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는 이탈리아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겠지만 그 유산의 전파자는 이탈리아인들이 아닌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인일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 적어도 북부에서 거리 피자가게를 장악한 이들은 바로 이들 이민자들이다. 저렴한 자본으로 손쉽게 창업할 수 있고 피자가 대단한 기술을 요하는 음식이 아니어서 이들 이민자들에겐 이것 만한 정착수단도 없다. 볼로냐에 만난 다수의 이탈리아인들도 그 사실을 인정하며 맛과 솜씨에 있어서 이들이 한 수 위라는 이야기도 서슴없이 내놓는다. 이탈리아인들이 부지런히 팔아준 덕분에 파키스탄 출신의 한 피자가게 주인은 몇 개의 점포를 더 열었으며 심지어 그의 승용차는 페라리다. (이 얘기 한 번 했던가?..)

아무튼 이탈리아에 머물 당시, 특히 볼로냐에 머물 때 피자에 다소 신물을 느낄 지경이었는데 그것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돌아오니 오밤중이면 새록새록 그 맛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본토 피자를 맛보는 건 저 먼 언제쯤으로나 미뤄둬야 할 것 같고 대신 찍어둔 사진으로 맛의 추억이나 더듬어야겠다.



베로나에 머물 때 오븐에 피자를 한 번 구어봤다. 박력분은 단백질 함량이 적고 끈기가 적어 바삭한 비스켓에 적합하고 그와 반대인 강력분을 이용해 피자를 구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았던 시절. 수퍼마켓에서 제일 만만해 보이는 밀가루를 집어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비스켓을 만드는 박력분이었다는.. 그럴듯한 농도로 반죽을 하고 이스트따위는 생략한 뒤 한국 피자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세몰리나(밀을 거칠게 갈은 것으로 피자도우가 바닥에 눌어 붙는 걸 막으며 요리 반죽에도 사용된다)를 트레이에 고루 뿌려 깔고 알리치(멸치절임)와 말린 토마토 절임, 케이퍼 따위로 토핑한 피자를 올린 뒤 오븐에 넣었다. 주사위처럼 작은 알갱이들이 일반 모짜렐라 치즈고 가운데 포실하게 찢어놓은 하얀 것이 생모짜렐라 치즈. 치즈가 넘치는 이탈리아니 아쉬울게 없도다.



마지막에 올리브유를 넉넉히 뿌려 넣었으니 자글자글 기름기가 식욕을 돋군다. 도우 가장자리를 자세히 보면 박력분의 효과가 대번에 드러난다. 쫄깃이 아니라 바삭. 허나 이것도 별미더라는. 한국에 있을 때도 종종 피자를 해먹었는데 그때는 시중에 판매하는 또띠야 피를 도우로 사용했다. 담백한 피자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요즘, 또띠야도 피자 도우로 손색이 없다. 반죽에 소금간을 살짝 해줘야 맛이 좋고 기본 간은 짭짤한 알리치가 잡아 주니 피자가 맥주를 부른다.



반죽이 좀 질었는지 도우의 모양 잡기가 쉽지 않다. 결국 이런 모양으로도 만들어 먹어보고. 저쯤 되자 피자가 아닌 과자가 되더라는..



파리나(Farina)는 '밀가루', Tipo는 Type의 이탈리아 말. 그럼 '00'은? ㅋㅋ 저게 바로 강력분이라는 뜻. 비스켓을 만드는 박력분은 '0'으로 표시된다. 알파벳인지 숫자인지는 우리도 아직 모르는데 '0'을 단백질의 또 다른 표현이라 가정하면 그 구분은 훨씬 쉬워진다. 많으면 강력분, 적으면 박력분. 쉽다 ^^ 

참고로 이탈리아 남부, 특히 나폴리 지역은 여전히 이탈리아인들이 피자 주도권을 꽉 쥐고 있으며 북부의 경우도 식당에 앉아 칼로 썰어먹는 피자집은 여전히 이탈리아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