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온종일 인터넷을 붙잡고 볼로냐의 숙박정보(취사가 가능한 숙소)를 뒤졌으나 결국 마땅한 방을 찾는데 실패했다. 관광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볼로냐는 피렌체나 베네치아, 심지어 베로나의 인기에도 못미치는 도시지만 이곳의 숙박비는 이 모든 곳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비싸다. 우리가 베로나에 머물 때 묵었던 숙소의 경우 첸뜨로(시내 한복판)와 가깝고 주방, 화장실 모두 갖춘 원룸으로 한달에 900유로였는데(이것도 비싸지..) 볼로냐는 이보다 좀 더 작은 원룸이 2,000유로에 근접한다. 더블이다. 가난한(?) 대학생들로 바글거리는 이 도시가 비싼 이유는 대체 뭔지 원..

해서 볼로냐에 최대한 가깝게 접근하자는 생각에 인근의 모데나(MODENA)와 페라라(FERRARA)를 뒤져봤지만 이 역시 실패. 해서 북쪽으로 좀 더 올라가니 처음에 도착했던 베로나여서 결국 그곳에 다시 방을 잡기로 했고 두 달간 머물렀던 데이빗 숙소에 이번 주말에 들어가기로 했다. 데이빗 꽤나 반가워하는 눈치. 왜 아니겠어? 돈이 오는데.. 허나 문제는 내달 1일부터 7일까지 일주일간은 그 방이 사전에 예약이 돼 있는 관계로 다시 짐을 싸서 나와야 하는 상황. 오히려 잘됐다 싶다. 그렇다면 그 전까지 지금의 작업을 최대한 마무리 짓고 무거운 짐은 엘리자베타나 볼로냐 경준의 집에 좀 맡긴 뒤 떠나기 전 까지 그렇게 가고 싶었던 이탈리아 남부를 집중 돌아다니거지. 뿔리아, 시칠리아. 허나 과연 이달 안에 작업을 마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들은 얘기지만 북부의 일부 깍쟁이들은 남부에서 온 사람들을 두고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놀린다나.. 그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 게다가 봄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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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크리스마스, 하루종일 부슬비가 내리고 바람이 제법 불었다. 춥고 비오니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하루종일 집에 머물며 호박전 부쳐먹고 지직 거리는 텔레비전을 보며 그분 오신 하루를 보냈다. 뻬루자에 집도 마련했고 크리스마스도 이제 끝났으니 베로나의 엘리자베따 집에 맡겨놓은 덩치 큰 짐들을 찾아와야 한다. 어른 두 사람이 끌고 짊어지고 각 손에 들어야하는 제법 많은 짐이다. 중요한 내용물들은 사실 이 짐들속에 다 있다. 카메라는 물론 하다못해 고추장, 간장도.

헌데 뻬루자에서 베로나를 가려면 피렌체와 볼로냐에서 각각 열차를 갈아타야 하고 가는데만 무려 6시간에 이르는 엄청난 여정이다. 기차요금만도 두 사람이 왕복하면 100유로에 이르니 우리돈으로 치면 무려 18만원에 이르는 큰 돈. 직선거리로 300km도 안나오는 거리, 돌고 돌아도 기껏해야 서울에서 경주 정도 가는 거리인데 6시간의 여정과 18만원의 왕복요금은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뭔가 새로운 일 때문에 가는 거면야 이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겠지만 단지 짐을 찾아오기 위해, 차 한 잔 마실 시간 없이 서둘러 짐을 챙겨들고 오는데 이 노력과 돈을 들인다 생각하니 아깝다는 얄궂은 심술만 커졌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엘리가 자신의 아우디 승용차로 뻬루자까지 짐을 가져다주는 것인데 그건 우리의 지나친 욕심이고 적어도 피렌체까지만 갖고 내려와 주면 뻬루자에서 피렌체까지 기차요금이 9유로가 안되니 두 사람 왕복요금 36유로만으로 짐을 찾아올 수 있다. 허나 엘리가 피렌체를 오는 날은 1월 8일에나 가능하다는데 그때까지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해서 어제는 이탈리아 기차 노선과 시간을 뒤지며 묘안을 찾아봤지만 뾰족한 수는 찾지 못했고 결국 내일이나 월요일 쯤에 아침 7시 22분 기차를 타고 베로나로 짐 가지러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근데 오늘 아침, 엘리로부터 메일이 왔다. 내일 시에나에 올 예정인데 시에나에서 하루 머물고 다음날인 일요일에 뻬루자를 오겠다는 것이다. 물론 짐을 가지고. 여간 반가운게 아니다. 시간과 교통비 절약은 물론 그 무거운 짐을 이끌고 버스와 기차를 오르내리지 않아도 된다니 다행이다. 다만 엘리가 짐을 차에 실을 때 고생이겠지만 집안 일을 봐주는 아주머니와 합심해서 하면 된다고 하니 아무튼 고맙다.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기분이다 싶어 서점에서 50유로를 주고 커다란 이탈리아 사진책을 구입했는데 이번 일로 그런 멋진 책을 두 권을 더 살 수 있는 생각에 더 즐겁다. (물론 굳은 교통비로 추가로 책을 사진 않겠지만..)

다만 사소한 문제가 있다. 어쩌면 엘리가 우리 집에서 일요일 하루 묵을지 모른다는데 현재 남는 방에 침대는 있으나 시트나 이불이 없기 때문이다. 몰타에서 공부를 마치고 새해초에 우리집에 올 예전 플랫메이트 지희를 위해 조만간 이것들을 준비해둬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당장 엘리가 온다니 서둘러야겠다. 사실 이 집이 구조상으로도, 위치상으로도 모두 훌륭하긴 하지만 집이 좀 춥다. 난방도 가스비가 비싸다는 부동산 말에 잔뜩 움추러들어 화끈하게 돌리지도 않는 상황이다. 벽난로나 난로를 갖추고 장작을 때 난방을 하는 주변 이웃들이 여간 부러운게 아닌데 엘리 오는날 만큼은 난방비 걱정 잠시 끄고 온도 팍팍 올려야겠다. 그나저나 엘리는 최근 전남 편인 엔리코와의 재결합을 위해 노력 많이 했는데 엔리코가 어떤 답을 줬을지 궁금하다. 그녀는 요 며칠 전 엔리코에게 '너의 확실한 입장을 듣고 싶다'고 전했단다. 혹시 비보를 접한 엘리가 잠시 베로나를 벗어나고자 뻬루자 행을 결심한 건 아닐까? 우리의 짐을 고행삼아?  음.. 그러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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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1. 9. 20:21

1박2일의 PARMA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그저께 밤에 돌아왔다. 어제는 그 피곤함 때문에 아침에 성당에서 마련한 이탈리아 수업도 빼먹고 꼼짝없이 집에만 머물렀다. 무사히에 방점을 찍은 이유는 도착은 했으나 그 여정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 파르마에서 만난 노양의 극진한 환대에는 그녀가 우리를 위해 배터지도록 선보인 요리와 그녀에겐 이젠 필요없어진 전기장판과 한국산 먹거리들, 그리고 볼로냐 발 베로나 행 열차티켓도 포함돼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노양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

다음날 아침 11시, 귀국짐을 이끌고 밀라노행 기차를 타야하는 그녀와 함께 집을 나와 파르마역에서 작별인사를 나눈 뒤 우리도 기차에 올랐다. 행선지는 베로나가 아닌 볼로냐. 파르마에서 베로나로 직행하는 기차는 없고 아랫동네인 모데나까지 좀 더 내려가 갈아탄 뒤 다시 베로나로 올라가는 시스템인지라 이왕 그렇다면 좀 더 아랫쪽인 볼로냐까지 내려가 거기서 노양이 우리에게 선물로 준 티켓으로 올라가 경비를 다소나마 줄이자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혹시 환승시간이 좀 남는다면 볼로냐를 잠깐 둘러보는 것도 좋지 않은가? 이탈리아 북부의 정중앙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만들어낸 독특한 환경은 먹거리에도 영향을 끼쳐 이곳만의 독특한 식문화를 가꿔가고 있을꺼라는 근거없는 기대도 볼로냐 행을 거든 배경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볼로냐에 도착해보니 다음 베로나행 기차까지 주어진 시간은 고작 30분. 이왕 왔는데 역 밖까지는 나가보자해서 길을 건너 웬 길거리 중고책 좌판이 크게 열렸길래 그 구경을 잠깐 하고 다시 역으로 돌아왔다. 사실 앞서 파르마에서 볼로냐로 올 때 기차가 이미 30분을 연착해 미리 나와있던 시간 30분을 더해 1시간을 꼼짝없이 서서 대기해야 했던 경험이 끔찍했던지라 열차 출발 몇 분을 남겨놓고 역으로 돌아온 거였는데 베로나로 떠나는 기차가 있어야 할 3번 플랫폼에는 베네치아 행 기차가 버티고 있는게 아닌가?

우리 기차가 1시 48분 기차인데 베네치아 행이 46분 출발이라면 벌써 떠났을리는 없고, 그렇다고 2분 간격으로 같은 자리에서 열차가 떠난다는 것이 어째 논리적으로 가능해 보이지 않고 전광판을 보니 48분 베로나행 열차가 곧 출발한다고 경고등이 깜빡거리고 있고.. 뭔가 큰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사람들을 붙잡고 진상파악에 나섰지만 마음속은 '아뿔싸, 늦었다'!는 직감이 전해졌다.

진상은 이랬다. 볼로냐가 내륙의 중앙이다보니 나름 교통의 요지여서 한 자리에 중앙역과 서부역이 함께 있는 시스템이었던 것. '3W'라는 표시를 마냥 3번 플랫폼이라고만 판단했던 우리의 불찰이었다. 그게 '서'(West)의 사인이었을 줄이야.. 겨우 길을 확인한 뒤 전력질주로 지하도를 거쳐 서부역에 도착했으나 기차는 이미 떠나고 플랫폼은 쓸쓸한 바람에 휴지조각만 뒹굴고 있었다. 아.. 그 허망함이란.. (그 망할 연착은 이럴 땐 또 없단 말인지..)

다음 기차를 찾아보니 저녁 6시 37분이란다. 거진 5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하는 상황. 이왕 이렇게 된거 볼로냐 시내 구경이나 하자고 위로하지만 짐도 만만찮았고 파르마의 노양 집을 나설 때 어차피 기차만 갈아타면서 곧바로 집으로 갈테니 개인위생정비는 집에가서나 하자고 생각해 간단히 세수만 마친 덕에 몰골이 다소 추레한 상태였으니 이것도 여간 신경 쓰이는게 아니었다.


>> 앞서 사진에서 봤듯 30분 사이에 책도 구경하고 피자집서 피자도 한 조각 사먹고.. 그 사이 기차는 떠나고.. 


허나 어쩌겠나? 등 떠밀리듯이 거리로 나설 수 밖에는.. 볼로냐에 대한 간단한 인상기로 마치자. 두터운 구름과 스산한 바람이 허망한 우리의 가슴속을 파고들었지만 중앙 거리의 넘쳐나는 인파는 곧 우리의 시선과 신경을 사로잡았다. 회랑식의 길고 긴 거리(결코 비 맞을 일 없는 이런 식의 길은 주변의 골목까지도 이어지며 그때문에 길은 전반적으로 어둡다. 그런 분위기 탓에 인적없는 골목에선 오랜 시간의 자취를 더듬기에 안성마춤이다), 오른쪽으로는 자잘한 상점들이 쇼윈도를 밝히고 있고 왼쪽은 어설픈 좌판과 거리 공연가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오가는 사람을 피해 걷느라 사색에 젖기 힘든 것이 다소 불편했지만 거의 1km에 이르는 길이는 끊어지는 필름처럼 길 위의 단상들을 겨우겨우 연결시켜 줬다.

베로나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알콩달콩(?) 사랑얘기가 쓰어진 무대였던 만큼 현대에 이른 모습은 그 명성에 힘입은 관광으로 부를 축적한 관광객을 위한 도시같은 느낌, 이를테면 '보여지기 위한' 도시로써 애쓰는 느낌이라면 볼로냐는 시끄럽고 냄새나고 어수선한 것이 오히려 이게 사람사는 곳 같다는 편안함을 줬다. 파르마도 부분적으로나마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규모면에선 역시 볼로냐가 한 수 위다. 파르마 집값이 싸다면 옮길 용의가 있다는 얘기를 노양과 주고받았지만 볼로냐도 싸다면 아마 볼로냐를 선택할 것 같다는..^^ 그런 볼로냐를 방문하도록 기회를 마련해 준 노양에게 다시 한 번 감사. 그녀의 진수성찬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역시 곧 정리해 올려야겠다.


>> 볼로냐 역 앞 횡단보도. 길거리 책좌판 광장으로 가는 사이에 찍은 것으로 이후 정작 볼로냐 시내 구경에 나섰을 때는 카메라 밧데리가 소진돼 시내 사진이 없다. 다시 방문하겠다는 의지를 다지지만 과연 저 길에 다시 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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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6. 05:59
우선, 내일 아침 일찍 밀라노로 떠나야 하므로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집에 들어온지 15분이 지났고 그 15분 전에는 식당에서 안드레아와 그의 여자친구 파올라, 그리고 엘리자베타와 식사를 했고 그 전에는 바르돌리노(BARDOLINO)라고 하는 베로나 북서쪽의 마을에서 열리는 와인축제에서 3병의 와인을 마시고 돌아온 참이었다. 찍은 사진도 많고 이것저것 적을 것도 많지만 피곤땜에 연일 미뤄지고 있다.

아무리 늦어도 수요일엔 우리들의 숙소로 들어갈 듯 싶다. 그리고 오늘 안드레아와 만나 바로 그 수요일부터 이탈리아어 개인 레슨을 시작하기로 했고 강습비는 시간당 20유로(한화 3만원)로 잠정 확정했다. 그리고 그와 그녀의 여자친구가 진행하는 교회에서의 무료 이탈리아어 강좌는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에 열린다고 하니 그것도 참여할 예정이다. 이미 한 번 그들과 현장을 방문했고 우리가 한 때 안산 원곡동에서 외국인 노동자들 자녀들을 대상으로 미디어 교육을 할 때와 그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토요일은 오전에 수업이 진행되는데 마침 수업을 마치고 나면 노숙자들을 위한 급식행사가 바로 이어지므로 어쩌면 이들과 함께 이 활동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어제 다녀온 파도바는 이태리에서 로마 다음의 두 번째 종교 도시라고 한다. 그래선지 길거리의 기념품이라곤 모조리 수도승 조각과 예수의 초상화가 전부. 하지만 우리를 놀래켰던 건 중앙 광장에 펼쳐진 어마어마한 규모의 시장이었는데 채소와 육류의 다양함과 양을 보고 그만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탈리아 음식의 저력을 진정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공간으로 시간되는데로 사진을 정리해 올릴 생각.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한국에서 먹는 것들을 마찬가지로 이곳 시장에서처럼 연출해 놓는다면 그 다양함과 질, 기발함에서 결코 뒤떨어지진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진정으로 부러웠던 것을 그것을 판매자와 소비자, 더 나아가 관광객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일 터.

오늘 다녀온 바르돌리노는 큰 호수를 끼고 있는 아주 살기 좋은 마을이다. 이맘 때면 늘 와인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호수의 가장자리 길을 따라 대형 좌판이 펼쳐지고 좌판마다 저마다의 특색있는 먹거리를 내놓고 손님을 잡아끈다. 그 진기한 풍경들을 구경하고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들은 동시에 와인을 잔으로, 또는 병으로 팔며 사람들을 취기로 몰아 넣었다. 우리도 결국 3병의 와인을 비웠는데 역시 술은 낯 술이 최고더라는..

오후 들어 거세진 바람, 그러나 여전히 따듯한 햇살, 그리고 무르익어가는 가을 낙엽이 연출하는 노란 색조에 더해 오후 무렵의 석양이 더해지면서 분위기는 더욱 달라올랐고 사람들의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다. 이해할 수 없었던 점 하나는 80년대 미국 팝송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는 점이다. 지역의 독특한 먹거리를 안주삼아 마시는 바르돌리노 산 와인에 곁들어지는 음악이 마돈나, 신디루퍼, 엘비스 프레슬리라니..

내일은 밀라노! 한인 민박을 예약해놨고 도착하는대로 한국식료품점을 우선 수소문할 계획이다. 밀라노 다녀와서 이런저런 사진 정리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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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4. 08:32


'스플리쯔(Spritz)'는 베로나, 넓게는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즐기는 음료다. 사실은 칵테일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와인잔에 물과 화이트 와인, CAMPARI라고 하는 술을 섞어 오렌지 한 조각과 얼음을 담가내면 되는 간단한 술인데 하루에 한 잔은 거의 마시고 있다. 지금 두 잔을 마시고 들어왔더니 살짝 알딸딸하다. 

베로나 4일째, 근황을 전하자면 이렇다. 절대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 엘리자베타의 집에서 여전히 머물고 있으며 이런저런 생소한 경험들을 하고 있다. 이는 바꿔말하면 이곳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이에 대해선 천천히 얘기하기로 하고, 우선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과 언어다. 엘리자베타의 집은 훌륭하다. 굉장히 넓은 집은 아니지만 갖출 것은 모두 갖춘, 성공한 캐리어 우먼의 멋진 집이다. 출판업계에 일하는 그녀의 직업답게 집에는 온갖 종류의 책이 넘친다. 시샘하게 만드는 주방에 깨끗한 화장실도 두 개다. 우리가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는 집이지만 그녀에게도 사생활은 있는 법.


마냥 그녀의 집에 머문다는 것은 그녀의 소중한 삶의 일부를 우리가 점령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슬슬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니 서둘러 집을 구해야 한다. 사실 그녀도 은근히 원하는 눈치. (그런 그녀의 속내가 오히려 반갑다)

베로나가 몰타처럼 넓은 공간에 저렴한 집은 없지만 그래도 이러저런 임대광고는 제법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비자문제 때문에 몇 개월 이상의 임대계약을 망설이고 있다. 우선은 한달에 900유로(한화 150만원)에 이르는 비싼 레지던스에서 머물 예정이다. 이 한 달 동안 비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알아보고 이탈리아 취재기행의 계획을 잡을 예정이며 이후 좀 더 저렴한 집에 대한 정보를 찾을 것이다. 일이 잘 풀린다면 한 달 후엔 500유로 이하의 집으로 옮기지 않을까 싶다.

우선 토요일인 오늘은(날이 밝았으므로) 엘리자베타와 함께 VERONA로 부터 대략 한 시간 거리의 PADOVA를 방문할 예정이고 월요일엔 역시 그녀를 따라 MILANO를 다녀올 예정이다. PADOVA는 그녀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도시로 그녀는 부모님을 만나고 우리는 시내를 구경한 뒤 그날 당일 돌아올 것이고 MILANO에선 하루 묵을 예정. PADOVA도 굉장히 멋진 도시라는데 우리가 그곳에 거는 기대는 한국식당에서의 식사와 식당 주인을 통해 고추장 판매처를 수소문해 고추장을 사오는 것이다. 나중에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베로나에 산재한 식당에서 즐기는 식사는 정말로 대부분 맛이 좋다. 그러나 열 접시의 훌륭한 스파게티가 한 스푼의 고추장을 못당하는 것이 우리의 유난스런 입맛이니 어쩌랴.. 

그 다음 문제는 언어다.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해봐도 언어를 모르고선 이탈리아에서 하다못해 음식 한 접시 제대로 주문하기가 어렵다. 단지 스쳐지나가는 관광객이라면 까르보나라를 시켰는데 뽀모도로가 나와도 그 맛이 또한 훌륭하니 우연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며 까탈스럽게 따지지 않겠지만 우리가 그 입장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에게 좀 더 구체적인 소통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해서 오늘, 일벌레인 엘리자베타의 성실한 중재로 만난 사람이 바로 안드레아다.


왼쪽이 엘리자베타, 오른쪽이 안드레아. 엘리자베타의 단골 미장원의 또 다른 단골 손님인 안드레아는 미장원 주인 클라우디아의 중개로 소개받았으며 그는 베로나 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했다. 우리는 카푸치노를 마셨고 저 두 사람은 에스프레소를 거의 원샷하다시피 마셨다. 이탈리아어 개인 교습이라는 주제를 가운데 놓고 우리는 안드레아로부터 궁금한 점을, 안드레아는 우리에게 궁금한 점을 서로 묻고 답했다.

안드레아는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희소식을 전하기도 했는데 마침 성당에서 운영하는 무료 이탈리아어 강좌가 일주일에 2회 열린다는 것. 그 수업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리고 그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동시에 자신 또한 그곳에서 자원활동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에게 우리는 어쩌면 남다른 경험의 기회일 수도 있을테다. 이 자리에서 엘리자베타는 직업을 찾고 있는 안드레아에게 (이제야 얘기하지만 그녀는 GIOUNTI라고 하는 출판사 겸 서점의 중역이다) 안드레아가 스페인어와 러시아어를 구사한다는 점을 높이 사 그에게 취업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강습비 얘기는 엘리자베타가 이탈리아어로 먼저 안드레아에게 물었다. 안드레아는 선뜻 답을 내놓지는 못했고 이런 경우가 자신에게 처음이니 우선 여자친구와 함께 상의하겠다고 한다. 그러라고 하면서 엘리자베타는 자신의 집에서 일주일에 3번 와서 청소를 도와주는 필리핀 여성 레오노르의 경우 시간 당 7.5유로(11,000원)의 돈을 지불하고 있며 그 금액의 더블은 어떻냐는 1차 제안을 던졌다.

이는 우리나 안드레아,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제안이었다. 왜냐면 누구도 기준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당 20유로 안쪽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사실 우리가 하기에 따라 그 시간을 훨씬 넘겨 수업을 이끌 수도 있다. 만나본 안드레아는 매우 성실해 보였으며 우리와 우리의 계획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점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뒤 중매역할을 한 엘리자베타는 자신의 일을 위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리는 안드레아와 함께 카페 옆 대학건물로 이동해 그곳의 시설과 도서관 이용방법을 전해듣고 길 건너 편, 즉 우리가 아마도 한 달간 머물게 될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공용 자습실(?)도 소개받았다. 이 공간이 무척 흥미로웠는데 대학부속건물은 아니고 베로나 시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안에는 그저 형광등과 테이블, 의자가 전부이며 누구나 와서 자신의 책을 보거나 신문을 보고 가면 그만이다. 안쪽 구석에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중이었으며 분위기는 꽤나 엄숙했다. 사진에 담진 못했지만 밖에서 담배피던 신장 190에 이르는 사내는 거의 키아누 리브스의 판박이어서 김군 마저 매료시켰다는..


날씨는 제법 맑았으나 유난히 바람이 쎄서 추위를 느낀 하루. 누구의 시선없이 맘 편하게 머물 집이 당장 없다는 것은 정말이지 큰 스트레스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절감한 하루다. 집과 언어, 이 두 가지를 위해 요 며칠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아직 확실해진 것은 없다. 당장 한 달간 기거할 집은 거의 정해졌지만 임대료가 너무 비싸 한 달 후엔 새로운 집을 찾아 옮겨야 한다. 이탈리아어 강습도 아직 무료강좌를 나가보지 않아 어떤지 정확히 모르겠고 개인교습도 강습비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과연 얼마 동안을 배워야 우리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지 아무도 모른다. 거기에다 비자의 불안정함까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낯선 땅 베로나에서 조금식 인연을 넓혀가고 있으며 그들 모두 우리에게 적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안드레아가 그렇고 세인트 토마스 카페의 리자가 그렇고 당연히 엘리자베타가 그렇다. 이 모든 것이 행운이라면 그 행운은 과연 어디까지 지속될지, 당장 우리가 걱정하는 집 문제와 언어 문제에도 행운은 따라줄지.. 

아래 사진은 세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의 발코니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마침 손 붙잡고 지나가는 연인 너머로 사랑의 맹세, 혹은 바람을 적은 간절한 쪽지들이 마치 한 폭의 미술작품처럼 붙어 있다. 여담이지만 베로나는 확실히 한국여행자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눈씻고 찾아봐도 한국어 쪽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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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1. 18:47

식사를 마치고 거닐은 밤 거리. 콜레세움을 닮은 경기장과 그 앞에 선 두 사람, 엘리자베타와 엔리코. 모든 것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풍경..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1. 07:45

하루종일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무사히 베로나에 도착했다. 우려했던 짐 분실도 없었고 혹시 집을 못찾을까 했던 걱정도 기우였다. 지금 막 자정을 넘긴 시각, 엘리자베타와 그녀의 전 남편의 극진한 환대속에 맛있는 식사로 배를 가득 채우고 몰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길을 한가롭게 걷다가 OSTERIA라고 부르는 BAR에 들러 즉석에서 조직된 손님들 기타 라이브를 안주삼아 입가심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서 인터넷을 켜니 아주 희미한 신호 하나가 잡히기에 이렇게 몇 자로 안부를 전한다. 사무실, 혹은 집의 컴퓨터로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우리가 느끼는 바를 공유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늘 아쉬운데 오늘은 더 많이 아쉽다. 훨씬 짧은 비행이었음에도 한국에서 몰타로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의 느낌으로 날아온 베로나. 여전히 긴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지만 오늘 저녁에 짧게나마 훑어본 베로나는 우리를 단번에 매료시켰다. 날 밝기를 기다리며..

Posted by dalgonaa
학원으로 왔다가 학원문이 잠겨 다시 우체국으로 되돌아 갔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학원측 사람으로부터 전달받은 것은 그런 내용을 알리는 달랑 문서 한 장. 도대체 언제 어떻게 왔길래 이런 사태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학원측의 안일한 일처리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된다. 아무튼 그걸 되찾기 위해선 버스를 두 번 갈아타가며 집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Marsa라는 곳으로 가야하는데 우체국은 오후 1시까지만 문을 연다고 하니 천상 내일 아침 학원을 제끼고 책을 찾으러 가야할 듯..

서울의 동생이 보내준 것은 책. 무려 10권이 넘는다. 그 무게만도 10킬로에 이르며 이걸 짊어지고 다닐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그 전에 몽땅 읽어치워 머리속에 집어넣어야 겠지만 아무래도 가능한 수준에서 책을 이끌고 다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현재 향후 일정에 대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9월 사이로 터키를 한 번 짧게 여행하고 다시 몰타로 돌아와 짐 챙겨들고 이탈리아 베로나로 넘어가는 것이 그것이다. 그곳에 가면 엘리자베타가 기다리고 있고 그녀를 통해 이탈리아 여정(또는 짧으나마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과 도움을 받을 예정이다.

동생을 통해 부탁한 책의 목록은 이렇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 한길사
<문화의 수수께끼> - 한길사
<유럽의 음식문화> - 새물결
 
<죽음의 밥상> - 산책자
<희망의 밥상> - 사이언스 북스
<권력자들의 만찬> - 넥서스 북스
 
<빵의 역사> - 우물이 있는 집
<진기한 야채의 역사> - 눈과 마음
<그림으로 본 음식의 문화사> - 예담
 
<감자 이야기> - 지호
<세팅 더 테이블> - 해냄
<음식의 심리학> - 인북스
 
<미식예찬> - 서커스
<요리소설 맛> - 황금가지
<달콤 쌉싸름한 초콜렛>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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