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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24 <협동조합 달고나> 준비모임
- 2016.05.21 협동조합 달고나 1
- 2014.03.03 사고로 얼룩진.. 2
자립과 노동의 새로운 통로,
<협동조합 달고나>가 온다.
내용 : <협동조합 달고나>의 예비조합원과 ‘눈팅’들의 첫만남.
일시 : 2016년 5월 23일(월)
장소 : 협동식당 (망원동 월드컵로 21길 14)
자영업의 위기, 달고나의 위기
노동시장에서 밀려나오거나 진입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자영업이다. 하지만 여기도 공급과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들이 생존하려면 그것을 구매해야 할 소비자들이 충분히 존재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들의 주머니 사정 또한 넉넉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수입이 넉넉치 않으니 구매력이 떨어지고 구매력이 떨어지니 내수경기가 추락하고 재고가 쌓이니 직원들이 직장에서 짤리고 짤린 직장인들이 골목사장으로 변신해 치킨집을 만들어가는 이 고약한 악순환. 따라서 현재 창업대열에 쏟아져 들어오는 사장님들의 50%는 3년 이내, 80%는 5년 이내 망한다는 것은 통설이 아닌 통계로 증명되고 있다. 중산층 붕괴는 그것과 짝을 이루며 간다.
자영업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이루는 것은 물론 대박이 터져 돈방석에 앉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이들의 비현실적 욕망과 시시때때로 방송되는 맛집 프로그램들의 편집된 정보가 만나면 특별함이 일반화되는 오류를 낳고 결국 수요와 공급이 왜곡돼 많은 이들을 그릇된 선택으로 몰고간다. 배추값의 폭등과 폭락으로 얼룩진 농산물시장의 수요공급 붕괴와 똑같다.
선택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 실패에 따른 댓가가 워낙 커서 재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더욱이 하락곡선을 그리는 경기에서 조율되지 않은 저마다의 창업은 시장을 활성화는 커녕 더욱 황폐화시킨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정부는 이런 문제 해결에 무능하다.
달고나는 한동안 인기있는 가게였고 지금도 그 지위는 유지하고 있지만 매출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이는 우리가 특별히 못하거나 다른 우수한 경쟁자가 나타나서라기 보다는 골목상권의 변화와 상권의 이동, 그리고 전반적인 경기불황의 여파로 읽혀진다.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달고나도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다.
또 하나, 7년 간 달고나 운영을 통해 얻은 것은 장사의 경험과 좋은 사람들, 그리고 망가진 건강과 늘어난 빚이다. 열심히 하면 상응하는 보상이 돌아온다는 공식은 깨졌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력해봐야 현상유지이거나 겨우 추락을 면할 뿐이다. 이는 사회와 시장경제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다고 봐야하는데, 불로소득 비율이 낮아지고 생산임금이 커져야 함에도 그 정반대인 현실, 아무리 일해봐야 건물주와 금융비용, 그리고 불리한 세제에 따른 세금으로 부가 빠져나가버리니 돈이 쌓일 틈이 없다. 그걸 이겨보겠다고 나서면 몸이 부서지거나 양심을 팔아야 한다.
따라서 이런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방법으로 온건한 것이 선거, 과격한 것이 혁명인데 뭐가 됐든 가능이나 할까? 어찌됐건 시장에서 도태되어 구성원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을 피하기 위해 달고나는 변화와 혁신의 길을 찾지 않을 수 없다.
협동의 경제와 조우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무렵, 관련책 몇 권을 건성으로 넘기다가 정태인 박사의 <협동의 경제학>을 시작으로 새로운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생각을 사로잡은 개념은 ‘죄수의 딜레마’와 ‘최후통첩 게임’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독자적 이익을 얻기위해선 협력하지 않아야 한다’는 개념을 설명한 것이고 최후통첩 게임은 ‘서로 협력하면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죄수의 딜레마를 기본 속성으로 운영되는 체제이고 협동의 경제는 최후통첩 게임을 기본 속성으로 한다. 이 개념에서 영감을 얻어 달고나의 돌파구를 찾으니 답은 역시 ‘협동조합’이다. 너나 나나 서로 다르지만 결국 같은 운명의 배를 타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는데서 협동조합 구성의 논의는 출발한다.
협동은 절박한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힘을 합쳐 필요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다. 내 위기가 해결되면 곧 함께 힘을 보탠 이들의 위기도 해결된다. 만약 누구는 절박한 필요가 있는데 누구는 그렇지 않다면 협동을 잘 이뤄지지 않는다. 가령 내 발등을 무거운 돌이 누르고 있다면 나는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돌을 치우려 할 것인 반면, 발이 안전한 사람은 굳이 그럴 필요를 못느낄 것이다. (여기까지가 자본주의의 일반적 속성이고 죄수의 딜레마다)
그 돌이 나와 그의 발등도 누르고 있는거라면 둘이 힘을 합쳐 돌을 치우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설사 내 발이 먼저 빠져나왔어도 나는 힘쓰기를 중단하거나 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를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다시 힘을 모으는 것이 협동이고 이는 오랜 세월 인간이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는데 학습해온 본능이다. 따라서 이런 이들이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 위해 사업적 결사체를 이룬 조직이 바로 협동조합이고 ‘협동조합 달고나’는 이에 동의하는 구성원들로 채워진 사업 결사체이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곧잘 싸움이 벌어질꺼라고 사람들은 우려한다.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우리 내부에서도 이런 걱정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미국의 한 작은 호숫가에서 오두막을 짓고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던 헨리 소로우는 말했다.
“생활이 단순해지면 세상의 법칙도 단순해진다”
협동조합 내에서 이해관계가 복잡해진다는 의미는 아주 다양한 욕망들이 뒤섞인다는 뜻.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 각자는 제 각각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모인 것이라기 보다는 그 욕망을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동 기반을 만들기 위해 모였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앞서 언급한 것 처럼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 위해 사업적 결사를 이룬 조직’이다. 이는 일종의 마을 공동우물과 같다. 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그 쓰임은 제각각이고 그건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이고 취향이다. 하지만 우물이 마르지 않도록, 더렵혀지지 않도록 유지하고 관리하는데에는 모두가 공동의 의무를 지닌다. 누군가 갑자기 물을 더 많이 쓰기 시작해서 물이 부족해지기 시작하면 그 경위를 모두가 알아야 한다. 그럴만한 사유라면(일이 벌어지기 전에 논의되겠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거나 돕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람들은 그를 우물 사용에서 배제시킬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나와 똑같아져야 한다거나 내가 저 사람에게 기계적으로 맞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합사업의 발전은 내가 가진 재능을 공동 우물의 안전과 풍요를 위해 쓰고 그것이 우리 안에서 격려받고 칭찬받아 다른 이들에게도 선의의 자극을 주어 전체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중요한 건 우물이 마르거나 더럽혀져선 안된다는 점이다.
자급력 = 역할의 창출 = 노동의 재발견
<협동조합 달고나>가 추진해나갈 다양한 사업에서 그 밑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가치관은 한 마디로 '자급력을 높이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사람들은 ‘소비자’로 인식됨으로써 우리들은 돈(화폐)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화폐로써 교환되어야 하는 삶은 우리를 끊임없이 소비를 위한 돈벌이 노동으로 내몬다.
<협동조합 달고나>가 추진하는 사업의 핵심은 수익 창출만이 아니라 생존을 넘어 생활로 정착될 수 있는 우리 안의 자급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다. 식당사업을 하면서 재료를 모두 시장에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농장을 꾸려 ‘자급’하는 것이고 생활에 필요한 가구를 이케아에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 ‘자급’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사업영역은 무수히 많으며 그것을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엮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다)
다양한 생활의 영역에서 협동조합 달고나 조합원들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협동조합 달고나>의 사업 방향이다. 한 마디로 ‘수익의 창출’이 아니라 ‘역할의 창출’이며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일자리 창출’인 셈이다.
그 일환으로 준비중인 사업이 <협동식당>이고 곧이어 기존에 이어오던 <이태리식당 달고나>를 리뉴얼해 현재의 상수동에 8월 이전에 재오픈할 계획이다. 두 사업이 안정화되면 추가적인 조합원 모집을 통해 <베이커리 달고나> <협동서점> 등을 오픈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내년에는 서울 인근에 <조합농장>을 마련해 외식사업에 필요한 식자재를 자체 공급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역할의 조정
조합사업의 각 영역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 일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조합의 운영규칙과 조합원들의 요구에 따라 얼마든지 역할의 조정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즉 이태리식당 주방에서 일하다가도 일정 기간 후엔 원하는 바에 따라 조합의 목공작업실로 근무지를 옮길 수도 있고 농장이나 서점으로 옮길 수도 있다. 조합 내의 다양한 사업영역에서 다양한 역할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기회가 되고 높아진 행복도는 일의 성과를 끌어올리리라는 기대를 우리는 갖고 있다. 조합사업이 수익에 목적을 두고 조합원을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고 그 반대로 조합원의 다양한 역할의 경험과 그 기회를 통한 만족이 목적이고 돈은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협동조합 달고나>의 시각이다.
휴식의 노동
돈과 시간을 등가로 가정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것을 선택하겠냐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바쁜 일상에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일상, 나 자신이 거대한 기계의 부속으로 쓰여지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개인의 시간이란 조직 이윤의 논리 앞에서 평가절하되곤 한다. 소설가 현기영은 말한다.
"우리는 매일매일 단 하루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천편일률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인데, 이렇게 살고서 과연 일생의 시간을 다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을 단 하루의 삶이 아닐까? 기억에 남아 있는 시간만이 진정으로 살아 있는 과거이므로, 우리가 비교적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오늘이라는 시간뿐이다"
그 소중한 오늘이 내일에 저당잡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가 아닐까? 그것을 뼈저리게 절감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모두의 바램을 모아 1년에 1개월의 휴식을 계획하고 있다. 긴 시간 내 자리를 떠나 돌아와도 그 자리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회사. 한 달의 돈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한 달의 시간을 선택할 것인가.
협력은 모든 위기의 해법
오늘날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불안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해오던 협동, 협력의 룰이 깨진데서 출발한다.
삶의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사람들은 돈을 벌지만 우리는 '협력'을 복원하고 키우는 것이 진정한 해법이라 여긴다. 우리에게 <협동조합 달고나>는 그 첫 단추이다.
협동조합 달고나가 출범합니다.
현재 발기인 5명을 중심으로 정관 작업을 진행중이며 이르면 이번달 안으로 창립총회를 열고 조합법인 신청을 할 계획입니다.
그로부터 1~2달 사이에 법인 인가가 나오고 법인 등기를 마치면 이후부터 달고나는 '협동조합 달고나'라는 이름을 내걸고 아장아장 걷는 신생 기업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깜짝 놀라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달고나의 협동조합 전환은 1년 전부터 구상해온 사안이고 불가피한 선택이자 동시에 흥분되는 도전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자영업, 특히 영세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가게를 지켜야 하고 쉬는 날도 일주일에 하루이거나 격주로 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나마 쉬는 것도 쉬는게 아닌 것이 가게 운영의 고민으로부터 한시도 벗어날 수 없고 잠시라도 한 눈을 팔 수 없는 결박된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요즘같은 불황에 일반 직장인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점점 떨어지는 매출과 적자에 허덕이는 운영난을 돌파해낼 뾰족수는 보이지 않으며 비용을 줄이기 위해 결국엔 가족들이 생계의 전선에 내일처럼 뛰어드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자영업은 시한폭탄처럼 째깍거리는 가계부채의 한 축을 담당하는 불안지대이고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진 시장실패의 영역이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영업 시장으로 평생 모은 돈을 쥐고 뛰어들고 있습니다. 취업은 어렵고 국가의 복지는 허술하니 그 개인이 딱히 선택할 곳이 거기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태리식당 달고나는 그 힘겨운 영역에서 겨우겨우 적자를 면해가며 7년을 버텨왔습니다. 달고나에 애정을 보내주신 많은 손님들의 도움과 고된 노동을 꿋꿋이 견디며 함께 일해준 직원 동료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그 운영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좁은 주방은 어느새 달고나의 창의와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고 그 피로감은 쌓이고 쌓여 삶의 바탕을 흔드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달고나의 미래비전을 이 공간에서 꿈꾸기란 여러모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상수동 상권이 조용히 격변하고 있는 것 또한 가게운영의 불안한 요소입니다. 7년동안 이어진 임대료 상승과 언제 닥칠지 모를 계약종료 선언은 달고나를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시킬 수 있는 공포스런 미래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달고나 운영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근본적인 지점은, 더 이상 시장경제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지금보다 나은 앞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달고나의 위기, 나아가 자영업의 한계란 결국 이 문제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7년을 한결같이 일해와도 삶이 변하거나 나아지지 않고 그만큼 몸은 병들고 이루고자 하는 꿈은 두 발짝 더 멀어지는 현실. 다만 시장경제의 치열한 경쟁논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것이 지금껏 달고나가 걸어온 길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단적으로 말해 달고나의 사장 두 사람을 제외한 직원들은 이 작은 공간에서 앞으로 5년 10년을 더 일하면 그들의 삶은 무엇이, 어떻게 더 나아지는 걸까요? 이들이 부장님이 되고 사장님이 되는 것도 아니고 천상 그들 역시 자영업의 길로 들어서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는데 그것이 달고나가 이들에게 제시하는 비전이라고 하면 옳은걸까? 이를 위해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만이 당연한 삶인가?
이 질문에서 우리들은 선뜻 답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달고나의 한계이고 자영업의 한계이며 나아가 시장경제라는 시스템의 한계라고 우리들은 생각합니다. 시급 6천원의 저임금 노동이 힘겹게 떠받치고 있는 사회의 부는 모두 어디로 증발해버리고 있으며 그 부조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달고나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속절없는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노력은 해야겠고 그 일환으로 선택한 행동이 협동조합의 조직입니다. 이윤동기가 아니라 필요동기로 작동되는 비즈니스 관계, 교환가치보다 사용가치에 주목하는 거래관계, 사람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삶을 협동조합은 오래전부터 입증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도 이같은 개념은 '두레'나 '품앗이'라는 빛바랜 기억이지만 분명 남아 있습니다.
7년이 흘러 이젠 많이 낡았지만 달고나의 기관은 여전히 쓸만하고 협동의 경제로 수정된 항로는 이 미로같은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향이라고 우리는 굳게 믿습니다. 그 방향의 최종 목적지가 낙원일지 지옥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달고나는 시장경제의 비인간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통로를 찾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뜁니다. 북유럽 사람들의 높은 삶의 만족도와 남태평양 마이크로네시아 원주민들의 높은 삶의 만족도가 갖는 유사성, 그리고 '상부상조'라는 아름다운 단어에서 꾸준히 영감을 얻고 공부하며 가고자 합니다. 설사 그것이 배고프고 멋없는 고달픈 여정일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 달고나가 옵니다.
"나는 과학적 비판에 근거한 의견이라면 무엇이든 환영한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양보한 일이 없는 이른바 여론이라는
편견에 대해서는 저 위대한 플로렌스 사람(단테)의 다음과 같은 말이 항상 변함없는 나의 좌우명이다.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 K. 마르크스
"인간을 구원할 유일한 것은 협력이다"
- 버트란드 러셀
사고 1
며칠동안 블로그가 해킹을 당해 페이지가 사라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집안에 도둑이 들었던 셈인데 대개 집안 물건이 없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온라인에선 그와달리 그냥 집이 없어져 버리더라는.
티스토리에 메일넣어 해킹당했다는 신고를 접수시키고
이후에 그쪽에서 하라는대로 조치를 취했더니 며칠 안돼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가 됐다. 즉 도둑맞은 집을 되찾은 것.
살다보니 이런 일도 겪는구가 싶은데
이게 비밀번호 재설정을 정기적으로 해주는 것만으로도
예방할 수 있다니 매번 무시했던 이 경고를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헌데 해킹당했다는 사실을 접하고도 여유로웠던 이유는 뭘까?
손에 잡히는 재산이 아니어서?
작은 흔적이라도 IT업계에선 모두 복구할 수 있다는 기술의 믿음때문에?
블로그를 재산이면서 동시에 짐으로 생각하는 마음때문?
사고 2
지난 포스트에서 오토바이을 샀다는 얘기를 전했다.
가까운 곳에 급한 장을 보러다닐 때 이만한 이동수단이 없고
여러면에서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들어 구입을 했던 것.
나아가 나이먹어 옆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놀이기구로 이만한 것도 드물지 않나 싶어
서서히 그 재미를 붙여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또한 작년에 감행한 꽉 찬 1박2일 번개 제주여행이 가져다 준 큰 감동은
제주도를 새롭게 인식하게되는 계기가 됐는데
올해의 제주 여행은 그 감동을 이어가기 위한 방편으로
서울에서 오토바이로 제주까지 내려가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헌데 사고가 발생했다.
오토바이를 구입한 후 처음으로 강양이 시트에 올라타고 연습을 하던 도중
그만 조작 미숙으로 벽을 들이받고 만 것.
동네 골목길의 가벼운 오르막에서 스로틀을 열었는데 1단 기어의 넘치는 힘을
충분히 제어할 만큼 훈련이 안된 상황이다 보니 속도에 놀라 브레이크를 쎄게 당겼고
그 당기는 힘만큼 역시 스로틀을 감아쥐다보니 브레이크가 그 힘을 이기지 못하면서
앞으로 튕겨나가다 결국 벽을 들이받고 만 것이다.
나는 그 상황을 뒤에서 모두 꼼짝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사고로 강양은 손목과 얼굴 일부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고
연신 눈물을 쏟는 강양을 차에 태우고 서둘러 여의도 성모병원 응급실로 내달렸다.
가면서 끼고있던 장갑을 벗겨보니 손목뼈 일부가 살짝 어긋나 있는 것이 골절임이 내 눈에도
분명해 보였고 그 모습을 확인한 강양의 눈물은 더 쏟아져 내렸다.
사고란 언제 어디서든 늘 발생할 수 있는거라며 나름 의연하려 노력해왔는데
그 손목은 믿기지가 않는 모습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해 응당 취하는 조치들이 진행됐다.
임시부목, 사고경위 설명, 혈압, 엑스레이, CT..
그리고 응급실의 마지막 조치이면서 최대 고비인 뼈맞추기도 했다.
그리고 비명..
골절된 뼈를 임시로 맞추긴 했으나 응급실 의사는 수술을 암시했다.
응급을 요하는 수술은 아니어서 며칠 후 정형외과 외래를 잡아
외과교수로부터 보다 정확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며칠 후..
담당 외과의사는 응급실에서 마지막에 찍은 엑스레이와
외래를 온 당일날 찍은 엑스레이를 유심히 살피더니
수술을 할 수도, 안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일주일을 더 지켜보자고 했다.
이유인 즉, 응급 당일에 맞춘 뼈가 나름 자리를 잘 잡았고
그것이 외래를 온 날까지 움직임없이 그 자리에 계속 유지되고 있는 걸로 봐서
잘 관리를 하면 그렇게 붙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가득했던 공포의 중압감이 압력솥 김 빠지듯 빠지면서 안도감이 밀려왔다.
과연 잘 붙을 수 있을까?
얼굴쪽 골절은 치과에서 담당한다기에
역시 그쪽 외래도 다녀왔더니 골절이 심하지 않고
눈으로 보이는 흉도 없고 수술을 하지 않더라도
생활에도 큰 불편을 초래할 만큼의 상황이 아니라고 하니
그냥 그렇게 뼈가 붙도록 놔두기로 했다.
첫날 외래로부터 2주가 지나고 있는 지금,
강양은 여전히 임시 깁스를 하고 있고 가게는 일절 나오지 않고 집에서 쉬고 있다.
잠은 그런대로 숙면을 취하고 있으나 가끔 갑작스레 찾아오는 통증이 괴롭다.
자연스러운 치료통이려니 하지만 역시 아픈 모습을 지켜보기는 쉽지 않다.
내일, 다시 병원을 찾아 엑스레이를 찍어 그 경과를 본 후
아마 석고 깁스를 하지 않을까 싶다.
석고깁스를 한 다는 것은 이제 본격적인 뼈굳히기에 돌입한다는 얘기인데
강양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다름아닌 '가려움'.
지금의 임시깁스는 팔을 단단히 두르고 있긴 하지만
이음새에 틈이 있어서 그 사이로 젓가락이나 커피빨대(이게 가장 효과적)를
이용해 가려운 부위를 긁을 수 있는데
석고깁스는 그야말로 통 깁스여서 가려운 부위를
시원스레 긁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수술없이 치료가 잘 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감내할 준비가 돼 있다.(그렇지 강양?)
깁스는 대략 5주 정도라고 의사는 밝혔다.
가게를 찾는 단골손님들이 간혹 강양의 부재를 의아해할 수 있는데
그것이 다 이런 연유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이 지면을 통해 알리는 바 입니다.
오스카
오스카는 그래피티 작업을 하는 청년이다.
스프레이 페인트를 손에 쥐고 무심한 벽면을 강렬한 메시지의 벽으로 바꿔내는 능력의 소유자.
그 오스카가 달고나 주방에 지난주부터 합류했다.
홍대라는 공간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지금 달고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지닌 면면은 예술인 집성촌이나 다름이 없다.
미술인 3명(이중 한 명은 지난주에 까페사장으로 취임한 관계로 퇴직),
음악인 1명, 영화인 3명(1명은 상수, 나머지 2명은 변수),
그리고 그래피티 1명.
앞으로 비슷한 분야 몇 명의 사람들이 달고나에 더 합류할 예정.
제 2 주방
어느정도 확정된 이야기다.
직접 계기는 소시지이지만 발단은 냉면.
암튼 이에 얽힌 사연은 좀 나중으로 미뤄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 망원동을 중심으로 아주 싼 공간을 물색중이다.
지난주부터 망원동 일대를 뒤지고 다니기 시작했고 가급적 이달 3월 안으로
세컨드 키친을 세팅할 기세로 일을 추진중이다.
테이블 7개, 고작해야 30명이 채 못 앉는 가게에서 웬 호기이고 뭔 사치인가 싶겠지만
우리에겐 아주 절실하다.
사람들이 달고나를 좋아해주는 이유를 우리는
어디까지나 재료의 퀄리티에서 나오는 맛이라고 나름 자평하고 있는데(살가운 서비스는 아님)
이것을 유지하는 것은 지금의 공간에서도 어느정도 가능하다.
헌데 이것을 '꾸준히' 유지하고 나아가 새로운 메뉴를 내놓기 위해서는
지금의 공간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
이는 다양한 요리 경험이 없는데서 오는 일종의 비용이기도 하다.
그리고 식당을 찾는 오래된 단골의 뼈아픈 한 마디도 빼놓을 수 없는데
"달고나는 다 좋은데 본식이 없다는 것이 늘 아쉬워요"
울고싶은데 뺨 맞았달까?
늘 빚진 사람마냥 부족한 본식에 쫓기는 심정이 있던차에
때마침 그 한 마디를 듣고나니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심에 못을 박았다.
'파스타 잘 하는 집'에만 머무는 것이 달고나의 계획은 아니다.
허나 지금의 것도 유지하느라 빠듯한 주방에 본식 하나를 밀어넣는 것은 무리.
이미 가득한 비닐 쇼핑백에 20킬로 쌀 한 푸대를 더 넣어야 하는 상황과도 같다.
더욱이 뒷마당을 개간해서 날씨 좋은 날 그곳에 테이블 몇 개를 더 놓게되면
비닐 쇼핑백은 더 큰 것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손님을 더 받는 것 보다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은 뒷마당에
흙과 잔디, 그리고 갖가지 식물들을 심는 것이지만
그것은 자연스럽게 손님들을 끌어들일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더욱 좋아진 요리가 더해지면 이 모든 과정들이
서로의 이유로 강력하게 결속되는 고리가 완성될꺼라는 믿음도 생긴다.
일종의 선순환.
남들은 잘 안믿을지 모르지만
그날 그날의 매출결과에 관심을 갖긴 해도 그것이 내 팔자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에 대해선 잘 모르겠고 관심도 별로 없다.
그보다는 매일 시장에서 보고 겪는 갖가지 재료들의 호기심과 그것을 어떻게
써먹으면 나도 재밌고 사람들도 좋아할까 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이 간다.
이 '어른이 놀이'의 현장으로써 세컨드 키친이 부상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일에 깔리는 주방동료들의 복지도 이곳을 통해 어느정도 해결이 가능할 듯 싶다.
지금의 가게와 가까우면 더 없이 좋겠지만
폭등한 이곳 임대료로는 어림도 없다.
그에 비해 망원동은 재래시장도 가깝고 마포 농수산물센터도 가깝고
무엇보다 상수동에 비해 임대료가 저렴하다.
지하철 6호선이 지나는 A급 상권대로에서 몇 블러 한강쪽으로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몰락한 구 상권에서 어쩌면 괜찮은 조건의 자리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세컨 키친(제2주방)으로 옮겨가는 몇 가지 일과를 추려보니
식사빵 작업을 비롯해 대략 70%의 주방 일들이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