 산 정상을 오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와인도 산과 비슷해서 흔히 사람들이 얘기하는 이른바 '정상'이 있다. 우리같은 초보자는 딴거 없다. 그저 주변을 볼 겨를도 없이 정상만을 향해 열심히 올라가면 그만. 삐에몬테주의 바롤로, 베네토주의 아마로네, 토스카나주의 브루넬로 몬탈치노 등등. 비니탈리가 우리에게 좋은 이유는 그 정상이 한 자리에 모여있고 오르기도 쉽다는 점 때문이다. 가서 한 잔 청하면 정상을 얼마든지 맛보게 해주니 말이다. 허나 산이 어디 정상만의 맛이겠나? 이름없는 실개천도 지나고 넓은 들녘도 지나고 거친 바위도 오르고 하면서 도달하는 것이 산. 그 여정에 배어있는 향기, 바람, 색깔을 즐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와인도 비슷한 여정을 되풀이하며 즐기는 여행이고 그 길도 참으로 다양하다는 점이 와인을 마시는 매력이지 싶다. 그 매력은 또한 즐거운 사람들과 함께 마셔야 배가 된다. 사실 그게 젤 중요하지 않을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언제나 그렇듯 처음 한 병은 와인이지만 그 다음 와인은 그냥 술일 뿐이다.


 
베네토의 자존심, 아마로네. 그 가운데 아마로네의 명성을 이끌어가는 주역 베르따니. 다시 설명하겠지만 참 예상치못한 쟌 마테오와의 만남으로 사진에서 보는 1967년 빈티지를 맛보는 것은 물론 결국 베르따니 아마로네 생산의 심장부중 심장부인 빌라 노바레(Villa Novare)까지 방문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으니 그 이야기를 포함한 또 다른 얘기는 잠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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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오늘도 비니 이탈리가 열리는 베로나로 출발. 어제는 그 전날, 무거운 짐을 이끌고 볼로냐까지 오느라 쌓인 피로와 런던에서 온 타군과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로 몸이 천근만근인 속에 강행군이었다. 기차 타고 가면서 꾸벅꾸벅 졸음이 몰려오는게 아무래도 심상찮다 싶었는데 프레스 신청을 하고 행사장으로 올라가 프레스센터에서 와인 한 잔씩을 마시자 곧 몸이 물먹은 휴지처럼 푹 퍼져버린다. 아랑곳 않고 몇 군데 부스를 어슬렁 거리며 와인 두 잔을 더 마셨더니 얼굴 벌개지고 찾고 싶은건 의자. 결국 2시간 만에 철수를 결정하고 일찌감치 볼로냐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 무리하지 말고 집에서 따끈한 밥 지어먹고 쉬며 몸을 만든 뒤 내일 본격적으로 탐험에 나서자 해서다. 그리고 지금 아침, 어제보다 몸이 훨씬 개운하다.

오늘도 일정이 만만치 않다. 어제 총 와인 석 잔을 마셨는데 그게 고작 롬바르디아 주의 행사장이었을 뿐, 그리고 프레스룸 인근의 부스에서였을 뿐, 표현이 좀 그렇지만 이탈리아 와인의 본격적인 '전쟁터'라 할 피에몬테, 베네토, 토스카나, 시칠리아, 풀리아의 행사장은 근처도 못가봤다. 베네토의 유명 와인, 아마로네를 맛볼 수 있는 기회도 오늘이고 지난 번 빤자노 여행에서 만난 아마로네 와인의 유명 프로듀서, 베르따니의 관계자를 그곳에서 만날 수 있을테니 이 만남도 기대된다. 시음하는 와인 10잔만 마셔도 어느새 한 병이니 나름 고민하고 선별해서 마셔야 초반에 나가떨어지지 않을 수 있으니 참 나.. 저녁에 행사장을 나오면 엘리자베타와 그녀의 베르가모 친구들이 함께하는 저녁 식사가 있다. 떠나는 우리들을 위해 긴급 소집된 자리. 베르가모의 줄리오가 오니 이 자리도 술로 흥건히 넘칠게 분명하다.  

어이쿠, 11시. 나가야 한다.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이 부족하니 당연히 포스팅도 게을러진다. 성의도 없고..^^

(이게 어제 아침에 집 나서면서 작성한 포스팅. 시간이 없어 저장 버튼만 누르고 나갔는데 다음날 새벽에 들어와서 보니 저장이 안됐단다. 성의없는 포스팅이지만 다음 포스팅까지 잠시 쉬어가는 의미로 올린다. 근데 어쩌다 새벽에 들어왔냐고? 요 얘긴 아침에 잠 좀 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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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자로 지금 묵고 있는 데이빗 숙소를 나와야하기 때문에 귀국 전 까지 지낼 숙소를 알아보는 것이 비행기 티켓 예약과 더불어 중요한 과제였다. 4월 2일부터 베로나 피에리(Fieri-전시장)에서 시작되는 이탈리아 최대 와인 축제, 비니 이탈리 행사로 인해 이미 베로나의 모든 숙소는 예약이 끝난 상황. 데이빗 말로는 베네치아로 가는 길목의 비첸자와 밀라노 방향의 브레시아, 남쪽의 만토바와 북쪽 가르다 호수를 끼고있는 바르돌리노까지, 반경 100km 이내의 숙소가 이미 모두 동났을 것이라며 겁을 준다. 이탈리아 곳곳에서 와인을 빚는 장인들이 트럭째 몰고 대거 상경함은 물론 세계 각국의 소믈리에와 바이어, 관광객들이 몰려오니 그럴 법도 하다.

해서 우리가 선택한 곳은 역시 볼로냐. 베로나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고 다행히 특급열차보단 지역선이 주로 운행돼 기차요금이 저렴하다. 거기에 이미 지난 경험을 통해 볼로냐 숙소에 대한 제법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으니 좀 더 뒤지면 물건을 만날 수 있을테다. 우리가 묵으려는 숙소는 셀프케이터링 숙소라고 해서 데이빗 숙소가 딱 그런 곳인데 키친과 화장실과 침대를 모두 갖추고 있는 원룸식의 숙소다. 좋은 위치와 전망을 가진 곳은 호텔보다 월등히 비싸기도 하지만 대개 호텔보다 저렴하고 무엇보다 요리를 해먹을 수 있으니 길거리 피자나 비싼 식당을 이용해야 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어제 한 두 군데 숙소와 연락을 마쳤고 오늘은 아침 일찍 강양이 볼로냐를 향해 출발했다. 집 보러. (김군은 편집질..)

마침 그 숙소도 4월 1일부터 방이 빈다고 하니 박자가 딱딱 맞는다. 볼로냐 첸뜨로 내에 있어 접근성도 좋고 떠나기 전까지 볼로냐의 회랑길에 흠뻑 취해있다 갈 수 있음은 물론 비니 이탈리 기간 동안 베로나를 오가며 매일 와인에도 취해있을 테니 떠나는 즈음, 봄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기분좋은 선물이 아닐까 싶다. 단, 집이 괜찮아야 할텐데..

한 가지 소식 더. 어제부로 비행기 티케팅의 고민을 끝냈다. 4월 15일, 볼로냐 출발, 프랑크푸르트 경유, 인천공항으로 연결되는 루프트한자를 끊은 것. 한국시각 16일 오전 11시 30분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래, 간다.

Posted by dalgonaa

베로나에 조금 전인 3시 20분에 도착했다. 뻬루자, 피렌체, 볼로냐, 베로나로 이어지는 여정은 총 5시간 30분이 소요됐고 2명 기차요금만 12만원 가까이가 깨졌다. 좀 짜증나는건 오는 내내 표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 이런 예가 종종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한 코스에선 할 줄 알았는데 퍼펙트하게 검표를 안하니 애써 뭍어두고 있는 무임승차에 대한 욕망이 또다시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것 같아 그게 짜증이다. 사람 시험하는 것도 아니고.. 완벽한 인간이 되질 못했으니 제발 그런 싹이 트지 않게끔 미리 잘라달란 말이다. 

어제 뻬루자의 날씨가 오락가락하며 눈발을 살짝 뿌리더니 새벽부터는 제법 무서운 기세로 함박눈을 쏟아냈다. 찬바람까지 쌩쌩 불어대니 오랫만에 침대에 누어 창문을 통해 눈보라를 감상했다. 어찌나 잠이 안오던지.. 다음날 일찌감치 뭔가 중요한 일(가령 멀리 떠나거나..)을 해야하는 경우엔 대개 그렇기도 하지만 뻬루자에서의, 특히 그 집에서의 마지막 밤잠이니 괜히 마음 한구석이 싱숭생숭해진 탓도 있다. 누워서 고개만 까딱 세워 바라보던 저 아래 도심의 불빛도, 휘영청 보름달이 제길 따라 움직이는 모습도, 멀리 아스라한 아씨지와 그 아래 봄기운이 피어오르던 찰나의 들녘도, 그리고 집의 윗층을 떠받치고 있는 육중한 나무들보의 천정도 이제 특별한 인연이 없는 한 마주할 일이 없다. 그게 아쉬워 하나하나에 마지막 시선을 던져줬고 그러다가 동태를 이용해 파스타를 만들면 어떨까에 대해 한참 고민을 하다가 겨우 잠이 든 듯.. 


새벽의 눈은 아침까지도 이어졌고 바람은 칼처럼 차가웠는데 8시 14분, 언제나처럼 아레쪼로 출발하기로 돼 있는 열차는 연착이 아니라 아예 없어져 버렸고 1시간 30분 후에 피렌체로 출발하는 열차가 유일해서 그걸 대신 잡아타고 와야 했다. 아무튼 어느 구간에서도 표검사를 하지 않더라는..

그제와 어제에 걸쳐 한국으로 보내야 할 자잘한 짐과 책들 대부분을 소포로 부쳤다. 총 40kg의 무게에 책만 30kg. 배로 보냈으니 아마 우리가 귀국할 즈음으로 해서 받을 수 있지 싶은데 시간은 얼마가 걸려도 좋으니 제발 무사히 배달돼 다오. 책 부치고 나니 어찌나 홀가분하던지.. 위태롭게 겨울을 나게했던 이불은 그 집에 고스란히 남겨놓고 왔고 파르마 노양이 주고 간 전기장판도 그곳에서 다른 누군가를 데피도록 남겨놓고 왔다. 그 전기장판 없었다면 우린 모두 얼어죽었을 것. 플라스틱 밥그릇, 스텐 양재기, 사기 대접, 도마, 후라이팬 등을 꾸역꾸역 짊어지고 왔고 아직도 한참은 먹을 감자와 양파, 올리브유, 간장, 고춧가루, 멸치등도 배낭 구석구석에 쑤셔넣어 지고 왔다. 빵빵하게 부푼 가방들의 지퍼를 열면 양말, 빤스와 더불어 이것들이 마구마구 튕겨나올 태세니 절대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진 이것을 열어선 안된다는 다짐을 되새기며. 애네들도 다음달 1일 베로나를 떠날 때면 모두 우리손을 떠난다. 그 때면 짐이 대폭 줄어든다. 물론 그 공백은 감사의 선물들로 다시 채워지겠지만. (자~ 김치국 뜬 수저 언능 내려 놓으시고..)

낭패가 하나 생겼다. 다음달 중순 경으로 알고 있던 비니 이탈리 행사가 2일부터 6일까지라고 한다. 그때문에 데이빗 숙소가 딱 그 기간에 풀북(FULL BOOK-예약만땅)이 되서 방이 없다는 것. 그러나 우리에겐 당장 방이 없는 문제보다도 예상보다 훨씬 일찍 행사가 시작된 점이 더 큰 낭패다. 그렇게 되면 지금 편집중인 작업 일정을 어떻게 조정해야할지 다시 계획을 세워야 할 판. 그러면 귀국일정도 영향을 받지 싶은데 좀 더 일찍 들어갈 수도 있을 듯.  이거이거 일에 쫓겨서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면 안되는데..

어제 간만에 옛 회사 동료와 메신저를 주고받다가 그 친구가 물었다.  "영영 들어오는거에요?"
잠깐 당황하다가 "아마 한국, 이탈리아를 자주 오가도록 노력하겠지"라고 엉거주춤 답했다.   '영영'이라..
6개월, 어찌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인생이 새롭게 '포맷'된 후 처음으로 기록된 새로운 삶의 파일들이 이탈리아여서 그 바탕은 좀 더 오래 가지 않을까? 생각날테고 그리울테고 어쩌면 좀 더 현실적인 이유로 필요할테고. 그리고 아직 젊은데 '영영'이란 말은 좀 안어울리지 않나?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