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Malta 250308~/사람들 people'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8.08.08 이태리에서의 어떤 공상 3
  2. 2008.06.27 나지아의 꽃다발
  3. 2008.06.23 반가운 일요일
  4. 2008.06.18 패션 디자이너, 줄리아
  5. 2008.05.07 도모미 3
  6. 2008.05.04 두 번째 플랏 메이트 1
  7. 2008.04.27 마르티나와 마티아스 1
  8. 2008.04.24 배웅 1
  9. 2008.03.31 코브라 3
  10. 2008.03.31 로마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 시리얼을 하나 부어 먹고 신김치 한 조각으로 입가심을 하고 학원 가기까지 남은 40분 동안 밤새 다운받고 있는 '식객' 열한번째 편을 다운받은 지점까지 봤다. 그리고 잠깐의 망설임 끝에 인터넷을 눌러보니 달고나의 방문횟수가 놀랍게도 1만을 넘어섰고 포털을 누르니 KBS 사장 해임소식이 톱을 장식한다. 잠시 밑으로 밀려난 올림픽 소식은 그러나 곧 톱으로 올라와 앞으로 2주간은 모든 정치적 이슈를 먹어 치우겠지만..

학원엘 가려면 늦어도 8시 20분에는 씻어야 하는데 8시 10분 쯤 강양에게 "오늘은 그냥 좀 쉴래"하고 말했다. '무슨소리야, 빨리 씻어'라고 완강하게 나왔다면 주섬주섬 일어나 씻으러 갔겠지만 그녀의 반응은 "10월에 어디로 갈지 구상이나 해놔"라며 차분하게 반응했다. 아마도 현재 김군반의 강사가 형편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김군의 마음을 헤아린 것일 수도 있고 자신도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향후 행선지에 대해 그녀의 주문대로 결정을 서둘러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거실 창을 등지고 앉아 있자니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등짝을 시원하게 문지르고 지나가는 느낌이 좋은 아침이다. 한국소식을 끊고 지낸다면 더없이 좋은 아침이겠지만 불행히도 그럴 순 없는 세상이 돼버렸다. 뭐 아침부터 머리 지끈거리는 얘길하려는건 아니고.



>> 강양과 식사를 즐기는 엘리자베타. 초점이 뒤에가서 맞았는데 오히려 이 사진이 나은 듯.

요 며칠 강양은 엘리자베타와 붙어 다닌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가 됐던 이태리의 베로나에서 온 그녀는 책 만드는 일을 하는 45살 이태리 북부 여성이다. 영어도 제법 잘하고 아는 것도 많고 세상에 대한 관심도 많아 강양과 그 호흡이 잘 맞는다. 며칠 전엔 김군은 쏙 빼놓고 두 사람만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1인당 30유로, 거의 5만원에 육박하는 식사를 즐기기도 했다.

뭐 먹고 얼마 썼냐를 꼬치꼬치 캐묻는 김군의 질문에 강양은 "이제 이태리 북부 가서 미아될 일은 없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이태리의 거점 하나가 생긴 것이다. 눈치챘겠지만 우리가 외국친구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늘 이런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다. 집에라도 초대해 없는 재료로 나름 근사한 요리를 대접하는 것은 그런 의도가 노골화된 것일 뿐 ㅋㅋ.

엘리자베타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지금 하는 일이 너무 바빠서 집에서 요리해먹을 시간이 없어 주로 외식을 즐기는 탓에 일반적인 이태리 사람들과 자신은 조금 다르다고 자평한다. 집에서, 가능하다면 엄마가 해주는 저녁을 먹는 것이 이태리 사람들의 일반적인 식사풍경이라면 자신의 생활을 그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것. 그러면서 그녀 왈 "우리 오빠 내외가 곧 50살이 돼. 하지만 여전히 매주 한 번은 엄마집에 가서 엄마의 요리를 먹지. 잘 들어, 매 월이 아니라 매 주야"



>> 홍합과 조개 볶음. 그러나 어패류의 맛과 신선도에 있어서 한국의 품질을 따라올 것이 있을까?

마침 강양 수업시간에 '5년 후 나의 모습'이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강양은 이에 대해 "아마 작은 식당을 개업해 운영하고 있을테고 자신은 홀에서, 남자친구는 주방에서 일하고 있을꺼다"라고 말했단다. 이에 대해 엘리자베타는 "그때 쯤엔 나도 지금 하는 일은 그만두고 수 처럼('수'는 강양의 영어 이름)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며 여유있게 살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그러자 이번엔 강양반의 또다른 이태리 친구인 알레산드라가 거들고 나섰다.

"수가 만약 한국에서 성공한다면 이태리 브랜치는 내가 맡겠다"라는 것. 컨설팅이 직업인 그녀는 그러면서 식당의 컨셉도 바로 공표했는데 '젋어지고 싶다면 한국인 '수'처럼 먹어라'. 40을 바라보는 나이의 강양 젊은 얼굴을 보고 강양반 모든 친구들이 '경악'했고 그 비결이 '한국음식 탓이다'라고 한 마디 툭 던진 것이 만들어낸 재미난 결과다.

이 모든, 시시껄렁 뜬구름 같은 얘기를 듣고 나선 한숨을 길게 뽑았지만 그냥 흘려보내기가 왠지 아깝다. 관광객과 예술품이 차고 넘치는 피렌체에서 밥장사를 하는 것도 제법 그럴싸 하겠지? 특히 요즘처럼 한국이라는 나라가 절망적으로 변해가는 상황에선 더더욱.. (그럼 제주도는 어쩌지?.. 공상처럼 친환경적, 평화적, 그리고 의외로 생산적인 놀이도 없다 ^^)



>> 보기만 해도 턱근육을 뻐근하게 만드는 저 놈. 다른 모든 상징을 떠나서 이 친구가 다른 입맛의 사람들에게도 환영을 받을까? 미디어에선 그렇다고 하는데 난 도무지 미디어를 믿지 못하겠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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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아는 21살의 애띤 러시안이다. 모스크바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 동시에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음악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훗날 심리치료사가 되어 미국, 특히 뉴욕에 정착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기도 한 그녀는 언뜻 외모와 제스쳐, 심지어 억양까지도 맥 라이언과 비슷해 한동안 타군과 김군은 그녀를 맥 라이언이라고 추켜세우곤(또는 놀리곤)했다.

총 4주 간의 수업을 마치고 그녀는 오늘 금요일 밤 10시 20분 비행기로 자신의 고향 모스크바로 돌아간다. 그런 하루였기에 오늘 야외에서 진행된 마지막 수업을 마친 나지아는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2주 안쪽에서 마치고 돌아가는 다른 외국인들에 비해 4주라는 비교적 오랜 기간을 생활한 그녀로선 몰타 생활은 어느새 익숙한 일상의 하나였을 터.

또한 그녀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자신으로선 엄청난 목돈이 깨지는 여정이었던 만큼 하루하루는 그녀에게 금쪽과 같은 시간이었을 테다. 그래서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사람들을 만나고 또한 이곳저곳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는 Ida.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에서 5년간 생활한 그녀는 당연히 이탈리아어도 능숙하다. 가끔 김군이 수업중에 이탈리아에 관해 물으면 그녀는 언제나 꿈같았던 시간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몰타를 떠나기 전, 그녀로부터 이탈리아에 관한 유익한 정보를 최대한 이끌어낼 생각이다. 밥이라도 먹으면서. 

나지아는 자신의 마지막 수업을 그녀 스스로 훌륭하게 만들었다. 4주간 자신을 가르친 선생을 위해 꽃다발을 준비하고 다른 교실 친구들을 위해 작은 초콜렛 캔디와 진작부터 모스크바에서 챙겨온 엽서를 꺼내 한 장씩 나눠 준 것이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선물, 그녀의 행동에 선생 Ida는 연신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표정을 지었고 다른 친구들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김군은 마침 준비해간 카메라로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선생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모습을 지켜보며 러시아가 우리와도 꽤나 닮은 구석이 있다는 생각에 새삼 놀랐다. 어쩌면 그것은 특유의 명랑한 성격으로 주변과 잘 어울리는 그녀만의 독특한 성정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떠나는 그녀에게 행운을 잔뜩 빌어줬다. 그리고 지난 번 골든베이와 우리집에서 함께 밥먹으며 찍은 사진을 이메일로 꼭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나지아와 꼭 붙어다닌 줄리아가 주먹을 불끈 쥐며 "Don't forget"이라고 내게 힘주어 말했다. 그 제스쳐에 지난 번 FUEGO에서 김군게 당한 (?)뒤 줄리아는 아직도 김군을 약속이나 어기는 거짓말쟁이로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가 슬쩍 걱정이 들기도 했다.



>> 러시아로부터 걸려온 전화 통화를 마치고 씨익 웃는 순간 한 컷. 빠른 러시아 발음에 놀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한국말 몇 마디를 들려달란다. 평범한 몇 마디를 들려주니 '멜로디'같다며 무척이나 신기해 했다.  나지아 역시 이날 등짝이 홀라당 타 며칠간 애먹었다고..

Posted by dalgonaa
서울을 출발해 꼬박 20시간을 날아온 서희는 지난 주 도착한 이지희씨에 이어 마지막으로 합류한 플랫 메이트다. 4월 초, 대대적인(?) 공고를 통해 플랫 메이트 모집에 나선 이래 지금까지 총 4명의 플랫메이트가 이 집을 거쳐갔고 이제 이지희, 서희, 이 두 사람이 남은 기간 동안 우리와 함께 살아가게 될 사람들이다. (별일 없이 그렇게 되길 바란다)

일주일 앞서 도착한 지희는 뉴질랜드와 일본에서 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하고 일본어를 전공했던 탓에 일본사람들과 웬만한 대화는 무리없이 나누는 일본어 회화 실력을 갖추고 있다. 몰타에 머물며 공부하는 동안 한국과 외국을 오가며 할 수 있는 일이 뭘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방향을 잡아 볼 계획이라고 한다.

지희의 아버지는 해군에서 근무하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영향 탓에 그녀는 모든 것이 정리정돈에서 시작해 정리정돈으로 끝난다. 지희가 온 이후로 집안은 전 보다 훨씬 정돈되어지고 깨끗해졌다. 5일은 지나야 갖다 버리던 음식물 쓰레기를 지희는 아침 일찍 학원가는 길에 매일 깨끗히 정리해 갖다 버리곤 한다.

지금 다니는 EC라는 학원에 한국인이 넘쳐나고 선생도 그다지 좋은 교수법을 갖추고 있지 않아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점이 현재 그녀의 가장 큰 불만이자 걱정꺼리지만 동시에 일본어를 매개로 어찌어찌 알게된 몰티즈 남자와 최근 '건전한'(지희의 강력한 주장) 만남을 갖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간간히 영어 지도를 받게되면서 몰타에서의 꺼져가던 희망을 가까스로 살려가고 있기도 하다.

밝은 성격에 비해 행동은 움츠러들기 일쑤인 그녀에게 비키니를 입고 유럽의 늘씬한 미녀들을 뚫고 지중해로 다이빙하는 사건이 꼭 일어나기를 우리는 고대하고 있다.

서희는 약 2시간 전에 도착했다. 우리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외동딸이고 그녀보다 앞서 몰타에서 영어공부를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온 친구로부터 몰타에 대한 에센스 정보를 사전에 전수받았고 공부도 중요하지만 노는 것도 중요하다고 당당히 얘기하는 맹랑한 구석이 있는 친구라는 정도.

20시간 동안 잠을 제대로 못자 정신이 없는 가운데 배가 고프다며 밥좀 먹을 수 있냐고 묻길래 그자리에서 새우 볶음밥을 만들어 주니 다른 사람이 남긴 것 까지 싹싹 긁어먹는다. 음.. 털털한 친구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두 사람, 소란스럽지 않게, 즐겁게 함께 생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 마지막 플랫 메이트 '서희'가 서먹함에 당황스러워하며 짐을 끌고 집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Posted by dalgonaa

오늘 아침 수업시간에 줄리아를 보는 것이 좀 마음에 걸렸다. 왜냐면 어제 웰컴파티를 갔다가 2차로 이동한 FUEGO 클럽에서 나지아를 잠깐 바래다주고 올테니 기다려 달라는 줄리아를 15분 좀 넘게 기다리다가 그냥 와버렸기 때문이다. 그때 시각이 대략 11시 30분.

짐작으로 그녀는 분명 클럽으로 되돌아 왔을 것이다. 왜냐면 줄리아는 춤추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동행이 있어주길 바랬던 그녀는 되돌아와 김군을 한참 찾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그 생각이 뒤통수를 콕콕 찔렀지만 김군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밤 9시부터 엄청난 소음 아래 2시간 반동안 맥주 200ml만 마신 정신으로 손짓발짓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한낮의 영어수업 이상의 정신집중과 스트레스를 수반한다. 이때 에너지가 엄청 소비되기도 하지만 서서히 대화의 소재도 고갈돼가기 때문에 하품이 물밀듯이 몰려온다. 이제 가서 자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귀가를 조금 더 미루기로 한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빛은 "타군도 안왔는데 너 마저 여기서 내빼면 배신이야"라고 쏘아대는 것 같아 선뜻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셋이 FUEGO로 향했지만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기만 했다.

오늘 1교시 수업을 마치고 줄리아를 만나 어제 이야기를 나눴다.
"어제 기다리다가 안오길래 그냥 먼저 나왔다"
알고 있다는 듯 그녀가 씨익 웃는다. 하지만 널 원망했다는 표정도 살짝 묻어났다. 쩝..

줄리아는 27살이고 엄마의 지원을 바탕으로 조만간 자신만의 패션 브랜드를 만들어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옷을 판매할 계획이라고 한다. 보다 다양한 현장 공부와 경험을 위해 런던과 뉴욕을 방문할 계획(아직은 의지로 보이지만)을 갖고 있고 이를 위해 이곳 몰타에서 8월까지라는, 유럽인으로는 매우 드물게 긴 일정으로 영어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 북해에서 멀지 않은 KRASNODAR라는 생소한 도시에서 온 Julia Cherevko. 골든베이 모래사장에서 한 컷. 혹시라도 옷만드는데 한국산 원단이 필요하다면 한국의 믿을 수 있는 파트너를 소개해줄테니 언제든 얘기하라고 그녀에게 일러줬다. 심지어 샘플이 필요하면 보내줄 수도 있다고 큰소리까지 뻥뻥 쳐놓고 말았다. (실크로드 곽과장, 어쩌지?) 아무튼 런던, 뉴욕도 좋겠지만 동대문도 한 번쯤 꼭 방문해야 할꺼라고 있는 동안 세뇌를 시킬 계획이다.

Posted by dalgonaa

오가닉 화장품을 만들고 한국을 비롯, 아시아 여러 나라에 수출하는 후쿠오카의 중소기업이 있다. 60여 명의 직원과 더불어 화장품을 만드는 이 기업의 주인은 다나카 상. 그는  두 명의 딸을 두고 있는데 이 가운데 막내 딸인 도모미가 일주일 일정으로 몰타를 찾았다.

 

처음 교실에 들어온 도모미를 본 김군은 대번에 저 친구는 안 물어봐도 일본인이 틀림없군할 정도로 일본인 전형의 얼굴을 가졌다. 어딘가 어색한 로봇 같은.. 그럼에도 비교적 미모에 속하는 그녀를 보며 김군은 왠지 한 때 일본에서 폭발적이 인기를 끌었던 한국인 가수 은숙의 젊은 시절 모습을 떠올렸다.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새로운 신입생을 환영하는 학원 주최의 웰컴파티가 열린다. 국내에선 보기 힘든 250ml 작은 병 맥주 하나를 공짜를 마실 수 있는 이 자리는 비단 신입생들만을 위한 자리는 아니어서 공짜 술에 눈이 먼 한국인들이 대거(그래 봐야 20명 안팎) 참석하기도 한다. 김군과 강양도 모처럼 참석했고 김군은 이 자리에서 도모미를 다시 만났다.

 

처음 교실에서 봤을 때와 달리 다소 짙은 마스카라에 머리를 틀어 올린 그녀를 보자 김군은 이번엔 전성기 시절의 계은숙을 떠올렸다.

 

도모미는 영어를 좀 한다. 4년에 걸쳐 미국 보스톤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 공부도 마쳤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이력에 비춰본다면 지금 그녀의 영어 실력은 김군에 비해 월등히 낫지만 결코 우수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제 화요일,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서면서 김군이 도모미에게 저녁식사 제의를 했고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 소식을 강양과 주변의 한국인들에게 전했고 외국인과의 첫 단독 식사자리를 격려하는 응원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도모미에게 가졌던 제1의 궁금증은 그녀의 나이였다.

 

얼굴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로 봤을 때 어림잡아 30대 중반은 되지 않았겠느냐 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특히 가장 가까이서 볼 기회가 많은 김군은 평소 피부 관리를 공들여 해왔다면 40대 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짧은 갑론을박을 뒤로 하고 김군은 그녀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김군을 이끌고 도모미가 향한 곳은 몰타를 소개하는 엽서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레스토랑이다. 이름은 Paparazzi. 불륜을 즐기는 커플이라면 피해야 할 식당이 아닐까? 아무튼 꽤나 엉뚱한 이름의 이 식당은 그러나 위치와 전망만큼은 몰타에서 가장 훌륭한 곳에 속하는 식당이다. 가격도 결코 비싸지 않아 두 사람이 2만원 안팎이면 파스타 정도는 거뜬히 즐길 수 있다.



 

>> 김군이 시킨 알리올리오. 파프리카가 듬뿍 올려져 있어 보기는 그럴듯 하나 내가 만든 것 보다 훨씬 맛 없다. 마늘 풍미가 하나도 안난다는 것이 문제. (6.5 Er : 10,000원)   / 샤프란으로 지은 밥에 토마토 소스에 볶은 해산물을 덮었다. 돈부리가 먹고 싶었던걸까? (가격 모름) / 도모미가 대뜸 시키고 만 샐러드. 케이프와 올리브, 콩을 삶아 으깨것이 마치 된장을 닮은 콩 매쉬, 파프리카 말려 절인 것, 그리고 소세지와 토마토 소스 바른 바게뜨, 그리고 몇 가지 야채. 여기에 생맥주 한 잔과 과일 스무디 한 잔을 곁들여 총 32유로, 우리돈 45,000원이 나왔다. 샐러드는 몇 점 집어먹지도 못한채 김군이 몽땅 싸들고 왔다. 사진에선 잘 못느끼겠지만 모든 식사의 량이 꽤 많다.

제법 하는 영어와 아주 서툰 영어가 삐끄덕거리면서 식탁 위를 오고 갔다. 몇 가지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김군은 애초 오가닉 푸드 회사를 생각했으나 그녀에 따르면 비누를 비롯한 다양한 화장품을 만든다고 하고 자신은 고등학교 일부 시절과 대학을 미국에서 보냈고 이 때에 미국 유명 도시는 물론 유럽 여러 나라와 아시아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고 한다.

 

한국에도 여러 번 왔었는데 모두 음식 관광이었으며 잡채와 김밥에 매료됐고 한국산 조미김은 물론 매운 맛도 익숙해져 신라면도 한 상자 사 갖고 집에 간 적도 있다고 한다. 다음 여행은 남태평양의 팔라우를 갈 생각이고 귀국하면 가족들과 오키나와로 여행을 가야 한다고 한다.

 

이 외에 몇 가지 내용은 맨 처음에서 살짝 언급한 바와 같고 자신은 BMW를 몰고 부모님은 벤츠를 몬다고 한다. 김군은 애써 한국에 있을 때 90만원 짜리 차를 몰았다는 얘기는 하지 않으면서 ‘Your hobby’ 를 물었다. ‘Travel’이라고 답하길래 ‘Expensive hobby’를 가졌구나 라고 말하니 ‘No!’라 답하면서 웃는다.

 

그리고 최대한 격을 갖춰 물었다. “How old are you?”.  맞춰 보라는 말에 김군,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그만 자기 생각을 털어 놓고 말았다. “I think maybe 31, 32, 33.. I don’t know..” 그러자 우리의 도모미 상, “I’m 24” …

 

사태를 수습해야 했으나 딱히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이미 뱉은 말이니 주워 담을 수도 없었고 허둥대며 거듭 ‘I’m Sorry’를 반복하는 만큼 차분하고 낮은 톤의 ‘It’s O.K’만 그만큼 반복돼 돌아왔다. 어찌나 무안하고 미안한지..

 

2시간에 걸친 식사를 마친 뒤 먹다 남긴 샐러드를 싸 들고 터벅터벅 돌아와 강양과 몇 명의 한국인들에게(작은 맥주 파티가 벌어져 있었다) 결과를 전하자 곧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뭔가 속임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웰컴파티 현장에서 도모미를 봤던 사람들은 그녀가 최소 30대라는 데에 의견을 모았고 오늘 김군이 찍어온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그 확신은 더욱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24살이라니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몰타에서의 논쟁은 이처럼 하릴없다. 그래서 좋다)

 

하지만 그런들 어쩌겠나? 비록 엉망이었으되 오로지 영어만으로 2시간을 보냈고 후쿠오카와서 연락하면 자신이 즐겨가는 스시집을 안내하겠다고 하고(이 대목은 확신이 안선다. 자신이 대접한다는 건지 알려만 주겠다는 건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레스토랑 Paparazzi도 마침내 그 맛을 봤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이 같은 식사 기회를 점점 더 늘려갈 계획이다. 이는 김군이나 강양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유럽 각국의 요소요소에 전화기만 들면 도움의 손길을 뻗쳐올 아군을 시급히 육성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전 세계라면 더 좋다. 강양은 이미 엠마율크라는 비슷한 또래의 스위스 친구를 심어 놓은상태다.

 

도모미는 토요일 오전 9 비행기로 독일 뮌헨으로 날아간 뒤 그곳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로 갈아 탈 예정이다. 좀 더 많은 친구를 사귈 의향이 있는 그녀지만 누군가 다가오기 전에는 선뜻 나서지 못하는 성격인 듯 싶다. 결코 뒤떨어지는 영어실력이 아님에도 수업시간에 워낙 조용하니 말이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온 껄렁대는 젊은 친구들을 만나길 바라지만 현재 학원은 동구권에서 온 아줌마, 아저씨들로 넘쳐난다. 물론 그녀와 내가 공부중인 Level 1의 교실도 그렇다. 문득 동구권의 빠른 개방의 물결과 경제성장을 실감한다.



>>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건너편에서 찍은 'Paparazzi' 식당의 모습. 앞에 작은 만을 이루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즐기는 식사는 꽤나 낭만적이어서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 도모미. 결국 큰 실수를 범하고 만 셈이지만 그녀의 화장법과 패션은 잘못된 억측을 낳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Posted by dalgonaa

생줄리앙의 녹색 발코니 집에 새로운 플랏 메이트가 도착했다. 부산에서 온, 30대에 갓 접어든 한정란 씨다. 그녀는 독일 브레멘에서 출발하는 저가항공 라이언에어를 타고 어제 오전 11시 경에 몰타에 도착했다. 김군은 그녀를 마중하기 위해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으나 차가 심하게 밀려 무려 1시간 가까이 늦게 공항에 도착하고 말았다. 하지만 정란씨는 예상했다는 듯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고 다행히 엇갈리는 사고 없이 함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란씨는 한동안 다니던 무역회사를 작년에 그만 두고 이후 여행 가이드 공부와 영어 공부에 몰두했다. 문장의 5형식만을 줄기차게 외워야 했던 학창시절의 영어에 질려 한동안 거들떠도 안보다가 무심코 집어 든 Grammar In Use 빨간색 책(파란색은 그 윗단계다)을 통해 영문법의 체계가 다져졌다는 그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나름의 영어 공부법을 깨우치면서 한때 성인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단다.

지금까지 김군은 강양의 문법 실력을 우러러 봤는데 이제 그 대상이 바뀌었다. 모르긴 몰라도 월요일에 있을 레벨 테스트에서 우리는 그녀가 최소 2레벨(강양이 공부중인), 아니면 3레벨을 배정 받을꺼라 조심스레 추측하고 있다. 김군은 그녀에게 조만간 특별 수업을 받기로 했다. ㅋㅋ

그녀는 6개월 일정으로 이곳에서 공부를 할 예정이다. 공부를 마치면 모아 놓은 돈이 모두 탕진될 때 까지 터키를 비롯, 유럽 전역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몰타에서의 6개월이 다소 위태로워 보인다. 영국 본토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교육 커리큘럼을 갖춘 몰타는 그녀의 기대에는 못미치는 부분이 분명 있을꺼라 강양과 김군은 추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독일 브레멘에서 출발한 이유는 그녀의 남자친구가 그곳에 살고 있고 그는 다름 아닌 독일인이기 때문이다. 정란씨는 지난 달 22일 서울을 출발해 먼저 브레멘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남자친구와 그의 가족들을 만난 뒤 10여 일간의 짧은 독일 여행을 즐겼다. 그리고 학원 수업이 시작되는 내일 월요일에 맞춰 어제 토요일 몰타로 온 것이다.

작년, 독일에서 부산의 한 대학에 업무차 출장을 온 그를 처음 만난 뒤 지금까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모든 한국음식을 잘 먹는다고 하고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보신탕도 먹고 왔었다고 하니 일단 이 둘 사이의 아주 커다란 문화적 장벽 하나는 제거된 셈이다. 6월에 몰타로 짧은 여행을 올 예정이라는데 그러면 거실 소파를 내줄 예정이다.

요리에 자신 있다는 그녀가 자신있어 하는 분야는 술안주 요리다. 그녀는 주방용 식칼을 가지고 왔다.



>> 첫 날 만남부터 집에 있던 모든 술을 바닥냈다.  사진을 찍으려하자 수줍게 고개를 숙인 정란씨.


[첨언]
"영국 본토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교육 커리큘럼"은 잘못된 평가라는 것이 강양의 지적. 런던도 커리큘럼 자체는 몰타와 별반 다르지 않고 다만 '런던'이라는 도시가 갖춘 환경이 이곳 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점에서 유리한 면이 있다는 것. 즉, 여긴 태양과 바다, 그리고 몰타어에 더해 가끔 영어와 이태리어를 섞어 쓰는 사람들 뿐이라면 런던은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수 많은 Bar와 더불어 정통 잉글리쉬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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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의 고급 씽크대를 만드는 독일의 노동자 마티아스(Matthias) 100kg이 넘는 거구다. 새벽 5 15에 기상해 6까지 공장에 출근한 뒤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그는 7 잠깐 아침을 먹고 10까지 일하다가 30분간의 Break time 동안 커피 두 잔과 세 개피의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다시 2까지 일한 그는 2시 30 경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다.

 

독일의 역사를 공부하는 독특한 취미를 가진 마티아스는 6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일이 힘들어서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한다. 좀 더 좋은 직장으로의 이직을 희망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여자친구와 함께 몰타의 영어 학원을 찾았고 지난 2주간 동안 Beginner Class에서 기초를 닦았다.

 

마르티나(Martina)는 그의 여자친구다. 지역 노동청에서 일하는 그녀는 구직자들을 관리하고 이들의 구직을 돕는 일을 하는 틈틈이 SF영화를 즐긴다. 마르티나 역시 보수가 적은 공공 기관보다는 보수가 괜찮은 일반 회사로 일자리를 옮길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닌 듯 하다.

 

그녀의 영어실력은 비교적 높은 수준이어서 남자친구와 달리 Business Class를 듣는다. 6년째 동거 중인 이들은(부모님 집에서 함께 산다는데 그게 마티네 집인지 마리네 집인지는 미처 확인을 못했다) 만약 ‘좋은 일자리가 있고 그곳이 독일이라면 부모님 집을 나와 어디든 가겠다는 각오로 무장된, 다른 독일 젊은이들 처럼 평범하면서도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커플이다.

 

마티아스와 마르티나를 어제 금요일 저녁, 집으로 초대했다. Beginner Class의 김군과 마티아스 간의 두터운(?) 교우관계가 발단이 됐다. 하지만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학원 생활 중에 외국 친구들을 초대하고 초대 받는 일은 일상적인 일이다. 물론 초대받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지만. (이는 아마도 한국인들에게 비해 짧은 일정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많은 탓도 있고 공동 객실인 레지던스를 이용하는 탓도 크다)

 

두 사람을 위해 우리는 짜장밥과 짜장면, 호박 부침개를 메뉴로 준비했고 마티아스는 맥주와 와인을 사왔다. 짜장은 한국으로 돌아간 효진이 가져온 오뚜기 짜장이 이용됐다. 이 자리에는 일주일간의 포루투갈 여행을 마치고 20도 짜리 와인을 선물로 사온 두호도 함께 했다.




>> 실로 다양하게 준비된 재료들. 쌀의 생산지는 어딘지 모르겠으나 칼 찬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포장은 이탈리아에서 했다. 10kg에 우리돈으로 3만원이 조금 안되며 저 정도 단위의 포장쌀은 수퍼에 없고 오로지K-mart에만 있다 / 해물은 부침개에 / 짜장에 들어갈 돼지고기는 미리 한 번 끓여 기름기와 잡냄새를 살짝 제거했다.

강양과 두호, 마르티나가 주도하는 대화는 모두 영어로 진행됐고 간혹 한국어와 독일어가 속삭이듯 교차됐다. 김군도 조금씩 문장을 만들어 대화에 참여했고 마티아스도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중간중간 잠깐 침묵이 흐르기도 했지만 그 정도의 어색함은 이미 각오했다는 듯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고 대화는 즐거웠다.

 

다양한 주제가 대화로 오간 가운데 음식을 주제로 나눈 대화의 내용은 이랬다.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맥주가 뭐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자신의 동네에서 만드는 맥주가 가장 인기 있는 맥주라는 것. 우문현답이다. 타 지역에 가서 자신이 즐겨 마시던 로컬 맥주를 주문하면 괜한 핀잔을 들어야 한다나..

 

독일 남부 바바리아 지역은 맥주로 유명하고 그 소비 또한 높으며 옥토버 페스트 축제가 열리는 뮌헨은 바바리아의 주도(主都). 익히 알려져 있듯 이 기간에 판매되는 맥주 한 잔(1cc)의 가격이 10유로, 우리 돈으로 15,000원이 넘는다고 한다. 마티아스와 마르티나도 비싼 가격에 상당이 불만이 많다고 했다. 

 

이에 반해 역시 바바리아 지방에서 생산하는 유명 맥주 ‘Edinger’(‘에딩어라고 발음한다)는 그 품질에 비해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고 한다. 김군도 얼마 전 수퍼에서 한 병에 2유로를 주고 사 마셨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마티아스는 독일에선 1유로가 채 안 되는 가격으로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에딩어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에 대한 마티아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일반 맥주와 달리 에딩어는 병 밑에 효모가 가라앉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잔 하나에 전부 따라낼 경우엔 마지막 100cc 정도를 남기고 병을 휘휘 저으며 효모를 깨워 마저 따라내고, 작은 잔에 나눠 마실 경우 뚜껑을 따기 전 병 아래를 톡톡 쳐서 효모를 끌어 올려줘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병 속의 밑바닥을 확인해 효모가 남아있는지 확인하라는 것이 마티아스의 설명이다. 난생 처음 듣는 얘기에 귀가 쫑긋 세워졌다.

 

한국인들 밥상의 주인공이 쌀이라면 독일인들 식탁의 주인공은 감자다. 하루는 튀겨먹고 하루는 쪄 먹고 또 하루는 둘 다 해먹고, 이런 식생활이 일주일에 5번 반복된단다. 그 맛에 질린지도 이미 오래지만 이들도 딱히 다른 선택이 없다고 한다.

 

감자 옆에 언제나 놓이는 것은 햄과 소시지. 몰타의 소시지 가격에는 만족하지만 제한된 종류와 맛에는 인상부터 찡그리는 이들. 생선 요리도 좋아하지만 날 생선에 실눈부터 뜨고보는 마르티나는 생선에 숨은 박테리아를 걱정한다.

 

민물생선과 바다생선, 그리고 신선한 생선과 묵힌 생선의 차이를 열심히 설명해가며 겁에 질린 그녀를 설득했지만 이해는 하는 눈치면서도 스시나 사시미를 선뜻 집어 드는 데는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듯 하다. 듣기로는 높은 비만률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독일에서 담백한 일본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일본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는 중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바바리아는 예외인건가? 어딜 가나 남부 지역은 자신들의 오랜 전통을 고수하려는 남다른 고집이 있는가 보다.

 

이 외에도 영화와 정치, 사회 등에 대해서 간간히 이야기가 오갔지만 부족한 표현과 이해는 더 깊은 주제로의 대화를 가로막았다.

 

7가 조금 넘어서 시작된 식사와 대화는 하품이 잦아진 마티아스를 위해 11시경 마무리됐다. 이들이 준비해온 8개의 캔맥주는 일찌감치 동이 났고 냉장고에 있던 4개의 시스크 맥주가 추가로 올라왔다. 이들은 시커먼 짜장을 뒤집어 쓴 밥과 면에 살짝 긴장하면서도 결국엔 접시에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워냈다.

채 썬 호박에 해산물 칵테일을 섞어 부쳐낸 부침개도 반응이 좋았다. 다만 맛이 비결이었는지 아니면 부족한 양이 비결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선전한 결과와는 별개로 다음부터는 모든 돼지고기가 들어가는 요리에는 와인으로 냄새를 제거하고 생강으로 살짝 풍미를 살리자는 생각을 했다.

 

SF영화를 좋아하는 마르티나에게 애니매트릭스 파일을 메일로 보내주기로 했다.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겠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가볍게 포옹을 나누며 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이들은 토요일 아침부터 학원측에서 마지막으로 제공하는 몰타 투어를 끝으로 2주간의 몰타 여행을 마치고 9 30 비행기로 독일로 돌아간다.



>> 각자 좋아하는 취향대로 마티아스는 누들에, 마르티나는 라이스에 짜장을 얹어냈다. 반찬은 단무지 대신 야채 샐러드가 전부 / 대화중에도 서로의 손을 꼭 잡곤 했던 마티아스와 마르티나. 마티는 큰 덩치에 어울리는 엉뚱한 개구장이의 면모를 지녔고 마리는 부드러우면서도 꼼꼼하고 야물딱진 면모를 갖췄다. / 에딩어와 질드 필스너, 그리고 몰타의 자랑 시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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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으로 향하면서 효진은 한 달치 내기로 했던 방값을 공부하기 위해 가져왔다가 그냥 놓고 간다는 파란색 Grammar In Use 책 사이에 껴놓았다고 말했다. 돈 받기도 미안하지만 안받을 수도 없다. 떠나 보내는 우리도 아쉽고 약속을 깨고 떠나는 효진도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일 터.

 

3 40 이륙하는 에미레이트 항공편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효진을 배웅하고 우리는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간 주인을 맞았던 방은 그 전 보다 더 쓸쓸해 보인다.

 

Grammar In Use가 거실 테이블 위에 얌전히 놓여있다. 근데 그것만 놓고 간 게 아니다. 무겁게 짊어지고 온 몇 가지 짐들이 남겨져 있다. 멀티 탭, 노트 몇 권, 볼펜, 랜선, 슬리퍼 심지어 몰타에서 사용하기 위해 두바이 공항에서 사온 휴대폰도 놓고 갔다. 두바이 공항에서 3만원에 구입했으나 결국 이곳에서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남겨두고 만 것이다.

물건들은 모두 하얀 비닐봉지에 담겨져 있었고 이는 이미 이곳에 남겨놓겠다는 그녀의 의지가 담겨진 것이었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요량은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적잖이 놀랐다. 그러면서도 새것으로 반짝거리는 물건들은 어찌나 처연해 보이던지..

 



>> 노트 세 권, 영문법 책, 노키아 휴대폰, 랜선, 볼펜 세자루, 테이프, 그리고 멀티탭. 잠시 사람의 온기로 채워졌던 방은 '그랬었다'는 흔적만 남긴채 다시 빈방으로 남았다.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그녀의 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불면 날아갈 듯한 연약한 몸에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그녀지만 술을 사이에 놓는다면 자신을 당해낼 사람은 주변에 별로 없다는 그녀, 짧으나마 건축에 관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매우 즐거웠고(한남동 이건희 집의 단열재는 뉴질랜드 산 어린 양모라고 한다) 무엇보다 그녀의 고향인 하동에 관해 들으면서 우리는 하동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귀국하면 꼭 하동에서 다시 보기로 약속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하동의 매력을 체험시켜주기로 했고 우리는 그녀에게 그녀가 떠난 뒤 우리가 겪은 여정을 재미있게 풀어줄 계획이다. 그녀를 사로잡은 알리올리오와 그녀가 자신 있어 하는 술을 사이에 놓고.

 

<효진에게 덧붙이는 인사>

효진, 할머니 잘 보내드리고 부모님도 따뜻하게 위로해드리시게. 그리고 우리는 내년에 하동에서 다시 보자구.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 할머니나 부모님에게 가장 큰 효도인 법. 강건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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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에게 몰타는 삶의 환희겠지만 이들의 똑 같은 표정과 똑 같은 반응을 해마다 지켜보는 몰타사람들(몰티즈)에게는 그저 무료한 일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4 12일에 펼쳐지는 권투경기는 섬사람들의 무료함을 한 방에 날려줄 수 있을까? 한때 이곳을 지배했던 영국과의 일전이니 뭔가 큰 구경거리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내게 이날의 권투경기는 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유스호스텔 로비 게시판에 어느 날 붙은 포스터를 훑어보다가 깜짝 놀랐던 것이다.

아니? 이 사람은 바로..”

그렇다. 5유로짜리 싸구려 숙소에서 바로 내 옆 침대에 묵고 있는 그가 바로 코브라라는 닉네임으로 그 포스터에 박혀 있었다.

 

실제로 그는 뒤통수에 코브라 문신을 새겨 넣었다. 포스터 사진에선 그래도 좀 둥글둥글 한게 사람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좀 더 날카롭고 매서워 보인다. 어느 날 아침, 알고나 지낼 생각에 “Hello~ Are you boxer?  I saw the poster at lobby” 하고 어렵게 인사를 건네자 그는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짧은 대꾸 한 마디를 한 뒤 자기 침대로 들어가 버렸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이다.

글쎄.. 아마 내 침대 옆에 가지런히 세워둔 존슨즈 클린앤 클리어 로션과 니베아 크림, 엘라스틴 샴푸의 '요사스런' 향기가 코브라의 거친 야성을 거슬리게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좀 예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도 잠시, 나는 곧 슬퍼졌다. 포스터의 중심에 등장할 정도의 브랜드를 가진 그가 헝그리 복서도 아닐 텐데 고작 5유로짜리 싸구려 도미토리에 머물면서 손수 밥을 지어먹고 쫄쫄거리며 나오는 샤워에 몸을 씻고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를 나라에서 온 한 철없는 한국인의 측은지심을 발동시키고, 결국 이 모든 것에서 그의 곤궁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코브라에게는 펼치면 작은 화면이 나오는 DVD플레이어가 있는데 이것을 이용해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여가인 듯 보였다. 옆으로 팔베개를 하고 누워 화질도 엉망인(아마도 해적판일 듯) 영화를 보곤 하는데 어느 날 밤, 뭔가 큰 기계가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에 잠깐 잠에서 깬 적이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플레이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아침, DVD플레이어를 어루만지는 코브라를 볼 수 있었다. 심각한 고장이 아니기를, 그리고 혹시 분노를 표출한다면 내가 숙소에 머무는 동안이 아닌 4 12일이기를 바랐는데 다행히 그날 오후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보고 있는 그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며칠 전, 집을 알아보기 위해 부지런히 시내를 해안가 길을 따라 걷는데 코브라가 눈에 띄었다. 강한 햇살에 머리는 더욱 반짝였고 거친 이목구비는 얼굴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강한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잘 발달된 상체와 달리 하체는 부실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강한 체력에 기반한 지능적 파이터라기 보다는 한 방을 노리는 스타일이라는 추측이 들었다. 평상복 차림에 과자봉지를 들고 어기적 걷는 그에게서 어딘가 부족한 자기 관리도 느낄 수 있었다.

 

어찌됐건 코브라가 링 위에서 어떤 경기를 펼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손수 밥을 지어먹으며 일전을 준비한 그가 상대에게 두들겨 맞지 않기를, 그리고 대전료만큼은 두둑히 챙겨갔으면 하는 바람이 굴뚝 같을 뿐이다.

 

(혹시나 이곳의 권투경기가 그 옛날, 우리나라 레슬링 경기처럼 흥행수입을 위해 짜고 치는 고스톱은 설마 아니겠지? 체계적이지 못한 선수 관리와 그런 선수를 경기의 메인에 등장시키는 경기운영이 신뢰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워낙 작은 나라여서 그런가?)



>> 거리의 왠만한 상점 입구에는 저 포스터가 붙어 있다. / 주먹을 불끈 쥔 코브라의 모습. 코가 잔득 부어있는데 사실 실제 얼굴에 비해 얼굴 전체가 많이 부은 모습으로 나왔다. / 코브라의 침대. / 코브라의 그릇. 도착 첫날 음식을 해먹으려고 그릇을 찾으니 남자 숙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해서 방에 가보니 누군가의 사물함 위에 그릇이 있어 잠시 쓰고 갖다 놓으려다 말았는데 아마 코브라가 자신의 그릇 안에 된장이 끓고 있는 걸 봤다면 나를 죽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 작동이 될까 의심스러운 전열기 앞에서 후라이팬의 음식을 뒤적이던 코브라의 뒷모습이 안타까운 잔영으로 계속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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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세종문화회관에서 와인을 마시며 보는 오페라가 열린다면 로마의 한인숙소에서 만난 세 명의 여성을 동시에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보미, 이해미, 김미경, 이 세 사람이 그들이다. 로마의 숙소에서 다섯 밤을 자는 동안 만난 이들은 밀라노에서 무대디자인 공부를, 뮌헨에서 작곡 공부를, 베로나에서 와인 구매를 위해 유럽에 온 이들이었다.


로마에 도착해 위축됐던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었는데 한동안 시끌벅적한 대화로 온기를 불어넣어 준 이들에게 먼저 감사를 전한다.


밀라노에 퍽 잘 어울릴 듯한 길고 건강한 검은 머리결을 지닌 김보미씨는 현재 그곳에서 무대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훤칠한 키의 20대 여성이다. 1년간 이탈리아 어학을 공부를 마치고 작년부터 본격적인 전공 공부를 하고 있는 그녀는 이탈리아어도 수준급에 올라 있어 우리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는데 마침 유학중인 딸을 찾아온 부모님을 이끌고 로마 시내를 휘저으며 효도관광(?)에 나선 참이었다.


"
원래 미술을 전공했어요. 한국화요.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유럽에 배낭여행을 왔다가 런던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무대 디자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아직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본 적은 없지만 무대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굳이 김보미씨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만 하다. 평면으로 머물던 무대를 과감히 해체시키고 천정과 벽면, 심지어 객석의 공간까지도 무대로 활용하는 예는 심심찮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델라구아다'는 그 대표적 예일 것이다.


"
배우가 무대의 어디에 서야 하는지, 음악의 어떤 시점에서 배우가 유리잔을 집어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 몇 걸음을 걸어 와야 하고 그 위치에 테이블이 있어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설정해야 해요"


이탈리아 생활이 좋으면 이곳에 정착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아니요, 한국에 갈꺼에요"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한 번은 나폴리 여행을 갔다가 서둘러 밀라노로 돌아왔다는데 도무지 그곳 환경에 적응할 수 없었단다. 앞으로 2년은 더 밀라노에서 공부할 계획이라는 그녀는 사진 좀 찍자는 제안에 수줍어 하며 베개로 얼굴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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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지'는 영어의 익스큐즈와 비슷한 뜻이지만 경우에 따라선 나의 잘못을 처음부터 인정한다는 의미도 있어요. 가게에 들어가 점원의 주의를 끌 땐 '스쿠지'보단 '쌀베'라고 하세요. '쌀베'는 가벼운 인사라고 보시면 되요"


그녀의 가르침대로 테르미니 역 근처 한 피자집에 들어서자 주인장이 건네는 첫 마디가 '쌀베'. 우리도 맞받아 '쌀베'하고 외친 뒤 피자를 주문했다. 그 즈음, 그녀는 부모님과 함께 기차를 타고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밀라노로 되돌아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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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미
씨는 정수리 양쪽으로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내린, 역시 20대의 여성이다. 진주에서 딸을 보기 위해 독일에 온 어머니를 모시고 마침 부활절 연휴를 틈타 로마 여행에 나선 참이었다. 그녀는 뮌헨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있다.


"
신촌의 한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어요. 4년 동안 열심히 했지만 이곳 독일에 와서 1년을 공부해보니 그곳에서 배운게 하나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 중이에요"


다소 단정적인 그녀의 표현에 '과연 그럴까?' 싶다가고 현재의 입시체제와 그야말로 '내팽게쳐진' 음악, 미술 등 대한민국 예술교육의 현주소를 떠올려보니 결코 과장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
처음엔 미국에서 공부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1년을 고민하다가 독일로 왔죠. 1년을 공부해보니 이곳으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고전 음악의 중심지가 이곳이니 그 기운과 깊이가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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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독일인 가정을 오가며 익힌 독일어는 이제 수준급이다. 그런 그녀는 독일어에 대해 재밌는 해석을 내놨는데, "독일어를 공부하면서 언어가 이렇게 정교하고 표현이나 의사전달에서 정확하게 작동한다는 점이 놀랍고 흥미로워요"라는 말로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시키기도 했다. 특히 한국 학생들의 독일어 발음이 훌륭해 현지 교수들도 흥미로워 한다고 하니 이 점도 재밌다.


절대음감을 갖고 태어난 그녀는 잠깐이나마 부모님으로부터 법대 지망을 종용받기도 했으나 자신의 꿈을 찾아 이곳 독일에까지 오는데 일단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갈 길이 여전히 멀다고 한다.


"
작곡은 남자들의 영역이었어요. 그런 인식이 여전히 강하게 지배되고 있는 이곳에서 여자가 성공을 이루기란 쉽지는 않죠. 하지만 최근 독일에서도 한국인 여성 작곡가의 활약이 대단하거든요"


김보미
씨와 이해미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인연이 된다면 방송물 제작시 현지 코디로 함께 일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직업의식'이 발동하기도 했는데 어쨌든, 다시 이탈리아 넘어 와 10월 옥토버페스트 기간에 뮌헨에 오게되면 꼭 자신에게 연락을 달라는 이해미씨는 우리가 몰타행 비행기에서 엉성한 샌드위치를 씹으며 지중해를 내려다보는 그 때, 어머니와 함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올려다 보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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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미
씨가 떠나고 이해미씨가 오기 전, 잠깐동안 숙소가 텅 비었는데 그 틈에 숙소를 찾은 사람이 김미경씨다. 그녀를 보며 내 나름 추측하길 '아마 서울서 오늘 도착한 30대 직장녀이고 로마의 혹독한 날씨와 분위기에 잔뜩 쫄아 있을게 분명해, 우리처럼. 그러니 와인 한 잔 대접해 기분을 풀어줄 필요가 있어'.


세수를 마치고 방으로 조용히 향하는 그녀를 향해 외쳤다.
"
와인 한 잔 하시죠"
즉답이 없었으나 얼마후 그녀가 식당으로 왔다.


"
술 한잔 하시자고 했으면 그냥 인사나 하고 방으로 갔을 텐데 와인 한 잔 하시자는 말에 왔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곧 로마 방문과 여정에 대한 주제로 옮아갔는데 그녀 왈, "서울서 출발해 오늘 로마에 도착했고 내일 베로나로 출발해요. 그곳에서 와인 행사가 있어 좋은 포도주가 있으면 구매계약을 하고 다시 돌아가야 하거든요"


그리고 건네 받은 그녀의 명함에 찍혀 있는 건 '소물리에'. 허걱.. 혹시 아까 테르미니역 수퍼에서 3유로(45백원)에 구입해 마시고 있는, 그리고 그녀에게 권한 이 술에 대해 괜히 앞서 아는 척 떠든건 없는지 후다닥 되새겨 봤지만 다행히 없는 것 같다.


그녀는 이미 오래 전, 이탈리아에서 요리와 와인을 공부한 뒤 귀국해 지금은 서울과 제주도에 자기기반을 탄탄히 다진 소물리에다. 이제 겨우 이탈라아 파스타 주변을 기웃대며 접시에 묻은 소스나 찍어 맛보고 있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람인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
와인을 마셔보면 다 그 맛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나요?"

"물론이죠"

"와인, 그러니까 그 벌겋게 보이는 술이 전부 포도에서 나온건가요?"

"몇 가지 첨가물이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론 그렇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참 바보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전문가 앞에서 몇 알지도 못하는 얄팍한 지식을 뽐낼 수는 없었다. 그저 평소 만만하다고 생각되는 상대에겐 결코 드러내지 않았던 무지를 이 기회에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그녀는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설마 그녀가 내 흠을 잡겠는가? 낄낄


평소 읽던 한겨레의 요리 칼럼, 와인 칼럼, 심지어 이탈리아어 문법책의 저자까지도 대략 알고 지내는 그녀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나의 가물한 기억력의 한계를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전부 옮기지 않는다는 핑계와 대충 섞어 마무리한다. , 대화중에 힘주어 반복된 '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제주도예요'라는 그녀의 철썩같은 믿음은 그때도 흔쾌히 동의해 줬지만 휴일에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아 빵 하나, 계란 하나 살 수 없는 이곳 몰타에서 궐기하는 심정으로 다시금 동의하게 된다.


세 사람과의 인연은 어쩌면 우리가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더욱 특별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 길 가다 마주치면 누구든 먼저 아는 체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제 어디서건 강건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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