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얻은 작은 소득 하나는 볶음밥 솜씨가 늘었다는 점. 특히 찬밥 처치 곤란할 때 냉장고에 남아도는 채소 꺼내서 오종종 썰고 볶고 밥 볶아내면 근사한 한 접시가 뚝딱 완성된다. 긴 여행을 통해 새삼 볶음밥이 가진 무한한 변화와 가능성을 실감했으니..  



밥과 채소, 이들을 조화시킬 기름과 소금, 후추에 볶음밥의 성격을 규정지을 메인재료 하나만 있으면 별다른 밑반찬이 필요없는 든든하고 만만한 한끼 식사 뚝딱 완성. 생선살 떠놓고 남은게 있어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하다 결국 볶음밥과 연을 지어줬다. 저 볶음밥은 숟가락과 포크, 나이프가 필요하다.


도톰하게 썬 생선으로 볶은 것이 더 먹음직 스럽다. 생선은 따로 볶아 마지막에 합쳐줘야지 첨부터 함께 볶아버리면 살 다 부서진다. 저건 숟가락만 들고 덤비면 되는 간편식. 스파클링 와인 한 잔 곁들이면 또 좋다.  내일 마지막 일요일, 비스트로의 경준도 쉬는 날인 만큼 집에서 온갖 호사스런 재료 펼쳐 놓고 요란법석 요리만들어 최후의 만찬을 즐겨야겠다. 그래봐야 삼겹살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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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휴일인 토요일과 일요일, 토스카나주 끼안띠 지방의 빤자노 마을에서 250년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다리오 체키니의 정육점을 두 번에 걸쳐 다녀왔다. 오래된 역사 만큼 전통에 대한 남다른 고집으로 오늘날 이윤에 초점을 둔 공장형 비육시설의 비윤리적 생산행태 맞서 힘겹게 먹거리 싸움을 벌여오고 있는 이탈리아 정육계 장인의 한 사람. 그의 가게 운영이념은 철학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성공해 주말을 물론 평일에도 세계 각국으로부터 그를 만나려는 손님들과 언론인들이 몰려오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일요일에도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토스카나의 들녘에 봄바람이 스칠 즈음에 우리는 그를 카메라에 담을 예정이니 그와 그의 정육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가서 다시 하자. 주말 이틀간의 방문은 사전 조사차원의 방문인 셈.


주말. 체키니가 자신의 농장에서 직접 담그는 끼안띠 와인을 건넨 뒤 건배. 저 와인은 정육점을 찾는 모든 손님들에게 무한 공짜로 제공되며 간단한 먹거리도 가게 한 켠에 가득 준비돼 있다.


일요일. 정육점에서 일하는 사람좋은 인상의 다니엘라 아줌마가 손님들에게 끼안띠 와인을 채워주고 있다. 다니엘라 뒤로는 끼안띠에 곁들어 먹으라고 가게에서 제공하는 빵과 살라미, 올리브와 햄이 즐비하다. 기분좋은 미소와 넉넉한 인심이 있어 손님들은 낯선 서로를 위해 잔을 들어올리며 '살루떼'(건강을 위해!)를 외친다. 그래서 더 훈훈한 가게. 사실 우리는 식사예약을 일요일에 해놨고 토요일은 단지 그를 만나보고 가게를 둘러보는게 목적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점심식사를 공짜로 대접했다. 정육점의 1층 한 켠과 2층은 10유로와 20유로에 즐길 수 있는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으로 운영되고 정육점 맞은 편 작은 별채는 솔로치치아(SOLOCICCIA)라는 이름의 식당으로 운영되는데 이곳에선 6가지의 고기요리가 30유로의 가격에 코스로 제공된다. 우리가 예약한 식단은 30유로짜리이고 주말에 공짜로 대접받은건 10유로와 20유로짜리 메뉴. 오늘은 주말에 맛본 10, 20유로짜리 요리를 소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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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식당으로 오르는 계단 위로 쇠고기 스테이크를 품에 안은 모나리자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은 건넨다. '많이 먹어, 오늘은 공짜야~'


발디딜 틈 없는 2층 식당. 200년이 넘은 낡은 건물이지만 실내는 현대적인 마감재로 단장돼 있다. 저 뒤 가운데에 고기를 굽는 화덕겸 벽난로에는 토스카나 남부에서만 가져온다는 특별한 숯이 벌겋게 달아올라 식당 안을 훈훈하게 데펴주고 있다. 이날 식당은 이탈리아 손님들이 대부분인 듯.


20유로 메뉴에서 첫 번째로 제공되는 접시. 또노 델 끼안띠(Tonno del Chianti-끼안띠의 참치)라는 이름이 붙은 이 요리는 돼지고기를 푹 익혀 결대로 살을 찢은 뒤 올리브유와 소금만의 간단한 양념으로 제공되는데 그 맛이 참치와 흡사해서 붙은 이름이다. 붉은 양파와 곁들여 먹으면 퍽퍽한 살이 훨씬 부드러워지고 맛도 좋다.


아예 새 병으로 하나 까서 테이블에 놓아준 다리오의 끼안띠 와인. 끼안띠라는 이름은 토스카나의 끼안티 지역을 일컫는 말로 피에몬테주의 바롤로, 베네토주의 아마로네처럼 토스카나주를 대표하는 와인이며 낮은 품질에서 최고급까지 다양한 품질의 와인이 만들어진다. 그럼 이게 고급 끼안띠냐고? 그건 아니고 다리오의 농장에서 재배한 포도를 집안의 손맛으로 담궈낸 수수한 와인으로 외부에 판매하지는 않는다. 여느 식당에서 맛 볼 수 잇는 저렴한 테이블 와인. 


Mac Dario가 나왔다. 감자와 양파, 샐러리등의 채소에 둘러싸인 거대한 햄버거 스테이크.


한 점 썰어보니 잘게 다져낸 쇠고기를 뭉쳐낸 햄버거 스테이크임을 알 수 있다. 양념은 커녕 소금간 조차 안돼있다. 이날 우리와 함께 맞은 편에 앉아 다리오는 물론 요리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준 맛시모는 고기맛 자체를 즐기는 요리에서 소금간을 해주는 것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는데 이유는 소금이 들어가면 삼투압에 의해 고기의 육즙이 굽는 과정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테이크식으로 먹는 고기의 경우 미리 간을 하는 것은 금물이고 다 익힌 후에 취향껏 간을 해서 먹는게 고기를 가장 맛있게 즐기는 방법이라고. 반 이상을 먹은 후에야 그 이야기를 들어서 속으로 허탈해 했는데 사실 먹는 동안 간이 심심해 생고기를 씹는 맛이 착 입안에 붙는 맛은 아니었기 때문. 정성껏 준비한 요리, 그것도 공짜로 대접받는 마당에 뭐달라 어쩌라 요구하기가 뭐했던건데 진작 알았더라면 소금을 달라했을 걸.. 싱싱한 고기맛을 확실히 즐기는 법이 뭔지 확실히 깨달은 경험. '소금을 쳐라'


끼안띠 스시(Chianti Sushi). 끼안띠에는 카르파치오(Carpaccio)라는 이름의 전통적인 육회요리가 있는데 이를 다리오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2주간 숙성시킨 생쇠고기에 레몬 껍질을 얹고 올리브유를 뿌려냈다. 우리의 육회와 비교해 곁들이는 양념이 거의 없다.


돼지고기 등심을 넓게 펴 가운데에 로즈마리를 가득 채워 둘둘 말은 뒤 은근한 불에 바베큐식으로 오랫동안 익혀낸 요리. 퍽퍽한 살에 로즈마리 향이 가득 베어있다. 이건 앞서 다리오의 정육점에서 그를 만나고 가게를 둘러보는 동안 수시로 썰어 한 켠에 접시에 담아놓은 것을 틈틈이 집어먹는 통에 식사중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바삭하게 익은 껍질을 오랫동안 씹는 맛이 일품.


돼지고기를 갈아 양념을 더해 햄으로 만든 뒤 달달한 오렌지 소스에 무쳐냈다. 달콤하고 상큼한 맛으로 즐기는 고기요리. 배가 불러도 자꾸 손이갔던 요리.


한 상 차려지니 더 이상 접시를 놓을 자리가 없다.


마지막으로 나온 접시 젓가락. 2층의 서빙을 담당하는 베네치아 출신의 단테가 장난스레 젓가락을 접시에 담아와 우리에게 건네고 있다. 기분좋은 웃음과 유머로 식당안 손님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에너지 만점의 인물. 삶의 사연도 많은 인물 같은데 언젠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으리라.


신선한 채소가 놓여 있으니 퍽퍽한 고기를 먹는게 한층 수월하다.


식사를 마친 뒤 '입가심'으로 제공된 독주들.


아네똘로(Anetolo)라는 이름이 붙은 이 술은 도수가 무려 60도. 영어로 딜(Dill)이라는 이름을 가진 향미료로 만들어진 술로 그 향이 마치 회향풀을 닮아 있다. 향 자체는 매력적인데 한 모금 머금는 순간 강한 알콜기운이 입안을 태워버릴 듯이 퍼진다. 입안에 머금고 목넘김이 쉽진 않지만 그 힘겨운 고비를 넘고 나면 신비로운 잔향이 입과 코를 은은하게 감싸주는 매력적인 술.


점심식사가 끝나고 테이블은 다시 저녁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다시 깔끔하게 세팅됐다. 캐나다에서 온 손님들을 안내하고 있는 단테. 오른편 하얀 벽 모서리가 우리가 앉아서 식사를 한 자리. ^^


식당을 나와 터질듯한 배를 부여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라본 토스카나 끼안띠의 풍경.

(지난 주 우리의 인터넷 칩이 한달이 안돼 벌써 사용한도를 넘어버렸다. 다음주 금요일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어서 부득이 동네 인터넷방을 드나들고 있다. 해서 업데이트도 굼뜨다. 사정이 이렇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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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뽀모도로 파스타. 집에서 간편하게 먹는 토마토 파스타란 하나에 700원 정도 하는 토마토 소스 깡통(토마토 홀)을 사서 이걸 베이스로 해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 것을 말한다. 깡통 하나면 1.5인분을 요리할 정도의 양이고 제품에 따라 과육이 제모습 그대로인 것에서부터 잘게 다져진 것 까지 다양하다. 가격은 아무리 비싸도 1천원을 넘어서는 법이 없다. 올리브유에 마늘 볶고 맛과 멋내기 용 버섯이나 시금치, 루꼴라 등을 넣고 치즈가루로 마무리하면 그 자체로도 맛이 근사하다. 그래도 생 토마토의 신선한 맛이 아쉬우면 토마토 한 덩이 썰어 넣고 바질 한 줌 넣으면 신선한 풍미가 몇 곱절 상승한다. 한국의 파스타 집들이 직접 토마토를 우려 소스를 내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국의 토마토가 수분이 많아 소스용으로 적합치 않고 계절을 타는데다 생산이 들쭉날쭉이어서 식당 입장에선 단가를 고정시키기가 힘들다는 애로가 있다. 이탈리아산 토마토 홀은 품질도 좋고 여름에 생산한 것은 좀 더 맛이 좋다고 하니 까탈스러울 필요는 없을 듯.


올리브유에 마늘을 볶다가 양배추과의 어떤 채소 삶아낸 뒤 와 베이컨을 넣어 마져 볶았다. 여기에 막 건져낸 파스타를 넣은 뒤 소스로 간장과 발사믹 식초를 넣어 맛을 입히고 후추를 뿌리고 접시 바닥에 루꼴라를 듬뿍 얹어 그 위에 요리 끝낸 파스타를 부었다. 마지막으로 빠다노(치즈가루)를 뿌려 마무리. 간장맛이 중심을 잡는 가운데 치즈와 루꼴라, 발사믹의 향이 제법 근사하게 어우러지고 간간이 베이컨 씹는 맛이 좋다. 간장이 들어갔으니 오리엔탈풍 어쩌구하면 맞지 싶은데 이게 무슨 고민의 산물은 아니고 그냥 냉장고에 있는 재료 대충 넣어 볶아 만들어진 파스타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늘 하는 얘기지만 파스타는 그냥 있는 재료 대충 넣고 팬 몇 번 흔들어주면 되는 요리다. 누군가는 프랑스 요리와 이탈리아 요리의 경계를 이렇게 정의했다. '복잡하면 프랑스 요리, 간단하면 이탈리아 요리'라고. 

한국가면 소래포구 가서 해산물 잔뜩 사다가 각종 해물 파스타를 닥치는대로 만들어 먹고 싶다. 홍합 와인찜에서부터 봉골레 파스타, 광어 파스타, 멸치 파스타, 명란젖 파스타, ㅎㅎ.. 못만들어 먹을 파스타는 없다. 다만 한국사람들의 입맛을 생각해본다면 이탈리아 파스타가 한국의 입맛에서 잡아야 할 맛의 구별점은 깊은 맛, 그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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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시에나를 다녀왔다. 치솟은 첨탑과 그것을 향해 경사지게 설계된 광장으로 유명한 돈 많은 토스카나주의 유명한 그동네.


한겨울이지만 광장으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을 마주하노라면 그늘진 골목길을 걷는동안 얼어버린 몸이 사르르 녹는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햇살을 '먹기위해' 저 광장으로 몰려든다. 햇살은 맛만 좀 본 뒤 우리는 엘리자베따의 추천으로 찾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바로 아래 식당, 오스떼리아 '일 그라따치엘로'. 해석하면 '고층건물'.


고층건물.. 허나 식당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냥 먼게 아니라 심각하게 멀다.

벽 봐라. 다 무너져간다. 회칠도 벗겨져서 아슬아슬한 벽돌이 벌겋다 못해 시커멓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만약 이 식당이 실제로 고층건물의 아래에 있었다면 이미 망했을 것이다. 무너져서. 허나 식당은 점심무렵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사람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식당이 너무 좁다. 실내는 긴 테이블 3개를 놓아 앉을 자리만 나면 눈치껏 앉아서 먹으면 되는 아주 실용적이고 서민적인 분위기의 식당이다.  결국 안에서 테이블을 확보못한 우리는 보다시피 밖에서 상을 차려야 했다. 사소한 불편은 그러나 가격과 맛에서 충분히 보상이 된다.  

샐러드와 치즈, 프로슈또, 살라미가 주종을 이루는 진열장의 음식들. 그 너머로 두 청년이 열심히 샐러드를 접시에 담고 프로슈또를 썰고 있다. 조리시설이 없으니 파스타는 판매하지 않고 보이는 음식들 중 먹고싶은 것은 손으로 콕콕 찍으면 알아서 담아 가격을 매겨준다. 가격은 그렇게 담아서 한 접시에 적게는 5유로에서 많이 담을 때는 10유로까지 낸다.  


이미 자리를 차지한 손님들은 식사에 열중, 아직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은 기다림에 열중. 실내가 좁다는게 느껴지는지.. 저 자리에서 사진찍고 있다가 손님이 들어오면 문이 뒷통수를 쿵 하고 칠 지경이다.  

3종 구성. 찐보리가 치즈와 몇 가지 채소, 올리브유를 만나 샐러드로 변신했다. 다진 이탈리안 파슬리에 알리치를 버무렸고 정어리 필레(살만 발라낸 것)는 샐러드용 붉은 양파와 함께 올리브유로 무쳐냈다. 날생선을 어떻게 먹냐고 몸서리치는 적잖은 서양인들은 대체 저건 어떻게 생각할지, 먹기는 할지 궁금하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고.. 아무튼 접시 옆 빵바구니에는 빵이 수북한데 사진의 놈들을 빵에 얹어 먹으면 미끄덩 하지만 짭짤하니 맛있다. 맵고 짠 한국음식도 맛있지만 심심한듯 보이는 이런 음식도 혀의 미세한 감각을 깨우며 맛을 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특히 한국 밥상에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는 접할 기회가 흔치 않고 식용유보다 몸에 좋다는 인식 때문에 대개 부침할 때 쓰곤 하는데 역시 올리브유는 저렇게 신선한 드레싱이나 샐러드용으로 즐겨야 제맛을 만날 수 있다. 처음엔 잘 몰랐지만 자주 먹다보니 향긋함도 '읽혀'지고 어느새 그 맛을 즐기는 것은 물론 좋은 올리브유를 간파해내는 입맛도 생겨가고 있다. 찐보리 샐러드는 특별한 맛을 모르겠다는.. 맛보다는 입안에서 먹는 식감에 재미를 찾는 건강 샐러드가 아닐까 싶다. 저렇게도 요리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


핏기 벌건 이탈리아의 국민햄 프로슈또와 살라미. 살라미에 후추 박힌거 봐라. 먹음직스럽지 않나? 돼지 비린향을 허브가 살짝 잡아주긴 하지만 비위 유독 약한 사람이라면 살라미나 프로슈또는 도전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강양은 정말 '좋은' 프로슈또는 용감히 먹지만 좀 질이 낮은 것, 주로 수퍼마켓 프로슈또는 잘 안먹는다. 가끔 다소 비리다 싶은 프로슈또를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가공의 문제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론 돼지의 품종과 품질이 맛을 좌우한다고 봐야 할테다. 김군은 좋다고 다 잘먹는다. 빵에 얹어 먹는 것도 좋고 긴 스틱 형태의 비스켓에 돌돌 말아 먹는 것도 재밌고 맛있다. 여기에 올리브절임 하나 곁들이면 아유..  토스카나의 프로슈또는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짜다는게 엘리자베따의 설명. 한때 맛있다고 낼름낼름 집어먹다가 그 짠기운에 밤새 물을 찾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는 것. 해서 프로슈또와 곁들여먹는 빵에는 소금을 넣지 않는게 또한 이곳의 특징이기도 하다고. 실제 빵 자체만 씹으면 아무런 간이 없어 맹숭맹숭한 것이 별 맛이 없다. 빵에 소금을 넣지 않는 또 다른 설도 있는데 옛날에는 소금이 귀해 세금이 제법 무거웠단다. 빵가게에선 그 부담을 피해 소금량을 줄이거나 아예 넣지 않고 빵을 굽기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날 무염빵의 한 유래로 전해지기도 한다고.

토스카나에 왔으니 비록 싸구려지만 끼안띠도 한 잔 곁들이고.. 잔이 아니라 컵에 따라 마시는 끼안띠.. 식사 내용 자체는 대개 서양 식사의 첫 번째 코스인 안티파스토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식사가 될 양과 맛이다. 세 명이 점심 한 끼 먹는 양으로는 그 절대량이 부족해보이는 듯 싶지만 사진에 안나온 빵과 곁들이고 와인까지 홀짝이다 보면 어느새 포만감이 느껴진다. 특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곁들이며 오랜시간 식사를 즐기는 것이 빨리 먹는 식사보다 훨씬 큰 포만감을 준다지 않던가.  파스타 폭식은 분명 복부비만을 야기시키겠지만 저런 식의 가벼운 안티파스토식 식사는 포만감은 주는 대신 배를 빵빵하게 만드는 부작용은 없지 싶다. 한국에서 여성 2인이 미래의 달고나 식당에 온다면 안티파스토 한 접시와 파스타 한 접시면 충분할 듯. 질질 흐르는 올리브유에 겁먹지 말지어다. 맛들이면 식생활이 더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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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얘기 좀 하자. 좀 장난스러운 선언이지만 나중에 식당을 낼 경우 메뉴에 포함될 파스타 두 가지가 정해졌다. 빠르마 파스타와 알리치 파스타. 빠르마 파스타는 빠르마 유학생 노양의 솜씨로 맛본 뒤 매료돼 이후 자주 해먹는 파스타로 자리잡았다. 빠르마 파스타 맛의 핵심, 토마토 소스와 살라미의 조화를 깨지 않는 한 맛의 기본 골격은 유지될 텐데 메뉴로 내놓을 경우 좀 더 보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러저런 변신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알리치 파스타. 씨가 박힌 올리브도 넣고 볶았다. 저날 이후에는 중국상점에서 마른 고추를 사와 매운 맛을 입혔더니 젊은 입맛에 더 가까워진 듯 하다. 마늘도 잘 탔고 면도 오동통하니 잘 익었다. 맛?  먹어봐야 안다.

알리치 파스타는 바꿔 말하면 안초비, 또는 멸치 파스타 되겠다. 안초비의 이탈리아 이름이 알리치다. 뻬루자에 집을 얻고 얼마 전 무심코 해먹었는데 그 맛에 바로 중독돼 버렸다. 크리스마스 전날은 물론 요 며칠 연짱 해먹은 파스타가 알리치 파스타다. 알리올리오 베이스에 알리치만 넣고 버무리면 어느새 짭짤한 살이 녹아 파스타 면에 골고루 입혀져 따로 간을 할 필요도 없다. 올리브를 함께 넣고 볶은 뒤 치즈가루를 듬쁙 얹어내면 맛 좋은 비린맛의 파스타가 완성된다. 루꼴라를 곁들이면 더 좋을 듯. 봉골레 파스타가 우아한 바다의 맛이라면 알리치 파스타는 거친 바다의 맛?

아무튼 요즘 알리치 파스타 해먹는 재미가 쏠쏠한데 이탈리아에서 판매하는 알리치의 가격이 제법 비싸다는게 문제다. 손바닥에 착 감기는 작은 병에 든 알리치가 2유로가 훌쩍 넘는다.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앞으로 알리치 싸게 파는 기회를 접하게 되면 왕창 사다 놓을 작정이고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생선코너에서 생물멸치를 사다가 염장해 직접 올리브유에 담가먹을 작정이다. 베로나에서 튀겨먹던 생물 알리치의 가격을 생각해보면 가격도 저렴했고 담글 경우 그 양이 같은 가격에서 거의 5배는 훌쩍 넘지 싶다.


DE SPAR 라는 이름의 수퍼에서 자체 브랜드로 만든 알리치. 저 작은 병이 2.30유로다. 4천원인 셈인데 그나마 몇 가지 브랜드 중에 저놈이 제일 쌌다. 베로나에서도 비싸게 안먹었던 것 같은데.. 알리치 자체만 50g.

토마토소스와 간장을 이용해 조려낸 돼지고기를 썰어먹다 한 번은 그 국물을 이용해 리조또를 만들어봤다. 쌀을 한 번만 휘리릭 씻어낸 뒤 버터 두른 팬에 달달 볶다가 국물을 넣고 끓였다. 밥알이 퍼지면서 국물을 흡수해 점점 되직해져 갔는데 리조또는 물 조절이 중요한 관건의 하나일 듯.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마지막에 빠다노 치즈를 듬쁙 갈아 넣었다. 파가 싱싱한게 있어 조금 채 썰어 넣어봤는데 아니다싶은 느낌과 달리 조화가 아주 좋다. 버터와 치즈의 풍성한, 또는 느끼한 맛 사이에서 파의 단 맛이 산뜻하게 전해진다.



한 접시로 즐기는 식사에선 작은 와인잔이 운치도 있고 실용적이서 좋다. 다만 저 얇은 유리접시는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그래도 저 리조또는 맛이 좋다. 치즈가 부족하면 더 갈아 넣으세요~.

까르보나라는 생크림과 우유를 이용해 몇 번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중이다. 왜 이렇게 군내가 나는 것인지.. 이건 아무래도 불조절, 열조절이 관건일 듯 싶은데.. 아니면 직접 밀가루를 볶아 만들어야 하는 걸까? 생활 속에서 습득되고 있는 파스타 솜씨, 과연 한국의 가족들과 지인들은 어떤 평가를 할지.. 어서 먹여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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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다 보면 굶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하다 굶으면 그런가보다 하지만 여행하다가 굶으면 어쩐지 처량해짐을 느끼곤 하는데, 굶고 다니지 마세요~. 많은 여행자들이 유럽에 식당이 없어서 굶는 건 물론 아니다. 하나같이 비싸고 때론 뭘 어떻게 주문해 먹어야 할지를 잘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모험가들은 이럴 때 더욱 용기를 발휘해 낯선 레스토랑 문을 박차고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는 적잖은 이들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맥도날드의 유리문을 연다. 

그러나 여행자의 식단이 이렇게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만은 아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먹거리가 있은데.. 아무렴. 레스토랑과 맥도날드의 문화적 이질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에게 가장 만만하게 다가오는 먹거리가 바로 케밥이 아닐까. 완전 현지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량 매뉴얼로 만드는 영혼없는 음식도 아니고, 어딘가 어정쩡하지만 분명 이색적인 문화임엔 틀림없는 먹거리. 

지난 달 밀라노를 갔을 때 두오모를 물어물어 찾아가던 중 간단히 먹자해서 찾은 케밥집. 레스토랑의 깨알같은 메뉴판이 아닌 큼직하고 시뻘건 글씨와 음식 사진까지 곁들여 벽면에 붙여놓은 모습에 식욕이 요동치고 산처럼 쌓인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모습에선 적어도 이 순간은 야만인이 되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킨다. 쫀쫀한 또띠야에 양파, 토마토, 이탈리안 파슬리를 올리브유와 비네거로 버무린 샐러드를 얹고 그 위에 얇지만 넉넉히 저며낸 닭고기 케밥을 얹었다. 호일을 벗겨 한 입 베어물면.. 주루룩 옷에 떨어지는 새콤한 샐러드 국물만 조심하면 행복감을 맛보는건 어렵지 않다. 케밥을 먹을 때야 '진정 유럽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건 왜인지..


작아 보이지만 먹고 나면 제법 속이 든든하다.

 
앞서 케밥이 좀 허전할까 싶어 푸짐한 놈으로 한 장 더. 접시에 리소(쌀밥)와 함께 먹는 케밥. 가격은 먼저 케밥이 5유로, 접시 케밥이 5,5유로. 요즘 환율로 보면 저 두 개에 배추 두 장, 다 잊고 맛있게 먹자.
Posted by dalgonaa
이탈리아말로는 '안티파스토(Antipasto)', 영어로는 '스타터(Starter)', 한국에서 부르는 말로는 '전채(前菜)'라고 하면 맞을까? 메인 식사를 앞두고 허기를 잡고 입맛을 돋궈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놈들다. 우리 식문화에선 없는 절차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양식에선 일반적. 사실 식당에서 메뉴판을 펼치면 웬만한 식사값, 때론 그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첫장에 등장해 괜한 압박을 주곤 하는데 건너뛰어도 웨이터가 뭐라 그러진 않으니 애써 무시하면 되겠지만 여럿이 식당에 간 경우나 그 집만의, 혹은 그 지역만의 독특한 안티파스토가 있다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맛을 봐주는게 좋다. 

사진은 베로나의 어느 골목, 일 베르똘도(Il Bertoldo)라는 이름의 로마풍 요리를 낸다는 식당에서 맛본 안티파스토. 이탈리아에서 안티파스토는 대개 사진에서 보는 프로슈또와 다양한 치즈가 주를 이룬다. 왼쪽은 살라미, 오른쪽은 프로슈또, 중앙은 오렌지에 이탈리아 파슬리로 모양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만났을 때 우리는 흔히 '녹는다'고 표현하는데 그렇다고 아래 사진의 음식이 그랬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적어도 살라미에 한해서는 그 맛에 조금씩 중독돼가고 있음을 고백한다. 살라미, 얇게 저며 입안에서 체온으로 서서히 녹여 먹어도 좋고 이때 잘 익은 레드와인 한 모금 머금어주면 더 좋다. 

한국 식당의 메뉴판에는 안티파스토가 없지만 그렇다고 안티파스토를 안주면 한국인들 무지하게 승질난다. 주문하고 난 뒤 곧바로 밑반찬 안깔아주면 그 식당 오래가긴 힘들단 말이다. 짜장면, 라면을 시켜도 단무지나 김치는 먼저 내주는 것이 주인과 손님간의 불문율. 맹물 한 잔 시켜도 돈을 내야하는 유럽의 식당은 그래서 한국인들의 원망을 한몸에 받는다. 뭐 그렇다고 그네들이 눈하나 깜짝하지 않지만.. 낯선 땅에 나와 뼛속깊이 절감하는거지만 우리나라 식당만큼 후한 인심의 식당이 전세계 어디에 있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화이트가 안맞았던 사진, 억지 조작했더니 살라미 가장자리가 누렇게 떴다. ㅋ
Posted by dalgonaa

지난 파르마 여행에서 노양은 우리에게 푸짐한 저녁을 대접했다. 어찌나 푸짐했는지 왠만하면 음식 안남기는 김군이 허리띠까지 풀어가며 덤볐지만 7부 능선쯤에서 그만 뻗어버리고 말았다. <오늘의 식탐>란을 빌어 그때 먹은 음식도 하나씩 소개해 보자.

오늘은 그 가운데 하나로 사진의 바로 이놈, 이탈리아 요리가 참으로 간단하고 손쉽다는 것을 증명해주기에 충분한 음식이다. 짜디 짠 안초비를 병이나 깡통에서 하나씩 꺼내 시원시원하게 썰어낸 파프리카, 혹은 청피망에 가만히 올려주고 오븐 트레이에 가지런히 배열한 뒤 예열한 오븐에 넣고 그냥 굽기만 하면 그만. 굽는 시간은 중간중간 봐가며 확인하다가 저 정도쯤 됐을 때 꺼내 먹으면 된다.

뻗뻗하던 파프리카는 한결 부드러워졌고 안초비는 그 짭짤함이 파프리카의 수분을 타고 퍼져 전체에 골고루 입혀졌다. 베어 물것도 없고 그냥 한 덩이 입안 가득 품으면 곧바로 행복감이 밀려오는 맛, 생선요리는 아니지만 아주 개운한 생선을 먹는 느낌을 준다. 트레이에 닿은 부분이 살짝 탈 정도로 익혀주면 그 풍미가 더 좋다. 식전에 즐기기에 좋으니 달콤한 맛이 강한 화이트와인과 먹어주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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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멸치(Anchovy)를 사다가 머리따고 내장따고 흐르는 물에 깨끗히 씻은 뒤 밀가루 가루만 입혀 기름 자작히 두른 프라이팬에 튀겨냈다. 여기에 이탈리아 샐러리를 채썰어 흩뿌리고 위에 소금도 뿌려 간을 잡은 뒤 마지막으로 레몬 한 조각을 쥐어 짜 상큼함을 입혀주면 이놈이 한 마디로 백포주 도둑놈이 된다. 뼈가 연해 씹어도 부담없고 보슬보슬한 살이 제법 기름져 육기가 아쉬울 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이 된다.

해산물이 비교적 풍부한 우리로선 멸치 정도는 그냥 우습게 보는 생선이 아닐까 싶은데 유럽으로 오면 멸치는 좀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올리브유에 차곡차곡 정갈하게 담겨 판매되거나 생물도 깨끗히 씻겨져 포장돼 판매되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 염장된 안초비(이탈리아 이름은 알리치-Alici)의 경우 식탁에선 파스타와 함께 볶이거나 피자에 올려져 구워지며 생물을 즐기는 경우라면 사진처럼 튀겨먹거나 푹 고아서 뼈를 발라낸 뒤 특별한 소스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유럽은 어딜가나 해산물이 귀하고 비싸다. 하물며 이탈리아도 그렇다. 고등어의 경우 생물 기준으로 1kg에 8유로, 우리돈 14,000원이고 한국에서 가격 폭락으로 울상이라는 오징어도 비슷한 시세로 팔리고 있다. 다행히 멸치는 생물이 500gr에 3,000원 정도 하니 그게 어디냐는 심정으로 저처럼 튀겨먹고 때론 찌개를 끓여먹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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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안드레아네 집엘 다녀왔다. 안드레아네 집은 베로나 외곽의 얕은 산자락에 위치해 있는 탐스럽기 짝이없는 전원풍의 집으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가족은 작은 농토를 갖고 있어 일년 가량 손수 담가먹을 양의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무를 직접 가꾸고 있다. 포도는 이미 수확을 마쳤고 올리브는 한창 수확중이라는데 오늘이면 이것도 거의 마무리 될 것 같다고 해서 마침 햇살 짱짱한 주말을 맞아 그의 집을 방문했다. 

올리브 수확에 앞서 점심을 먹는 자리. 안드레아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손수 차린 식탁 위로 직접 담근 와인과 직접 짜낸 올리브 오일이 올라왔다. 사진 왼쪽이 와인이고 오른쪽이 오일. 집에서 담근 와인과 오일이 갖는 공통점의 하나는 눈으로 볼 때 모두 시중의 그것들과 달리 색이 탁하다는 것. 요즘이야 사람들의 눈이 정확해져 그것이 바로 신선함과 건강함의 표시라는 걸 알지만 한땐 그게 뭔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해 멀리하기도 했고 요즘엔 반대로 맹숭한 가짜를 애써 탁하게 하는 사기도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나?  

항아리에서 감주 퍼다 마시듯이 물컵에 편하게 마시는 와인, 그 맛은 달지 않으면서 깨끗했고 무엇보다 집에서 담근 와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전달해주는 느낌, 바로 어딘가 어설프지만 기성품에선 접하기 힘든 신선함이 살아있었다. 주로 샐러드에 무쳐 먹으라는 엑스트라 버진 오일, 한 숟갈 따라 입안에서 굴려보니 올리브를 딸 때 나는 풀향이 거짓말 안하고 고스란히 전해진다. 수퍼에서 사온 베르톨리를 똑같은 방식으로 마셔보니 그 향이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하다. 안드레아 어머니는 그 귀한 오일 한 병을 우리에게 선물로 안겨줬고 아버지는 포도주를 만들고 난뒤 남은 찌꺼기를 발효시켜 포도향이 제대로 찡한 식초를 페트병에 한 가득 담아주셨다.


천 조각을 목에 두른 올리브 오일 병. 작은 아이디어가 편리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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