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Korea 160409~2009. 10. 22. 00:31
(얼마나 성실하게 쓸지는 모르겠지만 식당 정식 오픈일까지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을 요약해 정리해두려 한다)

잿빛의 시멘트살을 드러낸, 지금은 볼품없는 공간이지만 이제 며칠 후면
푸근한 불빛과 구수한 음식냄새가 가득 넘치는 식당으로 변모하게 될 곳.
채 10평이 안되는 이 작은 공간까지 오는데는 적어도 1년 반이 걸렸다.

작년 3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4년간 살던 오피스텔도 정리하고
한푼 두푼 모은 돈을 챙겨 지중해로 훌쩍 날아갔다.
요리를 배울 생각이었지만 젤 먼저 배운것은 영어였고 이를 위해 도착한 곳은 섬나라 몰타.
시칠리아와 가까워 기후와 삶의 감성은 이탈리아를 닮은 반면  
한때 영국 식민지여서 그 나라의 제도가 곳곳에 베어 있는 이곳에서
6개월간 지내며 결과적으로 수영만 배웠다.

40평짜리 집을 헐값(한국과 비교해)에 임대해줬던 주인과 작별을 고하고
드디어 이탈리아로 건너왔다. 그게 작년 9월 말.
제법 부촌이라는 베로나를 시작으로 밀라노, 베르가모, 토리노, 베네치아, 피렌체, 뻬루쟈 등등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얘기하고 얻어먹고 요리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품었던 파스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이 시간을 거치면서 상당부분 해소됐고 어줍잖은 환상은 김빠진 카스처럼 꺼져갔다.
그리고 올해 4월,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의 따사로운 봄볕을 한없이 아쉬워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기까진 다 아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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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창업에 앞서 서툰 실력을 좀 다듬어 볼 요량으로
한동안 요리학원을 다녔다. 사실은 가구 및 소규모 인테리어 기술을 배워
식당 내부를 직접 꾸며 인테리어비를 아껴보려는 욕심이 큰 동기였는데
나라에서 거의 공짜로 가르쳐주는 과정이 있는 곳은 경상남도까지 내려가야 해서 포기했다.
결국 몇 군데 요리학원을 골라 한곳을 선택했는데(역시 거의 공짜) 
교육내용에 실망만 하고 한 달만에 집어 치웠다.

이것도 대략 아는 이야기.

다만 같은 정부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과제빵과정을 선택해 수강중인 강양은
비교적 잘 짜여진 커리큘럼과 성실한 학원측의 교육으로
그 실력이 일취월장 발전해가고 있다.
(코딱지 만한 가게지만 직접 식사빵을 내는 식의 고집과 자부심은 우리의 최대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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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 떠나기전 살았던 동네가 일산.
한 4년 살다보니, 특히 주말마다 상권을 휘젖고 다니며 밥먹고 술마시다 보니
 나름 자리를 보는 안목이 생겼고 그 확신을 믿고 처음엔 일산쪽에 가게터를 알아봤었다.
서울보단 아무래도 저렴하겠지 하는 기대도 있었는데 웬걸,
서울 뺨치는 가격이다.
15평 채 안되는 공간이 권리금 4천만원에 보증금 2천, 월세 150. 
 유사업종 포화로 제살깎아먹기식 경쟁이 치열한 이곳의 가게세가 이렇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그럼에도 보름이 멀다하고 새로운 가게가 간판만 바꿔달며 오픈하는 모습 또한 참으로 기이하게 느껴졌다.

망해가는 고깃집을 보여준 어느 부동산 아줌마와의 재밌었던 대화 한 토막,

"무슨 식당 하시려고?"
"음.. 양식당이에요"
"아~ 돈까쓰. 이 골목에 그거 하면 참 잘될꺼에요. 여기에 돈까스집이 없어"
"아 네.."


ㅋㅋㅋ
보신탕집이라고 해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을꺼라는건 두 말하면 잔소리.

몇 군데 더 알아봤지만 기대를 건 일산은 결코 싸지 않았다.
서울에 비해 역시 유행이나 그 감이 떨어지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비교적 살기좋은 환경을 갖췄고 4년간 재밌었던 추억의 흔적이 여기저기 뿌려져 있는
이곳에 당장 비비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걸 깨달으며
버스로 빠져나오면서는 내내 기분이 우울했다.  


+++


그로부터 며칠 후,
직사광선이 무척이나 뜨겁던 여름 어느날 오후에 홍대 일대의 부동산을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그리고 며칠을 더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발견한 곳이 바로 지금의 이곳.


"요 옆에 가면 철물점 있어요. 거기가 지금 나와 있습니다"
"몇 평에 얼만가요?"
"10평이 안되는데 권리금 2천에 보증금 1천, 월세 1백이에요"
"그렇군요.. 근데 저희는 식당할껀데 철물점에서 권리금을 받나요?"
"지난 번에도 어떤 사람이 소주집을 하겠다면서 1천5백을 제시했는데 돌려 보냈죠"
"그렇군요.. 가게를 볼 수 있나요?"
"그냥 지나가면서 밖에서 슬쩍 보세요"


지나가면서 슬쩍 안을 들여다봤다.
잡다한 철물재가 두서없이 쌓여있고 그 너머로 한창 TV를 보고 있는 중년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물건이 가득 들어차서인지 가게는 한 눈에 보기에도 좁아보였다.
뒷모습만 보이는 사내에게선 어떤 괴팍함, 고집스러운 분위기가 은근히 느껴졌다. 
그나마 위안은 철물점 바로 옆 같은 평수에서 장사를 막 시작한 작은 북카페였는데
같은 평수와 공간이라고 하니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조립본 결과 사이즈가 나온다는 결론을 얻었다.

당장 자금을 확보한 것도 아니건만 
이미 철물점은 우리꺼라는 애착이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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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과정이 궁금한 이들은 나중에 가게에 오셔서 들으시길..

다만 지금 현재까지의 몇 가지 상황을 정리하면,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일부 벽을 털고 바닥을 높이고 하는 등의 공사가 진행되야 하므로
이를 위한 도면이 그려지고 있는 중이고 목요일 중으로 마무리되면
금요일부터는 망치질소리가 울려퍼질 것 같다.

주방기구는 제품과 구매단가 확인작업이 약 80% 정도 마무리됐고
중앙시장에서 가격을 잘 뽑아 줄 업체만 만나면 될 듯.

어제 용두동의 한 제과제빵기계업체를 찾아 매장에 전시된 오븐을 뒤졌는데
스페인제 중고 오븐을 점찍어 뒀다.  300만원.
380V의 3상 전기를 사용하므로 전기증설은 기본이고 그 비용만도 얼추 100만원이 넘을 듯 싶다.
일반 가정에 기본 공급하는 전기용량이 5Kw라는데 저 오븐만 최대 12Kw.
결국 적어도 20Kw까지는 증설을 해야하는 상황.

디테일한 내부 인테리어를 제외하고 각종 집기를 들여놓을 수 있는 시기는
아마도 내주 중반 이후가 될 듯.
금요일 저녁에는 주방에서 불을 쓸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사실상의 오픈일이 아닐까?^^)

볼로냐에서 만난 최경준君이 내년 봄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우리를 돕기로 했다.
그곳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쉐프 마르코 파디가의 두터운 신임아래 
2년간 요리를 배운 경준이는 올 봄,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이젠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주 지긋지긋해요"

 
비록 짧으나마 우리와 함께 하는 동안은 지긋지긋하지 말아야 할텐데..


(창업일기는 계속..)
Posted by dalgonaa

블로그 댓글이 심상찮아서 뉴스를 검색해보니 이런.. 바로 코앞에서 일어난 일일 줄이야.. 라퀼라(L'aquila)시는 아부르쪼(Abruzzo)주의 주도이고 한때 우리가 살던 뻬루자와 110km 정도 떨어진 도시다. 일전에 집을 알아보는 후보지의 하나로도 라퀼라가 올랐던 기억이 있는데 이런 참변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집에 TV가 있으면 하루종일 틀어놓기 때문에 소식을 금방 알았겠지만 TV도 없고 비니탈리 다녀오고 그것도 밤늦게나 돌아오곤 하니 소식을 알 길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이탈리아 뉴스 사이트들은 온통 이번 충격을 일제히 헤드로 올리고 사진과 비디오를 곁들여 참상을 전하고 있다. 이탈리아 공영 RAI를 보니 사망 179명, 실종 34명, 이재민 1,500명이라는 기사 제목이 떴고 참상이 재연될 수도 있다고 하니 원..

우리가 머물던 뻬루자, 그리고 이번 재난이 발생한 라퀼라(해발 700미터)시는 모두 이탈리아의 척추라 할 아펜니노 산맥에 걸쳐져 있는 유서깊은 도시들이고 우리가 속해있던 움브리아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아브루쪼주, 마르께주, 몰리세주 등이 아펜니노 산맥을 품고 있는 주요 주들이다. 2천미터를 넘나드는 산줄기를 따라 도시들이 들어섰고 따라서 많은 곳이 철도나 고속도로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특징. 한국 뉴스를 보니 치료시설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하고는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것도 워낙 짱박혀 있는 곳들이 많기 때문. 기반시설을 닦기가 어려운 지형들인지라 외부로부터 물자를 신속하게 공급받는데 어려움이 클테다.

아무튼 멀리서 걱정해주시니 고맙고 볼로냐는 안전하니 너무 걱정들 마시길. 근데 볼로냐에도 저런 재앙이 닥친다면 정말 끔찍하지 않을 수 없는게 이곳의 주택 밀도가 엄청 높고 특히 100미터 높이로 솟아 위태위태해 보이는 타워가 무너지는 건 한순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게 무너지면 볼로냐 전체가 무너지는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게 집들을 덮친다면.. 볼로냐 시민들의 자부심에서 재앙으로 바뀌는건 시간문제.  

Asinelli 타워의 위용. 높이 97미터의 이 타워는 내부에 나무계단이 설치돼 있어 3유로만 내면 올라갈 수 있어 볼로냐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 12~13세기 사이에 볼로냐에는 크고작은 타워가 무려 180개나 세워져 있었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규모다. 방어목적으로 추측될 뿐 왜 그렇게 많은 타워를 세웠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지금은 대부분 무너지고 무너뜨리고 해서 그때의 딱 1/10 규모만 남아있는 상태. 그 가운데의 핵심이 바로 저 아씨넬리 타워다.  



우리 집 화장실에서 바라본 모습. 아씨넬리가 무너지면 여기까지 미치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저 아래 다다닥 붙은 집들이 재앙을 피해갈 길은 없다. 오늘 아침도 날씨가 너무 좋다. 재앙이 닥친 동네에 그나마 추운 비가 안내려 다행, 어서 상처가 아물길..
Posted by dalgonaa
오래전 유럽을 여행할 때 밀라노에서 밤기차를 갈아타고 프랑스 남부 모나코로 향하던 중 새벽 무렵 산레모(San Remo)역을 지나면서 어쩐지 이름이 낯익다며 한참을 고민했는데 모나코에 닿기 전 결국 산레모 가요제를 떠올리면서 답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지난 달 2009년 산레모 가요제가 열렸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가요제답게 개막 한 달을 앞두고 TV에선 버전을 바꿔가며 광고가 쏟아져 나왔고 즐겨보는 요리프로그램 라 프로바 델 꾸오꼬의 방송시간을 줄여가면서 두 차례에 걸쳐 기자회견을 생중계하는 등 이탈리아의 모든 매체들이 가요제 소식을 숨가쁘게 전했다. 좀 호들갑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튼 요즘 라디오는 물론 거리에선 산레모 가요제에서 불려진 노래들이 쉴새없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어느새 우리 귀에도 익숙해져 흥얼거릴 정도가 됐고 최근 작업중인 영상에도 적절하게 쓰일 곡이 필요해 앨범을 구입했다. 수록된 앨범 가운데 요즘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두 곡을 첨부한다. 

ARISA의 Sincerita('정직'이란 뜻인데 곡은 슬픈 내용이라고..)와 POVIA의 Luca era gay(루까는 게이였다)라는 두 곡. 그야말로 요즘 이탈리아 전역을 달구고 있는 따끈따끈한 곡들이다. 

Sincerita

(아래는 Sincerita의 가사 내용을 뒤지던 중 누군가 영어번역을 부탁하는 내용과 그에 대한 답글이다. 재미삼아 첨부한다 ㅋㅋ)
I heard this cute Italian song called "Sincerità" by Arisa, but I don't know what it means. Can someone help me translate? (I found a machine translation but it wasn't very good; I would really appreciate a translation from someone who actually speaks Italian!) Thanks!

Sincerità
Adesso è tutto così semplice
Con te che sei l'unico complice
Di questa storia magica
Sincerità
Un elemento imprescindibile
Per una relazione stabile
Che punti all'eternità
Adesso è un rapporto davvero
Ma siamo partiti da zero
All'inizio era poca ragione
Nel vortice della passione
E fare e rifare l'amore
Per ore, per ore, per ore
Aver poche cose da dirsi
paura ed a volte pentirsi
Ed io coi miei sbalzi d'umore
E tu con le solite storie
Lasciarsi ogni due settimane
Bugie per non farmi soffrire
Ma a volte era meglio morire
Sincerità
Adesso è tutto così semplice
Con te che. sei l'unico'complice
Di questa storia magica
Sincerità
Un elemento imprescindibile
Per una relazione stabile
Che punti all'eternità
Adesso sembriamo due amici
Adesso noi siamo felici
Si litiga quello è normale
Ma poi si fa sempre l'amore
Parlando di tutto e di tutti
Facciamo duemila progetti
Tu a volte ritorni bambino
Ti stringo e ti tengo vicino
Sincerità
Scoprire tutti i lati deboli
Avere sogni come stimoli
Puntando all'eternità
Adesso tu sei mio
E ti appartengo anch'io
E mano nella mano dove andiamo si vedrà
Il sogno va da sé, regina io e tu re
Di questa storia sempre a lieto fine
Sincerità
Adesso è tutto così semplice
Con te che sei l'unico complice
Di questa storia magica
Sincerità
Un elemento imprescindibile
Per una relazione stabile
Che punti all'éternità ...


Hello! I'm Italian. I don't think that my english is perfect, but i want to try to translate this song for you:

sincerity
now everything is so easy
with you that are the only accomplice
of this magic history
sincerity
an essential element
for a stable relationship
that it aims to the eternity
now it's really a relationship
but we start to zero
in the beginning it was little reason
in the vortex of the passion
to make and refer love
for times, for times for times,
to have little things to talk
fear and sometimes to repent us
and me with my humor starts
and you with your usual history
to fake every two weeks
lies for don't let you soffer
but sometimes it was better to die
sincerity
now everything is so easy
with you that are the only accomplice
of this magic history
sincerity
an essential element
for a stable relationship
that it aims to the eternity
now we seem two friends
now we're happy
we quarrel but this is normal
But the we make always love
talking about everything and everyone
we make two thousand projects
You sometimes return a child
i tighten you and i hold you nearby
sincerity
to discover every weak side
to have dreams like stimuli
aiming to the eternity
now you're mine
And i belong to you, too
and hand in hand where we will go we will see it
the dreams goes from itself, i queen and you king
of this history that has got always a good end
sincerity
now everything is so easy
with you that are the only accomplice
of this magic history
sincerity
an essential element
for a stable relationship
that it aims to the eternity

Is that a good translation? make me know... kisses from sicily!!
Source(s):  i've learned english at school



Luca era gay
Posted by dalgonaa

좀 지난 얘기. 파르마에서 돌아오던 날, 제 시간보다 30분이 늦을꺼라는 전광판을 보고 잠시 절망하며 시간도 애매해 그냥 플랫폼에서 자리를 지켰다. 그동안 유로스타라는 이름을 붙인 미끈한 열차가 우리 곁을 스치고 빠져나갔다. 아래 사진.


날렵한 유선형의 거대한 쇳덩이, 역내에 들어서기 직전 짧게 기적 한 번 울려주곤 달려오던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그대로 달려 역을 빠져나간다. 앞에 탱크라도 한 대 세워놨다면 적어도 물리적 광경 하나는 볼만하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들게 할 정도로 날렵한 열차의 스피드는 묘한 흥분과 자극을 불러 일으켰다. 그 스피드의 묘미에 젖은 사람들이 F-1 경기장을 찾는가보다.


유로스타는 몇 번 더 지나갔다. 차가운 공기, 짜증과 무료함을 달래려는 담배연기가 자욱해진 역내는 저 스피드 괴물이 지나갈 때 마다 한 번씩 뒤집어지곤 했다. 아무튼 쏜살같이 빠져나가는 열차를 구경하는 것으로 우리도 무료함을 달랬다.  혹시 오해할까 싶은데 저 유로스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유로스타'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유로스타라 함은 도버 해저터널을 통해 런던과 파리, 브뤼셀을 오가는 고속열차를 가리킨다. 혹시 저 이탈리아 유로스타가 그 노선의 확장이라 생각하면 오해다. 이탈리아 유로스타는 TRENITALIA에서 운영하는 자체 고속열차일 뿐 그것과는 관계가 없다. 그 이름도 피아트 그룹의 이베코(IVECO)라는 트럭회사가 갖고 있는 이름을 라이센스로 구입해 열차에 붙였을 뿐이다. (한국에서도 그 이름의 트럭을 볼 수 있는데 그게 피아트사(社) 계열이더라는) 

30분 연착한다던 열차는 이왕 늦은거 10분 더 늦어 결국 40분만에 도착했다.

Posted by dalgonaa


싱싱한 멸치(Anchovy)를 사다가 머리따고 내장따고 흐르는 물에 깨끗히 씻은 뒤 밀가루 가루만 입혀 기름 자작히 두른 프라이팬에 튀겨냈다. 여기에 이탈리아 샐러리를 채썰어 흩뿌리고 위에 소금도 뿌려 간을 잡은 뒤 마지막으로 레몬 한 조각을 쥐어 짜 상큼함을 입혀주면 이놈이 한 마디로 백포주 도둑놈이 된다. 뼈가 연해 씹어도 부담없고 보슬보슬한 살이 제법 기름져 육기가 아쉬울 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이 된다.

해산물이 비교적 풍부한 우리로선 멸치 정도는 그냥 우습게 보는 생선이 아닐까 싶은데 유럽으로 오면 멸치는 좀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올리브유에 차곡차곡 정갈하게 담겨 판매되거나 생물도 깨끗히 씻겨져 포장돼 판매되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 염장된 안초비(이탈리아 이름은 알리치-Alici)의 경우 식탁에선 파스타와 함께 볶이거나 피자에 올려져 구워지며 생물을 즐기는 경우라면 사진처럼 튀겨먹거나 푹 고아서 뼈를 발라낸 뒤 특별한 소스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유럽은 어딜가나 해산물이 귀하고 비싸다. 하물며 이탈리아도 그렇다. 고등어의 경우 생물 기준으로 1kg에 8유로, 우리돈 14,000원이고 한국에서 가격 폭락으로 울상이라는 오징어도 비슷한 시세로 팔리고 있다. 다행히 멸치는 생물이 500gr에 3,000원 정도 하니 그게 어디냐는 심정으로 저처럼 튀겨먹고 때론 찌개를 끓여먹곤 한다.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4. 08:32


'스플리쯔(Spritz)'는 베로나, 넓게는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즐기는 음료다. 사실은 칵테일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와인잔에 물과 화이트 와인, CAMPARI라고 하는 술을 섞어 오렌지 한 조각과 얼음을 담가내면 되는 간단한 술인데 하루에 한 잔은 거의 마시고 있다. 지금 두 잔을 마시고 들어왔더니 살짝 알딸딸하다. 

베로나 4일째, 근황을 전하자면 이렇다. 절대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 엘리자베타의 집에서 여전히 머물고 있으며 이런저런 생소한 경험들을 하고 있다. 이는 바꿔말하면 이곳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이에 대해선 천천히 얘기하기로 하고, 우선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과 언어다. 엘리자베타의 집은 훌륭하다. 굉장히 넓은 집은 아니지만 갖출 것은 모두 갖춘, 성공한 캐리어 우먼의 멋진 집이다. 출판업계에 일하는 그녀의 직업답게 집에는 온갖 종류의 책이 넘친다. 시샘하게 만드는 주방에 깨끗한 화장실도 두 개다. 우리가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는 집이지만 그녀에게도 사생활은 있는 법.


마냥 그녀의 집에 머문다는 것은 그녀의 소중한 삶의 일부를 우리가 점령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슬슬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니 서둘러 집을 구해야 한다. 사실 그녀도 은근히 원하는 눈치. (그런 그녀의 속내가 오히려 반갑다)

베로나가 몰타처럼 넓은 공간에 저렴한 집은 없지만 그래도 이러저런 임대광고는 제법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비자문제 때문에 몇 개월 이상의 임대계약을 망설이고 있다. 우선은 한달에 900유로(한화 150만원)에 이르는 비싼 레지던스에서 머물 예정이다. 이 한 달 동안 비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알아보고 이탈리아 취재기행의 계획을 잡을 예정이며 이후 좀 더 저렴한 집에 대한 정보를 찾을 것이다. 일이 잘 풀린다면 한 달 후엔 500유로 이하의 집으로 옮기지 않을까 싶다.

우선 토요일인 오늘은(날이 밝았으므로) 엘리자베타와 함께 VERONA로 부터 대략 한 시간 거리의 PADOVA를 방문할 예정이고 월요일엔 역시 그녀를 따라 MILANO를 다녀올 예정이다. PADOVA는 그녀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도시로 그녀는 부모님을 만나고 우리는 시내를 구경한 뒤 그날 당일 돌아올 것이고 MILANO에선 하루 묵을 예정. PADOVA도 굉장히 멋진 도시라는데 우리가 그곳에 거는 기대는 한국식당에서의 식사와 식당 주인을 통해 고추장 판매처를 수소문해 고추장을 사오는 것이다. 나중에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베로나에 산재한 식당에서 즐기는 식사는 정말로 대부분 맛이 좋다. 그러나 열 접시의 훌륭한 스파게티가 한 스푼의 고추장을 못당하는 것이 우리의 유난스런 입맛이니 어쩌랴.. 

그 다음 문제는 언어다.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해봐도 언어를 모르고선 이탈리아에서 하다못해 음식 한 접시 제대로 주문하기가 어렵다. 단지 스쳐지나가는 관광객이라면 까르보나라를 시켰는데 뽀모도로가 나와도 그 맛이 또한 훌륭하니 우연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며 까탈스럽게 따지지 않겠지만 우리가 그 입장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에게 좀 더 구체적인 소통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해서 오늘, 일벌레인 엘리자베타의 성실한 중재로 만난 사람이 바로 안드레아다.


왼쪽이 엘리자베타, 오른쪽이 안드레아. 엘리자베타의 단골 미장원의 또 다른 단골 손님인 안드레아는 미장원 주인 클라우디아의 중개로 소개받았으며 그는 베로나 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했다. 우리는 카푸치노를 마셨고 저 두 사람은 에스프레소를 거의 원샷하다시피 마셨다. 이탈리아어 개인 교습이라는 주제를 가운데 놓고 우리는 안드레아로부터 궁금한 점을, 안드레아는 우리에게 궁금한 점을 서로 묻고 답했다.

안드레아는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희소식을 전하기도 했는데 마침 성당에서 운영하는 무료 이탈리아어 강좌가 일주일에 2회 열린다는 것. 그 수업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리고 그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동시에 자신 또한 그곳에서 자원활동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에게 우리는 어쩌면 남다른 경험의 기회일 수도 있을테다. 이 자리에서 엘리자베타는 직업을 찾고 있는 안드레아에게 (이제야 얘기하지만 그녀는 GIOUNTI라고 하는 출판사 겸 서점의 중역이다) 안드레아가 스페인어와 러시아어를 구사한다는 점을 높이 사 그에게 취업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강습비 얘기는 엘리자베타가 이탈리아어로 먼저 안드레아에게 물었다. 안드레아는 선뜻 답을 내놓지는 못했고 이런 경우가 자신에게 처음이니 우선 여자친구와 함께 상의하겠다고 한다. 그러라고 하면서 엘리자베타는 자신의 집에서 일주일에 3번 와서 청소를 도와주는 필리핀 여성 레오노르의 경우 시간 당 7.5유로(11,000원)의 돈을 지불하고 있며 그 금액의 더블은 어떻냐는 1차 제안을 던졌다.

이는 우리나 안드레아,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제안이었다. 왜냐면 누구도 기준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당 20유로 안쪽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사실 우리가 하기에 따라 그 시간을 훨씬 넘겨 수업을 이끌 수도 있다. 만나본 안드레아는 매우 성실해 보였으며 우리와 우리의 계획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점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뒤 중매역할을 한 엘리자베타는 자신의 일을 위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리는 안드레아와 함께 카페 옆 대학건물로 이동해 그곳의 시설과 도서관 이용방법을 전해듣고 길 건너 편, 즉 우리가 아마도 한 달간 머물게 될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공용 자습실(?)도 소개받았다. 이 공간이 무척 흥미로웠는데 대학부속건물은 아니고 베로나 시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안에는 그저 형광등과 테이블, 의자가 전부이며 누구나 와서 자신의 책을 보거나 신문을 보고 가면 그만이다. 안쪽 구석에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중이었으며 분위기는 꽤나 엄숙했다. 사진에 담진 못했지만 밖에서 담배피던 신장 190에 이르는 사내는 거의 키아누 리브스의 판박이어서 김군 마저 매료시켰다는..


날씨는 제법 맑았으나 유난히 바람이 쎄서 추위를 느낀 하루. 누구의 시선없이 맘 편하게 머물 집이 당장 없다는 것은 정말이지 큰 스트레스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절감한 하루다. 집과 언어, 이 두 가지를 위해 요 며칠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아직 확실해진 것은 없다. 당장 한 달간 기거할 집은 거의 정해졌지만 임대료가 너무 비싸 한 달 후엔 새로운 집을 찾아 옮겨야 한다. 이탈리아어 강습도 아직 무료강좌를 나가보지 않아 어떤지 정확히 모르겠고 개인교습도 강습비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과연 얼마 동안을 배워야 우리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지 아무도 모른다. 거기에다 비자의 불안정함까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낯선 땅 베로나에서 조금식 인연을 넓혀가고 있으며 그들 모두 우리에게 적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안드레아가 그렇고 세인트 토마스 카페의 리자가 그렇고 당연히 엘리자베타가 그렇다. 이 모든 것이 행운이라면 그 행운은 과연 어디까지 지속될지, 당장 우리가 걱정하는 집 문제와 언어 문제에도 행운은 따라줄지.. 

아래 사진은 세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의 발코니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마침 손 붙잡고 지나가는 연인 너머로 사랑의 맹세, 혹은 바람을 적은 간절한 쪽지들이 마치 한 폭의 미술작품처럼 붙어 있다. 여담이지만 베로나는 확실히 한국여행자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눈씻고 찾아봐도 한국어 쪽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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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1. 18:47

식사를 마치고 거닐은 밤 거리. 콜레세움을 닮은 경기장과 그 앞에 선 두 사람, 엘리자베타와 엔리코. 모든 것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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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1. 07:45

하루종일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무사히 베로나에 도착했다. 우려했던 짐 분실도 없었고 혹시 집을 못찾을까 했던 걱정도 기우였다. 지금 막 자정을 넘긴 시각, 엘리자베타와 그녀의 전 남편의 극진한 환대속에 맛있는 식사로 배를 가득 채우고 몰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길을 한가롭게 걷다가 OSTERIA라고 부르는 BAR에 들러 즉석에서 조직된 손님들 기타 라이브를 안주삼아 입가심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서 인터넷을 켜니 아주 희미한 신호 하나가 잡히기에 이렇게 몇 자로 안부를 전한다. 사무실, 혹은 집의 컴퓨터로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우리가 느끼는 바를 공유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늘 아쉬운데 오늘은 더 많이 아쉽다. 훨씬 짧은 비행이었음에도 한국에서 몰타로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의 느낌으로 날아온 베로나. 여전히 긴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지만 오늘 저녁에 짧게나마 훑어본 베로나는 우리를 단번에 매료시켰다. 날 밝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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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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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화요일이면 떠나니 이제 이틀 정도 남았다. 끝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즈음에는 대단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면서 동시에 스트레스가 따른다. 갖고 있는 것들 가운데 버릴 것과 가져가야 할 것을 골라내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며 그렇게 나눠진 것들을 처리하는 문제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가져가야 할 것들을 모든 물리적 지식을 동원해 촘촘히 싸야하고 버려야 할 것들은 집앞 쓰레기 수거통에 던져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효용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 사이에 남는 것들, 가령 책이나 IDE방식의 부피 큰 외장하드 따위는 가져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애물인데 결국 이는 한국으로 보낸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10kg 박스포장해서 보내는 가격을 우체국에 물어보니 우리돈으로 15만원, 그럼 고민은 다시 이어진다.

"그 돈이면 차라리 한국 가서 다시 구입해도 되지 않을까?"

뭐가 옳을지 그런 고민 따위로 인해 떠나는 즈음, 저녁의 석양을 좀 더 넉넉해진 마음으로 바라보거나 무심히 지나쳐온 일상들을 특별한 시선으로 응시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뜻대로 잘 이뤄지지 않는다. 글을 쓰는 가까운 친구 하나는 분명 이를 두고 '쯧쯧..' 혀를 차지 싶다. 뭔가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온 천리길이지만 살아온 삶의 구차한 태도들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이 습성은 언제쯤 아문 딱지 떨어지듯 사라져버릴지..


2달 간 김군을 가르쳐온 Sarah와 함께 점심식사를 했고 가깝게 지내온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한국음식을 나눠먹으며 석별의 정을 나눴다. 잔정 많은 루씨가 지난 주 떠난 카샤에 이어 눈물을 쏟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예기치않은 사건으로 곤란에 처했던 같은 학원의 친구가 마침 다소나마 일이 해결돼 떠나는 우리의 발걸음을 더 없이 가볍게 해줬다.

몰타에서 마지막 남은 문제는 공항으로 떠나기 전 집주인과 우리 간에 치뤄야 할 금전문제 뿐. 집주인에게 맡긴 한 달치 보증금을 못돌려 받는 경우가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있지만 우리에게 그런 재앙이 닥치진 않으리라 기대한다. 사용중 다리가 하나 부러진 의자와 아주 조금 벗겨진 거실 벽 페인트 자국이 걸리긴 하지만.. 일부 집주인들은 그런 사소한 것들을 트집잡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원래 집을 계약할 땐 집주인과 함께 집 구석구석을 돌며 상태를 함께 점검하고 심지어 그릇수와 포크 수 까지 세는 것이 기본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집주인인 CASSAR씨가 덜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심증은 가지고 있는데 과연 어떨지.. 화요일 오전, 11시에 집으로 부동산과 CASSAR씨가 오기로 했다. 만나서 전기와 물 사용료를 지불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은 뒤 빠이빠이하고 미리 불러놓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떠나면 몰타의 공식적인 생활도 끝이다.   

한국을 출발할 때 우리가 덕지덕지 챙겼던 짐을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하다. 무게도 무게지만 한 사람당 3개씩의 가방을 이고 졌으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고 특히 이태리 로마 테르미니 역에 도착해선 우리를 표적삼은 눈빛들을 장난아니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기가 한 번 닥치기도 했다.

우리를 마중나온 한인민박의 주인아저씨의 차에 짐을 싣고 올라타서 출발하려고 하니 갑자기 차 앞으로 한 청년이 다가와 본넷을 몇 번 두드리더니 타이어를 가리키는게 아닌가? 차에 무슨 문제가 생겼거니 생각했는데 그 순간 주인아저씨는 뒤를 돌아보곤 험한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뭐라 한 마디 던지곤 시동을 걸어 곧 출발했다. 상황은 이랬다. 한 명이 차 앞에서 본넷을 두드리며 우리를 비롯한 드라이버의 시선을 잡아 끌면 다른 한 명은 그 소리에 맞춰 차의 뒷문을 열고 우리 짐을 털어가려 했던 것. 고도의 팀플레이였다. 다행히 민박집 아저씨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모든 문에 Lock부터 걸어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다.

한 번의 위기는 피했지만 짐에 대한 관리가 이대로라면 안되겠다 싶어 어제 시내를 뒤져 기내에 들고 탈 수 있는 캐리어 하나를 구입했다. 해서 가방 2개에 나눠담던 카메라와 노트북을 비롯 각종 장비들을 캐리어 하나에 담았다. 끌고 다니니 무겁지 않고 설사 누군가 들고 튄다해도 꽉 채우면 거진 20kg에 이르는 이 '쇳덩어리'를 들고 뛰기엔 무리지 싶다. 쫓아가 이단 옆차기로 옆구리를 갈기면 해결되지 않을까?  아무튼 캐리어는 참 잘 샀다 싶어 김군을 매우 흡족해하고 있다. 심지어 캐리어를 쓰다듬기도 한다!

일요일인 오늘은 이탈리아의 주재 영사관이 몰타로 날아와 우리를 비롯한 몇몇 한국교민과 함께 저녁을 먹을 예정이다. 이미 전에도 한 번 식사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여러모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 음식맛을 즐길 틈이 없었다. 영사를 만나는 이유는 앞서 살짝 얘기했듯이 곤란해진 학원 친구 문제때문. 

한국에서라면 별 일 없이 해결되겠건만 몰타에서 그 시간이 꽤나 오래걸린다. 오늘의 식사자리는 이후 일정을 어떻게 꾸려갈지를 모색하는 일종의 작전회의 자리다. 우리가 전반전을 뛰고 이태리로 떠나니 이제 후반전을 이끌어갈 팀을 새롭게 구성하고 전술을 꾸미는 것이 오늘 식사의 목적. 아무튼 여러모로 상황이 좋아지고 있는 점은 그 친구나 우리나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만 그 친구가 곤란한 처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우리의 여정도 그만큼 자유로워질 것 같다. 그때 쯤 우리도 좀 더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제는 스위스에서 반가운 메일을 한 통 받았다. 강양의 같은 반 친구였던 에마와 율크가 10월 중순 경에 일주일 일정으로 우리를 스위스로 초대한 것. 이들은 우리를 초대하기에 앞서 이미 우리를 데리고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할지 이미 계획을 모두 세워놨다고 한다. 동화책을 읽지도 않은 김군에겐 당연히 동화속의 세상도 아닌 스위스가 과연 어떤 느낌일지 여간 기대되는게 아니다. 강양도 모처럼 얼굴에 시종 웃음을 머금고 있어서 옆구리를 툭 건드리기만 해도 웃음이 터지고 있다.

"스위스 사람들은 뭐 먹고 살지? 퐁듀만 먹고 사나?"

지중해 식생활기행에서 느닷없는 스위스는 우리에겐 엄청 기분좋은 보너스다. 하긴 이미 유럽 이곳저곳에 뿌려놓은 '세포'가 많으니 비단 스위스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보너스'를 챙길 기회가 있으리라 야무진 기대를 해본다. 너무 속물스러운가? 아무렴 어때!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고 공기도 제법 차서 이곳이 진정 몰타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은 구름이 뭉텅뭉텅 끼었지만 아랑곳없이 해가 쨍하다. 여름 내내 몸서리친 해였지만 그래도 반갑다. 오늘은 그 햇살에 좀 더 시선을 주려고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런지는.. 그리고 마저 짐을 싸야겠다. 내일은 몰타에서 하루가 온전한 마지막 날. 많고 많은 맥주 가운데 제일 근사한 것을 하나 골라 파도의 묘기를 안주삼아 마냥 지중해를 품어야겠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