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Korea 160409~2009. 9. 3. 14:17
어제, 주방집기와 기타 물품들의 시장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중앙시장과 방산시장을 돌아다녔다.
햇살이 어찌나 따갑던지 부채가 없었더라면 애먹을 뻔 했다.


청계천의 끝자락에서 신당동쪽으로 넓게 버티고 있는 시장이 바로 중앙시장인데
실제 중앙시장은 시설 현대화를 통해 지붕이 덮힌 형태로 그닥 크지 않고
그 주변으로 넓게 퍼져 있는 주방용품 가게들이 바로 중앙시장의 주인공 되겠다.
규모가 실로 엄청난데 먹는 장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정확히 대변한다.
 
리어카 포장마차 제품도 많고 이제 다가올 겨울을 앞두고 붕어빵과 군고구마 통도 꽤나 쏟아져 나올테다.



발길이 뜸한 뒷골목에선 씻고 닦고 칠하며 중고를 새것처럼 탈바꿈하는 작업도 한창이다.
기계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말고는 중고품을 사는 것도 실용적이지만 기존 식당을 넘겨받는게 아니라
새롭게 시설을 꾸며야 하는 입장이라면 이마저도 좀 꺼려질 듯 하다.
물론 좀 된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애써 낡은 제품을 찾는 이들도 있을테다.

시장 상인들은100평 이상의 대형 식당 업주를 당연히 선호한다.
주문 물량이 커 재고 털기가 수월하고 오가는 돈도 크기 때문. 


냉장고나 버너는 모두 국내에서 손쉽게 제작하는 것들이어서 가격도 안정돼 있고
비싼 편이 아니지만 오븐은 좀 편차가 심하다. 
오븐도 국내에서 제작한 피자용 오븐은 가격이 저렴한 편이지만
물건너온 오븐은 그 물량이 많지 않고 애초 가격이 고가여서
중고라 해도 값이 크게 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전문 주방용 오븐은 컨벡션과 스팀기능에 자동 조리 프로그램이 기본 내장이고  
심지어 자동 세척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직접 써보지 않아서 체감도를 얘기할 순 없지만 볼로냐의 마르코 주방에서 본
오븐을 국내 수입업체에 문의하니 2천만원 선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먼 얘기.

상인이 조용히 데리고 올라가 보여준 국내 제작 오븐.
해외 모 브랜드를 그대로 카피한 제품으로 가격은 300만원이라고.  



의자가게도 둘러보고..
디자인 업계에서 단일품목으로 가장 많이 디자인된 물건이 전화기라는데
아마 아쉽게 2위에 그친 물건이 바로 저 의자 아닐까?


까운사도 기웃거려보고..
먼지를 뒤집어 써 꾀제제 해진 까운과 모자가 발길을 떠민다.



걷고 걸어 방산시장.
간혹 하는 얘기지만 서울에서 의식주를 뒷받침하는 세 곳의 성지가 있다.
의(衣)는 남대문 시장.
식(食)은 경동시장
주(宙)는 청계천 공구상가와 을지로 세라믹상가다.

이 가운데 남대문은 동대문에 밀려 점점 쪼그라들고 있고
경동시장은 서부를 주름잡던 모래내 시장의 쇠락으로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고
청계천은 물길을 만나면서 점점 녹슬어가고 있다.
콘크리트로 땟깔내기 좋아하는 개발주의 시장들을 만나 어떤 곳은 철퇴를 맞고
대부분은 그 생명력을 잃고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어 안타까움이 크다.
 특히 동양 최대의 벼룩시장으로 평가받던 황학시장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롯데캐슬이라는 로보트같은 건물을 세워놓은 꼴은 정말 보기 역겹다.
이명박과 롯데의 관계가 심상찮았던 건 비단 성남 비행장 사건에서만이 아니라 어쩌면
서울시장을 지낼 때 부터 이미 형성된 관계가 아닌가 싶다.
아무튼..

집에 새로 도배하거나 장판을 깔 경우 방산시장 오면 대한민국 있을 제품이 다 있고
포장용 비닐, 종이박스, 쇼핌백, 고무줄
그리고 저 제과제빵용품 가게도 바로 이곳에 오면 촘촘히 박혀있다.
손재주를 가진 이들에겐 그야말로 놀이터 같은 곳.

지친 다리 버스에 태워 상수역에 도착.
저기 보이는 왕산건재가 현재 물색한 가게터다.
아마 아는 사람들은 알 듯.
그 옆에는 역시 최근에 오픈한 카페.


청계천을 한 1/10000로 줄였다.
이 비좁은 곳에 10명 정도 앉은 의자와 테이블 놓고 시작해야 한다.
ㅋㅋ
다음주에 계약과 관련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로 했다.

저녁때가 됐다.
홍대에 잘한다는 파스타집이 몇 군데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찾아 들어갔다.
까르보나라를 주문하기 앞서 웨이터에게 계란이 들어가냐고 물으니 들어간단다.
헌데 어째 미덥지가 않다.
훈련된 웨이터라면 좀 더 설명을 곁들일 것 같은데 예상치못한 질문에
단답식으로 '예'하고 마니..
까르보나라 나왔다.


말린 파슬리와 후춧가루, 그리고 흥건한 소스.
식당 이름이 딴또(Tanto-많이), 그것도 두 번씩이나 강조한 이름임에도 양은 평범하다.
맛보니 무난하지만 11,500원짜리 메뉴로는 용납하기 힘든 문제들이 드러난다.

먹어보니 계란과 빠르미쟈노 치즈의 맛은 거의 안나고 몽글거림도 없다.
대신 느껴지는 건 감자.
어딘선가 크림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소스의 점성을 위해
감자를 갈아 넣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 집이 그런 듯 싶다.
베이컨도 훈연베이컨이 아닌 그냥 마트에서 파는 훈제액에 담근 베이컨.
11,500원에 파는 메뉴이니 원재료비만 대략 1,500원 이하고 1만원 이상을 수익으로 갖는 듯.
일반적으로 판매액에서 1/4을 순수 재료비로 보지만 이에 꼭 맞추는 집은 많지 않다.



한국인 입맛에 맞게 개발된 메뉴.
올리브 오일 소스에는 모두 피깐테(매운) 맛이 기본으로 입혀져 있다.
해물, 혹은 치킨 스톡에 고추기름, 몇 가지 채소와 해산물로 버무려낸 파스타.
입에 익숙하게 와닿는 맛이니 그것은 짬뽕.
살짝 썰어올린 비트의 색감을 제외하곤 특별할게 없지만
파스타를 이런식으로 즐기는 것도 한 방법.

짬뽕은 광화문 대우 빌딩 지하의 취홍이 아주 잘한다.
잘 우린 육수에 해산물도 손이 크고 청경채도 시원시원하게 올려준다.
값도 6천원이니 이 메뉴가의 절반.
그냥 파스타 본연에 좀 더 충실하면 좋을 듯.

훈련되지 않은 웨이터들도 문제인데
빈접시를 치울 때 하나씩 집어올려 가져가는게 아니라
테이블 위에서 매운탕 냄비에 남은 찬 쓸어 넣듯 한 꺼번에 포개어 치우는 행동은
여간 싸구려로 보이는게 아니다. 
 더불어 이 식당 천정에 매달린 조명의 갓 청소도 시급하다.
시커먼 먼지때를 바라보며 갑자기 쥐의 등짝이 떠올라 소름이 끼칠 지경..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09. 6. 25. 23:49

자, 여기 지중해의 맛있는 대표요리, 토마토 파스타를 소개한다.
넓적한 냄비에 물과 소금 넣고 간간한 정도로 간을 맞추고 물이 끓으면 파스타 넣는다.  
알단테 알단테 하지만 개인적으로 심지가 남지 않을 정도로 알맞게 익혀낸 면을 좋아한다.
알단테일 때 꺼내서 소스와 버무리며 마저 익히면 딱 알맞게 익는다. 
팬에 기름 두르고 마늘 너댓 알 쪼개넣고 자글자글 튀겨준다.
타임이나 민트를 넣어 함께 튀기면 살짝 향이 감도는데 로즈마리는 향이 쎄서 좀 그렇다. 
깡통 토마토를 까서 부어준다. 
그리고 중불에 보글보글.. 



토마토 깡통.
미국산. 괜히 생기는 거부감은 어쩔수 없다.
시중에서 이탈리아산 깡통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으니 아쉬운대로..


수확한 바질 잎과 쁘레쩨몰로.
모두 아직은 성장 초기지만 줄기가 그럴 뿐 잎은 요리에 써도 손색없을 만큼 알차다.
특히 바질이 그러한데 며칠 전 딴 잎을 씻어 통에 보관하다 드디어 오늘 꺼냈다.




바질, 토마토와 환상의 만남.
사진엔 없지만 빠르미쟈노가 없으니 대신에 그라나 빠다노 살짝 갈아 넣어주고..
소금으로 살짝 간 맞춰주고 설탕도 손가락 집히는 정도로 넣어준다.
그럼 새콤한 맛이 살아난다. 
여전히 혼자 감당키 힘든 일 가운데 하나는 요리하면서 사진 찍는거.




냄비에서 면을 꺼내 곧바로 투하, 볶아주면
바질이 면 사이를 누비며 특유의 향을 골고루 입혀주게 된다. 
한 줄기 뽑아 맛을 봐서 뭔가 부족하다 싶을 때 치즈 더 갈아 넣으면 부족분이 대부분 메워진다.





쁘레쩨몰로를 얹어 주는 것으로 토마토 파스타(La pasta di pomodoro) 마무리.
지극히 홈메이드스러운 소박한 모습.
요리시간 20분, 재료는
스파게티 편 / 마늘 / 기름 / 토마토 깡통 / 빠르미쟈노 치즈 / 바질 / 소금 / 끓는 물 / 기타 창의적 재료..




먹다보니 치즈맛이 조금 아쉬워서 마저 조금 더 갈아주고..
오랫만이어선지 맛있네 ^^

짜장면과 짬뽕 사이의 정신분열적 고민처럼 
파스타에도 어느새 토마토냐 크림이냐 같은 고민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 ㅋㅋ
근데 잘한다는 시중의 파스타집 맛은 어떨지 점점 궁금해지는데 일간 방문해 봐야지.

Posted by dalgonaa

파고띠티(FAGOTTINI). 노란색으로 작은 복주머니를 연상케 하는 귀여운 파스타. 콕콕 찍어먹기 좋으며 생산은 1880년 부터 집안의 손맛을 이어오고 있는 토스카나 앙기아리의 DONNA ELEONORA(www.donnaeleonora.it)의 솜씨다. 토리노 슬로푸드 취재중 선물로 받은 파스타로 집에 돌아와 언젠가 한 팩 해먹고 남은 하나를 그제 일요일, 점심용으로 뜯었다. 가볍게 와인 한 잔 곁들이니 더 좋다. 

파스타 색이 유난히 노란 것은 인공색소를 넣은 탓? 그건 아니고 닭이 옥수수를 먹고 자라면 달걀 노른자의 색이 더욱 진해지기 때문에 파스타 용으로 특별히 생산하는 계란이 있다고. 오늘 귀국 비행기를 탔을 노양이 알려준 얘기다.

 


('오늘의 식탐'이라는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었다. '쟤들은 도대체 뭐 먹고 사나' 궁금한 이들을 위해 사진 한 장에 단촐한 글을 곁들여 올릴 계획이다. 유용한 정보가 있다면 그 역시도.)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30. 10:07


안드레아의 이탈리아 수업을 마치고 나니 진이 다 빠진다. 거진 70%는 못알아 듣고 나머지 30%는 순전히 눈치로 진행되는 수업. 들어도 들어도, 외어도 외어도 혼란스럽기만 한 동사변화 앞에 사기가 꺾인다. 

5박 6일의 토리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뒤 강양은 비실 거리더니 그 틈을 놓칠세라 감기께서 방문하셨다. 마침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오전엔 온수보일러도 고장났었으니 감기에겐 호조건. 약 몇 알로 쫓아보려 하는데 어떨런지.. 인근 채소가게에서 제법 큰 걸로 한통에 2,500원 하는 배추를 토리노 가기전에 사다놨는데 여전히 씽씽해 오늘은 배추국이나 푹 끓여서 고춧가루 팍팍 뿌려 뜨끈한 밥에 말아먹어야겠다. 몰타에서 다시멸치가 똑 떨어진 탓에 그저 된장만 풀어 끓여먹는 배춧국. 구수한 국물맛의 아쉬움을 뭘로 채워야 할까 고민하다 밀라노에서 사온 새우젓을 생각해냈다. 그놈이면 맛이 좀 우러나겠지. 원래 김장철 배추국에는 새우젖을 넣어 간을 보기도 하지 않던가? 


>> 배추가 정말 싱싱하다.

올해에는 슬로푸드 축제가 열리지 않는걸로 우리는 알고 있었다. 베로나 시내의 한 BAR에서 스쁘릿츠를 마시며 베로나 일간 L'Arena를 무심코 뒤적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금쪽같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행사가 끝난 뒤 그 소식을 이태리 TV에서, 혹은 한겨레 ESC에서 고나무 기자가 쓴 기사로 접했다면 우리는 한동안 깊은 절망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참으로 아찔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휴.. (참고로 취재 온 한국언론은 한겨레가 유일)



>> 바로 이 신문. 안드레아 말로는 형편없는 신문이라고.(조중동쯤 되나?) 

이번 토리노 슬로푸드 축제가 우리에게 남긴 경험은 눈부시도록 값지다. 눈으로 보고 맛보고 들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행사를 즐기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했음은 물론, 몇몇 프로듀서, 즉 생산자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면서 우리만 준비되면 언제든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일상속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게 된 것이 그렇다. 더불어 축제에서 얻은 깨달음과 감동은 오래도록 지속될 듯 싶다.


                                                                             +++


곳곳에서 프로슈토와 살라미가 넘쳐났지만 앞서 소개한 대로 프랑스 남부에서 온 가족이 판매하는 살라미와 프로슈토는 특유의 잡내도 없고 아주 맑은 맛을 내는 것이 감동을 자아냈다. 돼지의 품종은 흑돼지로 넓은 들판과 우리를 오가며 자유롭게 자라고 특이한 것은 허브를 먹인다고. 살라미를 만든 아저씨, 말이 필요없다는 듯 살라미를 썰어 우리 손에 안긴다. 하얀 지방이 눈처럼 촘촘히 박힌 얇은 살라미를 혀 위에 올려놓으니 거짓말 조금 보태 그냥 사르르 녹았다. 어딜가나 흑돼지는 맛이 좋은가 싶지만 이 집의 살라미는 수많은 참가부스의 다른 곳들과 비교해 정말 압도적이다.  

>> 사진은 이탈리아 살라미

살라미는 우리가 피자 위에 올려먹는 바로 그 얇고 동그란 소시지다. 우리는 주로 익혀먹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 자체를 얇게 썰어 와인과 함께 즐긴다. 와인 한 모금, 살라미 한 입. 한국에서도 와인소비와 더불어 점차 그 맛을 아는 이들이 늘어갈텐데 좋은 와인과 더불어 이 처럼 좋은 안주를 곁들인다면 깊은 술맛이 한층 더 깊어질 테다. 부산에서 와인으로 일을 벌이려는 지인에게 꼭 연결시켜주고 싶은 농장이다.  


>> 이 사진 역시 언급한 내용과는 동떨어진 사진. 근데 애도 맛있어 보이네.

토스카나 아레쪼(AREZZO)의 앙기아리(ANGHIARI)에서 온 20대 청년은 1880년부터 집안 대대로 전수되고 있는 손맛을 이어받아 할머니가 만들던 솜씨가 깃든 파스타를 들고 나왔다. 할로겐 조명을 받아 더욱 빛을 발하는 노란 색의 파스타가 단박에 시선을 잡아 끌고 먼 옛날 할머니가 사용했을 당시의 낡은 주방도구들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아 호기심을 자극한다. 벽면에는 중세의 고성이 고스란히 남은 시골 사진이 걸렸는데 그곳이 자기네 동네라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종이접시에 담아 맛보이는 것은 손가락 반마디 크기의 귀여운 복주머니같은 파고띠니(FAGOTTINI). 안에는 돼지고기와 치즈, 그리고 비법의 재료가 들어있고 뜨거운 물에 삶아 올리브유에 살짝 볶아내면 그만이란다.


>> 바로 이놈. 뜯어서 끓는 물에 삶은 뒤 올리브유에 볶아먹으면 그만.

이쑤시개로 콕콕 찍어가며 맛을 보니 오호.. 쫄깃한 식감의 피와 안에서 퍼지는 고기와 치즈의 조화가 고급스러우니 아주 좋다. 촬영을 마친 뒤 집에서도 요리해 먹고 싶어서 구입하려는데 두 팩을 척 담아 선물이라고 건넨다. 살짝 예감은 했지만 한치의 주저함도 없는 행동.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이탈리아가 좋은 이유다. ^^ 라비올리, 토르텔리, 스파게티, 라자냐, 왠만한 파스타는 모두 취급하니 파스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러 가기에 아주 적절한 곳이라 생각되는 곳. 언젠가 가보지 싶다.


2년 전, 김군은 스위스 남부의 LUGANO로 출장을 다녀왔었다. 이탈리아와 가까운 탓에 말도 이탈리아말을 쓰고 방송도 이탈리아 공영 RAI를 본다. 음식문화야 말해 뭣하랴. 이때 프로슈토를 처음 맛봤는데 뭣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새하얀 돼지비계로만 된 프로슈토. 그걸 'Lard'라고 하는데 그 자체로 기름덩어리지만 입안에서 천천히 굴리면 살살 녹으면서 은은한 맛을 낸다. 이 또한 와인과 궁합이 좋다.


>> 저렇게 붉은 살점이 섞인 것이 아닌 진짜 새하얀 비계다. 현장의 비슷한 사진으로 대체.

잠시 무료함에 젖어 있던 LARD'd Muncale 부스는 바로 이 돼지비계 프로슈토 집이다. 콧수염 아저씨가 우리를 붙잡아 끈다. 강양이 호기심을 보인 탓인데 나름 이쁘게 말아서 시식용 접시에 담아놓은 것을 이쑤시개로 콕 찍어 건넨다. 그 맛을 아는 김군만이 덥썩 입에 넣고 맛을 보는데 부드러움은 여전하고 튀는 맛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래서 더 좋다. 영어를 못하는 아저씨는 우리가 금새 자리를 뜰까 초조한 듯 끊임없는 제스춰로 우리를 붙잡은 뒤 부스 안쪽에서 뭔가를 하고 있던 다른 동료를 연신 부른다. "삐에뜨로! 삐에뜨로!"

이윽고 삐에뜨로씨 등장. 물기젖은 손을 앞치마로 서둘러 닦으며 나온 그는 영어를 하지만 서툴기는 마찬가지다. 엉금엉금 삐에뜨로씨의 설명이 이어지지만 콧수염 아저씨의 바디랭귀지는 삐에뜨로씨의 설명을 앞서간다. 자신이 영어를 잘 하거나 우리가 이태리어를 알아들었으면 좋겠지만 어느 것에도 들어맞지 않는 상황. 콧수염 아저씨는 답답함에 제스쳐가 더 커졌고 그 심정이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콱 막혀왔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비계덩이가 삐에뜨로씨와 콧수염 아저씨에겐 큰 자부심이라는 점.

삐에뜨로씨에게 그냥 속시원하게 이탈리아어로 설명해달라고 했고 그거 잘됐다는 듯 이탈리아어가 스피디하게 쏟아져 나왔다. 뭔 소린지 하나도 못알아 들었지만 가슴에 막혔던 뭔가가 뚫겨 나가는 느낌. 삐에뜨로씨와 콧수염 아저씨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촬영을 마치고 자리를 뜨려니 콧수염 아저씨, 포장판매하는 주먹만한 돼지비계를 봉지에 담아 건넨다. 이런 경우가 몇 번 더 있었는데 이탈리아 사람들, 특히 농사를 짓거나 시골에서 온 사람들의 인심은 우리나라의 시골장터 인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카메라를 들고 설치는 만큼 그 앞에서 계산된 행동도 있었겠지만 그래봐야 호기심과 재미일뿐이라는 점을 서로 알기에 그 순박함이 깎여나가진 않는다.  


>> 손님들에게 열심히 프로슈토를 잘라 제공하고 있는 한 부스.

맛있는 음식도 있었지만 입맛에 맞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푸른 곰팡이가 핀 고르곤졸라 치즈, 이른바 블루 치즈는 특유의 꼬리함 때문에 오랜 습관이 들지 않으면 그 맛을 즐기기란 쉽지 않은데 산양치즈에 비하면 이는 엄살일 뿐이다. 화장실 옆에서 서성이다 치즈부스의 한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고 외면하기 힘들어 치즈 한 점을 콕 찍어 먹었다. 

어으.. 참으로 형언하기 힘든... 사실 맛 보다는 향기가 악몽인데 여물통의 악취를 농축해낸 것이 바로 산양 치즈의 맛이  아닐까? 청국장, 또는 홍어를 접하는 외국인들이 이런 심정이겠지 싶은데 내 짐작으론 그것을 훌쩍 넘는 쇼크였다. 


>> 사진중에 산양치즈가 섞여 있을까? 모르겠다. 행사장의 다른 부스에서 한 컷.

 

Posted by dalgonaa
금요일 오후는 주말의 시작. 수업을 마치고 나니 홀가분하다. 지금의 여행 자체가 주말의 연속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주말은 역시 주말이다. 어제 수영을 못했으니 오늘은 수영을 해줘야 한다. 이제 우리 두 사람 모두 물의 깊이와는 관계없이 수영을 즐기고 있으며 김군의 경우 50미터 정도의 거리는 쉬지 않고 자유형 수영이 가능하다. 평형은 그보단 더 갈 듯.




올 여름, 스페인 학생들로 북적이던 비치클럽은 그들이 되돌아가자 적막한 느낌마저 돈다. 하지만 풀장에 사람이 적다는 것은 우리에겐 즐거운 일. 첨벙첨벙 다이빙을 연습하고 물속에서 꺼꾸로 물구나무 서기를 연습하고 낄낄대고 꺅꺅거리며 9월의 막바지 더위를 식히고 있다. 이곳 비치클럽도 10월이면 문을 닫는다고 하니 남은 기간 더욱 열심히 다니자며 불끈 주먹을 쥔다.




며칠 전 이곳에서 공부를 마치고 영국 캠브리지로 6개월간의 영어연수를 떠난 한국인 친구가 소식을 전해왔다. 도착한 후부터 줄곧 비가 내리고 춥단다. 이곳에서 입던대로 단촐하게 떠났으니 우리가 3월에 꽃피는 한국을 떠나 로마에 도착해 추위에 벌벌 떨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 고생이 어떨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지중해와는 전혀 딴판인 북해의 영향을 받는 영국. 들려오는 빗소리와 인적없는 거리, 눅눅하고 침침한 방구석에서 한 없는 고독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은 이곳의 지긋지긋했던 햇살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그 친구는 새삼 느끼지 않을까? 생각이 이쯤에 닿으니 우리도 왠지 이곳의 더위와 따가운 햇살, 지저분한 거리와 사람들의 왁짜한 분위기가 슬그머니 반갑고 고맙게 느껴진다. (적어도 이 순간에는..)






일로나는 7살짜리 여자애다. 올 여름, 풀장에서 자주 만난 몰티즈 꼬마. 우리를 처음 보곤 신기했는지 우리 주위를 맴돌며 수줍어 하면서도 눈길을 떼지 않았는데 결국 우리가 먼저 말을 걸어 일로나가 갖는 호기심을 상당부분 해소해줬다. 사실 일로나가 갖는 호기심은 딴게 아니라 그저 자신과는 다르게 생긴 낯선 외국인에 대해 갖는 호기심 그것이다. 초등생을 위한 이런저런 교육적인 정보, 가령 한국이 어디에 붙은 어떤 나라고 아시아는 어떤 곳인지 알기 쉽게(영어로!) 설명해줬지만 대충 흘려듣고는 보란 듯이 엉망인 폼으로 다이빙을 한다. 마침 얼굴에 뭔가를 잔뜩 칠하고 나타나 자랑하길래 한 장 찍었다. 너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씩씩하게 크거라. 너무 '씩씩하게' 먹진 말고..

금요일 주말이니 느지막한 시간까지 수영을 즐겼다. 참으로 홀가분하게 느껴지는 저녁, 여기에 오늘 우리집 식구들(지희, 서희)이 모두 밖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하니 일찍 들어가 밥을 할 필요도 없다. 느슨하고 나른해진 몸과 마음을 어디서 무엇으로 알차게 채워줄까 즐거운 고민에 빠져 잠시 입맛을 냠냠 대다가 결정한 곳은 바로 아래, Paparazzi다.




일전에 김군이 도모미와 식사를 즐긴 곳이 이곳이기도 하다. 몰타를 소개하는 엽서에 자주 등장하기도 하는 이 식당은 그 앞에 바다와 정박한 작은 배들을 훌륭한 야외 인테리어처럼 갖추고 있어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이 제법 근사하다.  




낮에 바라본 식당 일대의 풍경. 왼쪽 버스다니는 길은 우리가 매일같이 오가는 길이고 가운데 파라솔이 펴져 있는 곳이 Paparazzi 식당이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가로등은 물론 저 일대의 식당들이 일제히 불을 밝혀 그 모습이 퍽 낭만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은 위치는 몰타의 베스트 촬영 포인트 중 하나에 속한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거리와 바다를 바라보며 즐기는 식사도 퍽 근사하지만 이날은 음식 주변으로 꼬이는 파리, 그리고 야외 테이블이 인기높은 자리인 만큼 식사를 마치면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려 드는(식사마친 접시를 서둘러 치우는 것이 유럽 식당의 룰인지는 모르겠으나..) 종업원의 등쌀을 피해 실내로 자리를 잡고 간섭에서 조금 떨어져 식사를 즐기기로 했다. 이곳은 김군에겐 세 번째, 강양에겐 두 번째 방문이다. 맛과 서비스에 대한 노력은 제쳐두고 좋은 자리 꿰고앉아 오로지 '목장사'에만 몰입하는 못된 식당들이 종종 있는데 파파라치는 그런 식당들과는 제법 거리를 두고 있는 식당이다. 간섭만 빼면..





실내는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어 무척 시원하다. 수영하고 온 뒤라 입고 있는 수영복이 아직은 덜말랐는데 그 때문인지 더욱 시원하게 느껴진다. 실내는 두 아기를 데리고 온 부모만이 단촐하게 식사를 즐기고 있다. 벽면은 이런저런 액자들로 가득 꾸며져있는데 주로 여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오른쪽 샹들리에 아래 누운 여성의 그림이 보이는가? 그 옆의 액자도 여성이고 우리 뒤쪽의 그림도 여성이고 아무튼 대부분이 여성이다. 식당 주인의 취향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창가쪽 테이블에 앉으니 바라보이는 풍경이 저렇다.





아담한 테이블, 단단한 의자, 그 옆에 작은 화단. 공간의 아기자기함은 가운데 촛불이 놓여짐으로서 비로소 완성된다. 다만 저 자리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사진엔 보이지 않지만 왼쪽편에 테이블의 경우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면 이 테이블의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줘야 한다는 점이다. 발코니는 참 탐스러운 자리임에 분명하지만 저리 좁아가지고서야..



 

난간쪽은 언제나 인기만점의 공간. 풍경을 독차지하는 매력은 물론 주변 테이블의 소음으로부터 최대한 벗어날 수 있는 장점도 갖추고 있다.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탓에 테이블은 단촐하다. 나이프와 포크도 종이 냅킨에 둘둘 말려있고 나이프는 손잡이가 플라스틱이다. 비스트로는 영어로 대중음식점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명사로 쓰이며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는 몰타의 경우 Osteria라는 이름으로도 종종 불려진다. 좀 더 고급스러운 식당에 해당되는 Ristorante는 테이블보가 깔리며 와인잔을 비롯 각종 식기와 도구들이 우아하게 세팅되어 있어 그 포스에 선뜻 들어가기 저어해지곤 한다.


메뉴판을 스윽 훑어본 뒤 다음의 메뉴들을 주문한다.




마지막의 Octopussy. 요건 문어 샐러드고..





끝에서 두 번째에 있는 Fish Tank, 요건 파스타다. 그리고 맥주 한 잔을 주문한다.
두 사진 모두 조명이 약해 흔들렸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뭘 넣었다는 얘긴지 얼추 확인할 수 있을테다.






먼저 맥주 나와 주시고.. 맥주는 몰타의 정통맥주 生 CISK다. 정통 Lager로 드라이하고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나라마다 독특한 맥주잔을 갖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몰타의 맥주잔을 보면서 더욱 굳어지는데 주둥이 아래가 불룩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각 나라 별, 혹은 제품 별 잔을 모두 모아 한국에 가져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그 뒤로 보르게스 제품의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가 나란히 놓여있다. 후추와 소금통도 나란히..





주문하고 10분이 조금 넘어서자 문어 샐러드 나온다.





곧바로 파스타도 나와주시고..





단체사진 한 장.





좀 더 폼 잡고 한 장 더..

파파라치의 식단에서 우리가 우선 높게 평가하는 점은 우선 양이다. 사실 허기진 이들에게 식당의 첫 번째 배려는 넉넉한 양이 아닐까? 두 번째라면 스피드, 세 번째는 맛이겠고 깐깐한 미식가라면 물론 그 순서가 반대일 테다. 몰타의 다른 많은 식당도 양이 제법 많은 편이지만 파파라치 만큼은 아니다. 파스타는 물론이고 샐러드의 경우도 하나 시키면 여자 둘이서 먹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우리가 시킨 저 두 접시는 셋이서 먹으면 딱 알맞을 양.

일전에 파파라치에서 Fish Tank 파스타와 토마토 소스로 범벅을 해낸 라자냐(넓고 네모난 만두피 모양의 파스타로 겹겹이 쌓여 나온다)를 각각 시켜 먹은 적이 있었는데 김군은 라자냐를 겨우 절반까지 먹는데 성공했을 정도로 그 양이 푸짐했다.(김군의 식사량이 줄어든 탓도 있다)  라자냐 사이에는 갈은 쇠고기를 넣어 그 양이 더욱 풍성했는데 그렇다고 맛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무튼 넉넉함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만 한편으로 음식을 남기는 불편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또한 어쩔수가 없다. 쩝..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문어 샐러드이니 당연히 문어가 들어가 있고 그 양도 흉내만 낸게 아니라 진정으로 넉넉하다. 싱싱한 양상추와 오이, 문어 사이에 틈틈이 케이퍼도 보인다. 이 외에 녹색 채소로 피망과 치커리가 속속들이 섞여있고 양파와 당근, 마지막으로 올리브와 토마토가 샐러드의 풍미를 한껏 높여주는 구성이다. 훌륭하다. 보는 것 만으로도 몸이 싱싱해지는 느낌이다.

이쯤에서 문어 한 조각을 포크로 콕 찍어 입에 넣어 본다. '오물오물.. ??..  ??.. 어허...' 치명적인 문제가 포착된다. 우리가 예상했던 문어의 맛이 아니다. 짭짤해야 할 문어는 그 간이 다소 밍밍했고 간이 약하더라도 씹을 수록 문어 특유의 고소함이 베어나와야 하는데 그 맛이 터무니없이 약하다. 씹히는 질감에서 그 연유를 대번에 파악했고 우리 모두 한 마디를 동시에 던졌다. "냉동이군.."

갖잡은 생물은 바라는 것은 아니고 지중해라면 그 값진 기후를 이용해 건조를 통한 저장법도 발달했을 법 한데 유통상의 문제가 무엇이길래 저 좋은 식재료를 냉동했을까? 아쉬움이 크다. 일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살짝 염장해 반건조한 문어를 모양내지 않고 퉁퉁 썰어 석쇠에 살짝 구운 뒤 갖은 채소위에 얹고 질좋은 올리브유를 양껏 뿌려내면 맛은 물론 영양과 멋이 그야말로 판타스틱이다. 사실 문어의 양이 다소 적더라도 그것을 기대했었는데.. 주방이 좀 더 안목높은 고집을 피웠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쉽다.

그러나 여기서 맛의 탐구를 포기할 순 없다.





레몬을 끼얹고..




발사믹도 뿌리고..




올리브유로 마무리..

비록 문어 자체의 맛은 떨어지지만 저리 먹으니 맛이 제법 살아난다. 레몬과 발사믹이 채소와 어우러져 새콤함이 돋보이고 올리브유가 그 맛을 차분하게 잡아주는 역할도 한다. 아쉬운 문어는 케이퍼와 함께 먹으니 그런대로 맛도 나도 새로운 맛도 포착된다. 연어와 케이퍼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앙상블인데 문어와도 제법 잘 어울린다. 뭐든 자체의 맛이 깊고 진한 해산물이라면 케이퍼와의 만남은 훌륭할 듯 싶다. 홍합과 케이퍼도...?





Fish Tank. 어떻게 저런 이름이 음식에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는 기대는 해산물의 푸짐한 살점들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푸실리를 압도하면 그것도 문제. 처음엔 안보이던 Fish들이 바닥을 뒤적이자 섭섭치 않게 올라온다. 새우는 꼬들하니 맛도 깊고 생선살도 잇사이에서 씹히는 맛이 좋다.

아주 형편없는 재료만 아니라면 크림소스는 언제나 그렇듯 배후에서 재료의 맛을 색다르게 변모시켜 맛을 끌어올려주는 일등공신이다. 가끔 몸과 마음이 허전하다고 느껴질 때, 입맛을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것이 바로 크림소스의 찐하고 깊은 맛이다. 단 그 역할이 지나치면 어느새 포크질은 점점 둔해지고 느끼함에 식사는 일찌감치 끝나게 되는데 크림소스 바탕의 파스타는 그 강도를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 아닐까 싶다. 이날의 크림은 그 어려운 길을 무사히, 그리고 훌륭하게 지나왔다. 아래의 수고를 거치니 좀 더 탄탄해졌다.





그러나 파스타의 주인공은 당연히 파스타다. 오늘의 주연은 푸실리로 배배 꼬아낸 모양의 저놈이 바로 그놈. 이태리 사람들이 파스타를 먹을 때 민감하게 살피는 부분이 파스타의 익힘 정도다. 예전에 함께 식사를 했던 베로나의 엘리자베타도 그것에 신중했는데 우리는 별 문제없다고 생각했던 팬네(펜촉 모양이 파스타)를 두고 그녀는 "이런.. 너무 익혔군"이라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처음엔 그 반응에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는데 며칠 후 라면을 떠올리자 그녀의 까탈스러움에 금새 수긍이 갔다.

이태리 사람들에게 주식인 파스타만큼 라면이 우리 식단의 주식은 아니지만 한국인들의 라면에 대한 끔찍한 사랑은 파스타에 견줄만 하다. 많은 한국인들이 라면맛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국물이 아닌 면빨의 맛. 국물은 이미 평준화됐지만 면은 아니다. 기껏 2천원 짜리 라면 한 그릇이지만 꼬들한 면 맛을 내느냐 퍼진 면 맛을 내느냐에 따라 가게의 흥망이 분명하게 갈려진다. 이 점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준은 무서우리만치 냉혹하고 까다롭고 엄정하다. 하물며 주식인 파스타임에야..

그렇다면 이날의 파스타는? 대개의 한국인들에겐 알맞은 익힘이고 맛이다. 그러나 엘리자베타가 함께 있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몰타는 정말이지 구제불능이군!.."





먹어도 먹어도 좀처럼 바닥이 드러나질 않는다. 어느새 포크는 새우와 생선살점, 그리고 문어에만 집중된다. 본능적인 본전의식의 발동이다.





힐끗 밖을 내다보니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가로등에도 불이 들어왔고 테이블 위의 촛불의 존재감이 갈수록 뚜렷해진다. 한 여름엔 9시나 되야 깜깜해졌는데 요즘엔 8시를 넘어서니 깜깜해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중해의 해는 길다. 한국도 그랬던가? 기억이 가물하다..

9월도 곧 중반을 넘어서 막바지로 치달을 테다. 그때 쯤이면 우리도 여유를 접고 바빠져야 한다. 6개월 간 살아온 집을 정리해야 하고 버릴 짐은 버리고 챙길 짐은 챙겨 다시 가방에 우겨 넣어야 한다. 짐이 많으니 그 시간은 꽤나 고민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테다. 그래도 이곳 몰타를 떠나는 것은 우리에겐 작은 기쁨이다. 정말이지 이제 이곳의 더위와 더러운 공기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다!





어슬렁 어슬렁 해변길을 따라 걸으니 어느새 어두워졌다. 가을이 깊어지면 어둠의 속도도 좀 더 빨라지겠지.. 바다에 비춰지는 불빛이 곱다. 달도 휘영청 떴으니 고향 생각에 젖어들 타임. 그리고 보니 추석이다. 가족들과 한 상 떡 부러지게 차려놓고 재미난 TV프로그램 보며 왁자지껄 먹고 떠드는 재미가 솔솔 그리워진다.

근데 그 시간을 풍성하게 해줄 TV 프로그램으로 과연 무엇이 가장 재미있을까? 외국인 노래자랑? 아나운서 폭소대잔치? 성룡과 홍금보 주연의 영화? 혹시 이런 건 어떤가?  추석특집, 슬로우푸드의 본고장 이탈리아로 떠나는 가을 식탁 기행.
(아따 제목 기네.. 기대하시라.. ㅋㅋ)
Posted by dalgonaa

몰타가 지중해 한 가운데이긴 하지만 몇가지 이유로 아직 달고나는 지중해 식생활 기행 프로젝트를 시작도 못한 상황이다. 그래도 부지런히 슈퍼마켓을 들락 거리며 밥은 해먹고 있는 바, 요즘 우리의 식단의 주를 이루는 음식들 사진의 일부를 올린다.

먼저 좁고 납작한 파스타의 일종인 trenette와 이탈리아 브랜드인 barilla사의 bolognese 라구로 맛을 낸 볼로네즈 파스타. 로마에 있을 때 즐겨 마셨던 Nero D'avola Sicilia랑 같이 먹으면 제법 폼이 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번에도 파스타인데 마늘과 올리브 오일만으로 맛을 낸 ali-olio. 이태리어로 알리는 마늘, 올리오는 올리브다.
마늘을 다지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에 살짝 볶다가 삶은 파스타를 섞고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한, 정말 조리과정은 무지하게 단순한 음식이지만 맛은 생각 외로 풍부하다. 이태리 남부 사람들이 즐겨 먹는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우리도 이 맛에 완전 반했다. 지난 주말에 수산시장에서 사온 해산물 반찬들과 함께 한 번 먹어봤는 데 역시 맛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셜슬록이라는 수산시장에서 사온 해산물 반찬들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하면,
블랙 올리브(왼쪽 위)는 한국에서 먹던 캔이나 병에 든 것보다 훨씬 짜다. 게다가 씨를 빼지 않아서 먹는 데 좀 불편하다. 하지만 올리브 그 자체도 신선하고 곁들여진 올리브 오일의 향이 좋아서 밑반찬으로 잘 먹고 있다.

아티쵸크(오른쪽 위) 위에 다진 참치를 얹은 절임 같은 반찬은 모험심을 가지고 한 번 시도해 본 것이었는데 나름 만족스럽다. 전체적으로 시큼한 맛이 난다고 하면 상상이 될까? 나중에 아티초크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왼쪽 아래의 해물들은 지중해식 젖갈이라고 해야할까? 조개 관자, 오징어, 홍합, 맛살 그리고 파프리카 같은 야채와 각종 향신료를 넣어 만든 피클 같은 것이다. 전체적으로 시큼한 맛이 나는데 쫄깃한 해산물들이 입에 착착 감긴다.
오른 쪽 아래 사진은 반찬을 산 가게의 모습. 보통 저렇게 놓고 원하는 만큼 담아 달라고 한 후 무게를 달아 계산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시 같은 마셜슬록에서 산 콩으로 만든 간식.
강양의 엄지 손톱 보다 큰 이 콩의 이름은 아주 단순하게 board bean, 즉 넙적 콩. 비닐 봉지 가득 담아 놓고 팔길래 어떻게 먹는 지 물어보니 그냥 삶아 먹으란다^^ 삶으면 완두콩 맛이 나서 간식으로 줏어 먹기 좋다. 좀 심심한 것 같아서 토마토소스에 마늘, 양파를 넣고 볶다가 함께 넣고 요리해 봤다. 소시지와 함께 먹으니 시원한 맥주가 절로 땡기더라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번에도 반찬류.
두개의 병 중 왼쪽은 사우어크라우크. 잘게 채썬 양배추를 식초에 절인 음식으로 독일에서는 우리의 김치 수준으로 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다.

오른쪽은 시험 삼아 한 번 사본 피클. 파프리카와 토마토를 주 재료로 새콤 달콤하게 절인 것인데 마치 고추를 넣은 것 처럼 살짝 매콤한 맛도 나서 다른 음식과 함께 먹을 때 아주 좋다. 삶아 놓은 브로콜리와 함께 먹었더니 그대로 샐러드가 됐다. 가는 쌀국수를 차게 해서 곁들이면 훌륭한 콜드 샐러드가 될 것 같다. 다음에 시도해 볼 예정.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은 여기까지 간단히 올리고...
혹시 우리가 국수 가닥이나 짜잘한 반찬만 먹고 살 것이라고 걱정하시는 분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올리는....비.빔.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도 이런 거 먹고 산다.ㅋ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