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에 해당되는 글 70건

  1. 2008.09.07 와인과 보드카, 그리고 너구리 4
  2. 2008.09.03 몰타가 놀라운 이유 하나
  3. 2008.08.30 Gozitan의 식탁
  4. 2008.08.17 La vitta e vella! 3
  5. 2008.08.16 바람불어 좋은 날
  6. 2008.08.15 8.15
  7. 2008.08.14
  8. 2008.08.13 소포가 도착했다는데.. 5
  9. 2008.08.08 이태리에서의 어떤 공상 3
  10. 2008.08.08 한국 소식 살피니..

 변덕스러움에 있어서 계절만큼 당혹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없지 싶다. 가을이 왔다고 호들갑을 떤게 얼마전이었건만 요즘 몰타의 날씨는 한 여름 한국의 날씨를 고스란히 닮아있다. 시간이 꺼꾸로 간 때문은 물론 아니고 9월로 접어들면 다습한 공기가 지중해 일대를 뒤덮었기 때문. 이 불쾌한 '손님''은 점차 그 범위를 키워 겨울로 접어들 무렵엔 유럽으로까지 뻗친다고 한다. 우리와는 달리 여름엔 건조하고 겨울에 다소 습해지는 것이 이곳 기후의 특징. 겨울에 유럽에 안개가 많이 끼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다 아는 얘기일 터.

그래서 요즘 무척 덥고 쉽게 지친다. 끈적거리는 피부와 어느새 눅눅해져 기분나쁘게 달라붙는 옷은 '어서 바다로나 뛰어들라'고 재촉하는 것 같고 실제로 그러기도 한다. 그러던 지난 금요일, 밤이 되자 기온은 좀 더 낮아졌지만 습도는 여전한 가운데 15명 안팎의 사람들이 모여 차에 몸을 실었다.  




일행이 향하는 곳은 몰타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에 하나라는 Mdina. 에어컨이 고장나서 그냥 창문열고 달리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은 제법 시원하다. 서먹한 일행들은 모두 말이 없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GROTTO라는 이름의 카페 앞. 학원에서 주관하는 체험 프로그램, 이른바 'Activity'의 일환으로 1인당 22유로(한화 34,000원)를 내고 참여하는 Malta Wine Tasting 을 체험하기 위해 온 것이다. 몰타 출국을 이제 한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우리로써도 이제 슬슬 몰타의 숨겨진 재미를 찾아 나서야 할 때다.








GROTTO는 프랑스와 몰타 요리를 선보이는 제법 오래된 식당이지만 이미 저녁식사를 마치고 모인 우리들의 목적지는 어디까지나 와인이다. 하지만 그 기대가 썩 높은 것만은 아니다. 이미 전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대륙의 와인명가가 즐비한 마당에 자국 시장조차도 지켜내기 벅찬 품질이 이곳의 현실일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양조는 몰타에서 했다지만 포도는 대부분 이태리산 아닌가!

다만 낯선 체험이기도 하고 금요일 밤, 밥도 두둑히 먹어뒀으니 다양한 와인으로 주말밤을 기분좋게 포식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선뜻 참여한다. 낯선 동행들과 거나하게 한 잔 즐기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줄테다.








식당은 지상이 아니라 지하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인 만큼 제법 쓸만한 규모의 크고 작은 동굴들이 널려있고 그 가운데 가장 쓸만한 것들은 이처럼 식당으로 꾸며져 있다. 바깥보다는 서늘하니 좋지만 여기 공기도 꽤나 축축하다.






 

대략 지하 3층 정도 되는 깊이까지 내려오자 마지막에 닿은 와인 바. 사방의 벽은 모두 용암이 식어 굳어진 암석이다. 제법 깊고 긴 규모에 살짝 놀랐는데 이곳은 어디까지나 식당일 뿐 와이너리는 아니다. 길게 이어지는 통로는 오크통이 아닌 식사를 즐기는 테이블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와인 테이스팅을 진행하는 Sandra. 몰티즈인 그녀는 스위스에서 수학했고 지금은 주방을 맡은 프랑스 출신의 남편과 더불어 이곳 식당을 운영하고 있단다. 이날 등장한 와인은 모두 몰타 와인들로 왼쪽에서부터 샤도네이 화이트로 시작해 달콤한 로제를 거쳐 멜롯과 카버네 쇼비뇽, 그리고 그녀 말로 가장 바디감이 크다는 시라즈로 마무리되는 순서다.








그녀의 에너지 넘치는 설명이 시작됐다. 영어로 진행되는 설명은 어떤 것은 들리고 어떤 것은 안들린다. 하지만 들린 것 가운데 우리의 예측을 깨는 몇 가지 이야기들이 있어 우리를 놀래켰다. 적지 않은 포도를 이태리에서 수입해 양조만 하기도 하지만 몰타 자체의 엄선된 품종으로 담그는 포도주도 있고 그것들 대부분은 기계가 아닌 손으로 직접 따 술을 만든다는 것. 소량이기 때문에 쏟는 정성이 크고 그 덕에 품질도 좋다고 한다. 정부에서도 와인산업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지원을 늘리는 추세라고도 하니 무작정 무시하고 볼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그녀의 재치넘치는 설명은 모두 비디오 카메라에 담았으니 후에 찬찬히 반복해 돌려보면 그 내용이 좀 더 또렷해질테다.








열심히 사진도 찍고..








자잘한 먹거리도 정성스레 준비됐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전방위 먹거리 워터 비스켓도 보이고 옥수수, 쇠고기, 토마토, 참치를 베이스로 하는 4가지의 소스도 다소곳이 마련됐다. 과자에서 얹어먹지만 주로 빵에 발라 먹는다.








바삭한 바게트. 올리브를 담은 접시가 눈길을 끈다.








와인 안주로 손색없는 다양한 먹꺼리들이 한 가득이다. 오른쪽 위에 작은 알갱이들은 케이퍼인데 몰타 농산물의 대표 주자 가운데 하나라고.. 살라미와 프로슈토, 치즈를 가득 담은 접시도 있었는데 그건 미처 카메라에 담질 못했다. 와인의 톡 쏘는 듯한 산미는 오른쪽의 차가운 소세지가 풍부한 육기로 감싸주고 뻑뻑해진 입맛은 다시 와인이 상큼하게 되돌려주고, 쫓고 쫓기는 맛의 재미에 어느새 빠져든다.








바게트 위에 토마토와 참치 드레싱을 얇게 바르고 그 위에 올리브를 얹었다. 촉촉한 빵을 베어물 때까진 좋지만 막판에는 손으로 꽉 잡고 이빨로 물어 뜯어야 한다. 그래도 맛은 좋다. 참치와 마요네즈가 둔탁하지 않게 섞였고 어딘가 익숙한 그 맛에는 잘게 다진 바질의 풋풋함이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이것만으로도 훌륭하건만 올리브가 색다른 풍미를 얹어준다. 한낱 핑거푸드지만 맛의 향연이 놀랍다. 살짝 허기가 있는 사람들에겐 더 없이 좋을 요기꺼리.








바삭하게 구워낸 바게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채소 다짐 소스(?)를 얹어냈다. 그 맛이 독특해 열심히 카메라로 내용물을 자세히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여의치가 않다. 파, 양마, 당근까지는 육안으로 알겠고 입으로는 살짝 고기 국물맛이 나는 것 까진 알겠는데 나머진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까짓 안주꺼리에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는건 아닌가 모르겠다. 그런가?..








산드라의 숨가쁜 설명이 끝난 뒤 모두들 주거니 받거니 와인을 나눠 마신다. 산드라의 특별 서비스를 포함해 이날 총 17병의 마개를 땄으니 한 사람당 한 병 이상씩의 와인을 마신 셈이다. 이것저것 골고루 맛은 봤지만 이러쿵 저러쿵 입을 놀리는 것이 부담스럽고 사실 그 느낌도 아직은 모호하다. 와인 맛의 각성도 쉽지 않고 그 경계를 구분하는 입맛의 기준도 아직은 없다. 꼭 그래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모호한 맛의 경계를 시시콜콜 논하진 않으련다.








수퍼마켓의 5유로 짜리 와인 앞에서도 손길이 주저되는 것에 비하면 이날의 지출은 턱없이 비싼 것이지만 단지 병입된 와인의 가치만이 아니라 제법 맛난 안주들과 공간의 독특함, 그리고 과묵했던 일행들과 어느새 잔을 부딪치며 왁짜하게 떠드는 재미에서 와인에(나아가 모든 알코홀에) 기대하는 궁극의 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그 묘미에 열광하는 이들은 때론 아래 포즈로 표현을 대신하기도 한다.








독일서 온 미녀 '카리나'와 독일사람처럼 생긴 이태리 청년 '패트릭'.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어섰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 올 때와 달리 갈 때는 분위기가 180도 돌변했다. 카메라 플랫쉬가 터지고 유쾌한 비명이 오가고 전염성 높은 웃음이 좁은 차 안을 흥건히 적셨다.  








와인에서 시작된 인연들은 파쳐빌로 자리를 옮겨 마침내 보드카로 좀 더 강렬하게 다져지고..

이곳에서 2차를 즐기고 3차까지 이어진 끝에 4시 무렵이 되서야 자리가 정리됐다. 오랫만에 달린 하루, 어쩐지 술이 점점 약해져가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술맛을 즐기는 입은 섬세해지고 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음식의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가급적 술과는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 옳지 싶다. 반주로 가볍게 즐기는 술은 식욕은 물론 음식의 맛을 더욱 돋궈주지만 어느 선을 넘어서는 그 순간부터 음식은 섬세한 맛의 결정체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씹어 삼키는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뭐, 경험으로 익히 아는 사실이다. 나도, 당신도.

술에 혹사당하는 입과 몸에 조금 미안함이 없지 않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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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이것이 있어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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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에 대한 단상. 재미로 읽으라. 동의해주면 고맙고.. )

이름하여 해장라면. K-mart에 드디어 고추장과 간장이 들어왔다. 그편에 너구리도 들어왔길래 몇 봉지 사다놓은 것 중 '한 마리'를 잡았다. 반찬도 없이 달랑 저거 한 냄비. 그래도 맛도 좋고 제 역할을 벗어난 임무까지도 훌륭히 수행한다. 이쯤에서 새삼 깨닫는 거지만 술자리의 진정한 완성은 역시 해장이다. 그것이 한 봉지 라면이 됐건 값비싼 생복 지리탕이 됐건 망가진 몸을 원래의 상태로 복구시키는 '의식'에서 술자리는 진정한 마무리가 된다.

그 의식의 '성지'가 한국만큼 발달한 곳도 없지 않을까? 콩나물국밥집, 북어국집, 올갱이국집, 선지국집.. 일일이 열거하는게 어리석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곳의 음주문화는 폭음으로 파열된 몸뚱이를 위한 '복구문화'가 그닥 발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 수 아래다. 물론 고급 위스키와 와인은 숙취의 부작용이 근본적으로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모든 사람들이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술도 아니고. 근사한 대문으로 들어가서 쪽문으로 나오는 느낌..

이점에 있어 해장문화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한다. 허나 우리모두 경험으로 알듯이 한국의 해장국집은 진정 '해장(酲)'하는 집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지난 밤의 상처를 치료하고 그리고 그곳에서 또 다시 새로운 상처에 몰입한다.
Posted by dalgonaa

 

지중해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것 가운데 하나인 저 불꽃. 저것이 특별한 이유는 화려함이 아니라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터뜨리는 과감함에 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대략 2분 간격의 뜸을 두고 하나씩 터진다. 이 시간에 바닷가 거리에 나가보면 사람들은 여전히 제각각의 속도로 산책을 즐기고 있고 카페에는 와인잔을 가운데 놓고 마냥 검은 바다를 응시하는 이들이 있고 바에는 아무도 안보는 TV 소음아래 맥주와 담배의 냄새가 본격적으로 쪄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들에게 불꽃은 그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해주는 선물이다.

그 무리에 섞이지 않은 사람들, 가령 늘 11시면 잠자리에 드는 우리집 플랫메이트 지희나 같은 시각, 대개 그렇듯 거실에서 컴퓨터앞에 앉아 영화를 보거나 간혹 맛블로거들의 자취를 뒤적이며 입맛을 다시는 우리들에게 불꽃은 이제 더 이상 호기심과 환희의 대상이 아니라 '공해'다. 그나마 밤에 터지는 불꽃은 볼꺼리라도 있다지만(그래봐야 같은 불꽃의 반복) 늦잠자는 주말마다 아침 8시부터 터뜨려대는 폭죽은 도대체 그 이유가 뭔지 이곳 공무원에게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뒤늦게 덧붙이는 글>
공무원 대신 학원 선생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몰타 내에서도 폭죽과 불꽃이 입길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 작은 섬나라 몰타에만 한해 1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FEAST(종교축제)가 열린다. 축제는 깜찍(?)하게도 골목마다 특유의 전통과 자존을 갖고 진행되는데 특별한 개성은 없고 언제나 그렇듯 골목을 따라 알록달록한 술과 휘장이 내걸리고 성모상이나 천사상이 어느 한 켠에 세워진다. 그리고 어느 날, 신부가 앞장서고 음악대가 뒤에서 미는 행렬을 따라 동네 사람들이 요란하게 행진(그래봐야 동네 골목) 한 번 하고 나면 끝이 난다.

문제는 행사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또는 그 위세를 뽐내기 위해 하늘을 향해 능력껏 폭죽과 불꽃을 쏴올린다는 것. 이 같은 경쟁아닌 경쟁이 언제부턴가 지속되고 있고 올해가 좀 더 심해진 경우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생줄리앙이라는 제법 돈 많은 이 동네가 작년까진 이 요란한 소란(?)에 시큰둥해 했는데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그 대열에 가세했기 때문이라고.

불꽃놀이를 반대하는 쪽은 허구헌날 비싼 화약을 하늘로 날려 버리는게 맞는지, 차라리 그 돈이라면 몰타 역시 엄연히 존재하는 빈부의 차를 좁히는데 쓰는게 낫지 않겠냐라는 주장이고 이에 맞서는 쪽은, 몇 가지 논리가 더 있겠지만 관광으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불꽃같은 특별한 이벤트라도 있어줘야 관광객을 엮어내는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여기까지 나와서 남의 복잡한 일에 골몰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이렇다는 사정만 전한다. 다만 앞서도 얘기했지만 폭죽과 불꽃, 이젠 그만 좀 터뜨리고 좀 조용히 해줬으면 하는 바람.. 뭐 사실 이곳을 떠날 날도 머지 않긴 하다. 먼 훗날 이때를 떠올리며 낄낄대겠지..

Posted by dalgonaa

몰타는 크게 몰타섬과 고조섬으로 나뉜다. 듣자하니 몰타섬에 사는 사람들이 주말이면 고조섬으로 놀러가는 반면 고조 사람들은 결코 몰타로 건너오는 일은 없다고 한다. 과장이 섞였을 얘기에 언뜻 배타적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아 살짝 경계도 가지만 놀러오는 사람들에게 해꼬지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아무렴!)  무엇보다 이미 그곳을 다녀온 다른 한국 친구들의 감상평을 듣자면 여행의 관점에선 몰타보다 매력적이라고 하니 몰타를 떠나기 전에 꼭 한 번 방문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실 학원 일정만 마무리되면 떠나기 전까지 이곳저곳 한 꺼번에 몰아 구경다닐 계획이어서 그날을 벼르고 있기도 하다.

고조를 아직 가보진 못하고 있지만 고조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는 한 번 다녀왔다. 이번엔 그곳에서 즐겼던(?) 음식을 사진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때는 2주 전이고 장소는 GOZITAN이라고 하는 식당이다. 눈치챘겠지만 '고지탄'은 고조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참고로 몰타 사람들은 '몰티즈'라고 부른다. 이곳은 한 마디로 고조사람이 고조음식을 파는 식당 되겠다. 간판도 그것을 강조한다.



간판은 몰타 국기에서 따왔고 섬문양과 오른쪽 글씨면 빼면 곧바로 몰타 국기가 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애초 몰타 국기는 적색과 흰색의 단순한 구성이었는데 2차 대전때 연합군에 가세해 싸운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국왕 존 6세가 '세인트 조지'라는 십자가를 내려줬고 그것을 국기에다가 새겨 넣었다고.. 아무튼, 전라도 어느 식당이 태극기를 간판으로 내걸었다면 좀 가기가 꺼려지겠지만 문화적 차이겠거니 하며 일단..

이날 GOZITAN에서의 식사는 김군 반의 친구인 알리시아가 2주간의 수업을 마치고 현재 살고있는 스페인 마드리드로 떠나기 때문에 작은 환송파티 겸 향토음식 한 번 먹어보자는데 의견이 모아져서 마련된 자리였다. 아래 여자가 알리시아 되시겠다.



50을 갓 넘긴 그녀, 여전히 젊을 때의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다. 오른 쪽은 역시 마드리드 사는 하비야.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고 퇴직하면 영화감독을 하겠단다. 틈만 나면 영화와 페드로 알모도바르에 대해 떠들길 좋아하는 그는 이날도 식사중 엄청 떠들었지만 무슨 이야긴지는 잘 못알아 들었다.  



첫 번째로 나온 것은 소스와 빵. 토마토를 진하게 조려낸 일종의 페이스트와 나머지 하나는 치즈의 풍미가 연하게 느껴지는 소스. 바구니에 빵도 담겨나왔으니 당장 허기진 사람들은 먼저 저걸로 속을 달래주면 되겠다. 맛? 글쎄.. 시간이 좀 흐른 탓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썩 맛나거나 특별히 남는 인상은 없다. 어쩌면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할 시도도 하기 전에 아마도 바로 다음 접시가 식탁에 올려져 관심에서 밀려난 것일 수도..



어떤가? 일종의 전채(Starter)인 셈인데 사실 처음에 접시를 접하고 주변을 빙 두루고 있는 과자에 살짝 놀랐다. '워터비스켓'이라 부르는 저 과자는 몰타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즐기는 비스켓으로 수퍼에도 한쪽에 봉지들이 쌓여 있고 그 맛은 참크래커 보다도 훨씬 건조하고 딱딱하며 별다른 맛이 없다. 말 그대로 물만 넣어 반죽해 구워낸 비스켓이다. 식당에서 저 비스켓을 접한 느낌은 전주 한정식집에서 느닷없이 쌀강정이 식전에 나온 느낌이랄까..  그래도 당혹감을 감추고 신기하다는 얼굴로 군말없이 먹는다.

앞의 붉은 소스는 역시 토마토가 주 재료고 진한 고기육수와 몇 가지 채소 및 향신료를 넣고 함께 쫄여 굳혔는지 간간하면서 재료들과 어우러지는 맛이 좋다. 특히 제법 느껴지는 매콤함 맛은 입안에 오랜 여운을 남겼는데 와드득 거리는 저놈의 워터비스켓이 아니라 가령 부드러운 바게뜨였다면 그 진가가 더욱 돋보일테다. 좀 더 연구해서 스프 따위로 내놓아도 훌륭할텐데.. (전통을 조금 덜 고집하는 것도 때론 손님에게 좋다)

가운데 생모짜렐라 치즈는 단단한 두부같은 질감에 맛은 평범하고 그 옆에 거무튀튀한 것은 파프리카를 말려 올리브유에 절여낸 것이 아닐까 추측되는 것으로 맛은 씁쓸하면서 다소 짜다. 그 뒤로 된장빛깔을 띄는 소스는 그야말로 된장을 연상시키는데 아니나 다를까 콩을 쑤어 반죽해 낸 음식이라고. 이 역시 고조뿐만 아니라 몰타섬 사람들도 즐기는 전통 음식의 하나. 그러나 그 맛은 별 신통함이 없다. 콩의 고소함도 잘 안느껴지고 우리 먹는 된장처럼 숙성의 맛도 아니고, 뭔가 시작은 했는데 그 결말이 뭔지 알 수 없는 '혼미건조'한 맛..  저 음식은 끝까지 저 모습을 유지했다.



리코타 치즈를 튀김옷을 입혀 튀겨냈다. 많이 익히면 치즈가 녹아 흐를텐데 이것은 제 형태를 유지했다. 뭐가 맞는 걸지 궁금하지만 일단 썰어 먹어본다. 씹히는 식감도 있고 제법 괜찮다. 고칼로리 치즈를 튀겨냈으니 칼로리 꽤 나가지 싶다.



메인을 생선과 고기 두 종류로 시켰는데 먼저 생선이 나왔다. 생선만은 아니고 보는 것 처럼 일반적인 해산물이 함께 요리되어 나왔다.  가운데 문어, 살짝 데친 것을 그늘에서 꾸덕하게 말린 뒤 이를 다시 짭짤한 소스에 조렸을 것으로 추측. 양념이 아니더라도 문어는 그 자체로 맛이 훌륭한 식재료다. 일전에 꾸덕하게 말린 문어를 그릴에 타지 않을 정도로 구워 단지 올리브유와 허브만을 뿌려 먹는 것을 TV에서 본 적 있는데 요란한 양념없이 즐기는 그 맛과 멋이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다. 이날 문어도 맛있었지만 양념을 줄여 좀 더 담백하게 즐기면 좋았을 터.

턱 낮은 팬에 버터 두루고 화이트 와인 냅다 뿌려가며 쎈 불에 조렸을 홍합, 그 맛이 문어보다 좋다. 그 자체로 뚜렷한 맛을 내는 식재료는 요란한 양념을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홍합이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저 뒤로 오징어도 보이는데 그 양이 턱없이 적어 어느 순간 보니 남은게 없더라는.. 그리고 접시의 가장 든든한 맡형격인 생선. 그 이름은 모르겠으나 맛은 서해안에서 잡히는 부서와 거의 같다.(그리고 보니 생김새도 비슷하다. 부서는 조기 대신 제삿상에도 자주 올라는 생선으로 짧은 시간 구워내면 퍽퍽한 뽀얀 살이 감칠맛이 좋으며 밥반찬으로도 으뜸)

특별한 양념은 없고 다소 싱겁게 간한 뒤 화이트 와인 뿌려 오븐에서 익혔을 것으로 추정. 저 생선을 정확히 4등분 해 4명이 나눠 먹는다. (이날 인원은 뒤늦게 합류한 강사까지 포함해 총 9명)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 능숙한 솜씨로 생선을 손질하는 훌리오. 그는 여자친구 스텔라와 함께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왔다. 맞은 편 대머리 총각은 아까 경제학 교수의 제자이자 친구이자 직장 동료라고..



요령은 간단하다. 먼저 생선 껍질을 살살 벗긴 뒤 가운데 뼈를 따라 나이프로 슥슥 편을 가른다. 그리고 얌전히 살을 떠내 접에서 담으면 그만. 요렇게..



4명이 나눠 먹으니 그 양은 보잘 것이 없다. 양념 또한 특별한 것이 없으니 맛은 평범한 생선의 맛. 건조하고 햇살 좋은 이곳의 환경이면 우리처럼 생선을 말려 다양하게 조리할만도 한데 고조에선 그런 요리법은 없는 듯 하다. (유럽 전체가 없지 싶다) 단지 저런 식의 살점을 즐기는 것이 이곳의 생선요리라면 가자미는 대단히 환영받을 생선일 듯.
 


또 다른 메인인 고기요리. 먹는데 다소간의 용기가 필요한 비주얼로 담겨 나왔다. 접시에 담긴 동물은 세 가지. 양, 닭, 토끼(혹은 고양이). 솟은 다리의 주인공이 토끼인데 항간의 말로 고양이를 대신 쓰는 집도 있다고 한다. 몰타엔 고양이가 정말 많다. 설마.. 하며 토끼라 믿고 먹어준다.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은 토끼 고기라면 인상부터 쓴다. 솟은 저 다리는 누구도 건들지 않고 김군은 살점이 제법 두둑해 보이는 몸통 부위를 얌전히 가져다 살금살금 썰어 먹는다.

맛은 닭고기와 흡사하다. 육질도 닭고기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결이 있고 다만 퍽퍽하다. 비법 양념까진 아니고 몇 가지 재료를 섞어 양념을 입힌 것으로 보이지만 특별한 맛은 없다. 다만 닭고기와 양고기의 경우 짭쪼름한 양념맛이 배어 있어 토끼고기에 비해 그런대로 먹을하다.



접시를 돌리니 토끼 다리와 몸통에 가려있던 닭고기와 양고기 등장. 촉촉한 양념이 육즙과 함께 묻어난다. 그러나 우리 입맛에서 보자면 여전히 아쉽다. 토끼고기는 저대로 간다면 이 섬나라에서만 즐기는 '괴상한' 음식으로 남지 싶다. (물론 토끼고기를 먹는 나라는 꽤 많다. 영국도 먹는다. 그 요리법이 어떠할지는 모르겠지만)



후식의 등장. 호두맛이 나는 아이스크림과 아이스크림같지 않게 촉촉한 과자를 뭉쳐놓은 듯한 아이스크림, 그리고 페스츄리의 저 어디쯤으로 추측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삼각형의 저것들. 한결같이 달고 맛이 좋다. 후식은 터키가 첨단이라는데 그곳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일전에 터키에서 온 여성에게 '터키가면 뭘 꼭 먹어야 하느냐'고 묻자 4가지를 적어줬는데 그 중 3가지가 후식이었다.

앞서의 포스팅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몰타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충돌이 빈번했던 섬이다. 한때 이슬람의 영향아래 있기도 했으니 당시의 양식은 음식에도 남아있음이 분명하다. 터키가 쓸만한 것을 남겨놓고 갔다.



와인 싫컷 마시고.. 이날 밥값의 절반 가까이를 와인이 차지했다. 몰티즈 와인이지만 포도는 이태리산을 쓴다고.. 몰타는 와인용 포도가 기후탓에 잘 자라지 않는다. 넉 달째 비를 못보고 사는 나라니..



이 사람이 바로 Gozitan, 식당의 주인이다. 반쯤 감긴 눈, 걸걸한 목소리와 억센 팔 뚝, 지중해의 억척스러움이 잔뜩 뭍어난다. 벽 한쪽 세워져 있던 GOZO 화보책을 꺼내들고 열심히 넘겨가며 고조 자랑에 몰두한 뒤 갑자기 기분이 동했는지 일행들에게 칵테일 한 잔씩을 공짜로 돌리는 인심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5병이나 비운 와인도, 막판의 공짜 칵테일도, 워터비스켓을 시작으로 이어진 수분없는 '뻑뻑한' 식사의 목맥힘을 시원하게 뚫어주진 못했다. 이방인들을 사로잡는 특별한 맛은 없었다. 우리 모두는 고기를 많이 남겼고 그런 용서 받지 못할(?) 음식에 대한 예의는 1인당 32유로(한국돈 47,000원)라는 예상치 못한 금액으로 엉뚱한 보복을 가해왔다. 이것이 비단 우리 두 사람만(이날은 강양도 동행)이 느끼는 억울함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고조의 음식이 이날 식탁에 올라온 것만은 물론 아닐테다. 보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엄선된 음식들이 제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테다. 그러나 우리로선 '못찾은 맛'을 다시 찾아나설 용기도 없고 꼭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고조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



인근 Bar로 이동해 목 좀 축이고.. 그리고 모두들 각자의 집으로..
(냉장고에 뭐 꺼내먹을게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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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이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處暑)다. 처서 바로 전의 절기가 입추(立秋)니까 이것만으로 보자면 가을이 곧 코앞에 다가와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고온습한 무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곳은? 지중해의 한 복판 몰타에는 오늘 아침 가을이 찾아왔다. 그야말로 한국의 전형적인 가을날씨다.

걷어차고 차던 이불을 새벽부터 끌어당기기 시작했고 눈 비비고 일어나 발코니에 서니 공기가 살짝 차갑게 느껴진다. 바람이라도 제법 세게 불라치면 피부에 살짝 소름이 돋는 수준이다. 매일 웃통을 벗고 지내던 김군은 아침에 티셔츠를 주어 입었고 함께 사는 여자들은 온수 보일러를 작동시켜 샤워물을 데피고 있다. 집안에서 들이키는 공기의 질감은 가을 어느날, 차례상을 준비하는 그 아침의 것을 쏙 빼닮아 있다.

아무래도 어제의 범상찮았던 바람이 몰고온 결과임에 틀림없다. 어제까지만도 바닷물에 들어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면 오늘 아침 발코니서 바라보는 바닷물은 어제와 사뭇 달라 보인다. 살짝 발끝만 담가봐도 그 차가움이 온 몸을 얼릴 것 같다. (이건 좀 오바군..) 아무튼 더위도 8월이 절정이라고 얘기하는 이곳에서 그 8월의 딱 중간인 어제가 최고 절정이었다면 그 다음날인 오늘은 본격적인 내리막이라고 얘기해도 될 듯 싶은데 어제의 바람이 그만 과속을 저질렀다.  

이른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또 다른 표현으로 '독서의 계절'은 지금 이곳의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파란빛깔의 주인이 하늘이었는지 바다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둘은 서로를 닮아가듯 더욱 짙은 빛깔로 성숙돼 갈테고 몸이 움추러지니 벌서부터 열량 높은 음식이 그리워진다. 동생이 부쳐준 책도 선반 한 구석에 든든하게 쌓여있으니 재주껏, 양껏 음식을 요리해 먹으며 하늘과 책을 번갈아 쳐다보면 그것만으로 이곳에서의 시간은 충분히 가치있을 듯 싶다.

가을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점은 또 있는데 이곳 몰타를 떠나 이제 본격적인 지중해 기행에 들어간다는 점 때문이다.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욕심내면 북아프리카의 몇 나라까지.. 짊어지고 다녀야 할 짐이 많아 그게 맘 한 구석을 무겁게 하지만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면 방법이 나올테다. 가을은 생각하기에도 좋은 계절 아닌가!  오늘 아침, 가을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 가을이 느껴지는지.. 저 앞 야자수땜에 혼란스럽긴 하지만 발코니에서 서면 아침공기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이 반가운 가을을 음악없이 맞을 순 없으니.. 고르고 고르다 선택한 음악, La vitta e vella. 가을이 있어 인생은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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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바람이 거세다. 평소 아래로 늘어져 있던 야자수 잎은 제 몸을 부러뜨릴 기세로 요란하게 요동치고 있고 옥상의 빨래들은 빨래집게 하나에 의지해 날아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럴 때 컴컴한 구름도 덮히고 비라도 뿌려주면 간만에 우울증에 젖어 지내볼텐데.. 그렇다면 이를 근사하게 장식해줄 점심으로 호박부침개를 할지, 아니면 수제비로 할지에 대한 진지한 궁리가 좀 더 즐거울 수 있겠건만 하늘은 석 달째 그렇듯 구름 한 점 없이 햇볕 쨍이다. 그 변함없음이 징글징글하다.

아침일찍 바다에 나가 수영이나 할까 하던 계획을 접고 그냥 거실에서 풍욕을 즐기고 있다. 비록 시원한 빗줄기는 없지만 초콜렛 빛으로 그을린 몸통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느낌은 여간 부드럽고 달콤한게 아니다. 같은 계절을 살아도 한국과는 전혀 다른 뽀송뽀송 메마른 공기가 만들어내는 감촉은 한국을 떠나기 전 꿈꿨던 지중해의 낭만이란 어쩌면 이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지중해를 상징하는 태양과 푸른바다, 그 속에서 한 없이 낙천적으로 보이는 이곳 사람들의 기질은 바로 이 바람이 없다면 분명 불가능했을 테다. 바람은 나무도 흔들고 빨래도 흔들지만 사람 마음도 흔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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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광복절, 같은 시각 몰타는 St, Maria Fesat, 이른바 성모승천대축일이다. 이는 비단 몰타만이 아니라 카톨릭을 국교로 삼는 나라들은 모두 똑같다고.. 가령 스페인 등등. 그래서 학원도 쉬고 수퍼도 쉬고 쇼핑센터도 쉰다. 그러니 우리도 집에서 그냥 쉬고 있다. 한국 소식에 맘 한 구석 불편함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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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진리가 있을까? 많은 경우 진리가 있다고 하고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힌두교에서 암소를 신성시하는 이유가 결코 '미련한' 우상숭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사회와 문화를 지탱하는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음을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에 이를 잘 설명하고 있으니 '사람이 굶어가는 판에 도대체 소를 안잡아먹는 저들의 정체는 뭔가?'하고 궁금했다면 일독해보길. 곧 가을도 오는데^^

배우고 있는 영어 교재의 한 지문엔 이런 대목이 있다. "Live for today". 격조있는 해석은 '오늘을 위해 살자'이고 피부에 와닿는 거친 해석은 '하루살이'다. <Britain in 2010>이라는 책으로 영국에서 관심을 받은 작가 Richard Scase를 인터뷰한 내용을 교재에 넣었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말의 일부분이다. 인터뷰의 요지는 '삶은 더 팍팍해지고 퇴직은 빨라지며 남부의 비싼 집값을 당해내지 못한 사람들은 다 팔아치우고 좀 더 싼 프랑스나 스페인의 시골로 이사하고 있다'는 것.

재택근무가 늘어날 것이라는 낙관도 전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교통체증과 심각한 공해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의 일부일 뿐이다. 실업난, 과중한 업무, 무능한 정치와 열악한 복지는 영국사회와 똑같이 이미 한국사회에서 진행중인, 그것도 아주 왕성하게 진행중인 일들이다.(물론 우리가 더 참혹하지만) 이를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이야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다.

주어진 재화, 또는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 공익을 넓힐까 결정하는 것이 결국엔 '지헤로워야 할!' 정치의 몫이라면 인도의 힌두교는 그것을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야윈 암소가 지주의 밭을 쳐들어가 기름진 양식을 몽땅 뜯어먹어도 지주는 소를 잡아 죽일 수는 없으며 살찐 암소로부터 받아낸 젖은 인도의 가장 낮은 카스트들의 일용할 양식이 된다. 지주와 빈농 사이의 벽을 자유롭게 옮겨다니며 재화의 공평분배를 소가 하고 있다. 그 양이야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소가 정치보다 낫지 않은가?

우리 속담에 소 뒷걸음질 치다 쥐잡는다는 훌륭한 속담이 있는데 난 도무지 소 뒷걸음질 갖고는 만족 못하겠다. 큰 쥐를 '왕쥐'라고도 부르는데 쥐잡는데는 뭐니뭐니해도 수류탄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작고 간편하고 왕쥐가 드글거리는 소굴에 하나 까넣기도 좋고..

(뉴스 그만봐야지.. 지중해의 자연과 낭만, 느릿한 삶의 한가로움과 값진 재료로 풍성하게 빚어낸 음식의 향연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해도 부족할 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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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으로 왔다가 학원문이 잠겨 다시 우체국으로 되돌아 갔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학원측 사람으로부터 전달받은 것은 그런 내용을 알리는 달랑 문서 한 장. 도대체 언제 어떻게 왔길래 이런 사태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학원측의 안일한 일처리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된다. 아무튼 그걸 되찾기 위해선 버스를 두 번 갈아타가며 집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Marsa라는 곳으로 가야하는데 우체국은 오후 1시까지만 문을 연다고 하니 천상 내일 아침 학원을 제끼고 책을 찾으러 가야할 듯..

서울의 동생이 보내준 것은 책. 무려 10권이 넘는다. 그 무게만도 10킬로에 이르며 이걸 짊어지고 다닐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그 전에 몽땅 읽어치워 머리속에 집어넣어야 겠지만 아무래도 가능한 수준에서 책을 이끌고 다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현재 향후 일정에 대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9월 사이로 터키를 한 번 짧게 여행하고 다시 몰타로 돌아와 짐 챙겨들고 이탈리아 베로나로 넘어가는 것이 그것이다. 그곳에 가면 엘리자베타가 기다리고 있고 그녀를 통해 이탈리아 여정(또는 짧으나마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과 도움을 받을 예정이다.

동생을 통해 부탁한 책의 목록은 이렇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 한길사
<문화의 수수께끼> - 한길사
<유럽의 음식문화> - 새물결
 
<죽음의 밥상> - 산책자
<희망의 밥상> - 사이언스 북스
<권력자들의 만찬> - 넥서스 북스
 
<빵의 역사> - 우물이 있는 집
<진기한 야채의 역사> - 눈과 마음
<그림으로 본 음식의 문화사> - 예담
 
<감자 이야기> - 지호
<세팅 더 테이블> - 해냄
<음식의 심리학> - 인북스
 
<미식예찬> - 서커스
<요리소설 맛> - 황금가지
<달콤 쌉싸름한 초콜렛>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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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 시리얼을 하나 부어 먹고 신김치 한 조각으로 입가심을 하고 학원 가기까지 남은 40분 동안 밤새 다운받고 있는 '식객' 열한번째 편을 다운받은 지점까지 봤다. 그리고 잠깐의 망설임 끝에 인터넷을 눌러보니 달고나의 방문횟수가 놀랍게도 1만을 넘어섰고 포털을 누르니 KBS 사장 해임소식이 톱을 장식한다. 잠시 밑으로 밀려난 올림픽 소식은 그러나 곧 톱으로 올라와 앞으로 2주간은 모든 정치적 이슈를 먹어 치우겠지만..

학원엘 가려면 늦어도 8시 20분에는 씻어야 하는데 8시 10분 쯤 강양에게 "오늘은 그냥 좀 쉴래"하고 말했다. '무슨소리야, 빨리 씻어'라고 완강하게 나왔다면 주섬주섬 일어나 씻으러 갔겠지만 그녀의 반응은 "10월에 어디로 갈지 구상이나 해놔"라며 차분하게 반응했다. 아마도 현재 김군반의 강사가 형편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김군의 마음을 헤아린 것일 수도 있고 자신도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향후 행선지에 대해 그녀의 주문대로 결정을 서둘러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거실 창을 등지고 앉아 있자니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등짝을 시원하게 문지르고 지나가는 느낌이 좋은 아침이다. 한국소식을 끊고 지낸다면 더없이 좋은 아침이겠지만 불행히도 그럴 순 없는 세상이 돼버렸다. 뭐 아침부터 머리 지끈거리는 얘길하려는건 아니고.



>> 강양과 식사를 즐기는 엘리자베타. 초점이 뒤에가서 맞았는데 오히려 이 사진이 나은 듯.

요 며칠 강양은 엘리자베타와 붙어 다닌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가 됐던 이태리의 베로나에서 온 그녀는 책 만드는 일을 하는 45살 이태리 북부 여성이다. 영어도 제법 잘하고 아는 것도 많고 세상에 대한 관심도 많아 강양과 그 호흡이 잘 맞는다. 며칠 전엔 김군은 쏙 빼놓고 두 사람만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1인당 30유로, 거의 5만원에 육박하는 식사를 즐기기도 했다.

뭐 먹고 얼마 썼냐를 꼬치꼬치 캐묻는 김군의 질문에 강양은 "이제 이태리 북부 가서 미아될 일은 없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이태리의 거점 하나가 생긴 것이다. 눈치챘겠지만 우리가 외국친구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늘 이런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다. 집에라도 초대해 없는 재료로 나름 근사한 요리를 대접하는 것은 그런 의도가 노골화된 것일 뿐 ㅋㅋ.

엘리자베타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지금 하는 일이 너무 바빠서 집에서 요리해먹을 시간이 없어 주로 외식을 즐기는 탓에 일반적인 이태리 사람들과 자신은 조금 다르다고 자평한다. 집에서, 가능하다면 엄마가 해주는 저녁을 먹는 것이 이태리 사람들의 일반적인 식사풍경이라면 자신의 생활을 그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것. 그러면서 그녀 왈 "우리 오빠 내외가 곧 50살이 돼. 하지만 여전히 매주 한 번은 엄마집에 가서 엄마의 요리를 먹지. 잘 들어, 매 월이 아니라 매 주야"



>> 홍합과 조개 볶음. 그러나 어패류의 맛과 신선도에 있어서 한국의 품질을 따라올 것이 있을까?

마침 강양 수업시간에 '5년 후 나의 모습'이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강양은 이에 대해 "아마 작은 식당을 개업해 운영하고 있을테고 자신은 홀에서, 남자친구는 주방에서 일하고 있을꺼다"라고 말했단다. 이에 대해 엘리자베타는 "그때 쯤엔 나도 지금 하는 일은 그만두고 수 처럼('수'는 강양의 영어 이름)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며 여유있게 살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그러자 이번엔 강양반의 또다른 이태리 친구인 알레산드라가 거들고 나섰다.

"수가 만약 한국에서 성공한다면 이태리 브랜치는 내가 맡겠다"라는 것. 컨설팅이 직업인 그녀는 그러면서 식당의 컨셉도 바로 공표했는데 '젋어지고 싶다면 한국인 '수'처럼 먹어라'. 40을 바라보는 나이의 강양 젊은 얼굴을 보고 강양반 모든 친구들이 '경악'했고 그 비결이 '한국음식 탓이다'라고 한 마디 툭 던진 것이 만들어낸 재미난 결과다.

이 모든, 시시껄렁 뜬구름 같은 얘기를 듣고 나선 한숨을 길게 뽑았지만 그냥 흘려보내기가 왠지 아깝다. 관광객과 예술품이 차고 넘치는 피렌체에서 밥장사를 하는 것도 제법 그럴싸 하겠지? 특히 요즘처럼 한국이라는 나라가 절망적으로 변해가는 상황에선 더더욱.. (그럼 제주도는 어쩌지?.. 공상처럼 친환경적, 평화적, 그리고 의외로 생산적인 놀이도 없다 ^^)



>> 보기만 해도 턱근육을 뻐근하게 만드는 저 놈. 다른 모든 상징을 떠나서 이 친구가 다른 입맛의 사람들에게도 환영을 받을까? 미디어에선 그렇다고 하는데 난 도무지 미디어를 믿지 못하겠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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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집 문화재 등록, KBS 사장 해임, 구본홍 YTN 사장 취임, 최루액 등장, 기륭전자 노동자 단식 58일째, 초중고 무한경쟁 돌입, 공기업 민영화 논란, 건국 60주년 임시정부 지우기 작업, 그리고 이 모든 이슈를 조용히 덮어줄 베이징 올림픽 개막..   어우.. 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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