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얘기. 어제부로 이탈리아는 써머타임제에 들어갔다.  한 시간 빨라져서 한국과의 시간이 기존 8시간 차이에서 7시간 차이로 줄어들었다. 한국이 자정이면 여긴 오후 5시인 셈. 그렇다면 유럽 다른 나라들도 해당되겠지.작년 몰타에선 써머타임 실시가 좀 더 늦었던 것 같은데.. 착각인가?..   아직 쌀쌀한데 써머타임을 맞다니 벌써 여름이 온건가 싶어 기분이 묘하다. 어제 엘리와 아페리티보 약속으로 집을 나섰던 강양이 혹시 이를 미처 몰라 약속이 엇갈리는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엇갈림은 없었다고.  

오늘 얘기. 지난 베로나 시절, 짧지만 우리에게 이탈리아어 가르쳤던 안드레아가 아침에 집을 방문했다. 번역일 마무리와 번역료 지급, 간단한 아침 식사와 한국 기념품을 주기위해 우리가 이미 전에 약속을 잡았던 것. 계란 프라이와 아스라파거스에 오니기리를 곁들어 먹었다. 이럴 때 한식의 맹점이 드러나는데 간단하게 대접할 먹거리가 딱히 없다는 점이 그것. 작은 것 하나 대접하려해도 손이 제법 가는지라 순발력있게 내놓기가 쉽지 않다. 아무튼, 아침먹고 짧은 몇 가지 번역 마무리한 뒤 전통문양이 새겨진 책갈피와 부채를 선물하니 입이 귀에 걸린다. 특히 부채를 펴보는 순간엔, 거짓말 조금 보태 까무러치는 수준이어서 우리가 살짝 놀랐을 정도. 어찌나 좋아하던지.. 방에 장식용으로 쓸거냐고 물어보니 여름에 부치고 다니겠단다. 암, 그래야지. 자랑하고 다니겠단 얘기겠지 ㅎㅎ. 지난 번 엘리자베타를 시내의 한 BAR에서 만나 선물을 줬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특히 농악행렬이 그려진 작은 족자를 받고선 BAR에 손님들 모두가 보란듯이 일어서서 족자를 자랑스레 펼쳐보여 우리가 살짝 민망할 정도였다는. 아직 몇 가지 남은 기념품이 있는데 떠나기 전에 만날 사람들이 아직 남았으니 누구 하나 서운하지 않게 잘 챙겨 손에 쥐어 줘야겠다. 내겐 너무 익숙해 하찮은 물건이 때론 누구에겐 정말 평생 잊지못할 기념이 된다. 외국 나갈 때 좀 번거롭더라도 작은거 몇 개 챙겨 나가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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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 우리에게 이탈리아어를 가르쳐 온 안드레아를 집으로 불러 저녁을 먹였다. 그의 여자친구 파올라를 함께 초대했으나 그녀는 마침 베를린에 가 있어 못왔고 안드레아는 학교 친구인 돌로레스를 데리고 왔다. 광화문 액트에서 일했던 진행이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와 외모에 깜짝 놀랐는데 학교는 이미 졸업했고 지금은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는 활동가 그룹에서 일하며 아프리카 수단인에게 이탈리아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알파벳부터, 그래서 힘들다고.

변변한 음식사진 하나 찍어놓질 못했다. 게으름때문인지 아니면 분위기에 휩쓸리다보니 때를 놓치는건지, 아마 두 가지가 섞인 것일텐데 찍어야지 찍어야지 하면서 번번히 놓친다. 이때마다 음식사진을 열심히 올리는 블로거들을 보면 그 노력과 정성이 대단하다는걸 새삼 느끼곤 한다. 

안드레아와 돌로레스에겐 목이버섯만 빠졌을 뿐 쇠고기와 시금치, 양파, 당근, 그리고 간장, 참기름으로 제대로 맛을 낸 잡채와 짜장밥, 해물파전, 그리고 좀 색다른 시도로 고추고기전을 준비했다. 고추고기전이란 우리가 흔히 먹는 동그랑땡 재료(갈을 돼지고기에 각종 채소와 양념으로 반죽)를 반 가른 고추속에 집어넣어 계란을 옷을 입혀 기름두른 팬에 익혀내는 그것이다. 지난 주 엘리자베따와 엔리코를 초대한 자리에서 도미구이로 히트쳤는데 이번엔 이 고추고기전이 그 기록을 이어갔다. 새로운 접시를 내갈 때 마다

고추는 우리가 먹는 큼직하고 길쭉한 청고추를 쓸까하다가 바로 옆에 피망과 고추를 접목시킨 듯한 모양의 고추가 있어 이놈을 썼는데 잘했다 싶은게 훨씬 크고 아삭하고 고기소도 고추 속에 넉넉히 들어갈 만큼 넓은 공간을 갖고 있고 어떤 고추는 제법 매콤한 향을 내 고추전을 하기에는 그만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저렇게 생긴 놈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손으로 아삭아삭 뜯어 포도식초와 올리브유로 버무린 샐러드를 접시에 담고 그 위에 뜨끈하게 튀겨낸 제법 큼직한 고추전 2개를 얻어내니 레스토랑의 세꼰도(메인요리로 주로 고기난 생선류)에 견줄만큼 폼새가 그럴듯하다. 김군은 고기요리에 생강쓰기를 좋아하는데 너무 많이쓰면 향이 맛까지 압도해서 망치기 일쑤지만 아주 적당히 써주면 요리의 풍미가 훨씬 좋아진다. 이날 고추전에도 생강을 썼고 은은한 향이 기름진 맛을 잡아주는데 그만.

안드레아와 돌로레스는 고추전은 물론 짜장밥을 먹을 때도 숟가락 대신 젓가락 쓰기를 고집했는데 우리를 의식해서라는 생각과 나름 연마된 기술을 선보이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특히 돌로레스는 젓가락을 서양인 답지 않게 사용이 제법 능숙하다. 다만 잡채를 먹을 때는 당면의 탄력과 미끌거림에 무척 애를 먹었지만 그럼에도 끝내 포크를 집어들진 않았다. 잡채는 중국 레스토랑에서 먹어본 맛과 비슷하다며 한국음식과 중국음식이 비슷하냐고 묻길래 손을 휘저으며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보니 잡채는 중국음식의 맛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안드레아가 특히 좋아하는 음식은 파전. 두 사람이 열심히 파전을 먹고 있는데 사실 파전은 지금까지 우리가 만나서 먹여본 모든 서양인들이 그 맛에 열광했다. 이탈리아의 피자 못지 않은 다양함과 인기를 누리는 우리의 부침개 문화를 한국에 와서 직접 접한다면 아마 환장하지 싶다. 녹두전, 굴전, 김치전, 호박전..

안드레아와 작별인사는 이렇게 마쳤지만 지난 번 그의 집에 갔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손수 담근 올리브유와 와인식초를 선물로 받아온 우리로선 그게 아무래도 걸렸다. 해서 고추전을 넉넉히 준비했고 이 가운데 절반을 별도로 통에 담았다가 안드레아가 떠날때 부모님에게 해드리라고 건네줬다. 안드레아의 입이 귀에 걸린다(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밀가루 옷만 살짝 입히고 아직 계란에 담그지 않아 원재료에 가까운 것, 안드레아에게 어떻게 요리하면 되는지 쉽게 설명했다. 사실 요리라고 할 것도 없지 않나?

근데 오늘 일요일 아침, 안드레아에게 문자가 왔다. 지금 해먹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요리하는거냐고.. 그날 안드레아는 제법 취해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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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Andrea)네 거실 풍경. 그의 아버지는 서둘러 식사를 마친 뒤 친구 마리오가 기다리는 올리브 밭으로 나갔고 남은 이들만이 그라빠(GRAPPA)라는 이태리 브랜디에 대해 한창 얘기 나누는 중이다. 투명한 빛깔의 이 독주는 와인을 만들고 난 뒤 남은 포도 찌꺼기를 증류시켜 얻은 것인데 이 종목의 대표선수가 바로 프랑스 꼬냑 되겠다. 꼬냑은 오크 숙성을 거쳐 색을 내지만 이태리 그라빠는 대개 증류만 거쳐 바로 제품으로 나오는 것이 일반적.

안드레아는 그라빠를 그냥 즐기기도 하지만 주로 식후 즐기는 에스프레소를 마신 뒤 잔에 살짝 가라앉은 커피진액에 그라빠를 살짝 따라 휘휘 저은 후 단숨에 들이키는 방법도 좋아한다고.


위스키잔 반을 조금 못채워 마셔보니 포도향이 은은하면서 목넘김이 부드럽고 가슴팍이 후끈 달아오른다. 웬만한 술집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없는 이 술 역시 집에서 만든 솜씨. 허나 문제가 있는데 이게 그냥 만들면 안되는 술이라고. 증류를 위해선 보일러와 스팀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이게 당국의 안전관리를 받아야 하는 위험(?) 시설이고 브랜디를 만드는 시설이니 더욱 당국의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것.

허나 안드레아 아버지와 친구인 마리오(Mario) 아저씨는 '살금살금' 만들고 있다. 판매할 것도 아니고 집에서만 '조용히' 마시겠다는데 성가시게 신고까지 해야할 필요가 있나. 집에 공무원 들락거려봐야 좋을 것도 없잖은가.  마약도, 대량살상무기도 아닌 그저 가족들과 친구들과 '조용히' 마실 술 몇 병 만든건데.. 우리는 안드레아 아버지와 마리오 아저씨의 은밀한 작업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이들의 삶에 진정으로 경의를 표한다. (비밀을 지켜달라고 했는데.. 읽은 이들도 그냥 그런 줄 아시라)  


올리브 수확을 마친 뒤 흐믓한 표정으로 포도주를 따르고 있는 마리오 아저씨. 뒤로 문제의 증류통이 보이고 더 뒤로 보자기에 덮힌 술통도 보인다. 사실 이런 시설에 욕심을 낼만도 한게 포도주를 한 번 담근 뒤 포도 찌꺼기를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발효시키면 양질의 포도식초는 물론, 증류시키면 그라빠까지 만들어 먹을 수 있는데 왜 버리냔 말이지. 


뜨끈하게 그라빠도 한 잔 걸쳤으니 이제 일할 시간. 집을 나와 왼쪽길로 살짝 접어들면 창고가 나오고 이를 지나면 포도와 올리브가 자라는 작은 과수원이 펼쳐진다.

자태 고운 숫닭이 늠름하게 버티고 섰다. 이런 멋진 닭은 실로 오랫만에 보는 것 같은데 아마 요즘 자라는 아이들은 닭이라고 하면 비좁은 계사에서 고개만 내밀고 모이쪼기에 바쁜 닭의 모습만 떠올리진 않을까?  아니면 닭 그림을 그리라고 했을 때 BBQ치킨에 그려진 마스코트를 따라 그리는건 아닐지.. 세상이 험하니 그럴법도 하지 않나? 닭고기 덜먹어도 좋으니 세상의 닭들이 쟤처럼만 살아가면 좋겠다.


저 끝 올리브 나무 아래서 안드레아 아버지와 마리오 아저씨가 올리브를 따고 있는 가운데 줄에 묶인 염소가 카메라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 뒤로 두 마리가 더 있는데 이놈들이 겁이 없는지 가까이 다가가면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가오려 애쓴다. 자라는 환경이 좋은 탓에 녀석들은 몸에서 냄새도 안나고 땟깔도 빛이 날 정도로 깨끗하다.

한 마디로 복받은 놈들이다. 질좋은 풀도 널렸건만 올리브를 한움큼 집어 건네주면 아주 맛있게 싹싹 비운다. 아이 키우는 부모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들 미국에 유학보내기 보다 시골 들녘에서 닭치고 염소치면서 자연과 더불어 유년기를 보내게 하는게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훨씬 좋을텐데.. 아버지는 밀주를 만들어도 좋고..

올리브 나무 아래로 망을 넓게 깔면..

밑에서 훑어 내리고..


위에서 훑어 떨어뜨리면 되는 간단한 작업. 농촌의 아직 많은 일들이 그렇기도 하겠지만 하이테크의 시대에 여전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수확하는 모습은 낭만을 넘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허나 작업해야 할 그루수가 많을 경우엔 결코 낭만이 될 수 없는 고된 작업.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안드레아의 아버지가 열심히 올리브를 떨어뜨리고 있다.


까맣게 잘 익은 올리브들. 군데군데 덜 익은 파란 올리브도 보인다. 모든 결실은 탐스럽다.

안드레아(Andrea)의 어머니와 아버지. 어머니는 이탈리아인이지만 태어나기는 스위스에서 태어났다고. 아버지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베로나의 토박이다.


수확은 마치고 올리브와 이파리를 분리하는 1차 필터링을 준비하고 있다. 어떻게 하는 작업일까 궁금증이 몰려왔는데..


웽웽 모터도는 소리가 날줄 알았건만 손바닥으로 텅텅 치는 소리만으로 간단하게 이파리가 제거된다. 보는 것 처럼 경사진 망에 바구니를 쏟아부으면 올리브는 굴러서 끝으로 떨어지고 이파리는 긴 고랑식의 망 사이로 빠져나간다.


오늘로써 안드레아네 올리브 수확은 마무리됐다. 필터링을 거친 올리브는 월요일 쯤 동네 기름가게(방앗간 같은 곳)로 가져 갈꺼라는데 1시간이면 기름이 짜져 나온단다. 그럼 1년은 족히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이왕이면 그것까지도 지켜보고 싶지만 상황이 어떨런지 모르겠다.

앞서도 얘기했듯, 안드레아 가족은 우리에게 올리브 오일과 포도식초를 선물로 안겨줬다. 안드레아 아버지는 우리가 진짜 일꾼처럼 열심해 일해서 주는 댓가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김군은 주로 사진과 비디오만 열심히 찍고 일은 강양이 다 했다.


샐러드에 없어선 안될 저것들. 향과 맛이 정말 좋은데 그 깊은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 미각에 민감한 혀를 갖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오늘 새삼 깨달았다.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가장 첫 번째 조건이란 저 원료를 손으로 직접 수확하고 그 과정에서 만지고 냄새맡고 날것을 먹어보면서 체득된 경험을 갖는 것이 우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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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안드레아네 집엘 다녀왔다. 안드레아네 집은 베로나 외곽의 얕은 산자락에 위치해 있는 탐스럽기 짝이없는 전원풍의 집으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가족은 작은 농토를 갖고 있어 일년 가량 손수 담가먹을 양의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무를 직접 가꾸고 있다. 포도는 이미 수확을 마쳤고 올리브는 한창 수확중이라는데 오늘이면 이것도 거의 마무리 될 것 같다고 해서 마침 햇살 짱짱한 주말을 맞아 그의 집을 방문했다. 

올리브 수확에 앞서 점심을 먹는 자리. 안드레아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손수 차린 식탁 위로 직접 담근 와인과 직접 짜낸 올리브 오일이 올라왔다. 사진 왼쪽이 와인이고 오른쪽이 오일. 집에서 담근 와인과 오일이 갖는 공통점의 하나는 눈으로 볼 때 모두 시중의 그것들과 달리 색이 탁하다는 것. 요즘이야 사람들의 눈이 정확해져 그것이 바로 신선함과 건강함의 표시라는 걸 알지만 한땐 그게 뭔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해 멀리하기도 했고 요즘엔 반대로 맹숭한 가짜를 애써 탁하게 하는 사기도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나?  

항아리에서 감주 퍼다 마시듯이 물컵에 편하게 마시는 와인, 그 맛은 달지 않으면서 깨끗했고 무엇보다 집에서 담근 와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전달해주는 느낌, 바로 어딘가 어설프지만 기성품에선 접하기 힘든 신선함이 살아있었다. 주로 샐러드에 무쳐 먹으라는 엑스트라 버진 오일, 한 숟갈 따라 입안에서 굴려보니 올리브를 딸 때 나는 풀향이 거짓말 안하고 고스란히 전해진다. 수퍼에서 사온 베르톨리를 똑같은 방식으로 마셔보니 그 향이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하다. 안드레아 어머니는 그 귀한 오일 한 병을 우리에게 선물로 안겨줬고 아버지는 포도주를 만들고 난뒤 남은 찌꺼기를 발효시켜 포도향이 제대로 찡한 식초를 페트병에 한 가득 담아주셨다.


천 조각을 목에 두른 올리브 오일 병. 작은 아이디어가 편리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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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10. 21:59

어제 저녁, 첫 이탈리아어 수업을 다녀왔다. 숙소로부터 걸어서 채 20분이 걸리지 않으니 몰타에서 학원다니던 거리보다 조금 짧은 셈이다. 좁아 터진 인도를 걷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닌 몰타였다면 베로나는 넓은 인도는 물론이고 공원길을 지나가니 그 여유가 비교할 바가 아니다. 목요일 수업은 원래 6시 30분이지만 어제는 6시부터 시작됐다.

성당 마당에 도착하니 이미 예닐곱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경계와 호기심, 낯설음이 뒤엉켜 기분이 뒤숭숭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이탈리아어다. 목적지가 같다는 점은 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고 이들 또한 우리에게 쉽게 다가와주길 바란다.

파올라를 찾아보니 파올라는 아직 오지 않았다. 수업이 진행되는 1층의 교실을 기웃거리자 일전에 잠깐 인사를 나눈 적이 있던 성당 관계자가 모습을 나타낸다.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옷차림에 신경을 거의 안쓰는 60대의 이 노인은 잔뼈 굵은 활동가의 분위기를 풍겼다. 씨익 웃으며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그 단순한 제스춰가 낯설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한 순간에 없애버렸다.

이날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포함해 총 9명. 브라질 출신이 가장 많고 영국에서 온 흑인도 있고 스리랑카에서 온 아주머니도 있다. 마침 파올라도 도착했고 함께 올지 장담 못한다던 안드레아도 왔다. 그룹을 2개로 나뉘었고 한 공간에서 책상을 나누어 수업을 진행했다. 한쪽은 조금 회화를 할 수 있는 그룹이고 우리그룹은 숫자 세는 것부터 시작하는 그야말로 초급이다.

우노, 뚜에, 뜨레, 꽈뜨로.. 생소하기 그지없는 단어들과 발음들. 안드레아는 이탈리아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설명에 열심이고 스리랑카 아줌마와 브라질 청년과 함께 우리도 눈치껏 쫓아가본다. 0서부터 100까지의 숫자 세기와 시간 읽기를 이날 공부했다. 낯선 단어들이지만 반복되는 몇 가지 원리를 이해하니 열심히 큰 소리로 반복해 읽어대면 쉽게 적응할 것 같다. 문득 리자네 BAR가 떠오른다. 자주 놀러가서 리자와 손님간에 주고받는 이야기를 엿들어봐야 겠다.

수업의 질은 높았고 배우는 이들의 만족도 또한 매우 높았다. 이 추세가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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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9. 16:39
어제 안드레아가 새로운 숙소로 찾아와 첫 이탈리아 수업을 진행했다. 숙소를 오전에 옮긴 참이어서 이래저래 어수선했고 마침 뒤늦은 아침겸 점심식사를 준비중이어서 어수선함은 더했다. 숙소는 일산에서 살던 원룸 형태의 오피스텔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테다. 오밀조밀하지만 그래도 갖출 건 다 갖췄으니 잠시나마 머물려 향후 일정을 준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안드레아가 도착했을 때 카레가 끓고 있었고 집안은 채 정리되지 않은 짐들로 어수선했으나 안드레아는 괘념치 않았다. 아침에 필리핀 상인이 운영하는 아시아 상점에서 사온 무를 채 썰어 고추가루와 밀라노에서 사온 까나리 액젓을 넣어 살짝 버무렸다. 액젓의 맛이 전해지자 짭짜름한 맛이 몸을 조여주며 마치 어떤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 들었다.

카레와 반찬으로 곁들인 무생채. 강양이 2배식초를 평범한 식초양으로 착각해 넣었더니 무생채의 맛이 다소 쎄졌으나 우리가 먹는데는 문제 없었고 안드레아도 용감하게 열심히 먹었다. 자신은 뭐든 먹는 것을 좋아한다니 안드레아는 앞으로 매주 수요일, 이탈리아 수업에 앞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한국문화의 일부를 경함하게 될 테다.


강습비는 하루 20유로로 정했고 수요일, 금요일에 우리 숙소에서 수업을 진행하며 일주일에 40유로를 수요일에 지급하기로 했다. 전문 선생도 아닌 자신이 20유로를 받는것이 과분하다는 안드레아, 그러나 우리가 어디 단지 수업료로만 그 돈을 지불하는 거겠는가? 겸손해하는 그 틈을 파고들어 우리 힘으로는 해결이 힘든 부탁들을 열심히 '제공'할 참이다. 가령 부동산을 함께 가보자 등등..

개인교습이 수요일과 금요일이라면 성당에서 진행하는 이탈리아어 무료 강습은 목요일과 토요일이다. 전에 얘기한대로 이 무료강습은 베로나의 가난한 사람들, 즉 이주노동자들을 상대로 성당이 마련한 자선 프로그램이고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의 하나가 바로 안드레아의 여자친구인 파올라다. 특히 토요일은 오전 9시부터 수업이 진행되는데 수업을 마치면 참여자들을 위해 간단한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지난 토요일에 한 번 방문해보니 사실 수업을 듣는 이들은 그닥 많지 않고 대개 아침식사를 위해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식사준비에 일손이 부족하면 우리도 거들지 않을까 싶다. 안드레아가 덧붙이기를 성당에 수업들으러 올 때는 가급적 '튀지' 말라고 한다. 무슨 의미인지 우리는 대번에 알아 듣는다.

이 무료강습이 우리에게 좋은 이유는 일단 공짜라는 점도 그렇지만 파올라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통불능으로 받는 노동자들의 불이익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그 어느 선생들 보다도 열심히 가르친다. 수업은 모두 이탈리아어로 진행되며 한쪽에선 기초를 진행하고 다른 한쪽에선 어느 정도 문장을 만드는 사람들을 위해 대화수업이 진행된다. 수업 참여자가 많지 않으니 그야말로 소수정예다.


사실 일전에 베로나의 한 교육시설을 찾아간 적이 있다. 이 시설은 정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합법적인 체류허가증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가 있다. 혹시나 하고 우리도 문을 두드려보니 경찰서가서 신고하고 허가증을 받아오라고 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설사 경찰서를 찾아간다 해도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할 정보가 단지 주소와 이름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FM이 좋긴 하겠지만 FM이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라면 그건 빨리 간파해서 피해야 한다.

아무튼 이탈리아어, 우리가 첫 번째로 넘어야 할 장벽은 '읽기'다. 흉내조차 내기 힘든 몇 가지 발음앞에 절망감이 앞서지만 안드레아는 '연습, 연습, 연습'을 외친다.

"그래! 가보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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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6. 05:59
우선, 내일 아침 일찍 밀라노로 떠나야 하므로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집에 들어온지 15분이 지났고 그 15분 전에는 식당에서 안드레아와 그의 여자친구 파올라, 그리고 엘리자베타와 식사를 했고 그 전에는 바르돌리노(BARDOLINO)라고 하는 베로나 북서쪽의 마을에서 열리는 와인축제에서 3병의 와인을 마시고 돌아온 참이었다. 찍은 사진도 많고 이것저것 적을 것도 많지만 피곤땜에 연일 미뤄지고 있다.

아무리 늦어도 수요일엔 우리들의 숙소로 들어갈 듯 싶다. 그리고 오늘 안드레아와 만나 바로 그 수요일부터 이탈리아어 개인 레슨을 시작하기로 했고 강습비는 시간당 20유로(한화 3만원)로 잠정 확정했다. 그리고 그와 그녀의 여자친구가 진행하는 교회에서의 무료 이탈리아어 강좌는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에 열린다고 하니 그것도 참여할 예정이다. 이미 한 번 그들과 현장을 방문했고 우리가 한 때 안산 원곡동에서 외국인 노동자들 자녀들을 대상으로 미디어 교육을 할 때와 그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토요일은 오전에 수업이 진행되는데 마침 수업을 마치고 나면 노숙자들을 위한 급식행사가 바로 이어지므로 어쩌면 이들과 함께 이 활동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어제 다녀온 파도바는 이태리에서 로마 다음의 두 번째 종교 도시라고 한다. 그래선지 길거리의 기념품이라곤 모조리 수도승 조각과 예수의 초상화가 전부. 하지만 우리를 놀래켰던 건 중앙 광장에 펼쳐진 어마어마한 규모의 시장이었는데 채소와 육류의 다양함과 양을 보고 그만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탈리아 음식의 저력을 진정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공간으로 시간되는데로 사진을 정리해 올릴 생각.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한국에서 먹는 것들을 마찬가지로 이곳 시장에서처럼 연출해 놓는다면 그 다양함과 질, 기발함에서 결코 뒤떨어지진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진정으로 부러웠던 것을 그것을 판매자와 소비자, 더 나아가 관광객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일 터.

오늘 다녀온 바르돌리노는 큰 호수를 끼고 있는 아주 살기 좋은 마을이다. 이맘 때면 늘 와인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호수의 가장자리 길을 따라 대형 좌판이 펼쳐지고 좌판마다 저마다의 특색있는 먹거리를 내놓고 손님을 잡아끈다. 그 진기한 풍경들을 구경하고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들은 동시에 와인을 잔으로, 또는 병으로 팔며 사람들을 취기로 몰아 넣었다. 우리도 결국 3병의 와인을 비웠는데 역시 술은 낯 술이 최고더라는..

오후 들어 거세진 바람, 그러나 여전히 따듯한 햇살, 그리고 무르익어가는 가을 낙엽이 연출하는 노란 색조에 더해 오후 무렵의 석양이 더해지면서 분위기는 더욱 달라올랐고 사람들의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다. 이해할 수 없었던 점 하나는 80년대 미국 팝송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는 점이다. 지역의 독특한 먹거리를 안주삼아 마시는 바르돌리노 산 와인에 곁들어지는 음악이 마돈나, 신디루퍼, 엘비스 프레슬리라니..

내일은 밀라노! 한인 민박을 예약해놨고 도착하는대로 한국식료품점을 우선 수소문할 계획이다. 밀라노 다녀와서 이런저런 사진 정리할 계획..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4. 08:32


'스플리쯔(Spritz)'는 베로나, 넓게는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즐기는 음료다. 사실은 칵테일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와인잔에 물과 화이트 와인, CAMPARI라고 하는 술을 섞어 오렌지 한 조각과 얼음을 담가내면 되는 간단한 술인데 하루에 한 잔은 거의 마시고 있다. 지금 두 잔을 마시고 들어왔더니 살짝 알딸딸하다. 

베로나 4일째, 근황을 전하자면 이렇다. 절대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 엘리자베타의 집에서 여전히 머물고 있으며 이런저런 생소한 경험들을 하고 있다. 이는 바꿔말하면 이곳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이에 대해선 천천히 얘기하기로 하고, 우선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과 언어다. 엘리자베타의 집은 훌륭하다. 굉장히 넓은 집은 아니지만 갖출 것은 모두 갖춘, 성공한 캐리어 우먼의 멋진 집이다. 출판업계에 일하는 그녀의 직업답게 집에는 온갖 종류의 책이 넘친다. 시샘하게 만드는 주방에 깨끗한 화장실도 두 개다. 우리가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는 집이지만 그녀에게도 사생활은 있는 법.


마냥 그녀의 집에 머문다는 것은 그녀의 소중한 삶의 일부를 우리가 점령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슬슬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니 서둘러 집을 구해야 한다. 사실 그녀도 은근히 원하는 눈치. (그런 그녀의 속내가 오히려 반갑다)

베로나가 몰타처럼 넓은 공간에 저렴한 집은 없지만 그래도 이러저런 임대광고는 제법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비자문제 때문에 몇 개월 이상의 임대계약을 망설이고 있다. 우선은 한달에 900유로(한화 150만원)에 이르는 비싼 레지던스에서 머물 예정이다. 이 한 달 동안 비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알아보고 이탈리아 취재기행의 계획을 잡을 예정이며 이후 좀 더 저렴한 집에 대한 정보를 찾을 것이다. 일이 잘 풀린다면 한 달 후엔 500유로 이하의 집으로 옮기지 않을까 싶다.

우선 토요일인 오늘은(날이 밝았으므로) 엘리자베타와 함께 VERONA로 부터 대략 한 시간 거리의 PADOVA를 방문할 예정이고 월요일엔 역시 그녀를 따라 MILANO를 다녀올 예정이다. PADOVA는 그녀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도시로 그녀는 부모님을 만나고 우리는 시내를 구경한 뒤 그날 당일 돌아올 것이고 MILANO에선 하루 묵을 예정. PADOVA도 굉장히 멋진 도시라는데 우리가 그곳에 거는 기대는 한국식당에서의 식사와 식당 주인을 통해 고추장 판매처를 수소문해 고추장을 사오는 것이다. 나중에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베로나에 산재한 식당에서 즐기는 식사는 정말로 대부분 맛이 좋다. 그러나 열 접시의 훌륭한 스파게티가 한 스푼의 고추장을 못당하는 것이 우리의 유난스런 입맛이니 어쩌랴.. 

그 다음 문제는 언어다.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해봐도 언어를 모르고선 이탈리아에서 하다못해 음식 한 접시 제대로 주문하기가 어렵다. 단지 스쳐지나가는 관광객이라면 까르보나라를 시켰는데 뽀모도로가 나와도 그 맛이 또한 훌륭하니 우연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며 까탈스럽게 따지지 않겠지만 우리가 그 입장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에게 좀 더 구체적인 소통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해서 오늘, 일벌레인 엘리자베타의 성실한 중재로 만난 사람이 바로 안드레아다.


왼쪽이 엘리자베타, 오른쪽이 안드레아. 엘리자베타의 단골 미장원의 또 다른 단골 손님인 안드레아는 미장원 주인 클라우디아의 중개로 소개받았으며 그는 베로나 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했다. 우리는 카푸치노를 마셨고 저 두 사람은 에스프레소를 거의 원샷하다시피 마셨다. 이탈리아어 개인 교습이라는 주제를 가운데 놓고 우리는 안드레아로부터 궁금한 점을, 안드레아는 우리에게 궁금한 점을 서로 묻고 답했다.

안드레아는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희소식을 전하기도 했는데 마침 성당에서 운영하는 무료 이탈리아어 강좌가 일주일에 2회 열린다는 것. 그 수업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리고 그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동시에 자신 또한 그곳에서 자원활동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에게 우리는 어쩌면 남다른 경험의 기회일 수도 있을테다. 이 자리에서 엘리자베타는 직업을 찾고 있는 안드레아에게 (이제야 얘기하지만 그녀는 GIOUNTI라고 하는 출판사 겸 서점의 중역이다) 안드레아가 스페인어와 러시아어를 구사한다는 점을 높이 사 그에게 취업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강습비 얘기는 엘리자베타가 이탈리아어로 먼저 안드레아에게 물었다. 안드레아는 선뜻 답을 내놓지는 못했고 이런 경우가 자신에게 처음이니 우선 여자친구와 함께 상의하겠다고 한다. 그러라고 하면서 엘리자베타는 자신의 집에서 일주일에 3번 와서 청소를 도와주는 필리핀 여성 레오노르의 경우 시간 당 7.5유로(11,000원)의 돈을 지불하고 있며 그 금액의 더블은 어떻냐는 1차 제안을 던졌다.

이는 우리나 안드레아,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제안이었다. 왜냐면 누구도 기준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당 20유로 안쪽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사실 우리가 하기에 따라 그 시간을 훨씬 넘겨 수업을 이끌 수도 있다. 만나본 안드레아는 매우 성실해 보였으며 우리와 우리의 계획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점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뒤 중매역할을 한 엘리자베타는 자신의 일을 위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리는 안드레아와 함께 카페 옆 대학건물로 이동해 그곳의 시설과 도서관 이용방법을 전해듣고 길 건너 편, 즉 우리가 아마도 한 달간 머물게 될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공용 자습실(?)도 소개받았다. 이 공간이 무척 흥미로웠는데 대학부속건물은 아니고 베로나 시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안에는 그저 형광등과 테이블, 의자가 전부이며 누구나 와서 자신의 책을 보거나 신문을 보고 가면 그만이다. 안쪽 구석에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중이었으며 분위기는 꽤나 엄숙했다. 사진에 담진 못했지만 밖에서 담배피던 신장 190에 이르는 사내는 거의 키아누 리브스의 판박이어서 김군 마저 매료시켰다는..


날씨는 제법 맑았으나 유난히 바람이 쎄서 추위를 느낀 하루. 누구의 시선없이 맘 편하게 머물 집이 당장 없다는 것은 정말이지 큰 스트레스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절감한 하루다. 집과 언어, 이 두 가지를 위해 요 며칠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아직 확실해진 것은 없다. 당장 한 달간 기거할 집은 거의 정해졌지만 임대료가 너무 비싸 한 달 후엔 새로운 집을 찾아 옮겨야 한다. 이탈리아어 강습도 아직 무료강좌를 나가보지 않아 어떤지 정확히 모르겠고 개인교습도 강습비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과연 얼마 동안을 배워야 우리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지 아무도 모른다. 거기에다 비자의 불안정함까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낯선 땅 베로나에서 조금식 인연을 넓혀가고 있으며 그들 모두 우리에게 적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안드레아가 그렇고 세인트 토마스 카페의 리자가 그렇고 당연히 엘리자베타가 그렇다. 이 모든 것이 행운이라면 그 행운은 과연 어디까지 지속될지, 당장 우리가 걱정하는 집 문제와 언어 문제에도 행운은 따라줄지.. 

아래 사진은 세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의 발코니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마침 손 붙잡고 지나가는 연인 너머로 사랑의 맹세, 혹은 바람을 적은 간절한 쪽지들이 마치 한 폭의 미술작품처럼 붙어 있다. 여담이지만 베로나는 확실히 한국여행자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눈씻고 찾아봐도 한국어 쪽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