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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05 [공사일지] 6월4일토요일 - 슬라브 커팅. 골목을 흔들다.
- 2016.06.05 [공사일지] 6월3일 금요일 - 전기, 금속, 목공 밑준비
- 2016.06.05 [공사일지] 6월2일 목요일-타일 막바지와 가구에 대한 구상
- 2016.06.05 [공사일지] 6월1일 수요일 - 타일작업의 시작
- 2016.06.05 [작업일지] 비스트로 시즌 1의 마감과 새로운 여정의 시작
- 2016.05.24 <협동조합 달고나> 준비모임
- 2016.05.21 협동조합 달고나 1
- 2015.01.18 신경전
- 2015.01.18 긴박했던 주말
- 2015.01.16 아침의 상념
자립과 노동의 새로운 통로,
<협동조합 달고나>가 온다.
내용 : <협동조합 달고나>의 예비조합원과 ‘눈팅’들의 첫만남.
일시 : 2016년 5월 23일(월)
장소 : 협동식당 (망원동 월드컵로 21길 14)
자영업의 위기, 달고나의 위기
노동시장에서 밀려나오거나 진입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자영업이다. 하지만 여기도 공급과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들이 생존하려면 그것을 구매해야 할 소비자들이 충분히 존재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들의 주머니 사정 또한 넉넉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수입이 넉넉치 않으니 구매력이 떨어지고 구매력이 떨어지니 내수경기가 추락하고 재고가 쌓이니 직원들이 직장에서 짤리고 짤린 직장인들이 골목사장으로 변신해 치킨집을 만들어가는 이 고약한 악순환. 따라서 현재 창업대열에 쏟아져 들어오는 사장님들의 50%는 3년 이내, 80%는 5년 이내 망한다는 것은 통설이 아닌 통계로 증명되고 있다. 중산층 붕괴는 그것과 짝을 이루며 간다.
자영업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이루는 것은 물론 대박이 터져 돈방석에 앉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이들의 비현실적 욕망과 시시때때로 방송되는 맛집 프로그램들의 편집된 정보가 만나면 특별함이 일반화되는 오류를 낳고 결국 수요와 공급이 왜곡돼 많은 이들을 그릇된 선택으로 몰고간다. 배추값의 폭등과 폭락으로 얼룩진 농산물시장의 수요공급 붕괴와 똑같다.
선택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 실패에 따른 댓가가 워낙 커서 재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더욱이 하락곡선을 그리는 경기에서 조율되지 않은 저마다의 창업은 시장을 활성화는 커녕 더욱 황폐화시킨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정부는 이런 문제 해결에 무능하다.
달고나는 한동안 인기있는 가게였고 지금도 그 지위는 유지하고 있지만 매출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이는 우리가 특별히 못하거나 다른 우수한 경쟁자가 나타나서라기 보다는 골목상권의 변화와 상권의 이동, 그리고 전반적인 경기불황의 여파로 읽혀진다.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달고나도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다.
또 하나, 7년 간 달고나 운영을 통해 얻은 것은 장사의 경험과 좋은 사람들, 그리고 망가진 건강과 늘어난 빚이다. 열심히 하면 상응하는 보상이 돌아온다는 공식은 깨졌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력해봐야 현상유지이거나 겨우 추락을 면할 뿐이다. 이는 사회와 시장경제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다고 봐야하는데, 불로소득 비율이 낮아지고 생산임금이 커져야 함에도 그 정반대인 현실, 아무리 일해봐야 건물주와 금융비용, 그리고 불리한 세제에 따른 세금으로 부가 빠져나가버리니 돈이 쌓일 틈이 없다. 그걸 이겨보겠다고 나서면 몸이 부서지거나 양심을 팔아야 한다.
따라서 이런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방법으로 온건한 것이 선거, 과격한 것이 혁명인데 뭐가 됐든 가능이나 할까? 어찌됐건 시장에서 도태되어 구성원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을 피하기 위해 달고나는 변화와 혁신의 길을 찾지 않을 수 없다.
협동의 경제와 조우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무렵, 관련책 몇 권을 건성으로 넘기다가 정태인 박사의 <협동의 경제학>을 시작으로 새로운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생각을 사로잡은 개념은 ‘죄수의 딜레마’와 ‘최후통첩 게임’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독자적 이익을 얻기위해선 협력하지 않아야 한다’는 개념을 설명한 것이고 최후통첩 게임은 ‘서로 협력하면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죄수의 딜레마를 기본 속성으로 운영되는 체제이고 협동의 경제는 최후통첩 게임을 기본 속성으로 한다. 이 개념에서 영감을 얻어 달고나의 돌파구를 찾으니 답은 역시 ‘협동조합’이다. 너나 나나 서로 다르지만 결국 같은 운명의 배를 타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는데서 협동조합 구성의 논의는 출발한다.
협동은 절박한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힘을 합쳐 필요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다. 내 위기가 해결되면 곧 함께 힘을 보탠 이들의 위기도 해결된다. 만약 누구는 절박한 필요가 있는데 누구는 그렇지 않다면 협동을 잘 이뤄지지 않는다. 가령 내 발등을 무거운 돌이 누르고 있다면 나는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돌을 치우려 할 것인 반면, 발이 안전한 사람은 굳이 그럴 필요를 못느낄 것이다. (여기까지가 자본주의의 일반적 속성이고 죄수의 딜레마다)
그 돌이 나와 그의 발등도 누르고 있는거라면 둘이 힘을 합쳐 돌을 치우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설사 내 발이 먼저 빠져나왔어도 나는 힘쓰기를 중단하거나 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를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다시 힘을 모으는 것이 협동이고 이는 오랜 세월 인간이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는데 학습해온 본능이다. 따라서 이런 이들이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 위해 사업적 결사체를 이룬 조직이 바로 협동조합이고 ‘협동조합 달고나’는 이에 동의하는 구성원들로 채워진 사업 결사체이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곧잘 싸움이 벌어질꺼라고 사람들은 우려한다.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우리 내부에서도 이런 걱정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미국의 한 작은 호숫가에서 오두막을 짓고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던 헨리 소로우는 말했다.
“생활이 단순해지면 세상의 법칙도 단순해진다”
협동조합 내에서 이해관계가 복잡해진다는 의미는 아주 다양한 욕망들이 뒤섞인다는 뜻.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 각자는 제 각각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모인 것이라기 보다는 그 욕망을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동 기반을 만들기 위해 모였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앞서 언급한 것 처럼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 위해 사업적 결사를 이룬 조직’이다. 이는 일종의 마을 공동우물과 같다. 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그 쓰임은 제각각이고 그건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이고 취향이다. 하지만 우물이 마르지 않도록, 더렵혀지지 않도록 유지하고 관리하는데에는 모두가 공동의 의무를 지닌다. 누군가 갑자기 물을 더 많이 쓰기 시작해서 물이 부족해지기 시작하면 그 경위를 모두가 알아야 한다. 그럴만한 사유라면(일이 벌어지기 전에 논의되겠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거나 돕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람들은 그를 우물 사용에서 배제시킬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나와 똑같아져야 한다거나 내가 저 사람에게 기계적으로 맞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합사업의 발전은 내가 가진 재능을 공동 우물의 안전과 풍요를 위해 쓰고 그것이 우리 안에서 격려받고 칭찬받아 다른 이들에게도 선의의 자극을 주어 전체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중요한 건 우물이 마르거나 더럽혀져선 안된다는 점이다.
자급력 = 역할의 창출 = 노동의 재발견
<협동조합 달고나>가 추진해나갈 다양한 사업에서 그 밑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가치관은 한 마디로 '자급력을 높이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사람들은 ‘소비자’로 인식됨으로써 우리들은 돈(화폐)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화폐로써 교환되어야 하는 삶은 우리를 끊임없이 소비를 위한 돈벌이 노동으로 내몬다.
<협동조합 달고나>가 추진하는 사업의 핵심은 수익 창출만이 아니라 생존을 넘어 생활로 정착될 수 있는 우리 안의 자급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다. 식당사업을 하면서 재료를 모두 시장에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농장을 꾸려 ‘자급’하는 것이고 생활에 필요한 가구를 이케아에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 ‘자급’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사업영역은 무수히 많으며 그것을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엮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다)
다양한 생활의 영역에서 협동조합 달고나 조합원들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협동조합 달고나>의 사업 방향이다. 한 마디로 ‘수익의 창출’이 아니라 ‘역할의 창출’이며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일자리 창출’인 셈이다.
그 일환으로 준비중인 사업이 <협동식당>이고 곧이어 기존에 이어오던 <이태리식당 달고나>를 리뉴얼해 현재의 상수동에 8월 이전에 재오픈할 계획이다. 두 사업이 안정화되면 추가적인 조합원 모집을 통해 <베이커리 달고나> <협동서점> 등을 오픈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내년에는 서울 인근에 <조합농장>을 마련해 외식사업에 필요한 식자재를 자체 공급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역할의 조정
조합사업의 각 영역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 일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조합의 운영규칙과 조합원들의 요구에 따라 얼마든지 역할의 조정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즉 이태리식당 주방에서 일하다가도 일정 기간 후엔 원하는 바에 따라 조합의 목공작업실로 근무지를 옮길 수도 있고 농장이나 서점으로 옮길 수도 있다. 조합 내의 다양한 사업영역에서 다양한 역할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기회가 되고 높아진 행복도는 일의 성과를 끌어올리리라는 기대를 우리는 갖고 있다. 조합사업이 수익에 목적을 두고 조합원을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고 그 반대로 조합원의 다양한 역할의 경험과 그 기회를 통한 만족이 목적이고 돈은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협동조합 달고나>의 시각이다.
휴식의 노동
돈과 시간을 등가로 가정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것을 선택하겠냐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바쁜 일상에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일상, 나 자신이 거대한 기계의 부속으로 쓰여지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개인의 시간이란 조직 이윤의 논리 앞에서 평가절하되곤 한다. 소설가 현기영은 말한다.
"우리는 매일매일 단 하루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천편일률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인데, 이렇게 살고서 과연 일생의 시간을 다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을 단 하루의 삶이 아닐까? 기억에 남아 있는 시간만이 진정으로 살아 있는 과거이므로, 우리가 비교적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오늘이라는 시간뿐이다"
그 소중한 오늘이 내일에 저당잡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가 아닐까? 그것을 뼈저리게 절감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모두의 바램을 모아 1년에 1개월의 휴식을 계획하고 있다. 긴 시간 내 자리를 떠나 돌아와도 그 자리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회사. 한 달의 돈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한 달의 시간을 선택할 것인가.
협력은 모든 위기의 해법
오늘날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불안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해오던 협동, 협력의 룰이 깨진데서 출발한다.
삶의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사람들은 돈을 벌지만 우리는 '협력'을 복원하고 키우는 것이 진정한 해법이라 여긴다. 우리에게 <협동조합 달고나>는 그 첫 단추이다.
협동조합 달고나가 출범합니다.
현재 발기인 5명을 중심으로 정관 작업을 진행중이며 이르면 이번달 안으로 창립총회를 열고 조합법인 신청을 할 계획입니다.
그로부터 1~2달 사이에 법인 인가가 나오고 법인 등기를 마치면 이후부터 달고나는 '협동조합 달고나'라는 이름을 내걸고 아장아장 걷는 신생 기업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깜짝 놀라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달고나의 협동조합 전환은 1년 전부터 구상해온 사안이고 불가피한 선택이자 동시에 흥분되는 도전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자영업, 특히 영세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가게를 지켜야 하고 쉬는 날도 일주일에 하루이거나 격주로 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나마 쉬는 것도 쉬는게 아닌 것이 가게 운영의 고민으로부터 한시도 벗어날 수 없고 잠시라도 한 눈을 팔 수 없는 결박된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요즘같은 불황에 일반 직장인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점점 떨어지는 매출과 적자에 허덕이는 운영난을 돌파해낼 뾰족수는 보이지 않으며 비용을 줄이기 위해 결국엔 가족들이 생계의 전선에 내일처럼 뛰어드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자영업은 시한폭탄처럼 째깍거리는 가계부채의 한 축을 담당하는 불안지대이고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진 시장실패의 영역이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영업 시장으로 평생 모은 돈을 쥐고 뛰어들고 있습니다. 취업은 어렵고 국가의 복지는 허술하니 그 개인이 딱히 선택할 곳이 거기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태리식당 달고나는 그 힘겨운 영역에서 겨우겨우 적자를 면해가며 7년을 버텨왔습니다. 달고나에 애정을 보내주신 많은 손님들의 도움과 고된 노동을 꿋꿋이 견디며 함께 일해준 직원 동료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그 운영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좁은 주방은 어느새 달고나의 창의와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고 그 피로감은 쌓이고 쌓여 삶의 바탕을 흔드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달고나의 미래비전을 이 공간에서 꿈꾸기란 여러모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상수동 상권이 조용히 격변하고 있는 것 또한 가게운영의 불안한 요소입니다. 7년동안 이어진 임대료 상승과 언제 닥칠지 모를 계약종료 선언은 달고나를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시킬 수 있는 공포스런 미래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달고나 운영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근본적인 지점은, 더 이상 시장경제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지금보다 나은 앞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달고나의 위기, 나아가 자영업의 한계란 결국 이 문제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7년을 한결같이 일해와도 삶이 변하거나 나아지지 않고 그만큼 몸은 병들고 이루고자 하는 꿈은 두 발짝 더 멀어지는 현실. 다만 시장경제의 치열한 경쟁논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것이 지금껏 달고나가 걸어온 길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단적으로 말해 달고나의 사장 두 사람을 제외한 직원들은 이 작은 공간에서 앞으로 5년 10년을 더 일하면 그들의 삶은 무엇이, 어떻게 더 나아지는 걸까요? 이들이 부장님이 되고 사장님이 되는 것도 아니고 천상 그들 역시 자영업의 길로 들어서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는데 그것이 달고나가 이들에게 제시하는 비전이라고 하면 옳은걸까? 이를 위해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만이 당연한 삶인가?
이 질문에서 우리들은 선뜻 답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달고나의 한계이고 자영업의 한계이며 나아가 시장경제라는 시스템의 한계라고 우리들은 생각합니다. 시급 6천원의 저임금 노동이 힘겹게 떠받치고 있는 사회의 부는 모두 어디로 증발해버리고 있으며 그 부조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달고나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속절없는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노력은 해야겠고 그 일환으로 선택한 행동이 협동조합의 조직입니다. 이윤동기가 아니라 필요동기로 작동되는 비즈니스 관계, 교환가치보다 사용가치에 주목하는 거래관계, 사람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삶을 협동조합은 오래전부터 입증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도 이같은 개념은 '두레'나 '품앗이'라는 빛바랜 기억이지만 분명 남아 있습니다.
7년이 흘러 이젠 많이 낡았지만 달고나의 기관은 여전히 쓸만하고 협동의 경제로 수정된 항로는 이 미로같은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향이라고 우리는 굳게 믿습니다. 그 방향의 최종 목적지가 낙원일지 지옥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달고나는 시장경제의 비인간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통로를 찾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뜁니다. 북유럽 사람들의 높은 삶의 만족도와 남태평양 마이크로네시아 원주민들의 높은 삶의 만족도가 갖는 유사성, 그리고 '상부상조'라는 아름다운 단어에서 꾸준히 영감을 얻고 공부하며 가고자 합니다. 설사 그것이 배고프고 멋없는 고달픈 여정일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 달고나가 옵니다.
"나는 과학적 비판에 근거한 의견이라면 무엇이든 환영한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양보한 일이 없는 이른바 여론이라는
편견에 대해서는 저 위대한 플로렌스 사람(단테)의 다음과 같은 말이 항상 변함없는 나의 좌우명이다.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 K. 마르크스
"인간을 구원할 유일한 것은 협력이다"
- 버트란드 러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바쁘다.
마리아가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한 주방이지만 아침에 장을 봐야하는 내가 살짝 게으름을 피웠더니
일찌감치 마쳤어야 할 해산물들의 손질이 다소 늦어졌다. 그 덕에 다른 일들도 조금씩 후진.
늦은 장을 보고 점심영업을 시작한 주방으로 들어오니 조금씩 바빠지려는 주방 한 켠에서
넘버투 쏭지가 때아니게 숭어를 손질하고 있는게 아닌가?
- "그거 지금 꼭 해야돼?"
- "지금 미리 해두지 않으면 힘들어요"
틀린말은 아니다. 점심영업을 마치고 브레이크 타임에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이므로
뭐든 미리해놓으면 좋으나 지금은 점심영업중이다.
아직 빈테이블이 조금 남아있어 여유가 있다고 하나 손님으로 채워지는건 한 순간이고
테이블이 회전하기 시작하면 빈접시들이 곧 들이닥칠 것이므로 큰 씽크대를 필요로하는
숭어작업은 설겆이를 가로막아 주방을 패닉에 빠뜨릴 것이 뻔하다.
작업을 중단시킬까 하다가 잠자코 두기로 했다.
혹시 손님이 몰리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그러면 쏭지의 선택이 옳을수도 있지만 그때문은 아니고
나름 한 고집하는 그녀를 아는지라 괜히 긴말로 이어지는 잔소리가 될까 싶어 참기로 했다.
나와 쏭지는 비록 사장과 직원의 관계이긴 하나 나의 빈자리를 90% 가까이 수행하는
넘버투 쏭지와는 때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치를 때가 있는데 지금의 '숭어'가 바로 그 순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빈접시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석화와 스테이크 주문이 들어오자 내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파스타쪽에도 주문이 폭주하자 급기야 쏭지도 하던 작업을 멈추고 파스타로 급히 자릴 옮겼다.
문제는 숭어손질은 끝나지 않았고 큰 도마와 생선들이 씽크대에 그대로 남아있는 가운데
주방으로 들어온 빈접시들이 씽크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에 쌓이고 말았다는 점이다.
사람으로치면 소화를 마친 음식이 대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위를 비롯한 다른 장기에
정체되어 복통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쏭지도 처음에 숭어손질에 대한 내 질문을 심상찮게 받아들인 눈치여서
막상 주방의 스텝이 이처럼 꼬여버리자 본인도 난감해하는 눈치다.
사실 나는 이미 화가 난 상황이다.
나는 숭어를 몽땅 밧드에 담에 씽크대 아래로 밀어넣고 도마도 요란하게 씻어 밖에 내놨다.
스테이크와 석화도 서둘러 요리를 마쳐 내보낸 뒤 다시 씽크에 달라붙어 쌓인 설겆이들을 해치웠다.
헌데 워낙 밀려있던 탓에 좀처럼 줄어들질 않는다.
살얼음같은 주방의 분위기를 쏭지는 물론 다른 스탶들도 눈치를 챘을테다.
아니라면 요리하는 내내 모두들 그렇게 말이 없었을리 없다.
점심영업을 마쳐갈 즈음 점심을 거른 내가 전에 사다 둔 호빵을 뜯어 냄비에 물을 붓고
찜기를 올렸다. 그제서야 쏭지가 다가와 아무렇지 않은 듯 한 마디 어렵게(아마도) 건넨다.
'목수님, 뭐하세요?' (나는 주방에서 '목수님'으로 통한다. 나는 B급 목수다)
'호빵 쪄'
쏭지도 나도 목소리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함이 묻어있다.
<작년 여름 제2회 달고나 제주도 여름피서에서 오스카와 쏭지의 장난질. 해초로 턱수염을 만들었다>
호빵이 다 쪄졌다. 단팥과 야채.
어느새 호호낄낄거리며 주방사람들이 호빵을 나눠 먹는다.
헌데 야채호빵에서 생각지도 못한 비닐 이물질이 튀어나왔다. 그것도 제법 많이.
모두 이구동성 분노의 목소리를 높인다.
저 가운데 하얀조각. 비닐이다. 저것이 먹는 내내 많이 나왔다.
불량식품 전번이 1399이나 일요일이어서 통화가 안된다.
공익차원에서 이 블로그에서 고발하자면 바로 아래 제품이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의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다.
일주일중 가장 손님이 많기로는 당연히 주말, 어제는 오랫만에 힘든 하루를 보냈다.
주방의 에이스로 통하는 석환이가 할머니상을 당해 지금 며칠째 못나오고 있어
'음.. 오늘은 주방 한 켠에 착 붙어 소방수노릇이나 해야겠군'했는데
주말과 일요일에만 나오는 마리아가 전화가 온다.
'사장님, 갑자가 몸살이 났어요.. 저 오늘 하루 쉬면 안될까요?..'
안될리가 있나. 헌데 때가 좋질 않네.. 푹 쉬고 내일은 꼭 보자한 뒤 다시 생각을 수정.
'소방수가 아니라 선발로 뛰어야겠군'
사실 주말과 휴일은 비공식적인 나의 휴일이다. 나를 제외하고 주방에만 5명이 근무를 하기 때문에
장보는 일 말고는 이날은 내가 딱히 나설 일이 없다.
석환이와 마리아가 빠져도 나와 쏭지가 버티는 4명의 주방이라면 어떤 단체라도 치뤄낼 수 있기에
간만에 실력발휘좀 해볼까 하고 준비운동을 하는데 이게 왠일?
오스카가 30분이 지나도 나타나질 않는다.
전화를 몇 번 돌려도 받질 않는다. 아무리 나와 쏭지가 버티는 주방이라지만 3명은 역부족이다.
이렇게되면 적어도 스테이크 메뉴 하나 정도는 포기해야 주방을 돌릴 수 있다. 그렇다 해도
파스타와 오븐, 콜드와 씽크, 미장을 점프하듯 뛰어다녀야 주말점심의 오더를 겨우 막아낼 수 있고
밀려오는 주문만큼 스트레스도 쌓일 수 밖에 없기에 2시간 30분간의 주방은 그야말로
백수십의 손님과 벌이는 '주방판 명량'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피로감과 스트레스, 긴장감을 생각하자니 슬슬 초조해지고 짜증도 조금씩 섞여들어올 무렵,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스탶식사를 마친 다희가 화장실을 다녀오다 가까스로 오스카와 통화가 됐단다.
"지금 일어나서 오고 있대요"
그제서야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지던 긴장감이 탁 풀어졌다.
그리고 곧 나타난 오스카. '오기만 해봐라 아주 그냥..' 채 새나오지 않은 욕지기를 가득 머금어
이죽거리던 입이었지만 막상 오스카가 나타나자 입에선 신기하게도 반갑고 아름다운 환영의 언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라는 사람.. 그 심성이 이렇게 고운 사람이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아.. 썅..
그래피티 실력자인 오스카도 석환이 못지 않은 에이스다.
시키는 일은 군말없이 수행하는 다희와 넘버투 쏭지.
나를 포함 이렇게 주말 진용이 갖춰졌으니 스테이크 메뉴도 다시 부활하고 영업도 스타트.
그럼에도 역시 4명의 주방은 힘겨웠다. 영업을 마치고 으례 그렇듯 9번 테이블에 모여앉아
조촐한 회식을 갖는다. 오스카에게 인생선배로서 귀에 박힐만한 조언과 잔소리가 뒤섞여 전달되고..
다희가 끓인 바지락 순두부찌개를 몇 술 뜨자 급 피로가 몰려온다.
초조한 마음에 문자를 찍는다
'마리아, 몸은 괜찮아? 내일 나올 수 있어?'
그리고 곧 도착한 답신
'문제없습네다 동무!'
잠을 깬 아침은 머리가 맑다. 잠을 잘 잔 아침은 더욱 그러한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잠은 몸을 정화시키고 특히 뇌속에 쌓여있는 하루동안의 피로는 물론 마치 방안 가득 어질러진 기억들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정리하는 기능도 있다고 하니 그 말이 맞지 싶다.
하루의 시작을 앞두고, 이제 곧 나가서 이곳저곳 장도 보고 어제 끝내지 못한 이런저런 일들에도 다시
매달려야 하는데 이 머리 맑은 아침에 잠깐 상념에 빠져 게으름을 부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서 나가야 돼'라고 마음속 시계의 외침은 뭉개뭉개 피어나는
갖가지 생각과 상념들을 쓰나미 파도처럼 단박에 휩쓸어가기 일쑤고 나는 다시
일상이라는 거대한 공장으로 끌려나오고 만다.
결국.. 오늘도 어쩔수 없다.
아, 그 상념들이란..
사실 그것들을 이 블로그에 하나하나 옮겨적으면 참 좋으련만 그게 쉽지 않다.
말했다시피 일상의 시계가 재촉하기 일쑤고 일상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아침에 쌓아올렸던
생각의 탑들은 모두 와르르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생각을 갖고 살아야 함은 당연한거고 특히 그것들이 모여 신념과 철학으로 굳어져
내 삶을 지배해야 하건만 공장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라는 이 오래된 습관은 그걸 가로막기 일쑤다.
많은 사람들은 그 책임을 자신에게 묻곤 하는데 나도 일부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큰 주범은 역시 자본주의, 특히 한국의 자본주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아.. 지금은 어쩔수 없다.. 빨리 씻고 나가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