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4.13 만찬 5
  2. 2008.12.23 라바트리체 Lavatrice 4
  3. 2008.10.02 이틀 전 finishing days in Malta 2
  4. 2008.07.04 지중해에서 여름나기 1. 6




그저께 볼로냐 시장 정육점에서 사온 돼지고기. 경준과의 볼로냐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위해 준비했다. 좀 얇은 고기가 필요해서 슬라이스를 해달라고 하니 친절한 정육점 아저씨, 하나 썰어 볼테니 두껍거나 얇으면 다시 얘기하란다. 헌데 덧붙일것 없이 딱 알맞은 두께여서 'OK'. 기름종이에 비닐 깔고 그 위에 썰은 돼지고기를 하나씩 올리고 다시 비닐 깔고 하나씩 올리고. 한 조각씩 떼어져 나오니 깔끔하구나.



준비한 돼지불고기 양념장에 절이기. 불고기 양념이야 너무 뻔하니 통과. 참기름을 조금 넣어줘야 맛이 한층 도는데 그건 없어서.


역시 시장에서 구입한 가자미. 머리, 내장 따고 소금에 살짝 절여 햇빛에 말리는 중이다. 구이의 자격으로 만찬상에 오를 또 다른 역군. 이렇게 준비를 하고서 경준의 마지막 인터뷰를 위해 비스트로로 향했다. 도착하니 경준 왈 "식당에 좋은 스테이크 고기가 들어왔어요. 오늘 그거 먹어요"
 


바로 저거. 요즘 4월 메뉴로 손님들에게 쇠고기 타다끼를 내고 있다는데 그 편으로 들어온 것 중 경준이 따로 챙겨놓은거다. 애써 시장까지 봐가면 준비했지만 돼지고기에서 쇠고기로 바뀐 마당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스테이크, 이게 얼마만이냐? ㅋㅋ 세꼰도를 담당하는 엔리코에게 부탁해 한 점 얻은거니 나름 합법적 고기다. 헌데 이 외에 따로 '꼬불친'게 있으니.. 그건 바로 버섯. 실물은 공개 못하고 나중에 요리된 사진으로나.. 왜냐면 만에 하나라도 주방 사람들이 이곳에서 그 사진을 보면 곤란다하는 경준의 우려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만찬 장소는 우리 집이고 요리는 당연히 경준. 기분좋게 화이트와인 한 잔씩 마셔가며 시작한다. 고기의 붙은 불필요한 지방은 따로 떼어 놓는다. 저걸 버리느냐? 아니다.



그 전에 잠시 와인 얘기. 지난 금요일 집주일 엘레나가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집주인이 전화 걸어오면 무슨 일 있나 싶어 은근히 신경이 곤두서곤 하는데 그녀 왈 "집에 있어? 있으면 빨리 아래로 내려와"라고 한다. 무슨 일 있냐고 하니 "아니, 와인 한 병 줄테니까 그거 받으라고" 한다. 엥? 해서 이왕 그렇다면 우리도 빈손으로 내려갈 순 없어서 마침 누굴줄까 고민하던 예쁜 나무젓가락과 전통문양 책갈피를 들고 내려갔다. 방금 장을 보고 오는길인지 차 안에는 장 봉다리가 한 가득이다. 그리고 저 와인을 건네받았고 우리는 젓가락을 건넸다. 싱글벙글 미소와 함께. 잠깐이라도 와인 판매대 앞에서 우리를 떠올리며 와인을 골랐을 그녀의 마음씀씀이가 여간 고마운게 아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한 마디 던지며 부르릉 떠나는 그녀, "부오나 빠스꾸아~" (Buona Pasqua-즐거운 부활절 보내~). 허허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좀 더 길었다면 그녀와도 즐겁게 밥 한 번 먹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당신도 진짜로 즐거운 부활절을 보냈길. 차 안에 맛있는 음식이 한 가득이었으니 분명 그랬을테다. 



엘레나의 와인을 기분좋게 마시며 기분좋게 요리를 지켜본다. 경준 "그냥 식용유 없어요?" 한다. 없다고 하니 그냥 아까 썰어낸 기름덩이들을 올리브유 두른 팬에 저렇게 넣고 볶는다.  



"올리브유는 향이 있어서 고기 맛을 우리는데는 별로에요"  음.. 글쿤. 저것의 용도는 스테이크 위에 끼얹어 먹을 소스를 만드는데 있다. 살점이 좀 더 도톰하게 붙어있으며 그 맛이 좀 더 잘 우러나 좋단다. 수퍼에는 소스를 우리는 목적으로 담아낸 뼈와 질긴 기름이 붙은 잡부위의 고기를 아주 싼 값에 팔기도 한다. 암튼 일단 쎈 불에 저 고기를 던져놓으니 치지직 거리며 요란하게 튄다. "처음엔 손대지 말고 그대로 타게 두셔야 해요".  아 그렇게 익혀내면 곧 기름이 새나와 고기들이 잘 떨어지는데 그렇게 나온 기름은 못쓴다고 버린다. "돼지고기 기름과 달리 쇠고기 기름은 별로 쓸데가 없어요. 일단 기름은 한 번 빼내고 여기에 버터를 넣어 맛을 우려낼 거에요" 음.. 글쿤.


치지직 거리며 소스가 익어가는 동안 거리는 하늘은 어두워져가고 거리는 밝아져가고 배는 고파오고..



한 번 빼낸 기름은 버리고 여기에 버터 넣고 살짝 녹인 뒤 밀가루를 조금 넣고 마저 볶는다. 그리고 마늘과 바질, 소금을 넣어주고 마지막에 물을 조금 부어 약불에서 뭉근히 끓이면 소스는 완성.


곁들임으로 먹을 파쨈. 파를 길게 채썰어 준비하고 기름두른 팬에 설탕, 와인식초를 넣은 뒤 끓이다가 파를 넣고 섞어주며 마저 중불에서 끓인다. 그럼 설탕으로 인해 소스가 캬라멜화 되고 새콤달콤한 파쨈이 완성. 기름은 쪽 따라버리면 그만.


소스가 끓고 파쨈이 익어가고 드디어 고기도 팬에 올려졌다. 전문 요리사와 아마추어가 다른 점은 도구와 불을 쓰는데 있어 공백이나 허점이 없다는 점과 멀티운용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각자 출발은 달랐지만 마지막 완성은 동시에 이뤄진다는 점이다. 오랜, 혹은 잦은 경험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일이다. 저 오른쪽에 냄비는 그냥 방치돼 있는 김군의 찬밥 모습.



오늘의 요리사. 최경준.


뜨겁게 달궈진 팬에 기름 두르고 다시 버터를 넣은 뒤 곧 고기덩이를 넣는다. "원래 고기를 익힐 때는 버터를 쓰는데 센불에서 하니까 금방 타요. 그래서 기름을 둘러서 버터 타는걸 막는거죠"  덧붙이기를 경준네 비스트로도 그렇지만 스테이크의 경우 주문과 동시에 고기를 익히기 시작하는 레스토랑은 많지 않단다. 먼저 고기의 표면만을 쎈불에 익혀 놓은 뒤 주문이 들어오면 미듐이냐 레어냐 웰던이냐에 따라 오븐에서 주문에 맞게끔 데피거나 익혀내는 식이라고. 경우에 따라선 표면을 빠르게 익혀낸 뒤 속이 익는 걸 막기위해 얼음물에 재빨리 담가 열을 식혀 보관하기도 한단다. 맛에 차이가 있을까?  글쎄..  



익혀낸 고기는 버터 바른 용기에 올려 오븐에 넣는다. 제과제빵과 더불어 이탈리아 북부식의 고기 요리에서도 버터의 용도는 끝이 없는 듯. 폴렌타, 파스타, 리조또.. 이번 비니탈리에서 일본에서 일한다는 이탈리아인 요리사를 만났는데 이 친구 왈, 일본에는 양식의 경우 이탈리아 식당보다는 프랑스 식당이 압도적이어서 버터 품귀현상으로 버터 가격이 엄청 비싸다고 한다. 자신은 이해를 못하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는. 넌 버터 안쓰냐고 물으니 "난 뻬루자(중부) 출신이고 우리는 올리브유만 쓴다. 빵을 만들때도 올리브유로만 만든다"고 내심 자부심이 넘치더라는..



Burro. 이탈리아 말로 버터. 살찌우는데 저거만한 특효가 없지 싶다. 경준을 비롯한 마르코 비스트로의 요리사들은 특이하게도 버터를 숟가락을 사용해 떼어내지 않고 그냥 손가락으로 떼어내 사용한다는 점. 왜그러냐고 물으니 "그냥 그게 편해서요"



경준이 꼬불쳐 온 버섯과 샬롯이라는 작고 맛이 진한 양파를 따로 볶아낸 뒤 스테이크 팬에 함께 넣어 마저 익혀냈다. 스테이크는 좀 더 익히겠다며 다시 오븐 속으로. 


오븐에서 3~5분 정도. 스테이크가 익어가는 동안 요리가 끝난 결들임들을 접시에 담고 있다.


요로코롬.. 마늘, 샬롯, 바질, 그리고 버섯. (이름을 까먹었는데 나중에 확인..) 맛이 상당히 진하다는 것이 경준의 버섯에 대한 예찬인데 여느 버섯과 달리 그 풍부함이 분명 남다른 구석이 있다. 미식의 향유를 이렇게 조금씩 경험해 가는구나 싶은.. 허나 경준의 식성이 조금 짠편이라 그 풍부한 맛을 충분히 즐기지는 못했다는 점을 새삼 고백을 한다. 결국 경준의 짠 식성에 대한 얘기가 식사중에 또 다시 화제로 올라왔다. 경준은 예전에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파스타 삶을 때 물에 소금을 조금 넣으라는데 그런 정도는 좀 부족하구요 라면국물 정도의 간 정도로 소금을 넣으면 딱 좋아요" 그러자 강양 왈 "그럼 짠건데?" 그러자 경준 "라면이 짜요? 안짠데?.."



자~ 스테이크도 완성. 속은 멀쩡한 대신 겉이 익으며 쪼그라들어서 동그란 모양으로 변신했다.



썰어보니 흐믓한 웃음, 허허.. 레어라고 해야할지 타다끼라고 해야할지.. 암튼 빛깔 참 곱다.



그렇게 한 점 두툼하게 썰어서 그 위에 소스 쭉~!



시각적 화려함은 없지만 내용 자체는 최상급. 이곳에서 한 접시 먹으려면 최소 30유로는 내야 할 요리.



한 점씩 썰어 낼 때 마다 그 단면에 고기 좋아하는 아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아로새겨진다. 소금에 찍어먹는 쇠고기도 맛있지만 고기소스에 찍어먹는 이것도 정말 맛있네. ^^  한국사람들이 유난히 기름이 촘촘히 박힌 등심고기를 좋아하는 반면 유럽의 경우 기름기 적은 고기 자체의 맛을 더 선호하지 싶다. 수퍼에서 판매하는 고기의 경우도 그렇고 경준이 챙긴 고기도 그렇고 우리가 얘기하는 이른바 '꽃등심' 부위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 맛을 알면 이들도 홀딱 반하긴 할텐데.. 그게 소의 종자에 따라 다른건지 어떤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호주에선 한국 수출용 소에 기름이 촘촘히 박히도록 하기 위한 별도의 사료와 사육법을 쓴다고 들은 바 있다. 고기에 곁들이는 소스의 발달은 어쩌면 그런 환경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암튼 참 맛나네요~^^



뭐 거의 육회네.



비니탈리에서 마신다 마신다 하다 끝내 못마신 토스카나의 몬탈치노. 떠나기 전에 기어이 마시리라 하며 와인샾에서 한 병 구입, 마침 때를 만났다. 헌데 제법 비싸게 주고 샀는데 맛이.. 강양은 '몬ㅌ'자가 들어간 와인들, 몬탈치노, 몬테팔고, 몬테풀치아노.. 모두 산자락이라는 뜻을 가진 셈인데 이들 포도주는 영 안맞는다는 결론을. 산죠베제 종이 주요 재료인걸로 아는데 특유의 시큼함이 특징이라 좀 더 부드러운 맛을 좋아하는 이들은 반기지 않을 맛이 아닐까. 하지만 이것도 맛들이면, 특히 매우 기름진 요리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후식, 까스띨리오네의 젤라또. 볼로냐에서 최고, 어쩌면 우리로선 세계에서 최고로 맛있는 젤라또 집이라 단언할 수 밖에 없는 젤라또. 경준이 이 집과 관련한 비화 하나를 얘기해 준다. 경준네 비스트로와 까스띨리오네 집은 50미터 정도? 무척 가깝고 비스트로에서 사용하는 후식에도 이 집 젤라또를 쓴다.
"어느 한국인이 저 가게를 찾아갔어요. 그리고 돈도 안받고 숙박도 내가 알아서 할테니 단지 일만 하게 해달라고요. 근데 거절당했죠. 저 집에서 젤라또를 만드는 사람을 40대 아저씨, 그 사람 혼자에요. 그리고 절대 안가르쳐 준대요"

우리도 푸대에서 설탕 따위를 바가지로 퍼 올리는 묵묵한 그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 본 적이 있다. 그 한국인, 얼마나 낙심이 컸을까..



왼쪽부터 무, 빠나, 피스타치오. 이집의 15가지 메뉴 중 경준이 베스트 넘버 3로 꼽은 것들만 골라왔다. 왼쪽은 메가톤바 맛, 중간은 진한 생크림 맛, 오른쪽은 피스타치오를 듬뿍 갈아넣어 그 맛이 마치 찹쌀떡 콩가루 맛. 이구동성으로 극찬하는 맛은 피스타치오.



쫄깃쫄깃 부드러운 젤라또.



어느덧 깊어진 밤. 써머타임으로 8시는 넘어야 컴컴해진다. 볼로냐를 떠나며, 그리고 이번 여행을 마치며 극진하게 차려먹은 마지막 만찬이었다. 저 요리법, 고스란히 부산으로 옮겨가야지 ㅎㅎ  다음날 아침 일찍 말레이지아에서 피사로 날아오는 친구를 마중나가기 위해 마저 와인을 다 비운 뒤 경준은 집으로 향했다. 이달 말 경 서울에서 다시 만나 삼겹살을 굽자는 인사를 나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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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집을 계약하면서 주인에게 요구한 조건은 텔레비전과 세탁기를 놔달라는 것이었다. 금요일 입주할 때 텔레비전은 이미 설치가 돼 있었고 세탁기는 며칠 안으로 놔주겠다고 약속했다. 14인치 텔레비전이지만 집이 작으니 화면이 작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신호가 않좋아 화면이 엄청 자글거리는데 특히 요리프로그램 볼 때 마다 병이 날 지경이다. 무슨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안테나에 철사를 묶어서 발코니의 난간 앵글에 접지시켜볼까?..

그리고 지난 토요일 저녁, 한창 밥을 짓고 있는데 벨이 울려 깜짝놀랐다. 일산에 살 때도 난데없이 초인종이 울리면 깜짝 놀라곤 했는데 낯선 타국에 와선 그 증상이 더 심해졌다. 여튼 화장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집주인이다. 집에 올라와서 뭐라고 얘기하는데 '라바트리체'라는 말만 알아듣겠다. 바로 세탁기다. 무겁게 드는 시늉을 하는걸 보니 이 시간에 가지고 온 모양이다. 따라 내려갔고 차에 실려 있는 세탁기를 내렸다.
"어라? 쌔거네?"

포장도 안뜯은 드럼 세탁기다. 감탄이 밀려온다. 오호.. 근데 집주인 참 엉뚱하다. 계약에 앞서 별것도 아닌 침대 시트와 담요 좀 놔달라고 했더니 그건 끝까지 못(사)준다고 버티더니만 세탁기는 중고품도 많을 텐데 완전 새제품을 사주다니.. 아무튼 베로나에 머물 때 동전세탁기를 이용하는 비용이 만만찮았는데 딴딴한 저 모습을 보니 든든하다. 그리고 오늘 월요일, 아침 일찍 집앞 가게에서 세제를 사다가 밀린 빨래를 돌렸다. 빨래만 세탁되는게 아니라 밀린 빨래로 답답했던 마음까지 깨끗하게 씻겨나가는 기분에 콧노래가 절로..


빨래하는 것 까진 좋았는데 한 가지 낭패가 있다. 발코니의 빨래줄에 빨래를 널었더니 아랫쪽 집의 벽난로 굴뚝에서 장작 타는 연기가 퍼져 냄새가 베어버리는 것이다. 이럴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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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 Malta 250308~2008. 10. 2. 21:53


몰타를 떠나는 날, 평소와 마찬가지로 해는 떠올랐고 그 빛깔 또한 그대로다.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해 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가진 못하고 컴컴한 거실에서 붉은 여명을 하염없이 지켜볼 뿐. 지난 시간, 다가올 내일, 그리고 오늘이 뒤죽박죽되어 떠오른다. 새벽공기를 가르는 차들의 소음만 간간히 들릴 뿐 이 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하다. 그러다보니 가청범위를 넘어서는 주파수의 소리, 가령 '찌잉~'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묘한 경험을 오랫만에 맛보기도..


짐은 거의 일주일 전부터 대충 싸놓기 시작했고 우리에게 남겨진 가장 큰 숙제는 짐정리가 아니라 '집정리'. 떠나기 전날, 본격적인 청소를 시작했다. 걸레질을 하고 침대시트를 깨끗히 개고 침대도 정리했다. 가장 사용이 많았던 주방도 처음 왔을 때의 모습으로 되돌려놓았다.

"이 정도면 흠잡을데 없지 않은가?"

집주인 CASSAR씨와 부동산 JOE는 약속시간보다 20분 늦게 집에 도착했다. 반갑게(?) 악수를 나눈 뒤 집주인은 천천히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근데 그 폼새가 예사롭지 않다. 주방의 찬장을 단지 열어보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릇들을 꺼내 세어보고 구석구석을 살피는 것이 아닌가!

"그래.. 니들이 이런 식이란 말이지..  좋아, 그럼 우리도 가만 있을 순 없지.."

하지만 우리는 완벽하게 가만히 있었다 -.-     우리는 주로 거실쪽에 가급적 태연한 자세로 서있었고 그들은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기'시작했다. 집안은 이내 깊은 침묵과 정적으로 뒤덮였다. 거의 내무반의 위생점검과 교실의 소지품 검사를 합쳐놓은 상황. 구름으로 어두워진 날씨는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불쾌했지만 우리도 일정부분 기만을 시도한 부분이 없잖았기에 따질 여건은 아니었다. 저 정도의 세심한 관찰이라면 우리의 가장 큰 아킬레스, 다리 하나가 부러진 의자와 벽면의 엄지손가락 넓이의 페이트 떨어져나간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마침내.. 주방 구석에 얌전히 세워 둔 의자를 건드는 순간 다리 하나가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지며 집안의 정적을 깼다. 올 것이 온 것이다. 부동산 JOE가 먼저 우리에게 이유를 물었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친구 하나가 앉다가 의자가 부러졌고 그 친구도 결국 다쳤다"

첫 문장은 사실이고 뒷 문장은 물론 거짓말이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었으니 우리는 최대한 뒷 문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먹힐리가 없다. 집주인의 '추적'은 계속됐다. 작은 접시가 모자르다는 지적에 우리는 서둘러 다른 선반에 옮겨놓은 접시를 꺼내놓았고 작은 플라스틱 통(우리에겐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이 뚜껑만 있고 몸체는 없다는 '치사한' 꼬투리에 숟가락 몇 개 담아놓는데 사용했던 그 통을 꺼내 보여줬다.

대략 40분간 진행된 '추적'에서 다행히 벗겨진 페인트는 발견하지 못했지만(사실 너무 작아서 안띄었던 것) 손잡이 부러진 냄비가 추가로 발견된 것은 우리도 예상못한 불운이었다. 집주인은 의자를 비롯한 파손된 집기와 청소비용으로 총 140유로를 청구했다. 이는 집주인이 우리에게 돌려줘야 할 금액 490유로에서 이를 제한 350유로만 되돌려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동시에 만약 200유로를 지불하면 보수와 청소에 소요되는 실비를 제외하고 남은 비용을 계좌로 넣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럴 경우 140유로보다는 적게 나올 것이 분명했고 CASSAR씨도 푼돈을 갖고 장난할 사람은 아니라 보였지만 우리는 그냥 140유로를 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아깝지만 그간 시달려온 흉흉한 소문(보증금을 한 푼도 못받는)에 비하면 대체적으로 선방했다고 자평하며..

돈을 돌려받고 악수를 하며 "We were happy to live in this flat"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 뒤 미리 불러놓은 택시에 몸을 실었다. 
"쿵" 
택시 문을 닫자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차단된 느낌이 순간 들었다. 그제서야 몰타생활이 끝났다는 느낌이 밀려들었다.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없었지만 우리는 잠시 정체를 알 수 없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을 얻고 떠나는지, 무엇을 버리고 떠나는지.. 오랜 시간을 두고 생각해봐야 할 몰타에서의 6개월. 

컴컴해진 하늘은 가는 빗줄기를 뿌리기 시작했고 비행기는 그 빗줄기를 뚫고 하늘로 날아 올랐다. 저 아래 섬나라, 과연 남은 생에서 저 땅을 다시 밟을 기회가 있을까? 밀려드는 아쉬움은 쉽게 접혀지지 않았지만 저 작은 섬은 곧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Posted by dalgonaa

6월 초 까지는 문을 꼭꼭 닫고 자도 크게 덥다는 것을 못느끼다가 중순으로 접어들자 서서히 더워지기 시작해서 하순으로 넘어오니 이제 문을 열지 않고는 못자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운 것을 못느끼던 애초에는 안방쪽 아래에 차량 통행이 많은 도로가 있어 밤에도 시끄럽거니와 먼지가 많은 이곳인 탓에 문을 꼭꼭 닫아놓고 살았는데 더위는 그런 불편함도 한가한 푸념으로 만들어 버린다.

지난 번 서울의 가족들이 보내준 물품 가운데에는 방충망도 포함돼 있었다. 이 집에는 애초부터 방충망이 설치돼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창문을 비롯해 외부로 통하는 모든 문이 여닫이 방식이어서 방충망을 설치할 수 있는 구조가 진작부터 아니다.

사실 집주인에게 방충망 공사를 부탁할까도 생각해봤으나 이곳의 주거문화가 어떤지 모르겠고 자칫 대공사가 되버리면 그 문제로 집주인과 불편한 관계가 형성될 것 같은 괜한 걱정도 되고 해서 이왕 가족들을 통해 몇 가지 물품을 받는 김에 방충망도 포함시켰던 것.

집주인인 Cassar씨는 40대 중반의 몰티즈인데 참으로 무뚝뚝한 사람이다. 전화통화 때 그걸 절실히 느낀다. 먼저 상냥하게 웃으며 인사라도 건넬라치면 "문제가 뭐요?"라고 먼저 치고나온다. 그나마 그 뉘앙스가 '성가시다'라는 느낌보다는 '용건만 말해라'라는 쪽에 가까워 다행이다. 그는 전기쿠커의 고장과 수돗물 단수와 같은 사고때 마다 곧바로 사람을 보내 신속히 해결해 주곤 했다.

아무튼 본격적인 고비가 시작될 무렵에 다행히 소포가 도착해 바로 그날 방충망을 설치했다. 이제 모기의 극성으로부터 다소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이 집이 한 가지 좋은 점은 안방과 작은 방이 서로 반대편 길을 향해 있어 문을 열어놓으면 어디서 부는 바람이든 집안 전체를 통과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바람이 부는 날은 제법 시원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잠자기 직전, 찬물로 하는 샤워도 큰 도움이 된다. 낮아진 체온은 불면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러나 바람 한 점 없는 밤은 그것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  

어제가 그랬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그렇다고 아주 차지도 않다) 침대에 누우니 15분쯤 지나자 살짝 이마에 옅은 땀이 맺힌다. 결국 더위에 밤새 뒤척이던 강양은 달랑 비치 타올 한 장 깔고 그냥 맨바닥에서 자기에 이르렀다. 아침에 강양 왈 "그래도 바닥이 좀 낫다"



>> 도끼다시 바닥에 처연히 깔려있는 타올 한 장. 지난 밤 더위를 피하는 몸부림의 흔적이다. 약간 파랗게 보이는 창문 한 면이 방충망으로 채워져 있다. 저런 이상 앞으로 방충망을 철거하기 전 까지는 문을 닫지 못하는데 혹시 바람에 문이 닫힐가 싶어 손잡이 부분을 끈으로 묶어 발코니 난간에 묶어놨다.

방바닥 문화인 우리나라는 선풍기가 낮지만 침대와 테이블 문화인 이곳은 스탠드 형태다. 현재 이 집에는 선풍기가 하나밖에 없다. 안방과 작은 방에서 하나씩 사용하려면 하나가 더 필요한데 아무래도 이건 무뚝뚝한 Cassar씨에게 요청을 해야할 듯 싶다.

"이번엔 뭐가 문제요? 선풍기 사달라고?"

이제 막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 지금, 그는 과연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그러면서 살짝 두려워진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