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1. 2. 19:51


토리노에 대해 아는 것은 오래전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이라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후 슬로푸드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더 유명해졌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무엇을 알고 있건 어쨌든 초행길이나 모든 것이 낯설었다. 오후 5시, 베로나를 출발해 밤 11시가 되어 토리노에 도착하니 누가 했다는 말대로 그 큰 도시가 쥐죽은 듯 조용하다. 해만 지면 집안에 꼭꼭 숨어버리는 곳이 이곳이라나.. 말대로 역 주변으로 바삐 짐을 끌고 발길을 서두는 사람들만이 보일 뿐 그 외엔 빈 택시 뿐이다. 한결 쌀쌀해진 공기가 몸을 더 움츠러들게 했다.

>> 이태리 열차의 내부. 늦은 시간, 혹은 못믿을 기차(?)라 그런지 이용객이 많지 않다. 좌석은 몸이 약간 꽂꽂하게 세워지는 자세라 다소 불편하고 특이하게도 재질 전체가 단단한 스펀지 느낌이다.

베로나를 떠나기 전, 구글어스로 역과 숙소간의 거리를 미리 가늠해 둬 여차하면 걸어가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늦음, 피곤, 어둠, 위험 등의 갖가지 이유로 이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트램도 제껴버린 뒤 과감히 택시를 잡아 탔다. 역시 줄지어 대기하는 택시를 잡아타는 일은 참으로 간편하고 그렇게 속 편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기본요금이 지금은 2천원 하나? 여긴 4유로가 조금 넘으니 7천원 되시겠다. 미터 바뀌는 속도는 비슷하지만 역시 요금 체계가 달라 결국 13유로 정도의 요금이 나왔다. 2만원. 한국에서라면 5천원이면 닿을 거리. 속편한 값치곤 꽤나 비싸지만 점차 이런 식의 비교가 무의미하고 오히려 속만 버린다는 것을 아는 지라 점차 이곳 물가를 군말없이 받아 들이고 있다. 한국보다 물가가 싸면 돈쓰는 재미에 빠져 이것저것 질르고 계산해보며 잔재미를 즐기겠지만 여긴 그런 재미란 없는 곳이니 그저 무덤덤해 질 뿐이고 오히려 한국의 환율 사정에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왕 돈 얘기가 나왔으니 총 경비에 대핸 잠깐 얘기하자면 5박 6일 동안 100만원에 조금 넘는 돈을 썼다.
70만원 가량이 5일 밤을 묵은 호텔비용이고 나머지 30만원이 기차비를 포함한 교통비다. 밥먹을 시간이 없어 내내 행사장의 프레스들을 위한 BAR에서 사과와 케잌 등으로만 허기를 때우다가 어느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 PIZZERIA에서 피자 한 판을 가져다 먹었고 또 하루는 파스타를 시켜 먹은게 식사비의 전부.

>> 포장 박스 디자인이 거의 집앞 '똘이네 피자' 분위기다. BUON APPETITO = 맛있게 드세요.
뚜껑을 열면..



>> 떡을 연상시키는 작은 접시 크기의 피자가 떡 하니 모습을 나타낸다. 폭신폭신한 피자는 한국 떠나서 처음. 메뉴를 고르던 중 'TORINESE', 즉 토리노 사람들이라는 뜻의 메뉴를 보고 선뜻 시킨 것으로 냉동 아스파라거스가 토핑의 핵심이고 그 위에 아저씨가 매콤한 기름을 잔뜩 부어줬다. 그래서 바닥이 기름으로 흥건. 이태리에서 핫소스란 타바스코가 아니라 페페론치니를 듬뿍 재워둔 올리브유를 말한다. 기름진 구성과 두께에 처음엔 다소 엄두가 안났으나 맛을 보니 의외로 산뜻했고 아삭하게 씹히는 아스파라거스도 조화가 좋았다. 강양은 그래도 꺼리더라는.. 

파스타 한 접시가 대략 8유로, 우리돈으로 13,000원 정도 되겠다. 달랑 파스타만 시켜먹기가 좀 곤란한 것이 이곳 정서이니 스프리츠나 와인, 맥주 정도 따위를 시켜 마시는데 500cc 맥주 한 잔 마시면 그게 또 5천원 정도. 이는 토리노만의 사정은 아니고 밀라노, 베로나 어디나 비슷하다. 가난한 여행자라면 몇 번 경험만 보고 발길을 끊는 것이 현명하다 하겠다.

숙소는 더 끔찍한데 별 3개짜리 호텔이라지만 우리나라의 웬만한 모텔보다 못하다. 우선 좁다. 더블침대 두개 놓으면 짐 내려놓을 공간이 없을 넓이. 화장실 변기에 앉으면 무릎이 샤워부스에 닿아 다리를 살짝 접어야 한다. 화장실 일 볼 때 만큼은 아무런 방해도 없어야 하건만..

우리나라 모텔의 경우 복도에서 문을 열고 들어서고 또 하나의 문을 열어야 비로소 방에 도착하는데 여긴 문 열면 바로 침대다. 어쩌다 문이 열려 지나가는 현지 사람과 런닝 차림으로 눈이 마주치면 참으로 난감할 구조. 그래서 하룻밤 80유로니 13만원 정도 되시겠다. 그나마 싼 집을 고르고 고르다 이 집을 온 것이니 말해 뭣하랴. 이틀을 그 가격에 묵고 나중에 알고 보니 아침식사를 빼면 10유로가 깎인다고 해서 3일밤은 70유로에 묵었다. BATHROOM이 없는 방, 즉 공동화장실과 샤워실을 쓰는 방도 있다는데(별 3개 맞어?) 그건 55유로라고.

뷔페식 아침을 제공한다는 홈페이지 내용에 살짝 기대를 했으나 막상 '상'을 접하니 실망이다. 심하게 어둡다 싶은 조명아래 잼, 좀 더 우아한 표현으로는 마멜레이드가 든 크로와상과 누뗄라 라는 초코잼이 든 패스츄리, 그리고 쿠키와 케잌과 오렌지 주스를 접시에 담아다 먹는다. 여기에 에스프레소 한 잔. 

하지만 이것이 이태리의 전형적인 아침식사이니 어쩌랴. 그러니 우리가 아침식사를 숙박비에서 뺐지. 어차피 40분 후 행사장 PRESS BAR에 도착하면 무농약 사과와 주스, 아이스크림, 빵, 케잌, 쿠키, 치즈, 살라미와 프로슈토, 그리고 맥주와 와인을 양껏 먹을 수 있는걸. 물론 공짜로. 

암튼 나중에 마신 물값까지 2유로를 더 내고 이 호텔을 빠져 나왔다. 딱 하나 맘에 들었던 건 매일 깨끗하게 갈아주는 침대 시트. 근데 이건 기본 아니던가? 짐작컨데 토리노의 많은 호텔들이 이 호텔과 비슷하지 싶다.

>> 프레스 BAR의 내부. 의자가 특이한데 사용기한이 지난 와인숙성통을 분해해 의자로 만들었고 단단한 종이박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앉는 용도로는 절대 구겨지거나 부서지지 않는다. 모두 재활용 컨셉.


>> 모든 테이블 마다 이런 접시가.. 바삭거리는 빵같은 먹거리와 치즈, 그리고 프로슈토와 살라메(소시지)를 깍둑썰기해 냈는데 빵과 프로슈토, 치즈를 한 입에 넣으면 이태리 '삼합' 되시겠다. 



>> 그리고 와인. 많은 양은 아니지만 오가면서 심심찮게 마셨다. 일 하는 중에 술을 마신다는 것은 쉽게 인정되지 않는 정서지만 와인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술이다. 폭음을 즐기는 우리의 음주문화와 다른 탓도 있으리라.  


숙소와 행사장은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며 오갔는데 직사각형의 1유로 티켓을 끊으면 한쪽 방향은 지하철 탈 때 통과시키고 반대 방향은 버스탈 때 찍으면 된다. 버스와 지하철의 요금체계에는 만족했으나 택시는 역시 비싸다. 마지막 날, 짐이 많아 콜택시를 불렀더니 기본요금이 11,000원에서부터 시작한다.

행사 첫 날에 대해 간략히(?) 쓰면 평범한 관람객으로 5일간의 행사 전부를 관람하겠다면 총 60유로의 티켓값을 지불해야 했지만 우리는 프레스 ID를 받을 수 있었다. 프리랜서라고만 밝히기엔 좀 부족하다 싶어 준비한 카드는 김군의 전 직장 명함과 이래저래 인연이 있는 모 방송국의 이름. 허나 일찌기 이런 행사장에서의 프레스 운영이 어떠한지 아는지라 프레스 받는 것이 어렵지 않으리라 예상했는데 다행히 예상대로였다.

>> 프레스 ID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사실 이런 환경에서 가장 강력한 신빙성은 장비다. 마이크용 붐대까지 가져갈까 하다가 그건 좀 아니다 싶어 빼고 트라이포드와 비디오캠, 스틸 카메라, 와이어리스만 챙겼는데 프레스 신청 데스크 앞에서 보란 듯이 주렁주렁 달고 있으니 긴 말이 필요없다.

문을 통과해 먼저 프레스룸을 찾아갔다. 서너명의 담당자가 분주하다. 몇 가지 물으니 프레스키트 라며 각종 안내책자와 스케줄표, 지도 등이 담긴 헝겊 가방을 건네준다. 5일간 행사의 정보가 집약된 가방이다. 스케줄표를 보니 총 5장. 하루하루마다의 스케줄이 자세히 소개돼 있는데 각 스케줄표는 A4용지 8면에 걸쳐 빼곡한 글씨로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의 행사일정을 시간대 별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오전 11시대에 진행되는 이벤트만 살피니 11개, 이 시간에도 관람객이 있을까 싶은 밤 8시에도 5개의 이벤트가 열린다. 일일이 세보진 않았지만 몇 가지 반복되는 행사를 빼더라도 하루에 새롭게 진행되는 이벤트만 적어도 30개에 이른다. 공식적인게 이렇고 각국의 거리 음악 공연이나 각 지역에서 무슨무슨 단체 사람들이 몰려와 벌이는 즉석 이벤트 따위까지 포함하면 얼마가 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거기에 총 400개가 넘는 부스에서 저마다의 고유한 식재료와 음식을 갖고 나와 사람들 발길을 붙잡으니 이 행사를 하룻만에 살피는 것은 완벽하게 불가능하다. 보고 냄새맡고 맛보고 생산자와 얘기까지 좀 나누려면 5일로 과연 충분할까 의심이 들 지경. 끼니조차 챙길 여유가 없었다는 앞서 우리의 볼멘소리는 결코 엄살이 아니다.

>> 열심히.. 그러다 지치면..


>> 역시 재활용 컨셉으로 마련된 간이 의자. 신문지를 말아 단단히 묶어내니 제법 쓸만한 의자가 된다. 그래도 의자다운 의자가 좋다는 저 아저씨.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30. 10:07


안드레아의 이탈리아 수업을 마치고 나니 진이 다 빠진다. 거진 70%는 못알아 듣고 나머지 30%는 순전히 눈치로 진행되는 수업. 들어도 들어도, 외어도 외어도 혼란스럽기만 한 동사변화 앞에 사기가 꺾인다. 

5박 6일의 토리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뒤 강양은 비실 거리더니 그 틈을 놓칠세라 감기께서 방문하셨다. 마침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오전엔 온수보일러도 고장났었으니 감기에겐 호조건. 약 몇 알로 쫓아보려 하는데 어떨런지.. 인근 채소가게에서 제법 큰 걸로 한통에 2,500원 하는 배추를 토리노 가기전에 사다놨는데 여전히 씽씽해 오늘은 배추국이나 푹 끓여서 고춧가루 팍팍 뿌려 뜨끈한 밥에 말아먹어야겠다. 몰타에서 다시멸치가 똑 떨어진 탓에 그저 된장만 풀어 끓여먹는 배춧국. 구수한 국물맛의 아쉬움을 뭘로 채워야 할까 고민하다 밀라노에서 사온 새우젓을 생각해냈다. 그놈이면 맛이 좀 우러나겠지. 원래 김장철 배추국에는 새우젖을 넣어 간을 보기도 하지 않던가? 


>> 배추가 정말 싱싱하다.

올해에는 슬로푸드 축제가 열리지 않는걸로 우리는 알고 있었다. 베로나 시내의 한 BAR에서 스쁘릿츠를 마시며 베로나 일간 L'Arena를 무심코 뒤적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금쪽같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행사가 끝난 뒤 그 소식을 이태리 TV에서, 혹은 한겨레 ESC에서 고나무 기자가 쓴 기사로 접했다면 우리는 한동안 깊은 절망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참으로 아찔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휴.. (참고로 취재 온 한국언론은 한겨레가 유일)



>> 바로 이 신문. 안드레아 말로는 형편없는 신문이라고.(조중동쯤 되나?) 

이번 토리노 슬로푸드 축제가 우리에게 남긴 경험은 눈부시도록 값지다. 눈으로 보고 맛보고 들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행사를 즐기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했음은 물론, 몇몇 프로듀서, 즉 생산자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면서 우리만 준비되면 언제든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일상속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게 된 것이 그렇다. 더불어 축제에서 얻은 깨달음과 감동은 오래도록 지속될 듯 싶다.


                                                                             +++


곳곳에서 프로슈토와 살라미가 넘쳐났지만 앞서 소개한 대로 프랑스 남부에서 온 가족이 판매하는 살라미와 프로슈토는 특유의 잡내도 없고 아주 맑은 맛을 내는 것이 감동을 자아냈다. 돼지의 품종은 흑돼지로 넓은 들판과 우리를 오가며 자유롭게 자라고 특이한 것은 허브를 먹인다고. 살라미를 만든 아저씨, 말이 필요없다는 듯 살라미를 썰어 우리 손에 안긴다. 하얀 지방이 눈처럼 촘촘히 박힌 얇은 살라미를 혀 위에 올려놓으니 거짓말 조금 보태 그냥 사르르 녹았다. 어딜가나 흑돼지는 맛이 좋은가 싶지만 이 집의 살라미는 수많은 참가부스의 다른 곳들과 비교해 정말 압도적이다.  

>> 사진은 이탈리아 살라미

살라미는 우리가 피자 위에 올려먹는 바로 그 얇고 동그란 소시지다. 우리는 주로 익혀먹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 자체를 얇게 썰어 와인과 함께 즐긴다. 와인 한 모금, 살라미 한 입. 한국에서도 와인소비와 더불어 점차 그 맛을 아는 이들이 늘어갈텐데 좋은 와인과 더불어 이 처럼 좋은 안주를 곁들인다면 깊은 술맛이 한층 더 깊어질 테다. 부산에서 와인으로 일을 벌이려는 지인에게 꼭 연결시켜주고 싶은 농장이다.  


>> 이 사진 역시 언급한 내용과는 동떨어진 사진. 근데 애도 맛있어 보이네.

토스카나 아레쪼(AREZZO)의 앙기아리(ANGHIARI)에서 온 20대 청년은 1880년부터 집안 대대로 전수되고 있는 손맛을 이어받아 할머니가 만들던 솜씨가 깃든 파스타를 들고 나왔다. 할로겐 조명을 받아 더욱 빛을 발하는 노란 색의 파스타가 단박에 시선을 잡아 끌고 먼 옛날 할머니가 사용했을 당시의 낡은 주방도구들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아 호기심을 자극한다. 벽면에는 중세의 고성이 고스란히 남은 시골 사진이 걸렸는데 그곳이 자기네 동네라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종이접시에 담아 맛보이는 것은 손가락 반마디 크기의 귀여운 복주머니같은 파고띠니(FAGOTTINI). 안에는 돼지고기와 치즈, 그리고 비법의 재료가 들어있고 뜨거운 물에 삶아 올리브유에 살짝 볶아내면 그만이란다.


>> 바로 이놈. 뜯어서 끓는 물에 삶은 뒤 올리브유에 볶아먹으면 그만.

이쑤시개로 콕콕 찍어가며 맛을 보니 오호.. 쫄깃한 식감의 피와 안에서 퍼지는 고기와 치즈의 조화가 고급스러우니 아주 좋다. 촬영을 마친 뒤 집에서도 요리해 먹고 싶어서 구입하려는데 두 팩을 척 담아 선물이라고 건넨다. 살짝 예감은 했지만 한치의 주저함도 없는 행동.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이탈리아가 좋은 이유다. ^^ 라비올리, 토르텔리, 스파게티, 라자냐, 왠만한 파스타는 모두 취급하니 파스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러 가기에 아주 적절한 곳이라 생각되는 곳. 언젠가 가보지 싶다.


2년 전, 김군은 스위스 남부의 LUGANO로 출장을 다녀왔었다. 이탈리아와 가까운 탓에 말도 이탈리아말을 쓰고 방송도 이탈리아 공영 RAI를 본다. 음식문화야 말해 뭣하랴. 이때 프로슈토를 처음 맛봤는데 뭣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새하얀 돼지비계로만 된 프로슈토. 그걸 'Lard'라고 하는데 그 자체로 기름덩어리지만 입안에서 천천히 굴리면 살살 녹으면서 은은한 맛을 낸다. 이 또한 와인과 궁합이 좋다.


>> 저렇게 붉은 살점이 섞인 것이 아닌 진짜 새하얀 비계다. 현장의 비슷한 사진으로 대체.

잠시 무료함에 젖어 있던 LARD'd Muncale 부스는 바로 이 돼지비계 프로슈토 집이다. 콧수염 아저씨가 우리를 붙잡아 끈다. 강양이 호기심을 보인 탓인데 나름 이쁘게 말아서 시식용 접시에 담아놓은 것을 이쑤시개로 콕 찍어 건넨다. 그 맛을 아는 김군만이 덥썩 입에 넣고 맛을 보는데 부드러움은 여전하고 튀는 맛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래서 더 좋다. 영어를 못하는 아저씨는 우리가 금새 자리를 뜰까 초조한 듯 끊임없는 제스춰로 우리를 붙잡은 뒤 부스 안쪽에서 뭔가를 하고 있던 다른 동료를 연신 부른다. "삐에뜨로! 삐에뜨로!"

이윽고 삐에뜨로씨 등장. 물기젖은 손을 앞치마로 서둘러 닦으며 나온 그는 영어를 하지만 서툴기는 마찬가지다. 엉금엉금 삐에뜨로씨의 설명이 이어지지만 콧수염 아저씨의 바디랭귀지는 삐에뜨로씨의 설명을 앞서간다. 자신이 영어를 잘 하거나 우리가 이태리어를 알아들었으면 좋겠지만 어느 것에도 들어맞지 않는 상황. 콧수염 아저씨는 답답함에 제스쳐가 더 커졌고 그 심정이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콱 막혀왔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비계덩이가 삐에뜨로씨와 콧수염 아저씨에겐 큰 자부심이라는 점.

삐에뜨로씨에게 그냥 속시원하게 이탈리아어로 설명해달라고 했고 그거 잘됐다는 듯 이탈리아어가 스피디하게 쏟아져 나왔다. 뭔 소린지 하나도 못알아 들었지만 가슴에 막혔던 뭔가가 뚫겨 나가는 느낌. 삐에뜨로씨와 콧수염 아저씨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촬영을 마치고 자리를 뜨려니 콧수염 아저씨, 포장판매하는 주먹만한 돼지비계를 봉지에 담아 건넨다. 이런 경우가 몇 번 더 있었는데 이탈리아 사람들, 특히 농사를 짓거나 시골에서 온 사람들의 인심은 우리나라의 시골장터 인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카메라를 들고 설치는 만큼 그 앞에서 계산된 행동도 있었겠지만 그래봐야 호기심과 재미일뿐이라는 점을 서로 알기에 그 순박함이 깎여나가진 않는다.  


>> 손님들에게 열심히 프로슈토를 잘라 제공하고 있는 한 부스.

맛있는 음식도 있었지만 입맛에 맞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푸른 곰팡이가 핀 고르곤졸라 치즈, 이른바 블루 치즈는 특유의 꼬리함 때문에 오랜 습관이 들지 않으면 그 맛을 즐기기란 쉽지 않은데 산양치즈에 비하면 이는 엄살일 뿐이다. 화장실 옆에서 서성이다 치즈부스의 한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고 외면하기 힘들어 치즈 한 점을 콕 찍어 먹었다. 

어으.. 참으로 형언하기 힘든... 사실 맛 보다는 향기가 악몽인데 여물통의 악취를 농축해낸 것이 바로 산양 치즈의 맛이  아닐까? 청국장, 또는 홍어를 접하는 외국인들이 이런 심정이겠지 싶은데 내 짐작으론 그것을 훌쩍 넘는 쇼크였다. 


>> 사진중에 산양치즈가 섞여 있을까? 모르겠다. 행사장의 다른 부스에서 한 컷.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28. 11:48

밤 7시 50분에 출발해 밀라노를 거쳐 베로나 북역(PORTA NUOVA)에 정확히 새벽 12시 10분에 도착했다. '정확히'란 표현을 쓴 이유는 이탈리아의 기차운행이 아주 엉망이기 때문이다. 출발하던 날도 베로나에서부터 1시간 가까이 연착하더니 밀라노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토리노로 출발할 때는 가다서다를 반복해 결국 2시간이 늦은 밤 11시 경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두운 창밖과 무심한 시계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참으로 지리한 여행이었다.

일산 킨텍스 전시장을 가득 채우는 것으로도 모자를 정말로 엄청난 규모의 행사는 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어제 월요일 밤에 끝났다. 뭐라 쉽게 말하기 힘든 축제.. 징그럽게 모여드는 사람들 만큼 눈길과 입맛을 잡아끄는 음식과 식재료들도 징그럽게 많았고 기운넘치는 정치성도 느낄 수 있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패스트푸드의 천국 미국도 참여했으니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참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터. 단, 한국과 중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이유? 한국과 중국에서 알아보시라. 아, 북한도..

링고또 피에레(LINGOTTO FIERE) 전시장에서 열린 행사는 매일 아침 10시에 시작해 밤 11시에 끝났고 우리는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다가며 아침 9시 도착해 밤 9시에 떠나기를 5일간 반복했다. 버스를 잡아타기 위해 이리뛰고 저리뛰는 토리노 사람들과 꽉꽉 들어찬 버스안의 풍경은 광화문에서 일산가는 버스를 탈 때의 우리와 똑같아 피식 웃음이 나더라는..

다시 축제, 안타깝게도 이 놀라운 축제를 사진에 그닥 많이 담아내지 못했다. 대신 60분짜리 HDV 테잎 17개에 기록됐다. 입이 아주 호강했을꺼라 추측하는 이들이 있을텐데 바로 위의 이유 때문에 입이 호사를 누릴 틈이 없었고 심지어 끼니를 챙길 여유도 없었다. 촬영은 쉬운일이 아니었고 추측컨데 2kg은 빠지지 않았을까 한다.

이번 주도 쉴 틈은 없을 듯 싶다. 이사할 집을 알아봐야 하고 촬영 테이프를 정리해야 하고 무엇보다 행사기간, 카메라 앞에서 영어,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어로 이야기해준 사람들이 뭐라 떠든건지 그 내용을 해독해줄 사람들을 수소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긴 천천히 하자. 아무튼 HDV 영상에서 이미지를 캡쳐받는다면 스틸카메라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귀한 그림들이 고스란히 살아날테다.


이탈리아의 프로슈토. 모조품이 아닌 모두 진짜로 저만큼이 뒤로 더 이어진다. 산 다니엘레(SAN DANIELLE)는 프로슈토 생산 회사로 소규모 프로슈토 생산자들이 연합해 만든 일종의 협동조합회사다. 세련된 홍보담당자도 갖춘 것은 물론 멀디 먼 우리나라에도 소규모나마 수출하는 제법 큰 회사.  맛? 미안하지만 프랑스에서 허브를 먹여 키운 돼지로 만든 프로슈토를 가져온 프랑스 가족들 것의 맛을 따라오진 못했다. 아쉽게도 그 그림은 테이프에 기록돼있다. 저 한 덩어리의 가격이 얼만지를 물어보지 못했네.. 쯧쯧..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22. 23:45

급하게 토리노로 출발한다. 오늘 밤 9시 넘어 도착할 듯.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슬로우푸드 축제가 내일서부터일줄이야..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