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Malta 250308~/일상 daylife'에 해당되는 글 46건

  1. 2008.09.28 떠나는 발걸음에 대해서
  2. 2008.09.21 PAPARAZZI, 단골식당 맞다! 2
  3. 2008.09.03 몰타가 놀라운 이유 하나
  4. 2008.08.16 바람불어 좋은 날
  5. 2008.08.15 8.15
  6. 2008.08.13 소포가 도착했다는데.. 5
  7. 2008.08.08 한국 소식 살피니..
  8. 2008.07.26 문이 열리다. 그리고..
  9. 2008.07.25 문이 잠기다
  10. 2008.07.21 휴가의 첫 날 풍경

다음 주 화요일이면 떠나니 이제 이틀 정도 남았다. 끝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즈음에는 대단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면서 동시에 스트레스가 따른다. 갖고 있는 것들 가운데 버릴 것과 가져가야 할 것을 골라내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며 그렇게 나눠진 것들을 처리하는 문제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가져가야 할 것들을 모든 물리적 지식을 동원해 촘촘히 싸야하고 버려야 할 것들은 집앞 쓰레기 수거통에 던져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효용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 사이에 남는 것들, 가령 책이나 IDE방식의 부피 큰 외장하드 따위는 가져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애물인데 결국 이는 한국으로 보낸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10kg 박스포장해서 보내는 가격을 우체국에 물어보니 우리돈으로 15만원, 그럼 고민은 다시 이어진다.

"그 돈이면 차라리 한국 가서 다시 구입해도 되지 않을까?"

뭐가 옳을지 그런 고민 따위로 인해 떠나는 즈음, 저녁의 석양을 좀 더 넉넉해진 마음으로 바라보거나 무심히 지나쳐온 일상들을 특별한 시선으로 응시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뜻대로 잘 이뤄지지 않는다. 글을 쓰는 가까운 친구 하나는 분명 이를 두고 '쯧쯧..' 혀를 차지 싶다. 뭔가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온 천리길이지만 살아온 삶의 구차한 태도들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이 습성은 언제쯤 아문 딱지 떨어지듯 사라져버릴지..


2달 간 김군을 가르쳐온 Sarah와 함께 점심식사를 했고 가깝게 지내온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한국음식을 나눠먹으며 석별의 정을 나눴다. 잔정 많은 루씨가 지난 주 떠난 카샤에 이어 눈물을 쏟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예기치않은 사건으로 곤란에 처했던 같은 학원의 친구가 마침 다소나마 일이 해결돼 떠나는 우리의 발걸음을 더 없이 가볍게 해줬다.

몰타에서 마지막 남은 문제는 공항으로 떠나기 전 집주인과 우리 간에 치뤄야 할 금전문제 뿐. 집주인에게 맡긴 한 달치 보증금을 못돌려 받는 경우가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있지만 우리에게 그런 재앙이 닥치진 않으리라 기대한다. 사용중 다리가 하나 부러진 의자와 아주 조금 벗겨진 거실 벽 페인트 자국이 걸리긴 하지만.. 일부 집주인들은 그런 사소한 것들을 트집잡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원래 집을 계약할 땐 집주인과 함께 집 구석구석을 돌며 상태를 함께 점검하고 심지어 그릇수와 포크 수 까지 세는 것이 기본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집주인인 CASSAR씨가 덜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심증은 가지고 있는데 과연 어떨지.. 화요일 오전, 11시에 집으로 부동산과 CASSAR씨가 오기로 했다. 만나서 전기와 물 사용료를 지불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은 뒤 빠이빠이하고 미리 불러놓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떠나면 몰타의 공식적인 생활도 끝이다.   

한국을 출발할 때 우리가 덕지덕지 챙겼던 짐을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하다. 무게도 무게지만 한 사람당 3개씩의 가방을 이고 졌으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고 특히 이태리 로마 테르미니 역에 도착해선 우리를 표적삼은 눈빛들을 장난아니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기가 한 번 닥치기도 했다.

우리를 마중나온 한인민박의 주인아저씨의 차에 짐을 싣고 올라타서 출발하려고 하니 갑자기 차 앞으로 한 청년이 다가와 본넷을 몇 번 두드리더니 타이어를 가리키는게 아닌가? 차에 무슨 문제가 생겼거니 생각했는데 그 순간 주인아저씨는 뒤를 돌아보곤 험한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뭐라 한 마디 던지곤 시동을 걸어 곧 출발했다. 상황은 이랬다. 한 명이 차 앞에서 본넷을 두드리며 우리를 비롯한 드라이버의 시선을 잡아 끌면 다른 한 명은 그 소리에 맞춰 차의 뒷문을 열고 우리 짐을 털어가려 했던 것. 고도의 팀플레이였다. 다행히 민박집 아저씨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모든 문에 Lock부터 걸어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다.

한 번의 위기는 피했지만 짐에 대한 관리가 이대로라면 안되겠다 싶어 어제 시내를 뒤져 기내에 들고 탈 수 있는 캐리어 하나를 구입했다. 해서 가방 2개에 나눠담던 카메라와 노트북을 비롯 각종 장비들을 캐리어 하나에 담았다. 끌고 다니니 무겁지 않고 설사 누군가 들고 튄다해도 꽉 채우면 거진 20kg에 이르는 이 '쇳덩어리'를 들고 뛰기엔 무리지 싶다. 쫓아가 이단 옆차기로 옆구리를 갈기면 해결되지 않을까?  아무튼 캐리어는 참 잘 샀다 싶어 김군을 매우 흡족해하고 있다. 심지어 캐리어를 쓰다듬기도 한다!

일요일인 오늘은 이탈리아의 주재 영사관이 몰타로 날아와 우리를 비롯한 몇몇 한국교민과 함께 저녁을 먹을 예정이다. 이미 전에도 한 번 식사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여러모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 음식맛을 즐길 틈이 없었다. 영사를 만나는 이유는 앞서 살짝 얘기했듯이 곤란해진 학원 친구 문제때문. 

한국에서라면 별 일 없이 해결되겠건만 몰타에서 그 시간이 꽤나 오래걸린다. 오늘의 식사자리는 이후 일정을 어떻게 꾸려갈지를 모색하는 일종의 작전회의 자리다. 우리가 전반전을 뛰고 이태리로 떠나니 이제 후반전을 이끌어갈 팀을 새롭게 구성하고 전술을 꾸미는 것이 오늘 식사의 목적. 아무튼 여러모로 상황이 좋아지고 있는 점은 그 친구나 우리나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만 그 친구가 곤란한 처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우리의 여정도 그만큼 자유로워질 것 같다. 그때 쯤 우리도 좀 더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제는 스위스에서 반가운 메일을 한 통 받았다. 강양의 같은 반 친구였던 에마와 율크가 10월 중순 경에 일주일 일정으로 우리를 스위스로 초대한 것. 이들은 우리를 초대하기에 앞서 이미 우리를 데리고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할지 이미 계획을 모두 세워놨다고 한다. 동화책을 읽지도 않은 김군에겐 당연히 동화속의 세상도 아닌 스위스가 과연 어떤 느낌일지 여간 기대되는게 아니다. 강양도 모처럼 얼굴에 시종 웃음을 머금고 있어서 옆구리를 툭 건드리기만 해도 웃음이 터지고 있다.

"스위스 사람들은 뭐 먹고 살지? 퐁듀만 먹고 사나?"

지중해 식생활기행에서 느닷없는 스위스는 우리에겐 엄청 기분좋은 보너스다. 하긴 이미 유럽 이곳저곳에 뿌려놓은 '세포'가 많으니 비단 스위스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보너스'를 챙길 기회가 있으리라 야무진 기대를 해본다. 너무 속물스러운가? 아무렴 어때!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고 공기도 제법 차서 이곳이 진정 몰타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은 구름이 뭉텅뭉텅 끼었지만 아랑곳없이 해가 쨍하다. 여름 내내 몸서리친 해였지만 그래도 반갑다. 오늘은 그 햇살에 좀 더 시선을 주려고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런지는.. 그리고 마저 짐을 싸야겠다. 내일은 몰타에서 하루가 온전한 마지막 날. 많고 많은 맥주 가운데 제일 근사한 것을 하나 골라 파도의 묘기를 안주삼아 마냥 지중해를 품어야겠다.

Posted by dalgonaa
지난 몇 주동안 한데 몰려다니며 우의를 돈독히 다져온 주세뻬와 미즈키가 지지난 주 먼저 고향으로 돌아갔고 어제는 이 무리의 멤버였던 카샤와 세바스챤이 역시 고향인 폴란드와 독일로 돌아갔다. 한 달이 채 안되는 기간들을 머무는 짧은 일정들이었지만 이들과 제법 잊혀지지 않을 추억들을 쌓았고 우리에게나 이들에게나 그 시간은 모두의 삶에 특별한 순간으로 남았다.

지난 금요일, 카샤와 세바스챤을 떠나보내는 저녁식사자리가 마련됐다. 기획은 김군, 참여인원은 무려 12명, 그리고 무대는 PAPARAZZI! 이쯤되면 파파라치를 단골식당이라 칭해도 무리는 없을 듯 싶다.






Posted by dalgonaa

 

지중해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것 가운데 하나인 저 불꽃. 저것이 특별한 이유는 화려함이 아니라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터뜨리는 과감함에 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대략 2분 간격의 뜸을 두고 하나씩 터진다. 이 시간에 바닷가 거리에 나가보면 사람들은 여전히 제각각의 속도로 산책을 즐기고 있고 카페에는 와인잔을 가운데 놓고 마냥 검은 바다를 응시하는 이들이 있고 바에는 아무도 안보는 TV 소음아래 맥주와 담배의 냄새가 본격적으로 쪄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들에게 불꽃은 그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해주는 선물이다.

그 무리에 섞이지 않은 사람들, 가령 늘 11시면 잠자리에 드는 우리집 플랫메이트 지희나 같은 시각, 대개 그렇듯 거실에서 컴퓨터앞에 앉아 영화를 보거나 간혹 맛블로거들의 자취를 뒤적이며 입맛을 다시는 우리들에게 불꽃은 이제 더 이상 호기심과 환희의 대상이 아니라 '공해'다. 그나마 밤에 터지는 불꽃은 볼꺼리라도 있다지만(그래봐야 같은 불꽃의 반복) 늦잠자는 주말마다 아침 8시부터 터뜨려대는 폭죽은 도대체 그 이유가 뭔지 이곳 공무원에게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뒤늦게 덧붙이는 글>
공무원 대신 학원 선생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몰타 내에서도 폭죽과 불꽃이 입길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 작은 섬나라 몰타에만 한해 1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FEAST(종교축제)가 열린다. 축제는 깜찍(?)하게도 골목마다 특유의 전통과 자존을 갖고 진행되는데 특별한 개성은 없고 언제나 그렇듯 골목을 따라 알록달록한 술과 휘장이 내걸리고 성모상이나 천사상이 어느 한 켠에 세워진다. 그리고 어느 날, 신부가 앞장서고 음악대가 뒤에서 미는 행렬을 따라 동네 사람들이 요란하게 행진(그래봐야 동네 골목) 한 번 하고 나면 끝이 난다.

문제는 행사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또는 그 위세를 뽐내기 위해 하늘을 향해 능력껏 폭죽과 불꽃을 쏴올린다는 것. 이 같은 경쟁아닌 경쟁이 언제부턴가 지속되고 있고 올해가 좀 더 심해진 경우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생줄리앙이라는 제법 돈 많은 이 동네가 작년까진 이 요란한 소란(?)에 시큰둥해 했는데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그 대열에 가세했기 때문이라고.

불꽃놀이를 반대하는 쪽은 허구헌날 비싼 화약을 하늘로 날려 버리는게 맞는지, 차라리 그 돈이라면 몰타 역시 엄연히 존재하는 빈부의 차를 좁히는데 쓰는게 낫지 않겠냐라는 주장이고 이에 맞서는 쪽은, 몇 가지 논리가 더 있겠지만 관광으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불꽃같은 특별한 이벤트라도 있어줘야 관광객을 엮어내는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여기까지 나와서 남의 복잡한 일에 골몰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이렇다는 사정만 전한다. 다만 앞서도 얘기했지만 폭죽과 불꽃, 이젠 그만 좀 터뜨리고 좀 조용히 해줬으면 하는 바람.. 뭐 사실 이곳을 떠날 날도 머지 않긴 하다. 먼 훗날 이때를 떠올리며 낄낄대겠지..

Posted by dalgonaa

모처럼 바람이 거세다. 평소 아래로 늘어져 있던 야자수 잎은 제 몸을 부러뜨릴 기세로 요란하게 요동치고 있고 옥상의 빨래들은 빨래집게 하나에 의지해 날아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럴 때 컴컴한 구름도 덮히고 비라도 뿌려주면 간만에 우울증에 젖어 지내볼텐데.. 그렇다면 이를 근사하게 장식해줄 점심으로 호박부침개를 할지, 아니면 수제비로 할지에 대한 진지한 궁리가 좀 더 즐거울 수 있겠건만 하늘은 석 달째 그렇듯 구름 한 점 없이 햇볕 쨍이다. 그 변함없음이 징글징글하다.

아침일찍 바다에 나가 수영이나 할까 하던 계획을 접고 그냥 거실에서 풍욕을 즐기고 있다. 비록 시원한 빗줄기는 없지만 초콜렛 빛으로 그을린 몸통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느낌은 여간 부드럽고 달콤한게 아니다. 같은 계절을 살아도 한국과는 전혀 다른 뽀송뽀송 메마른 공기가 만들어내는 감촉은 한국을 떠나기 전 꿈꿨던 지중해의 낭만이란 어쩌면 이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지중해를 상징하는 태양과 푸른바다, 그 속에서 한 없이 낙천적으로 보이는 이곳 사람들의 기질은 바로 이 바람이 없다면 분명 불가능했을 테다. 바람은 나무도 흔들고 빨래도 흔들지만 사람 마음도 흔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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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광복절, 같은 시각 몰타는 St, Maria Fesat, 이른바 성모승천대축일이다. 이는 비단 몰타만이 아니라 카톨릭을 국교로 삼는 나라들은 모두 똑같다고.. 가령 스페인 등등. 그래서 학원도 쉬고 수퍼도 쉬고 쇼핑센터도 쉰다. 그러니 우리도 집에서 그냥 쉬고 있다. 한국 소식에 맘 한 구석 불편함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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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으로 왔다가 학원문이 잠겨 다시 우체국으로 되돌아 갔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학원측 사람으로부터 전달받은 것은 그런 내용을 알리는 달랑 문서 한 장. 도대체 언제 어떻게 왔길래 이런 사태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학원측의 안일한 일처리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된다. 아무튼 그걸 되찾기 위해선 버스를 두 번 갈아타가며 집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Marsa라는 곳으로 가야하는데 우체국은 오후 1시까지만 문을 연다고 하니 천상 내일 아침 학원을 제끼고 책을 찾으러 가야할 듯..

서울의 동생이 보내준 것은 책. 무려 10권이 넘는다. 그 무게만도 10킬로에 이르며 이걸 짊어지고 다닐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그 전에 몽땅 읽어치워 머리속에 집어넣어야 겠지만 아무래도 가능한 수준에서 책을 이끌고 다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현재 향후 일정에 대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9월 사이로 터키를 한 번 짧게 여행하고 다시 몰타로 돌아와 짐 챙겨들고 이탈리아 베로나로 넘어가는 것이 그것이다. 그곳에 가면 엘리자베타가 기다리고 있고 그녀를 통해 이탈리아 여정(또는 짧으나마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과 도움을 받을 예정이다.

동생을 통해 부탁한 책의 목록은 이렇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 한길사
<문화의 수수께끼> - 한길사
<유럽의 음식문화> - 새물결
 
<죽음의 밥상> - 산책자
<희망의 밥상> - 사이언스 북스
<권력자들의 만찬> - 넥서스 북스
 
<빵의 역사> - 우물이 있는 집
<진기한 야채의 역사> - 눈과 마음
<그림으로 본 음식의 문화사> - 예담
 
<감자 이야기> - 지호
<세팅 더 테이블> - 해냄
<음식의 심리학> - 인북스
 
<미식예찬> - 서커스
<요리소설 맛> - 황금가지
<달콤 쌉싸름한 초콜렛> - 민음사

Posted by dalgonaa

박정희 집 문화재 등록, KBS 사장 해임, 구본홍 YTN 사장 취임, 최루액 등장, 기륭전자 노동자 단식 58일째, 초중고 무한경쟁 돌입, 공기업 민영화 논란, 건국 60주년 임시정부 지우기 작업, 그리고 이 모든 이슈를 조용히 덮어줄 베이징 올림픽 개막..   어우.. 토할 것 같다..

Posted by dalgonaa

그닥 재밌지도 않은 사건, 결론부터 얘기하고 잠깐의 사연을 적자면 이렇다. 우선 문은 열렸다. 우리 모두의 판단대로 결국 잠긴 문을 여는 방법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 힘의 문제였다. 믿음직스럽게 생긴 공구들, 가령 전동드릴과 직경 8미리 드라이버가 제 힘을 발휘하자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던 잠금통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고 굳게 닫혀있던 문은 15시간 만에 스르르 열렸다. 그 순간 우리모두 조용한 탄성을 질렀다.

사건을 해결한 주인공은 마르코도, 중간에 다른 루트를 통해 의뢰한 루이스도 아닌 시칠리아에 잠시 머물고 있던 우리집 주인 Mr. 까사르가 보낸 젊은 남자였다. 이 젊은 친구는 우리가 이 집에 처음 입주한 바로 다음 날, 타올과 침대시트를 가져다 준 친구였다는 점을 김군은 어렴풋이 기억해냈다. 놀라웠던 점은 또 있었는데(이 글을 읽는 이들이야 놀랄 일도 아니지만..) 강양이 비용문제를 꺼내자 돌아온 답변은 "No pay!"였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은 까사르씨 밑에서 일하는 직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비용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 '잉? 이건 무슨 관계대명사지?' 경황이 없이 그 친구를 붙잡고 캐물을 수는 없는 노릇, 다만 추측해보면 이렇다.

지난 번 수돗물이 끊겨 Mr. 까사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요상한 공구가방을 들고 등장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뭘 뜯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지하실에서 누군가 실수로 잠근 밸브를 열면서 문제는 간단히 해결됐지만 그의 범상치 않은 모습은 우리에게 '직업이 뭘까?'하는 호기심을 낳게 했다. 두 차례에 걸쳐 고장났던 주방의 COOKER 역시 기술자를 보내 간단히 해결해줬는데 우리는 이 처럼 집주인의 놀라운 신속성에 감탄해오고 있었다.

결국 문을 열어준 젊은 친구의 짧은 답변을 통해 우리는 집주인 까사르씨가 집과 관련된 것이면 뭐든 골치아픈 사건을 해결해주는 분야에 종사한다는 것에 99% 정도의 확신을 갖게 됐다.

영화 '대부'에서 시칠리아 출신의 대부 돈 꼴레오네는 자식들에게 '남자는 주도면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왕 가르치는 김에 또 하나를 가르쳐야 한다면 '남자는 집도 고칠 줄 알아야 한다'가 아닐까? 김군은 가능한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암.. 요리도 할 줄 알면 더 좋고!



>> 문제를 일으킨 손잡이가 쏙 빠져나간 모습. 건너편 집 꼬마들이 구멍을 가르키며 까르륵 웃곤 한다.

Posted by dalgonaa

징조는 있었다. 플랫의 막내가 입주한 후 그녀 혼자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려던 어느 날, 현관문 두 개의 열쇠 구멍 가운데 하나가 열리지 않아 2시간 가량을 문 앞에서 마냥 기다려야 했던 그 날이 바로 그랬다. 집에 돌아와 뒤늦게 그 이야기를 듣고 '쯧쯧.. 미숙한데서 온 문제였겠지..' 혀를 차며 속으로 막내를 구박을 했었다.

근데 어제, 저녁을 먹고 모처럼 저녁 산책 겸 인근 K-mart로 간장과 식초를 사러 나갔다 돌아와 문을 열려고 하니 그 때와 똑같이 문이 열리지 않는게 아닌가? 그때 바로 깨달았다. 막내의 미숙함이 아니었구나..

원인은 금새 파악됐다. 입주 당시부터 약간 덜그덕거렸던 문 손잡이의 잠금 장치가 문제였던 것. 안쪽에서만 잠그는 잠금장치가 비록 밖에서 잠그지 않아도 가끔 자기 스스로 허술하게 잠기는 문제가 있었던 것인데 그때 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겨오다 어제에 이르러 기어이 사고가 터진 것이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시간은 이미 9. 전화를 걸어 마땅히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마침 무슨 종교기념일인지 밖에서는 브라스밴드를 따라 사람들의 긴 행렬을 이루며 지나가고 있었다. '신이시여, 이 늦은 밤, 졸지에 집 없는 떠돌이가 된 우리들을 굽어 살피소서..'

하지만 구원의 전령은 없었다. 우리는 못미더운 신을 서둘러 지우고 앞집의 초인종을 눌러 도움을 요청했다. 문을 여는데 도움이 될 법한 도구가 있나 알아봤지만 이번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독일에서 온, 3대로 구성된 가족들로부터 얻어낸 것은 버터 나이프가 전부. 자신이 직접 열어보겠다며 당차게 맨손으로 달려드는 할머니를 뒤에서 어린 손자가 물끄러미 지켜봤지만 열릴 턱이 없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거리를 떠들썩하게 했던 행렬은 이미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어 유난히 고요해진 그 시각, 플랫 식구 4명은 여전히 어두운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문 손잡이가 조금 더 벌어져 잠금 장치의 내부구조가 드러나긴 했지만 해결책은 그 좁은 틈 속에 어지럽게 얽혀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난해했고 버터 나이프는 덜그럭 덜그럭 같은 수고만 반복했다. 절망이 엄습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물러설 순 없었으니.. 이 순간, 우리에겐 3가지의 선택이 있었다.

첫 째는 현관 유리를 깨고 들어가는 것, 둘 째는 큰 망치를 구해 문 손잡이를 부숴버리는 것, 셋 째는 가장 위험한 것으로 마침 집이 3층 꼭대기 층이니 옥상으로 올라가 발코니 처마로 접근한 뒤 거기서 재주껏 발코니쪽으로 힘껏 뛰어 내리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 세가지 안을 놓고 잠시 토론이 오갔다. 가장 깔끔한 것은 발코니를 통해 들어가는 것이지만 세 가지 안 가운데 도박성이 가장 컸다. 도강에 실패할 경우.. 생각만해도 끔찍해 이는 곧바로 접었다.

유리를 깨고 들어가는 문제도 결국엔 이미 못쓰게 된 문 손잡이에 이어 유리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숙제로 이어진다는 것이 문제였고 마지막으로 손잡이를 부술 망치를 이 늦은 시각에 어디서 구할지가 문제였다. 어느 것 하나 뾰족한 대안은 아니었다. 결국 우리는 모두가 우려하고 기피하면서 감히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던 나머지 네 번째 안을 조용히 제안해 '의결'키로 했다. 그것은 각자 흩어져 하루 잘 곳을 찾아 들어간다는 것.

김군과 강양, 지희는 타군의 집으로 들어가기로 하고 막내는 학원 친구의 집으로 들어가기로 하면서 늦은 밤, 1시간 넘게 이어진 현관문과의 씨름은 일단 막을 내렸다. 건물을 나와 길바닥에서 집을 올려다 보았다.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시쳇말로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그 기분을 뒤로 하고 터벅터벅 발길을 옮겼다.

다음 날. 8 타군네 집을 나와 가까운 철물점을 찾았다. 사정을 설명하자 친절한 철물점 주인은 우리에게 MIKE라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넸다. 우리는 MIKE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꾸물거림 없이 전화를 받았고 주소를 되물은 뒤 15분 후에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는 살짝 들떴고 지희는 특히 더 그랬다. '반듯한' 모범생인 그녀는 수업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감만으로도 지난 밤의 낯선 불편함을 이미 잊은 듯 했다. 모두들 서둘러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집에 도착하자 곧이어 마티즈 승용차 한 대가 도착했다. 알록달록 컬러와 귀엽게 형상화된 열쇠 그림으로 뒤덮인 마티즈는 마치 어린이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운전석에서 지희의 허벅지만한 팔뚝을 가진 사내가 내렸다. MIKE였다. 키는 작지만 우악스런 몸집의 그는 벌써 땀에 젖어 있었다. 그의 팔뚝에 새겨진 한문 문장의 문신을 본 곁눈질로 훔쳐본 지희는 전공인 일어를 통해 익힌 한문실력으로 그 뜻을 헤아려 봤지만 뜻이 엉망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마이크는 비싼 카메라가 튀어나올 법한 반짝이는 은색 금속 가방을 들고 올라왔다. 그리고 문제의 현관 앞에 섰다. 손잡이를 이리저리 돌려본 그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는 금속 가방에서 딱딱한 카드 같은 것을 꺼내 문틈 사이로 끼워넣기 시작했다. 김군은 눈치챘다. 잠금고리의 구조를 역이용하는 것으로 딱딱한 카드가 미끄러져 들어가면 문이 열리는 방식이라는 것을. 하지만 어쩐지 미덥지 못해 보였다.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MIKE 역시 같은 수고를 반복했고 땀도 더 많이 흐르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우리 모두는 결코 내키지 않는 그의 패배를 직감했다. 결국 그 역시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우리를 돌아보며 양 어깨를 들썩하고 치켜세운 그는 '이건 마르코가 열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마르코가 누구냐고 묻자 또 다른 열쇠공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의 이름과 전환번호를 알려주었다. 열쇠공이 자신보다 한 수 위로 인정하는 또 다른 열쇠공 마르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마이크와 달랐다.




>> 갑자기 졸음이 몰려온다. 재미없는 얘기를 가뜩이나 재미없게 써내려니 그럴 수 밖에.. 그냥 지워버릴까 생각하니 여기까지 적은 게 아깝다. 나중에 마저 정리키로 하고 우선 여기서 잠시 멈춰야겠다. 지난 밤, 타군네서 워낙 잠을 편히 못 잔 탓이다. 사진 하나 곁들인다. 고장난 좁은 자물통 틈에서 애꿎게 고생한 Butter Knife.

Posted by dalgonaa
2주 간의 휴가가 시작됐다. 그러나 마냥 들뜨고 즐거운 시간만은 아닐 것 같다. 그간 차일피일 미뤄오던 영상 아르바이트 작업을 고민중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처음으로 가져보는 취재, 영어도 아직 서툰 상황이니 그 부담은 더 크다. 하지만 생활비를 벌기에는 지금이 더 없이 좋은 기회이니 이를 마냥 방치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영상을 납품할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개편으로 폐지된다면, 뭐 그것도 어쩔수 없는거지만 상실감은 분명 있을테니 그 전에 작은 몫이라도 챙겨두는 것이 우리에겐 유리하다. 이번 프로젝트의 갈 길이 워낙 멀기 때문이다.

오늘 내일중으로 서울로 연락을 취해 프로그램과 관련해 담당 PD와 협의를 하려고 한다. 여전히 프로그램은 안정적으로 돌아가는지, 어떤 소재를 하면 좋을지, 우리가 미리 건넬 아이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언제까지 마치면 좋을지 등등..

지난 주 초부터 앞집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아침 6시부터 해머드릴로 벽을 부수고 있는데 소음이 여간 심한게 아니다. 창문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부수고 있는 벽의 범위를 가늠해보니 이번 주 까지는 계속될 것 같다. 동생에게 책을 몇 권 부탁했는데 내일 중으로 우체국을 통해 부친다고 한다. 그 편에 귀마개용 스펀지도 부탁을 했다. 메모리 폼으로 만든건데 마침 우리집의 플랫메이트가 사용하는 것을 빌려 써보니 효과가 뛰어나다. 숙면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귀마개는 50개가 와도 짐스럽지 않지만 책은 상당한 짐이고 부담이다. 9월 이후, 그것들을 짊어지고 다닐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래도 무리를 해서라도 읽으려는 이유는 이곳 지중해, 특히 유럽과 관련해 우리에겐 그 지식이나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남은 기간 지중해 구석구석을 잘 돌아다니려면 그것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근데 당장 먼저 필요한 것은 돈도, 책도 아닌 귀마개일 듯 싶다.



>> 주방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두 사내. 열심히 벽을(정확히는 천정을) 까내고 있다. '몰타는 공사중'이라는 제목으로 포스팅을 하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곳에는 공사장이 많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