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Korea 160409~2009. 10. 22. 00:31
(얼마나 성실하게 쓸지는 모르겠지만 식당 정식 오픈일까지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을 요약해 정리해두려 한다)

잿빛의 시멘트살을 드러낸, 지금은 볼품없는 공간이지만 이제 며칠 후면
푸근한 불빛과 구수한 음식냄새가 가득 넘치는 식당으로 변모하게 될 곳.
채 10평이 안되는 이 작은 공간까지 오는데는 적어도 1년 반이 걸렸다.

작년 3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4년간 살던 오피스텔도 정리하고
한푼 두푼 모은 돈을 챙겨 지중해로 훌쩍 날아갔다.
요리를 배울 생각이었지만 젤 먼저 배운것은 영어였고 이를 위해 도착한 곳은 섬나라 몰타.
시칠리아와 가까워 기후와 삶의 감성은 이탈리아를 닮은 반면  
한때 영국 식민지여서 그 나라의 제도가 곳곳에 베어 있는 이곳에서
6개월간 지내며 결과적으로 수영만 배웠다.

40평짜리 집을 헐값(한국과 비교해)에 임대해줬던 주인과 작별을 고하고
드디어 이탈리아로 건너왔다. 그게 작년 9월 말.
제법 부촌이라는 베로나를 시작으로 밀라노, 베르가모, 토리노, 베네치아, 피렌체, 뻬루쟈 등등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얘기하고 얻어먹고 요리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품었던 파스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이 시간을 거치면서 상당부분 해소됐고 어줍잖은 환상은 김빠진 카스처럼 꺼져갔다.
그리고 올해 4월,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의 따사로운 봄볕을 한없이 아쉬워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기까진 다 아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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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창업에 앞서 서툰 실력을 좀 다듬어 볼 요량으로
한동안 요리학원을 다녔다. 사실은 가구 및 소규모 인테리어 기술을 배워
식당 내부를 직접 꾸며 인테리어비를 아껴보려는 욕심이 큰 동기였는데
나라에서 거의 공짜로 가르쳐주는 과정이 있는 곳은 경상남도까지 내려가야 해서 포기했다.
결국 몇 군데 요리학원을 골라 한곳을 선택했는데(역시 거의 공짜) 
교육내용에 실망만 하고 한 달만에 집어 치웠다.

이것도 대략 아는 이야기.

다만 같은 정부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과제빵과정을 선택해 수강중인 강양은
비교적 잘 짜여진 커리큘럼과 성실한 학원측의 교육으로
그 실력이 일취월장 발전해가고 있다.
(코딱지 만한 가게지만 직접 식사빵을 내는 식의 고집과 자부심은 우리의 최대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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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 떠나기전 살았던 동네가 일산.
한 4년 살다보니, 특히 주말마다 상권을 휘젖고 다니며 밥먹고 술마시다 보니
 나름 자리를 보는 안목이 생겼고 그 확신을 믿고 처음엔 일산쪽에 가게터를 알아봤었다.
서울보단 아무래도 저렴하겠지 하는 기대도 있었는데 웬걸,
서울 뺨치는 가격이다.
15평 채 안되는 공간이 권리금 4천만원에 보증금 2천, 월세 150. 
 유사업종 포화로 제살깎아먹기식 경쟁이 치열한 이곳의 가게세가 이렇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그럼에도 보름이 멀다하고 새로운 가게가 간판만 바꿔달며 오픈하는 모습 또한 참으로 기이하게 느껴졌다.

망해가는 고깃집을 보여준 어느 부동산 아줌마와의 재밌었던 대화 한 토막,

"무슨 식당 하시려고?"
"음.. 양식당이에요"
"아~ 돈까쓰. 이 골목에 그거 하면 참 잘될꺼에요. 여기에 돈까스집이 없어"
"아 네.."


ㅋㅋㅋ
보신탕집이라고 해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을꺼라는건 두 말하면 잔소리.

몇 군데 더 알아봤지만 기대를 건 일산은 결코 싸지 않았다.
서울에 비해 역시 유행이나 그 감이 떨어지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비교적 살기좋은 환경을 갖췄고 4년간 재밌었던 추억의 흔적이 여기저기 뿌려져 있는
이곳에 당장 비비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걸 깨달으며
버스로 빠져나오면서는 내내 기분이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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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 후,
직사광선이 무척이나 뜨겁던 여름 어느날 오후에 홍대 일대의 부동산을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그리고 며칠을 더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발견한 곳이 바로 지금의 이곳.


"요 옆에 가면 철물점 있어요. 거기가 지금 나와 있습니다"
"몇 평에 얼만가요?"
"10평이 안되는데 권리금 2천에 보증금 1천, 월세 1백이에요"
"그렇군요.. 근데 저희는 식당할껀데 철물점에서 권리금을 받나요?"
"지난 번에도 어떤 사람이 소주집을 하겠다면서 1천5백을 제시했는데 돌려 보냈죠"
"그렇군요.. 가게를 볼 수 있나요?"
"그냥 지나가면서 밖에서 슬쩍 보세요"


지나가면서 슬쩍 안을 들여다봤다.
잡다한 철물재가 두서없이 쌓여있고 그 너머로 한창 TV를 보고 있는 중년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물건이 가득 들어차서인지 가게는 한 눈에 보기에도 좁아보였다.
뒷모습만 보이는 사내에게선 어떤 괴팍함, 고집스러운 분위기가 은근히 느껴졌다. 
그나마 위안은 철물점 바로 옆 같은 평수에서 장사를 막 시작한 작은 북카페였는데
같은 평수와 공간이라고 하니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조립본 결과 사이즈가 나온다는 결론을 얻었다.

당장 자금을 확보한 것도 아니건만 
이미 철물점은 우리꺼라는 애착이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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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과정이 궁금한 이들은 나중에 가게에 오셔서 들으시길..

다만 지금 현재까지의 몇 가지 상황을 정리하면,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일부 벽을 털고 바닥을 높이고 하는 등의 공사가 진행되야 하므로
이를 위한 도면이 그려지고 있는 중이고 목요일 중으로 마무리되면
금요일부터는 망치질소리가 울려퍼질 것 같다.

주방기구는 제품과 구매단가 확인작업이 약 80% 정도 마무리됐고
중앙시장에서 가격을 잘 뽑아 줄 업체만 만나면 될 듯.

어제 용두동의 한 제과제빵기계업체를 찾아 매장에 전시된 오븐을 뒤졌는데
스페인제 중고 오븐을 점찍어 뒀다.  300만원.
380V의 3상 전기를 사용하므로 전기증설은 기본이고 그 비용만도 얼추 100만원이 넘을 듯 싶다.
일반 가정에 기본 공급하는 전기용량이 5Kw라는데 저 오븐만 최대 12Kw.
결국 적어도 20Kw까지는 증설을 해야하는 상황.

디테일한 내부 인테리어를 제외하고 각종 집기를 들여놓을 수 있는 시기는
아마도 내주 중반 이후가 될 듯.
금요일 저녁에는 주방에서 불을 쓸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사실상의 오픈일이 아닐까?^^)

볼로냐에서 만난 최경준君이 내년 봄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우리를 돕기로 했다.
그곳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쉐프 마르코 파디가의 두터운 신임아래 
2년간 요리를 배운 경준이는 올 봄,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이젠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주 지긋지긋해요"

 
비록 짧으나마 우리와 함께 하는 동안은 지긋지긋하지 말아야 할텐데..


(창업일기는 계속..)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09. 6. 30. 12:15



게이코. 한자로 풀면 경자(敬子)가 되니, 우리는 그녀를 때론 '경자'라고도 부른다.
지난 달 말경에 게이코가 한국을 다녀갔다. 
동경에서 약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몰타에서 영어를 배우는 동안 가까워졌다. 

차분한 성격에 술도 잘 마시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해 
맥주와 와인을 끼고 살았던 우리와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술자리를 오래도록 지킬 줄 알고 때론 속내도 솔직하게 털어놓을 줄 아는 털털함이 있어
주변의 다른 한국 친구들로부터도 인기가 많았다.

지난 9월 말, 우리가 몰타를 떠난 2주 후에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이던 게이코는
당시 엔화의 고공 행진으로 인한 금전적 횡재를 뿌리치지 못하고 체류를 더 연장해 
지중해의 저렴한 맥주와 와인을 양껏 마시다 귀국해 
환율의 직격탄을 맞고 고통에 신음하던 주위의 한국인들로부터 
부러움을 한몸에 사기도 했다.  

일본에 불어닥친 한류의 영향에 게이코도 결코 예외는 아니지만
다행히(?) 욘사마가 아닌 막걸리와 '찌지미', 김치를 좋아한다고 해서 우리를 어찌나 안심케 했는지..
한국에 오면 뭐가 젤 먹고싶냐고 물으니 뜸도 안들이고
"간장게장"
이라고 외친다.


간장게장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해서 어느 땐가 맛 볼 기회가 있었고 너무 맛있었단다.
해서 이왕 한국에 간다면 본토의 맛을 경험하고 싶다는게
그녀가 주저없이 간장게장을 외친 이유. 

허나 한국에 오면 어디 먹을게 간장게장 뿐이겠나?
비싼 음식이 아니더라도 저렴하고 맛도 뛰어난 한국의 맛을 굳이 열거할 필요는 없다.
허나 3박 4일의 짧은 일정, 그나마도 우리랑 함께 다닐 시간은 고작 이틀뿐이어서
이것저것 미각의 즐거움을 맘껏 누리는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늦은 저녁,
공항에서 게이코를 픽업한 뒤 명동의 한 작은 호텔에 짐을 던져놓자마자 향한 곳은
종로 시사영어사 뒷편의 경북집.
24시간 운영하는 탓에 술을 찾아 불꺼진 도심을 헤매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지만
사진의 전들은 오래전에 부쳐놓은 걸 데펴주는 정도여서 맛이 떨어진다.
갓 부쳐냈을 때의 향과 촉촉함은 대개 사라지고 퍽퍽한 질감만이 남았다.

그때그때 부쳐내는 수고로움이 만만치 않겠지만 고집스레 지켜낸다면 
돈과 더불어 덕과 명성도 쌓을텐데..
그래도 늦은 밤의 술집다운 푸근함, 저렴한 가격(모듬전 7,000원)으로 아쉬우나마 찾게 되는 집.




예전 광화문에 출퇴근하던 시절 점심때 가끔 가던 장원삼계탕. 
삼계탕보다는 1천원 더 비싼 약계탕을 주로 먹었었는데 게이코의 경계를 무시하고
'일단 먹어 봐' 하는 심정으로 약계탕 주문.  
한약재의 구수함이 고급스럽게 느껴져 좋고
찬으로 나오는 뻘건 생마늘 짱아찌의 알싸함은 그 맛을 아는 이에게만 미소를 허락한다.
게이코가 그 맛을 알 턱이 없지만 그래도 본토 삼계탕의 맛에 미소를 잃지 않는다.
인삼주도 한 잔씩 곁들였으니 더 없이 즐거워야만 하는 시간.  
허나 노회찬의 말마따나 민주화 이후 최대의 비극이 벌어진 이날이었으니,
TV를 곁눈질 해가며 인삼주잔을 비웠다.




같은 날 저녁, 게이코가 노래를 부르던 바로 그 간장게장이 펼쳐졌다.
사실 게이코를 위한 간장게장 이벤트를 꽤나 고민했었다.
인터넷으로 인천의 간장게장집을 샅샅이 뒤졌고
 양 대비 싸게 먹을 방법으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간장게장을 주문해
만만한 식당에 싸들고 가 웃돈을 좀 얹어 양해를 구하고 그야말로 입이 쩔도록 먹여볼까도 생각했었다.
허나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물리치고 결국 인사동의 신일집에 한 상 깔고 앉았다.
게장정식이 1인 2만원이니 이 동네서 이 가격에 먹기에 꽤나 저렴하다. 
마침 남도음식을 내는 집이니 자잘한 찬꺼리에도 기대가 된다.
 



헌데 나온 것을 보니 짜잘한 크기는 그렇다 쳐도 기대한 꽃게장이 아니다.
꽃게 딱지에는 저 요상한 반점이 없는걸로 아는데 대체 무슨 게일까? 황게?
살짝 뒤통수를 맞았지만 제법 알찬 속과 푸짐함에 곧 생각을 고쳐먹고..
밥 위에 속살을 얹어 참기름을 한 두 방울 찍어 발라 입으로 넣으니
다음부턴 숟가락에 모터가 달린다.  
꽃게건 황게건 게는 역시 게다.
게이코도 공기밥 추가.




다음 날,
자유로를 달려 임진각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의 실상을 보여준 뒤 일산으로 왔다.
우리가 일산에 살 때 세 손가락에 꼽던 맛집
일산칼국수.

닭을 푹 고은 육수에 바지락을 쏟아부어 절묘한 맛의 지점을 일궈낸 집.
여름엔 콩국수도 팔지만 역시 주력은 칼국수.  
옵션은 닭을 달라고 하면 일일히 손으로 뜯어낸 닭살을 고명으로 푸짐하게 얹어주고
바지락을 달라고 하면 바지락을 푸짐하게 얹어주는 시스템, 허나 이날은 조금 빈약한 느낌..
1년 만에 찾았는데 가격도 6천원으로 올라 살짝 빈정.
그래도 맛의 포로로 사로잡힌 사람들의 행렬은 여전히 길다.
15분을 기다려 입장, 한 사람앞에 한 그릇씩 먹는다.




삼계탕 먹을 때와 마찬가지로
저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워냈는데 솔직한 이유를 물으니 
"맛있어서"
라고. 

칼국수는 게이코도 미처 예상치 못한 맛이었던지 이후 보내온 메일에서
칼국수에 대한 인상과 그리움이 잔뜩 뭍어났다. 

 


같은 날 저녁.
홍대로 날아와서 야외 테이블에 한판 벌였다.
날씨 선선하고 저물어가는 휴일 마지막날이니 한가롭고 주변에 낮은 수풀이 병풍을 이루고
 백열 조명아래 오손도손 고기 뒤집고 잔 기울이는 이웃들을 보니 더 없이 좋구나.
맥주 한 병으로 가볍게 입가심한 뒤 이후부턴 소주로 달렸다.

삼겹살 먹는 방법에 대해서도 가르쳐줬는데
1. 잔에 소주를 채운다.
2. 자기 앞에 잘 익은 삼겹살 한 점을 미리 대기시켜 놓는다.
3. 상대방과 술잔을 부딛친 뒤 단숨에 털어 넣는다. 쭉~!
4. 대기시켜 놓은 삼겹살을 입안에 넣어 알콜을 신속히 중화시킨다.
5. 1~4의 과정을 반복하며 취향에 따라 템포를 조절한다.

삼겹살을 외국인에게 표현할 때 그 어휘는 '바베큐'일 수 밖에 없는데
자꾸 생뚱맞다는 느낌이 지워지질 않는다.
그래서 세상에는 '바베큐'와 더불어 '코리안 바베큐'가 따로 있는건가?

사기충천해서 돌아간 게이코는
2차 한국여행을 위해 손님들에게 열심히 약을 팔고 있고
우리는 느긋하게 2차 미각리스트를 정리하고 있다.
광장시장의 녹두부침, 무교동의 북어국, 마포 을밀대와 동네 짜장면.. 
Posted by dalgonaa
몰타 Malta 250308~2008. 10. 2. 21:53


몰타를 떠나는 날, 평소와 마찬가지로 해는 떠올랐고 그 빛깔 또한 그대로다.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해 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가진 못하고 컴컴한 거실에서 붉은 여명을 하염없이 지켜볼 뿐. 지난 시간, 다가올 내일, 그리고 오늘이 뒤죽박죽되어 떠오른다. 새벽공기를 가르는 차들의 소음만 간간히 들릴 뿐 이 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하다. 그러다보니 가청범위를 넘어서는 주파수의 소리, 가령 '찌잉~'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묘한 경험을 오랫만에 맛보기도..


짐은 거의 일주일 전부터 대충 싸놓기 시작했고 우리에게 남겨진 가장 큰 숙제는 짐정리가 아니라 '집정리'. 떠나기 전날, 본격적인 청소를 시작했다. 걸레질을 하고 침대시트를 깨끗히 개고 침대도 정리했다. 가장 사용이 많았던 주방도 처음 왔을 때의 모습으로 되돌려놓았다.

"이 정도면 흠잡을데 없지 않은가?"

집주인 CASSAR씨와 부동산 JOE는 약속시간보다 20분 늦게 집에 도착했다. 반갑게(?) 악수를 나눈 뒤 집주인은 천천히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근데 그 폼새가 예사롭지 않다. 주방의 찬장을 단지 열어보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릇들을 꺼내 세어보고 구석구석을 살피는 것이 아닌가!

"그래.. 니들이 이런 식이란 말이지..  좋아, 그럼 우리도 가만 있을 순 없지.."

하지만 우리는 완벽하게 가만히 있었다 -.-     우리는 주로 거실쪽에 가급적 태연한 자세로 서있었고 그들은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기'시작했다. 집안은 이내 깊은 침묵과 정적으로 뒤덮였다. 거의 내무반의 위생점검과 교실의 소지품 검사를 합쳐놓은 상황. 구름으로 어두워진 날씨는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불쾌했지만 우리도 일정부분 기만을 시도한 부분이 없잖았기에 따질 여건은 아니었다. 저 정도의 세심한 관찰이라면 우리의 가장 큰 아킬레스, 다리 하나가 부러진 의자와 벽면의 엄지손가락 넓이의 페이트 떨어져나간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마침내.. 주방 구석에 얌전히 세워 둔 의자를 건드는 순간 다리 하나가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지며 집안의 정적을 깼다. 올 것이 온 것이다. 부동산 JOE가 먼저 우리에게 이유를 물었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친구 하나가 앉다가 의자가 부러졌고 그 친구도 결국 다쳤다"

첫 문장은 사실이고 뒷 문장은 물론 거짓말이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었으니 우리는 최대한 뒷 문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먹힐리가 없다. 집주인의 '추적'은 계속됐다. 작은 접시가 모자르다는 지적에 우리는 서둘러 다른 선반에 옮겨놓은 접시를 꺼내놓았고 작은 플라스틱 통(우리에겐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이 뚜껑만 있고 몸체는 없다는 '치사한' 꼬투리에 숟가락 몇 개 담아놓는데 사용했던 그 통을 꺼내 보여줬다.

대략 40분간 진행된 '추적'에서 다행히 벗겨진 페인트는 발견하지 못했지만(사실 너무 작아서 안띄었던 것) 손잡이 부러진 냄비가 추가로 발견된 것은 우리도 예상못한 불운이었다. 집주인은 의자를 비롯한 파손된 집기와 청소비용으로 총 140유로를 청구했다. 이는 집주인이 우리에게 돌려줘야 할 금액 490유로에서 이를 제한 350유로만 되돌려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동시에 만약 200유로를 지불하면 보수와 청소에 소요되는 실비를 제외하고 남은 비용을 계좌로 넣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럴 경우 140유로보다는 적게 나올 것이 분명했고 CASSAR씨도 푼돈을 갖고 장난할 사람은 아니라 보였지만 우리는 그냥 140유로를 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아깝지만 그간 시달려온 흉흉한 소문(보증금을 한 푼도 못받는)에 비하면 대체적으로 선방했다고 자평하며..

돈을 돌려받고 악수를 하며 "We were happy to live in this flat"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 뒤 미리 불러놓은 택시에 몸을 실었다. 
"쿵" 
택시 문을 닫자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차단된 느낌이 순간 들었다. 그제서야 몰타생활이 끝났다는 느낌이 밀려들었다.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없었지만 우리는 잠시 정체를 알 수 없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을 얻고 떠나는지, 무엇을 버리고 떠나는지.. 오랜 시간을 두고 생각해봐야 할 몰타에서의 6개월. 

컴컴해진 하늘은 가는 빗줄기를 뿌리기 시작했고 비행기는 그 빗줄기를 뚫고 하늘로 날아 올랐다. 저 아래 섬나라, 과연 남은 생에서 저 땅을 다시 밟을 기회가 있을까? 밀려드는 아쉬움은 쉽게 접혀지지 않았지만 저 작은 섬은 곧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Posted by dalgonaa



이탈리아에서 봅시다.
Posted by dalgonaa

다음 주 화요일이면 떠나니 이제 이틀 정도 남았다. 끝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즈음에는 대단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면서 동시에 스트레스가 따른다. 갖고 있는 것들 가운데 버릴 것과 가져가야 할 것을 골라내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며 그렇게 나눠진 것들을 처리하는 문제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가져가야 할 것들을 모든 물리적 지식을 동원해 촘촘히 싸야하고 버려야 할 것들은 집앞 쓰레기 수거통에 던져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효용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 사이에 남는 것들, 가령 책이나 IDE방식의 부피 큰 외장하드 따위는 가져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애물인데 결국 이는 한국으로 보낸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10kg 박스포장해서 보내는 가격을 우체국에 물어보니 우리돈으로 15만원, 그럼 고민은 다시 이어진다.

"그 돈이면 차라리 한국 가서 다시 구입해도 되지 않을까?"

뭐가 옳을지 그런 고민 따위로 인해 떠나는 즈음, 저녁의 석양을 좀 더 넉넉해진 마음으로 바라보거나 무심히 지나쳐온 일상들을 특별한 시선으로 응시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뜻대로 잘 이뤄지지 않는다. 글을 쓰는 가까운 친구 하나는 분명 이를 두고 '쯧쯧..' 혀를 차지 싶다. 뭔가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온 천리길이지만 살아온 삶의 구차한 태도들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이 습성은 언제쯤 아문 딱지 떨어지듯 사라져버릴지..


2달 간 김군을 가르쳐온 Sarah와 함께 점심식사를 했고 가깝게 지내온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한국음식을 나눠먹으며 석별의 정을 나눴다. 잔정 많은 루씨가 지난 주 떠난 카샤에 이어 눈물을 쏟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예기치않은 사건으로 곤란에 처했던 같은 학원의 친구가 마침 다소나마 일이 해결돼 떠나는 우리의 발걸음을 더 없이 가볍게 해줬다.

몰타에서 마지막 남은 문제는 공항으로 떠나기 전 집주인과 우리 간에 치뤄야 할 금전문제 뿐. 집주인에게 맡긴 한 달치 보증금을 못돌려 받는 경우가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있지만 우리에게 그런 재앙이 닥치진 않으리라 기대한다. 사용중 다리가 하나 부러진 의자와 아주 조금 벗겨진 거실 벽 페인트 자국이 걸리긴 하지만.. 일부 집주인들은 그런 사소한 것들을 트집잡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원래 집을 계약할 땐 집주인과 함께 집 구석구석을 돌며 상태를 함께 점검하고 심지어 그릇수와 포크 수 까지 세는 것이 기본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집주인인 CASSAR씨가 덜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심증은 가지고 있는데 과연 어떨지.. 화요일 오전, 11시에 집으로 부동산과 CASSAR씨가 오기로 했다. 만나서 전기와 물 사용료를 지불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은 뒤 빠이빠이하고 미리 불러놓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떠나면 몰타의 공식적인 생활도 끝이다.   

한국을 출발할 때 우리가 덕지덕지 챙겼던 짐을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하다. 무게도 무게지만 한 사람당 3개씩의 가방을 이고 졌으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고 특히 이태리 로마 테르미니 역에 도착해선 우리를 표적삼은 눈빛들을 장난아니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기가 한 번 닥치기도 했다.

우리를 마중나온 한인민박의 주인아저씨의 차에 짐을 싣고 올라타서 출발하려고 하니 갑자기 차 앞으로 한 청년이 다가와 본넷을 몇 번 두드리더니 타이어를 가리키는게 아닌가? 차에 무슨 문제가 생겼거니 생각했는데 그 순간 주인아저씨는 뒤를 돌아보곤 험한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뭐라 한 마디 던지곤 시동을 걸어 곧 출발했다. 상황은 이랬다. 한 명이 차 앞에서 본넷을 두드리며 우리를 비롯한 드라이버의 시선을 잡아 끌면 다른 한 명은 그 소리에 맞춰 차의 뒷문을 열고 우리 짐을 털어가려 했던 것. 고도의 팀플레이였다. 다행히 민박집 아저씨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모든 문에 Lock부터 걸어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다.

한 번의 위기는 피했지만 짐에 대한 관리가 이대로라면 안되겠다 싶어 어제 시내를 뒤져 기내에 들고 탈 수 있는 캐리어 하나를 구입했다. 해서 가방 2개에 나눠담던 카메라와 노트북을 비롯 각종 장비들을 캐리어 하나에 담았다. 끌고 다니니 무겁지 않고 설사 누군가 들고 튄다해도 꽉 채우면 거진 20kg에 이르는 이 '쇳덩어리'를 들고 뛰기엔 무리지 싶다. 쫓아가 이단 옆차기로 옆구리를 갈기면 해결되지 않을까?  아무튼 캐리어는 참 잘 샀다 싶어 김군을 매우 흡족해하고 있다. 심지어 캐리어를 쓰다듬기도 한다!

일요일인 오늘은 이탈리아의 주재 영사관이 몰타로 날아와 우리를 비롯한 몇몇 한국교민과 함께 저녁을 먹을 예정이다. 이미 전에도 한 번 식사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여러모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 음식맛을 즐길 틈이 없었다. 영사를 만나는 이유는 앞서 살짝 얘기했듯이 곤란해진 학원 친구 문제때문. 

한국에서라면 별 일 없이 해결되겠건만 몰타에서 그 시간이 꽤나 오래걸린다. 오늘의 식사자리는 이후 일정을 어떻게 꾸려갈지를 모색하는 일종의 작전회의 자리다. 우리가 전반전을 뛰고 이태리로 떠나니 이제 후반전을 이끌어갈 팀을 새롭게 구성하고 전술을 꾸미는 것이 오늘 식사의 목적. 아무튼 여러모로 상황이 좋아지고 있는 점은 그 친구나 우리나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만 그 친구가 곤란한 처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우리의 여정도 그만큼 자유로워질 것 같다. 그때 쯤 우리도 좀 더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제는 스위스에서 반가운 메일을 한 통 받았다. 강양의 같은 반 친구였던 에마와 율크가 10월 중순 경에 일주일 일정으로 우리를 스위스로 초대한 것. 이들은 우리를 초대하기에 앞서 이미 우리를 데리고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할지 이미 계획을 모두 세워놨다고 한다. 동화책을 읽지도 않은 김군에겐 당연히 동화속의 세상도 아닌 스위스가 과연 어떤 느낌일지 여간 기대되는게 아니다. 강양도 모처럼 얼굴에 시종 웃음을 머금고 있어서 옆구리를 툭 건드리기만 해도 웃음이 터지고 있다.

"스위스 사람들은 뭐 먹고 살지? 퐁듀만 먹고 사나?"

지중해 식생활기행에서 느닷없는 스위스는 우리에겐 엄청 기분좋은 보너스다. 하긴 이미 유럽 이곳저곳에 뿌려놓은 '세포'가 많으니 비단 스위스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보너스'를 챙길 기회가 있으리라 야무진 기대를 해본다. 너무 속물스러운가? 아무렴 어때!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고 공기도 제법 차서 이곳이 진정 몰타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은 구름이 뭉텅뭉텅 끼었지만 아랑곳없이 해가 쨍하다. 여름 내내 몸서리친 해였지만 그래도 반갑다. 오늘은 그 햇살에 좀 더 시선을 주려고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런지는.. 그리고 마저 짐을 싸야겠다. 내일은 몰타에서 하루가 온전한 마지막 날. 많고 많은 맥주 가운데 제일 근사한 것을 하나 골라 파도의 묘기를 안주삼아 마냥 지중해를 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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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동안 한데 몰려다니며 우의를 돈독히 다져온 주세뻬와 미즈키가 지지난 주 먼저 고향으로 돌아갔고 어제는 이 무리의 멤버였던 카샤와 세바스챤이 역시 고향인 폴란드와 독일로 돌아갔다. 한 달이 채 안되는 기간들을 머무는 짧은 일정들이었지만 이들과 제법 잊혀지지 않을 추억들을 쌓았고 우리에게나 이들에게나 그 시간은 모두의 삶에 특별한 순간으로 남았다.

지난 금요일, 카샤와 세바스챤을 떠나보내는 저녁식사자리가 마련됐다. 기획은 김군, 참여인원은 무려 12명, 그리고 무대는 PAPARAZZI! 이쯤되면 파파라치를 단골식당이라 칭해도 무리는 없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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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거센 토요일 오전,
저 멀리 수평선 위로 두텁게 뒤덮힌 구름,
그리고 그 아래에 드넓게 떠 있을 시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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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敬子), 이를 일본 이름으로 바꿔내면 '게이코'가 된다. 경자는 일본 사람이다. 도쿄의 세타가야쿠라고 하는 제법 부자 동네에서 살며 또한 그곳의 한 약국에서 일한다고 한다. 그녀는 약사다. 작년에 서른을 넘겼고 다니던 약국을 용감하게 그만두고 거의 두 달 일정으로 몰타로 건너왔다. 차분한 사교성과 뒤로 빼지 않는 적극성, 그리고 제법 단단한 주량 등을 두루 갖춘 그녀는 그간 우리가 간간이 봐왔던 일본사람과는 좀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다.

며칠 전, 파파라치에서 식사를 마치고 집에 가던 중 유카타를 차려입고 한 손에 초밥 봉지를 들고 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게이코를 만나 깜짝 놀랐었다. 유카타를 챙겨 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던 것. 같은 동양권인 우리의 눈을 한눈에 사로잡았으니 다른 외국인들에게 비친 그녀의 모습은 또한 얼마나 매력적이었겠는가? 이날 그녀의 교실 친구들과 함께 선생집에서 작은 파티를 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는데 후에 들어보니 사진 모델역할 하느라 진을 뺐다고 한다. 사실 그녀 또한 그것을 은근히 즐겼을 터.

이 날로 부터 대략 1주 전, 게이코가 우리에게 지중해식 카레라이스를 해주겠다며 집을 방문했다.



일본에서 손수 들고 온 고형 카레. 정말로 '지중해카레'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일본의 카레야 비록 자국 내에서긴 하지만 카레의 본고장인 인도 못지 않게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음식. 오뚜기 카레만 있는 우리와 달리 저렇듯 '지중해'라는 남다른 맛을 선언한 카레도 숱하게 존해하는 곳이 일본이니 이날 게이코의 지중해 카레에 기대가 모아진다.




카레만이 아니라 요리에 필요한 양파, 당근, 감자 그리고 고기도 손수 사왔다. 좀 더 사와도 되겠건만 딱 요리할 만큼의 분량만 사왔다. -.-; 




오자마자 큰 냄비부터 찾은 게이코. 준비해둔 냄비를 보여주니 안심하고는 서둘러 재료손질에 들어간다. 이날 식사는 사실 이미 전에 한 번 우리집에서 깐풍기를 대접한 적이 있어 그에 대한 게이코의 보답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이 카레 또한 게이코가 묵고 있는 호스트 패밀리를 위해 손수 요리해 대접할 요량으로 가져온 것이었는데 그보단 우리에게 대접하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겠다고 판단이 들었던 모양이다. 




당근을 썰어놓은 모습에 김군, 깜짝 놀랐다. 길쭉한 당근을 아주 정직하게 90도 각도로만 썰어온(그래서 언제나 동그란 모습) 김군이었는데 게이코는 전혀 다른 각도로 당근을 썰어낸 것. 단지 새로움에서만이 아니라 그 모양도 훨씬 예쁘다. 그리고 보니 어디선가 본 고급 카레에 든 채소가 바로 저런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일본식 감탄사 "에~!"를 농삼아 연발하며 저 모습에 관심을 보이니 게이코는 "랑기리"라고 말한다. 다양한 썰기의 한 이름이겠는데 우리로 치면 어슷썰기 정도가 될려나? (허나 일본어를 구사하는 우리집 시니어 '지희'에 따르면 '그냥썰기'라는 멋없는 해석을 내려준다)




계란도 삶고..  우리나라의 경우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주 싸구려 계란에서부터 특별한 관리를 통해 생산한 계란, 그리고 유기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란이 선보이지만 이곳 몰타 수퍼에선 오로지 딱 한 종류밖에는 취급을 안한다. 6알에 대략 1천원. 흰 계란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지금은 익숙해졌다. 우리도 예전엔 흰 계란만 먹었었는데 갈색 계란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계란 품질을 가늠하는 기준 하나는 깨뜨려 보는 것인데 노란 자위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터져버리면 그 계란을 낳은 닭은 가장 비윤리적인 관리하에 혹독한 상황에서 길러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그런 계란 숱하게 봤다. 하지만 이곳 노른자는 거의 터지는 법이 없다. 사육의 관리가 제법 엄격한 탓이리라 감히 추측해보고..




돼지고기도 썬다. 생돼지고기를 사왔는데 요리를 마치고 먹어보니 아주 부드럽다. 정육코너에서 가장 부드러운 부위를 달라고 하자 줬다고 하는데 후에 우리도 같은 고기를 사다 먹으면서 주인에게 물어보니 안심이란다.




큰 냄비에 기름 살짝 두르고 썰어놓은 고기를 넣는다. 그녀의 솜씨가 결코 서툴지 않다. 냄비 옆에선 밥이 익어가고 있고 두 개의 불판은 놀고 있다. 왼쪽 아래 큰 불판은 고장났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3개 뿐. 오븐 기능도 되지만 코일을 달구는데 들어가는 전기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감히 사용할 엄두를 안낸다. 2달 전, 유류값 파동으로 전기료가 정확히 2배로 뛰었다. 한국에서라면 대규모 시위로도 모자랄 엄청난 '배짱정책'이겠지만 여긴 조용하다.




치지직 ~ 볶아주니 고기빛이 금새 변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기가 꽤나 야들야들해 보인다. 큼직하게 썰어넣은 폼이 무척이나 맘에 든다. 가끔 카레 요리에서 채소를 오종종하게 채치듯 해서 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싫다. 재료가 큼직큼직해야 재료 본연의 맛도 잘 살고 식감도 따로 놀지않아 좋다. 물론 보기에도 좋다.




당근과 감자, 양파를 마져 쓸어넣고 고기와 함께 달달달 볶아준다. 그리고 곧 물을 부어 채소가 자작하게 잠기도록 한다. 이렇게..




요리마다, 그리고 사람마다 저 마다의 관점과 기준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는 언제나 그렇듯 오랜 경험과 시행착오에서 비롯되는 것들인데 게이코도 그런 경험이 많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옆에서 물을 준비해 부어주겠다고 하니 그 물높이를 지적하는 폼이 신중하다. 물이 차오르는 것을 지켜보던 그녀는 어느 지점에서 '그만'을 분명히 외친다. 누구의 눈에는 좀 더 부어도, 좀 덜 부어도 될 물량이겠지만 그녀에겐 분명히 그녀만이 알고 있는 물높이가 있다.

그것이 없는 사람들은 요리하면서 말이 많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변에 의견을 구한다. 처음에야 그것이 용납되겠지만 이후에도 그렇다면 이건 문제다. 주방의 군기가 쎄다는 이야기는 단지 칼과 불의 위험 때문만이 아니다. 자기 '예술'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고집을 확립하는 것은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남에게 자신의 음식을 대접하겠다는 사람으로써 꼭 갖춰야 할 자세이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남다른 고집을 지키는 음식점은 대체로 사람들로 인정을 받고 오래도록 살아 남으며 그들은 물높이에 대한 자신만의 엄격한 기준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나름 공들여 정리해낸 생각을 글로 마치고 다음 사진을 보니..  읔.. 민망함이 살짝.. 인스탄트 카레 덩어리라.. 그렇다고 게이코를 뭐라는 건 결코 아니다. 인스탄트라도 물높이는 언제나 중요하다. 라면 잘 끓이는 사람을 두고 그가 인스탄트 라면을 끓였다고 언제 손가락질 하던가 말이다. ^^    사진의 것 말고 하나가 더 있는데 두 개를 다 넣었다.




고형 카레를 넣고 대략 5분여를 풀어주고 한동안 뜸을 들이더니 게이코가 카메라쪽으로 몸을 휙 돌려 차렷자세를 취한 뒤 "오아리데스"라고 외친다. 끝났단다. 그 폼이 워낙 인상적이라 한 번 더 포즈를 취하게 한 뒤 사진을 찍었다. 따라서 이 사진은 연출된 사진. 하지만 그 상황은 같다.




이렇게 해서 지중해 카레가 만들어졌다. 색감은 얼핏 하이라이스를 연상케 하지만 맛은 카레다. 질척하지도 되직하지도 않게 딱 알맞게 요리됐다. 가끔 김군도 물량을 제대로 못맞춰 끓이다가 물을 더 붖거나 카레를 더 넣곤 하는데 게이코는 그런 실수없이 한 번에 완성해냈다. 그 공력이 놀랍다. 더불어 어수선함 없이 딱 필요한 행동만 취하면서 요리를 마쳤으니 주방의 모습은 별일 없었다는 듯 고요한 풍경이라 그 또한 놀랍다.





이번엔 우리차례. K-mart에서 미리 사다놓은 단무지를 꺼내 채친다. 카레라이스엔 깍두기나 김치, 또는 그밖의 아삭한 짱아치나 피클류가 제격이겠지만 없으니 단무지라도 있는 것이 어딘가? 그 존재감이 보석처럼 빛난다.




마늘과 파, 참기름과 고춧가루, 그리고 나름의 비법으로 식초를 살짝 뿌려 무쳐주니 단무지가 옥동자로 거듭난다. 서양음식에서 피클 말고는 아삭한 맛을 즐기는 음식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 식감에 길든 우리로선 해외 생활 오래되면 그 식감에 그리움이 사무쳐간다.




차려진 식탁. 보는 것 처럼 별 것 없이 카레에 달랑 단무지가 전부지만 나름 의미를 부여하면 한식과 일식이 공존하는 식탁이다. '닥꽝'도 일본서 유래된 것이라 치면 정통일식으로 봐도 무방하겠다. 엄마같은 손길로 손수 음식을 떠주는 게이코, 그 모습에 모두 흡족한 표정이다.





삶은 계란도 반 잘라 그릇에 내니 보는 즐거움이 더욱 커진다. 사실 게이코는 계란의 노른자가 반정도만 익기를 바랐다고 한다. 아무렴 어떤가?  고슬고슬 밥에 카레를 비벼 한 술 입으로 가져간다. 이 대목에서 우리집 시니어 '지희'의 표현을 고스란히 옮기면 이렇다.

"초콜렛 케익 먹는 것 같아요~"

우리로선 도무지 떠올릴 수 없는 맛이지만 초콜렛은 최상급 표현의 다름 아니니 그녀의 표현을 존중키로 한다.
초콜렛이 등장했으니 그럼 와인이 빠질 수 없다.




꼬부라진 병 주둥를 가진 독특한 모양의 와인 J.P CHENET. 프랑스산 로제 와인이다. 나머지 자세한 스펙은 자신없으니 통과.



멋진 만찬을 제공해준 게이코에게 감사를 전한다. 이후에도 게이코는 지금껏 만난 다른 어느 외국인보다 우리집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그녀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가령 그녀의 외할머니가 이북 출신의 한국인이라는 것 등등.. 이외에도 감추고 싶은 속내까지도 털털하게 이야기하는 그녀를 우리는 좀 더 오래도록 좋은 친구로 남겨두고 싶다. 내년 우리가 한국에 귀국하면 그녀는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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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는 주말의 시작. 수업을 마치고 나니 홀가분하다. 지금의 여행 자체가 주말의 연속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주말은 역시 주말이다. 어제 수영을 못했으니 오늘은 수영을 해줘야 한다. 이제 우리 두 사람 모두 물의 깊이와는 관계없이 수영을 즐기고 있으며 김군의 경우 50미터 정도의 거리는 쉬지 않고 자유형 수영이 가능하다. 평형은 그보단 더 갈 듯.




올 여름, 스페인 학생들로 북적이던 비치클럽은 그들이 되돌아가자 적막한 느낌마저 돈다. 하지만 풀장에 사람이 적다는 것은 우리에겐 즐거운 일. 첨벙첨벙 다이빙을 연습하고 물속에서 꺼꾸로 물구나무 서기를 연습하고 낄낄대고 꺅꺅거리며 9월의 막바지 더위를 식히고 있다. 이곳 비치클럽도 10월이면 문을 닫는다고 하니 남은 기간 더욱 열심히 다니자며 불끈 주먹을 쥔다.




며칠 전 이곳에서 공부를 마치고 영국 캠브리지로 6개월간의 영어연수를 떠난 한국인 친구가 소식을 전해왔다. 도착한 후부터 줄곧 비가 내리고 춥단다. 이곳에서 입던대로 단촐하게 떠났으니 우리가 3월에 꽃피는 한국을 떠나 로마에 도착해 추위에 벌벌 떨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 고생이 어떨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지중해와는 전혀 딴판인 북해의 영향을 받는 영국. 들려오는 빗소리와 인적없는 거리, 눅눅하고 침침한 방구석에서 한 없는 고독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은 이곳의 지긋지긋했던 햇살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그 친구는 새삼 느끼지 않을까? 생각이 이쯤에 닿으니 우리도 왠지 이곳의 더위와 따가운 햇살, 지저분한 거리와 사람들의 왁짜한 분위기가 슬그머니 반갑고 고맙게 느껴진다. (적어도 이 순간에는..)






일로나는 7살짜리 여자애다. 올 여름, 풀장에서 자주 만난 몰티즈 꼬마. 우리를 처음 보곤 신기했는지 우리 주위를 맴돌며 수줍어 하면서도 눈길을 떼지 않았는데 결국 우리가 먼저 말을 걸어 일로나가 갖는 호기심을 상당부분 해소해줬다. 사실 일로나가 갖는 호기심은 딴게 아니라 그저 자신과는 다르게 생긴 낯선 외국인에 대해 갖는 호기심 그것이다. 초등생을 위한 이런저런 교육적인 정보, 가령 한국이 어디에 붙은 어떤 나라고 아시아는 어떤 곳인지 알기 쉽게(영어로!) 설명해줬지만 대충 흘려듣고는 보란 듯이 엉망인 폼으로 다이빙을 한다. 마침 얼굴에 뭔가를 잔뜩 칠하고 나타나 자랑하길래 한 장 찍었다. 너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씩씩하게 크거라. 너무 '씩씩하게' 먹진 말고..

금요일 주말이니 느지막한 시간까지 수영을 즐겼다. 참으로 홀가분하게 느껴지는 저녁, 여기에 오늘 우리집 식구들(지희, 서희)이 모두 밖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하니 일찍 들어가 밥을 할 필요도 없다. 느슨하고 나른해진 몸과 마음을 어디서 무엇으로 알차게 채워줄까 즐거운 고민에 빠져 잠시 입맛을 냠냠 대다가 결정한 곳은 바로 아래, Paparazzi다.




일전에 김군이 도모미와 식사를 즐긴 곳이 이곳이기도 하다. 몰타를 소개하는 엽서에 자주 등장하기도 하는 이 식당은 그 앞에 바다와 정박한 작은 배들을 훌륭한 야외 인테리어처럼 갖추고 있어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이 제법 근사하다.  




낮에 바라본 식당 일대의 풍경. 왼쪽 버스다니는 길은 우리가 매일같이 오가는 길이고 가운데 파라솔이 펴져 있는 곳이 Paparazzi 식당이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가로등은 물론 저 일대의 식당들이 일제히 불을 밝혀 그 모습이 퍽 낭만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은 위치는 몰타의 베스트 촬영 포인트 중 하나에 속한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거리와 바다를 바라보며 즐기는 식사도 퍽 근사하지만 이날은 음식 주변으로 꼬이는 파리, 그리고 야외 테이블이 인기높은 자리인 만큼 식사를 마치면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려 드는(식사마친 접시를 서둘러 치우는 것이 유럽 식당의 룰인지는 모르겠으나..) 종업원의 등쌀을 피해 실내로 자리를 잡고 간섭에서 조금 떨어져 식사를 즐기기로 했다. 이곳은 김군에겐 세 번째, 강양에겐 두 번째 방문이다. 맛과 서비스에 대한 노력은 제쳐두고 좋은 자리 꿰고앉아 오로지 '목장사'에만 몰입하는 못된 식당들이 종종 있는데 파파라치는 그런 식당들과는 제법 거리를 두고 있는 식당이다. 간섭만 빼면..





실내는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어 무척 시원하다. 수영하고 온 뒤라 입고 있는 수영복이 아직은 덜말랐는데 그 때문인지 더욱 시원하게 느껴진다. 실내는 두 아기를 데리고 온 부모만이 단촐하게 식사를 즐기고 있다. 벽면은 이런저런 액자들로 가득 꾸며져있는데 주로 여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오른쪽 샹들리에 아래 누운 여성의 그림이 보이는가? 그 옆의 액자도 여성이고 우리 뒤쪽의 그림도 여성이고 아무튼 대부분이 여성이다. 식당 주인의 취향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창가쪽 테이블에 앉으니 바라보이는 풍경이 저렇다.





아담한 테이블, 단단한 의자, 그 옆에 작은 화단. 공간의 아기자기함은 가운데 촛불이 놓여짐으로서 비로소 완성된다. 다만 저 자리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사진엔 보이지 않지만 왼쪽편에 테이블의 경우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면 이 테이블의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줘야 한다는 점이다. 발코니는 참 탐스러운 자리임에 분명하지만 저리 좁아가지고서야..



 

난간쪽은 언제나 인기만점의 공간. 풍경을 독차지하는 매력은 물론 주변 테이블의 소음으로부터 최대한 벗어날 수 있는 장점도 갖추고 있다.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탓에 테이블은 단촐하다. 나이프와 포크도 종이 냅킨에 둘둘 말려있고 나이프는 손잡이가 플라스틱이다. 비스트로는 영어로 대중음식점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명사로 쓰이며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는 몰타의 경우 Osteria라는 이름으로도 종종 불려진다. 좀 더 고급스러운 식당에 해당되는 Ristorante는 테이블보가 깔리며 와인잔을 비롯 각종 식기와 도구들이 우아하게 세팅되어 있어 그 포스에 선뜻 들어가기 저어해지곤 한다.


메뉴판을 스윽 훑어본 뒤 다음의 메뉴들을 주문한다.




마지막의 Octopussy. 요건 문어 샐러드고..





끝에서 두 번째에 있는 Fish Tank, 요건 파스타다. 그리고 맥주 한 잔을 주문한다.
두 사진 모두 조명이 약해 흔들렸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뭘 넣었다는 얘긴지 얼추 확인할 수 있을테다.






먼저 맥주 나와 주시고.. 맥주는 몰타의 정통맥주 生 CISK다. 정통 Lager로 드라이하고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나라마다 독특한 맥주잔을 갖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몰타의 맥주잔을 보면서 더욱 굳어지는데 주둥이 아래가 불룩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각 나라 별, 혹은 제품 별 잔을 모두 모아 한국에 가져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그 뒤로 보르게스 제품의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가 나란히 놓여있다. 후추와 소금통도 나란히..





주문하고 10분이 조금 넘어서자 문어 샐러드 나온다.





곧바로 파스타도 나와주시고..





단체사진 한 장.





좀 더 폼 잡고 한 장 더..

파파라치의 식단에서 우리가 우선 높게 평가하는 점은 우선 양이다. 사실 허기진 이들에게 식당의 첫 번째 배려는 넉넉한 양이 아닐까? 두 번째라면 스피드, 세 번째는 맛이겠고 깐깐한 미식가라면 물론 그 순서가 반대일 테다. 몰타의 다른 많은 식당도 양이 제법 많은 편이지만 파파라치 만큼은 아니다. 파스타는 물론이고 샐러드의 경우도 하나 시키면 여자 둘이서 먹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우리가 시킨 저 두 접시는 셋이서 먹으면 딱 알맞을 양.

일전에 파파라치에서 Fish Tank 파스타와 토마토 소스로 범벅을 해낸 라자냐(넓고 네모난 만두피 모양의 파스타로 겹겹이 쌓여 나온다)를 각각 시켜 먹은 적이 있었는데 김군은 라자냐를 겨우 절반까지 먹는데 성공했을 정도로 그 양이 푸짐했다.(김군의 식사량이 줄어든 탓도 있다)  라자냐 사이에는 갈은 쇠고기를 넣어 그 양이 더욱 풍성했는데 그렇다고 맛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무튼 넉넉함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만 한편으로 음식을 남기는 불편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또한 어쩔수가 없다. 쩝..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문어 샐러드이니 당연히 문어가 들어가 있고 그 양도 흉내만 낸게 아니라 진정으로 넉넉하다. 싱싱한 양상추와 오이, 문어 사이에 틈틈이 케이퍼도 보인다. 이 외에 녹색 채소로 피망과 치커리가 속속들이 섞여있고 양파와 당근, 마지막으로 올리브와 토마토가 샐러드의 풍미를 한껏 높여주는 구성이다. 훌륭하다. 보는 것 만으로도 몸이 싱싱해지는 느낌이다.

이쯤에서 문어 한 조각을 포크로 콕 찍어 입에 넣어 본다. '오물오물.. ??..  ??.. 어허...' 치명적인 문제가 포착된다. 우리가 예상했던 문어의 맛이 아니다. 짭짤해야 할 문어는 그 간이 다소 밍밍했고 간이 약하더라도 씹을 수록 문어 특유의 고소함이 베어나와야 하는데 그 맛이 터무니없이 약하다. 씹히는 질감에서 그 연유를 대번에 파악했고 우리 모두 한 마디를 동시에 던졌다. "냉동이군.."

갖잡은 생물은 바라는 것은 아니고 지중해라면 그 값진 기후를 이용해 건조를 통한 저장법도 발달했을 법 한데 유통상의 문제가 무엇이길래 저 좋은 식재료를 냉동했을까? 아쉬움이 크다. 일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살짝 염장해 반건조한 문어를 모양내지 않고 퉁퉁 썰어 석쇠에 살짝 구운 뒤 갖은 채소위에 얹고 질좋은 올리브유를 양껏 뿌려내면 맛은 물론 영양과 멋이 그야말로 판타스틱이다. 사실 문어의 양이 다소 적더라도 그것을 기대했었는데.. 주방이 좀 더 안목높은 고집을 피웠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쉽다.

그러나 여기서 맛의 탐구를 포기할 순 없다.





레몬을 끼얹고..




발사믹도 뿌리고..




올리브유로 마무리..

비록 문어 자체의 맛은 떨어지지만 저리 먹으니 맛이 제법 살아난다. 레몬과 발사믹이 채소와 어우러져 새콤함이 돋보이고 올리브유가 그 맛을 차분하게 잡아주는 역할도 한다. 아쉬운 문어는 케이퍼와 함께 먹으니 그런대로 맛도 나도 새로운 맛도 포착된다. 연어와 케이퍼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앙상블인데 문어와도 제법 잘 어울린다. 뭐든 자체의 맛이 깊고 진한 해산물이라면 케이퍼와의 만남은 훌륭할 듯 싶다. 홍합과 케이퍼도...?





Fish Tank. 어떻게 저런 이름이 음식에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는 기대는 해산물의 푸짐한 살점들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푸실리를 압도하면 그것도 문제. 처음엔 안보이던 Fish들이 바닥을 뒤적이자 섭섭치 않게 올라온다. 새우는 꼬들하니 맛도 깊고 생선살도 잇사이에서 씹히는 맛이 좋다.

아주 형편없는 재료만 아니라면 크림소스는 언제나 그렇듯 배후에서 재료의 맛을 색다르게 변모시켜 맛을 끌어올려주는 일등공신이다. 가끔 몸과 마음이 허전하다고 느껴질 때, 입맛을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것이 바로 크림소스의 찐하고 깊은 맛이다. 단 그 역할이 지나치면 어느새 포크질은 점점 둔해지고 느끼함에 식사는 일찌감치 끝나게 되는데 크림소스 바탕의 파스타는 그 강도를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 아닐까 싶다. 이날의 크림은 그 어려운 길을 무사히, 그리고 훌륭하게 지나왔다. 아래의 수고를 거치니 좀 더 탄탄해졌다.





그러나 파스타의 주인공은 당연히 파스타다. 오늘의 주연은 푸실리로 배배 꼬아낸 모양의 저놈이 바로 그놈. 이태리 사람들이 파스타를 먹을 때 민감하게 살피는 부분이 파스타의 익힘 정도다. 예전에 함께 식사를 했던 베로나의 엘리자베타도 그것에 신중했는데 우리는 별 문제없다고 생각했던 팬네(펜촉 모양이 파스타)를 두고 그녀는 "이런.. 너무 익혔군"이라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처음엔 그 반응에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는데 며칠 후 라면을 떠올리자 그녀의 까탈스러움에 금새 수긍이 갔다.

이태리 사람들에게 주식인 파스타만큼 라면이 우리 식단의 주식은 아니지만 한국인들의 라면에 대한 끔찍한 사랑은 파스타에 견줄만 하다. 많은 한국인들이 라면맛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국물이 아닌 면빨의 맛. 국물은 이미 평준화됐지만 면은 아니다. 기껏 2천원 짜리 라면 한 그릇이지만 꼬들한 면 맛을 내느냐 퍼진 면 맛을 내느냐에 따라 가게의 흥망이 분명하게 갈려진다. 이 점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준은 무서우리만치 냉혹하고 까다롭고 엄정하다. 하물며 주식인 파스타임에야..

그렇다면 이날의 파스타는? 대개의 한국인들에겐 알맞은 익힘이고 맛이다. 그러나 엘리자베타가 함께 있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몰타는 정말이지 구제불능이군!.."





먹어도 먹어도 좀처럼 바닥이 드러나질 않는다. 어느새 포크는 새우와 생선살점, 그리고 문어에만 집중된다. 본능적인 본전의식의 발동이다.





힐끗 밖을 내다보니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가로등에도 불이 들어왔고 테이블 위의 촛불의 존재감이 갈수록 뚜렷해진다. 한 여름엔 9시나 되야 깜깜해졌는데 요즘엔 8시를 넘어서니 깜깜해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중해의 해는 길다. 한국도 그랬던가? 기억이 가물하다..

9월도 곧 중반을 넘어서 막바지로 치달을 테다. 그때 쯤이면 우리도 여유를 접고 바빠져야 한다. 6개월 간 살아온 집을 정리해야 하고 버릴 짐은 버리고 챙길 짐은 챙겨 다시 가방에 우겨 넣어야 한다. 짐이 많으니 그 시간은 꽤나 고민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테다. 그래도 이곳 몰타를 떠나는 것은 우리에겐 작은 기쁨이다. 정말이지 이제 이곳의 더위와 더러운 공기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다!





어슬렁 어슬렁 해변길을 따라 걸으니 어느새 어두워졌다. 가을이 깊어지면 어둠의 속도도 좀 더 빨라지겠지.. 바다에 비춰지는 불빛이 곱다. 달도 휘영청 떴으니 고향 생각에 젖어들 타임. 그리고 보니 추석이다. 가족들과 한 상 떡 부러지게 차려놓고 재미난 TV프로그램 보며 왁자지껄 먹고 떠드는 재미가 솔솔 그리워진다.

근데 그 시간을 풍성하게 해줄 TV 프로그램으로 과연 무엇이 가장 재미있을까? 외국인 노래자랑? 아나운서 폭소대잔치? 성룡과 홍금보 주연의 영화? 혹시 이런 건 어떤가?  추석특집, 슬로우푸드의 본고장 이탈리아로 떠나는 가을 식탁 기행.
(아따 제목 기네.. 기대하시라.. ㅋㅋ)
Posted by dalgonaa

지난 주말은 월요일이 마침 몰타의 승전기념일이어서(뭘 이겼는지는 모르겠지만..) 3일간 이어지는 황금연휴였다. 금요일 와인파티를 즐긴 뒤 마침 그곳에서 만난 카리나와 그녀의 남자친구 드가강을 일요일에 집으로 초대했는데 단 두 사람만 부르기엔 단촐할 듯 싶어 이참에 김군의 반 친구들도 초대를 했다. 저녁 7시부터 마시고 놀기 시작한 자리는 와인 9병과 맥주 3캔을 비운 뒤 새벽 3시가 가까이 되서야 끝이 났다.



독일,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 러시아, 일본.. 국적도 다양하다. (왼편의 남녀가 카리나와 드가강. 이들의 나이차는 18세. 드가강은 유고가 고향이지만 몇 년 전 가족들과 함께 독일로 완전히 이민을 와버렸다. 지금은 독일에서 페인트 마이스터가 되기위해 공부하고 있고 1년만 더 하면 될 것 같다고..)

아무튼 김군의 반 친구들 중 연락이 닿지않아 오지못한 친구들이 있었고 후에 파티 얘기를 듣고는 살짝 실망의 기색이 엿보여 그게 걸렸었는데 공교롭게도 딱 그 친구들이 이번 주말에 걸쳐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 가운데 일본에서 온 미즈키는 지난 파티에 등장한 한국음식을 먹지 못한 것을 두고 크게 안타까워 했으니 그녀(그래봐야 20살 갓 넘긴 학생이다)를 위해서, 그리고 이들 모두를 위해 작은 작별선물을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은 다름아닌 김밥.







목요일 밤에 미리 밥을 짓고 속에 들어갈 계란과 채소도 미리 부치고 볶아뒀으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 김만 말면 그만이다. 마침 K-mart에 단무지가 들어와 진작에 5개를 사다놓은 것이 있어 그것이 김밥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시금치를 대신하는 오이가 녹색을 표현하는데 다소 한계가 있는 듯 해서 지난 파티때 먹고 남은 냉동 아스파라거스를 살짝 볶아 이놈을 더했다.

특히 밥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수퍼에 대부분인 안남미(인디카)는 물론 일찌감치 제외했고 우리가 먹는 것과 비슷한 자포니카를 골랐다. 유럽에서 유통되는 자포니카의 대부분은 이태리에서 생산되는데 그러나 이것 역시 쉽게 쉽게 물르고 밥알이 거의 3배 가까이는 불어나는지라 리조또용으로는 적합하겠지만 김밥용으로는 아니다. 그나마 최근 유럽에서 서서히 불고 있는 스시열풍에 힘입어 '스시용'이라고 나온 쌀이 있어 그놈을 골라 밥을 지었는데 밥알이 우리것 보다 더 둥글다. 그런대로 찰진 구석있고 밥을 짓고 난 후에도 쌀의 기본 형태를 제법 유지하니 다행이다 싶다. 이곳 쌀에 대해서 포스팅 한 번 할 생각이니 그때 더 자세히..  지은 밥은 잠시 식혀둔 뒤 플라스틱 볼에 옮겨담아 미리 만들어놓은 초물을 살살 끼얹어가며 밥을 비볐다. 대단한 정성이다.








수업을 마치고 한 자리에 둘러 선 친구들. 가운데 김밥을 들고 있는 친구가 Mizuki다. 그 옆에 Kayoko와 바로 뒤에 이태리에서 온 Giouseppe, 그리고 맨 오른쪽 끝의 Natalie가 모두 이번 주말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다만 Mizuki는 독일을 일주일간 여행한 뒤 아시아나를 타고 서울에서 하루 스톱오버해 다음 날 동경으로 돌아간다는데 서울 어디서 묶을꺼냐고 물으니 명동에 있는 유스호스텔이라고 한다. 보아하니 옛 안기부를 말하는가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낼 물건 몇 가지를 미즈키에게 들려보내 그곳에서 하루 숙식을 제공받으라 할 껄 그랬나? ㅋㅋ

김밥을 처음 본 이들의 반응은 그 형형색색의 색감에 먼저 탄성을 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은 이 대목에서 정확히 들어맞는다. 낯선 음식을 처음 접할 때면 누구든지 보이는 것을 통해 먼저 그 맛을 짐작하기 때문인데 시각에서부터 경계심이 생겨버리면 왠만큼 놀랄만한 맛이 아니고선 잘못지어진 첫 인상을 만회하기란 좀 처럼 쉽지 않다. 김밥이 갖는 비주얼은 그런 면에서 낯설음에 경계심을 잔뜩 세우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처음부터 친숙해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아는 음식이다.

역시 김밥맛을 대번에 알아보는 이들은 미즈키와 가요코다. 몇 번 오물오물 거리더니 이내 눈가에 웃음이 번지고 곧이어 수줍은 듯 '오이시이~'가 튀어나온다. 비슷한 식문화를 가졌으니 그 입맛이 어디 가겠나? 일전에 파티에서 김밥맛을 이미 본 다른 친구들도 덥석덥석 집어 먹기에 바쁘다. 가운데 검은 옷을 입고 있는 Sarah는 선생이다. 그녀 역시 'Oh~ sweet''을 연발하며 제법 용기있게 김밥에 도전한다.

김밥은 확실히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 수 있는 음식이다. 몇 가지 상상력을 얹어 모양과 맛에서 색다른 도전에 나선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단박에 끌어당길 수 있을테다. 김밥의 물건너 사촌쯤 되는 캘리포니아 롤이 'Gochi'라는 간판을 내걸고 좁은 공간에서 일본인 젊은 사장의 운영 아래 힛트를 치고 있는 이곳의 모습을 학원을 오가는 길에 매일 같이 목격하노라면 그 짐작은 더욱 굳어진다.






이날의 김밥, 과연 그 맛을 새삼 떠올리며 입맛을 다실 이들은 몇이나 될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심없이 나눠주는 것에서부터 만남은 각별해지기 시작한다. 김밥 맛에 대한 그리움까진 아니더라도 이들에게 이날이 좀 더 각별한 날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