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Korea 160409~'에 해당되는 글 124건

  1. 2012.10.01 가을햇살에서 덧없음을 떠올리다 2
  2. 2012.09.25 쁘레쩨몰로와 일상
  3. 2011.02.09 꽃샘추위 4
  4. 2010.12.27 대목장사 4
  5. 2010.12.20 구호 2
  6. 2010.12.19 연말이라 2
  7. 2010.11.22 엘리자베따에게 ( per Elisabetta ) 10
  8. 2010.11.15 인사 2
  9. 2010.11.13 아침 잠 좀 잔다. 2
  10. 2010.11.11 라자냐 8
한국 Korea 160409~2012. 10. 1. 16:39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밖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부터 장사를 할 생각으로 가게로 향하던 중 

이 거리의 생경한 모습에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보석처럼 맑은 가을햇살의 청량함과 대조적으로

어느새 차가워진 공기의 질감, 

텅 빈 거리의 알 수 없는 쓸쓸함.

아침에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의 부음을 들은 뒤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 깊숙이 들어와 앉아버렸고 

티없이 맑은 가을의 청량함은 덧없음을 떠올리게 했다. 






계획을 변경하기로 했다.

가게 셔터에 붙여놓았던 오른쪽 안내문구를 떼어내고

서둘러 왼쪽 안내문구로 교체했다.

저녁장사를 접고 하루 더 쉬기로 한 것.

시간맞춰 나온 쏭지는 저 문구를 적고 집으로 되돌아가 밀린 빨래를 하기로 했고

우린 근처 까페에 눌러앉아 그간 쌓인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무대륙.

주택가 깊숙이 자리잡은 이 공간은 잠시나마 번잡한 홍대 중심에서 벗어나 

조용히 짱박혀 저마다의 일에 몰두하기 좋은 곳이다.

홍대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즐겨 찾는 곳임도 틀림없는게

아는 사람을 몇 명은 꼭 만나기 때문.

시나리오 쓰는 사람, BAR 운영하는 사람, 까페 접고 다시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 음악하는 사람..




오늘은 늦은 밤,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동료 가는 길을 배웅하고 와야겠다.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2. 9. 25. 20:39

블로그를 재개한다. 

이래저래 바쁘고 집에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는 마당에 

사진찍고 편집하고 글도 쓰고 하는 것이 쉽진 않으나

시간이 지나고보면 소중한 기록들이기도 하니 좀 귀찮아도 써보련다.  


***


지난 8월부터 최근까지 한 채소가 우리가게를 위기속으로

몰아넣었었다. 바로 아래가 그 주인공.



이름은 쁘레쩨몰로(Prezzemolo). 영어로는 이탈리아 파슬리(Italy pasley)고

우리나라에선 '향나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서양요리에서 흔히 부르는 파슬리가 바로 이거다.

이거 말고 과일안주의 장식으로 나오는 파슬리는 컬리(Curly)파슬리로 

요리재료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듯.




이파리만 따서 씻어 물기를 제거한 뒤 칼로 잘게 썰어 다지면 

아주 향기로운 휘발유(?)냄새가 나는데 그 맛도 독특해서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채소다. 

그 개성이 얼핏 고수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풍미는 고수보다 부드럽고 지배적이지 않다. 




여름엔 가격이 안정되다 못해 가끔 폭락지경까지 가기도 하건만

이번 여름엔 정반대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시쳇말로 '개폭등'을 한 것.

일례로 2kg 한 박스에 10,000원 안팍에 구입하던 것이

150,000원으로 가격이 뛴 것이다. 

여름휴가로 울릉도를 룰루랄라 다녀온 뒤 영업재개를 위해 가락동을 찾았더니

그 사이에 이런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가락동 상인에게 이유를 알아봤더니 서울 인근에서 재배하는 몇몇 농가가

채산이 안맞는다며 밭을 갈아엎었고 결국 공급이 줄자 가격이 폭등한 것이란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피하고 싶은 지뢰 하나가 이런 경우인데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은 셈.


요즘에 배추가격이 폭등해 한식당들 시름이 깊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많은 식당 주인들이 여건만 된다면 인근에 자기 밭을 갖고

직접 재배해 썼으면 하는 꿈을 갖고 있다. 어디까지나 꿈..


 


그저 할 수 있는 건 스치로폼 박스 버리지 않고 거기에 흙담아 고추나 심심풀이 상추 심는정도.

아무튼 우린 150,000원이라는 충격에 한동안 패닉에 빠져있다가 정신을 수습한 뒤

서둘러 쁘레쩨몰로를 심었다. 

예전에 이태리를 떠나면서 바질, 루꼴라, 쁘레쩨몰로. 세 가지 씨를 

사가지고 들어왔었고 그간 한켠에 잘 보관해오고 있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15만원짜리 싹이 패었다. 

사실 우리 가게에서 사용하는 양에서 보면 부족한 양이겠지만 

턱없을 정도는 아닐 듯. 암튼 기대를 갖고 잘 경작해보련다. 

비록 가을로 접어들었지만 어서어서 자라거라.


(요즘들어 가격이 점차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으나 긴장을 늦출 순 없다)




지난 주말 막을 내린 와우북페스티벌에서 구입한 만화책.

식객같은 드라마 요소는 거의 없고 그저 때가 돼 배고픈 주인공이

우연히 사먹게되는 식당음식의 경험과 느낌을 솔직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째 영 싱겁다 싶은데 오히려 그런 슴슴함이 좋은 평가를 받는 만화. 




매일 만들고 있는 식사빵. 

대개 이태리식당은 주문음식이 나오기 전에 

오일 등, 찍어먹을꺼리와 함께 빵을 내주지만 

우린 식사 나오기 바로 직전에 내거나 식사와 함께 나간다. 


식사 중간중간에, 또는 다 먹은 뒤 접시에 남은 소스를

빵으로 깨끗하게 발라 먹는 것이 우리가게 빵을 맛있게 즐기는 요령이라면 요령.

이태리는 물론이지만 다른 나라의 서양인들도 대개 그렇게 빵을 활용한다. 

그래서 식사를 마친 그들의 접시는 거짓말같이 깨끗해서 

주방으로 돌아온 빈접시를 보며 우리끼리 혀를 내두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양이 부족한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어려서부터 그런 식습관 교육을 받아온 듯. 

참 잘 컸네.




동네 애들이 골목에서 시끄럽게 노는 모습이 참 오랫만이어서 한 장 찰칵.

쟤들도 저 순간 재밌겠지만 우리땐 더 재밌지 않았던가.

아그들아, 너희도 음식 함부로 남기지 말거라~




길이 3.6미터, 폭 30센치, 두께 30밀리의 아카시아 집성목.

그걸 3개로 잘라 2개는 목공본드로 붙이고 나머지 하나는 켜서 다리로 쓴다.

아는 사람에게 거실에 놓고 쓸 테이블 하나 만들어주겠다고 

지난 봄 무렵에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로 한 시간이 다 돼서

지난 금요일에 나무를 주문해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3일에 걸쳐 틈틈히 작업했다. 

손님없으면 주방에서 나와 톱질하고 주문들어오면 다시 들어가 팬질하고..




요즘 본드가 워낙 잘 나와서 무거운 두 판이 아주 단단하게 붙었다.

이음부위의 미세한 격차는 고운 사포로 열심이 갈아주면 표면도 매끄러워지고

더불어 격차도 줄어들어 원판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공기는 건조해서 좋고 따가운 가을햇살은 파라솔이 막아주고

맥주 한 잔 마셔가며..




테이블의 수혜자 경순감독. 허락없이 올린다.

다리의 날렵함을 살리려고 구조재를 줄였더니 약간 불안한 느낌.

허나 무거운 것들 올리고 잦은 이동없이 사용하면 테이블은 과묵하게 오랫동안 자기 역할을 해낼테다.

낮에 문자받았는데 테이블 중심으로 이것저것 정리해 놓으니 서재 하나가 생긴 느낌이라 너무 좋다고. 

재료비만 받았다. 7만원. 아 싸다! 덕분에 난 즐거웠고 기술도 축적됐다.

모닝에 저거 밀어넣고 트렁크 열고 상수역에서 망원역까지 2정거장 운전.

합정사거리 대로를 지날 땐 좀 쪽팔리더라는..




연어 카르파쵸. 

비타민과 아마란스 어린잎으로 정상을 장식. 

저 어린잎들은 강원도의 한 농가에서 '부디 샘플 써보시고 

주문 좀 부탁드린다'며 보내온걸로, 다 쓰고 얼마 남지않은 거의 마지막 재료다. 

써보니 마무리 선수로 활용가치가 커 오늘 전화를 걸어 첫 주문을 넣었다. 

'싱싱하고 잘 생긴것들로 보내주세요' 


연어 카르파쵸에는 자몽이 들어가는데 올 여름 미국에서 자몽농사가 흉작이라

국내에 물량이 들어오려면 몇 달 걸릴꺼라고.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1. 2. 9. 02:08
유난히 추웠던 계절도 이제 다음 계절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이번주 목요일에 다시 추워진다지만 매일 우리 가게에서 배출되는 폐지류를 수집해가는
할아버지는 비웃듯 단호하게 한 마디 하신다.

"그래봐야 꽃샘추위여!"

그 한 마디에 왠지 기운이 솟는다.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0. 12. 27. 11:39

음식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1년 장사 중
가장 HOT한 대목이라는 크리스마스가 무사히 지나갔다.
기습한파로 꽁꽁 얼어붙은 거리였지만 역시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인지
그 혹한을 뚫고 전진해오는 손님들은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역시 크리스마스 이브날이 가장 Hot했는데
평소라면 밤 9시 경 가스차단기를 내렸겠지만 이날은 10시가 넘어 서도
팬 위의 파스타가 지글지글 끓었다.
10시가 넘어서도 대기자 명단에는 3팀이 더 남아 있었지만
결국 이들은 우리 가게서 식사를 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물론 너무 늦어 식사를 못할 수도 있음을 미리 알려줬으니 이들도 이해해주리라.


사실 23일부터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었다.
12월에 들어오면서 간간히 걸려오던 크리스마스 예약 문의전화는
일주일을 앞두고 다연장 로켓포 쏴대듯 빗발쳤기 때문이다.
전화문의가 그러니 아예 작정하고 가게를 찾아올 사람들을 가늠해보면
그야말로 손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임을 충분히 예감할 수 있었다.

해서 이에 대비해 몇 가지 대책을 세웠는데,
우선 6개의 파스타 메뉴 중 2개를 임시로 내려 주문의 분산을 막기로 했고
들쭉날쭉하던 오븐 메뉴와 샐러드 메뉴를 각각 하나씩 포진시켜
파스타로 주문이 몰리는 병목현상도 제거하기로 했다.
일부 식당들은 이날 만큼은 가격을 몇 십프로씩
인상해서 받는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우리 깜냥에 무슨..


날씨가 워낙 추웠던지라 문가쪽에 앉은 손님들에게 시종 신경이 쓰였다.
수시로 문을 여닫는 문의 손님들로 찬바람이 끊이지 않았고
그 자리에 왜 난방기 하나 놓을 생각을 못했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하다못해 무릎 담요라도 좀 더 준비해 둘 것을..

혹한의 냉기는 엉뚱한데서 사고를 일으켰으니,
일요일에 피클을 담글 생각으로 사다놓은 오이가 얼어 터진거다.
4상자를 구입했는데 이 가운데 1개 분량은 못쓸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슬글슬금 값이 오르길래 지난 목요일, 마침 시장 나온김에 사둔 거였는데
창고에 넣어두고는 설마 창고기온이 빙점 이하로 내려가리라곤 생각지 못했던 것이 화근.
그리고보니 작년 겨울에 이번처럼 기온이 떨어지는 날이 며칠씩 이어지면
위험을 무릅쓰고 작은 전기 난방기를 켜놓고 퇴근했던 적이 있었다.
이번 겨울에도 이런 모험을 감행해야 할 듯.


12월 말일, 작년에는 늦게까지 장사를 했지만
올해는 9시 전에 일찍 문을 닫고 친구들과 오랫만에 왁자지껄 떠들며 새해를 맞을 생각이다.
이날도 매출은 기록적일것 같은데..
괜히 이날로 날을 잡았나?
행여 이날 식사를 할 분들이라면 이 점 참고하시길.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0. 12. 20. 12:05
전쟁반대!

MB퇴진!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0. 12. 19. 10:03
곧 잠자리를 털고 씻고 노량진 시장엘 가려 했는데
잠시 인터넷을 켜고 아는 이들 블로그를 기웃거리다
그들의 글쓰기 부지런함을 바라보며 잠시 반성하다 결국
이렇게 몇 자 적기로 했다.

지난 번 시내에 나가 다이어리 한 권을 구입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일기를 적었는데
어느 몇 년의 해는 뭉텅 빼먹는 식이다.
 2011년은 좀 제대로 적어보자는 생각에 구입을 했다.
굳이 일기장이 아니어도 블로그에 적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가 본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가려내야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인데
그러다 보면 어딘가 솔직해지지 못하고 감정의 흐름도 자꾸 돌아보게 되고
결국 시간도 많이 잡아먹혀 멍때리는 귀한 시간을 단축시키고 만다.
식당 일이란게 워낙 육체적 일이 많고 스트레스도 많기 때문에
멍때리는 시간은 이완제처럼 필요하다.



어느새 연말이라..
가게 연지도 지난 달 11월 30일 기준으로 1년이 벌써 지났다.
가을 무렵에 공사를 시작해 11월이 꽉 차서 오픈을 했는데
12월 대목을 놓쳐선 안된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1년맞이 생일잔치는 거창하게 해볼까 궁리만 하다가
다 관두고 그야말로 조촐하게 마무리했다.
화요일 저녁에만 반짝 나와 주방일을 도와주는 공감독이 사온 호두 타르트,
그리고 다음날 가게 인근 벨라 또띠야의 종민씨가 사온 치즈케잌.
두 번에 걸쳐 초를 켜고 우리끼리 박수치며 자축하는 걸로 끝냈다.



크리스마스 예약 문의전화가 그야말로 빗발치고 있지만
전날과 당일날은 예약은 받지 않기로 하고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
그냥 오는 순서대로 자리에 앉힐 계획.
그나저나 우리도 이 반짝 특수에 바가지 좀 씌어서 재미 좀 봐야 할텐데..
뭐 좋은 비책이 없을까?
그냥 바가지를 사다가 손님마다 머리에 씌우고 바가지 값만 받을까?


아, 그리고 가게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워놨다.
얼마 전 동대문게 남대문을 돌며 적당하게 세워 둘 트리를 찾아봤는데
별것도 아닌 것이 어찌나 비싸던지.
해서 그냥 만들기로 맘 먹고 남대문 알파에서 이것저것 구입해
그날 밤에 뚝딱뚝딱 작업을 했고 
북실북실한 금빛 술이 모자라 다음날 가까운 동그라미 문방구에서 거의 쓸어오다시피 해서 완성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만든거냐 얼마 들었냐 궁금해하는데..
대략 4만원 가량이 들었고 아마 비슷한 것을 돈주고 샀다면 10만원은 훌쩍 넘었을 테다.
궁금한 이들은 파스타 먹으러오면 볼 수 있음.

동그라미 문방구 아주머니는 가끔 딸 아이를 우리가게에 보내 파스타를 먹인다.
아마도 아이가 먹고싶다고 조르니까 보내는거겠지.
그때마다 우리는 음료수를 공짜로 준다.

이제 노량진에 갈 시간.
내일 가게 쉬는 날이니 그거 감안해서 적당해 구입해야 한다.
품목은 바지락, 가리비, 홍합, 오징어, 이 네 가지.
 얼마전 씨알 굵은 바지락이 한 동안 나오길래 왜 이렇게 알이 좋냐고 물으니
북한에서 잠시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엥? 쥐박이가 교역을 몽땅 틀어막은걸로 아는데?
암튼 겨울 바지락은 북한산이 최고라는 아주머니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놈들이 팬 위에서 자글자글 끓다가 껍질을 탁 하고 벌릴 때 보면
'와' 하고 탄성이 나오니 때문이다.
어찌나 탱글탱글한 살이 빈틈없이 꽉 차있는지.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0. 11. 22. 13:42
엘리자베따는 이태리 베로나에 살고 있는 친구다.
얼마전 그녀에게 오랫만에 편지를 썼고 곧 답장이 왔는데
내용을 잘 있다는 거였고 그 증거로 이혼 후 만나고 있는 새로운 남자친구와
지난 여름 프랑스로 여행을 가서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함께 보내왔다.
이태리에 있을 때 시에나로 엘리자베따와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그곳의 한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그 남자친구를 우리도 만난 적이 있다.
키가 큰 남자였고 우연찮게도 엘리의 전 남편도 키가 컸다.
나중에 그녀가 고백을 통해 밝혔지만 키 큰 남자가 좋다고 했다.
우연이 아니었던건데 엘리는 165 조금 넘는 키다.

도대체 어떤 요리를 내는지 궁금해 미치겠다는 엘리를 위해
요 며칠 귀찮음을 무릅쓰고 카메라를 들었다. (1년 가까이 고정 반복되는 생활에서,
게다가 주문이 밀려 신속히 접시가 나가야 하는 상황에선 
사진 한 방 찍은 단순한 일도 엄청난 도전이 된다)

그리고 몇 가지 사진을 담아냈다.
그녀를 위해 준비한 몇 장의 사진들 중 일부.


방울 토마토를 말리고 있다.
썬드라이 토마토는 당연히 햇살 아래서 장시간 말려야겠지만
우리 실정에선 쉽지 않다.
오븐을 100도에 맞추고 3시간 가량 넣어두면 저 상태가 되는데
안에서 뜨거운 공기를 불어주는 컨벡션 오븐이면 더 좋다.
접시 위 요리에 조연으로 곁들이면 제법 근사하다.
맛도 단맛이 농축되어 훨씬 진해진다.



올 겨울에 쭉 밀고 갈 생각인 라자냐.
손수 만든 프레시 치즈에 데친 시금치를 무치고 층층이 그라나 치즈를 때려 넣었으니
치즈맛이 깊다. 거기에 모짜렐라까지 층층이 곁들이니 씹는 맛까지.
잘게 찢은 고기가 들어간 라자냐를 하다가 고기가 똑 떨어지면서
다른 재료를 찾다가 시금치를 넣었는데 반응이 괜찮다.
하지만 곧 고기도 다시 준비해서 두 가지를 병행할 생각.
원래 라자냐엔 라구 소스를 넣지만 그건 아래 파스타에서만 쓰기로.




볼로네제 파스타.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토마토 소스에 3시간 이상 푹 끓여 완성하는 메뉴.
면은 생면인데 이걸 시작하면서부터 브레이크 타임에 쉬는 시간이 30분 정도로 줄었다.
점심장사 끝나면 반죽하고 2시간 후에 그걸 밀어서 면을 만든다.


생면. 고된 겨울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증거다.
이탈리아에선 파스타 반죽용 계란이 따로 있다. 노른자의 색이 붉을 정도로 진해서
면을 뽑으면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노란빛이 나온다.
우리나라에는 이탈리아 계란같은 빛깔의 계란이 없다.
이 사진은 붉은 조명 아래서 찍어 좀 노랗게 나왔을 뿐.
요즘 그래서 궁리중인데 노른자면 사용해볼까 하는 것.
근데 발목을 잡는 것이 버려지는 흰자다.
고급 레스토랑도 아니고 단순한 기호 하나를 위해
멀쩡한 다른 하나를 버리자니 자꾸 찝찝한 생각이 들어 계속 번민중.


지난 여름에 열심히 만들었던 바질 페스토.
이게 주방에는 아주 효자 메뉴인데 바질 1kg 정도는 한 시간 만에 소스를 만들 수 있고
그걸 일주일 넘게 쓸 수 있다.
무엇보다 주문이 들어오면 면만 삶아 건져 소스 한 숟가락 넣고 비비면 끝.
팬을 쓸일 도 불을 쓸 일도 없다.
연두색의 식감이 별로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름철 따분한 식감에 활기를 넣기에 손색없는 메뉴.
다시 봄이 오고 바질 값이 내려가면 우리 가게서 어김없이 내놓을 메뉴다.


중국집에 짜장면과 짬봉이 있다면
우리 가게엔 살시챠와 마레가 있다.
요놈이 바로 마레.
건방 좀 떨자면 해산물 파스타를 내놓는 많고 많은 홍대의 파스타집들 가운데
이 가격대(13,000원)에서 이 맛과 품질을 누릴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좀 알려주시라.
홍합과 바지락 씻어 해감물에 담그고
가리비는 껍질에 붙은 이물질을 일일이 제거하고
오징어는 껍질을 모두 벗겨 링으로 썰고
새우는 껍질 벗기고 내장을 제거한다.
이 요리는 팬도 두 개를 사용하는데 하나는 파스타 용,
하나는 오징어와 새우를 튀기는 익히는 용이다.
오징어와 새우는 석쇠에 구워내면 훨씬 풍미가 좋아지겠지만
아쉽게도 우리 주방엔 그럴만한 공간이 없다.
언젠가 좀 더 넓은 주방으로 옮겨간다면 무슨일이 있어도 석쇠는 꼭 넣을 생각이다.
생면 파스타를 바로바로 뽑아낼 수 있는 공간도 상시공간으로 꾸미는 건 물론!
지금은 한 작업대에서 여러가지 일들을 계획을 세워 할 수 밖에 없는데
아주 신경을 예민하게 만드는 일들이다.


오랫만에 사진 곁들이는 글을 쓰니..
보기 좋쿠나.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0. 11. 15. 17:21
일본 드라마.. 갑자기 제목이 생각 안나네.. 아 이놈의 건망증..
암튼 이탈리아 식당을 무대로 펼쳐지는 요리사들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인데
거기 보면 돌체(Dolce-'달다'는 뜻)파트를 맡는 요리사가 등장한다.
그의 공간은 주방과 분리돼 있고 인물 자체도
주방 요리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러면서 드라마는  주먹구구와 눈치, 때론 요령이 난무하는 주방과 달리 돌체,
바꿔말해 제과(또는 제빵)분야는 정확한 수치, 계량, 그리고 인내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한 마디로 과학의 힘이 지배하는 분야라는 점을 이런저런 장면에서 보여주는데,
훌륭한 요리가 요리사 특유의 재능과 민첩한 감(感)으로 완성된다면
훌륭한 디저트는 정확한 수(數)과 특유의 근성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뭐 대충 큰 줄기에서 그렇게 이해하고 있고
 거기도 온갖 폭력(언어적, 심리적)이 난무하는 공간이기는 마찬가질 터.

한 때 같은 직장을 다녔던 여자 선배 하나가
훌쩍 런던으로 날아갔다는 소식은 이미 전에 들었다.
밥 한 번 제대로 먹은 기억이 없지만
작은 키에 두거운 검정 뿔테를 쓰고 자신에 잘 들어맞는
나름의 옷차림이 돋보인 그녀는
항상 공상에 젖은 아멜리에 같은 어딘가 엉뚱한 분위기가 풍겼고
우리 술친구 하나는 그녀의 냉철한 글(기사)을 좋아했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녀의 소식을 접했으니..
ㅋㅋ 런던에서 박살나고 있구나..

불혹을 넘긴 나이에 모진 풍파를 각오하고
런던으로 향한 결심이 뭘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고생끝에 얻은 솜씨로 구워낸 케잌은 꼭 맛보고 싶다.
 

"조선배, 짐승같은 쉐프들이 쥐어짜도 건강은 하죠? ^^
달고나 오픈하고 한 번 가게 올 줄 알았는데 얼굴 볼 기회도 없이
훌쩍 떠나셨구만.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시면 그때 꼭 봅시다"



PS/ 드라마 제목 생각났다.
'밤비노'
이탈리아말로 '애기'라는 뜻이지만 드라마에선 '애송이'라는 뜻.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0. 11. 13. 00:37
메뉴가 몇 가지 바뀌면서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매일같이 가던 노량진 시장을 이제는 1.5일에 한 번 꼴로 간다는 점인데
덕분에 아침잠을 좀 더 잘 수 있게됐다.

이달 말까지 팔 계획인 바질 페스토가 꾸준히 나가고
작년 겨울에 이어 이번에도 등장한 생면 라구 볼로네제도 인기를 끌고 있고
라자냐까지 더해지니 해산물 파스타의 인기가 살짝 꺾였다.

다행인건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바지락, 가리비, 홍합의
수명이 훨씬 길어졌다는 점이다.
지난 일요일엔 사온 바지락과 가리비가 많이 남아
월요일 쉬면서 냉장고에 그냥 넣어 뒀다.
여름같았으면 일요일 장사 마치고 여기저기 나눠주거나
몽땅 냄비에 넣고 뭘 해먹거나 했을텐데
다음날이면 대개 죽어서 화요일이면 살짝 냄새를 피워 손님용으로는 못쓰기 때문이다.
 근데 이번 화요일에 아침에 나와 냉장고를 열어보니
바지락은 긴 수관을 내밀고 팔팔하게 살아 있었고
가리비도 건드리니 황급히 껍질을 닫아버리며 건재를 과시한다.

내일은 토요일.
오전에 좀 늦잠자고 11시쯤 가게 나간 뒤
점심 장사 마치고서 노량진 가면 될 듯.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10. 11. 11. 23:54
밀가루를 계란반죽 한 뒤 넓게 밀어
이를 라면 굵기 정도로 썰어내면 딸리올리니,
그보다 좀 넓게 칼국수면 정도의 굵기로 썰면 딸리아뗄레,
손가락 마디 굵기로 썰면 빠빠르델레,
그리고 손바닥 넓이로 잘라내면 라자냐가 된다.
파스타로 통칭되는 요리 가운데 가장 넓은 면이 라자냐가 되는 셈.

오늘부터 라자냐를 시작했다.
원래는 볼로네제 라구 소스로 맛을 내지만 그건 볼로네제 파스타에만 쓰고
대신 라구 소스를 만들 때 통째로 냄비에 넣어 함께 익힌 쇠고기를
먹기좋게 일일이 손으로 찢어 쓰기로 했다.
장조림같은 육질이라 라구 소스의 갈은 고기보다 씹는 맛이 좋다.
전통적으로는 빠르미쟈노, 또는 그라나 치즈를 켜켜이 쌓은 파스타에
수북히 갈아 넣지만 우리는 그라나와 모짜렐라를 같이 쓰기로 했다.

라자냐는 적어도 우리 가게에서 손이 가장 많이 가는 파스타다.
반죽 밀고 베샤멜과 토마토 소스 따로 만들고
고기 익히고 가지 손질하고 가니쉬로 얹는 방울토마토 말리고..
주문이 들어오면 라자냐를 조립(?)하는 것에도 손이 많이 간다.
오븐에서 10분간 익혀내면 노릇하니 향기 좋고 하얀 접시에
말린 토마토랑 함께 내면 눈요기에도 좋다.

이탈리아 북부 요리답게 고칼로리이니 섣불리 덤벼들진 마시라.
밀가루, 버터, 오일, 고기, 치즈..
그래도 추운 날씨에 먹어주면 든든하다.
레드와인도 잘 어울리고 맥주도 곁들이기 좋다.
아마 콜라가 땡기겠지만.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