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Malta 250308~/여행 travel'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08.09.29 몰타 마지막 포스팅
  2. 2008.08.27 발레타의 짧은 여행
  3. 2008.08.17 La vitta e vella! 3
  4. 2008.08.04 매혹의 빛깔, 코미노 2
  5. 2008.07.28 FEAST
  6. 2008.07.22 채소상 이야기로 낙점? 2
  7. 2008.07.20 바베큐의 추억
  8. 2008.07.12 지중해에서 여름나기 2
  9. 2008.07.07 두 번째 만남을 위해 - Tashiro 가족 이야기 1
  10. 2008.07.02 해변으로 가요 2 4



이탈리아에서 봅시다.
Posted by dalgonaa

요 며칠 몸이 피곤할 정도로 정신없이 바빴다. 8월 26일 화요일 이날도 중요한 일 때문에 몰타의 수도 발레타를 다녀와야 했는데 오전중으로 일이 마무리되다 보니 몸도 지치고 해서 점심은 그냥 이곳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역시 수도는 수도인가 보다. 사진에서 보이는 중앙대로 'TRIQ IR REPUBBLIKA' 엔 어느새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대단한 볼꺼리가 있는 것도 아니건만..



저들 중 아마 절반 이상은 관광객.(몰타 인구 40만, 여름철 관광객 수 120만) 그들이 이곳에 온 이상 꼭 둘러봐야 할 곳이 있다면 바로 아래다.



성 요한 성당(St. John's co - Cathedral). 밖에서 볼 때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이 성당에 저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줄을 서는 이유는 뭘까? 그 옛날, 이슬람과 기독교간 쟁탈전이 자주 벌어진 곳의 하나가 이곳 몰타였다. 덕분에 이곳엔 유럽 본토에서 파견된 연합 기사단들이 많았고 그들이 죽으면 이곳 성당 바닥에 뭍어 화려한 대리석으로 그 위를 치장했다고 하니 이는 관광객으로 하여금 아련한 역사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입장료 5.80유로, 우리돈 9천원을 내고 저 문을 들어서려는 진짜 이유는 카라바조의 그림, '세례 요한의 참수' 때문일 듯 싶다. 살인을 저지르고 평생 쫓기는 삶을 살아야 했던 그 유명 화가는 유독 '목 잘린'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이곳에 걸려져 있는 '걸작' 또한 그 가운데 하나다.



이탈리아를 떠돌다 기사단에 묻혀 몰타로 들어온 카라바조는 1608년 이 작품을 그렸고 가로폭이 5미터를 넘는다고 하니 그 압도감이 어떠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림에 관련된 내용이 궁금한 이들은 아래 주소로 들어가 보시길..
http://blog.naver.com/charmed11?Redirect=Log&logNo=40037625316

이날 일을 마치고 그림을 보려했으나 어차피 금요일에 다시 발레타를 와야 해 그날로 관람을 미루기로 했다. 그림 하나에 거금을 내는 만큼 가급적 사전 지식을 충분히 쌓고 아주 천천히 그림을 음미할 생각이다.

점심시간. 에어컨 나오는 시원한 실내 식당을 찾아봤으나 쉽게 눈에 띄질 않는다. 그 발품이 더 힘들어 서둘러 성당 옆 야외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아 고개를 돌리니 성당의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는 좋은 자리다. 한 컷 찍어주시고..



그늘에 앉으니 역시 시원하다. 웨이트리스가 14유로 짜리 특선 생선요리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려는 것을 점잖게 물리치고 '바질 페스토 파스타''치즈 에그 버거'를 주문했다. 그리고 10분 뒤 음식들이 나왔다.



크림소스로 버무린 바질 페스토. 아무래도 수퍼에서 파는 병에 든 바질 소스를 들어부어 요리해 낸 것으로 의심된다. 그 맛이 병에든 소스를 사다 먹었을 때와 유사했을 뿐만 아니라 바질 잎의 입자가 그것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 아무래도 바질 페스토는 묵힌 맛이 아니라 신선한 맛이 으뜸인데 5.90유로 짜리 식사가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라곤 하지만 너무 한다 싶다. 지난 번 어떤 얼뜨기에게 요리해 준 뒤 남겨뒀던 소스를 냉장고 구석에서 찾아내 마저 소스팬에 툭툭 털어냈을 주방을 상상하니 살짝 약도 오른다.

주재료는 바질이지만 연상되는 맛은 봄철에 나는 쑥이다. 그 맛도 그닥 나쁘진 않았지만 신선한 바질은 허브로서의 프레쉬한 풍미가 강하고 맛도 자극적인 법. 그맛에 먹건만.. 올리브유의 부드러움을 대신한 크림은 처음엔 괜찮았으나 시간이 지나자 매우 퍽퍽해졌다. 또 다시 먹겠냐고?  No.



치즈 에그 버거. 5.60 유로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만 사진에서 보듯 대수로울 게 없다. 치즈와 계란 후라이를 얹으면 '치즈 에그 버거'가 되는 식이다. 다른 점이라면 빵을 덮지 않고 따로 분리해 낸다는 것. 뭔가 새로운 시도긴 한데 별것도 없는 내용물을 보고 나니 오히려 실망스럽다. 사실 버거 자체보다는 곁들여 나올 풍성한 샐러드에 기대를 걸었었다. 언젠가 버거 요리를 먹는 이들의 접시에 풍성하게 곁들여진 샐러드를 보고 "저게 이곳 식인가 보군"하고 은근히 마음에 묻어두고 있었기 때문. 허나 저런 결과를 접하자 기대를 걸었다는 사실 자체가 민망스럽다.

패티는 버거킹만도 못했는데 일단 너무 태웠고 기름기는 쏙 빠져있었다. 뭣보다 패티를 씹는 동안 질기고 딱딱한 부위가 많이 씹혀 꽤나 거슬렸는데 뼈에 붙은 고기까지 갈아낸 저질 패티라는 반증이다. 그래도 알뜰히 먹었다. 본전 생각때문이기도 하지만 가까운 누군가(기억 안남)로부터 자꾸 '음식 남기는 것도 죄'라는 얘기를 못이 박히게 들었던 탓에.. 맛이야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접하는 맛이니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 또 먹겠냐고?  Never.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에 서니 카라바조의 그림이 들어간 와인 세트가 눈에 띈다. 성당을 찾는 관광객을 노린 해묵은 상술에 픽 웃음이 나 한 컷.






몰카 처럼 찍히고 만 카페 풍경.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 나오다가 골목의 채소가게를 발견하곤 슬쩍 다가가 본다.



규모가 제법 크고 품목도 많다.



다소 시들긴 했지만 푸른 바질도 나와 있다. 바질페스토는 바로 저 놈을 다져 만든 것. 빨간 방울 토마토와 함께 있으니 색감이 제각각 돋보인다.



루꼴라. 영어 이름은 로켓. 이탈리아 요리에서 바질과 더불어 빠지지 않는 인기 허브로 피자 위에도 자주 올라가고 아주 얇게 슬라이스한 파마산 치즈와 함께 프로슈토(돼지 뒷다리살을 1년간 묵혀 얇게 저며낸 생 햄)에 둘둘 말아 전채(Starter)로도 자주 제공된다.

풋익은 것은 쌉싸름한 맛이 강하고 잘 익은 것은 특유의 향과 더불어 고소한(?) 맛을 내는데.. 즐기는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일전에 이곳 유학생들에겐 쑥갓으로 오인되어 어렵사리 끓인 매운탕에 마지막을 장식했다가 매운탕이 악몽의 맛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전에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맛을 가늠해보니 읔...



씨알이 작은 것이 우리나라에서 즐겨먹는 캠벨포도는 분명 아니고 건포도나 와인 제조에 주로 쓰일 듯 싶은데..



앵두와 블루베리도 빛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음식이란 대개 맛으로 평가하기 마련이지만 저런 이쁜 모양과 매혹적인 색감이 무시된다면 분명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다행히 저런 예쁜 과일은 많은 경우 디저트 류에서 제 모습으로 살아 남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과일로 이곳에서 부르는 이름은 피클리피어. 저놈을 잉태한 나무는 다름 아닌 선인장이다. 아래 사진을 보라.



학원 가는 길에 아침마다 접하는 선인장 군락. 제멋대로 자란 주인 없는 선인장으로 낮은 곳에 맺힌 열매는 누군가 다 땄고 높은 곳에 매달리 저놈들은 태연히 남아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든다. 가시가 솟아 있어 특별한 장구 없이 섣불리 덤볐다간 다칠 수 있다.



껍질을 벗겨내면 이 같은 속살이 나온다. 다소 괴상하게 생겼고 아주 달지는 않지만 제법 과일다운 단맛을 내고 과즙도 풍부하다. 다만 촘촘히 박혀 있는 씨가 장애물인데 과일을 먹는다기 보다는 씨를 먹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씨가 많다. 미끄덩 거리는 것이 식감도 썩 좋지는 않지만 좋아 하는 사람들은 씨까지 덥썩덥썩 삼킨다. 보드카에 과즙을 섞어 칵테일로 차게 해 마시면 그 맛이 또한 독특하다. 마셔봤냐고?  Yes. 또 마시겠냐고? Of cause.

피클리피어에 대해 얘기를 나눠본 몰티즈들은 한결같이 "It's my favorite"이라는 반응이다. 피클리피어는 그 자체로 독주를 만들어 즐긴다는데 아직 이를 접해보진 못했다. 기회를 찾아봐야지..



발레타를 빠져 나오며 한 컷. 오랜 건축물과 높이 자란 나무가 드리워낸 그늘 아래 사람들은 이야기도 나누고 계단에 앉아 쉬기도 하고 노점을 기웃거리며 어설픈 예술가(?)들의 재주를 구경하기도 한다.

Posted by dalgonaa

8월 23일이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處暑)다. 처서 바로 전의 절기가 입추(立秋)니까 이것만으로 보자면 가을이 곧 코앞에 다가와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고온습한 무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곳은? 지중해의 한 복판 몰타에는 오늘 아침 가을이 찾아왔다. 그야말로 한국의 전형적인 가을날씨다.

걷어차고 차던 이불을 새벽부터 끌어당기기 시작했고 눈 비비고 일어나 발코니에 서니 공기가 살짝 차갑게 느껴진다. 바람이라도 제법 세게 불라치면 피부에 살짝 소름이 돋는 수준이다. 매일 웃통을 벗고 지내던 김군은 아침에 티셔츠를 주어 입었고 함께 사는 여자들은 온수 보일러를 작동시켜 샤워물을 데피고 있다. 집안에서 들이키는 공기의 질감은 가을 어느날, 차례상을 준비하는 그 아침의 것을 쏙 빼닮아 있다.

아무래도 어제의 범상찮았던 바람이 몰고온 결과임에 틀림없다. 어제까지만도 바닷물에 들어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면 오늘 아침 발코니서 바라보는 바닷물은 어제와 사뭇 달라 보인다. 살짝 발끝만 담가봐도 그 차가움이 온 몸을 얼릴 것 같다. (이건 좀 오바군..) 아무튼 더위도 8월이 절정이라고 얘기하는 이곳에서 그 8월의 딱 중간인 어제가 최고 절정이었다면 그 다음날인 오늘은 본격적인 내리막이라고 얘기해도 될 듯 싶은데 어제의 바람이 그만 과속을 저질렀다.  

이른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또 다른 표현으로 '독서의 계절'은 지금 이곳의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파란빛깔의 주인이 하늘이었는지 바다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둘은 서로를 닮아가듯 더욱 짙은 빛깔로 성숙돼 갈테고 몸이 움추러지니 벌서부터 열량 높은 음식이 그리워진다. 동생이 부쳐준 책도 선반 한 구석에 든든하게 쌓여있으니 재주껏, 양껏 음식을 요리해 먹으며 하늘과 책을 번갈아 쳐다보면 그것만으로 이곳에서의 시간은 충분히 가치있을 듯 싶다.

가을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점은 또 있는데 이곳 몰타를 떠나 이제 본격적인 지중해 기행에 들어간다는 점 때문이다.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욕심내면 북아프리카의 몇 나라까지.. 짊어지고 다녀야 할 짐이 많아 그게 맘 한 구석을 무겁게 하지만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면 방법이 나올테다. 가을은 생각하기에도 좋은 계절 아닌가!  오늘 아침, 가을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 가을이 느껴지는지.. 저 앞 야자수땜에 혼란스럽긴 하지만 발코니에서 서면 아침공기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이 반가운 가을을 음악없이 맞을 순 없으니.. 고르고 고르다 선택한 음악, La vitta e vella. 가을이 있어 인생은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Posted by dalgonaa

>> 봄베이 사파이어 JIN  / 사진출처 : 업로드 에러로 주소가 사라져 다시 찾고 있음.. (싸이 블로그에서 퍼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블로그를 찾을 수가 없네. 댓글은 남겼으니 혹시 사진 주인께선 이곳에 오신다면 댓글 좀 남겨주시길..)

작년 이맘 무렵, 오랫동안 살사춤을 춰온 친구가 '홍대에서 최근 각광받는 술의 하나'라며 들고 온 것이 '봄베이 사파이어'였다. 투명한 Jin을 담아낸 연한 비취빛의 병 색깔이 유난히 곱게 느껴졌던 술로 맛도 깔끔해서 이후 진토닉과 함께 가끔 즐기곤 했다. 마침 그 빛깔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 처럼 맑고 깨끗하며 그 빛깔에 취해 정신을 놓게 만드는 곳이 이곳 몰타에도(이런 곳이 지구상에 몇 곳 있지..) 있다는 것을 알았고 드디어 어제 다녀왔으니.. 그곳은 바로 코미노(Komino)다.

섬나라 몰타는 총 3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으며 가장 큰 것이 몰타, 두 번째가 고조, 그리고 이 두 섬 사이에 아주 조그맣게 떠있는 섬이 바로 코미노다. 거의 무인도에 가까운 작은 섬이면서 브래드 피트가 등장하는 영화 '트로이'가 촬영된 장소라는 독특한 이력도 갖고 있어 사람들에게 색다른 호기심을 자극하는 섬이기도 하지만 코미노의 매력은 역시 봄베이 사파이어의 병 빛깔처럼 매혹적인 물빛에 있다. 보라.



액체로 이뤄진 사파이어가 있다면 코미노는 그 주요 원산지의 하나가 아닐까?



그 값진 보석은 몸에 두르기 보다는 보석 자체에 몸을 내던져 온몸을 적시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장식이자 보석을 만끽하는 방법일 터.

집에서 버스를 타고 골든베이를 지나 40분만에 도착한 Marfa Point. 이곳은 코미노는 물론 고조로 출발하는 대형 선박이 출항하는 중간 규모의 항구다. 코미노 행 페리 선착장에 다가가자  텅빈 주차장으로 인해 더욱 휑해 보이는 공간에 작은 매점만 있고 매표소는 없다. 바닷바람과 태양에 찌든 얼굴로 목에는 깁스를 한 50대가 다가와 "코미노?" 하고 묻곤 1인당 10유로(왕복요금)를 내란다.

함께 동행한 플랫의 시니어 지희가 살짝 콧소리를 섞어 깎아달라자 1유로를 깎아 9유로에 배를 탄다. 흥정이 된다는 얘기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근데 꼭 여자가 흥정해야 깎아 준다고..

배는 5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소형이며 오전 9시부터 정시 간격으로 운행하는데 우리는 10시 배를 탔다. 20명 정도의 승객을 태우고 10시 좀 넘어서자 배가 출발했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상쾌했다. 이때 강양 왈 "여기 바람은 끈적임이 없네? 대개 바닷바람은 소금기를 머금어서 끈적이기 마련인데.." 아마도 이는 습하지 않은 지중해 기후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이날의 가장 큰 실수는 김군이 챙긴 Video Camera의 테이프가 전에 파워보트를 담은 테이프였다는 점. 이날의 기록은 결국 미놀타 카메라의 몫으로만 남고 말았다. (강양으로부터 '꾸사리' 엄청 먹고..)



약 15분의 짧은 항해를 마치고 배는 코미노, 정확히는 블루 라군(Blue Lagoon)에 도착했다. 물 빛깔에 모두들 시선을 떼지 못한다. Blue Lagoon은 '푸른 산호초'라는 뜻으로 애초 이곳이 산호 군락지였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바다 바닥은 모래가 아닌 새하얀 산호 가루. 산호가루는 모래보다 거칠고 굵은 탓에 먼지를 일으키지 않아 시야감이 훌륭한데 푸른 빛깔의 비밀이 바로 거기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지금은 산호가 없는건가? 우리로선 알 수 없다. 다만 집근처 스킨스쿠버 클럽에선 코미노 스쿠버 투어와 강습생을 모집하는걸로 봐서 그래도 일부 산호가 섬 어딘가에 자라고 있지 않을가 추측할 뿐. 그러나 지금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



살짝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어디서 바라봐도 물 빛깔은 매혹적이다. 파라솔이 끝나는 모서리 지점이 승객들이 내리는 선착장. 이미 도착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우리처럼 버스와 배를 갈아 타가며 온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자신의 보트나 요트, 또는 슬리에마, 발레타 등에서 출발하는 전세 여객선이나 보트를 타고 온 사람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파라솔과 비치의자는 모두 유료이며 각각 5유로의 요금을 받는다. 저 뒤로 보이는 큰 섬이 고조다.

물 속에 몸을 담그자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물이 차다. 그간 물놀이를 즐겨온 클럽비치나 집근처 수퍼마켓 앞 바닷물의 수온과 확실히 구별됐다. 내리 꽂히는 뜨거운 태양을 피해 있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을 듯 싶었다. 실제로 그늘 하나 없는 바닥에 앉아 있다보면 몸은 금방 달궈졌고 이를 식힐 방법은 바닷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 말고는 달리 없다. 그러니 기꺼운 마음으로..^^



하지만 이곳이라고 결코 모든 것이 매혹적이지는 않다. 먼 옛날 화산 폭발로 생겨난 섬인 탓에 용암이 물과 만나 갑자기 식어버린 접경은 단단하고 날카로운 현무암으로 가득 덮혀있다. 슬리퍼 없이 오갈 경우 발바닥에 전해지는 압력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고 균형을 잡으며 걸어야 한다.
(아래 오른쪽 위 사진)

쉴 곳이 마땅치 않은 것도 문제. 이미 '업자'들이 비치의자를 깔아 점령해놓은 곳(그나마도 매우 협소)을 피해 자리를 잡다보면 결국 경사진 울퉁불퉁 현무암 바위에 자리를 잡고 눕는 수 밖에는 없다. 물론 그늘 한 점 없다. 그럼에도 서양 친구들은 따가운 햇살을 기꺼이 즐긴다. 우리로선 도무지 엄두가 안나는 일이지만.. 우리는 우산 3개를 준비해 왔고 하나씩 펴든 뒤 첫 번째 사진의 누워있는 언니들 옆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매점의 가격은 한국과 달리 바가지 상혼은 심하지 않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미 볶음밥, 사과, 맥주, 과자를 다 싸들고 온 덕에 안사먹어봐서 가격은 모르겠다.



집에 돌아갈 시간. 6시가 마지막 귀환선이지만 역시 사람들은 5시 귀환선을 타기 위해 대거 몰려들었다. 과연 한 배에 이 모든 사람들이 다 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6시 배로 밀려버리면 어중간한 그 사이를 오로지 태양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선착장을 가득 메운 이들 역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페리사는 주말의 승객운송패턴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2대의 페리를 준비해 그 많은 사람들을 모두 태운 것. 그 센스에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배는 사람들로 빈틈없이 채워졌고 우리는 배의 지붕으로 이어진 작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가장 전망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시동이 걸리고 어지러운 요트 사이를 뚫고 배가 나아갔다. 수평선을 향해 기울고 있는 태양은 그러나 여전히 뜨거운 햇살을 쏟아냈고 피부에 와닿는 따가움은 속도를 더할 수록 세차지는 바람이 식혀줬다. 그런데 갑자기 승무원이 올라와 "배가 기울었으니 반대편쪽으로 앉아달라"고 한 마디 하고는 내려가는게 아닌가? 혹시나 우리를 끌어내리려는건 아닌가 순간 긴장했었는데.. 다시 한번 속으로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우린 서둘러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페리는 올 때와 달리 갈 때엔 서비스로 코미노 섬의 절경을 잠시 감상할 기회를 준다(그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박수)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흔들리는 배 위에서 올려다보는 절경은 그런대로 볼만 하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해저 화산의 폭발로 만들어진 기이한 조각품들, 오랜 세월 물과 바람으로 다듬어낸 표면, 그 밑에 펼쳐진 눈부신 바다와 비경에 환호하는 매혹적인 지중해의 여성,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을 일상으로부터 뛰쳐나오게 만드는, 기꺼이 받아들일 유혹이 아닐런지..


 


그가운데서도  우리에게 환호를 선사하며 일상의 탈출을 도모케하는 진정한 유혹은 바로 아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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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몬 한 조각 띄운 봄베이 JIN 한 잔과 더불어..

Posted by dalgonaa

한창 찜통 더위가 기승일 한국에 비해 요즘 몰타의 날씨는 가을 날씨를 연상케할 정도로 쾌적하다. 낮의 태양은 여전히 강렬하지만 그늘진 곳에만 가면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다. 1주 전까진 밤에도 더웠으나 요새는 바람이 불면 제법 쌀쌀해서 이틀 정도는 추위땜에 잠에서 깨 지난 4월에 덮었던 겨울 담요를 꺼내 덮기도 했다. 아침에 맞는 공기는 가을의 그것처럼 어찌나 맑고 청량한지 생각을 정리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날씨는 없다. 이 쾌적함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지중해 기후가 이래서 좋구나를 절감하는 요즘이다. (물론 먼지는 여전하다)



>> 낮에는 요란한 폭죽, 밤에는 화려한 불꽃. 

최근들어 몰타의 이곳 저곳마다 종교와 관련한 축제가 한창이다. 이를 부르는 총칭이 FEAST. 대형 걸개가 내걸리고 브라스밴드의 연주가 끊이질 않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늘을 향해 폭죽과 불꽃을 쏘아댄다. 어제 토요일에는 집 앞 발루타 베이에 위치한 성당에서 큰 행사가 있었다. 덕분에 발코니에 앉아 요란한 불꽃놀이를 편안히 감상했는데 일요일도 낮부터 폭죽을 쏘아대는 턱에 밤에도 어제처럼 불꼿을 쏘겠지 싶어 카메라를 들고 밤 10시 쯤 성당으로 나갔다.

축제는 예상보다 컸다. 차도는 일찌감치 폐쇄되서 이미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고 성당 주변으로는 몰타의 독실한 카톨리 신자들이, 그 언저리의 카페와 길, 해변에는 관광객들이 넓게 포진해 있었다. 사전에 충분히 조율된 듯 마이크를 쥔 신부의 이야기가 끝나면 불꽃놀이와 브라스밴드 연주가 번갈아 진행됐다. 행사의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성당 밖에 있던 성모 마리아 상이 성당 안으로 옮겨지는 것을 끝으로 행사는 마무리됐다.



>> 축제의 현장에 빠질 수 없는 야식가게



>> 도로를 가득 메웠던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하나 둘씩 집으로 숙소로 술집으로 해산.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이들은 심심한 입맛을 달래기 위해 도넛 노점 주위에 모여든다. 도넛에 시선이 꽂혀있는 꼬마들의 모습이 재밌다. 새벽 2시 30분인 지금,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는 취객들의 흥겨운 합창.. FEAST의 계절이다.
Posted by dalgonaa

휴가 이틀 째, 오늘은 점심 무렵에 학원에 다녀오려고 한다. 강양의 선생인 나디아를 만나 그녀로부터 몇 가지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어제 이야기한대로 현재 달고나는 이른바 '생활비 조달 프로젝트'를 위한 소재 구상이 한창인데 애초 이곳 몰타 특유의 노란색 버스를 취재해볼까 했던 계획이 무르익어가던 중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해 버스에 브레이크를 건 소재가 '채소상'이다.

트럭 뒤에 형형색색 가지가지의 채소와 과일을 싣고 다니며 이른 아침부터 동네 주민들을 불러모으는 채소상은 이곳 몰타에선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의 하나다. 우리네와도 비슷한 풍경이겠지만 다른 점이라면 이틀의 한 번꼴로 장 서듯이 트럭이 오고 언제나 같은 장소에서 같은 판매상이 장사를 한다는 것. 주민들은 대형 수퍼마켓서 장을 보기도 하지만 채소는 이 트럭을 주로 이용한다는 점 또한 다른 점이다. 이곳엔 상시적인 재래시장이 없으니 한 마디로 움직이는 재래시장인 셈.

학원을 오며가며 접하는 그 풍경은 여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몰타 지역에서 생산한 싱싱한 먹거리를 생산자에서 소비자에게로 전달해주는 그들의 역할은 몰타 사람들에겐 매우 소중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 상품의 안전성 또한 철썩같이 믿는다고 한다. 마침 강양 선생 나디아의 말에 따르면 자신 역시도 20년째 가져다 먹는 단골 채소상이 있고 그를 매우 신뢰한다고 한다. 특히 그 채소상의 흥미로운 점 하나는 뛰어난 암산 능력이라나..

구입한 품목의 가격을 주루룩 훑어내리고는 바로 합산금액을 제시하는데 거의 틀린적이 없어 나디아는 언제나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본다고 한다.

아무튼 버스보다는 채소가 우리의 구미에도 더 맞고 이 기회에 비록 일부나마 지중해 농산물을 현장에서 공부하는 기회도 얻을 겸해서 공들여 준비해보려고 한다. 나디아가 반색을 하며 도와줄까? 그녀가 우리의 작업에 흥미를 가져주길..



>> 우리에게도 친숙한 농산물이지만 간혹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어 호기심은 커져가기만 한다. 특히 몰타 감자는 그 품질이 우수해 많은 양이 네덜란드로 수출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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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소시지를 먹다가 모래 바닥에 떨어지면 그걸 다시 주어 먹을 사람은 얼마나 될까? 반면 먹던 소시지 위로 모래가 떨어지면 모래만 털어내고 마저 소시지를 먹을 사람은 또한 얼마나 될까? 지난 수요일 밤, 깜깜한 골든베이 해안에서 즐겼던 소시지 바베큐는 새삼 위와 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

이날 각 1명씩의 러시안, 체크, 슬로바키안과 두 명의 코리안이 헝가리인이 운전하는 장난감 같은 사파리차에 올라타고 골든베이를 향해 출발했다. 저녁무렵 학원 근처 수퍼마켓에서 만나 소시지 같은 간단한 먹거리와 맥주, 와인을 구입해 바리바리 싸들은 모습은 강촌으로 놀러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닮아 있었다.

이 느닷없는 이벤트는 같은 날 오후 클럽비치에서 만난 김군의 같은 반 친구 Petra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페트라는 이미 전날에도 한 무리의 사람들과 골든베이를 다녀왔었는데 그 재미가 너무 좋아 또 다시 놀러가게 됐고 이날은 마침 사파리차에 두 자리가 비어 김군에 제안하면서 김군과 강양이 동참하게 된 것.

운전대를 잡은 Ben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온 30대 중반의 변호사다. 겉으로만 보자면 이날 멤버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지만 김군보다 한 살 어리다. Ben은 이미 전부터 자기 돈을 들여 사파리차를 대절했는데 몰타에 머무는 동안 맘껏 이곳 저곳을 놀러다니는 중이다. 자동차와 시간, 그리고 언제든 어울릴 수 있는 친구들과 멋진 자연에서 맥주를 홀짝이는 것이 누구나 꿈꾸는 휴가지의 낭만이라면 Ben은 그 낭만을 제대로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운동선수같은 건장한 체구의 Yann은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온 20대 중반의 남성이다. 이 친구와는 미처 긴 대화를 나눌 틈이 없었는데 사람 좋아보이는 구석 한 편으로 시커먼 밤바다에 들어가기를 주저하는 소심쟁이기도 하다. 여자들은 텀벙텀벙 잘도 들어가더만..

시내쪽에서 잠깐 헤맨 뒤 외곽도로를 타고 골든베이를 향해 달렸다. 내심 일몰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출발까지 허비한 시간이 제법 길었던 탓에 결국 달리는 차에서 별을 봐야했다. 사파리는 앞에 두 좌석만 제대로고 뒷자리는 의자가 양 옆으로 길게 놓여져 있는 구조다. 지붕도 뒷좌석쪽은 간단한 앵글 위로 빨간색 줄무늬 천막을 두른게 전부니 낭만이 물씬 풍긴다.

다만 영국 식민지의 영향으로 도로의 좌우가 뒤바뀐 시스템에 익숙치 않은 Ben이 제발 엉뚱한 방향으로 운전대를 틀지 않기만을 달리는 내내 바래야 했다.



>> 페트라와 카트리나. 저 앞에 벤과 얀이 지도를 보고있다. 골든베이 주차장에 차를 세워진 차와 걸어가는 얀. 차는 저렇게 단순하게 생겼고 단거리 여행을 하기엔 딱 좋다.

밤길을 달리면서 맞는 바람은 상쾌했다. 지중해 기후의 특징이 그렇다. 기온은 밤에도 제법 높은 편이지만 공기가 한국에 비해 훨씬 건조해서 숨막힐듯이 '훅'하는 느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제법 시원하다. 그러니 70km로 달리는 차에서 맞는 바람은 누군가에겐 시원하다 못해 춥게 느껴진다.

결국 강양은 이날 이후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그걸 미리 알았던건지 모스크바에서 온 183cm의 늘씬한 미녀 카트리나는 벙거지 모자에 제법 든든해 보이는 숄까지 준비해 바람에 대비했다. 러시안 특유의 차가운 눈매를 가진 그녀지만 성격은 지중해 사람들처럼 시원시원하고 쿨한 구석이 느껴졌다. 특히 영문법에 기초해 또박또박 말하려는 그녀의 노력은 내내 눈에 띄었다.

골든베이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넘어갔고 주의는 깜깜했다. 조심조심 언덕 가장자리에 다가가 아랫쪽 해안을 굽어보자 보이지는 않지만 몰티즈 특유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얼추 네다섯 팀이 해안에서 바베큐통에 불을 지핀 가운데 이미 그들의 파티를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어둠이 함께 몰고온 정적 속에 멀리서 반짝이는 바베큐 불빛이 그렇게 이뻐보일 수가 없었다.



>> 골든베이는 언덕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눠져 있는데 사진에서 보는 이곳이 거리는 조금 떨어져 있는데 비해 전반적으로 더 아늑하고 깨끗하다. 저곳 중간쯤에서 바베큐를 즐겼다. 

몰타가 진정 관광의 나라인 이유 하나는 해안에서 불을 지피고 놀아도 아무도 제재하는 이가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저녁 무렵, 특히 주말 저녁 무렵에 해안에 산책을 나가보면 3대에 걸친 몰티즈 가족들이 간이 식탁과 의자, 바베큐 통, 그리고 몇 가지 음식을 떡벌어지게 차려놓고 늦은 밤까지 수다를 떨며 술과 고기를 탕진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비록 가족들이 아니더라도 몰티즈 젊은이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그 요령을 터득해 손에손에 비닐쇼핑백을 들고 해안으로 나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즉석 바베큐통에 라이터를 긋는다. 다행히 해안 군데군데에 드럼통 쓰레기통이 놓여있어 사용하고 난 쓰레기는 모두 이곳에 버리면 그만이다.

우리라면 환경오염과 화재의 위험, 간혹 술판에서 춤판으로 이어지는 행동을 우려해 유명 관광지에선 모두 금지하는 것이지만 이 나라는 그렇지가 않다는 점이 놀랍다. 사실 화재위험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 이곳엔 산은 커녕 나무조차 찾아보기 힘들고(도로에 가로수를 제외하고) 그러니 캠프파이어 따위는 꿈도 못꾼다. 신성한 자연을 시커멓게 그을려놓은 인간들의 흔적은 그래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건 다 비닐봉지에 담겨 드럼통에 들어가 있다.

물론 이로 인한 2차 오염은 분명 발생하는 셈이지만 지중해 사람들은 괘념치 않는 분위기다. 지금 밤하늘의 별과 머나먼 어디로부터 불어온 바람과 불빛에 반짝이는 상대편의 취한 눈망울과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가느다란 선율이면 됐지 여기서 쓰레기의 2차 오염 따위가 알게 뭐냐는 투다.

아무튼 수퍼에서 Petra는 이미 경험이 있다는 듯 바베큐에 필요한 물품을 덥석덥석 집어들었고 우리는 그 모습을 꼼꼼히 지켜봤다. 조만간 우리도 조악하지만 근사한 바베큐를 즐길 요량에서 말이다.

컴컴한 모래 사장 한켠에 짐을 내려 놓았다. 김군이 켜든 손전등 아래로 부산히 비치타올을 펴 깔고 비닐봉지에서 맥주와 소시지와 즉석바베큐를 꺼냈다. Ben은 맥주부터 까서 갈증을 달랬고 늘씬한 카트리나는 어느새 비키니 차림으로 변신해 있었고 페트라는 내내 배고팠다는 푸념을 던지며 서둘러 바베큐를 시작했다.

커다란 알루미늄 도시락통처럼 생긴 바베큐통의 포장을 벗겨 뚜껑을 열자 철망이 덮혀있고 그 아래로 밤톨만한 숯덩이들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숯 사이에 끼어진 기름종이 한 장. 단순했다. 하지만 이걸로는 초반에 불을 키우는데 어려움이 있는지 페트라는 깍두기 크기의 고체연료를 별도로 준비해 숯 사이에 몇 덩이 던져 넣었다. 불을 그으니 고체연료와 기름종이가 활활 타오르면서 숯을 벌겋게 익히기 시작했다.

그 위에 철망을 덮고 서둘러 소시지를 올렸다. 근데 웬걸, 모래가 곱다보니 주변으로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사뿐히 피어오른 놈들이 곧 가라앉으면서 소세지를 덮어버리는 것이다. 결국 모래뭍은 소시지라도 땅에 떨어진게 아니라면 털어서 먹는다는걸 이기회를 통해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모래가 아니었다. INSTANT BARBECUE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열기운은 강력했는데 소시지 대부분이 그 짧은 시간에 모두 홀라당 타버린 것이다. 마땅히 도구가 없어서 소시지를 뒤집기도 어려웠으니 이래저래 화를 키웠다. 결국 타버린 껍질은 벗기면서 모래는 그때 대부분 떨어져 나갔다. 물론 씹는 동안에 아주 고운 모래의 서걱거리는 맛도 함께 즐기긴 했지만..



>> 모양도 활용도 단순하다. 각빙기처럼 생긴 하얀 플라스틱 조각들은 고체연료. 숯을 달구는데 그만이다. 그리고 모래뭍은 소시지. 배고프니 맛은 좋다. 물론 모래를 떠나 한국에선 저런 바베큐는 용납이 안될테지만..

사실 서둘러 마련된 자리인 탓에 부족한게 많아 아쉬웠다. 우리가 좀 더 미리 준비를 고민했다면 집에서 보내온 아이스팩 가방에 차가운 맥주와 각종 조리 도구를 챙겨왔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행이었던 점 하나는 강양의 센스로 듬뿍 사온 양송이 버섯구이가 큰 인기를 누렸다는 점이다.

쪼글쪼글 말라가는 버섯갓 사이로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이놈을 집어 소금에 살짝 찍어 먹는 이 단순한 요리법은 사실 첨단의(?) 구이문화를 가진 한국사람들에겐 별스럽지 않은 싱거운 요리지만(물론 버섯은 맛있다) 이들에겐 생소한 경험인 셈이다.

그러나 그 낯설음과 달리 잘 구어진 버섯을 한 입 오물거리는 순간 전해오는 특유의 고소함을 맛본 이들은 하나같이 '원더풀'을 외쳤다. '암.. 맛없으면 가져오지도 않았다..' 다행히 소시지와 달리 버섯은 쉽게 타지도 않아 먹기가 아주 좋았다. 이들에게 우리의 존재감은 다소 특별한 구석이 있었을 테다. 특히 요리를 매개로 관계가 연결되는 점 또한 우리로선 매우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이 사소한 것일지라도.

시커먼 바다로 먼저 뛰어든건 페트라와 카트리나였다. 옛 사회주의 국가에서 온 이 두 명의 미녀는 뭐든 도전할 자세가 돼있는것 처럼 보이는 당찬 여성들이었다. 수온을 적당했고 요며칠 피서객들을 긴장시켰던 Jelly Fish, 즉 해파리도 이곳에는 없는 듯 했다. 손바닥보다 작은 이 젤리피쉬는 뭐든 움직이는 것에 달라붙어 상처를 내는데 이놈에게 쏘이면 그 부위가 두드러기 처럼 요란하게 부푸는 것은 물론 심하면 피가 나기도 한다. 물론 아프다.  



>> 비치클럽에 한동안 세워졌던 경고문구. '젤리피쉬를 조심하시오'라고 써있다. 호기심 많은 어느 피서객이 끊임없이 건져올린 젤리피쉬 가운데 한 놈. 우리가 먹는 그것도 저럴까?

아무튼 뭍에서 50미터 정도를 나가도 바닥은 여전히 고운 모래고 물이 허리춤에 오는 이곳 수심은 바다수영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 더 없이 좋은 곳이다. 하지만 강양은 깜깜한 시야가 주는 공포감에 선뜻 들어가기를 주저했고 더욱이 짠물을 뒤집어 쓴 후 이를 씻어낼 방법이 없다는 점 또한 도전의 기세를 꺾어놓았다.

어느덧 달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와 밝게 빛났고 바베큐통의 불씨는 그 빛을 잃어갔다. 놀다 지친 주변의 다른 피서객들은 그냥 그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는 듯이 보였다. 실제로 그냥 밤새 뻗어 자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한때 하루 두 갑의 담배를 달고 살았던 페트라는 여전히 의욕이 넘쳤지만 그 아쉬움은 다음날 우리집 깐풍기 파티에서 마저 풀기로 했다.

Yann을 제외한 이들은 모두 이번주 일요일에 각자의 집이 있는 모스크바와 부다페스트, 오스트라바로 돌아간다. 4일간 이어졌던 버스기사들의 파업도 끝났으니 이들 모두 공항까지 제시간에 도착할테다. 근데 이번 파업은 어떻게 해결됐지??



>> 손바닥만한 그릇에 담겨진 촛불은 심지가 거의 연필 두께인데 그 밝기가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한창 이야기나누는 사람들. 아마도 밤하늘의 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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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기온이 40도 가까이 치솟는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지중해의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의 주인공은 단연 태양. 그야말로 햇살 자체가 화살촉이 되어 피부에 따갑게 내리꽂힌다. 이를 필사적으로 막기 위해 사람들, 특히 아이들은 피부가 허얘지도록 선크림을 바른다. 그리고 잠시 그늘에 앉아 맥주와 샌드위치를 번갈아 먹어가며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머릿결을 말린다.
 
먼 옛날, 대륙이 쪼개지면서 대서양의 물길이 쏟아져 들어와 채워진 곳 지중해. 한국의 갑갑한 이들이여, 당시의 경이로움을 떠올리면서 사진으로나마 지중해의 낭만을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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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다섯개 붙은 'CORINTHIA MARINA HOTEL'에서 운영하는 시설이지만 학원측과 이미 얘기가 되서 학생증만 있으면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돈내고 들어오면 7유로, 우리돈으로 1만원이다.



>> 강양과 김군은 저기 어딘가에 늘 자리를 잡고..



>> 그늘 아래 선베드에 누워 바다를 바라보는 기분은 가히 환상적이라 아니할 수 없는데 저 털북숭이 아저씨도 그 정취에 젖어있는게 아닐까 하는..



>> 바닷물이 짜면 몇 계단 올라와 밍밍한 풀장에서 소금끼를 씻어내고..



>> 입맛이 싱거워지면 다시 바닷물 속으로 다이빙 해주고.. 살짝 쫄아서 배치기로 입수하기 직전의 모습.. 아프다.

 

>> 요 며칠 비치에서 만난 게이의 집요한 유혹을 피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웠던 Dune이라는 이름의 네덜란드 친구도 한 컷.



>> 인근의 GEORGE BAY는 언제나 그렇듯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고..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바다로 뛰어들만한 모든 장소에는 사람들로 붐비니 땀난다 싶으면 언제든 풍덩..



>> 우리집과 가까운 MERDIAN HOTEL에서 운영하는 풀장에는 수구 선수들이 한창 훈련중이다. 가끔 경기가 벌어지기도 하는데 늘 장봐오는 길에 마주칠 뿐만 아니라 장바구니에 담긴 우유나 특히 냉동식품의 변질을 우려해 눈맛만 다시고 서둘러 발길을 옮긴다.

지중해의 태양은 한국에서 접하던 태양과 조금 달라서 정말 뜨거우면서도 따갑다. 그것을 두려워 했던 고대 사람들은 그래서 태양을 신성시하고 두려워했던 것이 아닐까 싶은데 아무튼 저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방인에게 지중해와 태양은 기억속에 깊게 새겨놓을 만한 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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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ota Niesyt, 그리고 Jiro Tashiro와 그의 가족들. 이들은 김군에게 매우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이다. 도로타는 체코 프라하에서 만났던 또래의 폴란드 여자고 타시로씨는 독일의 Goch라는 아주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만났던 일본인이다.

1996년 가을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김군은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쥐고 이듬해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꿈을 키워오던 유럽 자전거여행을 떠나게 된다. 기간은 총 100일. 오늘은 그 시절의 여정에서 만난 Tashiro씨와 그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영국 런던을 시작으로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아래로 내려오던 여정은 바다를 건넌 뒤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거쳐 어느덧 독일로 접어들었다. 때는 이미 10월을 지나고 있었고 깨끗한 거리는 네덜란드처럼 붉은 낙엽을 가득 머금은 가로수들로 채워져 있었다. 국경을 넘어 Goch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한 뒤 묵어야 할 숙소를 찾아 지도를 펼쳐들자 어김없이 독일인이 한 명 다가와 내게 물었다. 친절하게, 결코 잘못 알아들을 수 없는 물음으로.

"May I help you?"

자전거를 탄 그녀는 학생티를 풀풀 풍기는 금발의 여자였다. 자잘한 짐을 자전거에 매달고 큰 배낭은 어깨에 매고, 그리고 양갈래 길에서 지도를 펼쳐들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 으례 누군가 다가와 도움을 베푼다는 것을 김군은 네덜란드를 거쳐오면서부터 경험으로 알기 시작했다. 이들은 여행자에게 친절했다.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가로수가 더욱 붉게 느껴지던 그 시간에 김군에게 다가와 도움을 베푼 여자의 이름은 Sarah. 그녀는 길을 묻는 내게 친절히 설명해준 뒤 헤어질 무렵 뜻밖의 제안을 했다. '괜찮다면 우리집에 와서 묵어도 된다,는 것. 덧붙여 '우리 가족들, 특히 아버지가 반가워 할꺼다'라는 것이다

'오호.. 이렇게 하루 숙박과 식비를 줄이는구나..'라는 생각과 '이번엔 독일인 가정집을 둘러볼 수 있겠군' 하는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김군은 흔쾌히 그 제안을 수락하고 그녀를 따라 나섰다.

당시에도 절감한 것이지만 자전거 여행이 주는 매력의 하나는 우연의 요소가 무척 많다는 점이다. 여행자의 발길이 뜸한 지역일수록 예상치 못한 사건은 물론 현지인들과의 접촉도 많아지고 유명 도시에 비해 그들의 관심이나 배려가 무척 호의적이라는 점에서 여행이 간직한 색다른 묘미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물론 비슷한 시골길을 수 없이 지난다거나 때론 위험이 따른다는 문제도 있지만 긴 시간 여행이 가능하고 현지인들의 삶을 좀 더 가까운데서 체험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김군은 자전거 여행을 권유하곤 한다.
 
사라를 따라나서자 어디선가 폭스바겐 밴 한 대가 나타났다. 역시 사라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운전석의 남자는 사라와 그녀의 자전거를 차에 싣고 이어 나와 내 자전거도 함께 태우려 했지만 자리가 좁아 그러지 못했다. 대신 천천히 갈테니 차를 따라 오라고 한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는 사라의 남자친구였다. 사실 이 둘은 함께 나를 지켜보다가 사라가 내게 다가와 도움을 주었던 것.

5분을 채 못가서 차는 어느 집 앞에서 멈췄다.  4층은 될법한 제법 큰 집이었고 그 집 전체를 가족들이 사용한다고 했다.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섰다. 오밀조밀 붙어있는 유럽의 많은 집들이 대개 그렇지 싶은데 사라의 집 역시 넓지는 않고 다만 높게는 4층까지 올려져 공간을 넓게 활용하고 있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좁은 복도가 하나 이어지고 그 끝은 이 집의 뒷마당(정원)으로 이어지는데 그 중간에 주방이 있었다. 식탁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사라는 내게 마실것을 권했고 그녀가 주는 대로 나는 목을 축였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리고 어떤 남자가 들어와선 사라와 그녀의 남자친구와 뭔가 수다를 떨었고 내게도 반갑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곤 주방에서 익숙한 듯 밥솥을 열어 밥을 푸고 냄비에서 카레를 떠 슥슥 비비더니 한 그릇 뚝딱 비우고는 곧바로 사라져 버렸다.

잠시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두 번째 초인종이 울렸고 그제서야 이 집의 주인, 즉 사라의 부모님이 모습을 나타냈다. 일을 마치고 온 것인지 어떤지는 지금도 모호한데 아무튼 인사를 건네려고 하니 놀랍게도 사라의 아빠는 일본인이었다. 땅딸막한 키에 알맞게 수염을 기르고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을 머금고 있었던 그의 이름은 Jiro Tashiro, 그의 부인은 Benedikta Tashiro.

누구보다 서로 낯설었을 이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 결혼에까지 이르게 됐는지는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은 그때 설명을 들었지만 김군의 짧은 Listening으론 한계가 있었다. 아무튼 동양인이라곤 Tashiro씨가 유일할 것 같은 이 작은 마을에 느닷없이 나타난 또 다른 동양인 김군과 이를 발견한 Sarah. 80Km 가까운 거리를 달려온 김군을 이들 가족은 모두가 나서서 따뜻하게 환대해 주었고 뜻하지 않은 만남으로 김군은 이 집에서 이틀 밤을 머물게 된다.


- 2편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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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풀장에 도착하니 이런.. 스페인 청소년들이 풀장을 모두 점령했다. 설마 이럴꺼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비좁은 통로까지 햇살에 몸을 맡긴 아이들로 그야말로 터져나갈 지경이다. 뒤늦게 확인한 사실은 이곳(슬리에마 비치 클럽)은 주니어 비치로 운영되고 파처빌에서 가까운 비치클럽이 성인들을 위해 운영되는 곳이라고 한다. 결국 어제 김군이 갔던 곳이 성인 비치고 강양이 갔던 곳이 청소년 비치였던 셈. 발길을 돌려 파처빌로 가기에는 너무 멀어 그냥 길 옆으로 이어지는 일반 록비치에서 놀기로 했다.



>> 부드럽게 깎여나간 락비치는 몰타 해안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모래성을 쌓는 낭만은 없지만 몸에 뭐 묻는거 싫어하는 유럽인들, 특히 영국인들에게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김군이 수심을 확인하기 위해 해안쪽으로 다가서고..



>> 저들이 좋아라 하며 놀고 있는 저 곳의 수심은 최소 7미터. 좀 더 나아가면 대책없이 깊어진다. 어떻게 아냐고?



>> 한국으로 떠난 방두호군이 선물로 주고간 스노클이 답을 보여줬다. 물 색깔이 달라지는 곳의 깊이가 최소 7미터이고 좀 더 나아가자 그보다 더 깊어진다. 사실 바닥의 표면이 뚜렷히 안보이는데 이때 밀려오는 경이로움과 공포감이란..



>> 저 스노클을 벗어버리면 김군은 그 순간 물 속으로 꺼져들어갈 터. 공포감때문에 저 멀리 사람있는 곳 까지는 도무지 못나아가겠더라는.. 물속은 작은 물고기 떼와 바위에 달라붙은 조개껍질들, 그리고 가끔 깜짝 놀랄 정도로 큰 물고기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곤 한다. 깊은 바닥에 가끔 맥주 깡통도 보이고..



>> 좀 더 많은 수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뭍으로 나오고..



>> 튜브에 몸을 맡기고 바다위를 정처없이 떠도는 한 여성은 일광욕(Sun bath)삼매경, 강양은 비키니 입고 계속 사진 촬영 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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