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로마여행을 마치고 어제(일요일) 밤 늦게 돌아왔다. 작년 3월 말, 몰타로 들어가기 전 5일간 머물며 비와 추위로 생고생을 했는데 그 날로부터 딱 10개월 후의 재방문이다. 도착한 날도 역시 비가 내려 아무래도 로마와는 인연이 없는건가 싶었으나 둘째날은 날도 화창하게 개이고 따뜻해서 돌아다니기에 좋았다. 이번 로마 여행은 두 가지가 목적이었다. 하나는 매월 마지막 일요일은 바티칸 박물관이 무료개관을 하는지라 이 기회에 공짜로 챙겨보자는 것과 또 하나는 고추장과 된장 사러. 뻬루자의 골목길만 다니는 것도 좀 갑갑하던 차였으니 며칠 전 로마행을 결정하고 난 후엔 살짝 들떠있기도 했다. 역시 로마는 로마다. 그 이름값을 하는 동네라는 얘기.


로마로 내려가기 위해 중간에 열차를 갈아타야 하는 곳, 뽈리뇨. IC(Inter City)나 EC(Euro City)등의 특급 열차를 타면 굳이 이런 황량한 곳에서 열차를 갈아타지 않아도 되고 시간도 단축되지만 짐작하듯이 그건 비싸다. 좀 돌아가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저렴한 R(Region)선을 이용할 수 밖에. 시간 빠듯한 여행이 아니라면 인연이라곤 없을 이런 낯선 도시, 또는 플랫폼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적막하니 매력이 있다. 쓸쓸히 담배 한 대 피어무는 사람들의 모습도 꽤나 분위기 있어 보이기도 하고.. 적막을 뚫는 기적소리는 이런 곳에서 제대로 들린다.


이탈리아의 역에서 화장실을 찾을 경우엔 역사 안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플랫폼 끝쪽에 있는 경우가 많다. 화장실 급하다고 매표소 근처나 BAR를 뒤져봐야 소용없다. 대도시 역의 화장실은 1유로 안팎의 돈을 받지만 이런 작은 동네의 역은 돈을 안받는다. 인건비도 안나올 정도로 손님이 없는 탓. 자유롭게 이용하니 좋다. 대신 온수 따위는 안나온다. 세면대 아래 발판을 누르면 물이 나온다. 이런건 여간 편리한게 아닌데 수고로움도 적고 물도 절약할 수 있다.


폴리뇨를 출발해 곧 나타나는 산자락 도시 트레비. 이탈리아에서 가장 품질좋은 샐러리를 생산하는 동네로 지난 번 토리노 슬로우푸드 축제에도 샐러리를 트럭으로 싣고와 참가한 고장이다. 그때 자잘한 흙가루가 채 씻기지 않은 싱싱한 샐러리를 역시 그 고장에서 생산한 신선한 올리브유에 푹 찍은 뒤 먹으라고 건네주던 농부와의 만남이 잊혀지지 않는다. 산 정상에 지어진 마을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볼꺼리지만 옛날엔 이웃 마을과 타툼 꽤나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다툼이 커지면 곧 전쟁으로 발전했으니 이탈리아 각 마을들은 저처럼 방어가 용이한 지형에 마을을 짓고 살았던 것. 아직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뻬루자와 마주보고 있는 아씨지도 한 때 서로 꽤나 죽이며 살았다고 한다. 그 옛날, 높은 마을이 생명유지의 방편이었다면 요즘에서 보면 어쩌면 자살행위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각종 편의시설의 접근이 어렵기 때문인데 움브리아 주도라는 뻬루자만 해도 성으로 둘러싸인 중심지(Centro)의 경우 수퍼마켓이 딱 2개 뿐이다. 그마저도 구멍가게 수준. 이 동네에는 트레일러 트럭이 올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로마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 트레비를 지나며 어둠에 둘러싸인 산 위의 마을을 바라보니 마을을 지키는건 사람들이 아니라 가로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둠이 짙었다.


기차는 이름 모를 고택도 지나고..


굴뚝도 지나고..


풀 뜯는 양떼도 지나고..


해서 3시간 30분만에 로마에 입성. 뽈리뇨에서 환승으로 1시간을 기다렸으니 그것만 아니라면 R선으로도 2시간 30분만에 올 거리다. 이왕이면 떼르미니역 정면에서 한 장 찍어줘야 하는데 아쉽게 측면이다. 도착하니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다행히 날씨가 춥지는 않다. 북쪽 밀라노나 베로나는 0도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날씨인데 로마는 영상 13도 안팎을 드나든다. 쉽게 찾을 줄 알았던 숙소를 1시간 만에 찾아 짐을 던져놓고 거리로 나섰다. 어느덧 2시,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떠느라 누룽지 조금 먹은게 전부이니 당장 허기부터 채워야 할 판. 떼르미니역 주변에는 저렴한 핏짜리아가 널려있으니 만만해 보이는 집 하나 찾아 들어가면 되지만 손님들로 북적이는 케밥집이 눈에 띄길래 주저없이 돌진했다. 역시 허기가 심할 땐 육기를 떨쳐버리기 힘들다.


햄버거처럼 생긴 케밥.


'케밥'처럼 생긴 케밥. 4유로짜리 케밥 2종류에 콜라 하나 주문. 쟁반에 받아오는데 양이 무척 많다. 콜라 한 모금 들이키자 목구멍이 찌릿거리고 뱃속의 위장이 본격적인 시동을 건다. 입 크게해서 베어무니 행복이 줄줄 흐른다. 역시 손님 많은 집은 이유가 있다.


배가 채워지니 다시 힘이 솟는다. Via Cavour라는 대로 한 켠에 위치한 한국식품점. 꽤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집이라는데 이런저런 한국식재료를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다. 낯선 입맛에 적응이 쉽지 않은 한국인들에겐 오아시스 같은 곳. 호기심에 기웃거리는 이탈리아인들도 종종 보이고 고추장을 사가는 이들도 목격된다. 많은 중국 식품점이 불법으로 영업하고 있어 그 폐해를 고발하는 보도물을 종종 보곤하는데 이곳과 밀라노의 한국 식품점은 모두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정식 매장이라고. 허나 불법일지언정 중국식품점 없으면 아시아 사람들은 당장 불편에 직면할게 틀림 없을 듯 싶다. 뭔가 아쉬울 때 그곳에 가면 대개 있기 때문이다. 한창 물건을 바구니에 담다가 혹시 내일(일요일)도 문을 여냐고 물어보니 연단다. 그럼 지금 힘들게 사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 내일 다시 오겠다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락가락하던 비, 갑자기 퍼붓기 시작하니 이때는 우산이 있어도 잠시 피하는게 좋다.


빗줄기가 잦아들어 사거리 길을 건너니 저 너머 콜로세움이 눈에 들어온다. 방향을 틀어 콜로세움으로.


로마인들이 인류에 남긴 거대한 놀이터. 개인적으로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로마, 특히 콜로세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 영화다. 이 영화의 유일한 명장면이라면 특수효과로 완벽하게 복원된 로마 시내의 모습을 항공샷으로 보여주는 그 장면인데 그걸 보고 적잖이 놀랐었다. 그 중에서도 차양까지 설치됐었다는 콜로세움의 모습은 당시 로마의 부와 사치가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장면으로 남아있으니 그 장면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파괴된 콜로세움으론 원형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콜로세움의 육중한 돌덩어리를 가만히 응시하고 만져 보노라면 수 천년이라는 시간과 역사, 그 공간을 살아간 사람들의 흔적을 짐작하게 된다. 헌데 당시의 노예들, 그리고 피를 튀기는 싸움을 벌였던 검투사들은 자손들에게 예술적 유산이라도 남겼다지만 오늘날 자본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은 뭘 남기게 될까? 한국? 있는 남대문도 홀라당 태워먹고 귀중한 사람 목숨마저 태워먹는 나라니 남는 것은 결국 잿더미? 허허


구름이 옅어지고 간간히 햇살도 비춘다. 이제 비가 그치려나?


포로 로마노(Foro Romano-우리로 치면 조선시대의 종로 쯤. 엄청났던 로마 제국의 중심지중의 중심지라니..)를 구경하는 방법은 돈을 내고 입장해 그 길을 거닐며 돌무덤(?)을 가까이서 보는 방법과 돈 안내고 멀리서 바라보는 방법 두 가지가 있을텐데 우리는 역시 후자를 선택했다. 내일 이곳 역시 공짜로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어디서 온 수도사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몸 불편한 장애인들과 함께 로마 시내, 지금은 포로 로마노를 구경중이다.


사진을 찍은 자리에서 바라본 모습도 나쁘지 않다. 당시의 로마인들도 길가의 저들처럼 저 길을 유유자적 걸었겠지. 원로원이 다스리던 공화정이 안타깝게도 무너지고 황제가 다스리던 제정을 거치는 사이, 로마제국의 확장과 더불어 포로 로마노도 발전을 거듭했지만 6세기 들어 제국의 몰락과 함께 이곳도 서서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전쟁의 여파, 자연의 풍파, 그리고 르네상스때는 방치된 돌들을 들어내 다른 건축의 재료로 사용하면서 지금의 몰골로 남고 말았다. 다행히 종로는 저보다는 훨씬 비싸고 고급스러운 길로 변모했다. 금은방 집들이 가득 들어 찬 것이다! 비교가 무리라는걸 알지만 하필 금은방이라니.. 청진동쯤에 최근에 세워진 그 정체불명 디자인의 오피스텔 건물도 오늘날 금은방과 더불어 종로를 빛내는 '명물'이 아닐까 싶다. 양복입은 깍두기들이 분양 찌라시 나눠주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입주는 마쳤나 모르겠다. 아.. 갑자기 깍두기가 먹고 싶다.


깜삐돌리오 언덕길을 돌아 나오니 결혼식을 마친 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다. 신부의 표정이 유독 밝다.


언덕을 내려오니 비가 또 쏟아진다. 그리고 이윽고 나타난 무지개.


어디는 비가 내리고 어디는 멈추고.. 복잡한 날씨속에 빛을 받는 건물은 베네치아 궁전. 순전히 빛 때문에 찍은 사진이다. 적잖은 이들이 로마, 또는 지중해의 태양을 보곤 하나같이 '빛'이 다르다고 입을 모으는데 어떤가? 좀 달라 보이나?


이것도 그렇고.. 어찌 생각하건 로마는 아름답다.


변덕이 유난스러웠던 오늘 하늘이 그 위로로 멋진 석양을 선사할 것 같은데 고민이다. 서둘러 스페인 광장의 언덕으로 올라가 그 광경을 감상할 것인가, 아니면 애초 계획대로 바로 코앞의 서점에서 책 사냥에 나설 것인가. 잠시 갈등 끝에 하늘이 또 어떤 변덕을 부릴지 모른다는 핑계로 석양을 포기하고 서점을 선택했다. 다리도 아프고..


석양의 아쉬움이 남아 서점 안에서 한 컷. 로마 이틀째는 바티칸이다. 요건 내일 올리자. 새해 복들 많이 받으시고 연휴의 마지막날, 알차게 보내시라. 특히 부천시민, 힘내^^  얼른 가서 놀아줘야 하는데..


우리도 떡국먹고 산다. 이 모두 로마여행의 결과.

Posted by dalgonaa

월요일 아침, 날씨가 잔뜩 흐리다. 햇살이 방안을 칼날같이 비추는 맑은 날씨면 해가 점점 고도를 높여가는게 느껴져 이불을 박차고 나오곤 하지만 이런 날은 아침이나 오후나 별 다르지 않게 느껴지니 그 동작이 훨씬 굼뜨게 된다. 멀뚱멀뚱 천정을 바라보며 두서없는 생각에 젖었다가 정리하기를 반복, 그리곤 어제가 일요일이었다는 걸 잊고 있다가 잠시 월요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월요일.. 여행자에게 월요일이란게 뭐 별 의미가 있겠나? 사실 요일 자체가 의미가 없을지 모르겠다. 집세를 내야하는 한 달의 단 하루를 제외하고 날짜와 요일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게 여행자에게 주어진 특권일지도. 딱 1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볼까? 끔찍한 기억이지만 전혀 다른 시간과 환경에서 지난 추억을 떠올리는건 묘미가 있다. 마치 술마시다 군대시절의 추억을 곱씹는 것 처럼. ^^

금요일 저녁에 시작된 주말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무한자유를 얻은 마냥 신바람이 난다. 동행없이 저녁으로 순대국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을 곁들이면 그것대로 적적함이 있어 즐겁고 일주일간의 끔찍한 전투를 끝낸 동병상련의 친구들을 만나 된장찌개 곁들여 삼겹살을 구우면 맘은 푸근해지고 피로는 씻겨나간다. 서글프게도 먹는 낙 뿐이었지만 즐거운 휴일의 시작임에 틀림없었다. 술로 지난 5일간의 지친 마음은 회복됐으나 몸이 망가졌으니 토요일은 휴식의 시간. 모처럼 동네 산책도 즐기고 잠시 짬을 내 동네 서점도 다녀오고 저녁에 맛있게 요리해먹은 장을 보러 인근의 시장이나 수퍼를 다녀왔다. 그것도 귀찮으면 동네 맛집책자를 뒤적이며 꿀맛같은 토요일 저녁의 낭만에 곁들일 요리는 뭘지 오랫동안 연구했다.

그렇게 토요일이 지나고 나면 이제 남는 건 달랑 1천원짜리 지폐 한 장 같은 느낌의 일요일 뿐. 늦은 아침겸 점심을 먹고나면, 정확히는 출발 비디오여행을 보고 나면 휴일 기분은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박경추 아나운서의 팔을 부여잡고 제발 이대로 끝내지 말아주길 애원하고 싶었던게 얼마였던가. 어김없이 이어지는 재방송 드라마는 조바심나는 일요일 오후를 더욱 낡고 참혹한 일상으로 만들어버렸다. 월요일의 공포가 그렇게 바짝 다가와 있었다. 영원히 떠 있어주길 바랬던 해가 어느새 땅속으로 꺼지고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 아무리 맛있는 식사라도 저녁을 먹고나면 포만감보다는 공허함이 뱃속을 가득 채웠다. 종종 주말을 함께 떠들며 보냈던 친구를 집까지 차로 바래다주고 돌아오면 어제 홀가분하게 돌아다니던 길, 가게, 불빛은 전혀 딴판으로 다가왔다. 별빛도 사라진 도시의 밤, 자전하는 지구를 원망했다. 

아침 7시 경이면 출근을 서두르는 차소리나 알람시계 소리가 아니어도 자동으로 몸이 깨어났다. 순간 깨질듯한 두통이 몰려오지만 화장실 거울앞에 어느새 칫솔을 입에 넣은 거울속의 자신을 쾡한 눈으로 보고 있노라면 그 통증도 서서히 사라져버렸다. 오늘은 또 무슨 시덥지 않은 현실들을 지켜보며 애써 진지한듯 열심히 일하는 척 해야할까? 어차피 해야하는 일이라면 그 순간 만큼은 자의식을 지워버고 로보트처럼 생각없이 움직이고 싶은데 이는 비단 나만의 바람일까? 집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고 버스정류장에 선다. 그 속을 알 순 없으나 아마 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비슷한 곳으로 끌려가는게 틀림없는 인간들. 아무말 없이 서 있는 그 무심함이 싫어 신문을 펼쳐들면 몇 분 지나지 않아 버스가 도착한다. 수용소행 열차에 몸을 싣는 듯한 어눌한 풍경.

그냥 집으로 다시 돌아가 모자른 잠이나 확 자버릴까? 아니면 지하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고물차를 몰고 나와 자유로를 달려 북부간선을 갈아탄 뒤 구리를 지나 양평, 홍천을 거쳐 동해바다로 달려버릴까? 도발이 유혹처럼 다가오는 것도 잠시, 오 맙소사.. 빈자리는 애초 기대하지도 않았고 다만 중간쯤에 내 한몸 세워놓고 있을 통로를 기대했는데 요금을 찍고나자 더 이상 한 발짝도 들어갈 수가 없다. 이런 사태가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버스는 출발하고 서고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애초 기대했던 중간쯤으로 떠밀려 와있다. 가끔 운전기사의 과속을 경고하는 기계음이 불규칙적으로 들려오고 조용히 가뿐 숨을 몰아쉬는 다른 승객들 틈에 끼어 스쳐가는 창밖의 풍경을 영혼없는 시선으로 던질 뿐이다.

일산을 출발한 버스가 화정에 도착할 즈음이면 이미 버스안은 발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만원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 버스에 오른다. 푸시맨을 기억하는가? 지하철의 문을 닫을 수 있도록 승객을 차내로 밀어넣던 사람들. 화정의 버스정류장에는 그들과는 좀 달리 입이 바쁜 푸시맨들이 있다. 버스회사 직원이 몇명 나와 "안으로 조금씩 들어가 주세요!"라고 승객들을 향해 외치는 것이다. 그리고 한결 낮은 톤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 "요금 찍어주시구요". 뒷문으로 오르는 사람들 가운데 다른 사람에 막혀 요금을 못찍는 경우가 있기 때문인데 어김없이 '요금'을 닥달하는 그를 향해 위태롭게 버스기둥을 부여잡고 있던 40대 중반의 멀쩡한 양복이 성질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말 좀 그만하세요!"

햇살이 차창에 부서져 반짝이는 어느날 아침이었다. 이 순간, 모든 것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이들은 도대체 여기 왜 이러고 서 있는걸까? 버스에 오르기 위해 필사적인 저 사람들은? 뭘 위해서? 난 왜? 이 버스에서 내리면 천국의 문이 열리기라도 하는걸까? 부질없는 질문을 되뇌이고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밤에 마약처럼 취해 몇 번이고 반복해 들으면 어느새 광화문에 도착했다. 근데 때로는 놀랍게도 천국이 펼쳐지곤 했다. 버스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쏟아져 내리는 사람들을 향해 맞은 편에선 어디어디 교회 목사님과 신도들이 키타와 앰프를 동원해 포효하는 설교와 저들만 신난 가락으로 굉음을 퍼부어댔다. "주여~!"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첫 장면을 기억하는가? 수륙장갑차의 문이 열리는 순간 빗발처럼 쏟아지던 총탄에 병사들이 하나 둘 쓰러져갔던 장면. 흡사한 풍경이었다. 대한민국을 말아드신 부동산, 그 장사로 부자가 된 장로님이 어찌어찌하여 대통령까지 꿰차고 앉은 현실을 보노라면 켁 하고 숨이 막혀왔다.

이런저런 삶의 악연을 끊고자 떠나온 길. 다시 멀뚱멀뚱 천정을 바라본다. 그리곤 문득 '앞으로 뭘 할지 좀 더 선명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뻬루자의 이 집이 좋은 이유 하나는 지금까지 지내온 집들 가운데 가장 조용하다는 점이다. 한국에 있을 때도 이렇게 조용한 집은 없었다. 그래서 생각에 빠져들기에 좋다. 아무튼, 그런 생각이 들자 그게 이번 여행의 의미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불혹의 나이에 새롭게 해야할 일이 많다는 사실에 괜히 신바람 난다는 생각까지 든다. 재미없는 삶을 안주삼아 씹으며 늘 얘기했던 식당, 즉 우리들의 놀이터, 어른들의 놀이터를 만드는 일이 그렇고 이를 위해 하나씩 준비해야 할 일들에 대한 기대, 그리고 또 다른 여행의 준비. 천둥벌거숭이처럼 떠나온 길이었고 모아둔 얼마 안되는 돈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가고 있는 현실이 두렵기도 하지만 돈은 돌고 돈다는 해묵은 믿음에 기대려 한다. 그리고 지난 연말 뻬루자의 한 공터, 한시적으로 열렸던 장터에 조악한 악세사리를 가지고 나와 팔던 방글라데시 출신의 나비가 우리에게 던진 역시 해묵은 메시지, 그러나 은근히 힘을 주는 이 말을 새삼 떠올려 본다. "이봐, 우린 최선을 다 할 뿐이야. 나머진 신이 다 알아서 결정하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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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다 보면 굶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하다 굶으면 그런가보다 하지만 여행하다가 굶으면 어쩐지 처량해짐을 느끼곤 하는데, 굶고 다니지 마세요~. 많은 여행자들이 유럽에 식당이 없어서 굶는 건 물론 아니다. 하나같이 비싸고 때론 뭘 어떻게 주문해 먹어야 할지를 잘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모험가들은 이럴 때 더욱 용기를 발휘해 낯선 레스토랑 문을 박차고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는 적잖은 이들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맥도날드의 유리문을 연다. 

그러나 여행자의 식단이 이렇게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만은 아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먹거리가 있은데.. 아무렴. 레스토랑과 맥도날드의 문화적 이질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에게 가장 만만하게 다가오는 먹거리가 바로 케밥이 아닐까. 완전 현지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량 매뉴얼로 만드는 영혼없는 음식도 아니고, 어딘가 어정쩡하지만 분명 이색적인 문화임엔 틀림없는 먹거리. 

지난 달 밀라노를 갔을 때 두오모를 물어물어 찾아가던 중 간단히 먹자해서 찾은 케밥집. 레스토랑의 깨알같은 메뉴판이 아닌 큼직하고 시뻘건 글씨와 음식 사진까지 곁들여 벽면에 붙여놓은 모습에 식욕이 요동치고 산처럼 쌓인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모습에선 적어도 이 순간은 야만인이 되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킨다. 쫀쫀한 또띠야에 양파, 토마토, 이탈리안 파슬리를 올리브유와 비네거로 버무린 샐러드를 얹고 그 위에 얇지만 넉넉히 저며낸 닭고기 케밥을 얹었다. 호일을 벗겨 한 입 베어물면.. 주루룩 옷에 떨어지는 새콤한 샐러드 국물만 조심하면 행복감을 맛보는건 어렵지 않다. 케밥을 먹을 때야 '진정 유럽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건 왜인지..


작아 보이지만 먹고 나면 제법 속이 든든하다.

 
앞서 케밥이 좀 허전할까 싶어 푸짐한 놈으로 한 장 더. 접시에 리소(쌀밥)와 함께 먹는 케밥. 가격은 먼저 케밥이 5유로, 접시 케밥이 5,5유로. 요즘 환율로 보면 저 두 개에 배추 두 장, 다 잊고 맛있게 먹자.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20. 22:04

휴일, 볕도 좋고 공부도 안되니 좁은 집구석을 빠져나온다. 산책 겸 강양 입을 겨울 외투를 둘러볼 겸. 베로나의 중심인 PIAZZA ERBE는 사람들로 언제나 붐빈다. 요전 포스트에서 늦은 밤,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찼던 광장도 같은 장소다. 아래는 에르베 광장으로 들어서는 가장 큰 길목의 풍경.


에르베 광장의 주인공은 바로 아래의 탑.



베로나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이름은 타워 람베르띠(Torre Lamberti). 238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베로나 시내 전체를 한 눈에 품게 해준다. 딱히 베로나의 역사공부를 할 처지가 아니어서 이 유서깊은 돌탑의 사연을 구구절절 소개하지 못함이 아쉽다. 단, 조선이 건국되고 얼마 후인1463년에 완공되어 600년 가까운 세월을 저 자리에서 꼼짝없이 버티고 있는 중이고 가운데 시계는 여전히 한치의 오차없이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고. 베로나를 떠나기 전 한 번 올라가보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평소 지나쳐가곤 한다.

람베르띠가 높이에서 앞도하지만 베로나를 상징하는 건축물은 단연 바로 아래다.

<사진 : www.arena.it>

The Arena. 현존하는 원형경기장 중 가장 큰 규모는 로마의 콜로세움, 두 번째는 모르겠고 세 번째가 바로 아레나다. 1세기 경에 세워진 이 무식한 '돌집'이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규모면에서 콜로세움에 뒤지지만 2천년이 흐른 지금에도 당시 로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이곳에서 재미난 볼꺼리를 즐긴다는 점 때문. 콜로세움이 제 기능을 다하고 그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이 됐다면 아레나는 여전히 제 힘으로 굳건이 살아 숨쉬는 역사인 셈이다.  

거의 연중 공연이 펼쳐지는 이 매력적인 극장에선 우리같은 사람에겐 이름만으로 익숙한 투란도트,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등의 오페라는 물론 R.E.M과 같은 뮤지션의 대중음악 공연도 펼쳐지니 거금을 내고 입장한다면 문화적 감동에 푹 젖었다 나올 수 있을테다.  

아레나의 외벽은 상당부분 파괴되고 일부만 남아있는데 로마 콜로세움과 거의 똑같아 깜짝 놀랐다. 아레나 외벽은 1117년 닥친 지진으로 대부분 무너져 내리고 일부만 남았다고. 아래 사진은 부서지고 그 일부의 흔적만 남기고 있는 콜로세움의 외벽. 아레나와 쉽게 비교될 뿐만 아니라 규모도 파악이 쉽다. 콜로세움의 외벽 역시 지진으로 파괴되기도 했지만 로마제국 멸망 이후 관리가 소홀해진 틈에 무분별하게 벽체를 뜯어 다른 건축용으로 사용했던 점 또한 파괴에 큰몫 했다고.


콜로세움의 떨어져 나간 외벽 모서리는 말끔하게 보수돼 있어 파괴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파괴된 외벽이 만들어낸 조형성은 오늘날 콜로세움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사실 거대한 규모와 세월의 무게 앞에 나 자신이 한없이 작음을 느끼지만 저 굳건한 돌덩이(사실 모든 거대 건축물)를 마주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생각 하나는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건축 과정에서 떨어져 죽거나 깔려 죽었을까 하는 점이다. 

제국을 넓히는 황제의 명으로, 한 때는 신을 앞세운 교황의 힘으로 세워진 엄청난 규모의 건축물들은 오늘날 인류에게 더없는 보물로 남아 있지만 그 앞에서 절망해야 했던 무수한 영혼들 또한 저 차가운 돌덩이와 함께 하고 있는 것도 사실. 그들의 존재을 느껴보기 위해 못질 흔적 하나도 오래도록 응시하게 된다.



아레나가 제공하는 넓은 광장의 이름은 PIAZZA BRA. 이태리로 떠나기 전, 한동안 살았던 일산에서 호수공원을 걸을 때 마주쳤던 사람들의 발걸음과 이들의 발걸음은 그 템포가 같다. 저물어 가는 휴일 오후의 햇살의 따스함이 알수없는 고독을 던져준다는 점 또한 닮았다. 다만 코오롱 건설, 삼성 건설 간판의 단조로운 직사각형 오피스텔과 아파트를 바라보며 돈을 떠올렸다면 간판없는 제각각의 건물과 아레나 앞에서 시간을 떠올린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

이름을 알 수 없는 오랜 건물로 올라서는 계단에 앉아 잠시 다리를 쉬는데 풍경 하나가 눈길을 끈다.



개구장이들이 계단의 넓은 난간을 미끄럼틀 삼아 열심히 놀고 있다. 저 꼬마들은 물론, 저들의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도 저곳에서 똑같이 저러고 놀았겠다는 추측을 했는데 이는 돌표면 때문. 대체 얼마를 저래야 표면이 반질반질해지는지 모르겠지만 이 도시는 사소한 눈길 하나에도 끊임없이 시간에 대해 묻는다.

우리는 '시간 참 빨리 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근데 시간이 정말 저 혼자 빨리 흘러간 걸까? 시간이 빨리 간게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돌아보지 않고 빨리 지나온 것일 뿐.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4. 08:32


'스플리쯔(Spritz)'는 베로나, 넓게는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즐기는 음료다. 사실은 칵테일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와인잔에 물과 화이트 와인, CAMPARI라고 하는 술을 섞어 오렌지 한 조각과 얼음을 담가내면 되는 간단한 술인데 하루에 한 잔은 거의 마시고 있다. 지금 두 잔을 마시고 들어왔더니 살짝 알딸딸하다. 

베로나 4일째, 근황을 전하자면 이렇다. 절대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 엘리자베타의 집에서 여전히 머물고 있으며 이런저런 생소한 경험들을 하고 있다. 이는 바꿔말하면 이곳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이에 대해선 천천히 얘기하기로 하고, 우선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과 언어다. 엘리자베타의 집은 훌륭하다. 굉장히 넓은 집은 아니지만 갖출 것은 모두 갖춘, 성공한 캐리어 우먼의 멋진 집이다. 출판업계에 일하는 그녀의 직업답게 집에는 온갖 종류의 책이 넘친다. 시샘하게 만드는 주방에 깨끗한 화장실도 두 개다. 우리가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는 집이지만 그녀에게도 사생활은 있는 법.


마냥 그녀의 집에 머문다는 것은 그녀의 소중한 삶의 일부를 우리가 점령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슬슬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니 서둘러 집을 구해야 한다. 사실 그녀도 은근히 원하는 눈치. (그런 그녀의 속내가 오히려 반갑다)

베로나가 몰타처럼 넓은 공간에 저렴한 집은 없지만 그래도 이러저런 임대광고는 제법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비자문제 때문에 몇 개월 이상의 임대계약을 망설이고 있다. 우선은 한달에 900유로(한화 150만원)에 이르는 비싼 레지던스에서 머물 예정이다. 이 한 달 동안 비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알아보고 이탈리아 취재기행의 계획을 잡을 예정이며 이후 좀 더 저렴한 집에 대한 정보를 찾을 것이다. 일이 잘 풀린다면 한 달 후엔 500유로 이하의 집으로 옮기지 않을까 싶다.

우선 토요일인 오늘은(날이 밝았으므로) 엘리자베타와 함께 VERONA로 부터 대략 한 시간 거리의 PADOVA를 방문할 예정이고 월요일엔 역시 그녀를 따라 MILANO를 다녀올 예정이다. PADOVA는 그녀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도시로 그녀는 부모님을 만나고 우리는 시내를 구경한 뒤 그날 당일 돌아올 것이고 MILANO에선 하루 묵을 예정. PADOVA도 굉장히 멋진 도시라는데 우리가 그곳에 거는 기대는 한국식당에서의 식사와 식당 주인을 통해 고추장 판매처를 수소문해 고추장을 사오는 것이다. 나중에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베로나에 산재한 식당에서 즐기는 식사는 정말로 대부분 맛이 좋다. 그러나 열 접시의 훌륭한 스파게티가 한 스푼의 고추장을 못당하는 것이 우리의 유난스런 입맛이니 어쩌랴.. 

그 다음 문제는 언어다.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해봐도 언어를 모르고선 이탈리아에서 하다못해 음식 한 접시 제대로 주문하기가 어렵다. 단지 스쳐지나가는 관광객이라면 까르보나라를 시켰는데 뽀모도로가 나와도 그 맛이 또한 훌륭하니 우연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며 까탈스럽게 따지지 않겠지만 우리가 그 입장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에게 좀 더 구체적인 소통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해서 오늘, 일벌레인 엘리자베타의 성실한 중재로 만난 사람이 바로 안드레아다.


왼쪽이 엘리자베타, 오른쪽이 안드레아. 엘리자베타의 단골 미장원의 또 다른 단골 손님인 안드레아는 미장원 주인 클라우디아의 중개로 소개받았으며 그는 베로나 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했다. 우리는 카푸치노를 마셨고 저 두 사람은 에스프레소를 거의 원샷하다시피 마셨다. 이탈리아어 개인 교습이라는 주제를 가운데 놓고 우리는 안드레아로부터 궁금한 점을, 안드레아는 우리에게 궁금한 점을 서로 묻고 답했다.

안드레아는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희소식을 전하기도 했는데 마침 성당에서 운영하는 무료 이탈리아어 강좌가 일주일에 2회 열린다는 것. 그 수업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리고 그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동시에 자신 또한 그곳에서 자원활동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에게 우리는 어쩌면 남다른 경험의 기회일 수도 있을테다. 이 자리에서 엘리자베타는 직업을 찾고 있는 안드레아에게 (이제야 얘기하지만 그녀는 GIOUNTI라고 하는 출판사 겸 서점의 중역이다) 안드레아가 스페인어와 러시아어를 구사한다는 점을 높이 사 그에게 취업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강습비 얘기는 엘리자베타가 이탈리아어로 먼저 안드레아에게 물었다. 안드레아는 선뜻 답을 내놓지는 못했고 이런 경우가 자신에게 처음이니 우선 여자친구와 함께 상의하겠다고 한다. 그러라고 하면서 엘리자베타는 자신의 집에서 일주일에 3번 와서 청소를 도와주는 필리핀 여성 레오노르의 경우 시간 당 7.5유로(11,000원)의 돈을 지불하고 있며 그 금액의 더블은 어떻냐는 1차 제안을 던졌다.

이는 우리나 안드레아,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제안이었다. 왜냐면 누구도 기준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당 20유로 안쪽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사실 우리가 하기에 따라 그 시간을 훨씬 넘겨 수업을 이끌 수도 있다. 만나본 안드레아는 매우 성실해 보였으며 우리와 우리의 계획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점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뒤 중매역할을 한 엘리자베타는 자신의 일을 위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리는 안드레아와 함께 카페 옆 대학건물로 이동해 그곳의 시설과 도서관 이용방법을 전해듣고 길 건너 편, 즉 우리가 아마도 한 달간 머물게 될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공용 자습실(?)도 소개받았다. 이 공간이 무척 흥미로웠는데 대학부속건물은 아니고 베로나 시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안에는 그저 형광등과 테이블, 의자가 전부이며 누구나 와서 자신의 책을 보거나 신문을 보고 가면 그만이다. 안쪽 구석에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중이었으며 분위기는 꽤나 엄숙했다. 사진에 담진 못했지만 밖에서 담배피던 신장 190에 이르는 사내는 거의 키아누 리브스의 판박이어서 김군 마저 매료시켰다는..


날씨는 제법 맑았으나 유난히 바람이 쎄서 추위를 느낀 하루. 누구의 시선없이 맘 편하게 머물 집이 당장 없다는 것은 정말이지 큰 스트레스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절감한 하루다. 집과 언어, 이 두 가지를 위해 요 며칠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아직 확실해진 것은 없다. 당장 한 달간 기거할 집은 거의 정해졌지만 임대료가 너무 비싸 한 달 후엔 새로운 집을 찾아 옮겨야 한다. 이탈리아어 강습도 아직 무료강좌를 나가보지 않아 어떤지 정확히 모르겠고 개인교습도 강습비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과연 얼마 동안을 배워야 우리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지 아무도 모른다. 거기에다 비자의 불안정함까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낯선 땅 베로나에서 조금식 인연을 넓혀가고 있으며 그들 모두 우리에게 적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안드레아가 그렇고 세인트 토마스 카페의 리자가 그렇고 당연히 엘리자베타가 그렇다. 이 모든 것이 행운이라면 그 행운은 과연 어디까지 지속될지, 당장 우리가 걱정하는 집 문제와 언어 문제에도 행운은 따라줄지.. 

아래 사진은 세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의 발코니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마침 손 붙잡고 지나가는 연인 너머로 사랑의 맹세, 혹은 바람을 적은 간절한 쪽지들이 마치 한 폭의 미술작품처럼 붙어 있다. 여담이지만 베로나는 확실히 한국여행자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눈씻고 찾아봐도 한국어 쪽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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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화요일이면 떠나니 이제 이틀 정도 남았다. 끝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즈음에는 대단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면서 동시에 스트레스가 따른다. 갖고 있는 것들 가운데 버릴 것과 가져가야 할 것을 골라내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며 그렇게 나눠진 것들을 처리하는 문제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가져가야 할 것들을 모든 물리적 지식을 동원해 촘촘히 싸야하고 버려야 할 것들은 집앞 쓰레기 수거통에 던져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효용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 사이에 남는 것들, 가령 책이나 IDE방식의 부피 큰 외장하드 따위는 가져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애물인데 결국 이는 한국으로 보낸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10kg 박스포장해서 보내는 가격을 우체국에 물어보니 우리돈으로 15만원, 그럼 고민은 다시 이어진다.

"그 돈이면 차라리 한국 가서 다시 구입해도 되지 않을까?"

뭐가 옳을지 그런 고민 따위로 인해 떠나는 즈음, 저녁의 석양을 좀 더 넉넉해진 마음으로 바라보거나 무심히 지나쳐온 일상들을 특별한 시선으로 응시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뜻대로 잘 이뤄지지 않는다. 글을 쓰는 가까운 친구 하나는 분명 이를 두고 '쯧쯧..' 혀를 차지 싶다. 뭔가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온 천리길이지만 살아온 삶의 구차한 태도들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이 습성은 언제쯤 아문 딱지 떨어지듯 사라져버릴지..


2달 간 김군을 가르쳐온 Sarah와 함께 점심식사를 했고 가깝게 지내온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한국음식을 나눠먹으며 석별의 정을 나눴다. 잔정 많은 루씨가 지난 주 떠난 카샤에 이어 눈물을 쏟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예기치않은 사건으로 곤란에 처했던 같은 학원의 친구가 마침 다소나마 일이 해결돼 떠나는 우리의 발걸음을 더 없이 가볍게 해줬다.

몰타에서 마지막 남은 문제는 공항으로 떠나기 전 집주인과 우리 간에 치뤄야 할 금전문제 뿐. 집주인에게 맡긴 한 달치 보증금을 못돌려 받는 경우가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있지만 우리에게 그런 재앙이 닥치진 않으리라 기대한다. 사용중 다리가 하나 부러진 의자와 아주 조금 벗겨진 거실 벽 페인트 자국이 걸리긴 하지만.. 일부 집주인들은 그런 사소한 것들을 트집잡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원래 집을 계약할 땐 집주인과 함께 집 구석구석을 돌며 상태를 함께 점검하고 심지어 그릇수와 포크 수 까지 세는 것이 기본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집주인인 CASSAR씨가 덜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심증은 가지고 있는데 과연 어떨지.. 화요일 오전, 11시에 집으로 부동산과 CASSAR씨가 오기로 했다. 만나서 전기와 물 사용료를 지불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은 뒤 빠이빠이하고 미리 불러놓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떠나면 몰타의 공식적인 생활도 끝이다.   

한국을 출발할 때 우리가 덕지덕지 챙겼던 짐을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하다. 무게도 무게지만 한 사람당 3개씩의 가방을 이고 졌으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고 특히 이태리 로마 테르미니 역에 도착해선 우리를 표적삼은 눈빛들을 장난아니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기가 한 번 닥치기도 했다.

우리를 마중나온 한인민박의 주인아저씨의 차에 짐을 싣고 올라타서 출발하려고 하니 갑자기 차 앞으로 한 청년이 다가와 본넷을 몇 번 두드리더니 타이어를 가리키는게 아닌가? 차에 무슨 문제가 생겼거니 생각했는데 그 순간 주인아저씨는 뒤를 돌아보곤 험한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뭐라 한 마디 던지곤 시동을 걸어 곧 출발했다. 상황은 이랬다. 한 명이 차 앞에서 본넷을 두드리며 우리를 비롯한 드라이버의 시선을 잡아 끌면 다른 한 명은 그 소리에 맞춰 차의 뒷문을 열고 우리 짐을 털어가려 했던 것. 고도의 팀플레이였다. 다행히 민박집 아저씨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모든 문에 Lock부터 걸어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다.

한 번의 위기는 피했지만 짐에 대한 관리가 이대로라면 안되겠다 싶어 어제 시내를 뒤져 기내에 들고 탈 수 있는 캐리어 하나를 구입했다. 해서 가방 2개에 나눠담던 카메라와 노트북을 비롯 각종 장비들을 캐리어 하나에 담았다. 끌고 다니니 무겁지 않고 설사 누군가 들고 튄다해도 꽉 채우면 거진 20kg에 이르는 이 '쇳덩어리'를 들고 뛰기엔 무리지 싶다. 쫓아가 이단 옆차기로 옆구리를 갈기면 해결되지 않을까?  아무튼 캐리어는 참 잘 샀다 싶어 김군을 매우 흡족해하고 있다. 심지어 캐리어를 쓰다듬기도 한다!

일요일인 오늘은 이탈리아의 주재 영사관이 몰타로 날아와 우리를 비롯한 몇몇 한국교민과 함께 저녁을 먹을 예정이다. 이미 전에도 한 번 식사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여러모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 음식맛을 즐길 틈이 없었다. 영사를 만나는 이유는 앞서 살짝 얘기했듯이 곤란해진 학원 친구 문제때문. 

한국에서라면 별 일 없이 해결되겠건만 몰타에서 그 시간이 꽤나 오래걸린다. 오늘의 식사자리는 이후 일정을 어떻게 꾸려갈지를 모색하는 일종의 작전회의 자리다. 우리가 전반전을 뛰고 이태리로 떠나니 이제 후반전을 이끌어갈 팀을 새롭게 구성하고 전술을 꾸미는 것이 오늘 식사의 목적. 아무튼 여러모로 상황이 좋아지고 있는 점은 그 친구나 우리나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만 그 친구가 곤란한 처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우리의 여정도 그만큼 자유로워질 것 같다. 그때 쯤 우리도 좀 더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제는 스위스에서 반가운 메일을 한 통 받았다. 강양의 같은 반 친구였던 에마와 율크가 10월 중순 경에 일주일 일정으로 우리를 스위스로 초대한 것. 이들은 우리를 초대하기에 앞서 이미 우리를 데리고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할지 이미 계획을 모두 세워놨다고 한다. 동화책을 읽지도 않은 김군에겐 당연히 동화속의 세상도 아닌 스위스가 과연 어떤 느낌일지 여간 기대되는게 아니다. 강양도 모처럼 얼굴에 시종 웃음을 머금고 있어서 옆구리를 툭 건드리기만 해도 웃음이 터지고 있다.

"스위스 사람들은 뭐 먹고 살지? 퐁듀만 먹고 사나?"

지중해 식생활기행에서 느닷없는 스위스는 우리에겐 엄청 기분좋은 보너스다. 하긴 이미 유럽 이곳저곳에 뿌려놓은 '세포'가 많으니 비단 스위스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보너스'를 챙길 기회가 있으리라 야무진 기대를 해본다. 너무 속물스러운가? 아무렴 어때!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고 공기도 제법 차서 이곳이 진정 몰타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은 구름이 뭉텅뭉텅 끼었지만 아랑곳없이 해가 쨍하다. 여름 내내 몸서리친 해였지만 그래도 반갑다. 오늘은 그 햇살에 좀 더 시선을 주려고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런지는.. 그리고 마저 짐을 싸야겠다. 내일은 몰타에서 하루가 온전한 마지막 날. 많고 많은 맥주 가운데 제일 근사한 것을 하나 골라 파도의 묘기를 안주삼아 마냥 지중해를 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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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덕스러움에 있어서 계절만큼 당혹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없지 싶다. 가을이 왔다고 호들갑을 떤게 얼마전이었건만 요즘 몰타의 날씨는 한 여름 한국의 날씨를 고스란히 닮아있다. 시간이 꺼꾸로 간 때문은 물론 아니고 9월로 접어들면 다습한 공기가 지중해 일대를 뒤덮었기 때문. 이 불쾌한 '손님''은 점차 그 범위를 키워 겨울로 접어들 무렵엔 유럽으로까지 뻗친다고 한다. 우리와는 달리 여름엔 건조하고 겨울에 다소 습해지는 것이 이곳 기후의 특징. 겨울에 유럽에 안개가 많이 끼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다 아는 얘기일 터.

그래서 요즘 무척 덥고 쉽게 지친다. 끈적거리는 피부와 어느새 눅눅해져 기분나쁘게 달라붙는 옷은 '어서 바다로나 뛰어들라'고 재촉하는 것 같고 실제로 그러기도 한다. 그러던 지난 금요일, 밤이 되자 기온은 좀 더 낮아졌지만 습도는 여전한 가운데 15명 안팎의 사람들이 모여 차에 몸을 실었다.  




일행이 향하는 곳은 몰타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에 하나라는 Mdina. 에어컨이 고장나서 그냥 창문열고 달리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은 제법 시원하다. 서먹한 일행들은 모두 말이 없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GROTTO라는 이름의 카페 앞. 학원에서 주관하는 체험 프로그램, 이른바 'Activity'의 일환으로 1인당 22유로(한화 34,000원)를 내고 참여하는 Malta Wine Tasting 을 체험하기 위해 온 것이다. 몰타 출국을 이제 한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우리로써도 이제 슬슬 몰타의 숨겨진 재미를 찾아 나서야 할 때다.








GROTTO는 프랑스와 몰타 요리를 선보이는 제법 오래된 식당이지만 이미 저녁식사를 마치고 모인 우리들의 목적지는 어디까지나 와인이다. 하지만 그 기대가 썩 높은 것만은 아니다. 이미 전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대륙의 와인명가가 즐비한 마당에 자국 시장조차도 지켜내기 벅찬 품질이 이곳의 현실일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양조는 몰타에서 했다지만 포도는 대부분 이태리산 아닌가!

다만 낯선 체험이기도 하고 금요일 밤, 밥도 두둑히 먹어뒀으니 다양한 와인으로 주말밤을 기분좋게 포식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선뜻 참여한다. 낯선 동행들과 거나하게 한 잔 즐기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줄테다.








식당은 지상이 아니라 지하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인 만큼 제법 쓸만한 규모의 크고 작은 동굴들이 널려있고 그 가운데 가장 쓸만한 것들은 이처럼 식당으로 꾸며져 있다. 바깥보다는 서늘하니 좋지만 여기 공기도 꽤나 축축하다.






 

대략 지하 3층 정도 되는 깊이까지 내려오자 마지막에 닿은 와인 바. 사방의 벽은 모두 용암이 식어 굳어진 암석이다. 제법 깊고 긴 규모에 살짝 놀랐는데 이곳은 어디까지나 식당일 뿐 와이너리는 아니다. 길게 이어지는 통로는 오크통이 아닌 식사를 즐기는 테이블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와인 테이스팅을 진행하는 Sandra. 몰티즈인 그녀는 스위스에서 수학했고 지금은 주방을 맡은 프랑스 출신의 남편과 더불어 이곳 식당을 운영하고 있단다. 이날 등장한 와인은 모두 몰타 와인들로 왼쪽에서부터 샤도네이 화이트로 시작해 달콤한 로제를 거쳐 멜롯과 카버네 쇼비뇽, 그리고 그녀 말로 가장 바디감이 크다는 시라즈로 마무리되는 순서다.








그녀의 에너지 넘치는 설명이 시작됐다. 영어로 진행되는 설명은 어떤 것은 들리고 어떤 것은 안들린다. 하지만 들린 것 가운데 우리의 예측을 깨는 몇 가지 이야기들이 있어 우리를 놀래켰다. 적지 않은 포도를 이태리에서 수입해 양조만 하기도 하지만 몰타 자체의 엄선된 품종으로 담그는 포도주도 있고 그것들 대부분은 기계가 아닌 손으로 직접 따 술을 만든다는 것. 소량이기 때문에 쏟는 정성이 크고 그 덕에 품질도 좋다고 한다. 정부에서도 와인산업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지원을 늘리는 추세라고도 하니 무작정 무시하고 볼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그녀의 재치넘치는 설명은 모두 비디오 카메라에 담았으니 후에 찬찬히 반복해 돌려보면 그 내용이 좀 더 또렷해질테다.








열심히 사진도 찍고..








자잘한 먹거리도 정성스레 준비됐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전방위 먹거리 워터 비스켓도 보이고 옥수수, 쇠고기, 토마토, 참치를 베이스로 하는 4가지의 소스도 다소곳이 마련됐다. 과자에서 얹어먹지만 주로 빵에 발라 먹는다.








바삭한 바게트. 올리브를 담은 접시가 눈길을 끈다.








와인 안주로 손색없는 다양한 먹꺼리들이 한 가득이다. 오른쪽 위에 작은 알갱이들은 케이퍼인데 몰타 농산물의 대표 주자 가운데 하나라고.. 살라미와 프로슈토, 치즈를 가득 담은 접시도 있었는데 그건 미처 카메라에 담질 못했다. 와인의 톡 쏘는 듯한 산미는 오른쪽의 차가운 소세지가 풍부한 육기로 감싸주고 뻑뻑해진 입맛은 다시 와인이 상큼하게 되돌려주고, 쫓고 쫓기는 맛의 재미에 어느새 빠져든다.








바게트 위에 토마토와 참치 드레싱을 얇게 바르고 그 위에 올리브를 얹었다. 촉촉한 빵을 베어물 때까진 좋지만 막판에는 손으로 꽉 잡고 이빨로 물어 뜯어야 한다. 그래도 맛은 좋다. 참치와 마요네즈가 둔탁하지 않게 섞였고 어딘가 익숙한 그 맛에는 잘게 다진 바질의 풋풋함이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이것만으로도 훌륭하건만 올리브가 색다른 풍미를 얹어준다. 한낱 핑거푸드지만 맛의 향연이 놀랍다. 살짝 허기가 있는 사람들에겐 더 없이 좋을 요기꺼리.








바삭하게 구워낸 바게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채소 다짐 소스(?)를 얹어냈다. 그 맛이 독특해 열심히 카메라로 내용물을 자세히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여의치가 않다. 파, 양마, 당근까지는 육안으로 알겠고 입으로는 살짝 고기 국물맛이 나는 것 까진 알겠는데 나머진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까짓 안주꺼리에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는건 아닌가 모르겠다. 그런가?..








산드라의 숨가쁜 설명이 끝난 뒤 모두들 주거니 받거니 와인을 나눠 마신다. 산드라의 특별 서비스를 포함해 이날 총 17병의 마개를 땄으니 한 사람당 한 병 이상씩의 와인을 마신 셈이다. 이것저것 골고루 맛은 봤지만 이러쿵 저러쿵 입을 놀리는 것이 부담스럽고 사실 그 느낌도 아직은 모호하다. 와인 맛의 각성도 쉽지 않고 그 경계를 구분하는 입맛의 기준도 아직은 없다. 꼭 그래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모호한 맛의 경계를 시시콜콜 논하진 않으련다.








수퍼마켓의 5유로 짜리 와인 앞에서도 손길이 주저되는 것에 비하면 이날의 지출은 턱없이 비싼 것이지만 단지 병입된 와인의 가치만이 아니라 제법 맛난 안주들과 공간의 독특함, 그리고 과묵했던 일행들과 어느새 잔을 부딪치며 왁짜하게 떠드는 재미에서 와인에(나아가 모든 알코홀에) 기대하는 궁극의 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그 묘미에 열광하는 이들은 때론 아래 포즈로 표현을 대신하기도 한다.








독일서 온 미녀 '카리나'와 독일사람처럼 생긴 이태리 청년 '패트릭'.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어섰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 올 때와 달리 갈 때는 분위기가 180도 돌변했다. 카메라 플랫쉬가 터지고 유쾌한 비명이 오가고 전염성 높은 웃음이 좁은 차 안을 흥건히 적셨다.  








와인에서 시작된 인연들은 파쳐빌로 자리를 옮겨 마침내 보드카로 좀 더 강렬하게 다져지고..

이곳에서 2차를 즐기고 3차까지 이어진 끝에 4시 무렵이 되서야 자리가 정리됐다. 오랫만에 달린 하루, 어쩐지 술이 점점 약해져가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술맛을 즐기는 입은 섬세해지고 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음식의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가급적 술과는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 옳지 싶다. 반주로 가볍게 즐기는 술은 식욕은 물론 음식의 맛을 더욱 돋궈주지만 어느 선을 넘어서는 그 순간부터 음식은 섬세한 맛의 결정체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씹어 삼키는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뭐, 경험으로 익히 아는 사실이다. 나도, 당신도.

술에 혹사당하는 입과 몸에 조금 미안함이 없지 않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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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이것이 있어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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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에 대한 단상. 재미로 읽으라. 동의해주면 고맙고.. )

이름하여 해장라면. K-mart에 드디어 고추장과 간장이 들어왔다. 그편에 너구리도 들어왔길래 몇 봉지 사다놓은 것 중 '한 마리'를 잡았다. 반찬도 없이 달랑 저거 한 냄비. 그래도 맛도 좋고 제 역할을 벗어난 임무까지도 훌륭히 수행한다. 이쯤에서 새삼 깨닫는 거지만 술자리의 진정한 완성은 역시 해장이다. 그것이 한 봉지 라면이 됐건 값비싼 생복 지리탕이 됐건 망가진 몸을 원래의 상태로 복구시키는 '의식'에서 술자리는 진정한 마무리가 된다.

그 의식의 '성지'가 한국만큼 발달한 곳도 없지 않을까? 콩나물국밥집, 북어국집, 올갱이국집, 선지국집.. 일일이 열거하는게 어리석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곳의 음주문화는 폭음으로 파열된 몸뚱이를 위한 '복구문화'가 그닥 발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 수 아래다. 물론 고급 위스키와 와인은 숙취의 부작용이 근본적으로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모든 사람들이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술도 아니고. 근사한 대문으로 들어가서 쪽문으로 나오는 느낌..

이점에 있어 해장문화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한다. 허나 우리모두 경험으로 알듯이 한국의 해장국집은 진정 '해장(酲)'하는 집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지난 밤의 상처를 치료하고 그리고 그곳에서 또 다시 새로운 상처에 몰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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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베이 사파이어 JIN  / 사진출처 : 업로드 에러로 주소가 사라져 다시 찾고 있음.. (싸이 블로그에서 퍼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블로그를 찾을 수가 없네. 댓글은 남겼으니 혹시 사진 주인께선 이곳에 오신다면 댓글 좀 남겨주시길..)

작년 이맘 무렵, 오랫동안 살사춤을 춰온 친구가 '홍대에서 최근 각광받는 술의 하나'라며 들고 온 것이 '봄베이 사파이어'였다. 투명한 Jin을 담아낸 연한 비취빛의 병 색깔이 유난히 곱게 느껴졌던 술로 맛도 깔끔해서 이후 진토닉과 함께 가끔 즐기곤 했다. 마침 그 빛깔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 처럼 맑고 깨끗하며 그 빛깔에 취해 정신을 놓게 만드는 곳이 이곳 몰타에도(이런 곳이 지구상에 몇 곳 있지..) 있다는 것을 알았고 드디어 어제 다녀왔으니.. 그곳은 바로 코미노(Komino)다.

섬나라 몰타는 총 3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으며 가장 큰 것이 몰타, 두 번째가 고조, 그리고 이 두 섬 사이에 아주 조그맣게 떠있는 섬이 바로 코미노다. 거의 무인도에 가까운 작은 섬이면서 브래드 피트가 등장하는 영화 '트로이'가 촬영된 장소라는 독특한 이력도 갖고 있어 사람들에게 색다른 호기심을 자극하는 섬이기도 하지만 코미노의 매력은 역시 봄베이 사파이어의 병 빛깔처럼 매혹적인 물빛에 있다. 보라.



액체로 이뤄진 사파이어가 있다면 코미노는 그 주요 원산지의 하나가 아닐까?



그 값진 보석은 몸에 두르기 보다는 보석 자체에 몸을 내던져 온몸을 적시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장식이자 보석을 만끽하는 방법일 터.

집에서 버스를 타고 골든베이를 지나 40분만에 도착한 Marfa Point. 이곳은 코미노는 물론 고조로 출발하는 대형 선박이 출항하는 중간 규모의 항구다. 코미노 행 페리 선착장에 다가가자  텅빈 주차장으로 인해 더욱 휑해 보이는 공간에 작은 매점만 있고 매표소는 없다. 바닷바람과 태양에 찌든 얼굴로 목에는 깁스를 한 50대가 다가와 "코미노?" 하고 묻곤 1인당 10유로(왕복요금)를 내란다.

함께 동행한 플랫의 시니어 지희가 살짝 콧소리를 섞어 깎아달라자 1유로를 깎아 9유로에 배를 탄다. 흥정이 된다는 얘기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근데 꼭 여자가 흥정해야 깎아 준다고..

배는 5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소형이며 오전 9시부터 정시 간격으로 운행하는데 우리는 10시 배를 탔다. 20명 정도의 승객을 태우고 10시 좀 넘어서자 배가 출발했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상쾌했다. 이때 강양 왈 "여기 바람은 끈적임이 없네? 대개 바닷바람은 소금기를 머금어서 끈적이기 마련인데.." 아마도 이는 습하지 않은 지중해 기후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이날의 가장 큰 실수는 김군이 챙긴 Video Camera의 테이프가 전에 파워보트를 담은 테이프였다는 점. 이날의 기록은 결국 미놀타 카메라의 몫으로만 남고 말았다. (강양으로부터 '꾸사리' 엄청 먹고..)



약 15분의 짧은 항해를 마치고 배는 코미노, 정확히는 블루 라군(Blue Lagoon)에 도착했다. 물 빛깔에 모두들 시선을 떼지 못한다. Blue Lagoon은 '푸른 산호초'라는 뜻으로 애초 이곳이 산호 군락지였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바다 바닥은 모래가 아닌 새하얀 산호 가루. 산호가루는 모래보다 거칠고 굵은 탓에 먼지를 일으키지 않아 시야감이 훌륭한데 푸른 빛깔의 비밀이 바로 거기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지금은 산호가 없는건가? 우리로선 알 수 없다. 다만 집근처 스킨스쿠버 클럽에선 코미노 스쿠버 투어와 강습생을 모집하는걸로 봐서 그래도 일부 산호가 섬 어딘가에 자라고 있지 않을가 추측할 뿐. 그러나 지금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



살짝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어디서 바라봐도 물 빛깔은 매혹적이다. 파라솔이 끝나는 모서리 지점이 승객들이 내리는 선착장. 이미 도착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우리처럼 버스와 배를 갈아 타가며 온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자신의 보트나 요트, 또는 슬리에마, 발레타 등에서 출발하는 전세 여객선이나 보트를 타고 온 사람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파라솔과 비치의자는 모두 유료이며 각각 5유로의 요금을 받는다. 저 뒤로 보이는 큰 섬이 고조다.

물 속에 몸을 담그자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물이 차다. 그간 물놀이를 즐겨온 클럽비치나 집근처 수퍼마켓 앞 바닷물의 수온과 확실히 구별됐다. 내리 꽂히는 뜨거운 태양을 피해 있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을 듯 싶었다. 실제로 그늘 하나 없는 바닥에 앉아 있다보면 몸은 금방 달궈졌고 이를 식힐 방법은 바닷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 말고는 달리 없다. 그러니 기꺼운 마음으로..^^



하지만 이곳이라고 결코 모든 것이 매혹적이지는 않다. 먼 옛날 화산 폭발로 생겨난 섬인 탓에 용암이 물과 만나 갑자기 식어버린 접경은 단단하고 날카로운 현무암으로 가득 덮혀있다. 슬리퍼 없이 오갈 경우 발바닥에 전해지는 압력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고 균형을 잡으며 걸어야 한다.
(아래 오른쪽 위 사진)

쉴 곳이 마땅치 않은 것도 문제. 이미 '업자'들이 비치의자를 깔아 점령해놓은 곳(그나마도 매우 협소)을 피해 자리를 잡다보면 결국 경사진 울퉁불퉁 현무암 바위에 자리를 잡고 눕는 수 밖에는 없다. 물론 그늘 한 점 없다. 그럼에도 서양 친구들은 따가운 햇살을 기꺼이 즐긴다. 우리로선 도무지 엄두가 안나는 일이지만.. 우리는 우산 3개를 준비해 왔고 하나씩 펴든 뒤 첫 번째 사진의 누워있는 언니들 옆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매점의 가격은 한국과 달리 바가지 상혼은 심하지 않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미 볶음밥, 사과, 맥주, 과자를 다 싸들고 온 덕에 안사먹어봐서 가격은 모르겠다.



집에 돌아갈 시간. 6시가 마지막 귀환선이지만 역시 사람들은 5시 귀환선을 타기 위해 대거 몰려들었다. 과연 한 배에 이 모든 사람들이 다 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6시 배로 밀려버리면 어중간한 그 사이를 오로지 태양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선착장을 가득 메운 이들 역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페리사는 주말의 승객운송패턴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2대의 페리를 준비해 그 많은 사람들을 모두 태운 것. 그 센스에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배는 사람들로 빈틈없이 채워졌고 우리는 배의 지붕으로 이어진 작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가장 전망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시동이 걸리고 어지러운 요트 사이를 뚫고 배가 나아갔다. 수평선을 향해 기울고 있는 태양은 그러나 여전히 뜨거운 햇살을 쏟아냈고 피부에 와닿는 따가움은 속도를 더할 수록 세차지는 바람이 식혀줬다. 그런데 갑자기 승무원이 올라와 "배가 기울었으니 반대편쪽으로 앉아달라"고 한 마디 하고는 내려가는게 아닌가? 혹시나 우리를 끌어내리려는건 아닌가 순간 긴장했었는데.. 다시 한번 속으로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우린 서둘러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페리는 올 때와 달리 갈 때엔 서비스로 코미노 섬의 절경을 잠시 감상할 기회를 준다(그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박수)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흔들리는 배 위에서 올려다보는 절경은 그런대로 볼만 하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해저 화산의 폭발로 만들어진 기이한 조각품들, 오랜 세월 물과 바람으로 다듬어낸 표면, 그 밑에 펼쳐진 눈부신 바다와 비경에 환호하는 매혹적인 지중해의 여성,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을 일상으로부터 뛰쳐나오게 만드는, 기꺼이 받아들일 유혹이 아닐런지..


 


그가운데서도  우리에게 환호를 선사하며 일상의 탈출을 도모케하는 진정한 유혹은 바로 아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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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몬 한 조각 띄운 봄베이 JIN 한 잔과 더불어..

Posted by dalgonaa
한국에 있을 당시, 무화과라면 그동안 말린 것만 먹어왔다. 대략 십 몇년 전, 룸살롱에서 일했던 어떤 아는 형이 '안주꺼리'라며 가져다 준 것이 무화과였고 그때 무화과를 처음 맛봤다. 쫄깃한 식감도 좋았고 몸에 좋은 설탕을 쪼려 엉긴듯한 과육도 달콤하니 별스러웠고 씹을 때 마다 톡톡 터지는 씨알은 먹는 재미마저 안겨줬다. 세상에 이런 먹거리도 있구나 하고 신기해했는데 어느덧 그때를 떠올리며 그것의 원조라 할 말리지 않은 무화과를 이곳에서 싫컷 맛보고 있다.

이곳에서 맛보는 무화과는 자두만한 크기로 갓 따내 촉촉하다. 껍질은 연두색을 시작으로 익어가면서 검은 자줏빛을 띄는데 정열적인 색감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여타 과일에 비해 썩 매력적인 모습은 아니다.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는데 그냥 씻어서 껍질째 먹는다. 잘 익은 놈은 특유의 단내를 살짝 풍기기도 하고 손으로 만지면 말랑말랑한 촉감이 식욕을 돋궈준다. 오래 둬서 너무 익어버린 것은 당도도 훨신 높고 껍질도 연해지며 이리저리 구르다 터져 결국 끈쩍한 과즙이 흘러내리기도 한다. 그 느낌이 썩 좋지는 않지만 그 맛은?..  아~주 좋다.



>> 볼품없는 모습, 그러나 한 번 맛을 보고 나면 생각날 때 마다 입안에 침이 고이게 된다. 말캉하게 씹히는 첫 식감이 입안을 즐겁게 하고 곧 혀를 열심히 움직여 바사거리며 터지는 씨알을 찾아내 톡톡 씹는 재미도 은근하다. 키위의 씨알보다 조금 더 바삭한 느낌.

영어 이름은 Fig라고. 학원 수업시간에 선생으로부터 '몰타 역시 지중해에 속한 바, 무화가가 지천으로 널려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간 학원을 오가며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남의 집 담너머의 그 나무들이 무화과 나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실제 이곳에는 무화과 나무가 많다. 심지어 지난 번 자물통 고장으로 집에도 못들어가고 길거리를 헤맬 때 담을 넘어 자라고 있는 무화과를 길에서 직접 따먹기도 했다. (주인이 목격했다면 성을 냈을까? 알 수 없다)

익어서 떨어진 무화과는 때론 사람들의 발에 밟혀 개똥과 더불어 길바닥을 시커멓게 더럽히는 주범의 하나기도 하다. 지난 번 골든베이에 놀러갔을 때 언덕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던 것 역시 무화과였다. 아마 지금부터 가을사이에 골든베이의 언덕에 간다면 군락으로 자라고 있는 무화과를 두려운 눈치 살피지 않으면서 맘껏 따먹을 수 있을테다. 물론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이 비단 우리만은 아닐테니 그 기회의 확률도 줄어들겠지만..



>> Golden bay 언덕의 무화과 군락. 이미 동작빠른 누군가 다 걷어가지 않았을까.. 흑..

무화과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지자 역시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에 얽힌 얘기들이 속속 튀어나온다. 그리스에서 신들이 뛰어놀았다던 시절, 술의 신 바쿠스(디오니소스)는 무화과를 가까이 하고 즐긴 덕에 특유의 정력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고 반면 기독교에선 사과와 더불어 원죄의 상징으로 묘사되곤 한다.

무화과 역시 사과와 더불어 선악과(善惡果)의 하나였던 모양인데, 아무튼 이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요즘엔 '하와'라고 부르는데 어찌 부르건)가 그 순간 육체의 부끄러움에 눈뜨면서 서둘러 사타구니를 가리게 되고 이때 사용된 잎이 무화과 잎이다. '어렸을 적 바라보던 그림의 그 '부분'을 안타깝게 가리고 있던 몹쓸 이파리가 그것이었었군..' 이런저런 질곡을 거쳐 무화과는 다산의 상징이자 욕망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는데 룸살롱과 무화과의 만남이 어쩐지 우연만은 아닌 듯 싶다.  

이런 이야기도 있단다. 1935년, 나운규가 감독한 영화의 제목이 또한 '무화과'라고. 사랑하던 여인이 떠나자 사내는 절망에 젖어 지내게 되고 뒤늦게 여인이 돌아왔으나 사내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무화과같은 사내가 되어버렸다는, 오늘날 보자면 참으로 유치한 제목과 설정이지만 당시로선 꽤나 세련된 은유였을 터. 실제 먹거리로서가 아닌 관념으로서 소비하는 무화과는 그 자체로 이국적인 매력을 풍겼을테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 영화 '무화과' 사진.

이밖에도 무화과에 얽힌 숱한 이야기가 있지만 다 비슷비슷한 동네의 이야기들이다. 가령 클레오 파트라가 좋아했던 과일이 무화라거나.. 그녀가 어디 무화과만 좋아했겠는가만은.. 앞으로 지중해 언저리를 돌아다니다 주어듣게 될 재미난 얘기가 있으면 그때 더 소개키로 하고.

근데 무화과가 꽃 없이 맺히는 열매라는 사실을 모르는건 아닐 터. 기실 무화과는 그 자체가 열매가 아닌 꽃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뭐가 옳건 그건 종(種)학자들이나 관심가질 얘기고 우리는 맛있는 무화과만 즐기면 되겠다. 국내에서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무화과를 재배하나보다. 근데 가격이 만만찮다. 인터넷 가격을 보니 4kg이 45,000원. 1kg에 11,000원인 셈인데 이곳에선 같은 무게를 3,500원 정도에 사먹는다. 1/3가격에 먹는 셈.



>> 말랑말랑한 과육이 보는 것 만으로도 식욕을 돋군다. 비주얼을 떠나서 무화과는 실제로 디저트보다는 애피타이저(혹은 Starter)로 애용된다고. 많이 드시라. 그 말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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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가 말했다.

"나 없이 잘 들 살았냐? 외국물 먹으니 좋다고 떠들더니만 이제 나 없이도 살것제? 하긴 내가 뭔 힘이 있간디.. 지지리도 못생겨서 냄새나 피우고 사람 망신이나 주고 당기는 내가 반가울리가 없겠제.. 그냥 어찌 지내나 구경 한 번 온거시여. 아따~ 몰타 날씨 좋구만. 그럼 계속 들 살아 보드라고, 난 이제 갈랑께.."

"아따 형님 뭔 섭섭한 소리를 그리 다 하씨요?.. 형님 그리움에 밤을 지샌 적이 한 두 밤이 아닝게로.. 퍼뜩 엉덩이 붙이고 앉으씨요. 아따 밖에 뭐하드냐? 언능 형님에게 무화과 실한 놈으로 꼭 짜서 주스 한 사발 드리라잉.. 그나저나 먼길 오시느라 고생했소. 아따 형님 냄새가 장난이 아니구마이.."

"좀 심하제? 어쩌간디? 태생이 이꼬라지로 나부렀는걸.."

"아따 그래도 반갑소잉~ 하기사 형님은 냄새가 좀 나야지라.. 거 며칠 전 독일 베를린이라고, 형님 들어보셨는가 모르겄는디, 아무튼 거기서 온 쬐만한 꼬맹이가 있었는디 난 당최 못알아 보겠소.. 아니 어찌 형님의 탈을 쓰고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요?"

"깡통애 든 아 갸 말하는갑네. 갸는 어쩔 수 없으이. 그래도 그 꼬맹이라도 만나는게 반갑다는 사람 세상에 널렸제. 미원에 푹 담기고 뭣 보댐도 가열을 해서 김치찌게마냥 홀라당 익혔뿔고.. 그게 장기보관땀시로 그런다제? 불쌍한 아이여.. 쯧쯧.. 그나저나 내는 소식도 없고 해서 몰타 사람 다 돼부렀는가 싶었제. 몸은 깜둥이가 다 돼부렀구먼. 여기 햇살이 그리 따가운당가?"

"말 마씨요. 딱 한 시간만 홀딱 벗고 누우면 씨뻘겋게 익업뿌린당께요. 형님도 조심하씨요. 그나 형님은 물 못들어가시겄네. 하기사 비싼 형님이 그깟 짠물에 몸 담그실 일 뭐 있간디요? 내 이미 형님 위해 좋은 물 구해놨소. 형님 멸치랑 친하시제? 내 금마도 불러놨응께 오손도손 얘기나 나눔시로 피로나 푸씨요. 밖에 뭐하드냐? 언능 형님 물 올려라잉~"

"아따 우리 동상 철저하구마잉, 이봐 동상, 자네 알제? 난 뜨거~운 것이 좋당께로~"



"흐미.. 피로가 다 풀린당께로.. 거 비행기란거 탈 것이 못돼부러.. 동상 뭐하는가? 자네도 들어오지 않고?"

"아따 형님, 지는 밥상 차려야지라.. 형님 오랫만에 보니 동상 맘이 참 기쁘요. 그럼 푹 쉬씨요~"


(깜둥이 - 흑인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비속어의 하나. 하지만 본문에선 그 의도와 관계없음^^)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