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다 보면 굶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하다 굶으면 그런가보다 하지만 여행하다가 굶으면 어쩐지 처량해짐을 느끼곤 하는데, 굶고 다니지 마세요~. 많은 여행자들이 유럽에 식당이 없어서 굶는 건 물론 아니다. 하나같이 비싸고 때론 뭘 어떻게 주문해 먹어야 할지를 잘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모험가들은 이럴 때 더욱 용기를 발휘해 낯선 레스토랑 문을 박차고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는 적잖은 이들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맥도날드의 유리문을 연다. 

그러나 여행자의 식단이 이렇게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만은 아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먹거리가 있은데.. 아무렴. 레스토랑과 맥도날드의 문화적 이질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에게 가장 만만하게 다가오는 먹거리가 바로 케밥이 아닐까. 완전 현지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량 매뉴얼로 만드는 영혼없는 음식도 아니고, 어딘가 어정쩡하지만 분명 이색적인 문화임엔 틀림없는 먹거리. 

지난 달 밀라노를 갔을 때 두오모를 물어물어 찾아가던 중 간단히 먹자해서 찾은 케밥집. 레스토랑의 깨알같은 메뉴판이 아닌 큼직하고 시뻘건 글씨와 음식 사진까지 곁들여 벽면에 붙여놓은 모습에 식욕이 요동치고 산처럼 쌓인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모습에선 적어도 이 순간은 야만인이 되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킨다. 쫀쫀한 또띠야에 양파, 토마토, 이탈리안 파슬리를 올리브유와 비네거로 버무린 샐러드를 얹고 그 위에 얇지만 넉넉히 저며낸 닭고기 케밥을 얹었다. 호일을 벗겨 한 입 베어물면.. 주루룩 옷에 떨어지는 새콤한 샐러드 국물만 조심하면 행복감을 맛보는건 어렵지 않다. 케밥을 먹을 때야 '진정 유럽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건 왜인지..


작아 보이지만 먹고 나면 제법 속이 든든하다.

 
앞서 케밥이 좀 허전할까 싶어 푸짐한 놈으로 한 장 더. 접시에 리소(쌀밥)와 함께 먹는 케밥. 가격은 먼저 케밥이 5유로, 접시 케밥이 5,5유로. 요즘 환율로 보면 저 두 개에 배추 두 장, 다 잊고 맛있게 먹자.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