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는 주말의 시작. 수업을 마치고 나니 홀가분하다. 지금의 여행 자체가 주말의 연속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주말은 역시 주말이다. 어제 수영을 못했으니 오늘은 수영을 해줘야 한다. 이제 우리 두 사람 모두 물의 깊이와는 관계없이 수영을 즐기고 있으며 김군의 경우 50미터 정도의 거리는 쉬지 않고 자유형 수영이 가능하다. 평형은 그보단 더 갈 듯.




올 여름, 스페인 학생들로 북적이던 비치클럽은 그들이 되돌아가자 적막한 느낌마저 돈다. 하지만 풀장에 사람이 적다는 것은 우리에겐 즐거운 일. 첨벙첨벙 다이빙을 연습하고 물속에서 꺼꾸로 물구나무 서기를 연습하고 낄낄대고 꺅꺅거리며 9월의 막바지 더위를 식히고 있다. 이곳 비치클럽도 10월이면 문을 닫는다고 하니 남은 기간 더욱 열심히 다니자며 불끈 주먹을 쥔다.




며칠 전 이곳에서 공부를 마치고 영국 캠브리지로 6개월간의 영어연수를 떠난 한국인 친구가 소식을 전해왔다. 도착한 후부터 줄곧 비가 내리고 춥단다. 이곳에서 입던대로 단촐하게 떠났으니 우리가 3월에 꽃피는 한국을 떠나 로마에 도착해 추위에 벌벌 떨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 고생이 어떨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지중해와는 전혀 딴판인 북해의 영향을 받는 영국. 들려오는 빗소리와 인적없는 거리, 눅눅하고 침침한 방구석에서 한 없는 고독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은 이곳의 지긋지긋했던 햇살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그 친구는 새삼 느끼지 않을까? 생각이 이쯤에 닿으니 우리도 왠지 이곳의 더위와 따가운 햇살, 지저분한 거리와 사람들의 왁짜한 분위기가 슬그머니 반갑고 고맙게 느껴진다. (적어도 이 순간에는..)






일로나는 7살짜리 여자애다. 올 여름, 풀장에서 자주 만난 몰티즈 꼬마. 우리를 처음 보곤 신기했는지 우리 주위를 맴돌며 수줍어 하면서도 눈길을 떼지 않았는데 결국 우리가 먼저 말을 걸어 일로나가 갖는 호기심을 상당부분 해소해줬다. 사실 일로나가 갖는 호기심은 딴게 아니라 그저 자신과는 다르게 생긴 낯선 외국인에 대해 갖는 호기심 그것이다. 초등생을 위한 이런저런 교육적인 정보, 가령 한국이 어디에 붙은 어떤 나라고 아시아는 어떤 곳인지 알기 쉽게(영어로!) 설명해줬지만 대충 흘려듣고는 보란 듯이 엉망인 폼으로 다이빙을 한다. 마침 얼굴에 뭔가를 잔뜩 칠하고 나타나 자랑하길래 한 장 찍었다. 너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씩씩하게 크거라. 너무 '씩씩하게' 먹진 말고..

금요일 주말이니 느지막한 시간까지 수영을 즐겼다. 참으로 홀가분하게 느껴지는 저녁, 여기에 오늘 우리집 식구들(지희, 서희)이 모두 밖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하니 일찍 들어가 밥을 할 필요도 없다. 느슨하고 나른해진 몸과 마음을 어디서 무엇으로 알차게 채워줄까 즐거운 고민에 빠져 잠시 입맛을 냠냠 대다가 결정한 곳은 바로 아래, Paparazzi다.




일전에 김군이 도모미와 식사를 즐긴 곳이 이곳이기도 하다. 몰타를 소개하는 엽서에 자주 등장하기도 하는 이 식당은 그 앞에 바다와 정박한 작은 배들을 훌륭한 야외 인테리어처럼 갖추고 있어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이 제법 근사하다.  




낮에 바라본 식당 일대의 풍경. 왼쪽 버스다니는 길은 우리가 매일같이 오가는 길이고 가운데 파라솔이 펴져 있는 곳이 Paparazzi 식당이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가로등은 물론 저 일대의 식당들이 일제히 불을 밝혀 그 모습이 퍽 낭만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은 위치는 몰타의 베스트 촬영 포인트 중 하나에 속한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거리와 바다를 바라보며 즐기는 식사도 퍽 근사하지만 이날은 음식 주변으로 꼬이는 파리, 그리고 야외 테이블이 인기높은 자리인 만큼 식사를 마치면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려 드는(식사마친 접시를 서둘러 치우는 것이 유럽 식당의 룰인지는 모르겠으나..) 종업원의 등쌀을 피해 실내로 자리를 잡고 간섭에서 조금 떨어져 식사를 즐기기로 했다. 이곳은 김군에겐 세 번째, 강양에겐 두 번째 방문이다. 맛과 서비스에 대한 노력은 제쳐두고 좋은 자리 꿰고앉아 오로지 '목장사'에만 몰입하는 못된 식당들이 종종 있는데 파파라치는 그런 식당들과는 제법 거리를 두고 있는 식당이다. 간섭만 빼면..





실내는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어 무척 시원하다. 수영하고 온 뒤라 입고 있는 수영복이 아직은 덜말랐는데 그 때문인지 더욱 시원하게 느껴진다. 실내는 두 아기를 데리고 온 부모만이 단촐하게 식사를 즐기고 있다. 벽면은 이런저런 액자들로 가득 꾸며져있는데 주로 여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오른쪽 샹들리에 아래 누운 여성의 그림이 보이는가? 그 옆의 액자도 여성이고 우리 뒤쪽의 그림도 여성이고 아무튼 대부분이 여성이다. 식당 주인의 취향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창가쪽 테이블에 앉으니 바라보이는 풍경이 저렇다.





아담한 테이블, 단단한 의자, 그 옆에 작은 화단. 공간의 아기자기함은 가운데 촛불이 놓여짐으로서 비로소 완성된다. 다만 저 자리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사진엔 보이지 않지만 왼쪽편에 테이블의 경우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면 이 테이블의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줘야 한다는 점이다. 발코니는 참 탐스러운 자리임에 분명하지만 저리 좁아가지고서야..



 

난간쪽은 언제나 인기만점의 공간. 풍경을 독차지하는 매력은 물론 주변 테이블의 소음으로부터 최대한 벗어날 수 있는 장점도 갖추고 있다.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탓에 테이블은 단촐하다. 나이프와 포크도 종이 냅킨에 둘둘 말려있고 나이프는 손잡이가 플라스틱이다. 비스트로는 영어로 대중음식점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명사로 쓰이며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는 몰타의 경우 Osteria라는 이름으로도 종종 불려진다. 좀 더 고급스러운 식당에 해당되는 Ristorante는 테이블보가 깔리며 와인잔을 비롯 각종 식기와 도구들이 우아하게 세팅되어 있어 그 포스에 선뜻 들어가기 저어해지곤 한다.


메뉴판을 스윽 훑어본 뒤 다음의 메뉴들을 주문한다.




마지막의 Octopussy. 요건 문어 샐러드고..





끝에서 두 번째에 있는 Fish Tank, 요건 파스타다. 그리고 맥주 한 잔을 주문한다.
두 사진 모두 조명이 약해 흔들렸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뭘 넣었다는 얘긴지 얼추 확인할 수 있을테다.






먼저 맥주 나와 주시고.. 맥주는 몰타의 정통맥주 生 CISK다. 정통 Lager로 드라이하고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나라마다 독특한 맥주잔을 갖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몰타의 맥주잔을 보면서 더욱 굳어지는데 주둥이 아래가 불룩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각 나라 별, 혹은 제품 별 잔을 모두 모아 한국에 가져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그 뒤로 보르게스 제품의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가 나란히 놓여있다. 후추와 소금통도 나란히..





주문하고 10분이 조금 넘어서자 문어 샐러드 나온다.





곧바로 파스타도 나와주시고..





단체사진 한 장.





좀 더 폼 잡고 한 장 더..

파파라치의 식단에서 우리가 우선 높게 평가하는 점은 우선 양이다. 사실 허기진 이들에게 식당의 첫 번째 배려는 넉넉한 양이 아닐까? 두 번째라면 스피드, 세 번째는 맛이겠고 깐깐한 미식가라면 물론 그 순서가 반대일 테다. 몰타의 다른 많은 식당도 양이 제법 많은 편이지만 파파라치 만큼은 아니다. 파스타는 물론이고 샐러드의 경우도 하나 시키면 여자 둘이서 먹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우리가 시킨 저 두 접시는 셋이서 먹으면 딱 알맞을 양.

일전에 파파라치에서 Fish Tank 파스타와 토마토 소스로 범벅을 해낸 라자냐(넓고 네모난 만두피 모양의 파스타로 겹겹이 쌓여 나온다)를 각각 시켜 먹은 적이 있었는데 김군은 라자냐를 겨우 절반까지 먹는데 성공했을 정도로 그 양이 푸짐했다.(김군의 식사량이 줄어든 탓도 있다)  라자냐 사이에는 갈은 쇠고기를 넣어 그 양이 더욱 풍성했는데 그렇다고 맛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무튼 넉넉함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만 한편으로 음식을 남기는 불편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또한 어쩔수가 없다. 쩝..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문어 샐러드이니 당연히 문어가 들어가 있고 그 양도 흉내만 낸게 아니라 진정으로 넉넉하다. 싱싱한 양상추와 오이, 문어 사이에 틈틈이 케이퍼도 보인다. 이 외에 녹색 채소로 피망과 치커리가 속속들이 섞여있고 양파와 당근, 마지막으로 올리브와 토마토가 샐러드의 풍미를 한껏 높여주는 구성이다. 훌륭하다. 보는 것 만으로도 몸이 싱싱해지는 느낌이다.

이쯤에서 문어 한 조각을 포크로 콕 찍어 입에 넣어 본다. '오물오물.. ??..  ??.. 어허...' 치명적인 문제가 포착된다. 우리가 예상했던 문어의 맛이 아니다. 짭짤해야 할 문어는 그 간이 다소 밍밍했고 간이 약하더라도 씹을 수록 문어 특유의 고소함이 베어나와야 하는데 그 맛이 터무니없이 약하다. 씹히는 질감에서 그 연유를 대번에 파악했고 우리 모두 한 마디를 동시에 던졌다. "냉동이군.."

갖잡은 생물은 바라는 것은 아니고 지중해라면 그 값진 기후를 이용해 건조를 통한 저장법도 발달했을 법 한데 유통상의 문제가 무엇이길래 저 좋은 식재료를 냉동했을까? 아쉬움이 크다. 일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살짝 염장해 반건조한 문어를 모양내지 않고 퉁퉁 썰어 석쇠에 살짝 구운 뒤 갖은 채소위에 얹고 질좋은 올리브유를 양껏 뿌려내면 맛은 물론 영양과 멋이 그야말로 판타스틱이다. 사실 문어의 양이 다소 적더라도 그것을 기대했었는데.. 주방이 좀 더 안목높은 고집을 피웠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쉽다.

그러나 여기서 맛의 탐구를 포기할 순 없다.





레몬을 끼얹고..




발사믹도 뿌리고..




올리브유로 마무리..

비록 문어 자체의 맛은 떨어지지만 저리 먹으니 맛이 제법 살아난다. 레몬과 발사믹이 채소와 어우러져 새콤함이 돋보이고 올리브유가 그 맛을 차분하게 잡아주는 역할도 한다. 아쉬운 문어는 케이퍼와 함께 먹으니 그런대로 맛도 나도 새로운 맛도 포착된다. 연어와 케이퍼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앙상블인데 문어와도 제법 잘 어울린다. 뭐든 자체의 맛이 깊고 진한 해산물이라면 케이퍼와의 만남은 훌륭할 듯 싶다. 홍합과 케이퍼도...?





Fish Tank. 어떻게 저런 이름이 음식에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는 기대는 해산물의 푸짐한 살점들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푸실리를 압도하면 그것도 문제. 처음엔 안보이던 Fish들이 바닥을 뒤적이자 섭섭치 않게 올라온다. 새우는 꼬들하니 맛도 깊고 생선살도 잇사이에서 씹히는 맛이 좋다.

아주 형편없는 재료만 아니라면 크림소스는 언제나 그렇듯 배후에서 재료의 맛을 색다르게 변모시켜 맛을 끌어올려주는 일등공신이다. 가끔 몸과 마음이 허전하다고 느껴질 때, 입맛을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것이 바로 크림소스의 찐하고 깊은 맛이다. 단 그 역할이 지나치면 어느새 포크질은 점점 둔해지고 느끼함에 식사는 일찌감치 끝나게 되는데 크림소스 바탕의 파스타는 그 강도를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 아닐까 싶다. 이날의 크림은 그 어려운 길을 무사히, 그리고 훌륭하게 지나왔다. 아래의 수고를 거치니 좀 더 탄탄해졌다.





그러나 파스타의 주인공은 당연히 파스타다. 오늘의 주연은 푸실리로 배배 꼬아낸 모양의 저놈이 바로 그놈. 이태리 사람들이 파스타를 먹을 때 민감하게 살피는 부분이 파스타의 익힘 정도다. 예전에 함께 식사를 했던 베로나의 엘리자베타도 그것에 신중했는데 우리는 별 문제없다고 생각했던 팬네(펜촉 모양이 파스타)를 두고 그녀는 "이런.. 너무 익혔군"이라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처음엔 그 반응에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는데 며칠 후 라면을 떠올리자 그녀의 까탈스러움에 금새 수긍이 갔다.

이태리 사람들에게 주식인 파스타만큼 라면이 우리 식단의 주식은 아니지만 한국인들의 라면에 대한 끔찍한 사랑은 파스타에 견줄만 하다. 많은 한국인들이 라면맛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국물이 아닌 면빨의 맛. 국물은 이미 평준화됐지만 면은 아니다. 기껏 2천원 짜리 라면 한 그릇이지만 꼬들한 면 맛을 내느냐 퍼진 면 맛을 내느냐에 따라 가게의 흥망이 분명하게 갈려진다. 이 점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준은 무서우리만치 냉혹하고 까다롭고 엄정하다. 하물며 주식인 파스타임에야..

그렇다면 이날의 파스타는? 대개의 한국인들에겐 알맞은 익힘이고 맛이다. 그러나 엘리자베타가 함께 있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몰타는 정말이지 구제불능이군!.."





먹어도 먹어도 좀처럼 바닥이 드러나질 않는다. 어느새 포크는 새우와 생선살점, 그리고 문어에만 집중된다. 본능적인 본전의식의 발동이다.





힐끗 밖을 내다보니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가로등에도 불이 들어왔고 테이블 위의 촛불의 존재감이 갈수록 뚜렷해진다. 한 여름엔 9시나 되야 깜깜해졌는데 요즘엔 8시를 넘어서니 깜깜해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중해의 해는 길다. 한국도 그랬던가? 기억이 가물하다..

9월도 곧 중반을 넘어서 막바지로 치달을 테다. 그때 쯤이면 우리도 여유를 접고 바빠져야 한다. 6개월 간 살아온 집을 정리해야 하고 버릴 짐은 버리고 챙길 짐은 챙겨 다시 가방에 우겨 넣어야 한다. 짐이 많으니 그 시간은 꽤나 고민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테다. 그래도 이곳 몰타를 떠나는 것은 우리에겐 작은 기쁨이다. 정말이지 이제 이곳의 더위와 더러운 공기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다!





어슬렁 어슬렁 해변길을 따라 걸으니 어느새 어두워졌다. 가을이 깊어지면 어둠의 속도도 좀 더 빨라지겠지.. 바다에 비춰지는 불빛이 곱다. 달도 휘영청 떴으니 고향 생각에 젖어들 타임. 그리고 보니 추석이다. 가족들과 한 상 떡 부러지게 차려놓고 재미난 TV프로그램 보며 왁자지껄 먹고 떠드는 재미가 솔솔 그리워진다.

근데 그 시간을 풍성하게 해줄 TV 프로그램으로 과연 무엇이 가장 재미있을까? 외국인 노래자랑? 아나운서 폭소대잔치? 성룡과 홍금보 주연의 영화? 혹시 이런 건 어떤가?  추석특집, 슬로우푸드의 본고장 이탈리아로 떠나는 가을 식탁 기행.
(아따 제목 기네.. 기대하시라.. ㅋㅋ)
Posted by dalgonaa

지난 주말은 월요일이 마침 몰타의 승전기념일이어서(뭘 이겼는지는 모르겠지만..) 3일간 이어지는 황금연휴였다. 금요일 와인파티를 즐긴 뒤 마침 그곳에서 만난 카리나와 그녀의 남자친구 드가강을 일요일에 집으로 초대했는데 단 두 사람만 부르기엔 단촐할 듯 싶어 이참에 김군의 반 친구들도 초대를 했다. 저녁 7시부터 마시고 놀기 시작한 자리는 와인 9병과 맥주 3캔을 비운 뒤 새벽 3시가 가까이 되서야 끝이 났다.



독일,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 러시아, 일본.. 국적도 다양하다. (왼편의 남녀가 카리나와 드가강. 이들의 나이차는 18세. 드가강은 유고가 고향이지만 몇 년 전 가족들과 함께 독일로 완전히 이민을 와버렸다. 지금은 독일에서 페인트 마이스터가 되기위해 공부하고 있고 1년만 더 하면 될 것 같다고..)

아무튼 김군의 반 친구들 중 연락이 닿지않아 오지못한 친구들이 있었고 후에 파티 얘기를 듣고는 살짝 실망의 기색이 엿보여 그게 걸렸었는데 공교롭게도 딱 그 친구들이 이번 주말에 걸쳐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 가운데 일본에서 온 미즈키는 지난 파티에 등장한 한국음식을 먹지 못한 것을 두고 크게 안타까워 했으니 그녀(그래봐야 20살 갓 넘긴 학생이다)를 위해서, 그리고 이들 모두를 위해 작은 작별선물을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은 다름아닌 김밥.







목요일 밤에 미리 밥을 짓고 속에 들어갈 계란과 채소도 미리 부치고 볶아뒀으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 김만 말면 그만이다. 마침 K-mart에 단무지가 들어와 진작에 5개를 사다놓은 것이 있어 그것이 김밥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시금치를 대신하는 오이가 녹색을 표현하는데 다소 한계가 있는 듯 해서 지난 파티때 먹고 남은 냉동 아스파라거스를 살짝 볶아 이놈을 더했다.

특히 밥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수퍼에 대부분인 안남미(인디카)는 물론 일찌감치 제외했고 우리가 먹는 것과 비슷한 자포니카를 골랐다. 유럽에서 유통되는 자포니카의 대부분은 이태리에서 생산되는데 그러나 이것 역시 쉽게 쉽게 물르고 밥알이 거의 3배 가까이는 불어나는지라 리조또용으로는 적합하겠지만 김밥용으로는 아니다. 그나마 최근 유럽에서 서서히 불고 있는 스시열풍에 힘입어 '스시용'이라고 나온 쌀이 있어 그놈을 골라 밥을 지었는데 밥알이 우리것 보다 더 둥글다. 그런대로 찰진 구석있고 밥을 짓고 난 후에도 쌀의 기본 형태를 제법 유지하니 다행이다 싶다. 이곳 쌀에 대해서 포스팅 한 번 할 생각이니 그때 더 자세히..  지은 밥은 잠시 식혀둔 뒤 플라스틱 볼에 옮겨담아 미리 만들어놓은 초물을 살살 끼얹어가며 밥을 비볐다. 대단한 정성이다.








수업을 마치고 한 자리에 둘러 선 친구들. 가운데 김밥을 들고 있는 친구가 Mizuki다. 그 옆에 Kayoko와 바로 뒤에 이태리에서 온 Giouseppe, 그리고 맨 오른쪽 끝의 Natalie가 모두 이번 주말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다만 Mizuki는 독일을 일주일간 여행한 뒤 아시아나를 타고 서울에서 하루 스톱오버해 다음 날 동경으로 돌아간다는데 서울 어디서 묶을꺼냐고 물으니 명동에 있는 유스호스텔이라고 한다. 보아하니 옛 안기부를 말하는가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낼 물건 몇 가지를 미즈키에게 들려보내 그곳에서 하루 숙식을 제공받으라 할 껄 그랬나? ㅋㅋ

김밥을 처음 본 이들의 반응은 그 형형색색의 색감에 먼저 탄성을 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은 이 대목에서 정확히 들어맞는다. 낯선 음식을 처음 접할 때면 누구든지 보이는 것을 통해 먼저 그 맛을 짐작하기 때문인데 시각에서부터 경계심이 생겨버리면 왠만큼 놀랄만한 맛이 아니고선 잘못지어진 첫 인상을 만회하기란 좀 처럼 쉽지 않다. 김밥이 갖는 비주얼은 그런 면에서 낯설음에 경계심을 잔뜩 세우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처음부터 친숙해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아는 음식이다.

역시 김밥맛을 대번에 알아보는 이들은 미즈키와 가요코다. 몇 번 오물오물 거리더니 이내 눈가에 웃음이 번지고 곧이어 수줍은 듯 '오이시이~'가 튀어나온다. 비슷한 식문화를 가졌으니 그 입맛이 어디 가겠나? 일전에 파티에서 김밥맛을 이미 본 다른 친구들도 덥석덥석 집어 먹기에 바쁘다. 가운데 검은 옷을 입고 있는 Sarah는 선생이다. 그녀 역시 'Oh~ sweet''을 연발하며 제법 용기있게 김밥에 도전한다.

김밥은 확실히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 수 있는 음식이다. 몇 가지 상상력을 얹어 모양과 맛에서 색다른 도전에 나선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단박에 끌어당길 수 있을테다. 김밥의 물건너 사촌쯤 되는 캘리포니아 롤이 'Gochi'라는 간판을 내걸고 좁은 공간에서 일본인 젊은 사장의 운영 아래 힛트를 치고 있는 이곳의 모습을 학원을 오가는 길에 매일 같이 목격하노라면 그 짐작은 더욱 굳어진다.






이날의 김밥, 과연 그 맛을 새삼 떠올리며 입맛을 다실 이들은 몇이나 될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심없이 나눠주는 것에서부터 만남은 각별해지기 시작한다. 김밥 맛에 대한 그리움까진 아니더라도 이들에게 이날이 좀 더 각별한 날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Posted by dalgonaa

 변덕스러움에 있어서 계절만큼 당혹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없지 싶다. 가을이 왔다고 호들갑을 떤게 얼마전이었건만 요즘 몰타의 날씨는 한 여름 한국의 날씨를 고스란히 닮아있다. 시간이 꺼꾸로 간 때문은 물론 아니고 9월로 접어들면 다습한 공기가 지중해 일대를 뒤덮었기 때문. 이 불쾌한 '손님''은 점차 그 범위를 키워 겨울로 접어들 무렵엔 유럽으로까지 뻗친다고 한다. 우리와는 달리 여름엔 건조하고 겨울에 다소 습해지는 것이 이곳 기후의 특징. 겨울에 유럽에 안개가 많이 끼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다 아는 얘기일 터.

그래서 요즘 무척 덥고 쉽게 지친다. 끈적거리는 피부와 어느새 눅눅해져 기분나쁘게 달라붙는 옷은 '어서 바다로나 뛰어들라'고 재촉하는 것 같고 실제로 그러기도 한다. 그러던 지난 금요일, 밤이 되자 기온은 좀 더 낮아졌지만 습도는 여전한 가운데 15명 안팎의 사람들이 모여 차에 몸을 실었다.  




일행이 향하는 곳은 몰타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에 하나라는 Mdina. 에어컨이 고장나서 그냥 창문열고 달리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은 제법 시원하다. 서먹한 일행들은 모두 말이 없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GROTTO라는 이름의 카페 앞. 학원에서 주관하는 체험 프로그램, 이른바 'Activity'의 일환으로 1인당 22유로(한화 34,000원)를 내고 참여하는 Malta Wine Tasting 을 체험하기 위해 온 것이다. 몰타 출국을 이제 한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우리로써도 이제 슬슬 몰타의 숨겨진 재미를 찾아 나서야 할 때다.








GROTTO는 프랑스와 몰타 요리를 선보이는 제법 오래된 식당이지만 이미 저녁식사를 마치고 모인 우리들의 목적지는 어디까지나 와인이다. 하지만 그 기대가 썩 높은 것만은 아니다. 이미 전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대륙의 와인명가가 즐비한 마당에 자국 시장조차도 지켜내기 벅찬 품질이 이곳의 현실일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양조는 몰타에서 했다지만 포도는 대부분 이태리산 아닌가!

다만 낯선 체험이기도 하고 금요일 밤, 밥도 두둑히 먹어뒀으니 다양한 와인으로 주말밤을 기분좋게 포식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선뜻 참여한다. 낯선 동행들과 거나하게 한 잔 즐기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줄테다.








식당은 지상이 아니라 지하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인 만큼 제법 쓸만한 규모의 크고 작은 동굴들이 널려있고 그 가운데 가장 쓸만한 것들은 이처럼 식당으로 꾸며져 있다. 바깥보다는 서늘하니 좋지만 여기 공기도 꽤나 축축하다.






 

대략 지하 3층 정도 되는 깊이까지 내려오자 마지막에 닿은 와인 바. 사방의 벽은 모두 용암이 식어 굳어진 암석이다. 제법 깊고 긴 규모에 살짝 놀랐는데 이곳은 어디까지나 식당일 뿐 와이너리는 아니다. 길게 이어지는 통로는 오크통이 아닌 식사를 즐기는 테이블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와인 테이스팅을 진행하는 Sandra. 몰티즈인 그녀는 스위스에서 수학했고 지금은 주방을 맡은 프랑스 출신의 남편과 더불어 이곳 식당을 운영하고 있단다. 이날 등장한 와인은 모두 몰타 와인들로 왼쪽에서부터 샤도네이 화이트로 시작해 달콤한 로제를 거쳐 멜롯과 카버네 쇼비뇽, 그리고 그녀 말로 가장 바디감이 크다는 시라즈로 마무리되는 순서다.








그녀의 에너지 넘치는 설명이 시작됐다. 영어로 진행되는 설명은 어떤 것은 들리고 어떤 것은 안들린다. 하지만 들린 것 가운데 우리의 예측을 깨는 몇 가지 이야기들이 있어 우리를 놀래켰다. 적지 않은 포도를 이태리에서 수입해 양조만 하기도 하지만 몰타 자체의 엄선된 품종으로 담그는 포도주도 있고 그것들 대부분은 기계가 아닌 손으로 직접 따 술을 만든다는 것. 소량이기 때문에 쏟는 정성이 크고 그 덕에 품질도 좋다고 한다. 정부에서도 와인산업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지원을 늘리는 추세라고도 하니 무작정 무시하고 볼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그녀의 재치넘치는 설명은 모두 비디오 카메라에 담았으니 후에 찬찬히 반복해 돌려보면 그 내용이 좀 더 또렷해질테다.








열심히 사진도 찍고..








자잘한 먹거리도 정성스레 준비됐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전방위 먹거리 워터 비스켓도 보이고 옥수수, 쇠고기, 토마토, 참치를 베이스로 하는 4가지의 소스도 다소곳이 마련됐다. 과자에서 얹어먹지만 주로 빵에 발라 먹는다.








바삭한 바게트. 올리브를 담은 접시가 눈길을 끈다.








와인 안주로 손색없는 다양한 먹꺼리들이 한 가득이다. 오른쪽 위에 작은 알갱이들은 케이퍼인데 몰타 농산물의 대표 주자 가운데 하나라고.. 살라미와 프로슈토, 치즈를 가득 담은 접시도 있었는데 그건 미처 카메라에 담질 못했다. 와인의 톡 쏘는 듯한 산미는 오른쪽의 차가운 소세지가 풍부한 육기로 감싸주고 뻑뻑해진 입맛은 다시 와인이 상큼하게 되돌려주고, 쫓고 쫓기는 맛의 재미에 어느새 빠져든다.








바게트 위에 토마토와 참치 드레싱을 얇게 바르고 그 위에 올리브를 얹었다. 촉촉한 빵을 베어물 때까진 좋지만 막판에는 손으로 꽉 잡고 이빨로 물어 뜯어야 한다. 그래도 맛은 좋다. 참치와 마요네즈가 둔탁하지 않게 섞였고 어딘가 익숙한 그 맛에는 잘게 다진 바질의 풋풋함이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이것만으로도 훌륭하건만 올리브가 색다른 풍미를 얹어준다. 한낱 핑거푸드지만 맛의 향연이 놀랍다. 살짝 허기가 있는 사람들에겐 더 없이 좋을 요기꺼리.








바삭하게 구워낸 바게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채소 다짐 소스(?)를 얹어냈다. 그 맛이 독특해 열심히 카메라로 내용물을 자세히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여의치가 않다. 파, 양마, 당근까지는 육안으로 알겠고 입으로는 살짝 고기 국물맛이 나는 것 까진 알겠는데 나머진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까짓 안주꺼리에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는건 아닌가 모르겠다. 그런가?..








산드라의 숨가쁜 설명이 끝난 뒤 모두들 주거니 받거니 와인을 나눠 마신다. 산드라의 특별 서비스를 포함해 이날 총 17병의 마개를 땄으니 한 사람당 한 병 이상씩의 와인을 마신 셈이다. 이것저것 골고루 맛은 봤지만 이러쿵 저러쿵 입을 놀리는 것이 부담스럽고 사실 그 느낌도 아직은 모호하다. 와인 맛의 각성도 쉽지 않고 그 경계를 구분하는 입맛의 기준도 아직은 없다. 꼭 그래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모호한 맛의 경계를 시시콜콜 논하진 않으련다.








수퍼마켓의 5유로 짜리 와인 앞에서도 손길이 주저되는 것에 비하면 이날의 지출은 턱없이 비싼 것이지만 단지 병입된 와인의 가치만이 아니라 제법 맛난 안주들과 공간의 독특함, 그리고 과묵했던 일행들과 어느새 잔을 부딪치며 왁짜하게 떠드는 재미에서 와인에(나아가 모든 알코홀에) 기대하는 궁극의 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그 묘미에 열광하는 이들은 때론 아래 포즈로 표현을 대신하기도 한다.








독일서 온 미녀 '카리나'와 독일사람처럼 생긴 이태리 청년 '패트릭'.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어섰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 올 때와 달리 갈 때는 분위기가 180도 돌변했다. 카메라 플랫쉬가 터지고 유쾌한 비명이 오가고 전염성 높은 웃음이 좁은 차 안을 흥건히 적셨다.  








와인에서 시작된 인연들은 파쳐빌로 자리를 옮겨 마침내 보드카로 좀 더 강렬하게 다져지고..

이곳에서 2차를 즐기고 3차까지 이어진 끝에 4시 무렵이 되서야 자리가 정리됐다. 오랫만에 달린 하루, 어쩐지 술이 점점 약해져가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술맛을 즐기는 입은 섬세해지고 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음식의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가급적 술과는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 옳지 싶다. 반주로 가볍게 즐기는 술은 식욕은 물론 음식의 맛을 더욱 돋궈주지만 어느 선을 넘어서는 그 순간부터 음식은 섬세한 맛의 결정체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씹어 삼키는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뭐, 경험으로 익히 아는 사실이다. 나도, 당신도.

술에 혹사당하는 입과 몸에 조금 미안함이 없지 않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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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이것이 있어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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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에 대한 단상. 재미로 읽으라. 동의해주면 고맙고.. )

이름하여 해장라면. K-mart에 드디어 고추장과 간장이 들어왔다. 그편에 너구리도 들어왔길래 몇 봉지 사다놓은 것 중 '한 마리'를 잡았다. 반찬도 없이 달랑 저거 한 냄비. 그래도 맛도 좋고 제 역할을 벗어난 임무까지도 훌륭히 수행한다. 이쯤에서 새삼 깨닫는 거지만 술자리의 진정한 완성은 역시 해장이다. 그것이 한 봉지 라면이 됐건 값비싼 생복 지리탕이 됐건 망가진 몸을 원래의 상태로 복구시키는 '의식'에서 술자리는 진정한 마무리가 된다.

그 의식의 '성지'가 한국만큼 발달한 곳도 없지 않을까? 콩나물국밥집, 북어국집, 올갱이국집, 선지국집.. 일일이 열거하는게 어리석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곳의 음주문화는 폭음으로 파열된 몸뚱이를 위한 '복구문화'가 그닥 발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 수 아래다. 물론 고급 위스키와 와인은 숙취의 부작용이 근본적으로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모든 사람들이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술도 아니고. 근사한 대문으로 들어가서 쪽문으로 나오는 느낌..

이점에 있어 해장문화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한다. 허나 우리모두 경험으로 알듯이 한국의 해장국집은 진정 '해장(酲)'하는 집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지난 밤의 상처를 치료하고 그리고 그곳에서 또 다시 새로운 상처에 몰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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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는 크게 몰타섬과 고조섬으로 나뉜다. 듣자하니 몰타섬에 사는 사람들이 주말이면 고조섬으로 놀러가는 반면 고조 사람들은 결코 몰타로 건너오는 일은 없다고 한다. 과장이 섞였을 얘기에 언뜻 배타적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아 살짝 경계도 가지만 놀러오는 사람들에게 해꼬지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아무렴!)  무엇보다 이미 그곳을 다녀온 다른 한국 친구들의 감상평을 듣자면 여행의 관점에선 몰타보다 매력적이라고 하니 몰타를 떠나기 전에 꼭 한 번 방문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실 학원 일정만 마무리되면 떠나기 전까지 이곳저곳 한 꺼번에 몰아 구경다닐 계획이어서 그날을 벼르고 있기도 하다.

고조를 아직 가보진 못하고 있지만 고조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는 한 번 다녀왔다. 이번엔 그곳에서 즐겼던(?) 음식을 사진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때는 2주 전이고 장소는 GOZITAN이라고 하는 식당이다. 눈치챘겠지만 '고지탄'은 고조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참고로 몰타 사람들은 '몰티즈'라고 부른다. 이곳은 한 마디로 고조사람이 고조음식을 파는 식당 되겠다. 간판도 그것을 강조한다.



간판은 몰타 국기에서 따왔고 섬문양과 오른쪽 글씨면 빼면 곧바로 몰타 국기가 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애초 몰타 국기는 적색과 흰색의 단순한 구성이었는데 2차 대전때 연합군에 가세해 싸운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국왕 존 6세가 '세인트 조지'라는 십자가를 내려줬고 그것을 국기에다가 새겨 넣었다고.. 아무튼, 전라도 어느 식당이 태극기를 간판으로 내걸었다면 좀 가기가 꺼려지겠지만 문화적 차이겠거니 하며 일단..

이날 GOZITAN에서의 식사는 김군 반의 친구인 알리시아가 2주간의 수업을 마치고 현재 살고있는 스페인 마드리드로 떠나기 때문에 작은 환송파티 겸 향토음식 한 번 먹어보자는데 의견이 모아져서 마련된 자리였다. 아래 여자가 알리시아 되시겠다.



50을 갓 넘긴 그녀, 여전히 젊을 때의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다. 오른 쪽은 역시 마드리드 사는 하비야.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고 퇴직하면 영화감독을 하겠단다. 틈만 나면 영화와 페드로 알모도바르에 대해 떠들길 좋아하는 그는 이날도 식사중 엄청 떠들었지만 무슨 이야긴지는 잘 못알아 들었다.  



첫 번째로 나온 것은 소스와 빵. 토마토를 진하게 조려낸 일종의 페이스트와 나머지 하나는 치즈의 풍미가 연하게 느껴지는 소스. 바구니에 빵도 담겨나왔으니 당장 허기진 사람들은 먼저 저걸로 속을 달래주면 되겠다. 맛? 글쎄.. 시간이 좀 흐른 탓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썩 맛나거나 특별히 남는 인상은 없다. 어쩌면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할 시도도 하기 전에 아마도 바로 다음 접시가 식탁에 올려져 관심에서 밀려난 것일 수도..



어떤가? 일종의 전채(Starter)인 셈인데 사실 처음에 접시를 접하고 주변을 빙 두루고 있는 과자에 살짝 놀랐다. '워터비스켓'이라 부르는 저 과자는 몰타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즐기는 비스켓으로 수퍼에도 한쪽에 봉지들이 쌓여 있고 그 맛은 참크래커 보다도 훨씬 건조하고 딱딱하며 별다른 맛이 없다. 말 그대로 물만 넣어 반죽해 구워낸 비스켓이다. 식당에서 저 비스켓을 접한 느낌은 전주 한정식집에서 느닷없이 쌀강정이 식전에 나온 느낌이랄까..  그래도 당혹감을 감추고 신기하다는 얼굴로 군말없이 먹는다.

앞의 붉은 소스는 역시 토마토가 주 재료고 진한 고기육수와 몇 가지 채소 및 향신료를 넣고 함께 쫄여 굳혔는지 간간하면서 재료들과 어우러지는 맛이 좋다. 특히 제법 느껴지는 매콤함 맛은 입안에 오랜 여운을 남겼는데 와드득 거리는 저놈의 워터비스켓이 아니라 가령 부드러운 바게뜨였다면 그 진가가 더욱 돋보일테다. 좀 더 연구해서 스프 따위로 내놓아도 훌륭할텐데.. (전통을 조금 덜 고집하는 것도 때론 손님에게 좋다)

가운데 생모짜렐라 치즈는 단단한 두부같은 질감에 맛은 평범하고 그 옆에 거무튀튀한 것은 파프리카를 말려 올리브유에 절여낸 것이 아닐까 추측되는 것으로 맛은 씁쓸하면서 다소 짜다. 그 뒤로 된장빛깔을 띄는 소스는 그야말로 된장을 연상시키는데 아니나 다를까 콩을 쑤어 반죽해 낸 음식이라고. 이 역시 고조뿐만 아니라 몰타섬 사람들도 즐기는 전통 음식의 하나. 그러나 그 맛은 별 신통함이 없다. 콩의 고소함도 잘 안느껴지고 우리 먹는 된장처럼 숙성의 맛도 아니고, 뭔가 시작은 했는데 그 결말이 뭔지 알 수 없는 '혼미건조'한 맛..  저 음식은 끝까지 저 모습을 유지했다.



리코타 치즈를 튀김옷을 입혀 튀겨냈다. 많이 익히면 치즈가 녹아 흐를텐데 이것은 제 형태를 유지했다. 뭐가 맞는 걸지 궁금하지만 일단 썰어 먹어본다. 씹히는 식감도 있고 제법 괜찮다. 고칼로리 치즈를 튀겨냈으니 칼로리 꽤 나가지 싶다.



메인을 생선과 고기 두 종류로 시켰는데 먼저 생선이 나왔다. 생선만은 아니고 보는 것 처럼 일반적인 해산물이 함께 요리되어 나왔다.  가운데 문어, 살짝 데친 것을 그늘에서 꾸덕하게 말린 뒤 이를 다시 짭짤한 소스에 조렸을 것으로 추측. 양념이 아니더라도 문어는 그 자체로 맛이 훌륭한 식재료다. 일전에 꾸덕하게 말린 문어를 그릴에 타지 않을 정도로 구워 단지 올리브유와 허브만을 뿌려 먹는 것을 TV에서 본 적 있는데 요란한 양념없이 즐기는 그 맛과 멋이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다. 이날 문어도 맛있었지만 양념을 줄여 좀 더 담백하게 즐기면 좋았을 터.

턱 낮은 팬에 버터 두루고 화이트 와인 냅다 뿌려가며 쎈 불에 조렸을 홍합, 그 맛이 문어보다 좋다. 그 자체로 뚜렷한 맛을 내는 식재료는 요란한 양념을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홍합이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저 뒤로 오징어도 보이는데 그 양이 턱없이 적어 어느 순간 보니 남은게 없더라는.. 그리고 접시의 가장 든든한 맡형격인 생선. 그 이름은 모르겠으나 맛은 서해안에서 잡히는 부서와 거의 같다.(그리고 보니 생김새도 비슷하다. 부서는 조기 대신 제삿상에도 자주 올라는 생선으로 짧은 시간 구워내면 퍽퍽한 뽀얀 살이 감칠맛이 좋으며 밥반찬으로도 으뜸)

특별한 양념은 없고 다소 싱겁게 간한 뒤 화이트 와인 뿌려 오븐에서 익혔을 것으로 추정. 저 생선을 정확히 4등분 해 4명이 나눠 먹는다. (이날 인원은 뒤늦게 합류한 강사까지 포함해 총 9명)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 능숙한 솜씨로 생선을 손질하는 훌리오. 그는 여자친구 스텔라와 함께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왔다. 맞은 편 대머리 총각은 아까 경제학 교수의 제자이자 친구이자 직장 동료라고..



요령은 간단하다. 먼저 생선 껍질을 살살 벗긴 뒤 가운데 뼈를 따라 나이프로 슥슥 편을 가른다. 그리고 얌전히 살을 떠내 접에서 담으면 그만. 요렇게..



4명이 나눠 먹으니 그 양은 보잘 것이 없다. 양념 또한 특별한 것이 없으니 맛은 평범한 생선의 맛. 건조하고 햇살 좋은 이곳의 환경이면 우리처럼 생선을 말려 다양하게 조리할만도 한데 고조에선 그런 요리법은 없는 듯 하다. (유럽 전체가 없지 싶다) 단지 저런 식의 살점을 즐기는 것이 이곳의 생선요리라면 가자미는 대단히 환영받을 생선일 듯.
 


또 다른 메인인 고기요리. 먹는데 다소간의 용기가 필요한 비주얼로 담겨 나왔다. 접시에 담긴 동물은 세 가지. 양, 닭, 토끼(혹은 고양이). 솟은 다리의 주인공이 토끼인데 항간의 말로 고양이를 대신 쓰는 집도 있다고 한다. 몰타엔 고양이가 정말 많다. 설마.. 하며 토끼라 믿고 먹어준다.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은 토끼 고기라면 인상부터 쓴다. 솟은 저 다리는 누구도 건들지 않고 김군은 살점이 제법 두둑해 보이는 몸통 부위를 얌전히 가져다 살금살금 썰어 먹는다.

맛은 닭고기와 흡사하다. 육질도 닭고기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결이 있고 다만 퍽퍽하다. 비법 양념까진 아니고 몇 가지 재료를 섞어 양념을 입힌 것으로 보이지만 특별한 맛은 없다. 다만 닭고기와 양고기의 경우 짭쪼름한 양념맛이 배어 있어 토끼고기에 비해 그런대로 먹을하다.



접시를 돌리니 토끼 다리와 몸통에 가려있던 닭고기와 양고기 등장. 촉촉한 양념이 육즙과 함께 묻어난다. 그러나 우리 입맛에서 보자면 여전히 아쉽다. 토끼고기는 저대로 간다면 이 섬나라에서만 즐기는 '괴상한' 음식으로 남지 싶다. (물론 토끼고기를 먹는 나라는 꽤 많다. 영국도 먹는다. 그 요리법이 어떠할지는 모르겠지만)



후식의 등장. 호두맛이 나는 아이스크림과 아이스크림같지 않게 촉촉한 과자를 뭉쳐놓은 듯한 아이스크림, 그리고 페스츄리의 저 어디쯤으로 추측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삼각형의 저것들. 한결같이 달고 맛이 좋다. 후식은 터키가 첨단이라는데 그곳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일전에 터키에서 온 여성에게 '터키가면 뭘 꼭 먹어야 하느냐'고 묻자 4가지를 적어줬는데 그 중 3가지가 후식이었다.

앞서의 포스팅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몰타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충돌이 빈번했던 섬이다. 한때 이슬람의 영향아래 있기도 했으니 당시의 양식은 음식에도 남아있음이 분명하다. 터키가 쓸만한 것을 남겨놓고 갔다.



와인 싫컷 마시고.. 이날 밥값의 절반 가까이를 와인이 차지했다. 몰티즈 와인이지만 포도는 이태리산을 쓴다고.. 몰타는 와인용 포도가 기후탓에 잘 자라지 않는다. 넉 달째 비를 못보고 사는 나라니..



이 사람이 바로 Gozitan, 식당의 주인이다. 반쯤 감긴 눈, 걸걸한 목소리와 억센 팔 뚝, 지중해의 억척스러움이 잔뜩 뭍어난다. 벽 한쪽 세워져 있던 GOZO 화보책을 꺼내들고 열심히 넘겨가며 고조 자랑에 몰두한 뒤 갑자기 기분이 동했는지 일행들에게 칵테일 한 잔씩을 공짜로 돌리는 인심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5병이나 비운 와인도, 막판의 공짜 칵테일도, 워터비스켓을 시작으로 이어진 수분없는 '뻑뻑한' 식사의 목맥힘을 시원하게 뚫어주진 못했다. 이방인들을 사로잡는 특별한 맛은 없었다. 우리 모두는 고기를 많이 남겼고 그런 용서 받지 못할(?) 음식에 대한 예의는 1인당 32유로(한국돈 47,000원)라는 예상치 못한 금액으로 엉뚱한 보복을 가해왔다. 이것이 비단 우리 두 사람만(이날은 강양도 동행)이 느끼는 억울함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고조의 음식이 이날 식탁에 올라온 것만은 물론 아닐테다. 보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엄선된 음식들이 제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테다. 그러나 우리로선 '못찾은 맛'을 다시 찾아나설 용기도 없고 꼭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고조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



인근 Bar로 이동해 목 좀 축이고.. 그리고 모두들 각자의 집으로..
(냉장고에 뭐 꺼내먹을게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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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만나는 외국 친구들의 경우 한국은 물론 수도가 서울이라는 정도는 거의 다 알고 있다. 간혹 남한에서 왔냐 북한에서 왔냐를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묻곤해서 그게 조금 놀랍기는 한데 그럴 때 다른 옆에 한국인이 누군가 있으면 그는 남한에서 왔고 나는 북한에서 왔다고 농을 치기도 한다. 그러면 그걸 또 믿는다. 엉뚱한 피해를 나을까 싶어 서둘러 정정해 주지만 어쩜 이렇게 모를까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

근데 가만보면 이런 차이는 우리가 그들보다 남북한 간의 관계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정확히는 일방적인 것만)을 알고 있기 때문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우리보다 남북간의 문제를 좀 더 편견없이 바라본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지나치도록 폐쇄적으로 보이는 북한이지만 이들은 우리와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이 폐쇄적이냐 아니냐는 잠시 접어두더라도 불온서적을 선정, 발표하는 오늘날 한국사회(정확히는 국방부지만)는 북한 못지 않은 폐쇄성을 나타내는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명천지에 읽어선 안되는 책을 정책으로 발표하는 나라, 교실에서 만나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아직 꺼내진 않았지만 이런 짓을 남한 체제의 우월성이라고 믿는 한나라당 사람들을 이들은 비웃을 것이 분명하다.

동생이 부쳐준 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이번 주 즈음에는 오지 싶다. 그 가운데 '불온서적'은 없지만 불온한 상상력을 불어넣어줄 책들임엔 틀림없다. 책은 대부분 요리와 음식, 유럽의 문화에 관한 책들인데 책들 가운데에는 정부관료와 한나라당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갖은 포즈를 잡아가며 집어먹던 미국산 쇠고기, 나아가 모든 육식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내용의 책도 포함돼 있기도 하다.

가령 '죽음의 밥상' 같은 책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향한 정치인들, 또는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적 맹신이 어떤 진실을 숨기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다음은 알라딘에서 퍼온 내용.

소들이 먹는 이상한 음식이 옥수수만은 아니다. 유럽에서 광우병이 중대 문제로 떠올랐을 때, 그것이 연관된 질병에 걸린 양의 골분(骨粉)을 소에게 먹인 결과임이 알려지자 대중은 경악했다. 대체 언제부터 소가 육식동물이 되었단 말인가?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 책을 쓰고 있는 지금조차도 소에게 젤라틴, ‘접시 쓰레기(레스토랑의 고기 요리 찌꺼기)’, 닭고기와 돼지고기, 닭장 쓰레기(닭똥, 닭 시체, 닭털, 먹다 남은 모이 등), 그리고 소의 피와 지방이 포함된 사료를 주는 것이 합법이다.

그리고 먹다 남은 모이 중에는 소에게 직접 주는 것은 불법이지만 닭에게 주는 것은 합법인 소고기와 뼈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97쪽, '3. 고기와 우유 생산 공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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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을 당시, 무화과라면 그동안 말린 것만 먹어왔다. 대략 십 몇년 전, 룸살롱에서 일했던 어떤 아는 형이 '안주꺼리'라며 가져다 준 것이 무화과였고 그때 무화과를 처음 맛봤다. 쫄깃한 식감도 좋았고 몸에 좋은 설탕을 쪼려 엉긴듯한 과육도 달콤하니 별스러웠고 씹을 때 마다 톡톡 터지는 씨알은 먹는 재미마저 안겨줬다. 세상에 이런 먹거리도 있구나 하고 신기해했는데 어느덧 그때를 떠올리며 그것의 원조라 할 말리지 않은 무화과를 이곳에서 싫컷 맛보고 있다.

이곳에서 맛보는 무화과는 자두만한 크기로 갓 따내 촉촉하다. 껍질은 연두색을 시작으로 익어가면서 검은 자줏빛을 띄는데 정열적인 색감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여타 과일에 비해 썩 매력적인 모습은 아니다.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는데 그냥 씻어서 껍질째 먹는다. 잘 익은 놈은 특유의 단내를 살짝 풍기기도 하고 손으로 만지면 말랑말랑한 촉감이 식욕을 돋궈준다. 오래 둬서 너무 익어버린 것은 당도도 훨신 높고 껍질도 연해지며 이리저리 구르다 터져 결국 끈쩍한 과즙이 흘러내리기도 한다. 그 느낌이 썩 좋지는 않지만 그 맛은?..  아~주 좋다.



>> 볼품없는 모습, 그러나 한 번 맛을 보고 나면 생각날 때 마다 입안에 침이 고이게 된다. 말캉하게 씹히는 첫 식감이 입안을 즐겁게 하고 곧 혀를 열심히 움직여 바사거리며 터지는 씨알을 찾아내 톡톡 씹는 재미도 은근하다. 키위의 씨알보다 조금 더 바삭한 느낌.

영어 이름은 Fig라고. 학원 수업시간에 선생으로부터 '몰타 역시 지중해에 속한 바, 무화가가 지천으로 널려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간 학원을 오가며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남의 집 담너머의 그 나무들이 무화과 나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실제 이곳에는 무화과 나무가 많다. 심지어 지난 번 자물통 고장으로 집에도 못들어가고 길거리를 헤맬 때 담을 넘어 자라고 있는 무화과를 길에서 직접 따먹기도 했다. (주인이 목격했다면 성을 냈을까? 알 수 없다)

익어서 떨어진 무화과는 때론 사람들의 발에 밟혀 개똥과 더불어 길바닥을 시커멓게 더럽히는 주범의 하나기도 하다. 지난 번 골든베이에 놀러갔을 때 언덕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던 것 역시 무화과였다. 아마 지금부터 가을사이에 골든베이의 언덕에 간다면 군락으로 자라고 있는 무화과를 두려운 눈치 살피지 않으면서 맘껏 따먹을 수 있을테다. 물론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이 비단 우리만은 아닐테니 그 기회의 확률도 줄어들겠지만..



>> Golden bay 언덕의 무화과 군락. 이미 동작빠른 누군가 다 걷어가지 않았을까.. 흑..

무화과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지자 역시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에 얽힌 얘기들이 속속 튀어나온다. 그리스에서 신들이 뛰어놀았다던 시절, 술의 신 바쿠스(디오니소스)는 무화과를 가까이 하고 즐긴 덕에 특유의 정력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고 반면 기독교에선 사과와 더불어 원죄의 상징으로 묘사되곤 한다.

무화과 역시 사과와 더불어 선악과(善惡果)의 하나였던 모양인데, 아무튼 이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요즘엔 '하와'라고 부르는데 어찌 부르건)가 그 순간 육체의 부끄러움에 눈뜨면서 서둘러 사타구니를 가리게 되고 이때 사용된 잎이 무화과 잎이다. '어렸을 적 바라보던 그림의 그 '부분'을 안타깝게 가리고 있던 몹쓸 이파리가 그것이었었군..' 이런저런 질곡을 거쳐 무화과는 다산의 상징이자 욕망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는데 룸살롱과 무화과의 만남이 어쩐지 우연만은 아닌 듯 싶다.  

이런 이야기도 있단다. 1935년, 나운규가 감독한 영화의 제목이 또한 '무화과'라고. 사랑하던 여인이 떠나자 사내는 절망에 젖어 지내게 되고 뒤늦게 여인이 돌아왔으나 사내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무화과같은 사내가 되어버렸다는, 오늘날 보자면 참으로 유치한 제목과 설정이지만 당시로선 꽤나 세련된 은유였을 터. 실제 먹거리로서가 아닌 관념으로서 소비하는 무화과는 그 자체로 이국적인 매력을 풍겼을테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 영화 '무화과' 사진.

이밖에도 무화과에 얽힌 숱한 이야기가 있지만 다 비슷비슷한 동네의 이야기들이다. 가령 클레오 파트라가 좋아했던 과일이 무화라거나.. 그녀가 어디 무화과만 좋아했겠는가만은.. 앞으로 지중해 언저리를 돌아다니다 주어듣게 될 재미난 얘기가 있으면 그때 더 소개키로 하고.

근데 무화과가 꽃 없이 맺히는 열매라는 사실을 모르는건 아닐 터. 기실 무화과는 그 자체가 열매가 아닌 꽃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뭐가 옳건 그건 종(種)학자들이나 관심가질 얘기고 우리는 맛있는 무화과만 즐기면 되겠다. 국내에서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무화과를 재배하나보다. 근데 가격이 만만찮다. 인터넷 가격을 보니 4kg이 45,000원. 1kg에 11,000원인 셈인데 이곳에선 같은 무게를 3,500원 정도에 사먹는다. 1/3가격에 먹는 셈.



>> 말랑말랑한 과육이 보는 것 만으로도 식욕을 돋군다. 비주얼을 떠나서 무화과는 실제로 디저트보다는 애피타이저(혹은 Starter)로 애용된다고. 많이 드시라. 그 말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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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가 말했다.

"나 없이 잘 들 살았냐? 외국물 먹으니 좋다고 떠들더니만 이제 나 없이도 살것제? 하긴 내가 뭔 힘이 있간디.. 지지리도 못생겨서 냄새나 피우고 사람 망신이나 주고 당기는 내가 반가울리가 없겠제.. 그냥 어찌 지내나 구경 한 번 온거시여. 아따~ 몰타 날씨 좋구만. 그럼 계속 들 살아 보드라고, 난 이제 갈랑께.."

"아따 형님 뭔 섭섭한 소리를 그리 다 하씨요?.. 형님 그리움에 밤을 지샌 적이 한 두 밤이 아닝게로.. 퍼뜩 엉덩이 붙이고 앉으씨요. 아따 밖에 뭐하드냐? 언능 형님에게 무화과 실한 놈으로 꼭 짜서 주스 한 사발 드리라잉.. 그나저나 먼길 오시느라 고생했소. 아따 형님 냄새가 장난이 아니구마이.."

"좀 심하제? 어쩌간디? 태생이 이꼬라지로 나부렀는걸.."

"아따 그래도 반갑소잉~ 하기사 형님은 냄새가 좀 나야지라.. 거 며칠 전 독일 베를린이라고, 형님 들어보셨는가 모르겄는디, 아무튼 거기서 온 쬐만한 꼬맹이가 있었는디 난 당최 못알아 보겠소.. 아니 어찌 형님의 탈을 쓰고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요?"

"깡통애 든 아 갸 말하는갑네. 갸는 어쩔 수 없으이. 그래도 그 꼬맹이라도 만나는게 반갑다는 사람 세상에 널렸제. 미원에 푹 담기고 뭣 보댐도 가열을 해서 김치찌게마냥 홀라당 익혔뿔고.. 그게 장기보관땀시로 그런다제? 불쌍한 아이여.. 쯧쯧.. 그나저나 내는 소식도 없고 해서 몰타 사람 다 돼부렀는가 싶었제. 몸은 깜둥이가 다 돼부렀구먼. 여기 햇살이 그리 따가운당가?"

"말 마씨요. 딱 한 시간만 홀딱 벗고 누우면 씨뻘겋게 익업뿌린당께요. 형님도 조심하씨요. 그나 형님은 물 못들어가시겄네. 하기사 비싼 형님이 그깟 짠물에 몸 담그실 일 뭐 있간디요? 내 이미 형님 위해 좋은 물 구해놨소. 형님 멸치랑 친하시제? 내 금마도 불러놨응께 오손도손 얘기나 나눔시로 피로나 푸씨요. 밖에 뭐하드냐? 언능 형님 물 올려라잉~"

"아따 우리 동상 철저하구마잉, 이봐 동상, 자네 알제? 난 뜨거~운 것이 좋당께로~"



"흐미.. 피로가 다 풀린당께로.. 거 비행기란거 탈 것이 못돼부러.. 동상 뭐하는가? 자네도 들어오지 않고?"

"아따 형님, 지는 밥상 차려야지라.. 형님 오랫만에 보니 동상 맘이 참 기쁘요. 그럼 푹 쉬씨요~"


(깜둥이 - 흑인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비속어의 하나. 하지만 본문에선 그 의도와 관계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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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의심은 있었다. 대개의 한국음식, 특히 김치의 경우 그것에 목매다는 유난스런 한국인들의 입맛이라는 것이 어쩌면 미디어의 지나친 의미부여로 과장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 말이다. 그 의심은 실제 넉 달째 해외생활중인 우리 자신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증명이 됐는데 김치 없어도 큰 문제없이 살더라는 것.

수퍼에 가면 비록 낯설긴 해도 한국에서는 감히 구경도 못할, 그리고 평생먹어도 다 먹어치우지 못할 식재료들이 가득가득 쌓여있다. 낯선 모습의 채소는 물론이고 그것을 가공해낸 식품들, 수퍼 내에 별도의 매장으로 운영되고 판매되는 소시지는 그 가지 수를 세고 앉은 것이 바보스러울 정도로 많다. 치즈도 마찬가지여서 먹음직스럽다기 보다는 아름답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진기하고 다양한 치즈가 진열되어 있다. 이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맛보기도 바쁜 마당에 김치는 무슨 김치.



>> 일반적인 치즈 매장의 모습. 왠지 먹기가 아깝게 느껴진다.

며칠 전 독일여행을 다녀온 학원친구(한국인)는 우리에게 선물을 하나 내밀었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뻔데기 깡통과 똑같은 사이즈의 캔, 거기엔 김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주먹보다 작은 캔에도 김치를 담아 파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뭐 먹을 것도 별로 없어보이는 것을 수고롭게 사왔나 하는 '못된'생각도 들었다. 먹고싶다는 생각은 저 뒤 어디쯤에 있었다. 실제 먹어본 맛은 강한 미원 맛 사이에서 김치찌게의 맛과 시큼한 맛이 대충 섞여 있었다.

만약 K-mart에서 저 김치깡통을 판매한다면 우린 사다 먹을까?.. 'No'.  비싼 것도 문제겠지만 이제 어느 정도 미원 맛으로부터 벗어나 제법 건강해진 입맛을 해치고 싶지는 않다. 그 맛을 탐하느니 그보다는 차라리 무거워도 이곳의 달디 단 수박을 사거나 한국에선 여간해선 맛보기 힘든 갓 따낸 무화과를 사먹고 말지. 결국 김치 깡통 역시 과장된 맛의 추억의 한 상징이라는 나름의 의심을 은근히 부추겼다.



>> 지중해의 특별한 산물 '무화과'. 이곳 수박은 일조량이 많아 당도가 아주 높고 껍질도 얇은게 특징. 저기 이상하게 생긴(?) 김치가 보인다.

어제 아침 10시 15분. 우리 플랫의 막내네 집에서 소포로 보낸 김치가 집으로 배달됐다. 그 전에 이미 막내를 통해 '어머니가 김치를 보내셨데요'라고 들은 바 있었으니 2주만에 도착한 것이다. 배달 과정에서 발효돼 터져버려 결국 김치는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김군의 예상을 깨고 김치는 무사히 도착한 것이다.

김치는 10kg에 가까운 제법 많은 양이었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었다. 상자는 부풀어 있었고 뚜껑을 열기 위해 테이프를 뜯기 시작했는데 다 뜯기도 전에 뚜껑을 밀어 제치며 김치를 담은 두터운 비닐이 터질듯이 부풀은 모습으로 튀어나왔다. 그 순간 시큼 매케한 냄새가 확 피어올랐다.  (곧 나가야 해서 우선 여기까지..)



>> 발효된 김치 힘!은 철 상자도 우그려뜨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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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나와 있는 모든 한국인들은 늘 허기지다. 뜨끈한 국물에 밥 가득 말아넣고 묵은 김치 북북 찢어가며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입맛이 스프나 시리얼 따위에 치이다 보면 숟가락은 점점 무거워지고 살은 여위어간다. 그러니 한국인 몇 만 모이면 먹고 싶은 한국음식 이야기로 상다리가 부러져 나가곤 하는데 해외생활 해본 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경험일테다.

이곳 몰타에서 같은 한국인들과 가끔 술 마시는 와중에 성공할 메뉴가 무엇인지를 놓고 재미삼아 떠들곤 하는데 언급된 내용 가운데 가장 성공확률이 높은 메뉴를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김밥. 흰 쌀밥 자체만으로도 건강으로 받아들이는 서구인들에게 형형색색의 채소로 무장된 김밥은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비롭고 아름답다. 거기에 건강과 맛까지 갖췄으니 인기 0순위가 아닐까? 여름으로 치달을수록 늘어만 가는 것은 관광객. 집에서 먹던 식습관을 이곳까지 와서 고집피울 이들은 많지 않을테다.

김밥은 특정 재료 하나를 부각시켜내기도 쉽고 그것이 또한 맛을 지배하기도 쉬워 입맛이 고급이 아닌 사람도 김밥의 매력에 금방 빠질 수 있다. 나름 생각해본 김밥의 필살기는 연어 김밥. 길게 썰은 훈제 연어를 통으로 올리고 채소를 무순 등으로 최소화해 깔끔함을 높인 것이 포인트. 

속재료를 좀 더 다양화하고 그 정보를 메뉴판에 재치있는 그림과 더불어 설명해 놓으면 입맛 까다롭고 괴팍한 서구인들, 특히 동양에서 온 낯선 식재료에 겁부터 집어먹는 이들에게도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음식이 될 것이다. 물론 이들을 사로잡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



>> 몰타에서 처음으로 도전했던 김밥. 부족한 재료로 급하게 만들었던 탓에 맛도 형편없었다. 역시 단무지 빠지면 맛은 심각해진다. 특히 냉동고에 오랫동안 보관한 김에선 비린내가 난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 반드시 살짝 구어야한다.

두 번째 메뉴는 양념치킨. 몰타 제 1의 유흥가 파처빌은 매일 밤은 물론이지만 특히 주말 어느 순간에는 인구밀도가 지구 최고를 기록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술도 고프고 이성도 고프지만 배도 고프다. 이들이 가장 손쉽게 찾는 메뉴는 단연 피자로 여기저기 들고 다니며 먹고 앉아서 먹고 질질 흘리며 먹고 그런다. 이미 예닐곱 피자 집이 성업중이지만 우리가 보기에 맛과 질이 모두 거기서 거기다.

그렇다면 한 입 크기로 튀겨낸 닭강정을 달콤한 양념에 무쳐 땅콩가루 뿌린 뒤 종이컵에 긴 이쑤시개 하나 꽂아 판매하면 어떨까? 이건 아무리 비관적으로 생각해도 대박 예감이다. 살짝 매콤한듯 하면서 달콤하고 치킨의 바삭함과 땅콩의 고소함은 분명 치즈와 토마토 소스에 혹사당한 입맛에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 양념치킨은 분명 파처빌의 야식문화를 독점한 피자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마력의 맛을 갖추고 있다.

높은 칼로리 앞에 주저할 입맛도 있겠지만 일단 파처빌에 왔다면 오늘 한 번 제대로 망가져 보겠다는 각오를 다진 사람일테니 이건 고민꺼리도 안된다.


 
>> 양념치킨의 가까운 사촌 깐풍기. 몰타에서 지금까지 세 번에 걸쳐 해먹은 인기 만점 요리다. 사실 깐풍기도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메뉴지만 손이 좀 많이 간다는 한계가..

세 번째는 돈까스. 이게 거의 핵폭탄이다. 파처빌을 중심으로 모여있는 학원가에는 언제나 굶주린 젊은 이들로 넘쳐난다. 거리에선 10대에서 20대의 혈기들이 웃통까지 까 제끼고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봐야 이들이 손에 쥐는 건 넙대대한 피자 한 조각이 전부. 우리가 보기에도 여간 안타까운게 아닌데 하물며 먼 곳으로 아들 딸 공부보낸 부모의 심정은 오죽하랴.

그래서 부모님의 마음으로 만든 음식, 돈까스^^. 한국에선 돈까스 하나로 빌딩을 세우지 않던가! 그 강력한 맛 한 방이면 파처빌의 길거리 외식계는 그야말로 초토화되지 않을까?

다만 한국과 달리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골고루 섭취하는 이곳이다 보니 돈까스의 주재료인 등심은 한국보다 다소 비싸다.(사실 한국의 돼지고기 등심가격이 터무니 없이 싼게 이상한게지..) 손바닥보다 조금 넉넉한 사이즈로 튀겨낸 돈까스를 큰 칼로 탕탕 내리쳐 먹기좋은 크기로 잘라 일회용 종이접시에 올리고 각종 과일로 우려낸 수제 소스를 얹은 뒤 밥과 샐러드를 가니쉬로 곁들여주는 것으로 끝. 원하면 감자튀김을 곁들일 수도 있다.

굶주린 이들이 보는 앞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퍼포먼스, 특히 돈까스를 탕탕 내리치는 장면은 도네르 케밥을 썰어내는 모습을 지켜볼 때와 비슷한 식욕충동 효과가 있지 않을까? ㅋㅋ



>> 일본에서 맛봤던 돈까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판매하면 몰타에선 재미 못볼 듯. 소스는 훨씬 더 줄이고 상큼한 샐러드를 곁들인 모습을 상상해보시길.. 더불어 맛도..

혹시 해외에서 적은 자본으로 외식사업을 해보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 메뉴를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팁 하나를 소개하자면 곧바로 외국인들을 상대하기 보다는 한국인이나 동양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이들이 열광하면 결국 현지인들도 따라오기 마련일테니. 그나저나 서울에서 종종 즐기던 분식집 열무냉면과 돈까스, 이 환상적 궁합을 다시 즐길 날은 언제일지..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