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딸리아 Italia 300908~'에 해당되는 글 118건

  1. 2009.05.06 피자 3
  2. 2009.04.28 피자의 현대적 해석? 9
  3. 2009.04.17 이륙하니.. 8
  4. 2009.04.15 비행기, 오랫만이네. 18
  5. 2009.04.15 마지막 환대 7
  6. 2009.04.14 냉장고를 열어보니.. 2
  7. 2009.04.13 만찬 5
  8. 2009.04.12 식사 준비
  9. 2009.04.11 모처럼 볶음밥. 2
  10. 2009.04.11 예술이 넘친다
피자는 이탈리아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겠지만 그 유산의 전파자는 이탈리아인들이 아닌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인일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 적어도 북부에서 거리 피자가게를 장악한 이들은 바로 이들 이민자들이다. 저렴한 자본으로 손쉽게 창업할 수 있고 피자가 대단한 기술을 요하는 음식이 아니어서 이들 이민자들에겐 이것 만한 정착수단도 없다. 볼로냐에 만난 다수의 이탈리아인들도 그 사실을 인정하며 맛과 솜씨에 있어서 이들이 한 수 위라는 이야기도 서슴없이 내놓는다. 이탈리아인들이 부지런히 팔아준 덕분에 파키스탄 출신의 한 피자가게 주인은 몇 개의 점포를 더 열었으며 심지어 그의 승용차는 페라리다. (이 얘기 한 번 했던가?..)

아무튼 이탈리아에 머물 당시, 특히 볼로냐에 머물 때 피자에 다소 신물을 느낄 지경이었는데 그것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돌아오니 오밤중이면 새록새록 그 맛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본토 피자를 맛보는 건 저 먼 언제쯤으로나 미뤄둬야 할 것 같고 대신 찍어둔 사진으로 맛의 추억이나 더듬어야겠다.



베로나에 머물 때 오븐에 피자를 한 번 구어봤다. 박력분은 단백질 함량이 적고 끈기가 적어 바삭한 비스켓에 적합하고 그와 반대인 강력분을 이용해 피자를 구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았던 시절. 수퍼마켓에서 제일 만만해 보이는 밀가루를 집어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비스켓을 만드는 박력분이었다는.. 그럴듯한 농도로 반죽을 하고 이스트따위는 생략한 뒤 한국 피자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세몰리나(밀을 거칠게 갈은 것으로 피자도우가 바닥에 눌어 붙는 걸 막으며 요리 반죽에도 사용된다)를 트레이에 고루 뿌려 깔고 알리치(멸치절임)와 말린 토마토 절임, 케이퍼 따위로 토핑한 피자를 올린 뒤 오븐에 넣었다. 주사위처럼 작은 알갱이들이 일반 모짜렐라 치즈고 가운데 포실하게 찢어놓은 하얀 것이 생모짜렐라 치즈. 치즈가 넘치는 이탈리아니 아쉬울게 없도다.



마지막에 올리브유를 넉넉히 뿌려 넣었으니 자글자글 기름기가 식욕을 돋군다. 도우 가장자리를 자세히 보면 박력분의 효과가 대번에 드러난다. 쫄깃이 아니라 바삭. 허나 이것도 별미더라는. 한국에 있을 때도 종종 피자를 해먹었는데 그때는 시중에 판매하는 또띠야 피를 도우로 사용했다. 담백한 피자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요즘, 또띠야도 피자 도우로 손색이 없다. 반죽에 소금간을 살짝 해줘야 맛이 좋고 기본 간은 짭짤한 알리치가 잡아 주니 피자가 맥주를 부른다.



반죽이 좀 질었는지 도우의 모양 잡기가 쉽지 않다. 결국 이런 모양으로도 만들어 먹어보고. 저쯤 되자 피자가 아닌 과자가 되더라는..



파리나(Farina)는 '밀가루', Tipo는 Type의 이탈리아 말. 그럼 '00'은? ㅋㅋ 저게 바로 강력분이라는 뜻. 비스켓을 만드는 박력분은 '0'으로 표시된다. 알파벳인지 숫자인지는 우리도 아직 모르는데 '0'을 단백질의 또 다른 표현이라 가정하면 그 구분은 훨씬 쉬워진다. 많으면 강력분, 적으면 박력분. 쉽다 ^^ 

참고로 이탈리아 남부, 특히 나폴리 지역은 여전히 이탈리아인들이 피자 주도권을 꽉 쥐고 있으며 북부의 경우도 식당에 앉아 칼로 썰어먹는 피자집은 여전히 이탈리아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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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 가게되면 특이하게 생긴 피자를 맛볼 수 있다. 이름하여 '롤 피자'. 피자 도우를 펴고 그 위에 토마토소스와 각종 재료, 모짜렐라치즈를 얹은 뒤 화덕에 굽는 전통의 방식에서 벗어나 얇게 구워낸 또띠야에 각종 재료들을 썰어 올린 뒤 김밥 말듯이 말아 보기좋고 먹기좋게 반으로 싹둑 잘라낸 피자다.  그 유래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언뜻 보면 피자의 현대적 해석으로 비춰질만 하다. 제법 고운 땟갈과 푸짐한 양으로(2.5유로) 가난하면서 허기진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려 하지만 관광객들은 호락호락하게 지갑을 열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처럼 유리 너머로 감상하며 입맛만 다신 뒤 다른 군것질꺼리를 찾거나 판피자를 선택하는 것이 눈에 많이 띄었다.

P/S : 현재 부산. 짭짤한 바닷내음의 봄볕 거리와 지인의 컴컴한 지하 카페를 일주일간 오간 뒤 다시 서울로 올라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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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를 이륙해 지평선이 기울어지면 기분이 묘해졌다. 집들이 작아지고 길들이 좁아지고 모든 것이 빠르게 스쳐 사라지며 거대한 풍경으로 변해버리자 모든 시간과 장소, 사람들의 기억들이 하나 둘 사라져버리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달콤한 주술에서 풀려나고 있었다.

그리고 새벽 4시 서울 집, 잠이 안온다. 시차적응 실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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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깃꼬깃 모아 나왔던 돈도 탕진됐으니 이제 이 여행도 끝났다. 총 13개월. 한국 돌아가면 빈털털이 신세지만 친구와 가족들이 따끈한 술과 밥을 재놓고 기쁘게 기다리고 있어 타지를 떠돌다 돌아가는 여행자에겐 그것만으로도 뿌듯하고 부자가 된 느낌. 이탈리아, 곧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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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념품을 선물하기 위해 니코의 식당에 들렀다. 니코는 볼로냐에서만 3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해오고 있는 볼로냐 토박이 요리사다. 지금은 주방에서 은퇴해 가게 운영에만 전념하고 있고 그의 딸 에리카가 소믈리에로 아버지와 함께 가게 운영을 주도해 가고 있다. 이들 부녀가 운영하는 식당 바띠베코는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유행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하지 않은 식당이지만 그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 아버지는 전통을 중시하는 가운데 조심해서 변화를 받아들이는 입장이라면 딸인 에리카는 마르코 파디가처럼 과감하게, 또는 파격적인 요리로 나서야 한다고 얘기하는 입장이다. 지난 번 니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니코는 우리에게 요리와 관련해 참 많은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 가운데 인상적인 부분은 대략 다음과 같다.
 
"볼로냐는 바로 마르코 같은 요리사가 필요했다. 그는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고 프랑스 요리를 한다. 이는 당연한거다. 다른 요리를 선보이는 실력있는 요리사가 볼로냐는 꼭 필요했는데 마르코가 그 역할을 한거다. 우리는 마르코를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내가 마르코처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탈리아 요리사고 이탈리아 요리를 하면 되는거다. 근데 내 딸은 매일 마르코 마르코 하며 노래를 부른다"


부녀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전선이 분명 있을텐데 요 얘기를 좀 더 파고들면 재미도 있고 나름 깊은 메시지도 건져질게 틀림없다. 사실 이들 부녀의 대립(?)은 비단 바띠베코만의 고민이 아니라 이탈리아 대부분의 식당, 대부분의 요리사들이 겪는 고민이 아닐까 싶다. 일전에 마르코는 우리에게 말하길 "너무 많은 전통이 있다. 그게 숙제고 고민이다"라고 이탈리아 요리사로서 갖는 속내를 털어놨다. 오늘날 서양요리의 중심축이 프랑스와 이탈리아라고 많은 이들이 얘기하지만 정작 실질적 인기와 부, 유행을 이끌어가는 것은 영국과 미국의 레스토랑이라는 말도 마르코는 덧붙였다.

전통에 대해선 조금 다른 입장의 니코지만 그도 결국엔 비슷한 얘기를 하는 것이 "30년 전에는 유럽 어디를 가든 볼로냐에서 왔다고 하면 '오~ 볼로냐! 요리의 도시!'라며 반겨줬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어디에 있는 도시냐고 되묻는다" 라며 달라진 세상을 쓸쓸히 푸념했다. 고루한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전통이라곤 없는 영미권이 요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고 있다는 얘기니 다소 놀라우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제이미 올리버, 램지 고든은 요리에 관해서라면 누구나 저주하는 영국 출신이다. 여기에 알랭 듀카스, 기 사보이, 노부 마츠히사는 프랑스와 일본인이다. 세계적 유행을 선도하는 이탈리아 요리사를 딱히 꼽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물론 우리도 여기 와서야 알았지만 이탈리아 요리의 현대적인 기틀을 마련했다고 추앙받는 괄띠에르 마르께지 등의 헌신적인 요리사가 없는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는 아직도 전통과 내일 사이에서 고민, 어쩌면 방황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째 남 얘기가 아니네 라는 생각이..


볼로냐는 에밀리아 로마냐주의 주도. 이곳을 대표하는 음식이자 이탈리아 대표음식이기도 한 세 가지, 프로슈또, 모르따델라(흰 비계가 박힌 부드러운 소시지), 빠르미쟈노레냐노 치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하는 것이 아쉽지만 곧 다음 기회를 벼르며 나서는 길이니 아쉬움은 접어두려고 한다. 암튼 점심시간에 바띠베코에 들렀고 그들에게 작은 기념품을 선물했다. 모두 반색을 한다. 점심을 얻어 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그냥 보낼 수 없다며 끝내 자리로 앉힌다. 결국 프로슈또와 볼로냐의 대표 요리 또르뗄리니를 얻어먹고 식당을 나섰다.



또르뗄리니는 치즈와 프로슈또를 갈아 소를 채운 작은 만두같은 요리로 이를 뜨끈한 쇠고기 육수에 담아 숟가락으로 육수와 함께 떠먹는 요리다. 국물은 갈비탕 국물과 거의 똑같다. 또르뗄리니는 작년에 빠르마에서 먹어보고 이번이 두 번째. 좀 아까 집주인 엘레나가 다녀갔다. 키를 전해줬고 작별인사를 나눴고 그녀는 작은 쨈 하나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생각지도 못한 점심환대에 선물까지 받아챙긴 하루. 마무리가 좋다. 내일 프랑크푸르트 공항만 잘 빠져나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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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이틀 전. 내일 두 끼를 먹고 떠나는 날 아침에 마지막 한 끼, 그래서 총 세 끼를 먹으면 끝이다. 세 끼 식사로 먹어치워야 할 것들을 살펴보니 제법 양이 많다.

주먹만한 감자 5개 (비스트로 요리사들 짜장밥 해주려다 돌발상황 발생으로 취소되어 남음)
양배추 주먹만한 정도 (역시 짜장밥 취소로..)
양파 5개 (짜장밥 취소로..)
파 2줄기 (오늘 아침 대구탕 끓여먹고 남은 것)
루꼴라 조금 (샐러드 해먹고 남은 것)
바질 조금 (베로나서부터 가져온 것, 끈질기다)
마늘 안깐거 두 개 (된장 떨어지고 파스타를 덜 해먹으면서 사용량 급감)

계란 7알 (생면 파스타 만들려다가..)
모짜렐라 치즈 2덩이 (총 3덩이 사와 피자 한 번 만들어 먹고 남은 것)
빠르미쟈노 치즈 1덩이 (파스타 덜 해먹으면서 사용량 급감)
우유 200ml (베샤멜소스 한 번 만들고 남은 것)
버터 150g (진작에 150g 짜리 샀으면 됐을 껄.. 250g 샀다가..)
토마토 캔 1개 (개봉한 것 - 피자 해 먹고 남은 것)
토마토 소스 1개 (개봉한 것 - 파스타 해 먹고 남은 것)
고추장 100g (경준으로부터 받은 것 중 일부)

가자미 3마리 (어제 스테이크로 메뉴가 바뀌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 돼지불고기는 경준에게 몽땅 싸줌)
마른 미역 10인분 분량 (경준으로부터 받은 것 중 일부)
국물멸치 한 움큼 (뻬루자 머물 시 집으로부터 받은 것 중 일부)
잔멸치 한 움큼 (역시 집으로부터 받은 것 중 일부)
김 10장 정도 (집에서 받은 것 일부)
안초비 작은 병 (50g 개봉한 것)

링귀니 파스타 300g (한 봉지가 500g)
안남미 쌀 700g (한 봉지가 1kg)
강력분 밀가루 500g (피자 한 번 해먹었고 생면 파스타 만들려는데 아무래도 힘들 듯)
전분가루 (깐풍기나 탕수육 한 번 해먹으려다가..)

그리씨니 한 봉지 (스틱 형태의 이탈리아 전통 과자. 모짜렐라를 해치우기 위해 샀지만 아무래도 혹 붙인 격)
초콜렛 두 조각 (이건 뭐 금방..)
코카콜라 500ml (김 빠진 것)
맥주 한 병 (오늘 새로 사온 것. 잠자기 전에 한 잔 뻥!)

어제 제법 과식을 해 오늘 아침에 보니 땡땡 부었다. 붓기 뺀다고 저녁도 적게 먹었고 내일도 몸관리를 할 생각인데 저 많은 재료들을 어찌할지.. 가져갈 수만 있다면 기념이라 생각하며 챙겨가고 싶지만 오늘 밤에 1차로 쌀 짐을 감안컨데 들어갈 여지가 없지 싶다. 우선 내일은 밥에 계란말이와 가자미 찜, 감자국을 끓여먹고 저녁은 토마토 파스타. 다음날 아침은 밥에 계란후라이와 가자미 구이, 파 국. 얼마나 남겨 버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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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볼로냐 시장 정육점에서 사온 돼지고기. 경준과의 볼로냐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위해 준비했다. 좀 얇은 고기가 필요해서 슬라이스를 해달라고 하니 친절한 정육점 아저씨, 하나 썰어 볼테니 두껍거나 얇으면 다시 얘기하란다. 헌데 덧붙일것 없이 딱 알맞은 두께여서 'OK'. 기름종이에 비닐 깔고 그 위에 썰은 돼지고기를 하나씩 올리고 다시 비닐 깔고 하나씩 올리고. 한 조각씩 떼어져 나오니 깔끔하구나.



준비한 돼지불고기 양념장에 절이기. 불고기 양념이야 너무 뻔하니 통과. 참기름을 조금 넣어줘야 맛이 한층 도는데 그건 없어서.


역시 시장에서 구입한 가자미. 머리, 내장 따고 소금에 살짝 절여 햇빛에 말리는 중이다. 구이의 자격으로 만찬상에 오를 또 다른 역군. 이렇게 준비를 하고서 경준의 마지막 인터뷰를 위해 비스트로로 향했다. 도착하니 경준 왈 "식당에 좋은 스테이크 고기가 들어왔어요. 오늘 그거 먹어요"
 


바로 저거. 요즘 4월 메뉴로 손님들에게 쇠고기 타다끼를 내고 있다는데 그 편으로 들어온 것 중 경준이 따로 챙겨놓은거다. 애써 시장까지 봐가면 준비했지만 돼지고기에서 쇠고기로 바뀐 마당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스테이크, 이게 얼마만이냐? ㅋㅋ 세꼰도를 담당하는 엔리코에게 부탁해 한 점 얻은거니 나름 합법적 고기다. 헌데 이 외에 따로 '꼬불친'게 있으니.. 그건 바로 버섯. 실물은 공개 못하고 나중에 요리된 사진으로나.. 왜냐면 만에 하나라도 주방 사람들이 이곳에서 그 사진을 보면 곤란다하는 경준의 우려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만찬 장소는 우리 집이고 요리는 당연히 경준. 기분좋게 화이트와인 한 잔씩 마셔가며 시작한다. 고기의 붙은 불필요한 지방은 따로 떼어 놓는다. 저걸 버리느냐? 아니다.



그 전에 잠시 와인 얘기. 지난 금요일 집주일 엘레나가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집주인이 전화 걸어오면 무슨 일 있나 싶어 은근히 신경이 곤두서곤 하는데 그녀 왈 "집에 있어? 있으면 빨리 아래로 내려와"라고 한다. 무슨 일 있냐고 하니 "아니, 와인 한 병 줄테니까 그거 받으라고" 한다. 엥? 해서 이왕 그렇다면 우리도 빈손으로 내려갈 순 없어서 마침 누굴줄까 고민하던 예쁜 나무젓가락과 전통문양 책갈피를 들고 내려갔다. 방금 장을 보고 오는길인지 차 안에는 장 봉다리가 한 가득이다. 그리고 저 와인을 건네받았고 우리는 젓가락을 건넸다. 싱글벙글 미소와 함께. 잠깐이라도 와인 판매대 앞에서 우리를 떠올리며 와인을 골랐을 그녀의 마음씀씀이가 여간 고마운게 아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한 마디 던지며 부르릉 떠나는 그녀, "부오나 빠스꾸아~" (Buona Pasqua-즐거운 부활절 보내~). 허허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좀 더 길었다면 그녀와도 즐겁게 밥 한 번 먹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당신도 진짜로 즐거운 부활절을 보냈길. 차 안에 맛있는 음식이 한 가득이었으니 분명 그랬을테다. 



엘레나의 와인을 기분좋게 마시며 기분좋게 요리를 지켜본다. 경준 "그냥 식용유 없어요?" 한다. 없다고 하니 그냥 아까 썰어낸 기름덩이들을 올리브유 두른 팬에 저렇게 넣고 볶는다.  



"올리브유는 향이 있어서 고기 맛을 우리는데는 별로에요"  음.. 글쿤. 저것의 용도는 스테이크 위에 끼얹어 먹을 소스를 만드는데 있다. 살점이 좀 더 도톰하게 붙어있으며 그 맛이 좀 더 잘 우러나 좋단다. 수퍼에는 소스를 우리는 목적으로 담아낸 뼈와 질긴 기름이 붙은 잡부위의 고기를 아주 싼 값에 팔기도 한다. 암튼 일단 쎈 불에 저 고기를 던져놓으니 치지직 거리며 요란하게 튄다. "처음엔 손대지 말고 그대로 타게 두셔야 해요".  아 그렇게 익혀내면 곧 기름이 새나와 고기들이 잘 떨어지는데 그렇게 나온 기름은 못쓴다고 버린다. "돼지고기 기름과 달리 쇠고기 기름은 별로 쓸데가 없어요. 일단 기름은 한 번 빼내고 여기에 버터를 넣어 맛을 우려낼 거에요" 음.. 글쿤.


치지직 거리며 소스가 익어가는 동안 거리는 하늘은 어두워져가고 거리는 밝아져가고 배는 고파오고..



한 번 빼낸 기름은 버리고 여기에 버터 넣고 살짝 녹인 뒤 밀가루를 조금 넣고 마저 볶는다. 그리고 마늘과 바질, 소금을 넣어주고 마지막에 물을 조금 부어 약불에서 뭉근히 끓이면 소스는 완성.


곁들임으로 먹을 파쨈. 파를 길게 채썰어 준비하고 기름두른 팬에 설탕, 와인식초를 넣은 뒤 끓이다가 파를 넣고 섞어주며 마저 중불에서 끓인다. 그럼 설탕으로 인해 소스가 캬라멜화 되고 새콤달콤한 파쨈이 완성. 기름은 쪽 따라버리면 그만.


소스가 끓고 파쨈이 익어가고 드디어 고기도 팬에 올려졌다. 전문 요리사와 아마추어가 다른 점은 도구와 불을 쓰는데 있어 공백이나 허점이 없다는 점과 멀티운용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각자 출발은 달랐지만 마지막 완성은 동시에 이뤄진다는 점이다. 오랜, 혹은 잦은 경험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일이다. 저 오른쪽에 냄비는 그냥 방치돼 있는 김군의 찬밥 모습.



오늘의 요리사. 최경준.


뜨겁게 달궈진 팬에 기름 두르고 다시 버터를 넣은 뒤 곧 고기덩이를 넣는다. "원래 고기를 익힐 때는 버터를 쓰는데 센불에서 하니까 금방 타요. 그래서 기름을 둘러서 버터 타는걸 막는거죠"  덧붙이기를 경준네 비스트로도 그렇지만 스테이크의 경우 주문과 동시에 고기를 익히기 시작하는 레스토랑은 많지 않단다. 먼저 고기의 표면만을 쎈불에 익혀 놓은 뒤 주문이 들어오면 미듐이냐 레어냐 웰던이냐에 따라 오븐에서 주문에 맞게끔 데피거나 익혀내는 식이라고. 경우에 따라선 표면을 빠르게 익혀낸 뒤 속이 익는 걸 막기위해 얼음물에 재빨리 담가 열을 식혀 보관하기도 한단다. 맛에 차이가 있을까?  글쎄..  



익혀낸 고기는 버터 바른 용기에 올려 오븐에 넣는다. 제과제빵과 더불어 이탈리아 북부식의 고기 요리에서도 버터의 용도는 끝이 없는 듯. 폴렌타, 파스타, 리조또.. 이번 비니탈리에서 일본에서 일한다는 이탈리아인 요리사를 만났는데 이 친구 왈, 일본에는 양식의 경우 이탈리아 식당보다는 프랑스 식당이 압도적이어서 버터 품귀현상으로 버터 가격이 엄청 비싸다고 한다. 자신은 이해를 못하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는. 넌 버터 안쓰냐고 물으니 "난 뻬루자(중부) 출신이고 우리는 올리브유만 쓴다. 빵을 만들때도 올리브유로만 만든다"고 내심 자부심이 넘치더라는..



Burro. 이탈리아 말로 버터. 살찌우는데 저거만한 특효가 없지 싶다. 경준을 비롯한 마르코 비스트로의 요리사들은 특이하게도 버터를 숟가락을 사용해 떼어내지 않고 그냥 손가락으로 떼어내 사용한다는 점. 왜그러냐고 물으니 "그냥 그게 편해서요"



경준이 꼬불쳐 온 버섯과 샬롯이라는 작고 맛이 진한 양파를 따로 볶아낸 뒤 스테이크 팬에 함께 넣어 마저 익혀냈다. 스테이크는 좀 더 익히겠다며 다시 오븐 속으로. 


오븐에서 3~5분 정도. 스테이크가 익어가는 동안 요리가 끝난 결들임들을 접시에 담고 있다.


요로코롬.. 마늘, 샬롯, 바질, 그리고 버섯. (이름을 까먹었는데 나중에 확인..) 맛이 상당히 진하다는 것이 경준의 버섯에 대한 예찬인데 여느 버섯과 달리 그 풍부함이 분명 남다른 구석이 있다. 미식의 향유를 이렇게 조금씩 경험해 가는구나 싶은.. 허나 경준의 식성이 조금 짠편이라 그 풍부한 맛을 충분히 즐기지는 못했다는 점을 새삼 고백을 한다. 결국 경준의 짠 식성에 대한 얘기가 식사중에 또 다시 화제로 올라왔다. 경준은 예전에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파스타 삶을 때 물에 소금을 조금 넣으라는데 그런 정도는 좀 부족하구요 라면국물 정도의 간 정도로 소금을 넣으면 딱 좋아요" 그러자 강양 왈 "그럼 짠건데?" 그러자 경준 "라면이 짜요? 안짠데?.."



자~ 스테이크도 완성. 속은 멀쩡한 대신 겉이 익으며 쪼그라들어서 동그란 모양으로 변신했다.



썰어보니 흐믓한 웃음, 허허.. 레어라고 해야할지 타다끼라고 해야할지.. 암튼 빛깔 참 곱다.



그렇게 한 점 두툼하게 썰어서 그 위에 소스 쭉~!



시각적 화려함은 없지만 내용 자체는 최상급. 이곳에서 한 접시 먹으려면 최소 30유로는 내야 할 요리.



한 점씩 썰어 낼 때 마다 그 단면에 고기 좋아하는 아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아로새겨진다. 소금에 찍어먹는 쇠고기도 맛있지만 고기소스에 찍어먹는 이것도 정말 맛있네. ^^  한국사람들이 유난히 기름이 촘촘히 박힌 등심고기를 좋아하는 반면 유럽의 경우 기름기 적은 고기 자체의 맛을 더 선호하지 싶다. 수퍼에서 판매하는 고기의 경우도 그렇고 경준이 챙긴 고기도 그렇고 우리가 얘기하는 이른바 '꽃등심' 부위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 맛을 알면 이들도 홀딱 반하긴 할텐데.. 그게 소의 종자에 따라 다른건지 어떤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호주에선 한국 수출용 소에 기름이 촘촘히 박히도록 하기 위한 별도의 사료와 사육법을 쓴다고 들은 바 있다. 고기에 곁들이는 소스의 발달은 어쩌면 그런 환경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암튼 참 맛나네요~^^



뭐 거의 육회네.



비니탈리에서 마신다 마신다 하다 끝내 못마신 토스카나의 몬탈치노. 떠나기 전에 기어이 마시리라 하며 와인샾에서 한 병 구입, 마침 때를 만났다. 헌데 제법 비싸게 주고 샀는데 맛이.. 강양은 '몬ㅌ'자가 들어간 와인들, 몬탈치노, 몬테팔고, 몬테풀치아노.. 모두 산자락이라는 뜻을 가진 셈인데 이들 포도주는 영 안맞는다는 결론을. 산죠베제 종이 주요 재료인걸로 아는데 특유의 시큼함이 특징이라 좀 더 부드러운 맛을 좋아하는 이들은 반기지 않을 맛이 아닐까. 하지만 이것도 맛들이면, 특히 매우 기름진 요리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후식, 까스띨리오네의 젤라또. 볼로냐에서 최고, 어쩌면 우리로선 세계에서 최고로 맛있는 젤라또 집이라 단언할 수 밖에 없는 젤라또. 경준이 이 집과 관련한 비화 하나를 얘기해 준다. 경준네 비스트로와 까스띨리오네 집은 50미터 정도? 무척 가깝고 비스트로에서 사용하는 후식에도 이 집 젤라또를 쓴다.
"어느 한국인이 저 가게를 찾아갔어요. 그리고 돈도 안받고 숙박도 내가 알아서 할테니 단지 일만 하게 해달라고요. 근데 거절당했죠. 저 집에서 젤라또를 만드는 사람을 40대 아저씨, 그 사람 혼자에요. 그리고 절대 안가르쳐 준대요"

우리도 푸대에서 설탕 따위를 바가지로 퍼 올리는 묵묵한 그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 본 적이 있다. 그 한국인, 얼마나 낙심이 컸을까..



왼쪽부터 무, 빠나, 피스타치오. 이집의 15가지 메뉴 중 경준이 베스트 넘버 3로 꼽은 것들만 골라왔다. 왼쪽은 메가톤바 맛, 중간은 진한 생크림 맛, 오른쪽은 피스타치오를 듬뿍 갈아넣어 그 맛이 마치 찹쌀떡 콩가루 맛. 이구동성으로 극찬하는 맛은 피스타치오.



쫄깃쫄깃 부드러운 젤라또.



어느덧 깊어진 밤. 써머타임으로 8시는 넘어야 컴컴해진다. 볼로냐를 떠나며, 그리고 이번 여행을 마치며 극진하게 차려먹은 마지막 만찬이었다. 저 요리법, 고스란히 부산으로 옮겨가야지 ㅎㅎ  다음날 아침 일찍 말레이지아에서 피사로 날아오는 친구를 마중나가기 위해 마저 와인을 다 비운 뒤 경준은 집으로 향했다. 이달 말 경 서울에서 다시 만나 삼겹살을 굽자는 인사를 나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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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토요일, 오늘을 위해 장을 봤다. 사실 떠나는 날이 수요일인 만큼 마지막 만찬은 화요일 저녁에 가져야 겠지만 비스트로의 경준이 오늘 쉬고 내일은 친구와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났다가 수요일에나 돌아온다기에 그럼 오늘로 모여서 먹자 해서 그리 잡았다. 메뉴를 뭘로 할까 하다가 돼지불고기에 가자미 구이와 대구탕을 해먹기로 했다. 제법 만찬이다. 오늘날까지 볼로냐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는 볼로냐 시장에는 빅 명절인 부활절을 맞아 사람들로 북적인다. 뭐 매일 아침이 그렇긴 하지만. 그 전날 우체국에 들렀다가 시장을 지나가며 힐끔 생선가게의 생선가격을 봤는데 비싸지 않더라는. 해서 어제 작정하고 생선가게를 가서 대구와 이면수를 샀다. 손질 안해주고 둘둘 포장지에 말아주는게 좀 아쉽지만 가격 싸니 좋다.



포장지에 생선을 담아주는 아저씨.



카메라 들이대자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준다. 얼마든지 찍어도 좋다는 얘기다.



생선 사고 들른 고기 가게의 진열장. 저 가운데 쌓여 있는 것은 송아지의 뇌. 저것도 요리해 먹는 이탈리아. 경준은 양 뇌 요리를 한 번 먹어봤다는데 영 입에 안맞았다고. 입에 맞는다 해도 어쩐지 즐겨찾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얌전히 돼지고기 한 근(600g) 구입.



팔에 문신을 두른 정육점 아저씨. 인상도 좋다. 애써 이탈리아어로 주문을 하려니 되려 영어로 답을 받는다. 정육점도 그렇고 생선가게도 그렇지만 사람이 많을 경우 혼잡을 피하기 위해 번호표를 발행하는데 은행에서의 방식과 똑같다. 번호표 뽑고 기다리다 번호 뜨면 맨 처음 위의 사진에 등장하는 아저씨에게 번호표를 주고 생선을 주문하면 종이에 담아주는 방식. 정육점도 같다.



또 다른 식료품점에도 사람들로 북적. 볼로냐의 자랑 또르뗄리니를 사가고 있다.



살까 말까 무척이나 고민하게 만드는 책. elBulli라는 레스토랑의 쉐프 페란 아드리아의 요리책이다. 기존 요리책의 문법에서 벗어나 만찬을 준비하는 아드리아의 하루 일상을 다큐멘터리식 사진으로 담아냈다. 기획과 편집의 고민이 묻어나는 책이다. 물로 요리 레시피들도 사이사이 등장. 49유로니 우리돈 9만원.


이틀리(EATALY)의 입구에 나붙은 광고판.  앞서 한 번 설명했듯이 이틀리는 내부에 식료품점과 책과 식당을 갖춘 복합 공간이다. 이달부터 다음달에 걸쳐 총 5명의 유명 쉐프를 모셔다가 그의 요리를 맛보고 요리와 관련한 이야기를 듣는 행사를 알리는 광고. 가운데 미쉘린 스타 2개와 감베로로쏘 포크 3개를 받은 Fulvio Pierangelini의 요리는 100유로, 적지 않은 비용. 물론 48유로에 제공되는 식사자리도 있다. 이탈리아에서 요리사들의 직업적, 사회적, 문화적 위치를 가늠케 해주는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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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얻은 작은 소득 하나는 볶음밥 솜씨가 늘었다는 점. 특히 찬밥 처치 곤란할 때 냉장고에 남아도는 채소 꺼내서 오종종 썰고 볶고 밥 볶아내면 근사한 한 접시가 뚝딱 완성된다. 긴 여행을 통해 새삼 볶음밥이 가진 무한한 변화와 가능성을 실감했으니..  



밥과 채소, 이들을 조화시킬 기름과 소금, 후추에 볶음밥의 성격을 규정지을 메인재료 하나만 있으면 별다른 밑반찬이 필요없는 든든하고 만만한 한끼 식사 뚝딱 완성. 생선살 떠놓고 남은게 있어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하다 결국 볶음밥과 연을 지어줬다. 저 볶음밥은 숟가락과 포크, 나이프가 필요하다.


도톰하게 썬 생선으로 볶은 것이 더 먹음직 스럽다. 생선은 따로 볶아 마지막에 합쳐줘야지 첨부터 함께 볶아버리면 살 다 부서진다. 저건 숟가락만 들고 덤비면 되는 간편식. 스파클링 와인 한 잔 곁들이면 또 좋다.  내일 마지막 일요일, 비스트로의 경준도 쉬는 날인 만큼 집에서 온갖 호사스런 재료 펼쳐 놓고 요란법석 요리만들어 최후의 만찬을 즐겨야겠다. 그래봐야 삼겹살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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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자 재주를 가진 사람들의 유쾌한 퍼포먼스도 부쩍 늘었다.

귀를 즐겁게 해주고



눈을 즐겁게 해준다.


야외 테이블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고



동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도 제법 시원스럽게 느껴진다. 넵튠상.




저 멀리 볼로냐 예술의 구심점, 아지넬리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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