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는 이탈리아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겠지만 그 유산의 전파자는 이탈리아인들이 아닌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인일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 적어도 북부에서 거리 피자가게를 장악한 이들은 바로 이들 이민자들이다. 저렴한 자본으로 손쉽게 창업할 수 있고 피자가 대단한 기술을 요하는 음식이 아니어서 이들 이민자들에겐 이것 만한 정착수단도 없다. 볼로냐에 만난 다수의 이탈리아인들도 그 사실을 인정하며 맛과 솜씨에 있어서 이들이 한 수 위라는 이야기도 서슴없이 내놓는다. 이탈리아인들이 부지런히 팔아준 덕분에 파키스탄 출신의 한 피자가게 주인은 몇 개의 점포를 더 열었으며 심지어 그의 승용차는 페라리다. (이 얘기 한 번 했던가?..)

아무튼 이탈리아에 머물 당시, 특히 볼로냐에 머물 때 피자에 다소 신물을 느낄 지경이었는데 그것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돌아오니 오밤중이면 새록새록 그 맛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본토 피자를 맛보는 건 저 먼 언제쯤으로나 미뤄둬야 할 것 같고 대신 찍어둔 사진으로 맛의 추억이나 더듬어야겠다.



베로나에 머물 때 오븐에 피자를 한 번 구어봤다. 박력분은 단백질 함량이 적고 끈기가 적어 바삭한 비스켓에 적합하고 그와 반대인 강력분을 이용해 피자를 구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았던 시절. 수퍼마켓에서 제일 만만해 보이는 밀가루를 집어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비스켓을 만드는 박력분이었다는.. 그럴듯한 농도로 반죽을 하고 이스트따위는 생략한 뒤 한국 피자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세몰리나(밀을 거칠게 갈은 것으로 피자도우가 바닥에 눌어 붙는 걸 막으며 요리 반죽에도 사용된다)를 트레이에 고루 뿌려 깔고 알리치(멸치절임)와 말린 토마토 절임, 케이퍼 따위로 토핑한 피자를 올린 뒤 오븐에 넣었다. 주사위처럼 작은 알갱이들이 일반 모짜렐라 치즈고 가운데 포실하게 찢어놓은 하얀 것이 생모짜렐라 치즈. 치즈가 넘치는 이탈리아니 아쉬울게 없도다.



마지막에 올리브유를 넉넉히 뿌려 넣었으니 자글자글 기름기가 식욕을 돋군다. 도우 가장자리를 자세히 보면 박력분의 효과가 대번에 드러난다. 쫄깃이 아니라 바삭. 허나 이것도 별미더라는. 한국에 있을 때도 종종 피자를 해먹었는데 그때는 시중에 판매하는 또띠야 피를 도우로 사용했다. 담백한 피자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요즘, 또띠야도 피자 도우로 손색이 없다. 반죽에 소금간을 살짝 해줘야 맛이 좋고 기본 간은 짭짤한 알리치가 잡아 주니 피자가 맥주를 부른다.



반죽이 좀 질었는지 도우의 모양 잡기가 쉽지 않다. 결국 이런 모양으로도 만들어 먹어보고. 저쯤 되자 피자가 아닌 과자가 되더라는..



파리나(Farina)는 '밀가루', Tipo는 Type의 이탈리아 말. 그럼 '00'은? ㅋㅋ 저게 바로 강력분이라는 뜻. 비스켓을 만드는 박력분은 '0'으로 표시된다. 알파벳인지 숫자인지는 우리도 아직 모르는데 '0'을 단백질의 또 다른 표현이라 가정하면 그 구분은 훨씬 쉬워진다. 많으면 강력분, 적으면 박력분. 쉽다 ^^ 

참고로 이탈리아 남부, 특히 나폴리 지역은 여전히 이탈리아인들이 피자 주도권을 꽉 쥐고 있으며 북부의 경우도 식당에 앉아 칼로 썰어먹는 피자집은 여전히 이탈리아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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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것저것 볼 일이 있어 카메라 챙겨들고 거리로 나섰다. 밥먹고 나온 직후니 배불러 좋고 햇살도 좋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세상 딱 이랬으면 하는 생각. 카메라에 찍힌 그림들 가운데 몇 가지 엄선(?)했는데 순서는 심하게 뒤죽박죽이니 그점 참고하면서 감상하시길.


엥, 마지막에 등장할 법한 사진인데.. 암튼, 발코니에서 바라본 북쪽 하늘에 걸린 구름. 저무는 햇살을 받아 살짝 붉게 물들었다. 봄이 되면 이쪽은 으례 그런건가 싶은 것이 저 구름. 작년 이맘때 몰타에서 본 구름도 저처럼 크고 요란했으니 저 구름을 보자 바로 몰타 생각에 젖어버리고 말았다. 여기선 안테나 위에 걸리지만 몰타에서 수평선 너머로 걸린다는 점이 다를 뿐 모양이나 색감이나 분위기가 거의 흡사하다.  한국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TV안테나, 이탈리아에선 흔하디 흔해서 특히 로마 가면 안테나의 절정을 감상할 수 있는데 유서깊은 도시에 걸맞게 요란한 설치예술을 보는 느낌을 준다. 사진에 혹시 점들이 보인다면 째재잭 거리며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제비들의 모습일테고 그도 아니면 먼지일 수도.



지구상에서 가장 맛있는 젤라또(아이스크림) 가게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볼로냐의 유명 젤라또 가게 까스띨리오네 앞. 학교를 파한 중학생 한 무리가 가게 앞을 점령하고 열심히 젤라또를 핥고 있다. 이곳 말고 아씨넬리 타워 아래에 있는 한 젤라또 가게 앞도 볼로냐 대학 학생들로 북적이는데 그집껀 아직 못먹어 봤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유난히 젤라또를 좋아하는건지, 젤라또가 유난히 맛있어서 좋아할 수 밖에 없는건지.. 재밌는건 만약 어느 식당에서 먹은 요리가 맛있어서 레시피가 궁금하다고 하면 주방으로 끌고 들어가 신이나서 가르쳐 주겠지만(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젤라또 가게에서 레시피가 궁금하다고 물으면 쫓아낼 가능성이 높으니 이점 유의. 젤라또에 대한 노하우는 집집마다 비밀이어서 보안유지에 꽤나 신경쓴다. 기본 젤라또의 맛은 어디나 다 똑같이 맛을 내지만 이후 무엇을 얼마나 어느 타이밍에 섞느냐에 따라 맛과 질감이 달라지고 그만큼 자신만의 독보적인 젤라또로 손님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의 예술가. 이분 행인들로부터 찬조금 꽤 받으셨다. 왜냐면 바이올린 연주인데다 연주실력이 수준급이었기 때문. 볼로냐의 경우 인디펜덴자 거리에 색스폰 아저씨, 산 비탈레 거리의 아코디언 아저씨가 종종 만나는 예술인이지만 벌이가 그닥 신통치는 않아보이는데 이분은 다르더라는. 생상의 동물농장(맞나?)에서 스완 테마를 연주했는데 선율이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는 완급 조절이 듣는 이들을 매혹시켰으니.. 손에 쥔 동전을 저 통에 안집어 넣을 수가 없다. 잘 들었습니다~


비좁은 틈 사이로 보이는 아지넬리 타워. 사진이 누운 이유는 고개를 꺽어서 보라는 '배려'.  언제봐도 멋진 탑. 입구의 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반평짜리 공간에 퉁퉁한 아주머니가 낑겨 있듯이 앉아서 3유로의 입장료를 받고 표를 내준다.



아지넬리 타워 바로 아래에 있는 두에또리(Due Torri-두 개의 탑) 피자가게에서 사온 마르게리따 피자. 한 판에 3.5유로, 우리돈 6천원. 성인 두 삶이 점심 한 끼로 충분할 양이지만 하루 한 판만 먹어야지 두 판 먹으면 속이 맥힌다. 맛이야 뭐.. 좋다.



뽀르띠꼬 데이 세르비(Portico dei servi) 라는 이름의 긴 회랑길. 집 가까이에 이런 아름다운 길이 있었다니..  늦은 오후 해를 받아 대리석 위에 길게 드리워진 기둥과 아치의 그림자. 사방팔방이 예술, 볼로냐가 아름다운 이유다. 비오는 날 우산이 필요없다는 실용성까지!  볼로냐가 유난히 회랑길을 많은 이유는 비가 많은 기후적 특징 때문이라는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인 요리사의 증언인지라..^^



자나리니(Zanarini)라는 볼로냐의 제법 크고 전통있는 바 앞에 펼쳐진 야외 테이블의 풍경. 편하게 앉아 저마다 수다떨고 햇살을 즐기는 모습에 봄이 더 봄다워지는 것 같다. 쉐프 마르코의 부인 엘렌은 저곳에 거의 출근하다시피 하며 테이블에 앉아 몇 시간을 보낸다는데 커피 한 잔, 책 한 권, 선글라스에 햇살이면 하루의 정신적 양분으로는 충분하지 싶다. 무선인터넷만 터진다면 한국인들에게 점령당하는건 시간문제겠지만 볼로냐에는 한국인이 별로 없다.


아지넬리 타워 앞 대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T셔츠에 반바지, 두터운 조끼에 쉐터를 걸친 사람들까지. 환절기의 패션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찻길엔 횡단보도 표시만 있을 뿐 차선은 아예 없다. 이탈리아에선 파란불에 건너기도 하지만 빨간불에도 차만 없으면 건넌다. 기초질서를 외치는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 안되고 못마땅하게까지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익숙해지면 이것처럼 편한 것도 없다. 따지고 보면 신호등도 결국 사람 편하자고 만든거지 그거에 기계처럼 맞추라고 만든게 아니지 않나? 빨간불이기 때문에 안건너는게 아니라 위험하니까 못건넌다는 점, 그  점을 인식하는게 중요하다. 유럽의 경우 도로에선 무조건 사람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널리 깔려있어 빨간불에 사람이 건너면 차들이 알아서 멈춰준다. 우리처럼 '죽고싶어?' 하며 행인을 차로 위협하는 경우는 절대 찾아볼 수 없다. 자, 며칠 후면 곧 그곳으로 간다. 아싸~ ...



'비빔국수에 왠 화이트와인?' 싶겠지만 아주 맛있는 파스타다. 화이트와인으로 쪄낸 홍합에 토마토를 붇고 끓이다가 파스타를 넣고 볶아낸 요리로 일명 '냄비 파스타'. 비주얼은 엉망이지만 맛보면 모두 좋아할꺼라 확신한다. 거짓말인지 아닌지 기다려보면 알지롱.




요놈이 바로 위에 그놈. 홍합을 건져먹기 전의 모습인데 이것도 비주얼은 영 시원찮지만 그나마 낫네. 냄비 벽에 마늘 붙은거 봐라. 면도 허여멀개서 사진만으론 무슨 맛일까 싶을꺼다 낄낄..



사진의 편집 순서가 엉망이라는 점을 드러내주는 증거. 아까 얘기한 뽀르띠꼬 데이 세르비 회랑길의 또 다른 사진인데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다.




봄을 담아보고 싶어서 찍은 사진. 울창한 고목에 새순이 잔뜩 솟았다.  100년 가까이는 자랐을 나무. 서울 한복판에서 저런 나무 보려면 다다음 세대는 되야 가능하지 않을까? 청계천 변에 '꽂아'놓은 나무만 본다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인간이 위대하고들 떠들지만 때론 저런 나무가 더 위대해 보이기도 한다. 얼마나 기품이 넘치는지 그 앞에 서서 올려다보면 안다.



이왕 눕힌 사진, 일관성을 위해서..^^ 새로운 아지트 이틀리(EATALY)의 바깥 모습. 암바시아또리(AMBASCIATORI)는 '대사관들'이란 뜻인데 간판으로 함께 내건 의미가 자못 궁금해진다. 저 건물에 대사관은 없으니 말이다.


첸뜨로(완전 중심가)를 살짝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대로 한 켠의 민들레 영토. 흐드러진 모습이 보기 좋다. 춘심이 전해지는구나~


볼로냐 대학. 건물들이 도시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고 그 수도 많다. 저런 환경이면 공부할 맛 날까?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자습실과 도서관이 있다는 점은 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매료시킨다. 작년, 피렌체 두오모 근처에 새롭게 문을 연 도서관이 시설과 분위기, 이용편의 등에서 정말 끝내줬고 베로나의 도서관도 좀 작다는 점을 빼면 그에 견줄만해 보였다. 이명박 정부가 공공 도서관 사업에 박차를 가하길 기대해본다. 



이틀리의 내부 모습. 보는 바와 같이 한쪽은 책, 한쪽은 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식품들의 경우 단지 부유층을 위한 비싼 식품이 아니라 이탈리아 각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윤리적, 공동체적 생산의 뿌리를 내리려는 대안적 프로듀서들이 만들어내는 식품들을 진열 판매하고 있으니 먹는 문제에 있어 진보하는 이탈리아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긴.. 이미 범세계적 이데올로기로 성장해가고 있는 슬로푸드의 발상지가 이탈리아 아닌가! 이명박 정부가 슬로푸드 정책에 박차를 가하길 기대해본다. (재미없나? ㅋㅋ)


자.. 사진도 이제 거의 종반.

아까 중학생 아이들이 떼로 모여있던 바로 그 젤라또 가게의 내부 모습. 이제 얼굴도 익숙해진 저 아주머니 위로 메뉴가 보이고 아래에 스텐 뚜껑 속에 젤라또가 담겨 있다. 사진에 안나온 왼쪽 켠에 계산대가 있어서 그곳에서 먼저 먹고싶은 사이즈를 정하고 계산하면 영수증을 끊어주는데 그 쪽지를 아줌마에게 건네면서 젤라또 이름을 대면 과자컵에 퍼주고 비스켓 하나를 꽂아준다. 비스켓은 주로 숟가락 용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2.5유로짜리 메뉴의 경우 3가지 아이스크림을 선택할 수 있다. 저 뒤가 젤라또를 만들어내느 비밀의 공간. 한국에선 아이스크림 전문점이라면 미국산 베스킨라빈스가 90% 가까이 점유한 상황이지만 이탈리아는 단 한 곳의 점포도 없다.(아마도 그럴껄?) 왜냐면 이탈리아엔 수천개의 독보적인 가게들이 시장을 꽉 잡고 있어서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맛과 질에서 이미 승부가 갈린다. 만약 이탈리아 사람들이 베스킨 라빈스를 핥고 다닌다면 거짓말 조금 보태 특종으로 지하철 무가지에 그 사진이 실릴께 틀림없다.



이틀리 마지막 사진. 서가와 식품 판매대, 그리고 한쪽에 이렇게 멋진 카페겸 식당 공간까지 갖추고 있어 관념에만 젖어있지 않고 몸으로 직접 부딪치고 실천할 수 있다. 이상이 현실화 되는 곳, 이 얼마나 멋진 놀이터란 말인가! 이건희 회장이 이틀리 사업에 박차를 가하길 기대해본다.  



짜잔~ 등장! 까스띨리오네 젤라도. 이탈리아 젤라또가 베스킨라빈스와 결정적으로 다른 차이라면 맛의 깊이와 넓이가 엄청 다양하고 질감에서 탄력이 있어 어떨땐 쫄깃한 느낌마저 받는다. 베스킨라빈스가 퍼담는 식이라면 여긴 죽죽 길게 퍼올리는 식이다. 그리고 적어도 이 집의 경우 부재료를 아끼지 않아 먹다보면 초콜릿, 피스타치오, 이름 모를 쿠키 등이 저마다의 메뉴에서 통으로 씹혀 맛을 한 층 끌어올리니.. 좀 비싼 감이 없지 않지만 아이스크림 땡길 땐 이만한 맛이 없다.



저 저 색감 좀 봐라.. 이탈리아,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 나라지만 배울 것도 많다. 저 젤라또 만드는 법 배워두면 한국에서 재미 좀 볼 텐데.. 이미 강남, 압구정 쪽에는 젤라또로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가게가 있다고.  이탈리아 전역에 젤라또 가르치는 아카데미들이 제법 많이 있으니 대학진학 일찌감치 때려친 고등학생, 실업의 고통을 실감하고 있는 청년 실(失)업가, 사표를 품고 다니는 젊은 직장인, 퇴직을 앞둔 가장과 부업을 고민하는 주부는 물론 심지어 서주 아이스주 회장님에게도 적극 추천한다. 누구에게나 도전의 길이 열려있으니 함 고민해보시길.. 부국선진의 길. 도서관, 슬로푸드, 젤라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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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드는 의문점 하나는, 도대체 이 나라는 먹을게 없다는 거다. 요리 강국으로 불리는 프랑스도 사정은 비슷하지 싶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요리란게 비단 고급 식당에서 폼잡고 먹는 음식만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라면 이 나라들은 길거리에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그닥 많지 않다는 얘기다. 프랑스는 일단 미뤄두고, 이탈리아만 보자. 어제 우리는 뻬루자를 출발해 몇 군데 유명도시를 경유해 베로나에 도착했다. 5시간이 넘는 여정동안 쫄쫄 굶을 순 없으니 뭘 먹어야 하는데, 그럼 뭘 먹을까? 피자? 그래, 피자가 있다.


길에서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조각피자. 가격도 부담이 없지만 간혹 요란한 재료를 넣을 경우 가격이 껑충 뛰니 조심. 사진의 것들은 한 조각에 1.5유로. 볼로냐의 우리 단골집.

지난 번 볼로냐를 다녀올 때 아레쪼에서 열차를 갈아타던 중 인근 피자집에서 피자를 한 조각 사먹었고 볼로냐에서 허기진 배를 채워준 단골메뉴도 피자였다. 심심해서, 귀찮아서, 간편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싸니까 손쉽게 선택하는 음식이 바로 피자다. 근데 이제 지겨울만도 한 음식 또한 피자다. 그럼 이탈리아에서 피자를 대신해 선택할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을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딱히 떠오르질 않아 강양에게 물어보니 이런다.
"케밥? 아니면 BAR에서 파는 샌드위치?.."


이탈리아 모든 BAR에는 저 같은 간단한 간식거리(브리오슈)를 갖춰 에스프레소 한 잔의 심심함을 달래준다.

나만 특별하게 느끼는건가 싶었는데 아니다. 오늘날 서양요리를 이끌어가는 두 축의 하나로 평가받는 이탈리아 음식의 종류와 레시피는 무궁무진할 정도로 많지만 길거리에 배고픈 이들에게 손쉽게 다가가는 먹거리는 참으로 빈곤하다. 어제 베로나로 오는 도중 피렌체역에서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가장 만만하게 생각해 선택한 간식은 결국 캔맥주에 감자칩이었다. 새삼 돌아보면 이탈리아, 참 먹을거 없는 나라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우리 여기 왜있는거니?^^) 그러니 한국의 대학생 여행자들이 이탈리아에 오면 먹어봐야 피자고 혼자서는 두려우니 삼삼오오 모여 식당에 들어서 쁘리미니, 세꼰도니 복잡한 순서 건너뛰고 시키기 만만한 것 역시 피자다. 


식당에 편하게 앉아 웨이터의 시중을 받으며 시켜먹는 피자.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가며 먹는다. 맥주나 음료수 하나 시키고 테이블 차지가 붙고나면 10유로 훌쩍 넘는다.

때론 이런 사건도 생긴다. 한 번은 4명의 학생들이 식당에 들어가 피자헛에서 시키는 것 처럼 딱 한 판을 시켜놓고 먹었단다. 먹는 동안 웨이터들이 자신들을 향해 키득거리며 기분 나쁘게 웃어 입맛이 확 떨어졌다는 얘기를 하는데 듣는 우리도 안타까운 한편 얼굴이 화끈거렸다. 웨이터들도 좀 심했지만 학생들도 심했다. 식당에서 주문해 먹는 피자의 경우 1인 1판이 기본. 한국의 백반집에서 김치찌개 하나 시켜 4명이 나눠 먹을 수 없는것과 같은 이치다. 피자헛이 아닌게다. 하나 더, 오래전 베로나에서 엘리자베타와 식당에서 피자로 저녁을 먹은 뒤 남는 건 포장을 부탁했는데 웨이터의 태도가 좀 거시기 했다. 엘리 왈,
"여기선 남는 거 포장해가는 사람 없어. 왜냐면 거의 안남기거든" 

맛의 또다른 제국, 현대 요리의 선두주자로 일컬어지는 이탈리아에 친숙한 길거리 음식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은 여간 섭섭한게 아니고 온당치도 않게 느껴진다. 그런점에서 터키와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한국과 중국, 일본. 아시아의 요리가 서양요리와 다르게 지니는 뚜렷한 차이점은 길거리 음식이 동시에 발달했다는 점이고 요리의 깊이와 폭이 훨씬 더 깊고 넓다고 볼 수도 있다. 혹시 한국의 이탈리아 요리들이 때론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리는 이유가 다양한 길거리 음식이 발달하지 않아선가? 뭐.. 대단할 것도 없는 베트남 쌀국수가 여전히 비싸게 팔리는 점을 보면 꼭 그런것 만은 아니고.. 근데 한국에 이탈리아 가정식이라고 간판을 내건 식당에서 내는 요리들이 과연 가정식의 기본을 충실히 따르고 있을까? 가정식의 덕목이라면 소박함, 정성, 그리고 후한 인심을 빼놓을 수 없는데 어디어디식 가정식이라고 나오는 요리들의 소개를 보면 요란한 장식에 양은 짜증날 정도로 적어서.. 외국인이건 한국인이건 한국 가정식이라는 간판을 내건 식당을 들어설 때의 기대는 '엄마의 손맛대로 푸짐하게 먹어보자'일텐데 꽃모양 낸 궁중요리 깨작거리며 내오면 짜증나지..

미식의 관점에서 더 없이 훌륭한 요리. 비주얼, 구성, 맛 모두 뛰어나지만 음식의 1차 목적, 허기의 충족에는 때론 못미치는 감이 종종 있다. 쉐프 마르코로부터 받은 독일 어느 레스토랑의 요리 사진.

이탈리아 북부, 베르가모의 한 가정식. 북부답게 버터 많이 써 기름지고 고기가 빠지지 않는다. 볼품은 없어도 주인의 정성과 후한 인심이 더해져 있다. 시계방향으로 폴렌타, 토끼구이, 버섯볶음, 살라미. 노란 폴렌타 밑에는 고르곤졸라 치즈가 은폐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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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레쪼. 볼로냐를 거쳐 밀라노로 가는 열차를 이곳에서 갈아타는데 도착까지 40분이 남아 역앞 대로까지 나가 한 바퀴 휙 둘러보았다. 10분만 더 투자하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 등장하는 그 광장까지 볼 수 있겠건만 열차를 놓치면 안되니 멀리는 못갔다. 마침 빈속, 피자집이 눈에 띄어 들어가 피자 한 조각씩 먹었는데 젠장 음료수까지 해서 1만원이 훌쩍 넘는다. 맛도 영 시원찮은 피자.. 그렇게 빈속을 채우고 역으로 돌아오니 이런.. 40분 연착이란다. 40분에 다시 40분을 더하니 80분. 심심하니 뭐하나? 사진이나 찍어야지.


레일을 줄곧 따라가면 로마, 거꾸로 따라가며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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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핑계로 미루던 엑스포 테크노컴(www.expo-tecnocom.it) 전시장을 오늘(4일)에서야 다녀왔다. 요리와 관련한 전시라는 것 말고는 구체적인 정보를 얻고 간게 아니어서 혹시 볼꺼리보단 다큐멘트적인 것이 중심이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했는데 표를 내고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그런 걱정은 말끔히 사라졌다. 전시장은 업소용 주방용품과 테이블 용품, 요리들로 가득차 한마디로 요식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비즈니스 행사장이었으니 우리에게(?) 딱이었던 셈.


사람들이 많이 모인 부스에서 한 요리사가 열심히 피자를 자르고 있다. 뒤에 보이는 오븐의 성능을 선보이는 부스로 이제 막 피자를 익혀낸 것. 조리를 마친 음식들은 모두 관람객들에게 시식용으로 제공되며 달라면 더준다. 들어오기 전엔 점심을 따로 사먹어야 하나 생각했는데 웬걸, 음식을 내놓는 부스에선 못먹여서 안달이다. 사실 관람객이 너무 적어 우리가 초조할 지경이었는데 그래선지 시식용 음식을 아끼지 않았다. 피자, 파스타, 또르뗄리니, 라비올리, 맥주, 와인, 이상한 초밥, 케잌, 젤라또, 커피. 이상 우리가 이날 행사장에서 먹은 음식들. 맛본 수준이 아니라 배가 터질 지경으로 먹어서(그들이 강제로 먹였다!^^) 어느 때는 들이미는 피자를 힘겹게 거절해야했다.


과일과 채소를 이용해 만들어낸 장식용 음식. 시도는 높이 샀지만 솜씨를 보구선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손재주는 한중일을 따라오기 힘들지 싶다.


가뜩이나 한산한 전시장, 우리가 유일한 동양인이다 보니 주변의 모든 시선이 한 번쯤은 우리를 향한다. 목 좀 축이자 해서 찾은 어느 BAR, 맥주 좀 마시려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으니 바로 우리를 스탠딩 테이블로 안내하고는 사진의 병맥주를 꺼내 저 탐나는 잔에 우아하게 따라준다. 그리고 또 다른 병을 꺼내 첫 잔을 비우길 기다리더니 또 다시 따라준다. 색이 진한걸 보니 흑맥주다. 맥주들은 모두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수퍼에는 없고 오로지 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단다. 맛을 표현하기도 이젠 좀 지친다. 한국에서 마시는 맥주맛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정도로 정리. 두 종류를 맛봤지만 지금 집에는 저 두 종류에 더해 다른 한 종류가 더 있다. 3병을 선물로 싸준 것. 감동이다.

시칠리아에서 그 곳의 특산 포도 품종인 네로다볼라와 그 외에 시라즈, 샤도네이, 카버네 쇼비뇽을 생산하는 소규모 프로듀서 피아나데이치엘리(Piana dei Cieli)의 관계자. 이번 행사는 처음 참여고 사실 이제 막 본격적인 홍보를 시작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젊은이들의 입맛이 와인보단 맥주로 옮겨가고 있다는 한 조사가 있다는데 비록 젊은이들을 겨냥한건 아니더라도 신생 와이너리의 시장진출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테다. 그런 탓에 이들이 내놓은 제품은 분명 더 연구하고 분발한 흔적이 베어있을 터. 마셔보니 음..  요즘 집에서 마시는 와인이라는게 5리터에 채 10유로가 안되는 이른바 '테이블 와인'(어디선 하우스 와인이라고도 부른다). 주목할 인상이라곤 거의 없는 그 맛에 찌들어 있다가 이놈을 마시니 그냥 웃음이 씨익 그려진다. 작년 3월 로마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소믈리에는 "요즘 네로다볼라가 뜨고 있죠"라는 수수께끼 같은 한 마디는 우리를 고민케 만들었는데 그 의문이 이제서야 좀 풀리는 기분이다. 오른쪽에 가지런히 진열된 와인들 모두가 고급 와인들인데 와인을 품은 저 진열장이 사실은 와인을 한 잔씩 따라내 주는 기계다. 일반적으로 고급 와인은 잔으로 파는 경우가 거의 없다. 콜크를 따면 그때부터 와인맛이 좋게든 나쁘게든 변하기 시작하고 콜크를 다시 막았다 해도 다시 열때 마다 향과 맛이 변해 애초의 맛을 기억하는 손님에게 같은 향과 맛을 유지시킨 와인을 제공한다는 것이 어렵다. 해서 한 두 잔만 원하는 손님이라도 병째 판매하거나 가격이 부담인 손님 입장에서 주문을 포기하는 수 밖에 없다. 헌데 저 기계는 공기는 차단하면서 와인을 뽑아내도록 제작이 돼 고급와인을 병이 아닌 잔 주문으로도 즐길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싼 와인은 굳이 저 기계를 쓸 필요가 없다는게 언니의 설명. 가격이 얼마냐 장난스레 물으니 꽤나 고가다. 이탈리아에서 마티즈가 6,990유로에 판매되는데 여기에 100유로를 더 얹어야 저 기계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우린 그저 좋은 공부한다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고가장비 얘기가 나왔으니.. 청년의 뒤로 보이는 석 잔을 동시에 뽑아내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가격이 5,000유로가 조금 넘는다. 한국돈으로 900백만원. 한국 커피값 비싼 이유가 저때문이구나 싶다가도 이탈리아의 경우 로마를 가든 시골을 가든 에스프로소 한 잔이 1유로(1,800원)가 넘지 않으니 어디가 정상인건지 원..
 

시커먼 피자. 커피가루라도 뿌렸나 싶겠지만 저놈이 바로 송로버섯(분말)이다. 향이 무척 강해 피자를 한 입 베어물고 씹는 동안도 코로 향이 꽤나 진하게 퍼진다. 저거 외에 이거저거 곁들여 먹은게 많아 한 번 맛보곤 배불러서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지금 글을 쓰는 새벽, 스멀스멀 향과 식욕이 솟구치려한다. 바사삭 하면서 쫀득거렸는 도우도.. 아우..


초밥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많이 뚱뚱하지만 초밥 맞다. 생선을 올린건 아니고 지지고 볶은 각종 채소를 올렸는데 문제는 밥. 이탈리아에선 리조또할 때 쌀을 거의 안씻는다는거 혹시 아나? 리조또용 쌀로 밥을 지은거까진 좋은데 박박 씻질 않아 설익은 밥처럼 서걱리면서 초맛이 나니 영 먹기가 그랬다. 먹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데 요리사는 신이 나서 계속 만들더라는..


젤라떼리아의 젤라또. 값비싼 유성 물감을 한 무더기 풀어놓은 듯 색감이 장난이 아니다. 어렸을 적 팔레트에 물감을 색깔별로 쭉 짜놓을 때 마다 먹고싶다는 충동이 일곤 했는데 그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순간이다. 상품성이 완벽해서 혹시 저건 돈내고 사먹는건가 싶었더니 뇌세적인 눈빛의 예쁜 이탈리아 언니가 작은 컵을 양손에 흔들어 보이며 먹겠냐는 제스춰를 취한다. '씨' 했더니 뭐든 골르란다. 4가지를 찍었더니 컵 두개에 넉넉히 담아준다. 물론 공짜.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의 특징은 찹쌀떡 같다는 점이다. 쫀득거리는 질감이 한국것과는 다르다. 버석거리는 셔벗 스타일의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루겠지만 롯데삼강의 찰떡아이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 좋아할 터. 사진에서 보듯 데코레이션도 첨단이어서 그 앞을 무심코 지나치기란 매우 어렵다.


언젠가 꼭 손에 넣고 말겠다고 다짐하는 황동 팬과 냄비. 뚜껑 하나도 꽤나 묵직하니 무겁다. 열전도율이 좋아 요리를 골고루 익혀내는데 저만한게 없다나..


BAR를 한다면 언젠가 만들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는.. 못하면 꼭 주문제작이라도 하겠다고 다짐하는 스탠딩 테이블. 속에 형광등을 넣어 그 자체로 조명이기도 하다. 저런 테이블에는 잔도 특별해야 한다. 그냥 밋밋한 잔을 올리면 안된다. 그렇지 않나?

앞서 얘기했듯이 관람객이 많지 않았다. 빈 부스에 앉아 스파이더 카드를 하던 어떤 아저씨의 애처로운 뒷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그때문일지 모르지만 이날 하루 예상치 못한 환대에 엄청 포식을 즐겨서 기분이 좋았고 이것저것 미처 생각지못한 것들을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어서 더더욱 즐거웠다. 여행이 때론 피곤하고 따분해지더라도 이런 일 때문에 계속 길을 가게된다. 그 길을 떠날 사람들이 앞으로도 줄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런 경험이 비단 우연만은 아니라면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 가운데 중요한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우헤헤~

Posted by dalgonaa

주말, 멀리 하동에서 부푼 꿈을 안고 날아오는 '청춘'을 맞이하기 위해 강양과 김군은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모래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몰타를 내려다 보며 다소 실망하겠군' 하는 생각에 오히려 우리가 실망스러워졌지만 그보다 더 우리를 실망스럽게 만든 것은 1시간 30분이나 늦어진 도착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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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에 맞춰 1시 30 공항에 도착했으니 꼼짝없이 2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도착 터미널에는 마땅히 앉아 기다릴만한 곳도 없어 북적대는 사람들을 피해 3층 카페테리아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점심을 먹고 나온지라 괜히 예정에 없는 지출이 생기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그것이 반전이었다.

자연에 도전하는 과학의 경이를 신이 나서 구경했기 때문인데 활주로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테이블에 앉아 9천원짜리 피자와 3천원자리 맥주를 마시며 이착륙을 하는 여객기들을 마냥 지켜본 것이다. 몰타 같은 작은 나라에 에어버스380’과 같은 대형 여객기가 뜨고 내릴 일은 없지만 그것의 반 크기에도 못 미치는 작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즐거웠다.


 


>> 공항으로 오는 길, 버스의 문구가 재밌어 찰칵! 주문표의 첫 번째 피자를 시키자 바로 다음 사진의 피자가 구워져 나왔다. 양도 제법 많아서 둘이 먹기에 충분하고 말린 오레가노 향이 인상적이었다. 몰타 맥주의 자존심, '시스크'.

이윽고 Emirate 항공 여객기가 활주로에 모습을 나타냈다. 기분이 참 묘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그것도 공항에서의 기다림은 묘한 흥분을 가져다 주나 보다. 당신들은 그런 경험이 없는가?

 

30킬로가 넘는 무거운 짐을 이끌고 하동에서 먼 길을 날아온 이효진씨는 3시 50 게이트를 빠져 나와 우리와 상봉했다. 첫 만남. 건축을 공부하고 있다는 그녀는 이제 생 줄리앙의 녹색 발코니집에서 우리와 함께 3개월간 함께 살아갈 식구. 우리는 서로 밝게 웃으며 차분히 인사를 건넨 뒤 여기저기 반가운 포옹이 벌어진 사람들 틈을 헤집고 가까스로 터미널을 빠져 나왔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그냥 동네 어디쯤에 온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하동의 집을 나선지 꼬박 28시간이 지났다고 한다. 그 사이 네 다섯 시간을 잤다고는 하지만 기내에서, 그것도 이코노미에서라면 그 고단함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테다. 그래도 우리가 몰타에 도착해 겪었던 것 만큼의 혼란은 그녀에겐 없었다. 그녀는 분명 운이 좋은 것이다.

 

덕분에 우리도 시원한 시스크 맥주와 말린 오레가노를 듬뿍 뿌린 피자를 먹으며 비행기의 경이로운 이륙을 한참 동안 구경할 수 있었지만..



>> 유럽 최고의 '저가'항공, 라이언에어. 며칠 전 이 항공사의 '몰타-이태리 피사' 예약일정을 검색하다가 오로지 세금만 내고 요금은 안내는 티켓이 나온 것도 발견했었다. 며칠 전 함께 식사한 한국인 친구는 몰타-바르셀로나-포루투갈을 왕복하는 비행기를 75,000원에 끊어 현재 여행중이다. / 1시간 30분의 기다림 끝에 모습을 나타낸 에미레이트 항공. / 할머니와 함께 누군가를 마중 나온 통통한 꼬마는 정신사납게 주변을 뛰어다니다 결국 할머니에게 호된 손매질을 당했다. 그러나 이도 잠시, 다시 저 표정으로 공항을 뛰어다녔다. / 한 두명씩 나오는 한국인들. 저 틈에 이효진씨는 아직 없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