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아침 8시 10분이면 발코니로 나가는 유리문을 통해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 온 햇빛이 침대 머리맡 흰 벽을 붉게 물들인다. 자다가 깨서 고개만 까딱 세우면 그 햇빛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데 어제 아침엔 9시가 다 되가는데도 햇빛이 비추지 않았다. '날씨가 흐린게로군'하며 슬리퍼를 주섬주섬 신고 문쪽으로 다가가니 그제서야 눈이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불현듯 든 생각이 '비는 소리가 나지만 눈은 소리가 안난다'는 것.

그리고 보니 유럽에 와서 처음으로 맞는 눈이다. 함박눈 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의 눈이 펑펑 쏟아졌고 지붕위에도, 빨래줄 위에도 내려앉았다. 눈을 바라보는 눈이 시원해졌고 내친김에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오늘은 첫눈 소식 못지않게 특별한 날이다. 베로나의 우리 짐을 싣고 엘리자베따가 뻬루자에 오는 날이기 때문. 앞서 얘기했다시피 이로써 20만원에 이르는 교통비를 아끼게 됐고 또한 생활에 필요한 온갖 물건들을 편하게 앉아서 받게 됐으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엘리가 오후 늦게쯤에나 도착할까 싶어 아침일찍 기차로 1시간이 채 안걸리는남쪽의 시골마을 트레비(Trevi)에서 매달 마지막 일요일에 열린다는 골동품 시장을 구경하려 했는데 12시쯤에 도착한다고 해 이 일정은 취소했다. 눈도 오는데 차라리 잘됐다 싶다.

맘만 먹으면 차를 집앞 골목까지 끌고들어올 수 있겠지만 들어오는 길과 달리 나가는 길이 정확히 어떻게 돌아나가는지를 알 수가 없어서 그냥 우리가 종종 이용하는 광장 근처의 수퍼마켓 앞에서 보기로 했다. 뻬루자는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곳이어서 지도가 없으면 길 잃기 딱 좋고 있어도 길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렇게 길을 잃고 헤매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된다. 왜냐면 골목길이 하나같이 멋지기 때문.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게 이곳의 골목길이다. 특히 안개라도 끼면 그야말로 죽음이다.

이런.. 엘리가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 비상등을 켠 차에 다가가니 엘리가 그제서야 알아보고 차문을 열고 반갑게 우릴 맞는다. '차오~ 쪽쪽!' 이탈리아는 두 번에 걸쳐 양쪽에 볼키스를 하는 것이 인사법. 무거운 짐을 차에 싣는게 쉽지 않았을 텐데 용케 싣고 왔다. 뻬루자는 20년 만에 처음 방문이라는 엘리, 그녀는 이곳 호텔을 예약했고 크리스마스 첫 주서부터 연말 휴가중인 그녀는 뻬루자에 이틀 정도 머물 예정이다. 당연히 이날 저녁은 우리집에서 먹어야 한다. 해서 김군은 이미 전날 육계장을 한 솥 끓여놨다. 고기와 무를 제외하고 주요 건더기들이 많이 빠졌지만 그래도 맛은 제법 난다.  


차에서 내리며 외투를 서둘러 걸치는 엘리자베따. 차문을 열어놨길래 쿵 하고 닫아줬더니 키 꽂은 채로 문을 닫아두면 얼마후 자동으로 문이 잠겨버리는 낭패가 생긴다나.. 한쪽 문은 열어뒀다.

저녁 7시에 광장에서 만나 먼저 아페리띠보 한 잔 하기로 하고 헤어진 뒤 짐을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헌데 이미 며칠 째 살고 있는 집이지만 온갖 살림을 담은 짐을 끌고 들어서니 왠지 이제서야 진짜 살 집에 들어서는 기분이다. 꽁꽁 닫아둔 짐을 풀어내니 좁은 주방겸 거실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휴지도 나오고 잘 싸둔 칼도 나오고 겹겹이 포장한 간장과 식초도 나온다. 여벌의 옷들과 책, 특히 귀 후비는 면봉을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샤워하고 난 뒤 물기로 간질거니는 귀를 닦고 싶어 어찌나 쩔쩔 맸는지..ㅋㅋ 텅텅 빈 집안의 수납장에 살림을 쟁여넣고 빈책장을 책으로 채웠다. 다시 걸레를 들고 미처 닦지 못한 곳을 구석구석 신나게 닦아내니 비록 당분간이지만 '이제 우리집이다'하는 실감이 든다.


보기엔 저래도 상당히 많은 짐. 무게도 꽤 나가서 짧은 거리를 지고 끌고 오는데도 땀이 다 났다.

집 구경 잠시 해볼까?

거실겸 주방. 몰타의 주방만 저거 딱 두 배였다. 그래도 전자렌지를 제외하고 갖출 건 다 갖추고 있으니 딱히 아쉬운건 없다. 앞집과 창문을 마주하고 있어 얇은 머플러를 응급으로 둘러쳐놨다. 가끔 대머리 총각이 창문을 열고 빨래는 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제법 넓직한 화장실겸 욕실. 창문을 갖추고 있어 불쾌한 냄새나 습기를 쉽게 뺄 수 있다는 점이 장점.

화장실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제법 고풍스럽다. 달리 생각하면 저 수많은 창문에서 우리집 화장실을 훔쳐볼 수도 있다는 얘기. 허나 밤이 되서 불켜지는 창문은 고작해야 2개 정도. 많은 집들이 비어있다. 3층으로 구성되어 총 4가구가 살 수 있는 우리집 건물도 지금은 달랑 우리만 살고 있다. 뻬루자가 정상을 향해 계단식으로 지어진 도시인 탓에 우리집의 2층 높이가 저 앞집에선 1층이 된다.

김군의 '집무실'로 불리는 건넛방. 옷장, 책장, 책상을 두루 갖췄음은 물론 하얀 레이스가 달린 창문도 있는 아담한 방이다. 여기에 한국인 민박을 쳐볼까 진지하게 고민중 ㅋㅋ. 한국에서 가족이나 지인들이 오면 제공할 방이기도 하다. 그럴듯해 보이는 침대지만 스프링 탄력이 고무줄 같아서 허리 안좋은 사람은 작살날 수 있는 무서운 침대. 책상 위에 뜯지않은 빠네또네가 놓여있다. 크리스마스 끝나자마자 1.5유로라는 놀라운 가격으로 대폭 떨어졌길래 냉큼 하나 사왔다. 살 빵빵 찌고있다. 


이른바 안방. 커다란 옷장도 두 개나 있고 책상과 책장도 저처럼 구성지게(?) 갖춰져 있다. 싱글침대 두 개를 붙여 쓰는데 사진에 안나온 왼쪽 구석탱이에 난방기가 있어 강양은 그쪽에 꼭 붙어 잔다. 집이 전반적으로 추운편이지만 마침 베로나에 있던 전기장판도 왔으니 이제 김군도 좀 따끈하게 잘 수 있게 됐다. 밝은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발코니. 자면서 별도 볼 수 있고 저 멀리 아씨지의 아른거리는 불빛도 볼 수 있다는 점이 이 방의 강점.

미처 사진으로 담지 못했지만 엘리자베따를 위해 육계장에 더해 비빔밥을 만들었다. 시금치와 호박, 당근, 버섯을 볶고 색색의 계란지단도 부쳐냈고 무생채도 곁들였다. 색색의 그 모양이 꽤나 신기하게 보였을텐데 아니나 다를까 감탄 연발이다. 매운 맛을 두려워하는 그녀지만 참기른 살짝 둘러 비벼줬더니 맛있다며 잘 먹는다. 특히 육계장은 칼칼한 맛에도 불구하고 고기국물의 깊은 맛이 이탈리아에서 또르뗄리니를 넣고 즐기는 브로도(Brodo)와 흡사하다며 싹싹 비운다. 브로도는 이탈리아의 육수다.

중국상점에서 마침 두부를 팔길래 3모(한 모에 1,300원 정도)를 사둔게 있어 이걸 팬에 튀기고 다시 양념장을 만들어 자작하게 붓고 조렸다. 엘리는 평소 '두부는 '무미(無味)'한 맛이라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맛있다'며 덥썩덥썩 잘 집어먹는다. 간장양념의 맛에 엘리도 이제 조금씩 중독이 돼가고 있으리라. 팩소주가 하나 있어 이왕 벌어진 한국밥상, 팩소주를 하나 깠다. 차갑게 식혀놨더니 한 잔 맛을 본 엘리는 별로 쎄지 않단다. 차가우니 당연하지. 먼길을 마다않고 와준 엘리에게 보답한 오늘의 식탁, 사실 그간의 도움을 떠올리면 이것도 부족하지 싶다. 우래옥표 불고기를 한 번 먹여봐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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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크리스마스, 하루종일 부슬비가 내리고 바람이 제법 불었다. 춥고 비오니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하루종일 집에 머물며 호박전 부쳐먹고 지직 거리는 텔레비전을 보며 그분 오신 하루를 보냈다. 뻬루자에 집도 마련했고 크리스마스도 이제 끝났으니 베로나의 엘리자베따 집에 맡겨놓은 덩치 큰 짐들을 찾아와야 한다. 어른 두 사람이 끌고 짊어지고 각 손에 들어야하는 제법 많은 짐이다. 중요한 내용물들은 사실 이 짐들속에 다 있다. 카메라는 물론 하다못해 고추장, 간장도.

헌데 뻬루자에서 베로나를 가려면 피렌체와 볼로냐에서 각각 열차를 갈아타야 하고 가는데만 무려 6시간에 이르는 엄청난 여정이다. 기차요금만도 두 사람이 왕복하면 100유로에 이르니 우리돈으로 치면 무려 18만원에 이르는 큰 돈. 직선거리로 300km도 안나오는 거리, 돌고 돌아도 기껏해야 서울에서 경주 정도 가는 거리인데 6시간의 여정과 18만원의 왕복요금은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뭔가 새로운 일 때문에 가는 거면야 이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겠지만 단지 짐을 찾아오기 위해, 차 한 잔 마실 시간 없이 서둘러 짐을 챙겨들고 오는데 이 노력과 돈을 들인다 생각하니 아깝다는 얄궂은 심술만 커졌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엘리가 자신의 아우디 승용차로 뻬루자까지 짐을 가져다주는 것인데 그건 우리의 지나친 욕심이고 적어도 피렌체까지만 갖고 내려와 주면 뻬루자에서 피렌체까지 기차요금이 9유로가 안되니 두 사람 왕복요금 36유로만으로 짐을 찾아올 수 있다. 허나 엘리가 피렌체를 오는 날은 1월 8일에나 가능하다는데 그때까지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해서 어제는 이탈리아 기차 노선과 시간을 뒤지며 묘안을 찾아봤지만 뾰족한 수는 찾지 못했고 결국 내일이나 월요일 쯤에 아침 7시 22분 기차를 타고 베로나로 짐 가지러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근데 오늘 아침, 엘리로부터 메일이 왔다. 내일 시에나에 올 예정인데 시에나에서 하루 머물고 다음날인 일요일에 뻬루자를 오겠다는 것이다. 물론 짐을 가지고. 여간 반가운게 아니다. 시간과 교통비 절약은 물론 그 무거운 짐을 이끌고 버스와 기차를 오르내리지 않아도 된다니 다행이다. 다만 엘리가 짐을 차에 실을 때 고생이겠지만 집안 일을 봐주는 아주머니와 합심해서 하면 된다고 하니 아무튼 고맙다.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기분이다 싶어 서점에서 50유로를 주고 커다란 이탈리아 사진책을 구입했는데 이번 일로 그런 멋진 책을 두 권을 더 살 수 있는 생각에 더 즐겁다. (물론 굳은 교통비로 추가로 책을 사진 않겠지만..)

다만 사소한 문제가 있다. 어쩌면 엘리가 우리 집에서 일요일 하루 묵을지 모른다는데 현재 남는 방에 침대는 있으나 시트나 이불이 없기 때문이다. 몰타에서 공부를 마치고 새해초에 우리집에 올 예전 플랫메이트 지희를 위해 조만간 이것들을 준비해둬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당장 엘리가 온다니 서둘러야겠다. 사실 이 집이 구조상으로도, 위치상으로도 모두 훌륭하긴 하지만 집이 좀 춥다. 난방도 가스비가 비싸다는 부동산 말에 잔뜩 움추러들어 화끈하게 돌리지도 않는 상황이다. 벽난로나 난로를 갖추고 장작을 때 난방을 하는 주변 이웃들이 여간 부러운게 아닌데 엘리 오는날 만큼은 난방비 걱정 잠시 끄고 온도 팍팍 올려야겠다. 그나저나 엘리는 최근 전남 편인 엔리코와의 재결합을 위해 노력 많이 했는데 엔리코가 어떤 답을 줬을지 궁금하다. 그녀는 요 며칠 전 엔리코에게 '너의 확실한 입장을 듣고 싶다'고 전했단다. 혹시 비보를 접한 엘리가 잠시 베로나를 벗어나고자 뻬루자 행을 결심한 건 아닐까? 우리의 짐을 고행삼아?  음.. 그러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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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지게 차려놓고 달려보자던 엘리자베타(Elisabetta)와 엔리코(Enrico)와의 술자리는 한 주 미뤄진 오늘에서야 자리를 가졌고 8시부터 먹고 마시기 시작해 6시간이 지난 조금 전 새벽 2시가 되서야 파했다. 장소는 우리 집. 한식을 컨셉으로 한 음식들을 점심무렵부터 준비했고 제시간에 맞춰 온 엘리네는 화이트 와인 두 병을 사왔다. 물론 오전에 장을 보면서 우리는 별도로 레드와인 세 병을 사뒀으니 이정도면 오늘 고지 점령을 위한 탄약은 충분한 셈.  

이 가운데엔 신형병기도 눈에 띄는데 바로 2008년도 이탈리아산 노벨로(NOVELLO-이른바 보졸레누보). 어느새 수퍼의 중앙 통로를 각지에서 올라온 노벨로가 가득 메우고 있으니 그 자체로 탄약상자고 수퍼는 병기창고다. 와인애호가들 사이에 노벨로가 어떻게 인식되고 평가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로선 그해 수확한 포도주의 첫 맛을 즐긴다는 점에 괜한 기대감으로 부푼다. 결국 오늘 돌격에서 노벨로의 뚜껑을 따진 않았다. 4병만으로도 충분한 화력을 발휘했으니까.



 
사진은 이탈리아 중부 움부리아(Umbria) 지방에서 생산한 화이트와인이다. 과일향이 풍부하고 달콤시원한 맛이 김군을 단박에 사로잡았는데 생선을 표적으로해선 백발백중 맛의 매치를 보여줬다. 그 뒤로 엘리자베따와 엔리코. 이날의 힛트 음식은 도미구이로 손바닥만한 도미 두 마리를 간장+물+화이트와인+다시마+마늘+양파+페페론치니+생강+후추+설탕+소금으로 우려낸 국물에 2시간 가량 재웠다가 오븐에 넣고 우려낸 국물을 마져 끼얹어가며 구었고 껍질이 바삭하게 변해갈 즈음 레몬을 두른 접시에 담아 냈다. 위에 이탈리안 파슬리 잎을 따서 듬성듬성 뿌려주니 비주얼이 장난 아니다. 설명이 구구절절인 이유는 이 요리를 못찍었기 때문. 

모양뿐 아니라 생강을 살짝 품은 간장양념과 어우러진 고기의 향이 몸살 날 지경으로 향긋하다. 접시를 식탁 위에 올려놓자 그럴듯한 비주얼에 환호가 터지고 한 젓가락씩 집어든 촉촉한 살점을 먹은 입에선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ㅋㅋ 모양, 냄새, 맛, 모두 성공이다. 요거, 내일이라도 다시 해서 사진으로 필히 남겨야겠다. 구워먹는 생선으로서 도미는 정말 최고 기량의 선수에 하나다. 


덧붙이는 글 : 밀라노는 물론 남부지역도 눈발이 장난 아니라는데 베로나는 비내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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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밥먹을 시간, 모두모두 자리에 앉고 접시에 올라올 요리를 잔뜩 기대하며 연장만 집어들면 된다. 예전엔 저 복잡한 연장앞에서 식욕보단 겁이 앞서곤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엄격한 식사예절이 존재하겠지만 그건 값비싼 고급 식당에서 드레스와 턱시도 입고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고 싶을 때 얘기겠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즐기는 식사자리에선 오히려 그런 것에 연연하게 되면 손님은 물론이거니와 주인도 마음이 조마조마해져 식사 기분을 망치게 된다. 편하게 집히는대로 먹자. 참고만 하자면 접시 양쪽의 연장은 파스타나 고기를 썰어 먹을 때 쓰면 되고 윗쪽의 작은 연장은 간간이 빵에 치즈나 잼, 버터를 발라먹거나 식사 막판 디저트가 나올 때 쓰면 된다.

어이쿠 이런, 벌써 접시에 음식이 담겼네그려. 와인 따르는거 찍어야 한다니까 그새 누가 따라버렸구만. 음식이 다소 싱겁게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사진 못찍은 못난 재주라 생각하고 어쨌든 맛들은 모두 훌륭했으니 하나씩 소개해보겠다. 이태리 가정식, 정확히는 북동부 베네토 주 파도바시에 사는 쟌까를라 여사의 70년 세월이 깃든 손맛이다.

첫 번째 선수 등장.


볼로네제 소스로 맛을 낸 라자냐 선수. 맛도 이름도 널리 알려진 음식이다. 넓직한 팬에 푸짐하게 익혀낸 것을 적당한 양으로 잘라 담아내 주셨다. 접시의 문양이 독특하다. 소스를 보고 생각난거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국내에서 판매하는 많은 종류의 파스타 소스는 대개 볼로네제가 아닐까 싶은데 토마토 소스에 당근과 샐러리, 그리고 고기 간걸 넣어 푹 끓여내면 완성된다. 북부를 상징하는 음식의 하나랄까?

몇 자 덧붙이면 남부는 농사와 수산업이 발달한 반면 중북부는 목축이 발달해서 고기가 풍부했단다. 그러다보니 북부는 프로슈토와 살라미는 물론 치즈를 비롯한 유가공품 발달로 이어져 자연히 음식도 기름진 것이 많은 반면 남부는 밭에서 일궈낸 싱싱한 채소와 생선을 위주로 한 건강식이 주류를 이룬다고. 오늘날 각광받는 이태리 음식이라면 그건 역시 남부다. 가볍고 건강한 식단이 풍요와 부를 상징하는 시대에 왜 아니겠나? 비록 가난으로 멸시받는 남부지만 음식으로 이뤄낸 문화적 자산은 북부사람들도 인정하는 것이 됐다.


대개 알듯이 볼로네제(BOLOGNESE) 소스란 '볼로냐 사람들의 소스'를 말한다. 파스타 전체를 넓게 덮은 고깃점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든든한 포만감이 전해지는데 볼로냐 사람들의 성향이 궁금해진다. (위키에선 볼로냐를 현자의 도시, 비만의 도시, 빨간 도시라고 해놨다. 현자는 볼로냐 대학, 비만은 기름진 식사, 빨간도시는 빨간색의 지붕에 빗대기도 하지만 좌파정치가 높은 인기를 구가한 때문이기도 하다고.)

우리에게 친숙한 맛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미트볼 스파게티가 그것. 사실 스파게티라고 하면 미트볼 스파게티만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아다시피 이건 미국으로 건너간 파스타가 그곳식으로 변형된 형태이고 국내에 파스타가 소개된 것도 미국문화에 딸려온 것에서 시작됐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야 뭐가 됐건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겠지만 원조논쟁의 당사자가 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김치의 원조논쟁이 일었을 때 우리들 스스로 얼마나 분통해 하고 초조해 했던가?

이탈리아 아줌마 아저씨들도 미트볼 스파게티에 열광하는 세계인의 식성까진 참겠는데 스파게티가 미국문화의 산물로 이해하는 지경에선 감정이 확 상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지금이야 지구촌이라는 개념으로 세상이 좁혀지면서 오해가 많이 불식됐지만 엉뚱하게도 가끔은 볼로제네 파스타를 향해 미트볼 스파게티라는 저주스런 산물을 낳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힐난과 시비가 사람들 사이에 종종 일어나는 모양이다. 별걸 다 갖고 다툰다 하겠지만 자신의 것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 이런 다툼은 보는 것도 즐겁고 음식맛도 더욱 좋게 해준다. 

오븐만 있다면 만들어 먹는게 어렵진 않겠지만 라자냐를 수퍼에서 파느냐가 문제. 스파게티와 펜네, 푸실리까지는 우리도 한국에서 봤는데 라자냐까지는 못본 것 같다. 없으면 더 좋다. 반죽해서 밀대로 넓게 밀어 잘라주면 그만. 레시피는 인터넷에 차고 넘치니 알아서..

굳이 묵직한 파스타의 핑계가 아니더라도 와인이 빠질 수 없다. 병에 붙은 저 라벨의 의미는 접어두고 포도주 맛만 얘기하자면 첫 맛이 놀라웠다. 일전에 안드레아 집에서 맛봤던 가정식 수제와인의 야생적인, 그러나 그에 비해 좀 더 안정된 맛이 살짝 감도는 듯 싶어 속으로 '앗? 모든 와인 애호가들이 공통으로 열광하는 맛의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일까?' 하며 맛을 음미했다. 허기진 입맛에 마신 것이어서 어쩌면 혀가 과장된 신호를 보낸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기도 했지만 애써 그 인상을 깎아낼 필요는 없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 다른 여러가지 음식이 겹치면서 와인 자체의 맛 또한 그 사이에 뭍혀버렸고 나중엔 평범한 정도의 맛으로 떨어진 듯 싶어 이 와인의 한계구나 싶었지만 강렬한 첫 인상은 뇌리에 또렷히 남았다. 

다 똑같을 것 같은 김치찌개에 어느 집은 빌딩을 올리고 어느 집은 망하는 이유는 그 미묘함을 대번에 알아채는 깐깐하고 단련된 사람들의 혀에서 비롯된다는 점, 사람들이 군말없이 먹는 것 같지만(일부는 그렇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혀는 어떤식으로든 그 댓가를 지불한 한다는 점을 식당 주인들은 꼭 알았으면 좋겠다. 혀의 응징은 그 식당에 다신 안가는거다. 

라자냐를 먹는 중에 엘리자베따의 첫째 조카 알레산드로(Alessandro)도 도착했다. 동생 루까에 비해 호리호리 하고 식성도 차분한 그는 엘리자베따의 말에 의하면 그의 아빠와는 달리 책도 많이 읽고 사색도 즐기는 타입이라고 한다. 동생 루까는 아직 어린탓도 있겠지만 식성이나 행동 여러면에서 형과는 뚜렷하게 구별된다고. 중요한건 엘리자베따의 오빠, 즉 그녀 조카들의 아버지다. 오늘 식사자리에 엘리자베따의 오빠네는 참석하지 않았다. 엘리자베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렇다. 

 "우리 오빠는 장담컨데 학교 졸업하구서 책은 단 한 권도 읽지 않았을꺼야. 해외여행도 한 번 안하고 사람들과 더불어 즐기는걸 잘 모르는 사람이지. 오픈마인드가 아니니 세계관도 좁고,  동생으로서 여간 답답한게 아냐. 그 멍청한 베를루스코니를 지지하는 것 까지는 봐주겠는데 그런 삶의 태도가 사랑스런 조카들에게 고스란이 물들까 고모로써 걱정이 크다구. 그런점에서 알레산드로가 아빠를 닮지 않은 점은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지.."


요 얘긴 나중에 좀 더 덧붙이고 우선 먹던 길을 마저 가자. 쁘리모삐아또(PRIMO PIATTO-첫 번째 접시로 대개 파스타)를 먹었으니 세콘도를 먹을 차례. 육류나 조류, 생선이 두 번째 접시의 주연이기 마련인데 오늘의 주연은 독특하게도 동시 출연이다. 언뜻봐선 잘 알 수 없는데 뼈를 발라낸 닭고기가 갈은 쇠고기를 품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게 이 요리의 모습이다. 그걸 오븐에서 익혀 칼로 얌전히 썰어내면 되는데 음식점에서라면 모양이 망가가지 않게 조심조심 다뤘겠지만 집에서야 뭐..  바로 저런 모습이 된다.

근데 저게 그냥 닭과 쇠고기가 아니다. 쇠고기는 비뗄로, 즉 송아지 고기이고 닭은 Chiken이 아니라 기니아 포울(Guinea fowl)이라는데 인터넷을 뒤져보니 우리말로는 '뿔닭'이라고 나와있다. 물론 한국에는 없는 닭이다. 아프리카 기니아에서 나던 놈을 잡아다 유럽에서 닭처럼 키워 먹나본데 사진을 보니 좀 낯설긴 하지만 닭이 맞긴 맞다. 

                                                      (사진 : www.wikipedia.org)

육질도 맛도 닭과 거의 똑같다. 알고 먹었으면 혹시 차이가 있을까 싶어 신경을 곤두세웠겠지만.. 그래도 닭고기와 똑같다 생각했을 듯. 요리 자체는 송아지 고기를 갈아서 소금, 후추, 파마산 치즈, 계란 등으로 버무려 뼈를 발라낸 기니아 닭으로 감싸 실로 꽁꽁 묶은 뒤 오븐에서 구워 낸거고 촉촉함을 위해 오일과 버터, 백포도주를 적당히 섞어 고기에 뿌려주며 익혀냈다. 고기에서 나온 육즙과 어우러져 질척하니 맛이 진해졌다.

속속 등장하는 가니쉬(곁들임 음식)들.
 

감자 볶음. 로즈마리로 향을 내주고

엄지손가락 굵기의 호박을 송송 썰어 볶아낸 호박볶음도 나온다. 소박한 음식들.

할머니의 심부름을 부지런히 해내는 잔루까. 주거니 받거니 그릇을 돌려가며 한 접시 모두 담아내면 든든한 식사 탄생.

파스타로 일단 급한 허기는 껐고 입맛을 한껏 끌어올려 둔 상태니 이제 천천히 자근자근 썰어서 와인과 함께 먹어주면 된다. 일단 와인 한 모금으로 입안을 긴장시키고 .. 한 점 썰어서 .. 천천히 씹어주면 .. 비린내도 없고.. 맛난다. 

갈은 고기를 그냥 익혀먹는 바보는 없다. 그럴꺼면 굳이 힘들게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기에 각종 채소를 다져넣고 양념을 섞어 동그랑땡을 하거나 만두소로 만들거나 떡갈비를 만들기도 하는 한편 이탈리아에선 치즈를 넣는군. 그밖에도 다른 응용의 여지가 많을텐데 또 어떤 것이 방법이 있을지..

샐러드도 접시에 덜어내고 빵도 등장. 파스타도 그렇고 고기요리도 그렇지만 먹고나면 접시에 양념이나 소스가 흥건히 남는 경우가 많다. 주루룩 흐르는 국물이 보기 좀 그렇고 설겆이 하기에도 불편하고 그냥 버리기엔 어쩐지 아깝고.. 이럴 때 빵을 이용해서 남김없이 먹어주는 것이 이탈리아에선 미덕으로 통한다. 이를 스까르빠(Scarpa)라고 부르는데 '신발'이라는 뜻으로 뜯어낸 빵을 쥐고 접시의 소스를 깨끗히 닦아먹는 그 모습이 신발로 긁어내는 모습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좋은 문화다. 음식 남기면 벌 받는다는 계율(?)은 여기서 이렇게 실천되고 있다.


배가 빵빵하게 불러온다. 토스카나의 시골에서 저녁을 먹으면 그 양이 만만찮아 때론 고통스럽다는데 다행히 북부 가정식에선 그런 괴로움은 없다. 이제 마지막, 디저트 선수다. 식탁에 올라온 것은 밤무스(MOUSSE DI CASTAGNE). 깎아낸 밤을 끓는 우유에 넣고 삶아 그 안에서 푹 익혀 으깨준다. 설탕과 크림을 섞어 거품을 내고 밤+밀크를 함께 섞어 충분히 저어준 뒤 냉장고에서 잠시 굳혔다가 위에 가게에서 파는 설탕에 절인 밤을 올리고 초콜릿 가루를 뿌려주면 끝.

모든 디저트는 다 맛있는 법, 이것도 예외는 아니다. 이탈리아 음식을 배우고자 한다면 결코 이 디저트를 빼먹으면 안될 것 같다. 단거 싫어하던 강양도 이제 이 문화에 상당히 깊숙히 빠져들고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 생활에서 달디 단 음식, 젤라또를 비롯해 쿠키, 캔디, 초콜렛, 티라미수, 케잌 등은 없어선 안될 필수 음식들이다. 칼로리에 대한 두려움으로 단 음식을 멀리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라지만 이탈리아는 아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사를 마치고 아쉬운 입맛을 아주 강력한 맛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야 말로 불필요한 군것질을 막는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이건 좀 아닌가?)


디저트에 곁들여 마시면 좋다는 스파클링 와인 한 잔씩. 점심 먹으면서 술이 돌고 디저트 먹으면서 또 돌고, 그것도 종목을 바꿔가면서. 잔도 멋있고 문화도 멋지다.

손자 루까에게 뭔가를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있는 할머니 쟌까를라. 아까 엘리자베타의 오빠 얘기를 하면서 잠시 미룬다는 대목이 바로 요기다. 저기 한국에서 온 '언니 오빠'들한테 가서 뭐 궁금한거 물어보라고 할머니가 등을 떠미는 중인데 이유가 있다. 엘리자베따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적어도 손자들 만큼은 좀 더 다른 삶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굴뚝 같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떻게 하면 아빠의 모습만이 아닌 좀 더 다른 세상,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손자들에게 보여주고 세계관을 넓혀줄까 고민하던 차에 마침 우리를 식사에 초대하면서 아이들도 함께 부르게 된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무슨 상관이랴^^) 할머니 할아버지의 애틋한 손자 사랑이 우리에게도 전해지는 듯 하다.



식사 마치고 하나 컷. 모두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사진일 터. 특히 알레산드로와 루까가 오래 기억하길..ㅋㅋ



 

Posted by dalgonaa


이탈리아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동계올림픽의 도시 TORINO를 출발해 북부의 심장부 MILANO를 지나 동쪽 끝의 '문명' VENEZIA를 향해 깨끗히 뻗은 A4 고속도로. 그 양옆으로 남과 북이 갈리는데 오른쪽은 드넓은 롬바르디아 평야가 펼쳐지고 왼쪽으론 알프스 준령으로 치달으려는 크고 작은 산들이 저 멀리 듬성듬성 솟아 있다. 그중 꽤 높아보이는 산의 정상엔 어느새 하얀 눈이 내려 앉았다. 겨울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주말을 맞아 오랫만에 고속도로를 달린다. 엘리자베따와 함께 그녀의 차를 타고 그녀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PADOVA로 가는 길, 그녀의 부모님이 우리를 점심식사에 초대해 밥먹으러 가는 것이다. 이런 기회는 주저없이 챙겨야 한다.


은근히 스피드 광인 엘리자베따. 그녀의 차를 몇번 타보면서 이탈리아는 비교적 추월의 개념이 잘 자리잡혀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는데 1차선을 달리다 뒤에서 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면 어김없이 2차선으로 길을 비켜준다. 엘리가 추월을 시도할 때도 앞차가 자연스럽게 2차선으로 비켜난다.

파도바는 A4 고속도로 동쪽의 거의 끝자락에 걸쳐있는 도시로 베로나보다 좀 더 규모가 크고 베네찌아로부터는 20여분 정도 떨어져 있다. '교육'과 '종교'가 이 도시의 관통하는 단어라는데 파도바 대학은 그 역사가 800년에 이르고 있어 오래됨에선 볼로냐 대학에 이어 두 번째. 오늘날에도 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이탈리아 젊은이들의 면학 열기가 장난 아니라는데 잠시 인터넷을 뒤져보니 갈릴레오가 한 때 이곳에서 강의를 했고 코페르니쿠스도 이 대학에서 공부를 했단다. 극락에서건 천당에서건 이 대학 출신들 동문회 한 번 열리면 볼만하겠다.


사진은 13세기에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는 성 안토니오 성당(St, Antonio). 그는 죽어 카톨릭 성인으로 봉안됐고 성당에는 1231년 타계한 그의 혀를 잘라 성유물로 보관하고 있으며 실제 관람할 수도 있다. 그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꾸욱.


다시 길로 돌아와 가던 길을 가자. 가을 추수가 끝난 들판은 서둘러 뿌린 채소 씨앗이 그새 싹을 터 얇게 덮힌 곳도 있고 그냥 까만 흙을 드러내고 있는 곳도 있다. 곧 겨울이 다가옴에도 그 틈에 키워 소출을 올릴 작물이 있나본데 놀고 있는 땅이더라도 어느 곳 하나 방치된 느낌은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정리와 관리가 깔끔하다. 평화로운 목가적 풍경, 어디 하나 콕 점찍어 그곳에 살림 깔고 앉아 낮엔 밭이나 갈고 밤엔 마당에 천체망원경 하나 세워 별이나 관찰하며 고기나 구어먹고 살고픈 충동이 일렁인다.

비록 이탈리아더라도 이왕이면 고기는 양념갈비를 구어야 제맛. 맛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뭉친 이탈리아라지만 적어도 고기요리만 놓고 보자면 우리가 한 수 위 아닐까 싶다. 이네들의 심플한 조리법은 고기요리에도 이어져 우리처럼 요란하게 다지고 갈아넣고 재우고 하는 과정이 거의 없지 않나 싶은데 가령 돼지고기의 경우 손바닥 만한 고깃덩이를 로즈마리나 기타 허브를 곁들여 팬에서 올리브 기름에 '튀겨'먹는 것이 가장 흔한 방식이다. 갈비기름과 양념이 뚝뚝 떨어져 피어오르는 흰 연기의 향 앞에서 솟구치는 육식의 본능을 어찌 억제할 수 있을까! 그 맛을 한 번 보여주고 싶은데 이곳 이탈리아에서 과연 기회가 있을런지..

고속도로 휴게소는 이탈리아에서 AUTOGRILL이라 부른다. 질주하는 차량들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 마시거나 간식을 즐기는 것도 재밌겠다. 돋보이는 아이디어.

거의 1시간을 달려 파도바에 들어섰고 우회전, 좌회전 몇 번 하니 바로 부모님의 집에 도착한다. 낮은 담벼락, 리모컨을 누르자 담 높이의 문이 열리면서 차가 들어갈 길이 나타난다. 마당있는 집은 이래서 좋다. 이탈리아도 남북간의 경제력 차이로 인한 갈등이 엄존하지만 적어도 권역별로 발달된 중심도시를 갖고 있어 이를 중심으로 인구가 골고루 분산된 상황. 수도권에만 2천500만, 각박하기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우리로선 이런 널널한 환경이 마냥 부러울 수 밖에 없다. 우리 자신도 그 수도권에 살지만 참 납득이 안가는 모습이다.


제법 넓은 평수의 2층 건물. 두 가구로 이뤄진 집은 엘리자베타 부모님이 한 집, 오빠네가 한 집, 이렇게 단촐하게(?) 산다고 한다. 30년 전부터 살았다고 하니 내부 리모델링이야 했겠지만 건물 자체는 30년이 넘은 셈이다.

짙은 갈색 호마이카 문을 두들기자 휠체어에 앉은 엘리 아빠가 문을 열고 반갑게 우릴 맞는다. 77세의 노신사 루치아노(Luciano). 유난히 하얀 얼굴을 가진 그를 짙은 남색 스웨터가 더욱 하얗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오랜 휠체어 생활, 바깥 볕을 쐬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테다. 좀 엉뚱한 생각이지만, 영화 탓일꺼라 추측하는데 유난히 하얀 얼굴의 백인을 보면 왜 나치의 냉혈한 모습이 떠오르는지 원.. 돌아오는 길, 엘리로부터 들은 아버지에 관한 짧막한 이야기는 결코 그런 인상과는 거리가 멈에도 처음에 받은 인상은 쉽게 지워지질 않는다.

집은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더 넓게 느껴진다. 1층은 아버지가 일한다는 사무실이 있고(사무실이라기 보다는 집무실 분위기) 집은 2층이다. 사무실 반대편엔 10명 정도가 밤새도록 신나게 파티를 벌일 수 있는 방이 있는데 아주 작은 규모의 호프집 같은 분위기다. 버리지 않은 빈 맥주캔, 가득 채워진 다양한 독주, 벽에는 빛바랜 사진과 장식용 접시, 방석 따위도 걸려있어 분위기를 돋궈주니 분위기 좋은 술집이 하나 안부럽다. 구석에는 각지의 포도주가 쌓여있으니 맘만 먹으면 며칠이고 달리다 병원에 실려갈 수 있겠다. 일터와 술집을 동시에 갖춘 집, 근사하다.


먼저 두꺼운 겉옷을 벗어 벽 한쪽의 조각품 같은 옷걸이에 걸었다. 집안에 들어온 손님의 외투를 받아 옷걸이에 거는 모습은 영화에서 종종 봤던 액션. 걸기보단 걸치거나 던져놓는 것에 익숙했으니 낯설음에 긴장감이 가볍게 찰랑인다. 2층으로 올라가는 짧은 계단, 주방에서 새나온 음식 냄새를 접하니 식욕이 상한가를 친다. 아침에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를 끓여 먹고 온 것이 전부이니 당연하고 바라던 바이기도 하다.  (미처 사진에 담진 못했지만 집안엔 아빠를 위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어 오르내리는데 전혀 불편이 없다. 토리노 호텔의 그것보다 훨씬 좋고 넓었다)

엘리가 '맘마'하고 기척을 알리자 그의 엄마 쟌 까를라(GianCarla)가 주방에서 나와 그녀를 껴안는다. 반가운 표정과 웃음소리가 뒤섞이는 가운데 우리도 곧 서툰 이탈리아 말로 인사를 건넨다. "본죠르노 삐아체레"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쟌 까를라는 남편보다 3살 적은 74세, 이제 고령에 접어들 나이지만 7인분의 식사를 척척 만들어낼 만큼 기력이 넘치는 할머니다. 이들 모두 1930년대에 태어나 무솔리니 시절을 거치고 2차 대전을 겪어낸 산 증인들이니 어쩐지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를 접하는 느낌이 든다.

엄마는 마저 음식을 준비한다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그 모습을 놓칠 수 없으니 따라 들어가보는데 거쳐가는 식당에는 테이블이 이미 깔끔하게 세팅돼 있다. 오늘 호사좀 누리겠다는 기대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7인분의 접시가 놓여있다. 엘리의 조카들이 함께 식사를 할 예정인데 아직 학교에서 안왔다.


쟌 까를라 여사가 감자를 썰고있다. 그러나 주방은 길쭉한 형태로 4명이 서면 꽉 들어차 운동장처럼 넓직넓직한 거실과 방에 비하면 꽤나 좁다. 우리가 묵고 있는 작은 숙소의 그 주방보다 쪼금 큰 정도인데  좁은 싱크대, 가스버너와 일체로 쓰는 오븐, 벽을 따라 선반이 채워져 있는 모습들은 한국 엄마들이 쓰는 주방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소박한 모습. 하지만 큰 손님 치뤄낸다면 꽤나 고생스러울 공간이다. 넓고 화려한 시스템 키친이 넘쳐나는 시대, 넓은 집의 안주인으로서 욕심을 낼만도 할텐데.. 검소한 탓일까?

이탈리아 가정에는 하나 이상은 꼭 갖고있을 에스프레소 머신 비알레띠(BIALETTI). 분리된 통을 조립하기 전, 아랫통에 물 붇고 중간의 깔때기같이 생긴 것에 원두가루 담고 윗뚜껑 통을 조립해 끓이면 추출된 에스프레소가 윗뚜껑 통에 모인다. 그대로 커피잔에 따라 마시면 그만. 좀 더 자세한 과정은 여길

주방을 나와 잠시 베란다로 나왔다.


집 전체를 감싸고 있는 넓은 베란다. 빨래 말리기도 좋고 가깝게 꽃을 키우도 좋다.

건너편엔 넓은 운동장도 펼쳐져 있어 언제든 달려가 축구를 즐기면 된다. 마침 점심식사 시간이어서 한가했는데 4시 반, 식사마치고 나와보니 동네 꼬마와 청년들이 군데군데 모여 열심히 놀고 있더라는. 이탈리아 축구의 저력이 싹트는 곳.

맞은 편 집의 이런 풍경도 편안함을 더해주고

식구들이 모여 텔레비전도 보고 얘기도 나누고 커피도 마시고 하는 공간. 영어론 리빙룸쯤 되겠다.  저쪽의 원탁 테이블에선 카드게임을 해도 좋겠고. 반질반질 윤이나는 거실 바닥을 보며 엘리는 "하여튼 깔끔한 양반들이셔!"라며 눙을 친다.

집안은 그 자체로 사는 사람들의 생활단면을 엿보는 것은 물론 그들의 양식도 짐작해볼 수 있다던가? 재산을 모으고 자식들을 출가시키는 과정은 힘들었겠지만 틈틈이 자신들만의 사색과 취미를 돌봐온 흔적을 집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자식들과 그들의 자식들에게도 좋은 양식으로 전해진다. 삶의 질이란게 뭐 대단한 거겠나? 취미 하나라도 즐기고 잘 가꾸는 것이 그 사람은 물론 자식들의 정서도 풍부하게 만들테다. 때론 자식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하지만.. 가령 나치의 추억을 더듬거나 유독 바바리에 집착하는 아버지라든가.. ^^


낡은 카메라에 유난히 애착을 갖는 루치아노. 몇 대의 카메라를 더 보여줬고 비록 이탈리아 말로 설명해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능 하나하나를 보여가며 설명하는 정성이 젊은이의 열정 못지않다. 


벨이 울리고 손님이 도착했다. 쟌 루까, 올해 11살이고 엘리 오빠네 아들, 즉 조카 되겠다. 오늘 식사에 참석할 나머지 2명의 인사중 한 명이고 남은 한 명은 잔루까(GianLuca)의 6살 위 형인 알레산드로(Alessandro), 아직 학교에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통통한 몸집, 젖살이 덜 빠진 얼굴에 주근깨도 적당하니 귀여워 엘리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데 단지 귀여워서만은 아니고 얼굴이 고모인 엘리를 쏙 빼닮아 엘리자베따는 루까를 '엘리자베또'(Elisabetto)라고 부르기도 한다.





참고로 이탈리아어는 라틴어에서 파생된 스페인어, 프랑스어와 함께 명사에 남성, 여성형이 존재해서 끝이 '아'로 끝나면 여성형이고 '오'로 끝나면 남성형이 된다. 따라서 '마리아, 파올라'는 여자 이름이고 '마리오, 파올로'는 남자 이름이 된다. 그래서 '엘리자베또'. 엘리자베또를 껴안고 있는 엘리자베따.


낯선 우리들 앞에서 꽤나 수줍어 하던 루까. 독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할아버지가 벽에 걸린 그림이 잔루까의 그림이라며 이왕이면 그것과 함께 찍으라고 한다. 그래서 찰칵.

할아버지와도 한 장.

식사시간. 이제 자리잡고 앉으면 된다. 이탈리아 북부의 가정식, 70년을 살아온 할머니의 손맛, 접시위에 올라올 맛난 음식은 과연 무엇일지.. 이건 다음에 ^^.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