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몸이 피곤할 정도로 정신없이 바빴다. 8월 26일 화요일 이날도 중요한 일 때문에 몰타의 수도 발레타를 다녀와야 했는데 오전중으로 일이 마무리되다 보니 몸도 지치고 해서 점심은 그냥 이곳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역시 수도는 수도인가 보다. 사진에서 보이는 중앙대로 'TRIQ IR REPUBBLIKA' 엔 어느새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대단한 볼꺼리가 있는 것도 아니건만..



저들 중 아마 절반 이상은 관광객.(몰타 인구 40만, 여름철 관광객 수 120만) 그들이 이곳에 온 이상 꼭 둘러봐야 할 곳이 있다면 바로 아래다.



성 요한 성당(St. John's co - Cathedral). 밖에서 볼 때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이 성당에 저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줄을 서는 이유는 뭘까? 그 옛날, 이슬람과 기독교간 쟁탈전이 자주 벌어진 곳의 하나가 이곳 몰타였다. 덕분에 이곳엔 유럽 본토에서 파견된 연합 기사단들이 많았고 그들이 죽으면 이곳 성당 바닥에 뭍어 화려한 대리석으로 그 위를 치장했다고 하니 이는 관광객으로 하여금 아련한 역사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입장료 5.80유로, 우리돈 9천원을 내고 저 문을 들어서려는 진짜 이유는 카라바조의 그림, '세례 요한의 참수' 때문일 듯 싶다. 살인을 저지르고 평생 쫓기는 삶을 살아야 했던 그 유명 화가는 유독 '목 잘린'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이곳에 걸려져 있는 '걸작' 또한 그 가운데 하나다.



이탈리아를 떠돌다 기사단에 묻혀 몰타로 들어온 카라바조는 1608년 이 작품을 그렸고 가로폭이 5미터를 넘는다고 하니 그 압도감이 어떠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림에 관련된 내용이 궁금한 이들은 아래 주소로 들어가 보시길..
http://blog.naver.com/charmed11?Redirect=Log&logNo=40037625316

이날 일을 마치고 그림을 보려했으나 어차피 금요일에 다시 발레타를 와야 해 그날로 관람을 미루기로 했다. 그림 하나에 거금을 내는 만큼 가급적 사전 지식을 충분히 쌓고 아주 천천히 그림을 음미할 생각이다.

점심시간. 에어컨 나오는 시원한 실내 식당을 찾아봤으나 쉽게 눈에 띄질 않는다. 그 발품이 더 힘들어 서둘러 성당 옆 야외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아 고개를 돌리니 성당의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는 좋은 자리다. 한 컷 찍어주시고..



그늘에 앉으니 역시 시원하다. 웨이트리스가 14유로 짜리 특선 생선요리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려는 것을 점잖게 물리치고 '바질 페스토 파스타''치즈 에그 버거'를 주문했다. 그리고 10분 뒤 음식들이 나왔다.



크림소스로 버무린 바질 페스토. 아무래도 수퍼에서 파는 병에 든 바질 소스를 들어부어 요리해 낸 것으로 의심된다. 그 맛이 병에든 소스를 사다 먹었을 때와 유사했을 뿐만 아니라 바질 잎의 입자가 그것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 아무래도 바질 페스토는 묵힌 맛이 아니라 신선한 맛이 으뜸인데 5.90유로 짜리 식사가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라곤 하지만 너무 한다 싶다. 지난 번 어떤 얼뜨기에게 요리해 준 뒤 남겨뒀던 소스를 냉장고 구석에서 찾아내 마저 소스팬에 툭툭 털어냈을 주방을 상상하니 살짝 약도 오른다.

주재료는 바질이지만 연상되는 맛은 봄철에 나는 쑥이다. 그 맛도 그닥 나쁘진 않았지만 신선한 바질은 허브로서의 프레쉬한 풍미가 강하고 맛도 자극적인 법. 그맛에 먹건만.. 올리브유의 부드러움을 대신한 크림은 처음엔 괜찮았으나 시간이 지나자 매우 퍽퍽해졌다. 또 다시 먹겠냐고?  No.



치즈 에그 버거. 5.60 유로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만 사진에서 보듯 대수로울 게 없다. 치즈와 계란 후라이를 얹으면 '치즈 에그 버거'가 되는 식이다. 다른 점이라면 빵을 덮지 않고 따로 분리해 낸다는 것. 뭔가 새로운 시도긴 한데 별것도 없는 내용물을 보고 나니 오히려 실망스럽다. 사실 버거 자체보다는 곁들여 나올 풍성한 샐러드에 기대를 걸었었다. 언젠가 버거 요리를 먹는 이들의 접시에 풍성하게 곁들여진 샐러드를 보고 "저게 이곳 식인가 보군"하고 은근히 마음에 묻어두고 있었기 때문. 허나 저런 결과를 접하자 기대를 걸었다는 사실 자체가 민망스럽다.

패티는 버거킹만도 못했는데 일단 너무 태웠고 기름기는 쏙 빠져있었다. 뭣보다 패티를 씹는 동안 질기고 딱딱한 부위가 많이 씹혀 꽤나 거슬렸는데 뼈에 붙은 고기까지 갈아낸 저질 패티라는 반증이다. 그래도 알뜰히 먹었다. 본전 생각때문이기도 하지만 가까운 누군가(기억 안남)로부터 자꾸 '음식 남기는 것도 죄'라는 얘기를 못이 박히게 들었던 탓에.. 맛이야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접하는 맛이니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 또 먹겠냐고?  Never.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에 서니 카라바조의 그림이 들어간 와인 세트가 눈에 띈다. 성당을 찾는 관광객을 노린 해묵은 상술에 픽 웃음이 나 한 컷.






몰카 처럼 찍히고 만 카페 풍경.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 나오다가 골목의 채소가게를 발견하곤 슬쩍 다가가 본다.



규모가 제법 크고 품목도 많다.



다소 시들긴 했지만 푸른 바질도 나와 있다. 바질페스토는 바로 저 놈을 다져 만든 것. 빨간 방울 토마토와 함께 있으니 색감이 제각각 돋보인다.



루꼴라. 영어 이름은 로켓. 이탈리아 요리에서 바질과 더불어 빠지지 않는 인기 허브로 피자 위에도 자주 올라가고 아주 얇게 슬라이스한 파마산 치즈와 함께 프로슈토(돼지 뒷다리살을 1년간 묵혀 얇게 저며낸 생 햄)에 둘둘 말아 전채(Starter)로도 자주 제공된다.

풋익은 것은 쌉싸름한 맛이 강하고 잘 익은 것은 특유의 향과 더불어 고소한(?) 맛을 내는데.. 즐기는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일전에 이곳 유학생들에겐 쑥갓으로 오인되어 어렵사리 끓인 매운탕에 마지막을 장식했다가 매운탕이 악몽의 맛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전에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맛을 가늠해보니 읔...



씨알이 작은 것이 우리나라에서 즐겨먹는 캠벨포도는 분명 아니고 건포도나 와인 제조에 주로 쓰일 듯 싶은데..



앵두와 블루베리도 빛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음식이란 대개 맛으로 평가하기 마련이지만 저런 이쁜 모양과 매혹적인 색감이 무시된다면 분명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다행히 저런 예쁜 과일은 많은 경우 디저트 류에서 제 모습으로 살아 남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과일로 이곳에서 부르는 이름은 피클리피어. 저놈을 잉태한 나무는 다름 아닌 선인장이다. 아래 사진을 보라.



학원 가는 길에 아침마다 접하는 선인장 군락. 제멋대로 자란 주인 없는 선인장으로 낮은 곳에 맺힌 열매는 누군가 다 땄고 높은 곳에 매달리 저놈들은 태연히 남아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든다. 가시가 솟아 있어 특별한 장구 없이 섣불리 덤볐다간 다칠 수 있다.



껍질을 벗겨내면 이 같은 속살이 나온다. 다소 괴상하게 생겼고 아주 달지는 않지만 제법 과일다운 단맛을 내고 과즙도 풍부하다. 다만 촘촘히 박혀 있는 씨가 장애물인데 과일을 먹는다기 보다는 씨를 먹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씨가 많다. 미끄덩 거리는 것이 식감도 썩 좋지는 않지만 좋아 하는 사람들은 씨까지 덥썩덥썩 삼킨다. 보드카에 과즙을 섞어 칵테일로 차게 해 마시면 그 맛이 또한 독특하다. 마셔봤냐고?  Yes. 또 마시겠냐고? Of cause.

피클리피어에 대해 얘기를 나눠본 몰티즈들은 한결같이 "It's my favorite"이라는 반응이다. 피클리피어는 그 자체로 독주를 만들어 즐긴다는데 아직 이를 접해보진 못했다. 기회를 찾아봐야지..



발레타를 빠져 나오며 한 컷. 오랜 건축물과 높이 자란 나무가 드리워낸 그늘 아래 사람들은 이야기도 나누고 계단에 앉아 쉬기도 하고 노점을 기웃거리며 어설픈 예술가(?)들의 재주를 구경하기도 한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