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4.02.17 뒷마당 공사 외..
  2. 2010.03.22 봄맞을 준비 11
  3. 2009.04.11 예술이 넘친다
  4. 2009.03.14 모처럼 여행자로 1
  5. 2009.03.10 이탈리아에서 나물 뜯어봐? 18
한국 Korea 160409~2014. 2. 17. 01:58


머리속에서 생각했던 포스팅 내용들은 막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에 손을 올리면

먼지처럼 사라지곤 했다. 그리곤 흰 배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다른 곳으로 관심이 

옮겨가버려 포스팅 기회를 놓치기 일쑤. 블로깅이 그닥 계획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물론 꼭 그럴 필요가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왕 하는거라면 좀 더 적절한 방식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처럼 번호를 매기고 주제어를 붙여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1. 화덕공사

주방 확장공사때 시작부터 끝날 때 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공사.

그리고 모든 공사는 끝났지만 화덕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말 겁없이 무모하게 도전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난공사임에 틀림없다. 워낙 아는 정보도 없이 덤벼들었으니 당연하다.

외부적 모양은 그럭저럭 갖췄지만 속은 깡통이나 다름 없는 상황.

화덕이라 하면 기본적으로 500도 까지 온도를 끌어 올릴 수 있어야 하지만

내가 만든 화덕은 계란을 익히기도 힘들 정도로 온도가 오르지 않는다.

그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는데 문제는 단열. 

해서 관련 정보를 뒤지다 보니 세크라울의 존재를 알았고

그것이 '막무가내표 화덕'의 문제를 해결해 줄 희망이라 굳게 믿고 있다.

늦어도 4월 안으로 피자를 메뉴 리스트에 꼭 올리고야 말테다. 

그렇게되면 라자냐로부터 수쉐프 쏭지를 해방시킬 수 있다. (잔손과 집중력이 엄청 요구되는 메뉴) 

피자를 메뉴에 올리면 라자냐는 내릴 계획이다. 

라자냐와 피자의 공존은 우리같은 작은 가게에선 어울리지 않는다. 

라자냐는 앞으로 연말 메뉴로만 한시적으로 운용할 생각. 



2. 뒷마당 공사

이게 빅 과제로 떠올랐다. 물론 이 계획은 주방 확장공사 때 부터 

염두해 둔 계획이었지만 봄이 가까워짐에 따라 실행이 코앞으로 다가온 셈.

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다. 

기본적인 계획은 현재 차 한대를 세울 수 있는 이 공간을 멋진 야외 화단으로 꾸며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그곳에 손님들을 앉힌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경사진 바닥을 평탄하게 해야 하고 그 바닥은 다시 녹지공간으로 

꾸며야 한다. 녹지를 위한 화분, 내지 화단을 설계해야 하고

따가운 햇빛을 가려줄 그늘막과 저녁에 빛을 밝혀줄 조명을 설치해야 한다. 

물론 야외공간을 사용하기 힘든 한 여름과 겨울에는 다시 차를 세워야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운용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그래서 요즘 뒷마당을 서성이며 생각에 잠기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애초에는 바닥에 인조잔디를 깔 생각이었지만

망원동에 잘 꾸며진 어느 까페를 다녀온 후

그곳에 흙과 잔디를 보며 생각을 고쳐먹고 그렇게 바꾸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래서 며칠 전 가게 앞에서 마침 건물주인을 만나 이에 대해 상의를 나눴다. 

건물주인은 자기 돈을 들여 이런 공사를 벌일 수 없을테니

내가 그 부분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사실 바닥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그곳에 잔디를 까는 것이 큰 비용을 필요로하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100만원 정도.(구체적 정보는 아니지만 다년간의 경험^^으로 미뤄보건데..)

하지만 이런 정도로까지 생각을 하고 실제 실행에 옮겨 만들어낸 공간적 가치는 

그 그액을 뛰어 넘을테다. 그리고 그 혜택은 나뿐 아니라 건물 주인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돌아간다.

어쩌면 재주를 넘은 곰보다 주인더 더 재미를 볼 수도 있다.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 능력이 거기서 그치는 건 결코 아니니 주저없이 지금을 누리자'라는 걸로. 


아,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다.

뒷마당에 뭍어져 있는 정화조. 

이것이 깊게 뭍히지 않아 콘크리트 바닥을 걷어내도 정화조는 섬처럼 솟은 형태가 된다.

이걸 더 깊에 뭍거나 아니면 그 높에 맞춰 흙을 돋궈야 하는데.. 

나의 또 한 사람의 사업파트너, 상수건축 사장님과 상의를 해봐야 할 사안.  




3. 주7일 영업체제

자영업계 최초(라고 믿고 싶은) 주 5일제 영업을 하고 있지만

주방 확장을 계획하면서 연중무휴 체제에 대해 줄곧 고민했었다.

주5일 체제가 주는 장점은 당연히 이틀간의 휴식과 충전,

그리고 그 틈에 시간구애없이 가게와 주방개선을 위한 자잘한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단점도 있는데 그래서 나는 결국엔 쉬는 날이 없다는 점이다.   


직원들의 주5일 근무는 유지하면서 고용을 늘려 나머지 이틀도 가게 운영을 하자는 것이 기본안. 

이를 통해 매출액이 더 늘어나게되면 그 이윤도 좀 더 나누고

돈이 어느정도 적립되면 어떤식으로든 사업을 확장해 나갈 수 있을테다.

주방 시스템도 메인, 파스타, 피자, 콜드, 씽크, 5개 파트로 구분해 운영하고 

이를 위한 직원모집도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어느정도 마무리단계다.

이 경우 나는 이른 아침 장보기와 점심과 저녁시간에만 부분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생각중이다.

주7일 영업체제는 늦어도 5월부터 시행예정.

 



4. 오토바이

드디어 오토바이를 구입했다. 망원동의 어느 오토바이 가게에서 

이른바 '배달업계의 전설'로 불리는 대림 시티를 중고로 구입. 

누구는 정열적인 레드라고 부르지만 그 멍텅구리같은 붉은 색이 너무 맘에 안들어

별도로 돈을 조금 들여 파란색으로 도장을 새로 했다. 

보험도 들고 구청에서 번호판도 받아 장착. 

구입한 날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홍대에서 상봉동 집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잘 달린다. 거의 처음 타는 오토바이지만 오랜세월 도로에서 자전거로 누비던 

기본기가 몸에 있다보니 몇 가지 기계적 어색함을 극복한 후부터는 아주 든든한 발이 돼주고 있다.

노량진과 가락동을 제외하곤 짐이 별로 없는 장보기는 이제 이놈이 한 몫.

뒤에 짐을 실을 수 있는 바구니를 달아야 하는데

짜장면 배달처럼 보이지 않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중이지만

전망이 밝지는 않다.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0. 3. 22. 12:08
달력에 의하면 봄이 왔지만 
실제는 겨울이 그 자리를 냉큼 내주지를 않는 듯 싶다.
꽃샘추위, 참 잘지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부쩍드는 요즘.
그래도 가게 앞 화단에는 어느새 연두빛의 새순이 올라오고 있다.
물도 잘 안주는 게으르고 못된 주인의 손길 아래서도 잘 자라고 있었구먼. 

봄맞이를 위해 몇 가지 준비를 해야겠다. 
추운 겨울을 붉은 빛으로 데펴줬던 식탁보를 걷어내고 
4월에는 산뜻함이 묻어나는 식탁보로 모두 교체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동대문 원단시장을 돌아야하고 잘 어울릴 색감과 디자인의 
원단을 골라 박음질 해야한다. 

10일 전 부터 주방에 부분적으로 결합해 일을 도와주고 있는 공감독이 
최근 옷만들기를 배우고 있다면서 봉재라면 얼마든지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 많은 걸 혼자 해치우기는 힘들테니 재미삼아 해보라고
몇 장 정도는 맡겨보려 한다. 

새순을 내고 있는 가게 앞 화단의 나무를 뽑아 뒤로 옮겨심고
그 자리에는 봄꽃을 심어보려 한다. 
요즘 화원에 봄 한 철 피고 지는 예쁜 꽃화분이 
가격도 저렴하게 쏟아져나오고 있는데 이놈을 심어 꾸미면
색색의 꽃에 가게 손님은 물론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도 기분이 밝아질 것 같다.


+++


가게 뒤편 주차장에 노는 공간이 제법 많은데 
이곳에 화단을 만들어 허브를 심고 키워볼까 한다. 
바질 정도는 요리할 때 마다 그때그때 뜯어 쓰면 편할 뿐 아니라 싱싱한
상태로 요리할 수 있어 더없이 좋다.

바질 얘기가 나와선데 요즘 바질 값이 100그램에 2만원이다.
기가 막힐 지경으로 값이 올라 바질의 대량 구입을 중단했고
숭어 가르파쵸의 드레싱 양념에 필요한 소량을 제외하곤
몇 가지 해산물 파스타 요리에서 바질을 빼고 있다.

대개 그렇듯 바질도 여름 작물이어서 겨울에는 자라지를 못한다.
특히 이번 겨울이 유독 추웠고 폭설도 많았고
무엇보다 비닐하우스의 난방비가 크게 올라
남는게 없다고  판단한 바질 농가(얼마 있지도 않지만)가 재배를 접으면서
공급량이 급감해 가격폭등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며칠 전 가락동 시장을 돌다 바질을 취급하는 몇 집 가운데 한 집이
100그램에 1만6천원에 준다고 했으니 이문이 좀 줄더라도
이 집에서 조금씩 구입해 써야겠다. 
일부 요리에서 빼자니 아무래도 좀 찜찜하다. 


봄 요리도 고민중인데 요건 가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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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볼 때 하루에 많게는 5곳을 돌기도 한다.
지난 주 쯤인가가 그랬는데 부족한 접시를 구입하기 위해 황학동 
주방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시작으로 
노량진 수산시장, 양평점 코스트코, 마포 농수산물 시장,
그리고 망원시장의 정육점까지. 
이들 모두는 이제 달고나 운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들이 되었고 
이들과의 긴밀한 생존의 끈은 느슨해질 틈이 잠시도 없다.
최근엔 폭등한 채소와 허브 가격으로 가락동 시장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퀴즈 하나.
이곳 가운데서 김군이 가장 장보기 싫어하는 곳은 어디일까?
 
어디보자...
질척거리는 바닥이 영 못마땅한 노량진?
차와 사람과 주방기물이 한데로 뒤엉키는 황학동 주방거리?
한 바탕 주차전쟁을 치뤄야하는 코스트코?
은근히 값이 비싼 마포?
아니면 전문성 떨어지는 망원시장?
어딜까?
ㅋㅋ


답은 코스트코.
이유를 간단히만 설명하자면
이곳에만 들어서면 내가 물건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품'에 선택되어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곳은 똑똑한 소비자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그렇다고 착각하는 몽롱한 소비자들이 마차같은
카트를 밀고 열심히 물건을 주워담는 곳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런 대열에 속한 언젠가 구제되어야 할 소비자고. 


가장 재밌는 시장은 황학동 주방거리다.
이 가운데 시간 날때마다 찾는 한영주방(중고그릇가게) 
그릇가게면서 동시에 희귀 골동품가게 같은 곳이어서
 이곳에 쌓여 있는 손때, 기름때 뭍은 그릇과 집기들 사이에 파뭍혀 있다보면
어릴적 다락방에서 보물을 찾기위해 먼지를 죄 뒤집어썼던
그때의 재미가 어느새 솔솔 묻어난다.
비록 그릇가게지만 어른들의 어릴적 모험심과 탐구심을 불러 일으키는 작은 공간이랄까?


망원시장은 잘 닦여진 재래시장의 보기가운데 하나이면서 
지역의 소규모 경제 생태계가 자리를 잡은 곳이니 좋고
무엇보다 맛있는 파김치를 파는 반찬가게가 있어 좋다.

노량진은 애초 점심장사를 마치고 오후에 방문하곤 했는데
 언젠가 새벽시장을 다녀온 뒤 그 매력에 흠뻑 취해 여건이 되면,
가끔은 무리를 해서라도 새벽시장에 나가곤 한다.



+++


매주 하루는 쉬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힘들어서.
월요일, 또는 화요일에 가게를 쉴까 하는데
양일간의 결정을 미루고 일단은 월요일에 쉬고 있다.
해서 오늘은 가게 문을 닫고 그간 못챙긴 것들은 하나씩 정리해가려 한다.
가게문을 닫는다고 해서 가게에 안나가는건 아니다.
오늘 나가서 이번 주 쓸 육수를 끓여야 한다.
에휴..


Posted by dalgonaa

봄이 오자 재주를 가진 사람들의 유쾌한 퍼포먼스도 부쩍 늘었다.

귀를 즐겁게 해주고



눈을 즐겁게 해준다.


야외 테이블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고



동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도 제법 시원스럽게 느껴진다. 넵튠상.




저 멀리 볼로냐 예술의 구심점, 아지넬리 타워.


Posted by dalgonaa

아레쪼에서 30분을 연착한 기차는 피렌체를 30분만에 주파하더니 볼로냐엔 예정시간 보다 딱 15분 늦은 타임으로 도착했다. 달리면서 속도 엄청낸다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역시 기관사가 액셀 무지하게 땡긴거다. 볼로냐에 도착하니 아레쪼와 달리 햇살 쨍이고 뻬루자와 달리 기온 포근이다. 그 자체로 봄. 역에는 사람들도 많고 밖에는 택시도 많다. 선글라스의 멋쟁이들과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봄빛 반짝이는 떠나기 좋은 금요일, 괜히 우리도 들뜬다. 도시라면 이정도의 혼돈은 있어야 제맛. 
 
최소 600미터는 될 길고 긴 회랑길인 인디펜덴자 거리를 두 대의 캐리어로 쓸다시피 하며 지난 번 묵었던 숙소에 도착했다. 아래층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언제나 그렇듯 인터폰에선 "알베르고"라며 시큰둥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알베르고는 호텔이란 뜻. 혹시나 빈방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줌마, 반갑게 맞아준다. 지난 번 묵었던 그방도 그대로 비어 있단다. 그리곤 순간 '오래 묵을꺼니?'하며 어두운 표정으로 숙박일정을 물어오는데 4일 정도 묵는다고 하자 다시 얼굴이 활짝 핀다. 이유를 묻진 않았지만 짐작은 간다. 일주일 후 부터는 앞서 얘기했듯 볼로냐 아동도서전이 시작되므로 짐작컨데 이 호텔도 이미 그 일정의 손님들로 예약이 끝난 상태일 것이다. 우리도 그 일정과 겹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 촬영은 없고 내일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무거운 카메라 없이 가는 길, 어쩐지 발길 가벼운 여행자가 된 기분이다. 정말 오랫만에 맛보는 기분. 헌데 식당에 도착하자 비보가 기다리고 있다. 수쉐프인 엔리코가 몸살이 나서 오늘은 물론 내일 결혼식 피로연 요리준비에도 참여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런.. 적어도 주연급 출연자들의 요리 모습을 하나하나 담아내 마지막 인터뷰와 엮어 엔딩 처리하려 했건만.. 아무래도 수정이 불가피한데 어떻게 매듭을 지어야할지 원.. 경준이 말론 꾀병도 좀 섞였다는데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해주겠다며 내일 피로연 음식 준비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혹시 상황이 허락한다면 이들을 위한 저녁식사로 가쯔동, 아니면 짜장밥이라도 해줄 요량이었건만 전혀 틈이 없다. 몇 사람 없는 주방이 두 배 이상의 사람들로 북적이는 분위기다. 다만 저녁 장사 전까지 잠깐 일좀 도와주면 고맙겠다길래(사실 바쁘다는 것을 짐작했기에 도와줄 마음의 준비는 돼 있었던 상황) 몇 가지 단순 반복작업의 일을 도와줬다.

호두알 만한 빨간 무를 삶아 손으로 껍질을 벗겼고 계란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해냈고 꾸스꾸스를 이 통에서 저 통으로 옮겨 담았고 싱싱한 홍합과 변질된 홍합을 가려냈다. 빠르미쟈노 치즈를 믹서에 가는 쉐프에게서 일을 빼앗아보려 했지만 되려 먹으라고 건네는 치즈를 받아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그렇게 1시간여를 어리버리하게 도와준 뒤 내일 일정을 재확인 하고 숙소로 향했다. 어찌나 배가 고프던지.. 경준이 저녁식사 준비라며 파스타 한 봉지를 끓는 물에 부었고 이후 쉐프가 건져내 토마토를 섞어 볶아냈지만 쉐프를 제외한 누구도 팬에 담긴 파스타를 건들지 않았다. 바빠서. 그 와중에 포크 들고 내 몫 챙겨먹자니 어찌 눈치가 안보이겠나? 슬쩍 넘겨본 파스타는 소스를 듬뿍 빨아들여 어느새 띵띵 불어가고 있었고.. 잠깐 경험해본 주방 일. 헌데 이 짧은 경험이 꽤 진지한 깨달음 하나를 던져줬으니.. 아주 짧은 경험이었지만 소득은 컸다.

숙소로 돌아오는 저녁길,  밤공기는 이젠 좀 시원하게 느껴졌고 사람들도 어깨가 많이 펴졌다. 숙소 앞에 작은 가게를 지나다가 문득 시원한 맥주 생각이 나 발길을 돌려 가게로 들어섰다. 하이네켄과 벡스 사이에서 페로니를 찾았지만 없고 모레띠가 있어 두 병을 골랐다. (PERONI와 MORETTI 모두 이탈리아 맥주. 이중 페로니가 좀 더 고소) 짧은 이탈리아말로 '페로니는 없냐'고 물었는데 되돌아오는 이탈리아 말은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만약 독일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면 짧게 '있다'거나 '없다'라는 답변 중 하나가 되돌아 오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탈리아에선 결코 그런 법이 없다. 말 무지하게 많다. 숙소로 올라와 입구의 데스크를 지나니 아줌마 왈 "오늘 밤에도 늦냐?"고 묻는다. 그간 늦게 문닫는 레스토랑 촬영으로 종종 새벽에 들어와 자는 아줌마를 깨운게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오늘은 촬영이 없다'고 하자 '알겠다'며 씨익 웃곤 내실로 들어간다. 금요일 주말밤의 여유를 쟁취했다는 표정, 왠지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방으로 향하며 봉지에서 쨍강쨍강 부딪치는 맥주병의 소리는 또 어찌나 맑게 들리던지.. 한국으로 떠나기 전 까지 마냥 이런 기분이길..

오늘 새벽까지 번역에 매달리느라 잠이 부족한 강양은 딱 한 잔 축이고는 일찌감치 골아 떨어졌고 저 두병, 김군이 착실하게 비우고 있다. 그간 줄곧 페로니만 마시느라 모레띠를 깊이 음미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호.. 이 맥주, 얕잡아 봤던 것과 달리 끝맛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향긋한 여운이 남네.. 요거 기특한걸? 근데 어이, 중절모 아저씨, 왠지 그 향이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아..

Posted by dalgonaa

이 추운 시골도시(뻬루자는 움브리아주의 주도지만 시골이나 다름없다)에도 봄이 오긴 오는지 어제 일요일 발코니에 서니 따뜻한 훈풍이 간간히 뺨을 스치며 지나갔다. 아씨지를 감싸고 있는 산 정상의 눈도 거의 녹았고 밝은 빛깔의 돌벽들은 햇살의 따뜻함을 복사해냈다. 정녕 봄이 온게로다. 내려다보이는 들녘 어딘가에선 분명 먹을 수 있는 봄나물이 솟고 있지 않을까? 냉이가 있으면 연일 감자와 호박, 양송이 버섯으로 반복되는 된장지깨의 지루한 레퍼토리에도 큰 변화를 줄 수 있을텐데 아무래도 그놈은 찾아보기 어렵지 싶다. 남의 땅인줄 모르고 들어갔다가 괜히 엉뚱한 오해를 사는 것도 그렇고 가게에도 나물류는 없다는 점에서 그렇지만 뭣보다 1000가지 식재료를 망라해놓은 이탈리아책을 보면 냉이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샐러드용의 채소는 우리도 생소한 것이 많은 반면 우리식의 샐러드라 할 나물에 쓰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냉이, 도라지, 드룹, 씀바귀, 고사리, 취 등등. 예전에 한 기근 했던 이곳이었으니 있었다면 어떻게든 요리로 먹는 방법을 찾았을텐데 지금 그런 흔적이 없는걸 보면 아마 없다는 얘기가 아닐까?

나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ㅋㅋ 이번 이탈리아 여행('두서없는 방황'이 더 정확할..)을 통해 우리가 깨달은 굉장히 큰 사실 하나는 이탈리아, 특히 북부의 제법 잘사는 동네에 한국식당 내면 장사가 될꺼라는 점이다. 두 가지 점을 미뤄볼 때 그러한데 하나는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전역에 거세게 불고 있는 스시열풍(고이즈미는 집권중에 스시의 해외진출에 적극 나서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는데 어쩜 그 효과일 수도..)을 따라가지 못하는 조악한 스시의 품질과 이미 이전부터 동양음식의 맹주로 자리잡은 중국음식의 권태로운 매너리즘(?)이 그렇다. 어디까지나 우리의 경험과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얘기^^.

베로나에 머물 때 두 개의 스시집에 대해 들은 바 있는데 하나는 일본인, 또 하나는 중국인이 운영하고 있다. 사실 유럽 전역을 통틀어 성업중인 스시집이라면 절반 이상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일본인 운영의 스시집은 고급화 전략(사실 스시가 고급 아닌가?)을 앞세워 높은 단가의 스시를 내놓고 있고 예약을 해야 자리를 확보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우리는 일전에 그 앞을 지나며 스윽 넘겨보기만 했는데 젓가락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열심히 초밥을 집어먹는 모습에 그저 낄낄 웃으며 지난 기억이 있다. 볼로냐에 딱 하나 있다는 스시집도 운영은 중국인이 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식사하지 않았지만 그곳을 다녀온 경준군의 이야기는 이렇다.

"우동을 시켰는데 중국 특유의 들큰한 육수에 가다랑이 포를 얹어낸걸 우동이라며 주더라구요.."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취재한 마르코 파디가 비스트로에서도 스시를 내놓는다는 점이다. 이는 비즈니스 메뉴에 일찍 눈을 뜬 쉐프 마르코의 착안과 한국에서 온 경준이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경준은 스시 메뉴에 있어선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취재를 부담스러워 했는데 그도 그럴것이 경준군은 스시요리를 배운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없는 것은 둘째치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버젓이 메뉴로 팔린다는 점에 요리사로서 양심적 부담이 있다는 눈치다. 사실 새로운 것을 내놓고 싶어하는 쉐프의 의지에서 어찌어찌 하다보니 어느덧 메뉴로 굳어진 것인데 일본인은 물론 한국인이 마르코 식당의 스시를 먹어보더라도 부족함을 느낄 맛.

식당일을 마치고 남은 재료로 급 만든 초밥. 초밥 이름은 묻지도 않고 먹었네 이런..

그것을 알기에 경준군은 부담이 더 크다. 근데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쉐프 마르코가 스시집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준비가 아니라 오픈 날짜만 기다리고 있다는게 더 정확할 듯. 이미 가게도 마련했고 스시를 만드는 기계도 경준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들여왔다. 경준은 4월에 이탈리아를 떠나니 이 사업에 관여되진 않겠지만 마르코의 도전이 아무래도 우리 눈에는 다소 무모해보이는 구석이 있다. 왜냐면 그 스시가 별로 맛이 없기 때문이다. 달고 시고 텁텁한 초밥과 빛을 잃은 생선. 그럼에도 마르코가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찾는 손님이 있기 때문.


중국음식은 어떨까? 볼로냐의 심장부인 두오모를 이어주는 큰 길 인디펜덴자 거리를 향해 문을 내건 중국식당(얼마전 까지 인근에 하나 더 있던 중국식당은 망했단다)은 식당 홀 바닥을 두터운 강화 유리로 덮고 그 아래는 돌을 깔고 물을 채워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해놨다. 중국의 어느 황제가 그랬던 것 처럼의 호사를 느끼며 밥을 먹으라는 주인장의 컨셉인건데 과연 손님들이 그런 호사로움을 느낄지는 알 수 없다. 식당에 들어온 목적이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기 위함이니 인테리어보단 요리가 빛을 내야 하는 법. 두 번 왔을 때마다 우리는 스프와 만두, 볶음밥과 곁들여 먹는 고기볶음 등의 요리를 주문했는데 첫 번째는 배보다는 호기심을 채우는 심정으로 먹었고 두 번째는 아주 짜게 간이 돼서 나온걸 겨우겨우 먹었다.

흔히 중국음식을 기름지다고 하는데 사실 기름진 문제보다는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특유의 들큰한 향료가 입맛의 젤 큰 부담이 아닌가 싶다. 모양면에서 우리가 먹는 튀김만두와 똑같았을 만두는 쪄서 나왔는데 고기향과 파향이 어우러진 맛을 기대했지만 전혀 예상외의 맛을 내줬으니, 만두피의 쫄깃한 식감과 찍어먹는 간장장의 맛쪽으로 혀가 집중됐다. 우리가 갖은 양념, 또는 오랜 숙성으로 고기, 특히 돼지고기의 나쁜향을 잡는다면 이집의 만두나 이탈리아의 돼지고기 요리가 갖는 공통점은 강한 향료나 허브로 향을 섞어버리는 점이 아닐까 싶다. 특별히 그맛을 즐기는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중국요리도 한국의 중국요리가 훨씬 맛있다면 너무 편협한가?)

디자인과 문양이라곤 없는 투박한 사기접시에 담겨나오는 음식 가운데 그나마 입맛에 맞는건 새우볶음밥(계란과 새우만 들었고 미원 적절히 섞었고 짜다)과 간장양념에 볶아낸 돼지고기다. 이것 역시 짠 볶음밥을 한 입 물고 짠 돼지고기 볶음을 찬으로 먹는다는 괴로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미원의 익숙한 맛(?)이 있어 그런대로 먹었다. 식사중의 즐거움이었다면 가게 구석구석을 훑어보며 내부를 어떻게 확 뜯어고치고 조명을 어떻게 하고 어떤 메뉴를 내놓을지에 대한 공상을 맘껏 즐긴 것. (혹시 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한 경준이 이 글을 읽으면 살짝 서운해할지 모르겠는데 경준에 대한 비판이 아니니 괜한 오해는 말기를 바라고 오히려 우리에게 큰 공부가 됐다는 점에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길. 주중에 올라갈테니 총각김치 잘 보관하거 있거라^^)

스시를 중심으로 한 낯선 아시아 요리에 대한 호기심, 건강식에 대한 관심, 높은 외식문화와 산업, 유행과 세련됨에 있어 결코 밀라노에 밀리지 않는 볼로냐, 이런점들을 미뤄볼 때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독특한 문양의 작은 간판을 단 한국식당 앞에서 근사한 한지에 적힌 메뉴판을 넘기고 있는 볼로냐 사람들이다. 흙빛 도자기에 담아낸 불고기와 색색의 전,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쌀밥, 콩밥, 오곡밥. 그리고 모든 외국인들의 완소 순두부찌개! 여기에 사기잔에 적셔 맛보는 백세주 한 잔? 이 밖에도.. ^^  (일산 오피스텔 단지에 영어 원어민 강사들이 제법 많이 사는데 한 번은 백세주 세 병을 품에 소중히 안고가는 모습을 보고 눈이 둥그레졌던 기억이..)


경준이 우리에게 재미삼아 이런 말을 던졌다.
"일본요리는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중국 요리는 먹으면 속이 부담스럽고, 근데 한국요리는 먹으면 배부르고 속이 편하다고 해요"
듣는 입장에선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