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에 해당되는 글 70건

  1. 2008.08.07 불온서적
  2. 2008.08.06 적다 보니 돌고 돌아.. 2
  3. 2008.08.04 매혹의 빛깔, 코미노 2
  4. 2008.08.01 신화가 키워낸 맛? 무화과
  5. 2008.07.31 김치의 힘? (마무리) 5
  6. 2008.07.30 김치의 힘?
  7. 2008.07.29 CISK와 HEINEKEN 2
  8. 2008.07.28 FEAST
  9. 2008.07.27 몰타에서 성공할 음식 몇 가지
  10. 2008.07.26 문이 열리다. 그리고..

교실에서 만나는 외국 친구들의 경우 한국은 물론 수도가 서울이라는 정도는 거의 다 알고 있다. 간혹 남한에서 왔냐 북한에서 왔냐를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묻곤해서 그게 조금 놀랍기는 한데 그럴 때 다른 옆에 한국인이 누군가 있으면 그는 남한에서 왔고 나는 북한에서 왔다고 농을 치기도 한다. 그러면 그걸 또 믿는다. 엉뚱한 피해를 나을까 싶어 서둘러 정정해 주지만 어쩜 이렇게 모를까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

근데 가만보면 이런 차이는 우리가 그들보다 남북한 간의 관계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정확히는 일방적인 것만)을 알고 있기 때문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우리보다 남북간의 문제를 좀 더 편견없이 바라본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지나치도록 폐쇄적으로 보이는 북한이지만 이들은 우리와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이 폐쇄적이냐 아니냐는 잠시 접어두더라도 불온서적을 선정, 발표하는 오늘날 한국사회(정확히는 국방부지만)는 북한 못지 않은 폐쇄성을 나타내는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명천지에 읽어선 안되는 책을 정책으로 발표하는 나라, 교실에서 만나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아직 꺼내진 않았지만 이런 짓을 남한 체제의 우월성이라고 믿는 한나라당 사람들을 이들은 비웃을 것이 분명하다.

동생이 부쳐준 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이번 주 즈음에는 오지 싶다. 그 가운데 '불온서적'은 없지만 불온한 상상력을 불어넣어줄 책들임엔 틀림없다. 책은 대부분 요리와 음식, 유럽의 문화에 관한 책들인데 책들 가운데에는 정부관료와 한나라당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갖은 포즈를 잡아가며 집어먹던 미국산 쇠고기, 나아가 모든 육식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내용의 책도 포함돼 있기도 하다.

가령 '죽음의 밥상' 같은 책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향한 정치인들, 또는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적 맹신이 어떤 진실을 숨기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다음은 알라딘에서 퍼온 내용.

소들이 먹는 이상한 음식이 옥수수만은 아니다. 유럽에서 광우병이 중대 문제로 떠올랐을 때, 그것이 연관된 질병에 걸린 양의 골분(骨粉)을 소에게 먹인 결과임이 알려지자 대중은 경악했다. 대체 언제부터 소가 육식동물이 되었단 말인가?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 책을 쓰고 있는 지금조차도 소에게 젤라틴, ‘접시 쓰레기(레스토랑의 고기 요리 찌꺼기)’, 닭고기와 돼지고기, 닭장 쓰레기(닭똥, 닭 시체, 닭털, 먹다 남은 모이 등), 그리고 소의 피와 지방이 포함된 사료를 주는 것이 합법이다.

그리고 먹다 남은 모이 중에는 소에게 직접 주는 것은 불법이지만 닭에게 주는 것은 합법인 소고기와 뼈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97쪽, '3. 고기와 우유 생산 공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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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니는 학원은 ESE라는 학원이고 플랫메이트인 지희가 다니는 학원은 EC라는 학원이다. 학원과 관련해 불만이 쌓여가는 우리이기도 하지만 지희는 좀 더 심각하다. 현재 그녀 교실의 경우 정원이 12명(ESE는 10명)인 것도 문제지만 더욱 기절할 문제는 8명이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단지 그녀 교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레벨의 수업을 듣는 교실 전체가 갖고 있는 문제라고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우스개로 몰타의 파고다학원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그녀는 물론이고 그곳 학원 한국인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이같은 문제의 근본적 책임은 결국 유학원에 있다. 학생들의 질높은 교육기관의 소개와 까다로운 수속절차의 대행, 그리고 사후관리가 유학원의 기본적 임무겠지만 결국 가장 수익률이 높은 학원을 선별해 그곳을 학생들을 무분별하게 보내고 이후 학생들의 콤플레인에 대해선 얼버무리거나 시늉만 하는 것이 이곳에서 지켜본 한국 유학원들의 현실이다.

학원들도 문제가 심각하다. 영어 못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학원측은 자신들의 입맛대로 행정을 처리하기 일쑤다. 시험반이나 회화반 등, 각기 다른 코스에서 이동수업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학원측은 회신을 늦게 주는 것은 물론 결코 복잡한 업무가 아님에도 진척이 매우 느리다.이번에 2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어제 월요일 학원에 나가 달고나 역시 새로운 교실로의 배정이 이뤄지지 않아 김군의 경우 2달 전 배운 코스로 잠시 내려가 있기도 했다.

더욱 큰 문제는 강사들의 자질 문제다. 학원의 상당수 강사들이란 단지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점 하나로 강사로 고용되어 결코 높지 않은 열정과 미숙한 기술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일쑤다. 실제로 영국에서 건너온 British의 경우 누구든 별도의 테스트 없이도 바로 강사로 고용돼 교실에 투입되며 영어를 하는 몰티즈의 경우 한 달간의 이수과정을 거쳐야 한다지만 강사가 부족할 경우엔 일주일 정도의 수업 참관을 거친 뒤 바로 교실로 투입되기도 한다.

일부 강사들의 경우 심각한 자질 부족을 드러내기도 한다. 문법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는가 하면 학생들도 아는 단어를 강사가 몰라 학생들이 찾아 주는 경우도 있다. 심한 경우 1시간 30분의 수업동안 학생들이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강사의 일방적인 강의를 경청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 무슨 소리를 떠든 건지 이해하지 못함은 물론이다.

이런 배경에는 학원측의 불성실한 강사관리와 더불어 저임금의 강사료에 따른 고용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영어강사라는 직업이 안정된 신분과 부족하지 않은 임금생활을 유지시켜주는 자리가 아니라 '딱히 할 것 없으면 하는' 식이다 보니 강사의 질은 떨어지고 학원측은 계속 저임금을 유지하며 현금을 긁어모으고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는 꺼린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물론 개중에는 열정과 신념을 갖고 임하는 훌륭한 강사들도 있지만 그런 강사를 만나는 학생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결국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얻은 결과는 믿을 유학원 없다는 것 하나, 신뢰할 학원 없다는 것 또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국 믿을 것은 나밖에는 없다는 것 하나.. 그래서 학생들, 특히 한국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한다. (물론 다는 아니다)



>> 30분간의 쉬는 시간 사이의 텅빈 교실 모습.

근데 마지막 것이 제일 싫고 짜증나는 일이다. 결과만을 따지고 드는데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과정은 핑계나 변명이라는 말로 무시되기 일쑤여서 사람들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스스로 독해지기로 마음먹기 때문이다.

말장난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독해지기 싫다. 이제 겨우 째째하고 사악한 경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좀 더 느리고 부족하나마 품위있는 삶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허나 이게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결코 내손으로 뽑지 않은 이가 우두머리로 앉아 있는 대한민국에 돌아가게 되면 그는 분명 우리를 독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인데 그게 정말 두렵고 괴롭다. 그래서 이미 매일같이 독해지도록 강요받는 남아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상대적으로 미안하기도 하지만.. (경쟁은 대통령인 지가 해야지 왜 애꿎게 국민들을 채찍질하며 경쟁의 장으로 내모냔 말이지.. 더욱이 비리와 술수의 '종합세트'라는 공정택이라는 이가 서울시 교육감에 앉았다는데 초롱초롱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조카들이 초등학교때부터 사악한 입시경쟁에 내몰릴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이가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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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베이 사파이어 JIN  / 사진출처 : 업로드 에러로 주소가 사라져 다시 찾고 있음.. (싸이 블로그에서 퍼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블로그를 찾을 수가 없네. 댓글은 남겼으니 혹시 사진 주인께선 이곳에 오신다면 댓글 좀 남겨주시길..)

작년 이맘 무렵, 오랫동안 살사춤을 춰온 친구가 '홍대에서 최근 각광받는 술의 하나'라며 들고 온 것이 '봄베이 사파이어'였다. 투명한 Jin을 담아낸 연한 비취빛의 병 색깔이 유난히 곱게 느껴졌던 술로 맛도 깔끔해서 이후 진토닉과 함께 가끔 즐기곤 했다. 마침 그 빛깔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 처럼 맑고 깨끗하며 그 빛깔에 취해 정신을 놓게 만드는 곳이 이곳 몰타에도(이런 곳이 지구상에 몇 곳 있지..) 있다는 것을 알았고 드디어 어제 다녀왔으니.. 그곳은 바로 코미노(Komino)다.

섬나라 몰타는 총 3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으며 가장 큰 것이 몰타, 두 번째가 고조, 그리고 이 두 섬 사이에 아주 조그맣게 떠있는 섬이 바로 코미노다. 거의 무인도에 가까운 작은 섬이면서 브래드 피트가 등장하는 영화 '트로이'가 촬영된 장소라는 독특한 이력도 갖고 있어 사람들에게 색다른 호기심을 자극하는 섬이기도 하지만 코미노의 매력은 역시 봄베이 사파이어의 병 빛깔처럼 매혹적인 물빛에 있다. 보라.



액체로 이뤄진 사파이어가 있다면 코미노는 그 주요 원산지의 하나가 아닐까?



그 값진 보석은 몸에 두르기 보다는 보석 자체에 몸을 내던져 온몸을 적시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장식이자 보석을 만끽하는 방법일 터.

집에서 버스를 타고 골든베이를 지나 40분만에 도착한 Marfa Point. 이곳은 코미노는 물론 고조로 출발하는 대형 선박이 출항하는 중간 규모의 항구다. 코미노 행 페리 선착장에 다가가자  텅빈 주차장으로 인해 더욱 휑해 보이는 공간에 작은 매점만 있고 매표소는 없다. 바닷바람과 태양에 찌든 얼굴로 목에는 깁스를 한 50대가 다가와 "코미노?" 하고 묻곤 1인당 10유로(왕복요금)를 내란다.

함께 동행한 플랫의 시니어 지희가 살짝 콧소리를 섞어 깎아달라자 1유로를 깎아 9유로에 배를 탄다. 흥정이 된다는 얘기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근데 꼭 여자가 흥정해야 깎아 준다고..

배는 5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소형이며 오전 9시부터 정시 간격으로 운행하는데 우리는 10시 배를 탔다. 20명 정도의 승객을 태우고 10시 좀 넘어서자 배가 출발했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상쾌했다. 이때 강양 왈 "여기 바람은 끈적임이 없네? 대개 바닷바람은 소금기를 머금어서 끈적이기 마련인데.." 아마도 이는 습하지 않은 지중해 기후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이날의 가장 큰 실수는 김군이 챙긴 Video Camera의 테이프가 전에 파워보트를 담은 테이프였다는 점. 이날의 기록은 결국 미놀타 카메라의 몫으로만 남고 말았다. (강양으로부터 '꾸사리' 엄청 먹고..)



약 15분의 짧은 항해를 마치고 배는 코미노, 정확히는 블루 라군(Blue Lagoon)에 도착했다. 물 빛깔에 모두들 시선을 떼지 못한다. Blue Lagoon은 '푸른 산호초'라는 뜻으로 애초 이곳이 산호 군락지였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바다 바닥은 모래가 아닌 새하얀 산호 가루. 산호가루는 모래보다 거칠고 굵은 탓에 먼지를 일으키지 않아 시야감이 훌륭한데 푸른 빛깔의 비밀이 바로 거기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지금은 산호가 없는건가? 우리로선 알 수 없다. 다만 집근처 스킨스쿠버 클럽에선 코미노 스쿠버 투어와 강습생을 모집하는걸로 봐서 그래도 일부 산호가 섬 어딘가에 자라고 있지 않을가 추측할 뿐. 그러나 지금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



살짝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어디서 바라봐도 물 빛깔은 매혹적이다. 파라솔이 끝나는 모서리 지점이 승객들이 내리는 선착장. 이미 도착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우리처럼 버스와 배를 갈아 타가며 온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자신의 보트나 요트, 또는 슬리에마, 발레타 등에서 출발하는 전세 여객선이나 보트를 타고 온 사람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파라솔과 비치의자는 모두 유료이며 각각 5유로의 요금을 받는다. 저 뒤로 보이는 큰 섬이 고조다.

물 속에 몸을 담그자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물이 차다. 그간 물놀이를 즐겨온 클럽비치나 집근처 수퍼마켓 앞 바닷물의 수온과 확실히 구별됐다. 내리 꽂히는 뜨거운 태양을 피해 있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을 듯 싶었다. 실제로 그늘 하나 없는 바닥에 앉아 있다보면 몸은 금방 달궈졌고 이를 식힐 방법은 바닷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 말고는 달리 없다. 그러니 기꺼운 마음으로..^^



하지만 이곳이라고 결코 모든 것이 매혹적이지는 않다. 먼 옛날 화산 폭발로 생겨난 섬인 탓에 용암이 물과 만나 갑자기 식어버린 접경은 단단하고 날카로운 현무암으로 가득 덮혀있다. 슬리퍼 없이 오갈 경우 발바닥에 전해지는 압력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고 균형을 잡으며 걸어야 한다.
(아래 오른쪽 위 사진)

쉴 곳이 마땅치 않은 것도 문제. 이미 '업자'들이 비치의자를 깔아 점령해놓은 곳(그나마도 매우 협소)을 피해 자리를 잡다보면 결국 경사진 울퉁불퉁 현무암 바위에 자리를 잡고 눕는 수 밖에는 없다. 물론 그늘 한 점 없다. 그럼에도 서양 친구들은 따가운 햇살을 기꺼이 즐긴다. 우리로선 도무지 엄두가 안나는 일이지만.. 우리는 우산 3개를 준비해 왔고 하나씩 펴든 뒤 첫 번째 사진의 누워있는 언니들 옆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매점의 가격은 한국과 달리 바가지 상혼은 심하지 않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미 볶음밥, 사과, 맥주, 과자를 다 싸들고 온 덕에 안사먹어봐서 가격은 모르겠다.



집에 돌아갈 시간. 6시가 마지막 귀환선이지만 역시 사람들은 5시 귀환선을 타기 위해 대거 몰려들었다. 과연 한 배에 이 모든 사람들이 다 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6시 배로 밀려버리면 어중간한 그 사이를 오로지 태양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선착장을 가득 메운 이들 역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페리사는 주말의 승객운송패턴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2대의 페리를 준비해 그 많은 사람들을 모두 태운 것. 그 센스에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배는 사람들로 빈틈없이 채워졌고 우리는 배의 지붕으로 이어진 작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가장 전망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시동이 걸리고 어지러운 요트 사이를 뚫고 배가 나아갔다. 수평선을 향해 기울고 있는 태양은 그러나 여전히 뜨거운 햇살을 쏟아냈고 피부에 와닿는 따가움은 속도를 더할 수록 세차지는 바람이 식혀줬다. 그런데 갑자기 승무원이 올라와 "배가 기울었으니 반대편쪽으로 앉아달라"고 한 마디 하고는 내려가는게 아닌가? 혹시나 우리를 끌어내리려는건 아닌가 순간 긴장했었는데.. 다시 한번 속으로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우린 서둘러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페리는 올 때와 달리 갈 때엔 서비스로 코미노 섬의 절경을 잠시 감상할 기회를 준다(그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박수)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흔들리는 배 위에서 올려다보는 절경은 그런대로 볼만 하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해저 화산의 폭발로 만들어진 기이한 조각품들, 오랜 세월 물과 바람으로 다듬어낸 표면, 그 밑에 펼쳐진 눈부신 바다와 비경에 환호하는 매혹적인 지중해의 여성,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을 일상으로부터 뛰쳐나오게 만드는, 기꺼이 받아들일 유혹이 아닐런지..


 


그가운데서도  우리에게 환호를 선사하며 일상의 탈출을 도모케하는 진정한 유혹은 바로 아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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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몬 한 조각 띄운 봄베이 JIN 한 잔과 더불어..

Posted by dalgonaa
한국에 있을 당시, 무화과라면 그동안 말린 것만 먹어왔다. 대략 십 몇년 전, 룸살롱에서 일했던 어떤 아는 형이 '안주꺼리'라며 가져다 준 것이 무화과였고 그때 무화과를 처음 맛봤다. 쫄깃한 식감도 좋았고 몸에 좋은 설탕을 쪼려 엉긴듯한 과육도 달콤하니 별스러웠고 씹을 때 마다 톡톡 터지는 씨알은 먹는 재미마저 안겨줬다. 세상에 이런 먹거리도 있구나 하고 신기해했는데 어느덧 그때를 떠올리며 그것의 원조라 할 말리지 않은 무화과를 이곳에서 싫컷 맛보고 있다.

이곳에서 맛보는 무화과는 자두만한 크기로 갓 따내 촉촉하다. 껍질은 연두색을 시작으로 익어가면서 검은 자줏빛을 띄는데 정열적인 색감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여타 과일에 비해 썩 매력적인 모습은 아니다.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는데 그냥 씻어서 껍질째 먹는다. 잘 익은 놈은 특유의 단내를 살짝 풍기기도 하고 손으로 만지면 말랑말랑한 촉감이 식욕을 돋궈준다. 오래 둬서 너무 익어버린 것은 당도도 훨신 높고 껍질도 연해지며 이리저리 구르다 터져 결국 끈쩍한 과즙이 흘러내리기도 한다. 그 느낌이 썩 좋지는 않지만 그 맛은?..  아~주 좋다.



>> 볼품없는 모습, 그러나 한 번 맛을 보고 나면 생각날 때 마다 입안에 침이 고이게 된다. 말캉하게 씹히는 첫 식감이 입안을 즐겁게 하고 곧 혀를 열심히 움직여 바사거리며 터지는 씨알을 찾아내 톡톡 씹는 재미도 은근하다. 키위의 씨알보다 조금 더 바삭한 느낌.

영어 이름은 Fig라고. 학원 수업시간에 선생으로부터 '몰타 역시 지중해에 속한 바, 무화가가 지천으로 널려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간 학원을 오가며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남의 집 담너머의 그 나무들이 무화과 나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실제 이곳에는 무화과 나무가 많다. 심지어 지난 번 자물통 고장으로 집에도 못들어가고 길거리를 헤맬 때 담을 넘어 자라고 있는 무화과를 길에서 직접 따먹기도 했다. (주인이 목격했다면 성을 냈을까? 알 수 없다)

익어서 떨어진 무화과는 때론 사람들의 발에 밟혀 개똥과 더불어 길바닥을 시커멓게 더럽히는 주범의 하나기도 하다. 지난 번 골든베이에 놀러갔을 때 언덕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던 것 역시 무화과였다. 아마 지금부터 가을사이에 골든베이의 언덕에 간다면 군락으로 자라고 있는 무화과를 두려운 눈치 살피지 않으면서 맘껏 따먹을 수 있을테다. 물론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이 비단 우리만은 아닐테니 그 기회의 확률도 줄어들겠지만..



>> Golden bay 언덕의 무화과 군락. 이미 동작빠른 누군가 다 걷어가지 않았을까.. 흑..

무화과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지자 역시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에 얽힌 얘기들이 속속 튀어나온다. 그리스에서 신들이 뛰어놀았다던 시절, 술의 신 바쿠스(디오니소스)는 무화과를 가까이 하고 즐긴 덕에 특유의 정력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고 반면 기독교에선 사과와 더불어 원죄의 상징으로 묘사되곤 한다.

무화과 역시 사과와 더불어 선악과(善惡果)의 하나였던 모양인데, 아무튼 이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요즘엔 '하와'라고 부르는데 어찌 부르건)가 그 순간 육체의 부끄러움에 눈뜨면서 서둘러 사타구니를 가리게 되고 이때 사용된 잎이 무화과 잎이다. '어렸을 적 바라보던 그림의 그 '부분'을 안타깝게 가리고 있던 몹쓸 이파리가 그것이었었군..' 이런저런 질곡을 거쳐 무화과는 다산의 상징이자 욕망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는데 룸살롱과 무화과의 만남이 어쩐지 우연만은 아닌 듯 싶다.  

이런 이야기도 있단다. 1935년, 나운규가 감독한 영화의 제목이 또한 '무화과'라고. 사랑하던 여인이 떠나자 사내는 절망에 젖어 지내게 되고 뒤늦게 여인이 돌아왔으나 사내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무화과같은 사내가 되어버렸다는, 오늘날 보자면 참으로 유치한 제목과 설정이지만 당시로선 꽤나 세련된 은유였을 터. 실제 먹거리로서가 아닌 관념으로서 소비하는 무화과는 그 자체로 이국적인 매력을 풍겼을테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 영화 '무화과' 사진.

이밖에도 무화과에 얽힌 숱한 이야기가 있지만 다 비슷비슷한 동네의 이야기들이다. 가령 클레오 파트라가 좋아했던 과일이 무화라거나.. 그녀가 어디 무화과만 좋아했겠는가만은.. 앞으로 지중해 언저리를 돌아다니다 주어듣게 될 재미난 얘기가 있으면 그때 더 소개키로 하고.

근데 무화과가 꽃 없이 맺히는 열매라는 사실을 모르는건 아닐 터. 기실 무화과는 그 자체가 열매가 아닌 꽃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뭐가 옳건 그건 종(種)학자들이나 관심가질 얘기고 우리는 맛있는 무화과만 즐기면 되겠다. 국내에서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무화과를 재배하나보다. 근데 가격이 만만찮다. 인터넷 가격을 보니 4kg이 45,000원. 1kg에 11,000원인 셈인데 이곳에선 같은 무게를 3,500원 정도에 사먹는다. 1/3가격에 먹는 셈.



>> 말랑말랑한 과육이 보는 것 만으로도 식욕을 돋군다. 비주얼을 떠나서 무화과는 실제로 디저트보다는 애피타이저(혹은 Starter)로 애용된다고. 많이 드시라. 그 말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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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가 말했다.

"나 없이 잘 들 살았냐? 외국물 먹으니 좋다고 떠들더니만 이제 나 없이도 살것제? 하긴 내가 뭔 힘이 있간디.. 지지리도 못생겨서 냄새나 피우고 사람 망신이나 주고 당기는 내가 반가울리가 없겠제.. 그냥 어찌 지내나 구경 한 번 온거시여. 아따~ 몰타 날씨 좋구만. 그럼 계속 들 살아 보드라고, 난 이제 갈랑께.."

"아따 형님 뭔 섭섭한 소리를 그리 다 하씨요?.. 형님 그리움에 밤을 지샌 적이 한 두 밤이 아닝게로.. 퍼뜩 엉덩이 붙이고 앉으씨요. 아따 밖에 뭐하드냐? 언능 형님에게 무화과 실한 놈으로 꼭 짜서 주스 한 사발 드리라잉.. 그나저나 먼길 오시느라 고생했소. 아따 형님 냄새가 장난이 아니구마이.."

"좀 심하제? 어쩌간디? 태생이 이꼬라지로 나부렀는걸.."

"아따 그래도 반갑소잉~ 하기사 형님은 냄새가 좀 나야지라.. 거 며칠 전 독일 베를린이라고, 형님 들어보셨는가 모르겄는디, 아무튼 거기서 온 쬐만한 꼬맹이가 있었는디 난 당최 못알아 보겠소.. 아니 어찌 형님의 탈을 쓰고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요?"

"깡통애 든 아 갸 말하는갑네. 갸는 어쩔 수 없으이. 그래도 그 꼬맹이라도 만나는게 반갑다는 사람 세상에 널렸제. 미원에 푹 담기고 뭣 보댐도 가열을 해서 김치찌게마냥 홀라당 익혔뿔고.. 그게 장기보관땀시로 그런다제? 불쌍한 아이여.. 쯧쯧.. 그나저나 내는 소식도 없고 해서 몰타 사람 다 돼부렀는가 싶었제. 몸은 깜둥이가 다 돼부렀구먼. 여기 햇살이 그리 따가운당가?"

"말 마씨요. 딱 한 시간만 홀딱 벗고 누우면 씨뻘겋게 익업뿌린당께요. 형님도 조심하씨요. 그나 형님은 물 못들어가시겄네. 하기사 비싼 형님이 그깟 짠물에 몸 담그실 일 뭐 있간디요? 내 이미 형님 위해 좋은 물 구해놨소. 형님 멸치랑 친하시제? 내 금마도 불러놨응께 오손도손 얘기나 나눔시로 피로나 푸씨요. 밖에 뭐하드냐? 언능 형님 물 올려라잉~"

"아따 우리 동상 철저하구마잉, 이봐 동상, 자네 알제? 난 뜨거~운 것이 좋당께로~"



"흐미.. 피로가 다 풀린당께로.. 거 비행기란거 탈 것이 못돼부러.. 동상 뭐하는가? 자네도 들어오지 않고?"

"아따 형님, 지는 밥상 차려야지라.. 형님 오랫만에 보니 동상 맘이 참 기쁘요. 그럼 푹 쉬씨요~"


(깜둥이 - 흑인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비속어의 하나. 하지만 본문에선 그 의도와 관계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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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의심은 있었다. 대개의 한국음식, 특히 김치의 경우 그것에 목매다는 유난스런 한국인들의 입맛이라는 것이 어쩌면 미디어의 지나친 의미부여로 과장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 말이다. 그 의심은 실제 넉 달째 해외생활중인 우리 자신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증명이 됐는데 김치 없어도 큰 문제없이 살더라는 것.

수퍼에 가면 비록 낯설긴 해도 한국에서는 감히 구경도 못할, 그리고 평생먹어도 다 먹어치우지 못할 식재료들이 가득가득 쌓여있다. 낯선 모습의 채소는 물론이고 그것을 가공해낸 식품들, 수퍼 내에 별도의 매장으로 운영되고 판매되는 소시지는 그 가지 수를 세고 앉은 것이 바보스러울 정도로 많다. 치즈도 마찬가지여서 먹음직스럽다기 보다는 아름답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진기하고 다양한 치즈가 진열되어 있다. 이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맛보기도 바쁜 마당에 김치는 무슨 김치.



>> 일반적인 치즈 매장의 모습. 왠지 먹기가 아깝게 느껴진다.

며칠 전 독일여행을 다녀온 학원친구(한국인)는 우리에게 선물을 하나 내밀었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뻔데기 깡통과 똑같은 사이즈의 캔, 거기엔 김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주먹보다 작은 캔에도 김치를 담아 파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뭐 먹을 것도 별로 없어보이는 것을 수고롭게 사왔나 하는 '못된'생각도 들었다. 먹고싶다는 생각은 저 뒤 어디쯤에 있었다. 실제 먹어본 맛은 강한 미원 맛 사이에서 김치찌게의 맛과 시큼한 맛이 대충 섞여 있었다.

만약 K-mart에서 저 김치깡통을 판매한다면 우린 사다 먹을까?.. 'No'.  비싼 것도 문제겠지만 이제 어느 정도 미원 맛으로부터 벗어나 제법 건강해진 입맛을 해치고 싶지는 않다. 그 맛을 탐하느니 그보다는 차라리 무거워도 이곳의 달디 단 수박을 사거나 한국에선 여간해선 맛보기 힘든 갓 따낸 무화과를 사먹고 말지. 결국 김치 깡통 역시 과장된 맛의 추억의 한 상징이라는 나름의 의심을 은근히 부추겼다.



>> 지중해의 특별한 산물 '무화과'. 이곳 수박은 일조량이 많아 당도가 아주 높고 껍질도 얇은게 특징. 저기 이상하게 생긴(?) 김치가 보인다.

어제 아침 10시 15분. 우리 플랫의 막내네 집에서 소포로 보낸 김치가 집으로 배달됐다. 그 전에 이미 막내를 통해 '어머니가 김치를 보내셨데요'라고 들은 바 있었으니 2주만에 도착한 것이다. 배달 과정에서 발효돼 터져버려 결국 김치는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김군의 예상을 깨고 김치는 무사히 도착한 것이다.

김치는 10kg에 가까운 제법 많은 양이었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었다. 상자는 부풀어 있었고 뚜껑을 열기 위해 테이프를 뜯기 시작했는데 다 뜯기도 전에 뚜껑을 밀어 제치며 김치를 담은 두터운 비닐이 터질듯이 부풀은 모습으로 튀어나왔다. 그 순간 시큼 매케한 냄새가 확 피어올랐다.  (곧 나가야 해서 우선 여기까지..)



>> 발효된 김치 힘!은 철 상자도 우그려뜨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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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찜통 더위가 기승일 한국에 비해 요즘 몰타의 날씨는 가을 날씨를 연상케할 정도로 쾌적하다. 낮의 태양은 여전히 강렬하지만 그늘진 곳에만 가면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다. 1주 전까진 밤에도 더웠으나 요새는 바람이 불면 제법 쌀쌀해서 이틀 정도는 추위땜에 잠에서 깨 지난 4월에 덮었던 겨울 담요를 꺼내 덮기도 했다. 아침에 맞는 공기는 가을의 그것처럼 어찌나 맑고 청량한지 생각을 정리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날씨는 없다. 이 쾌적함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지중해 기후가 이래서 좋구나를 절감하는 요즘이다. (물론 먼지는 여전하다)



>> 낮에는 요란한 폭죽, 밤에는 화려한 불꽃. 

최근들어 몰타의 이곳 저곳마다 종교와 관련한 축제가 한창이다. 이를 부르는 총칭이 FEAST. 대형 걸개가 내걸리고 브라스밴드의 연주가 끊이질 않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늘을 향해 폭죽과 불꽃을 쏘아댄다. 어제 토요일에는 집 앞 발루타 베이에 위치한 성당에서 큰 행사가 있었다. 덕분에 발코니에 앉아 요란한 불꽃놀이를 편안히 감상했는데 일요일도 낮부터 폭죽을 쏘아대는 턱에 밤에도 어제처럼 불꼿을 쏘겠지 싶어 카메라를 들고 밤 10시 쯤 성당으로 나갔다.

축제는 예상보다 컸다. 차도는 일찌감치 폐쇄되서 이미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고 성당 주변으로는 몰타의 독실한 카톨리 신자들이, 그 언저리의 카페와 길, 해변에는 관광객들이 넓게 포진해 있었다. 사전에 충분히 조율된 듯 마이크를 쥔 신부의 이야기가 끝나면 불꽃놀이와 브라스밴드 연주가 번갈아 진행됐다. 행사의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성당 밖에 있던 성모 마리아 상이 성당 안으로 옮겨지는 것을 끝으로 행사는 마무리됐다.



>> 축제의 현장에 빠질 수 없는 야식가게



>> 도로를 가득 메웠던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하나 둘씩 집으로 숙소로 술집으로 해산.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이들은 심심한 입맛을 달래기 위해 도넛 노점 주위에 모여든다. 도넛에 시선이 꽂혀있는 꼬마들의 모습이 재밌다. 새벽 2시 30분인 지금,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는 취객들의 흥겨운 합창.. FEAST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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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나와 있는 모든 한국인들은 늘 허기지다. 뜨끈한 국물에 밥 가득 말아넣고 묵은 김치 북북 찢어가며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입맛이 스프나 시리얼 따위에 치이다 보면 숟가락은 점점 무거워지고 살은 여위어간다. 그러니 한국인 몇 만 모이면 먹고 싶은 한국음식 이야기로 상다리가 부러져 나가곤 하는데 해외생활 해본 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경험일테다.

이곳 몰타에서 같은 한국인들과 가끔 술 마시는 와중에 성공할 메뉴가 무엇인지를 놓고 재미삼아 떠들곤 하는데 언급된 내용 가운데 가장 성공확률이 높은 메뉴를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김밥. 흰 쌀밥 자체만으로도 건강으로 받아들이는 서구인들에게 형형색색의 채소로 무장된 김밥은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비롭고 아름답다. 거기에 건강과 맛까지 갖췄으니 인기 0순위가 아닐까? 여름으로 치달을수록 늘어만 가는 것은 관광객. 집에서 먹던 식습관을 이곳까지 와서 고집피울 이들은 많지 않을테다.

김밥은 특정 재료 하나를 부각시켜내기도 쉽고 그것이 또한 맛을 지배하기도 쉬워 입맛이 고급이 아닌 사람도 김밥의 매력에 금방 빠질 수 있다. 나름 생각해본 김밥의 필살기는 연어 김밥. 길게 썰은 훈제 연어를 통으로 올리고 채소를 무순 등으로 최소화해 깔끔함을 높인 것이 포인트. 

속재료를 좀 더 다양화하고 그 정보를 메뉴판에 재치있는 그림과 더불어 설명해 놓으면 입맛 까다롭고 괴팍한 서구인들, 특히 동양에서 온 낯선 식재료에 겁부터 집어먹는 이들에게도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음식이 될 것이다. 물론 이들을 사로잡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



>> 몰타에서 처음으로 도전했던 김밥. 부족한 재료로 급하게 만들었던 탓에 맛도 형편없었다. 역시 단무지 빠지면 맛은 심각해진다. 특히 냉동고에 오랫동안 보관한 김에선 비린내가 난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 반드시 살짝 구어야한다.

두 번째 메뉴는 양념치킨. 몰타 제 1의 유흥가 파처빌은 매일 밤은 물론이지만 특히 주말 어느 순간에는 인구밀도가 지구 최고를 기록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술도 고프고 이성도 고프지만 배도 고프다. 이들이 가장 손쉽게 찾는 메뉴는 단연 피자로 여기저기 들고 다니며 먹고 앉아서 먹고 질질 흘리며 먹고 그런다. 이미 예닐곱 피자 집이 성업중이지만 우리가 보기에 맛과 질이 모두 거기서 거기다.

그렇다면 한 입 크기로 튀겨낸 닭강정을 달콤한 양념에 무쳐 땅콩가루 뿌린 뒤 종이컵에 긴 이쑤시개 하나 꽂아 판매하면 어떨까? 이건 아무리 비관적으로 생각해도 대박 예감이다. 살짝 매콤한듯 하면서 달콤하고 치킨의 바삭함과 땅콩의 고소함은 분명 치즈와 토마토 소스에 혹사당한 입맛에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 양념치킨은 분명 파처빌의 야식문화를 독점한 피자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마력의 맛을 갖추고 있다.

높은 칼로리 앞에 주저할 입맛도 있겠지만 일단 파처빌에 왔다면 오늘 한 번 제대로 망가져 보겠다는 각오를 다진 사람일테니 이건 고민꺼리도 안된다.


 
>> 양념치킨의 가까운 사촌 깐풍기. 몰타에서 지금까지 세 번에 걸쳐 해먹은 인기 만점 요리다. 사실 깐풍기도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메뉴지만 손이 좀 많이 간다는 한계가..

세 번째는 돈까스. 이게 거의 핵폭탄이다. 파처빌을 중심으로 모여있는 학원가에는 언제나 굶주린 젊은 이들로 넘쳐난다. 거리에선 10대에서 20대의 혈기들이 웃통까지 까 제끼고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봐야 이들이 손에 쥐는 건 넙대대한 피자 한 조각이 전부. 우리가 보기에도 여간 안타까운게 아닌데 하물며 먼 곳으로 아들 딸 공부보낸 부모의 심정은 오죽하랴.

그래서 부모님의 마음으로 만든 음식, 돈까스^^. 한국에선 돈까스 하나로 빌딩을 세우지 않던가! 그 강력한 맛 한 방이면 파처빌의 길거리 외식계는 그야말로 초토화되지 않을까?

다만 한국과 달리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골고루 섭취하는 이곳이다 보니 돈까스의 주재료인 등심은 한국보다 다소 비싸다.(사실 한국의 돼지고기 등심가격이 터무니 없이 싼게 이상한게지..) 손바닥보다 조금 넉넉한 사이즈로 튀겨낸 돈까스를 큰 칼로 탕탕 내리쳐 먹기좋은 크기로 잘라 일회용 종이접시에 올리고 각종 과일로 우려낸 수제 소스를 얹은 뒤 밥과 샐러드를 가니쉬로 곁들여주는 것으로 끝. 원하면 감자튀김을 곁들일 수도 있다.

굶주린 이들이 보는 앞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퍼포먼스, 특히 돈까스를 탕탕 내리치는 장면은 도네르 케밥을 썰어내는 모습을 지켜볼 때와 비슷한 식욕충동 효과가 있지 않을까? ㅋㅋ



>> 일본에서 맛봤던 돈까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판매하면 몰타에선 재미 못볼 듯. 소스는 훨씬 더 줄이고 상큼한 샐러드를 곁들인 모습을 상상해보시길.. 더불어 맛도..

혹시 해외에서 적은 자본으로 외식사업을 해보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 메뉴를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팁 하나를 소개하자면 곧바로 외국인들을 상대하기 보다는 한국인이나 동양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이들이 열광하면 결국 현지인들도 따라오기 마련일테니. 그나저나 서울에서 종종 즐기던 분식집 열무냉면과 돈까스, 이 환상적 궁합을 다시 즐길 날은 언제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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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닥 재밌지도 않은 사건, 결론부터 얘기하고 잠깐의 사연을 적자면 이렇다. 우선 문은 열렸다. 우리 모두의 판단대로 결국 잠긴 문을 여는 방법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 힘의 문제였다. 믿음직스럽게 생긴 공구들, 가령 전동드릴과 직경 8미리 드라이버가 제 힘을 발휘하자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던 잠금통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고 굳게 닫혀있던 문은 15시간 만에 스르르 열렸다. 그 순간 우리모두 조용한 탄성을 질렀다.

사건을 해결한 주인공은 마르코도, 중간에 다른 루트를 통해 의뢰한 루이스도 아닌 시칠리아에 잠시 머물고 있던 우리집 주인 Mr. 까사르가 보낸 젊은 남자였다. 이 젊은 친구는 우리가 이 집에 처음 입주한 바로 다음 날, 타올과 침대시트를 가져다 준 친구였다는 점을 김군은 어렴풋이 기억해냈다. 놀라웠던 점은 또 있었는데(이 글을 읽는 이들이야 놀랄 일도 아니지만..) 강양이 비용문제를 꺼내자 돌아온 답변은 "No pay!"였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은 까사르씨 밑에서 일하는 직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비용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 '잉? 이건 무슨 관계대명사지?' 경황이 없이 그 친구를 붙잡고 캐물을 수는 없는 노릇, 다만 추측해보면 이렇다.

지난 번 수돗물이 끊겨 Mr. 까사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요상한 공구가방을 들고 등장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뭘 뜯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지하실에서 누군가 실수로 잠근 밸브를 열면서 문제는 간단히 해결됐지만 그의 범상치 않은 모습은 우리에게 '직업이 뭘까?'하는 호기심을 낳게 했다. 두 차례에 걸쳐 고장났던 주방의 COOKER 역시 기술자를 보내 간단히 해결해줬는데 우리는 이 처럼 집주인의 놀라운 신속성에 감탄해오고 있었다.

결국 문을 열어준 젊은 친구의 짧은 답변을 통해 우리는 집주인 까사르씨가 집과 관련된 것이면 뭐든 골치아픈 사건을 해결해주는 분야에 종사한다는 것에 99% 정도의 확신을 갖게 됐다.

영화 '대부'에서 시칠리아 출신의 대부 돈 꼴레오네는 자식들에게 '남자는 주도면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왕 가르치는 김에 또 하나를 가르쳐야 한다면 '남자는 집도 고칠 줄 알아야 한다'가 아닐까? 김군은 가능한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암.. 요리도 할 줄 알면 더 좋고!



>> 문제를 일으킨 손잡이가 쏙 빠져나간 모습. 건너편 집 꼬마들이 구멍을 가르키며 까르륵 웃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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