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말로는 '안티파스토(Antipasto)', 영어로는 '스타터(Starter)', 한국에서 부르는 말로는 '전채(前菜)'라고 하면 맞을까? 메인 식사를 앞두고 허기를 잡고 입맛을 돋궈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놈들다. 우리 식문화에선 없는 절차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양식에선 일반적. 사실 식당에서 메뉴판을 펼치면 웬만한 식사값, 때론 그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첫장에 등장해 괜한 압박을 주곤 하는데 건너뛰어도 웨이터가 뭐라 그러진 않으니 애써 무시하면 되겠지만 여럿이 식당에 간 경우나 그 집만의, 혹은 그 지역만의 독특한 안티파스토가 있다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맛을 봐주는게 좋다. 

사진은 베로나의 어느 골목, 일 베르똘도(Il Bertoldo)라는 이름의 로마풍 요리를 낸다는 식당에서 맛본 안티파스토. 이탈리아에서 안티파스토는 대개 사진에서 보는 프로슈또와 다양한 치즈가 주를 이룬다. 왼쪽은 살라미, 오른쪽은 프로슈또, 중앙은 오렌지에 이탈리아 파슬리로 모양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만났을 때 우리는 흔히 '녹는다'고 표현하는데 그렇다고 아래 사진의 음식이 그랬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적어도 살라미에 한해서는 그 맛에 조금씩 중독돼가고 있음을 고백한다. 살라미, 얇게 저며 입안에서 체온으로 서서히 녹여 먹어도 좋고 이때 잘 익은 레드와인 한 모금 머금어주면 더 좋다. 

한국 식당의 메뉴판에는 안티파스토가 없지만 그렇다고 안티파스토를 안주면 한국인들 무지하게 승질난다. 주문하고 난 뒤 곧바로 밑반찬 안깔아주면 그 식당 오래가긴 힘들단 말이다. 짜장면, 라면을 시켜도 단무지나 김치는 먼저 내주는 것이 주인과 손님간의 불문율. 맹물 한 잔 시켜도 돈을 내야하는 유럽의 식당은 그래서 한국인들의 원망을 한몸에 받는다. 뭐 그렇다고 그네들이 눈하나 깜짝하지 않지만.. 낯선 땅에 나와 뼛속깊이 절감하는거지만 우리나라 식당만큼 후한 인심의 식당이 전세계 어디에 있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화이트가 안맞았던 사진, 억지 조작했더니 살라미 가장자리가 누렇게 떴다. ㅋ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1. 11. 03:54



PARMA로 가는 길. 먼지로 더러워진 창문 밖으로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파르마 역에 도착.

파르마 여행의 컨셉은 결론적으로 '맛의 경험'이 되었다. 이는 순전히 우리를 위해 며칠 간 고민한 노양의 노력이자 배려였는데 그녀는 일찌감치 시내 식당을 물색해놨고 집에서 선보일 저녁 메뉴는 물론 아침까지도 계획해놓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살짝 넘긴 시각, 역에 도착해 노양을 만났다. 토리노에서 한 번 만났을 뿐, 속 깊은 얘기 한 번 나누지 않은 사이지만 오랜 친구 만나는 양 반가웠고 그녀도 그래 보였다.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 받으며 시내의 한 작은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진의 분량이 상당하니 이 점 참고하시길..)


파르마는 세 가지로 유명하단다. 하나는 전에도 얘기했던 대로 파마산 치즈이고 또 하나는 TV 광고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세가 높은 파르마 프로슈토,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나머지 하나는 오페라의 아버지, 베르디의 고향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베르디도 좋건 싫건 즐겼을 치즈와 프로슈토를 맛볼 기회를 맞은 셈. 노양이 안내한 곳은 파르마 사람들에겐 맛집으로 소문난 '쏘렐레 픽끼'(SORELLE PICCHI-픽끼 집안 자매들)이다. 외관은 프로슈토와 치즈를 파는 일반적인 가게지만 좀 더 안쪽으로 들어서면 작은 식당을 겸하고 있다. 파르마에선 꽤나 오래된 집이라 하고 우리 외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이 집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한껏 끌어 올렸다.

 
기다리며 이야기를 주고받거니 하는 동안 쇼윈도의 전시물을 구경해보자. 

도톰하게 썬 양파 위에 당신이 짐작하는 그것을 얹어 오븐에 구웠다. 우리가 짐작하는 것은 폴렌타(옥수수 죽?) 반죽이나 치즈를 섞은 감자 으깬 것.


우리로 치면 고로케쯤 될 것 같은 저것. 내용물도 그게 떠오르지만 분명 아닐꺼라는.. 한 입 집어먹기 좋겠지만 가격은 분명 1유로(1,700원)를 훌쩍 넘을테다.

색감의 조화속에 '먹으면 건강해져요'라고 외치는 듯한 채소들. 가지, 파프리카, 호박 구이가 있고

그 주위에 파스타, 즉 라비올리도 계시다. 라비올리 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다면 곧 등장할 사진에서 확인이야 하겠지만 맛까지는 못보여주니 쩝.. 허나 내년에 돌아가면 그 맛을 보여줄테니 너무 섭섭치 마시길.. 낄낄 

가게 안의 풍경. 선반 너머로 와인과 과일잼이 질서정연하고 

소금에 절이는 것 외에 별다른 첨가물 없이 세월만으로 숙성된 귀한 햄들이 손님을 즐겁게 기다리고 있다.
 

벽에 걸린 프로슈토와 바닥에 차곡차곡 쌓인 둥그런 파마산 치즈. 그야말로 돈 덩어리라 할 수 있는데 오랜 세월, 전통을 고수하는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입으로 즐기는 명작(名作)이니 섣불리 덤빌 가격이 아니다.  그 사이로 허기진 손님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저들보다 앞서 와 이미 예약을 해놓았으므로 밖에서 호출을 기다리며 사진이나 찍고 놀고 있는 중이다.

앞서 예약을 하면서 노양의 이태리어 솜씨를 접하곤 슬쩍 놀라면서 기가 죽었는데 영어로 진행되는 학교 수업 와중에도 파르마시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강좌(우리도 애초 시도했다가 경찰서 퍼미션을 받아오라는 말에 발길을 돌려야 했던 프로그램) 틈틈이 나가 익힌 솜씨라고. 애써 겸손을 펴는 노양이지만 노력의 흔적을 엿보기에 충분했고 은근히 자극제가 됐다.



20여 분을 기다려 테이블 하나를 꿰차고 앉았다. 넓지 않은 공간, 요란하지 않은 실내 장식에서 편안함과 실속이 엿보였다. 10개가 조금 넘는 테이블. 만석이 돼봐야 30명이 채 안될듯한 작은 공간이다. 사실 이태리의 많은 식당들이 이런 정도의 규모로 운영되는 곳이 많은데 아마 오래된(古) 건물에 따른 증축이나 확장공사의 어려움과 값비싼 임대료도 한몫 하는 탓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만약 운영주가 운좋게 식당을 확장해 우리나라의 회센터 마냥으로 4층짜리 건물을 통으로 터 장사를 한다면 이태리 사람들이 이를 선호할까?  한상 푸지게 먹는 것도 좋지만 RESTAURANT이 아닌 CENTER에서 밥을 먹는 우리의 정서와 비교해 본다면 이런 작고 알찬 공간이 훨씬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하나만 더 짚자면 방송출연 경력이나 유명 연예인들의 사인으로 차고 넘치는 우리 식당의 실내도 이젠 좀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 얄팍함을 믿고 찾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꺼라고 무당집 장군상 마냥으로 빼곡히 붙여놓는지 볼 때마다 안쓰럽다. 식당 개업식 사진도 좋고 그림 좋은 달력이나 식당 직원들 가을맞이 단합대회 사진이라도 걸어 놓는게 더 정감있고 애착이 가겠건만.. 요즘들어 점차 보여지기 위한 개성이 아니라 요란하지 않게 있는 대로의 모습을 잘 살려낸 식당들도 늘어가는 듯 한데 이런 현명한 장사꾼들이 앞으로 더 많아지겠지.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서, 이태리의 경우 메뉴판 구성은 다음과 같은데 혹시 이태리 여행할 일 있을 때 익혀두면 식당에서 주문할 때 도움될테다. 대개 첫 페이지에는 안띠빠스띠(ANTIPASTI-전채들)라고 해서 식사에 앞서 간단히 즐기는 햄이나 치즈, 샐러드 등을 구성해 놓는데 치즈나 프로슈토, 또는 이를 적당히 섞어서 내놓기도 한다. 



다음으로 쁘리미삐아띠(PRIMI PIATTI-첫 번째 접시들)로 넘어가고 여기서 바로 파스타들이 등장한다. 스파게띠, 라비올리, 라자냐, 뻰네, 또르뗄리니 등, 우리에게 친숙한 그분들이 바로 여기서 각자의 기량을 뽐내시게 되고 퇴장해 주시면 바로 세꼰도삐아띠(SECONDI PIATTI-두 번째 접시들), 육류나 조류, 해물류 등의 기름진 식사가 올라와 주신다.

접시를 모두 비웠으면 후식을 먹을 차례, 디저트(DESSERT)로도 부르지만 때론 돌치(DOLCI- 앞서도 그렇고 단어 끝에 I가 붙는 이유는 복수형이기 때문. sweet의 이태리 말로 '단맛들'이란 뜻)라는 말로 대신하기도 한다. 띠라미수가 우리에게 친숙한 돌체(DOLCE-단수형)이고 이 외에도 다양한 케잌과 무스, 젤라또 등이 포진해 있다. 음료나 와인 등은 맨 뒷면에 있으며 식사 때 반주로 즐길 잔 와인의 경우 2.5유로에서 3유로, 한 병을 시키면 최소 12유로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봐야 할테고 적지 않은 식당은 별도의 와인 리스트를 갖추고 메뉴판과 동시에 제공하기도 한다.

그럼 이것들을 다 주문해야 하느냐?  아니다. 이날 우리가 주문한 메뉴를 보자. 먼저 물 한 병과(유럽 어느 식당이든 물 공짜로 안준다) 딱 3잔이 나온다는 화이트 와인 작은 병을 하나, 파르마 왔으니 프로슈토를 안먹을 수 없어서 살라미를 곁들여 주는 안티파스토 한 접시(첫 사진의 첫 번째 메뉴. 셋이 각자 접시에 덜어먹으면 됨), 그리고 쁘리미삐아띠로 파스타 두 접시(세 접시가 아님)를 시켜서 역시 각자 접시에 덜어 먹었다. 제법 저렴하게 먹은거지만 그래도 계산서에는 42유로가 찍혔다. 우리돈 6만원을 훌쩍 넘은 금액이다. 이거 원망할꺼면 유럽에서 밥사먹어선 안된다. 기분좋게, 맛있게 먹자.

그럼 테이블 위로 등장하신 선수들을 차례대로 확인해보자.

어느 식당을 가나 바구니에 빵은 공짜. 모양 그대로 '꽃빵'이다. 지역마다, 또는 식당마다 내놓은 빵의 모양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손쉽게 모양을 꾸며 개성을 과시할 수 있으니 왜 아니겠나?

식당을 나서는 순간까지 우리를 일본인으로 생각한 웨이터 총각이 물을 따르고 있다. 노양은 그런 그를 향해 '사요나라~' 라고 인사를 건네더라는..^^ 그녀의 재치에 한 표. 사실 우리도 그렇지만 심각한 오해를 사는 일이 아니면 애써 국적문제로 왈가왈부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말바시아'라는 품종의 스파클링 화이트 와인으로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식전에 즐기기에 그만이다. 역시 화이트는, 더욱이 스파클링 와인은 차게 마셔야 제격이다. 와인병답지 않게 생긴 미끈한 외관도 세련돼 보이고 가운데 베르디 선생님이 등장, 품격을 높여주신다. TERRE VERDIANE MALVASIA, '베르디의 땅에서 난 말바시아'라는 억지 해석을 내려본다.

안티파스토, MIXED ITALIAN COLD CUTS이 나왔지만 촬영이 한 템포 늦는 바람에 절반 이상이 비워졌다. 수퍼에서 싸게 파는(그것도 상대적일 뿐 결코 싸진 않다) 프로슈토의 경우 간혹 잡냄새를 내거나 비리고 질긴 경우가 적잖은데 그것들과는 쉽게 비교되는 맛이다. 잡내 없고 훨씬 덜 비리고 부드럽다. 염장한 탓에 이미 간은 베어 있으나 짜지 않아 좋고 입안에 한입 머금으면 돼지고기의 기름진 풍미와 산뜻한 허브향이 입안에 맴돌아 맛으로 양껏 즐기겠다면 지갑 꽤나 가벼워질테다. 얇게 저민 프로슈토와 살라메, 그리고 이름 까먹은 다른 종류이 햄이 살포시 접시를 덥고 있는 정도의 양으로 근수로 치면 100그램 좀 넘을까 싶은 정도.



참으로 야박하다 싶겠지만 잊지 말자. 안티파스토는 양으로 승부하는 접시가 아니라 식욕을 돋구기 위한 조연일 뿐이라는 점. 게다가 저 요리는 그 자체를 즐기기 보다는 대개 빵과 함께 즐기므로 그게 은근히 포만감을 준다. 한 가지 불편은 프로슈토가 얇으니 칼로 썰면 썰리는게 아니라 찢어진다는 점. 뜻대로 조종이 안되니 먹는 동안 어쩐지 내 꼴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는데 적절한 연장이 있어주면 좋을 듯. 주방 차원에서 먹기좋게 손질을 할 법도 하건만 종이처럼 얇게만 저밀 뿐 다른 추가 손질을 안한다는 점은 어쩌면 고급 재료를 있는 그대로의 맛으로, 혹은 속임없이 대접한다는 의도가 깔려있는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부지런히 먹고 와인 한 잔 머금어 주고..



안티파스토를 끝내자 새로운 접시로 교체된다. 없던 숟가락이 새로이 등장하셨는데..

바로 요놈 때문. 이제 쁘리마삐아띠(첫 번째 접시) 순서로 주인공의 이름은 SMALL RAVIOLI TYPE IN BROTH로 '육수속의 작은 라비올리' 정도 되겠다. 맛? 갈비탕집의 탕국물을 그대로 퍼 담은 국물에 치즈와 고기를 소로 품은 라비올리를 넣었으니 그 맛이 짐작이 되려나? 라비올리는 피가 단단히 물려져 있으니 소가 국물과 섞이는 일은 없다. 국물만 떠먹으면 의심할 여지없이 짭짤하고 진한 갈비탕이나 라비올리와 함께 떠먹으면 전혀 새로운 맛이 된다. 낯선 조화가 나쁘진 않았지만 사실 입안은 친숙한 갈비탕 국물맛으로 인해 라비올리의 맛이 자꾸 낯선 이방인으로 취급되는 형국이 돼버렸다. 그 모호함은 꽤 오래갔다.

이런 식의 맑은 수프로 즐기는 라비올리는 이곳 파르마가 속한 주(州) 에밀라 로마냐(EMILA-ROMAGNA) 지방에서 즐기는 별식이라고..


제법 친숙한 모양의 라비올리. 넓은 파스타에 돼지고기나 모짜렐라, 혹은 파마산 치즈를 섞거나 개별 소로 넣어 다시 파스타를 덮은 뒤 톱칼로 잘라내는 것으로 완성되는, 간단하고(?) 그래서 대중적인 모양의 라비올리 되겠다. 물론 요즘엔 우리가 가정에서 냉동만두를 사먹듯 이탈리아에서도 완제품으로 나온 라비올리를 사먹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지만 그 가격은 우리가 손쉽게 사먹는 만두 가격의 개념보다 훨씬 비싸다.


속을 살피니 연한 분홍빛의 소가 숨어있고 그 맛은 단호박. 그냥 단호박만이 아니라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배가시켜 줄 재료를 섞어 넣어 호박의 맛이 한결 진하다. 따라서 메뉴 이름 역시 SQUASH FILLED RAVIOLI (WITH ZUCCA), '으깬 호박 소를 넣은 라비올리' 되겠다. 이 맛이 친숙했던 이유는 베로나에 도착한 첫 날, 엔리코와 엘리자베타가 이끄는 식당에서 먹는 라비올리 역시 바로 이 맛이었기 때문. 

최근 텔레비전에선 PARMA 프로슈토 광고가 한창이니 그래서 더 친숙한 PARMA. 가게 진열대마다 자신들의 자부심을 자랑스럽게 걸어놓고 있다.

다시 거리로 나섰다. 퇴적된 시간이 촘촘한 돌사이에 이끼처럼 끼어있는 거리를 어슬렁 어슬렁 걸어 노양의 집으로 향했다. 5시만 되면 주위는 금새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것이 요즘의 이곳이다. 중세를 '암흑의 시대'이라고도 부르는데 5시만 되면 어두워지기 때문에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  허나 구름끼고 어두워지는 요즘을 보노라면 당시의 불길하고 음울한 정취를 느끼기에 딱 좋지 않나 싶고 그래서 이 때마다 묘한 판타지에 젖어보려 애쓰곤 한다. 그레고리 성가대의 낮고 으스스한 합창, 촛불을 밝혔으나 여전히 어두운 성당, 그 뒤로 보이는 예수와 그 아래 무릎꿇고 도열한 수도사들. 그리고 내일 있을 마녀 화형식에 쓰일 장작이 쌓여가는 소리 등등..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30. 10:07


안드레아의 이탈리아 수업을 마치고 나니 진이 다 빠진다. 거진 70%는 못알아 듣고 나머지 30%는 순전히 눈치로 진행되는 수업. 들어도 들어도, 외어도 외어도 혼란스럽기만 한 동사변화 앞에 사기가 꺾인다. 

5박 6일의 토리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뒤 강양은 비실 거리더니 그 틈을 놓칠세라 감기께서 방문하셨다. 마침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오전엔 온수보일러도 고장났었으니 감기에겐 호조건. 약 몇 알로 쫓아보려 하는데 어떨런지.. 인근 채소가게에서 제법 큰 걸로 한통에 2,500원 하는 배추를 토리노 가기전에 사다놨는데 여전히 씽씽해 오늘은 배추국이나 푹 끓여서 고춧가루 팍팍 뿌려 뜨끈한 밥에 말아먹어야겠다. 몰타에서 다시멸치가 똑 떨어진 탓에 그저 된장만 풀어 끓여먹는 배춧국. 구수한 국물맛의 아쉬움을 뭘로 채워야 할까 고민하다 밀라노에서 사온 새우젓을 생각해냈다. 그놈이면 맛이 좀 우러나겠지. 원래 김장철 배추국에는 새우젖을 넣어 간을 보기도 하지 않던가? 


>> 배추가 정말 싱싱하다.

올해에는 슬로푸드 축제가 열리지 않는걸로 우리는 알고 있었다. 베로나 시내의 한 BAR에서 스쁘릿츠를 마시며 베로나 일간 L'Arena를 무심코 뒤적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금쪽같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행사가 끝난 뒤 그 소식을 이태리 TV에서, 혹은 한겨레 ESC에서 고나무 기자가 쓴 기사로 접했다면 우리는 한동안 깊은 절망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참으로 아찔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휴.. (참고로 취재 온 한국언론은 한겨레가 유일)



>> 바로 이 신문. 안드레아 말로는 형편없는 신문이라고.(조중동쯤 되나?) 

이번 토리노 슬로푸드 축제가 우리에게 남긴 경험은 눈부시도록 값지다. 눈으로 보고 맛보고 들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행사를 즐기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했음은 물론, 몇몇 프로듀서, 즉 생산자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면서 우리만 준비되면 언제든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일상속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게 된 것이 그렇다. 더불어 축제에서 얻은 깨달음과 감동은 오래도록 지속될 듯 싶다.


                                                                             +++


곳곳에서 프로슈토와 살라미가 넘쳐났지만 앞서 소개한 대로 프랑스 남부에서 온 가족이 판매하는 살라미와 프로슈토는 특유의 잡내도 없고 아주 맑은 맛을 내는 것이 감동을 자아냈다. 돼지의 품종은 흑돼지로 넓은 들판과 우리를 오가며 자유롭게 자라고 특이한 것은 허브를 먹인다고. 살라미를 만든 아저씨, 말이 필요없다는 듯 살라미를 썰어 우리 손에 안긴다. 하얀 지방이 눈처럼 촘촘히 박힌 얇은 살라미를 혀 위에 올려놓으니 거짓말 조금 보태 그냥 사르르 녹았다. 어딜가나 흑돼지는 맛이 좋은가 싶지만 이 집의 살라미는 수많은 참가부스의 다른 곳들과 비교해 정말 압도적이다.  

>> 사진은 이탈리아 살라미

살라미는 우리가 피자 위에 올려먹는 바로 그 얇고 동그란 소시지다. 우리는 주로 익혀먹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 자체를 얇게 썰어 와인과 함께 즐긴다. 와인 한 모금, 살라미 한 입. 한국에서도 와인소비와 더불어 점차 그 맛을 아는 이들이 늘어갈텐데 좋은 와인과 더불어 이 처럼 좋은 안주를 곁들인다면 깊은 술맛이 한층 더 깊어질 테다. 부산에서 와인으로 일을 벌이려는 지인에게 꼭 연결시켜주고 싶은 농장이다.  


>> 이 사진 역시 언급한 내용과는 동떨어진 사진. 근데 애도 맛있어 보이네.

토스카나 아레쪼(AREZZO)의 앙기아리(ANGHIARI)에서 온 20대 청년은 1880년부터 집안 대대로 전수되고 있는 손맛을 이어받아 할머니가 만들던 솜씨가 깃든 파스타를 들고 나왔다. 할로겐 조명을 받아 더욱 빛을 발하는 노란 색의 파스타가 단박에 시선을 잡아 끌고 먼 옛날 할머니가 사용했을 당시의 낡은 주방도구들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아 호기심을 자극한다. 벽면에는 중세의 고성이 고스란히 남은 시골 사진이 걸렸는데 그곳이 자기네 동네라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종이접시에 담아 맛보이는 것은 손가락 반마디 크기의 귀여운 복주머니같은 파고띠니(FAGOTTINI). 안에는 돼지고기와 치즈, 그리고 비법의 재료가 들어있고 뜨거운 물에 삶아 올리브유에 살짝 볶아내면 그만이란다.


>> 바로 이놈. 뜯어서 끓는 물에 삶은 뒤 올리브유에 볶아먹으면 그만.

이쑤시개로 콕콕 찍어가며 맛을 보니 오호.. 쫄깃한 식감의 피와 안에서 퍼지는 고기와 치즈의 조화가 고급스러우니 아주 좋다. 촬영을 마친 뒤 집에서도 요리해 먹고 싶어서 구입하려는데 두 팩을 척 담아 선물이라고 건넨다. 살짝 예감은 했지만 한치의 주저함도 없는 행동.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이탈리아가 좋은 이유다. ^^ 라비올리, 토르텔리, 스파게티, 라자냐, 왠만한 파스타는 모두 취급하니 파스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러 가기에 아주 적절한 곳이라 생각되는 곳. 언젠가 가보지 싶다.


2년 전, 김군은 스위스 남부의 LUGANO로 출장을 다녀왔었다. 이탈리아와 가까운 탓에 말도 이탈리아말을 쓰고 방송도 이탈리아 공영 RAI를 본다. 음식문화야 말해 뭣하랴. 이때 프로슈토를 처음 맛봤는데 뭣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새하얀 돼지비계로만 된 프로슈토. 그걸 'Lard'라고 하는데 그 자체로 기름덩어리지만 입안에서 천천히 굴리면 살살 녹으면서 은은한 맛을 낸다. 이 또한 와인과 궁합이 좋다.


>> 저렇게 붉은 살점이 섞인 것이 아닌 진짜 새하얀 비계다. 현장의 비슷한 사진으로 대체.

잠시 무료함에 젖어 있던 LARD'd Muncale 부스는 바로 이 돼지비계 프로슈토 집이다. 콧수염 아저씨가 우리를 붙잡아 끈다. 강양이 호기심을 보인 탓인데 나름 이쁘게 말아서 시식용 접시에 담아놓은 것을 이쑤시개로 콕 찍어 건넨다. 그 맛을 아는 김군만이 덥썩 입에 넣고 맛을 보는데 부드러움은 여전하고 튀는 맛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래서 더 좋다. 영어를 못하는 아저씨는 우리가 금새 자리를 뜰까 초조한 듯 끊임없는 제스춰로 우리를 붙잡은 뒤 부스 안쪽에서 뭔가를 하고 있던 다른 동료를 연신 부른다. "삐에뜨로! 삐에뜨로!"

이윽고 삐에뜨로씨 등장. 물기젖은 손을 앞치마로 서둘러 닦으며 나온 그는 영어를 하지만 서툴기는 마찬가지다. 엉금엉금 삐에뜨로씨의 설명이 이어지지만 콧수염 아저씨의 바디랭귀지는 삐에뜨로씨의 설명을 앞서간다. 자신이 영어를 잘 하거나 우리가 이태리어를 알아들었으면 좋겠지만 어느 것에도 들어맞지 않는 상황. 콧수염 아저씨는 답답함에 제스쳐가 더 커졌고 그 심정이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콱 막혀왔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비계덩이가 삐에뜨로씨와 콧수염 아저씨에겐 큰 자부심이라는 점.

삐에뜨로씨에게 그냥 속시원하게 이탈리아어로 설명해달라고 했고 그거 잘됐다는 듯 이탈리아어가 스피디하게 쏟아져 나왔다. 뭔 소린지 하나도 못알아 들었지만 가슴에 막혔던 뭔가가 뚫겨 나가는 느낌. 삐에뜨로씨와 콧수염 아저씨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촬영을 마치고 자리를 뜨려니 콧수염 아저씨, 포장판매하는 주먹만한 돼지비계를 봉지에 담아 건넨다. 이런 경우가 몇 번 더 있었는데 이탈리아 사람들, 특히 농사를 짓거나 시골에서 온 사람들의 인심은 우리나라의 시골장터 인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카메라를 들고 설치는 만큼 그 앞에서 계산된 행동도 있었겠지만 그래봐야 호기심과 재미일뿐이라는 점을 서로 알기에 그 순박함이 깎여나가진 않는다.  


>> 손님들에게 열심히 프로슈토를 잘라 제공하고 있는 한 부스.

맛있는 음식도 있었지만 입맛에 맞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푸른 곰팡이가 핀 고르곤졸라 치즈, 이른바 블루 치즈는 특유의 꼬리함 때문에 오랜 습관이 들지 않으면 그 맛을 즐기기란 쉽지 않은데 산양치즈에 비하면 이는 엄살일 뿐이다. 화장실 옆에서 서성이다 치즈부스의 한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고 외면하기 힘들어 치즈 한 점을 콕 찍어 먹었다. 

어으.. 참으로 형언하기 힘든... 사실 맛 보다는 향기가 악몽인데 여물통의 악취를 농축해낸 것이 바로 산양 치즈의 맛이  아닐까? 청국장, 또는 홍어를 접하는 외국인들이 이런 심정이겠지 싶은데 내 짐작으론 그것을 훌쩍 넘는 쇼크였다. 


>> 사진중에 산양치즈가 섞여 있을까? 모르겠다. 행사장의 다른 부스에서 한 컷.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28. 11:48

밤 7시 50분에 출발해 밀라노를 거쳐 베로나 북역(PORTA NUOVA)에 정확히 새벽 12시 10분에 도착했다. '정확히'란 표현을 쓴 이유는 이탈리아의 기차운행이 아주 엉망이기 때문이다. 출발하던 날도 베로나에서부터 1시간 가까이 연착하더니 밀라노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토리노로 출발할 때는 가다서다를 반복해 결국 2시간이 늦은 밤 11시 경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두운 창밖과 무심한 시계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참으로 지리한 여행이었다.

일산 킨텍스 전시장을 가득 채우는 것으로도 모자를 정말로 엄청난 규모의 행사는 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어제 월요일 밤에 끝났다. 뭐라 쉽게 말하기 힘든 축제.. 징그럽게 모여드는 사람들 만큼 눈길과 입맛을 잡아끄는 음식과 식재료들도 징그럽게 많았고 기운넘치는 정치성도 느낄 수 있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패스트푸드의 천국 미국도 참여했으니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참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터. 단, 한국과 중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이유? 한국과 중국에서 알아보시라. 아, 북한도..

링고또 피에레(LINGOTTO FIERE) 전시장에서 열린 행사는 매일 아침 10시에 시작해 밤 11시에 끝났고 우리는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다가며 아침 9시 도착해 밤 9시에 떠나기를 5일간 반복했다. 버스를 잡아타기 위해 이리뛰고 저리뛰는 토리노 사람들과 꽉꽉 들어찬 버스안의 풍경은 광화문에서 일산가는 버스를 탈 때의 우리와 똑같아 피식 웃음이 나더라는..

다시 축제, 안타깝게도 이 놀라운 축제를 사진에 그닥 많이 담아내지 못했다. 대신 60분짜리 HDV 테잎 17개에 기록됐다. 입이 아주 호강했을꺼라 추측하는 이들이 있을텐데 바로 위의 이유 때문에 입이 호사를 누릴 틈이 없었고 심지어 끼니를 챙길 여유도 없었다. 촬영은 쉬운일이 아니었고 추측컨데 2kg은 빠지지 않았을까 한다.

이번 주도 쉴 틈은 없을 듯 싶다. 이사할 집을 알아봐야 하고 촬영 테이프를 정리해야 하고 무엇보다 행사기간, 카메라 앞에서 영어,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어로 이야기해준 사람들이 뭐라 떠든건지 그 내용을 해독해줄 사람들을 수소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긴 천천히 하자. 아무튼 HDV 영상에서 이미지를 캡쳐받는다면 스틸카메라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귀한 그림들이 고스란히 살아날테다.


이탈리아의 프로슈토. 모조품이 아닌 모두 진짜로 저만큼이 뒤로 더 이어진다. 산 다니엘레(SAN DANIELLE)는 프로슈토 생산 회사로 소규모 프로슈토 생산자들이 연합해 만든 일종의 협동조합회사다. 세련된 홍보담당자도 갖춘 것은 물론 멀디 먼 우리나라에도 소규모나마 수출하는 제법 큰 회사.  맛? 미안하지만 프랑스에서 허브를 먹여 키운 돼지로 만든 프로슈토를 가져온 프랑스 가족들 것의 맛을 따라오진 못했다. 아쉽게도 그 그림은 테이프에 기록돼있다. 저 한 덩어리의 가격이 얼만지를 물어보지 못했네.. 쯧쯧..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12. 00:22

지난 번 첫 번째 파도바 사진에 이어 마지막 파도바 사진 정리. 제목이 컬러 오브 이탈리아였는데 이번 사진들 역시 그에 버금가는 화려한 색감을 자랑한다. 시장을 둘러보는 내내 들뜬 기분을 쉽게 가라앉힐 수 없었다. 꽃을 보면 눈과 코만이 그것을 탐할 수 있을 뿐 다른 욕망을 채우진 못하지만 고기와 과일과 채소는 거의 모든 욕망을 만족시키지 않던가?

일찌기 회화에서 음식, 또는 식재료들을 화폭으로 옮기는 화가들의 노력이란 어쩌면 가장 먼저 시각을 만족시키는 먹거리들의 화려함과 그 속에 감춰진 욕망을 표현코자 한 건 아니었을까? 이렇게 셔터를 눌러대는 것이나 수세기 전 붓 하나 들고 화폭을 채워나가는 것이나 과연 무엇이 다를까? 갖가지 식재료, 그것도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식재료는 그것을 그냥 지나쳐버리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아래는 나머지 사진들.


중세에 지어진 이 오래된 건물이 중앙광장에 자리잡고 있는 바, 그 양쪽 광장으로 시장이 나뉘어져 있으며 앞서 처음에 소개했던 파도바 사진들은 광장의 왼편 시장이고 이번에 소개하는 사진은 이 건물에 입주해 있는 정육점들과 나머지 광장 오른편 시장이다. 정육점들이 진을 친 이 건물 또한 상당히 유서깊은 건물이겠지만 역사공부는 기약없이 뒤로 미룬다.



딱 보니 천엽이다. 깨끗하게 손질되어 손님을 기다리는 중. 삶아서 기름장에 찍어먹거나 해장국에 넣는 요리가 일반적인 우리에 비해 이들은 저것을 어떻게 요리할지 사뭇 궁금해지는데 상상력의 한계는 되직하게 양념해낸 고추가루에 무쳐서 전골을 끓이는 것에서 더 이상 나아가질 못한다.



VITELLO는 송아지 고기를 말한다. 중앙의 고기는 저며낸 갈비살을 모양을 잡아 실로 단단히 묶은 뒤 로즈마리로 장식을 마쳤다. 소금을 뿌린 뒤 저것을 그대로 오븐에 구워내면 보기도 좋고 로즈마리 향이 배어 맛도 그만일 터. 송아지 고기는 생산량도 그렇고 그 부드러움 때문에 찾는 이가 많아 가격이 비싼 편인데 많은 육식 애호가들의 애를 태우는 고급 고기.

이미 오래된(?) 얘기겠지만 한때 좀 더 부드러운 송아지의 육질을 얻어내기 위해 어린 소를 좁은 목재 우리에 가두어 철분섭취를 철저히 차단시켜가며 사육하다가 그 실상이 보도되면서 송아지 고기의 소비는 크게 줄어들었다. 우리에 박힌 못 하나를 핥아대며 그나마의 철분이라도 섭취하려는 필사적인 송아지로부터 그 못 마저 빼버리는 인간의 잔혹함이 윤리적 소비를 이끌어낸 것. 하지만 이것이 아직 끝난 이야기는 아닐테다. 육식이 야기하는 문제를 모르는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육식을 끊을 생각이 없으니 윤리적 소비만이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 잘 가려서 까다롭게 사면 판매자와 생산자도 결국 따라오지 않을까. 단,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그 효과는 더 빠르고 클 터.


윤리적 소비를 위해 구름같이 몰려든 사람들.. 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맛있는 고기들이 다양하게 가공되어 이 길목을 빼곡히 채우고 있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자신이 가장 맛있게 생각하는 재료를 구입하느라 분주하다.


손님의 주문을 받고 손질하면



포장해 내준다.


말고기만 취금한 정육점도 있다. 평생 뛰어다니다 생을 마감하는 탓인지 지방분이 거의 안보인다. 국물 우려내는데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구워 먹기에는 좀..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먹거리의 하나, 프로슈토. 돼지 넓적다리를 염장해 그늘진 곳에서 1년 안팎으로 숙성시켜내면 그만. 얇게 저며내어 샐러드나 피자, 또는 샌드위치로 즐기는데 손재주가 좋은 사람은 긴 칼로 얇게 저며내면 되고 그게 안되는 사람은 50만원 안팎의 소형 슬라이더(정육점에서 사용하는 고기써는 기계)를 구입해 사용한다. 스페인에서도 같은 것을 먹는데 그곳에선 '하몽'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고..


시뻘건 육색이 '육끼'를 자극한다. 찬찬히 살펴봤지만 30여개가 넘는 정육점에서 선지나 곱창, 머릿고기 등을 취급하는 집은 발견하지 못했다. 허나 이는 이곳만의 특색일테고 사실 이탈리아 요리도 한 '몬도가네' 하는 걸로 알고 있으니 어딘가 꽁꽁 숨켜져 그 맛을 아는 사람들만을 위한 특별 품목으로 관리되고 있지 않을까?

정육점 골목을 막 벗어나니 첫 번째로 꽃집이 눈을 반긴다. 붉은 색감과 묵직한 분위기에서 이렇게 급격하게 변화를 경험할 줄이야.. 이곳서부터가 중앙 광장의 나머지 한 편에 있는 시장이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 꽃집에서 몇 걸음 옮기니 화려함이 꽃집 못지 않다. 색감이 예사롭지 않으니 그 내용물에도 얼른 호기심이 쏠린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안남미에 갖가지 말린 채소를 넣어 섞어놨다. 그 폼새가 마치 먹거리라기 보다는 유리병에 곡식을 담아 내는 유별난 인테리어 취미가들을 위한 장식품 같아 보인다. 저것을 그대로 퍼다가 물에 몇 번 씻어 그대로 밥을 지으면 우리로 치면 채소약밥이 되는 것이고 크림이나 치즈 등을 넣어 끓이면 영양만점의 리조토가 될테다. 근데 과연 그렇게 요리해 먹는걸까? 아직은 알 수 없다.

가격을 보니 1kg에 8유로, 요즘 우리돈으로 치면 14,000원 정도 되겠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친다는 임금님표 이천쌀이 20kg에 6만원 정도 하는 걸로 아는데 저 값이라면 아무래도 먹는 용도보단 장식용으로 치는게 맞지 싶다.


시칠리아에서 키우고 말린 토마토도 시선을 잡아 끈다. 상인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줄기에 매달린 싱싱한 방울토마토도 정상에 장식하고 가장자리도 비록 다소 시들긴 했지만 향풀로 멋드러지게 장식해냈다. 이곳 상인들의 손님 시선을 잡아 끄는 솜씨가 대단하다.


각종 콩들도 숱하게 나와 있고 단색인 재료의 특성에 맞춰 표지판도 요란하지 않고 담백하게 장식돼 그 조화가 훌륭하다. 이쯤되면 이건 시장구경이 아니라 미술시간 색감공부다. 시장 자체로만 보자면 규모나 종류, 전문성 면에선 청량리 경동시장이 최고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판매상인의 종합적인 마케팅 능력은 파도바 시장이 단연 돋보인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가을로 접어든 탓인지 시장 곳곳에서 과일이 풍년이다. 왼쪽의 것이 배, 그 옆이 자두, 키위, 천도복숭아다. 그 틈에 듬성듬성 바나나를 얹어 단조로움을 피하는 센스.


화려하다. 시장 구경의 묘미를 만끽하는 순간이다.

청포도 옆에 걸린 종이 글씨를 해독하면 이렇다. MASCATA란 품종의 포도고 '진짜로'(SUPER) '부드럽고 달아요'(DOLCE) 생산지는 'PUGLIA'(이태리 지도에서 장화 뒷굽에 해당하는 지방)이며 1kg에 우리돈 2,300원. 참으로 착한 가격이다. 저것을 먹어보진 않았으나 베로나에서 사먹고 있는 청포도는 모두 맛좋다. 냉장고에 차게 식힌 포도를 꺼내 씹으면 아삭함과 풍부한 과즙의 달콤함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한켠에선 상인들이 부지런히 아티초크를 벗기고 있다. 오른쪽 밑에 SPINACI는 시금치. 잎이 탱글탱글하고 우리네의 그것 보다 다소 억세다. 이태리 사람들도 시금치를 널리 즐기는 탓에 가격이 비싸지는 않다.


정작 사진에 찍힌 가운데 것은 잘 모르겠고 그 옆에 허옇게 벗겨져 있는 것이 아티초크 속살. 그늘에 뭍힌 표지판을 해독해보니 'FONDI DI CARCIOFO' 즉, '아티초크 밑둥' 되겠다. 아티초크는 고대 로마의 회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채소로 유럽식생활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식재료다. 가운데 있는 놈은 뭐지?.. 왜 찍었지?..



애가 빠지면 이태리 음식이 얘기가 안된다던가.. 작은 고추 페페론치니.


이태리 요리의 절대지존, POMODORO 즉, 토마토. 페페론치니와 더불어 강렬한 붉은 색이 식욕을 자극한다. 맨 오른쪽엔 좀 시든놈도 보인다. 왼편에 밝은 노란반점은 한줄기 햇빛을 받아서 그런 것. 토마토 종류만도 상당할텐데 뭐 아는 것도 얼마 없으니 이쯤에서..



시장평론가는 아니지만(그런게 있지도 않겠지만) 파도바의 시장은 규모면에서도 그렇고 종류, 신선함, 가격, 청결함과 디스플레이 마케팅, 모든 면에서 훌륭하다. 물건을 구입하는 소비자는 물론이고 스쳐가는 관광객들에게도 뜻하지 않은 구경꺼리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관광명소의 하나로 쳐도 손색이 없다. 저 풍요를 단지 보는 것에서 만족해야 한다는 점이 여간 아쉬운게 아니지만 아무튼 모처럼 우연찮게 나선 나들이에서 눈이 아주 호사를 누린 하루였다.





시장에서 건진 유일한 전리품. 천도복숭아.. 맛?  딱딱한 놈들은 평범했고 익어서 말캉거리는 놈들은 달고 맛이 좋았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