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Korea 160409~2016. 5. 24. 15:38





마포구 망원동 월드컵로 21길 14번지에 위치한 사진의 이 공간은 <협동조합 달고나>가 기존의 <이태리식당 달고나>에 이어 수익사업의 하나로 준비중인 <협동식당>(가칭)의 내부 모습입니다. 낡은 가옥을 리모델링해 지층과 1층, 2개 층에 걸쳐 총 50평의 넓이로 7평 정도의 뒷마당도 활용할 수 있는 예쁜 공간입니다. 

얼마전까지 작은 자영업을 운영하던 사장님들, 현재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들, 그리고 이런저런 인연으로 연결된 친구들과 이태리식당 달고나의 전 구성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출범을 앞둔 <협동조합 달고나>의 첫번째 전체 회의를 가졌습니다. 

이날 모임은 <협동조합 달고나>의 출범의 취지와 현재 진행상황, 향후 일정, 정관의 내용을 중심으로 진행됐고 특히 정관을 놓고 오랜 시간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협동조합 기본법을 근거로 마련된 '표준정관'을 바탕으로 <협동조합 달고나>의 취지와 운영에 맞게 내용이 손질되고 있고 이번 주 내로 예정된 창립총회를 거쳐 협동조합 법인 설립신청서를 제출하면 서류심사를 거쳐 <협동조합 달고나>가 세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협동식당>은 <협동조합 달고나> 출범과 함께 문을 열게되는 사업장입니다. 홍대상권은 물론 범 홍대상권으로 분류되는 연남동, 망원동 일대에 걸쳐 변변한 해장국집과 냉면집이 없다는 것이 오래전부터 의아했는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소자본 개인사업의 의지만으로는 운영이 어렵기 때문일 겁니다. <협동식당>은 냉면과 해장국에 목마른 합정.망원 생활인들에게 소중한 오아시스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을 목표로 준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아래 글은 이날 참석자들에게 배포된 프린트물 중 일부입니다)



자립과 노동의 새로운 통로,

<협동조합 달고나>가 온다.



내용 : <협동조합 달고나>의 예비조합원과 ‘눈팅’들의 첫만남.

일시 : 2016년 5월 23일(월)

장소 : 협동식당 (망원동 월드컵로 21길 14)



자영업의 위기, 달고나의 위기


노동시장에서 밀려나오거나 진입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자영업이다. 하지만 여기도 공급과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들이 생존하려면 그것을 구매해야 할 소비자들이 충분히 존재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들의 주머니 사정 또한 넉넉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수입이 넉넉치 않으니 구매력이 떨어지고 구매력이 떨어지니 내수경기가 추락하고 재고가 쌓이니 직원들이 직장에서 짤리고 짤린 직장인들이 골목사장으로 변신해 치킨집을 만들어가는 이 고약한 악순환. 따라서 현재 창업대열에 쏟아져 들어오는 사장님들의 50%는 3년 이내, 80%는 5년 이내 망한다는 것은 통설이 아닌 통계로 증명되고 있다. 중산층 붕괴는 그것과 짝을 이루며 간다. 


자영업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이루는 것은 물론 대박이 터져 돈방석에 앉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이들의 비현실적 욕망과 시시때때로 방송되는 맛집 프로그램들의 편집된 정보가 만나면 특별함이 일반화되는 오류를 낳고 결국 수요와 공급이 왜곡돼 많은 이들을 그릇된 선택으로 몰고간다. 배추값의 폭등과 폭락으로 얼룩진 농산물시장의 수요공급 붕괴와 똑같다. 


선택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 실패에 따른 댓가가 워낙 커서 재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더욱이 하락곡선을 그리는 경기에서 조율되지 않은 저마다의 창업은 시장을 활성화는 커녕 더욱 황폐화시킨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정부는 이런 문제 해결에 무능하다. 


달고나는 한동안 인기있는 가게였고 지금도 그 지위는 유지하고 있지만 매출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이는 우리가 특별히 못하거나 다른 우수한 경쟁자가 나타나서라기 보다는 골목상권의 변화와 상권의 이동, 그리고 전반적인 경기불황의 여파로 읽혀진다.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달고나도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다. 


또 하나, 7년 간 달고나 운영을 통해 얻은 것은 장사의 경험과 좋은 사람들, 그리고 망가진 건강과 늘어난 빚이다. 열심히 하면 상응하는 보상이 돌아온다는 공식은 깨졌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력해봐야 현상유지이거나 겨우 추락을 면할 뿐이다. 이는 사회와 시장경제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다고 봐야하는데, 불로소득 비율이 낮아지고 생산임금이 커져야 함에도 그 정반대인 현실, 아무리 일해봐야 건물주와 금융비용, 그리고 불리한 세제에 따른 세금으로 부가 빠져나가버리니 돈이 쌓일 틈이 없다. 그걸 이겨보겠다고 나서면 몸이 부서지거나 양심을 팔아야 한다. 


따라서 이런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방법으로 온건한 것이 선거, 과격한 것이 혁명인데 뭐가 됐든 가능이나 할까? 어찌됐건 시장에서 도태되어 구성원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을 피하기 위해 달고나는 변화와 혁신의 길을 찾지 않을 수 없다. 



협동의 경제와 조우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무렵, 관련책 몇 권을 건성으로 넘기다가 정태인 박사의 <협동의 경제학>을 시작으로 새로운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생각을 사로잡은 개념은 ‘죄수의 딜레마’와 ‘최후통첩 게임’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독자적 이익을 얻기위해선 협력하지 않아야 한다’는 개념을 설명한 것이고 최후통첩 게임은 ‘서로 협력하면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죄수의 딜레마를 기본 속성으로 운영되는 체제이고 협동의 경제는 최후통첩 게임을 기본 속성으로 한다. 이 개념에서 영감을 얻어 달고나의 돌파구를 찾으니 답은 역시 ‘협동조합’이다. 너나 나나 서로 다르지만 결국 같은 운명의 배를 타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는데서 협동조합 구성의 논의는 출발한다. 


협동은 절박한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힘을 합쳐 필요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다. 내 위기가 해결되면 곧 함께 힘을 보탠 이들의 위기도 해결된다. 만약 누구는 절박한 필요가 있는데 누구는 그렇지 않다면 협동을 잘 이뤄지지 않는다. 가령 내 발등을 무거운 돌이 누르고 있다면 나는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돌을 치우려 할 것인 반면, 발이 안전한 사람은 굳이 그럴 필요를 못느낄 것이다. (여기까지가 자본주의의 일반적 속성이고 죄수의 딜레마다)


그 돌이 나와 그의 발등도 누르고 있는거라면 둘이 힘을 합쳐 돌을 치우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설사 내 발이 먼저 빠져나왔어도 나는 힘쓰기를 중단하거나 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를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다시 힘을 모으는 것이 협동이고 이는 오랜 세월 인간이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는데 학습해온 본능이다. 따라서 이런 이들이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 위해 사업적 결사체를 이룬 조직이 바로 협동조합이고 ‘협동조합 달고나’는 이에 동의하는 구성원들로 채워진 사업 결사체이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곧잘 싸움이 벌어질꺼라고 사람들은 우려한다.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우리 내부에서도 이런 걱정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미국의 한 작은 호숫가에서 오두막을 짓고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던 헨리 소로우는 말했다. 


“생활이 단순해지면 세상의 법칙도 단순해진다”


협동조합 내에서 이해관계가 복잡해진다는 의미는 아주 다양한 욕망들이 뒤섞인다는 뜻.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 각자는 제 각각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모인 것이라기 보다는 그 욕망을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동 기반을 만들기 위해 모였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앞서 언급한 것 처럼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 위해 사업적 결사를 이룬 조직’이다. 이는 일종의 마을 공동우물과 같다. 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그 쓰임은 제각각이고 그건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이고 취향이다. 하지만 우물이 마르지 않도록, 더렵혀지지 않도록 유지하고 관리하는데에는 모두가 공동의 의무를 지닌다. 누군가 갑자기 물을 더 많이 쓰기 시작해서 물이 부족해지기 시작하면 그 경위를 모두가 알아야 한다. 그럴만한 사유라면(일이 벌어지기 전에 논의되겠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거나 돕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람들은 그를 우물 사용에서 배제시킬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나와 똑같아져야 한다거나 내가 저 사람에게 기계적으로 맞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합사업의 발전은 내가 가진 재능을 공동 우물의 안전과 풍요를 위해 쓰고 그것이 우리 안에서 격려받고 칭찬받아 다른 이들에게도 선의의 자극을 주어 전체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중요한 건 우물이 마르거나 더럽혀져선 안된다는 점이다. 




자급력 = 역할의 창출 = 노동의 재발견  


<협동조합 달고나>가 추진해나갈 다양한 사업에서 그 밑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가치관은 한 마디로 '자급력을 높이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사람들은 ‘소비자’로 인식됨으로써 우리들은 돈(화폐)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화폐로써 교환되어야 하는 삶은 우리를 끊임없이 소비를 위한 돈벌이 노동으로 내몬다. 


<협동조합 달고나>가 추진하는 사업의 핵심은 수익 창출만이 아니라 생존을 넘어 생활로 정착될 수 있는 우리 안의 자급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다. 식당사업을 하면서 재료를 모두 시장에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농장을 꾸려 ‘자급’하는 것이고 생활에 필요한 가구를 이케아에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 ‘자급’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사업영역은 무수히 많으며 그것을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엮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다)


다양한 생활의 영역에서 협동조합 달고나 조합원들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협동조합 달고나>의 사업 방향이다. 한 마디로 ‘수익의 창출’이 아니라 ‘역할의 창출’이며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일자리 창출’인 셈이다.


그 일환으로 준비중인 사업이 <협동식당>이고 곧이어 기존에 이어오던 <이태리식당 달고나>를 리뉴얼해 현재의 상수동에 8월 이전에 재오픈할 계획이다. 두 사업이 안정화되면 추가적인 조합원 모집을 통해 <베이커리 달고나> <협동서점> 등을 오픈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내년에는 서울 인근에 <조합농장>을 마련해 외식사업에 필요한 식자재를 자체 공급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역할의 조정


조합사업의 각 영역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 일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조합의 운영규칙과 조합원들의 요구에 따라 얼마든지 역할의 조정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즉 이태리식당 주방에서 일하다가도 일정 기간 후엔 원하는 바에 따라 조합의 목공작업실로 근무지를 옮길 수도 있고 농장이나 서점으로 옮길 수도 있다. 조합 내의 다양한 사업영역에서 다양한 역할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기회가 되고 높아진 행복도는 일의 성과를 끌어올리리라는 기대를 우리는 갖고 있다. 조합사업이 수익에 목적을 두고 조합원을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고 그 반대로 조합원의 다양한 역할의 경험과 그 기회를 통한 만족이 목적이고 돈은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협동조합 달고나>의 시각이다. 



휴식의 노동


돈과 시간을 등가로 가정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것을 선택하겠냐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바쁜 일상에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일상, 나 자신이 거대한 기계의 부속으로 쓰여지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개인의 시간이란 조직 이윤의 논리 앞에서 평가절하되곤 한다. 소설가 현기영은 말한다.


"우리는 매일매일 단 하루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천편일률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인데, 이렇게 살고서 과연 일생의 시간을 다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을 단 하루의 삶이 아닐까?  기억에 남아 있는 시간만이 진정으로 살아 있는 과거이므로, 우리가 비교적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오늘이라는 시간뿐이다"


그 소중한 오늘이 내일에 저당잡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가 아닐까? 그것을 뼈저리게 절감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모두의 바램을 모아 1년에 1개월의 휴식을 계획하고 있다. 긴 시간 내 자리를 떠나 돌아와도 그 자리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회사. 한 달의 돈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한 달의 시간을 선택할 것인가. 




협력은 모든 위기의 해법


오늘날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불안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해오던 협동, 협력의 룰이 깨진데서 출발한다. 

삶의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사람들은 돈을 벌지만 우리는 '협력'을 복원하고 키우는 것이 진정한 해법이라 여긴다. 우리에게 <협동조합 달고나>는 그 첫 단추이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