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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02 다음주부터.. 5
  2. 2009.06.30 게이코의 미각여행 12
  3. 2009.06.25 오랫만에 토마토 파스타 4
  4. 2009.06.25 거미줄을 걷자 1
  5. 2009.06.12 바질 작황 14
  6. 2009.06.04 라디오와 단어장 1
  7. 2009.05.31 5월 29일
  8. 2009.05.14 쑥쑥 크거라 13
  9. 2009.05.12 번뇌 11
  10. 2009.05.05 음미 10
한국 Korea 160409~2009. 7. 2. 21:02

왼쪽은 개량스푼이고 오른쪽은 개량컵이다.
어제 방산시장에서 각각 4천원씩 주고 구입했다.
시장의 한 좁은 골목길에 주욱 늘어선 각종 조리도구와 식재료들을 둘러보는 내내
 놀이동산에 놀러온 어린애 기분처럼 들뜨고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그야말로 어른들의 신나는 장난감들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방산시장에 가기 전,
당산에 있는 한 요리학원에서 오리엔테이션이 있어 참석했고
학원 강사는 개량스푼과 컵을 가져오라고 당부했다.
가져가야 할 것은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칼이 그렇고
행주와 앞치마도 포함돼 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매주 5일씩 4개월에 걸쳐 '호텔조리'라는 이름으로
요리스쿨이 진행되는데 며칠 전 수강을 등록했던 것.

이제야 말로
낯설고, 그리고 평생을 갈 기나긴 길에 본격적인 첫 발을 디뎠다고 봐야 하는건가?


적어도, 칼과 행주, 앞치마 따위를 가져오라는 강사의 말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요리란
사진으로 보여지는 화려함과 그 세계의 온갖 무용담들, 
그리고 누구누구의 명성들로 버무려진 추상의 영역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주와 앞치마가 풋내기의 오만함을 그렇게 꺾어줄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ㅋ


+++



바질은 잘 자라고 있다.
땅만 있으면 몇 평정도 가꾸고 싶은데 흙만 있다.




쁘레쩨몰로는 건강하지만 성장이 빠르지는 않다.
요리에 쓸 정도라면 적어도 아래처럼 풍성해야 할텐데
아무래도 파종량을 늘려야 할 모양이다.
해서 작은 화분들에 씨를 잔뜩 뿌려 싹이 트길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씨앗은 이틀만에 발아가 되서 깜짝놀라고 있다. 




베로나에 머물 때 컵에 담아놓고 먹었던 쁘레쩨몰로.
파 썰듯이 아끼지 말고 사용해야 제 맛이 난다.




루꼴라도 쑥쑥 올라온다. 
못쓰는 김치통을 화분삼아 파종했던 것을 일일이 파내 작은 화분에 옮겨 심었다.
저것들이 동시에 잎을 피워내면 샐러드 무쳐먹기에 부족함이 없겠지..ㅋ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09. 6. 30. 12:15



게이코. 한자로 풀면 경자(敬子)가 되니, 우리는 그녀를 때론 '경자'라고도 부른다.
지난 달 말경에 게이코가 한국을 다녀갔다. 
동경에서 약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몰타에서 영어를 배우는 동안 가까워졌다. 

차분한 성격에 술도 잘 마시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해 
맥주와 와인을 끼고 살았던 우리와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술자리를 오래도록 지킬 줄 알고 때론 속내도 솔직하게 털어놓을 줄 아는 털털함이 있어
주변의 다른 한국 친구들로부터도 인기가 많았다.

지난 9월 말, 우리가 몰타를 떠난 2주 후에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이던 게이코는
당시 엔화의 고공 행진으로 인한 금전적 횡재를 뿌리치지 못하고 체류를 더 연장해 
지중해의 저렴한 맥주와 와인을 양껏 마시다 귀국해 
환율의 직격탄을 맞고 고통에 신음하던 주위의 한국인들로부터 
부러움을 한몸에 사기도 했다.  

일본에 불어닥친 한류의 영향에 게이코도 결코 예외는 아니지만
다행히(?) 욘사마가 아닌 막걸리와 '찌지미', 김치를 좋아한다고 해서 우리를 어찌나 안심케 했는지..
한국에 오면 뭐가 젤 먹고싶냐고 물으니 뜸도 안들이고
"간장게장"
이라고 외친다.


간장게장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해서 어느 땐가 맛 볼 기회가 있었고 너무 맛있었단다.
해서 이왕 한국에 간다면 본토의 맛을 경험하고 싶다는게
그녀가 주저없이 간장게장을 외친 이유. 

허나 한국에 오면 어디 먹을게 간장게장 뿐이겠나?
비싼 음식이 아니더라도 저렴하고 맛도 뛰어난 한국의 맛을 굳이 열거할 필요는 없다.
허나 3박 4일의 짧은 일정, 그나마도 우리랑 함께 다닐 시간은 고작 이틀뿐이어서
이것저것 미각의 즐거움을 맘껏 누리는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늦은 저녁,
공항에서 게이코를 픽업한 뒤 명동의 한 작은 호텔에 짐을 던져놓자마자 향한 곳은
종로 시사영어사 뒷편의 경북집.
24시간 운영하는 탓에 술을 찾아 불꺼진 도심을 헤매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지만
사진의 전들은 오래전에 부쳐놓은 걸 데펴주는 정도여서 맛이 떨어진다.
갓 부쳐냈을 때의 향과 촉촉함은 대개 사라지고 퍽퍽한 질감만이 남았다.

그때그때 부쳐내는 수고로움이 만만치 않겠지만 고집스레 지켜낸다면 
돈과 더불어 덕과 명성도 쌓을텐데..
그래도 늦은 밤의 술집다운 푸근함, 저렴한 가격(모듬전 7,000원)으로 아쉬우나마 찾게 되는 집.




예전 광화문에 출퇴근하던 시절 점심때 가끔 가던 장원삼계탕. 
삼계탕보다는 1천원 더 비싼 약계탕을 주로 먹었었는데 게이코의 경계를 무시하고
'일단 먹어 봐' 하는 심정으로 약계탕 주문.  
한약재의 구수함이 고급스럽게 느껴져 좋고
찬으로 나오는 뻘건 생마늘 짱아찌의 알싸함은 그 맛을 아는 이에게만 미소를 허락한다.
게이코가 그 맛을 알 턱이 없지만 그래도 본토 삼계탕의 맛에 미소를 잃지 않는다.
인삼주도 한 잔씩 곁들였으니 더 없이 즐거워야만 하는 시간.  
허나 노회찬의 말마따나 민주화 이후 최대의 비극이 벌어진 이날이었으니,
TV를 곁눈질 해가며 인삼주잔을 비웠다.




같은 날 저녁, 게이코가 노래를 부르던 바로 그 간장게장이 펼쳐졌다.
사실 게이코를 위한 간장게장 이벤트를 꽤나 고민했었다.
인터넷으로 인천의 간장게장집을 샅샅이 뒤졌고
 양 대비 싸게 먹을 방법으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간장게장을 주문해
만만한 식당에 싸들고 가 웃돈을 좀 얹어 양해를 구하고 그야말로 입이 쩔도록 먹여볼까도 생각했었다.
허나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물리치고 결국 인사동의 신일집에 한 상 깔고 앉았다.
게장정식이 1인 2만원이니 이 동네서 이 가격에 먹기에 꽤나 저렴하다. 
마침 남도음식을 내는 집이니 자잘한 찬꺼리에도 기대가 된다.
 



헌데 나온 것을 보니 짜잘한 크기는 그렇다 쳐도 기대한 꽃게장이 아니다.
꽃게 딱지에는 저 요상한 반점이 없는걸로 아는데 대체 무슨 게일까? 황게?
살짝 뒤통수를 맞았지만 제법 알찬 속과 푸짐함에 곧 생각을 고쳐먹고..
밥 위에 속살을 얹어 참기름을 한 두 방울 찍어 발라 입으로 넣으니
다음부턴 숟가락에 모터가 달린다.  
꽃게건 황게건 게는 역시 게다.
게이코도 공기밥 추가.




다음 날,
자유로를 달려 임진각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의 실상을 보여준 뒤 일산으로 왔다.
우리가 일산에 살 때 세 손가락에 꼽던 맛집
일산칼국수.

닭을 푹 고은 육수에 바지락을 쏟아부어 절묘한 맛의 지점을 일궈낸 집.
여름엔 콩국수도 팔지만 역시 주력은 칼국수.  
옵션은 닭을 달라고 하면 일일히 손으로 뜯어낸 닭살을 고명으로 푸짐하게 얹어주고
바지락을 달라고 하면 바지락을 푸짐하게 얹어주는 시스템, 허나 이날은 조금 빈약한 느낌..
1년 만에 찾았는데 가격도 6천원으로 올라 살짝 빈정.
그래도 맛의 포로로 사로잡힌 사람들의 행렬은 여전히 길다.
15분을 기다려 입장, 한 사람앞에 한 그릇씩 먹는다.




삼계탕 먹을 때와 마찬가지로
저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워냈는데 솔직한 이유를 물으니 
"맛있어서"
라고. 

칼국수는 게이코도 미처 예상치 못한 맛이었던지 이후 보내온 메일에서
칼국수에 대한 인상과 그리움이 잔뜩 뭍어났다. 

 


같은 날 저녁.
홍대로 날아와서 야외 테이블에 한판 벌였다.
날씨 선선하고 저물어가는 휴일 마지막날이니 한가롭고 주변에 낮은 수풀이 병풍을 이루고
 백열 조명아래 오손도손 고기 뒤집고 잔 기울이는 이웃들을 보니 더 없이 좋구나.
맥주 한 병으로 가볍게 입가심한 뒤 이후부턴 소주로 달렸다.

삼겹살 먹는 방법에 대해서도 가르쳐줬는데
1. 잔에 소주를 채운다.
2. 자기 앞에 잘 익은 삼겹살 한 점을 미리 대기시켜 놓는다.
3. 상대방과 술잔을 부딛친 뒤 단숨에 털어 넣는다. 쭉~!
4. 대기시켜 놓은 삼겹살을 입안에 넣어 알콜을 신속히 중화시킨다.
5. 1~4의 과정을 반복하며 취향에 따라 템포를 조절한다.

삼겹살을 외국인에게 표현할 때 그 어휘는 '바베큐'일 수 밖에 없는데
자꾸 생뚱맞다는 느낌이 지워지질 않는다.
그래서 세상에는 '바베큐'와 더불어 '코리안 바베큐'가 따로 있는건가?

사기충천해서 돌아간 게이코는
2차 한국여행을 위해 손님들에게 열심히 약을 팔고 있고
우리는 느긋하게 2차 미각리스트를 정리하고 있다.
광장시장의 녹두부침, 무교동의 북어국, 마포 을밀대와 동네 짜장면..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09. 6. 25. 23:49

자, 여기 지중해의 맛있는 대표요리, 토마토 파스타를 소개한다.
넓적한 냄비에 물과 소금 넣고 간간한 정도로 간을 맞추고 물이 끓으면 파스타 넣는다.  
알단테 알단테 하지만 개인적으로 심지가 남지 않을 정도로 알맞게 익혀낸 면을 좋아한다.
알단테일 때 꺼내서 소스와 버무리며 마저 익히면 딱 알맞게 익는다. 
팬에 기름 두르고 마늘 너댓 알 쪼개넣고 자글자글 튀겨준다.
타임이나 민트를 넣어 함께 튀기면 살짝 향이 감도는데 로즈마리는 향이 쎄서 좀 그렇다. 
깡통 토마토를 까서 부어준다. 
그리고 중불에 보글보글.. 



토마토 깡통.
미국산. 괜히 생기는 거부감은 어쩔수 없다.
시중에서 이탈리아산 깡통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으니 아쉬운대로..


수확한 바질 잎과 쁘레쩨몰로.
모두 아직은 성장 초기지만 줄기가 그럴 뿐 잎은 요리에 써도 손색없을 만큼 알차다.
특히 바질이 그러한데 며칠 전 딴 잎을 씻어 통에 보관하다 드디어 오늘 꺼냈다.




바질, 토마토와 환상의 만남.
사진엔 없지만 빠르미쟈노가 없으니 대신에 그라나 빠다노 살짝 갈아 넣어주고..
소금으로 살짝 간 맞춰주고 설탕도 손가락 집히는 정도로 넣어준다.
그럼 새콤한 맛이 살아난다. 
여전히 혼자 감당키 힘든 일 가운데 하나는 요리하면서 사진 찍는거.




냄비에서 면을 꺼내 곧바로 투하, 볶아주면
바질이 면 사이를 누비며 특유의 향을 골고루 입혀주게 된다. 
한 줄기 뽑아 맛을 봐서 뭔가 부족하다 싶을 때 치즈 더 갈아 넣으면 부족분이 대부분 메워진다.





쁘레쩨몰로를 얹어 주는 것으로 토마토 파스타(La pasta di pomodoro) 마무리.
지극히 홈메이드스러운 소박한 모습.
요리시간 20분, 재료는
스파게티 편 / 마늘 / 기름 / 토마토 깡통 / 빠르미쟈노 치즈 / 바질 / 소금 / 끓는 물 / 기타 창의적 재료..




먹다보니 치즈맛이 조금 아쉬워서 마저 조금 더 갈아주고..
오랫만이어선지 맛있네 ^^

짜장면과 짬뽕 사이의 정신분열적 고민처럼 
파스타에도 어느새 토마토냐 크림이냐 같은 고민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 ㅋㅋ
근데 잘한다는 시중의 파스타집 맛은 어떨지 점점 궁금해지는데 일간 방문해 봐야지.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09. 6. 25. 18:15

블로그.. 그간 여기저기 거미줄 많이 쳐졌다. 귀국 후 사람들 만난다는 핑계로 관리를 게을리 한 탓도 있고 '이제 뭘 쓰나' 하며 마음을 못잡은 것도 있다. 여전히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제 더이상 그곳이 아니라 한국에 있다는 점에서 지나간 옛이야기나 풀어내는 것이 괜한 궁상은 아닐까 하는
자기검열(?)도 발목을 잡았고..

그리고 도저히 어쩔수 없는 그것, 게으름.. 아무튼 바질은 나름 쑥쑥 커가고 있는데 종이컵에 담긴 그 모습을
이제는 갈아치워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Soo & Kim's salone의 식당을 열기위한
한국에서의 여정이 시작된 셈이니 그 여정의 자잘한 일들도 기록해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1년 훌쩍 떠났던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 아니던가! 
(우리 스스로도 여전히 의심스러운 계획이지만..)

sss


 

바질(Basilco)는 제법 많이 자랐다. 지난 주에 인근 야산에 올라 모기에 뜯겨가며 붉은 마사토와 검은 낙엽토를 퍼와 섞은 뒤 스치로폼 박스에 옮겨심는 대대적인 분갈이를 했다. 규모로 보면
소꼽장난같은 일이지만 흙을 퍼담고 비율을 맞추고 햇살과 바람에 신경쓰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며 성장에 방해가 될 만한 요소가 무엇인지 몇 번씩 고민하는 과정 모두가
스스로에게 중요한 경험이자 정보일 수 밖에 없다.

바질의 경우 햇살을 굉장히 좋아해서 적어도 6시간 이상은 햇빛을 보게 해주라는데 집의 위치가 좋지 않아
하루 3시간 정도가 고작이다. 그래도 큰 탈 없이 자라고는 있으니 다행이다. 
떡잎을 내고 이후 본잎이 자란 뒤 새 잎들이 나오는데 처음 나온 본잎이 제법 커지면서
양분을 저 혼자 독차지하는 것 같아 과감히 '가지치기'를 해줬다. 
잎을 따내니 손에서 바질향이 진동한다. 슬쩍 물에 휘저어 한 잎 넣고 씹자 
진한 향이 가득 퍼진다. 음.. 역시.. ㅋㅋ



잎을 쳐낸 자리에는 새로운 잎이 그 두 배의 숫자로 나오니 아까워할 이유는 없다. 
이탈리아에서 바질은 제노베제(Genovese)와 나폴레따노(Napoletano)로 나눠지고
각각 제노바(Genova)와 나폴리(Napoli)에서 유래된 듯 싶은데 
일반적으로 파스타에 소스로 비벼먹는 바질 페스토는 제노베제로 만들어 맛이 감미롭다는 특징을 갖고
 나폴레따노는 맛이 강해 피자나 샐러드용 소스로 만든다고 한다. 
책에서 일러주는 내용이 이렇고 바질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 식재료 풍토에선
뭐가 됐건 시중에서 만나는 것 만으로도 반가울 듯 싶다. 참고로 우리가 이탈리아에서 사온
씨앗은 제노베제고 국내 종묘사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 역시 제노베제가 주류를 이루는 듯 싶다.
그리고 보니 몰타에선 나폴레따노를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여름에 쏟아져 나오는데 한움큼 쥐어지는 넉넉한 다발에 잎들이 무성히 붙어있고
개중에 봉오리 진 꽃도 붙어 있었다. 우리돈 3천원 가량을 주고 사와서 흐르는 물에 씻고
잎을 뭉쳐 단단히 잡은 뒤 칼로 얇게 저미고 다져주어 다진마늘, 다진 잣, 소금,
그리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에 담가내면
 싱그러운 향과 고소한 맛이 일품인 바질 페스토가 완성된다. 
바질 페스토는 스프링처럼 꼬불꼬불 꼬인 파스타인 푸실리(Fusilli)에 비벼먹으면
아주 맛있다. 
바질아, 네가 좋아하는 여름이 오는구나. 무럭무럭 자라거라. 


영 시원찮은 성장을 보이고 있는 쁘레쩨몰로(이탈리안 파슬리). 우리에게 파슬리라면 그저 요리의 조연,
그것도 먹지않는 장식용으로나 쓰인다.
생김새 탓에 컬리(Curly-오글오글, 꼬불꼬불) 파슬리라고 불리며 
좀 더 짙은 녹색에 쪼글거리는 잎이 제법 풍성해 보여서인지
요리를 맛이 아닌 눈으로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만 머물러 있을 뿐이다.
사실 서양요리에서도 컬리 파슬리는 식용보다는 장식이나 기타 다른 가공제품의 재료로 주로 쓰인다는데
국내에 먹는 파슬리가 아닌 보는 파슬리가 대중화된 배경은 아무래도 패스트푸드를 중심으로 전파된
어설픈 서양요리의 태생적 한계 때문은 아닐까 추측해 볼 뿐.
아무튼 서양요리에선 파슬리의 역할이 결코 적지 않아서
해산물 요리에선 저게 없으면 요리가 안될 지경이고 후추처럼 모든 요리의 대미를 장식하기도 한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과일안주에 낑겨나오는 컬리 파슬리와는 모양이 많이 다르다. 
잎도 가지런하고 모양도 제법 봐줄만 하다.
그렇다면 맛과 향에서 각기 모양이 다른 두 종류의 파슬리는 얼마나 다를까?
이를 입증할만한 객관적 데이터는 없다 ^^. 다만 요리해보고 먹어본 경험에서 보면
 사진에서 보는 이탈리안 파슬리가 조금 더 향과 풍미가 좋다. ('~인 것 같다'가 아님!!)
파슬리를 뭉쳐 움켜쥐고 도마위에서 사각사각 잘게 썰어보면
그 차이를 대번에 느낄 수 있는데, 
줄기에 수분이 많아 썰리는 소리가 경쾌하고 시원하면서 향이 금방 올라오는 반면 
컬리 파슬리는 느낌이 둔하고 향도 떨어진다.
이탈리안 파슬리 역시 바질, 루꼴라(채소로 분류됨), 그외 여러 식용 허브와 더불어 시중에서 구하기
진짜 어려운 허브로 집에서 솜씨를 뽐내고 싶다면 직접 재배하는 수고 말고는 현재로선 없다.

3주째 생육이 멈춰있어 뭐가 문제일까 생각하다가 분갈이중에 실뿌리가 제법 튼실히 뻗어가는
힘있는 광경을 믿고 잎줄기를 몽땅 잘라냈다. 
힘을 키워가는 하체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한거다.
튼실한 잎줄기가 쑥쑥 나올까?


모셔만 두고 있던 루꼴라를 며칠 전 파종했고 3일만에 저처럼 싹이 나왔다.
그 어느 것들 보다도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에 살짝 감동했다.

바질이나 쁘레쩨몰로가 요리에 풍미를 더해주는 역할이라면 루꼴라는 그 자체를
양과 맛으로 즐기는 채소 아니던가.
고소하다고 해야할까?
때론 매운 뒷맛을 남기지만 특유의 맛을 한 두 번 즐기다보면 어느새 중독되고 만다.
샐러드로 많이 먹고 피자나 파스타에도 듬뿍 얹어 먹는데 조화가 아주 좋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어느 식당에서 루꼴라 피자를 한 번 먹은 적 있는데
야박한 양에 아쉬웠다가 이탈리아에선 무슨 나물 먹듯이 젓가락으로 듬뿍듬뿍 집어가며 먹었었다.
저놈들 생육을 지켜본 뒤 성장에 큰 문제가 없다면 제법 큰 화단을 꾸며
상추 키우듯이 해서 그때그때 수확해 먹으려고 한다.

이상의 것들은 지금이야 재미삼아, 실험삼아, 경험삼아 키워보고 있지만
식당 오픈을 앞두게 되면 그때는 별도의 공간을 어떻게든 마련해서 본격적인 재배에
돌입할 생각인데 마땅한 장소나 임자를 만날 수 있을런지 원..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09. 6. 12. 18:46


바질 씨를 뿌린지 10여일 만에 싹이 나왔고 약 50여일이 지난 지금 이정도까지 성장했다. 생각보다 무척 더디지만 바질 특유의 탐스러운 잎의 꼴을 조금씩 갖춰가고 있으니 보는 것 만으로도 기특하고 입맛이 다셔진다. 며칠 전 동대문에 책을 사러 갔다가 마침 종묘상들이 가까워 쏟아져 나온 푸르딩딩 화분들을 구경하다가 '작은농장'이라는 이름의 종합영양제 한 포대(1kg)를 사왔다. 쉽게말해 비료. 개봉하니 암모니아 냄새가 팍 코를 찌른다. 비료냄새는 이전에도 어디선가 맡아본 것 같은데 냄새가 이랬던가 싶다. 보리쌀만한 알갱이 몇 개를 종이컵 화분에 툭툭 던져놓고 해도 쐬고 비도 맞히고 있다. 밤과 새벽에는 기온이 제법 쌀쌀한듯 해서 방에 들여놨었는데 '온실'에서 키우는게 꼭 좋은 것만 아닌듯 해 강하게 자라라고 그냥 밖에 내놓고 키우고 있다. 며칠 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그랜 토리노>를 보다 영화의 감동과는 별개로 그의 집 마당에 바질이 군락을 이루며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어찌나 탐스럽던지.. 비결이 뭘까?.. 

월트 : 근데 넌 나중에 뭐가 될꺼냐?
타오 : 글쎄요.. 세일즈맨이요.
월트 : 내 큰아들이 세일즈맨이지.
타오 : 그래요?
월트 : 그래, 사기면허지. 나는 포드공장에서 50년을 일했지만 아들녀석은 일본차를 팔아.
타오 : 차도 만들어 보셨어요?
월트 : 그럼, 1972년에 그랜토리노 공정에서 조향파트를 맡았었지.
타오 : 오호.. 멋진데요.
월트 : 세일즈를 할꺼라고? 그럼 학교는 어쩔거냐?
타오 : 학교는 돈이 들잖아요.
월트 : 일을 하면 되지. 평생을 정원에서 잡초나 뽑으며 살 순 없잖냐.
타오 : 제가 무슨 직업을 가질 수 있겠어요?



만약 그 정원의 탐스러운 바질을 모두 타오가 키운거라면 그를 고용할 생각이 얼마든지 있다. 물론 돈을 많이 번 후의 얘기고 그렇다 한들 그가 고용될리도 없지만 ㅋㅋ. 아무튼 이 대화의 끝은 타오가 월트의 제안을 받아들여 공사장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한다는 거다. 이태리를 떠날 즈음, 거리에서 심심찮게 마주치던 그랜 토리노 포스터, 이를  볼 때 마다 매그넘을 쏴대던 더티 해리가 어쩌다 이탈리아까지 왔을까 하고 궁금했었는데.. 영화를 본 이태리, 특히 토리노 사람들, 극장 나서면서 괜히 환불해달라고 떼쓰는 사람 없었나 모르겠다. 아무튼 더디지만 바질은 잘 자라고 있다.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09. 6. 4. 13:54
볼로냐에 머물 때 낮에 파디가 레스토랑을 방문할 때 마다 들었던 FM 102.5(첸또두에친퀘). 
어느덧 그 시그널들이 익숙해져 종종 입안에서 맴돌던 바, 구글로 뒤지니 어렵지않게 사이트를 찾을 수 있었고 기대했던 대로 생방송 클릭 버튼이 있다. 
클릭해 쏟아내는 듯한 이탈리아어를 듣자 놀랍게도 마음 한 편을 진정되는 효과가 있다. 
쩝.. 무슨 불안이 있었길래.. 

사람들을 나이로 구분하자면 과거를 추억하며 사는 나이와 앞날을 꿈꾸며 사는 나이,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적당히 섞어가며 사는 나이, 이 세 가지. 
평균수명이 80이라고 한다면 우린 이제 딱 중간에 와 있으니 세 번째다.
추억할 것과 꿈 꿀 것이 어떻게 적절히 섞여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 라디오를 듣는 그 순간 마음 한 켠이 평안해지는 걸 보면 긴 여행을 마친 다른 이들처럼,
추억하는 마음이 지배적이었던 모양이다.
여기에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지는 최근의 사태들이 도피욕을 부추긴 것도 있었고. 

아무튼 이탈리아의 육성을 들으니 그 의미와 관계없이 기분이 좋아지고 힘도 솟는다.
해서 어제 저녁 무렵에 동네 문방구에 가서 단어장과 필기도구를 사왔다.
슬슬 공부좀 해볼라고.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09. 5. 31. 00:30

29일, 차량이 통제된 아스팔트 위에서 뜨끈뜨끈한 햇살을 손으로 가려봤지만 별 소용은 없었고, 그래도 지중해 한 가운데 섬 몰타에서 당한 타들어가는 햇살보단 훨씬 부드럽다는 생각을 했다. 찍어두면 이날을 회상할 때 한 번씩 꺼내보겠지 싶어 카메라를 갖고 나갔는데 날이 날인지라 경박하게 비춰지지 않으려는 심정으로 셔터를 눌렀더니 '잘' 찍은 사진은 별로 없고 두서없는 풍경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 개인적으로 와닿는 걸로 한 장.



뜨거웠던 하루가 식더니 새벽이 되선 춥기까지 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떠나지 않았고 우리도 그 자리에 함께 머물렀는데 새벽 3시경, 신문지를 주어다 자리에 깔고 누으니 어떤 젊은 친구들이 지나가다 "이거 쓰세요"라며 뽀송한 은박단열재를 우리 배 위에 덮어준다. 그들도 취해있었고 우리도 취해 있었다. 서로 낄낄 거리며 은박단열재를 주고받았다. 몸을 밥 삼고 깔개를 김 삼아 말아봤는데 몸에 닿는 부분은 따끈해졌지만 결과적으로 바람 잘 관통하는 파이프같은 형태는 어쩔 수가 없어서 새벽바람이 휘잉 몰아칠 땐 온몸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추워 큰 효과는 없었다. 응용의 한계는 어디까지나 깔개지 이불 용도는 아니더라. 그래도 아래 사진의 저 사람들과 맞는 이날 새벽의 질감은 좋았다. 그리고 첫차 시간이 되서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우리가 자리를 뜬지 얼마 안되서 경찰이 저 사람들은 모두 내쫓았다는 보도를 집에 돌아와 TV를 통해 확인했다. 이명박은 여의도식 정치에 질렸다는 말을 곧잘 하곤 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를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로 해석해겠지만 실상은 여의도식 수준에도 못미치는 무능정치의 황당함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가 비판했던 '여의도 정치'란 결국엔 '모든 정치'가 아닌가 싶다. 나아가 북한과의 대결을 통해 살리겠다는 '경제'란 대체 무엇인지..  참으로 깝.깝.한 요즘, 이탈리아를 떠나기 전 부터 한국의 지인들이 당부해온 말 "맘 단단히 먹어"라는 말을 심감한다.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09. 5. 14. 13:09


요즘 거리를 걷다보면 모종 화분에 고추 싹을 제법 키워놓고 판매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탈리아에서도 이처럼 바질이나 파슬리를 모종 화분에 판매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수퍼마켓 채소 코너에는 생 바질 잎만을 모아 포장 판매하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으니 입맛 내키면 언제든 구입해 요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와 달리 한국에선 생 바질 구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 돌아온 후 오며가며 대형매장을 들를 기회가 생기면 혹시나 싶어 바질을 뒤져보지만 병에 담긴 말린 바질잎 가루만 있지 생바질은 없다. 한국의 가정에서 파스타 해먹을 일이 얼마나 있겠으며 파스타에 생바질을 넣는 일은 또 얼마나 있겠나? 있는게 오히려 신기한 일일 수도. 아쉬운대로 말린 잎 가루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지만 생바질과는 그 향이나 맛에 있어 하늘과 땅 차이다. 설사 생 바질을 발견했다 해도 그 가격이 결코 싸지 않아 선뜻 구매하기가 주저스러워질 수도 있다.


카프레제. 뻬루자에 있을 때 즐겼는데 위에 부린 케이퍼는 취향따라 넣을 수도 안넣을 수도..


이탈리아 남부 깜빠냐주의 카프리에서 연유된 카프레제는 바질의 풍미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음식에 하나로 빨갛게 익은 토마토와 물소젖으로 만든 생 모짜렐라 치즈, 그리고 바질을 겹겹이 겹쳐 목구멍 칼칼하게 만드는 신선한 올리브유를 넉넉히 뿌린 뒤 한 입 넣으면 그 향긋함과 짙은 숲을 느끼게 하는 맛에 대번 사로잡히고 만다. 어느덧 한국에 들어온지도 한 달째(벌써 그리 됐다니..), 푸근한 장맛의 한을 모두 씻어내고 나자 이제 다시 그곳 요리들이 슬슬 그리워진다. 어디 바질 뿐이겠나? 이탈리아 어디어디 농가에서 만든 향 진한 올리브유와 빠르미쟈노 레쟈노 치즈, 한구석에 쌓여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흡족했던 토마토 깡통들과 모든 해물요리의 대미를 상큼하게 장식해 줄 시칠리아산 레몬들..

얼마전 이탈리아에서 듬뿍 구입해 온 바질 씨를 작은 화분에 파종했고 4일만에 싹을 틔었다. 원예는 경험이 없지만 꾸준히 물주고 들여다보면 잘 자라주지 않을까? 성공한다면 무더위에 헉헉거릴 즈음 아마 바질 풍미 물씬 풍기는 요리를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09. 5. 12. 11:39
아직 만나야 할 사람들이 적잖은데 집구석에서 시간만 죽이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마저 끝내지 못하고 온 일(영상편집)을 여태 붙잡고 있기 때문인데 지난주 시작무렵에 '이번주에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는다'고 했던 다짐을 이번 주 들어서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방에 상을 펴놓고 방석깔고 컴퓨터 앞에 앉지만 시선은 먼 허공을 바라보기 일쑤고 머릿속은 그렇게 단속을 하려해도 어느새 주방에서 팬을 흔들거나 접시를 장식하거나 버터두른 소라에 파슬리가 어떤 묘미를 더할지 등의 생각으로 저만치 달아나 있다. 평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어떤 일이든 때가 있는게 아닌가 싶다. 때를 놓치거나 방치하면 어느새 많은 것이 바뀌어 열정은 이미 식어버렸거나 다른 열정으로 바뀐 후여서 이전의 열정으로 돌아가려 애써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할지.. 게을렀다는 자책을 오늘도 반복하며 어서 마무리 짓자고 하지만 저만치 달아나는 마음은 또 어쩔수가 없다. 번뇌에 맞서는 수도행진이라도 해야 할 판, 참으로 뒤숭숭한 봄이다.  
Posted by dalgonaa
한국 Korea 160409~2009. 5. 5. 10:54
이탈리아를 다녀와서 달라진 하나는 소주보다는 이왕이면 잘 빚은 술을 마시고 싶어진 입맛이다. 왜그럴까 생각해보니 밖에 나가있는 동안 술을 그냥 아무생각 없이 마신 것 같지 않다. 와인은 말할 것도 없고 맥주 하나를 마셔도 그 맛의 깊이나 차이를 느껴보려 나름 애썼던 것 같다. 알게 모르게 훈련이 이뤄졌다는 얘기. 그렇다고 무슨 체계가 잡혀진 건 전혀 아니지만 이제 음식이든 술이든 좀 더 '음미'하며 즐기려는 입맛, 또는 습관이 생겼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듯 싶다. 미각도 훈련을 통해 높일 수 있다는데 그 방법이 뭘지 문득 궁금해진다.



부산 내려가기 전, 익산에서 맛본 어느 횟집. '섬집'이라는 간판을 단 이 횟집은 회도 회지만 갖은 해산물을 아낌없이 내줘 전라도의 음식 인심을 확인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멍게, 돌멍게, 대합, 관자, 게살, 소라.. 꾸밈없는 맛을 돋궈주는데 동원된 술은 경주법주. 마트에서 6,800원의 거금을 주고 사와 마셨다. '그윽하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지 않을까?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