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07.07 두 번째 만남을 위해 - Tashiro 가족 이야기 1
  2. 2008.05.07 도모미 3
  3. 2008.03.20 초대받지 못한 상처
Dorota Niesyt, 그리고 Jiro Tashiro와 그의 가족들. 이들은 김군에게 매우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이다. 도로타는 체코 프라하에서 만났던 또래의 폴란드 여자고 타시로씨는 독일의 Goch라는 아주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만났던 일본인이다.

1996년 가을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김군은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쥐고 이듬해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꿈을 키워오던 유럽 자전거여행을 떠나게 된다. 기간은 총 100일. 오늘은 그 시절의 여정에서 만난 Tashiro씨와 그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영국 런던을 시작으로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아래로 내려오던 여정은 바다를 건넌 뒤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거쳐 어느덧 독일로 접어들었다. 때는 이미 10월을 지나고 있었고 깨끗한 거리는 네덜란드처럼 붉은 낙엽을 가득 머금은 가로수들로 채워져 있었다. 국경을 넘어 Goch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한 뒤 묵어야 할 숙소를 찾아 지도를 펼쳐들자 어김없이 독일인이 한 명 다가와 내게 물었다. 친절하게, 결코 잘못 알아들을 수 없는 물음으로.

"May I help you?"

자전거를 탄 그녀는 학생티를 풀풀 풍기는 금발의 여자였다. 자잘한 짐을 자전거에 매달고 큰 배낭은 어깨에 매고, 그리고 양갈래 길에서 지도를 펼쳐들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 으례 누군가 다가와 도움을 베푼다는 것을 김군은 네덜란드를 거쳐오면서부터 경험으로 알기 시작했다. 이들은 여행자에게 친절했다.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가로수가 더욱 붉게 느껴지던 그 시간에 김군에게 다가와 도움을 베푼 여자의 이름은 Sarah. 그녀는 길을 묻는 내게 친절히 설명해준 뒤 헤어질 무렵 뜻밖의 제안을 했다. '괜찮다면 우리집에 와서 묵어도 된다,는 것. 덧붙여 '우리 가족들, 특히 아버지가 반가워 할꺼다'라는 것이다

'오호.. 이렇게 하루 숙박과 식비를 줄이는구나..'라는 생각과 '이번엔 독일인 가정집을 둘러볼 수 있겠군' 하는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김군은 흔쾌히 그 제안을 수락하고 그녀를 따라 나섰다.

당시에도 절감한 것이지만 자전거 여행이 주는 매력의 하나는 우연의 요소가 무척 많다는 점이다. 여행자의 발길이 뜸한 지역일수록 예상치 못한 사건은 물론 현지인들과의 접촉도 많아지고 유명 도시에 비해 그들의 관심이나 배려가 무척 호의적이라는 점에서 여행이 간직한 색다른 묘미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물론 비슷한 시골길을 수 없이 지난다거나 때론 위험이 따른다는 문제도 있지만 긴 시간 여행이 가능하고 현지인들의 삶을 좀 더 가까운데서 체험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김군은 자전거 여행을 권유하곤 한다.
 
사라를 따라나서자 어디선가 폭스바겐 밴 한 대가 나타났다. 역시 사라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운전석의 남자는 사라와 그녀의 자전거를 차에 싣고 이어 나와 내 자전거도 함께 태우려 했지만 자리가 좁아 그러지 못했다. 대신 천천히 갈테니 차를 따라 오라고 한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는 사라의 남자친구였다. 사실 이 둘은 함께 나를 지켜보다가 사라가 내게 다가와 도움을 주었던 것.

5분을 채 못가서 차는 어느 집 앞에서 멈췄다.  4층은 될법한 제법 큰 집이었고 그 집 전체를 가족들이 사용한다고 했다.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섰다. 오밀조밀 붙어있는 유럽의 많은 집들이 대개 그렇지 싶은데 사라의 집 역시 넓지는 않고 다만 높게는 4층까지 올려져 공간을 넓게 활용하고 있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좁은 복도가 하나 이어지고 그 끝은 이 집의 뒷마당(정원)으로 이어지는데 그 중간에 주방이 있었다. 식탁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사라는 내게 마실것을 권했고 그녀가 주는 대로 나는 목을 축였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리고 어떤 남자가 들어와선 사라와 그녀의 남자친구와 뭔가 수다를 떨었고 내게도 반갑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곤 주방에서 익숙한 듯 밥솥을 열어 밥을 푸고 냄비에서 카레를 떠 슥슥 비비더니 한 그릇 뚝딱 비우고는 곧바로 사라져 버렸다.

잠시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두 번째 초인종이 울렸고 그제서야 이 집의 주인, 즉 사라의 부모님이 모습을 나타냈다. 일을 마치고 온 것인지 어떤지는 지금도 모호한데 아무튼 인사를 건네려고 하니 놀랍게도 사라의 아빠는 일본인이었다. 땅딸막한 키에 알맞게 수염을 기르고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을 머금고 있었던 그의 이름은 Jiro Tashiro, 그의 부인은 Benedikta Tashiro.

누구보다 서로 낯설었을 이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 결혼에까지 이르게 됐는지는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은 그때 설명을 들었지만 김군의 짧은 Listening으론 한계가 있었다. 아무튼 동양인이라곤 Tashiro씨가 유일할 것 같은 이 작은 마을에 느닷없이 나타난 또 다른 동양인 김군과 이를 발견한 Sarah. 80Km 가까운 거리를 달려온 김군을 이들 가족은 모두가 나서서 따뜻하게 환대해 주었고 뜻하지 않은 만남으로 김군은 이 집에서 이틀 밤을 머물게 된다.


- 2편은 다음에..
Posted by dalgonaa

오가닉 화장품을 만들고 한국을 비롯, 아시아 여러 나라에 수출하는 후쿠오카의 중소기업이 있다. 60여 명의 직원과 더불어 화장품을 만드는 이 기업의 주인은 다나카 상. 그는  두 명의 딸을 두고 있는데 이 가운데 막내 딸인 도모미가 일주일 일정으로 몰타를 찾았다.

 

처음 교실에 들어온 도모미를 본 김군은 대번에 저 친구는 안 물어봐도 일본인이 틀림없군할 정도로 일본인 전형의 얼굴을 가졌다. 어딘가 어색한 로봇 같은.. 그럼에도 비교적 미모에 속하는 그녀를 보며 김군은 왠지 한 때 일본에서 폭발적이 인기를 끌었던 한국인 가수 은숙의 젊은 시절 모습을 떠올렸다.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새로운 신입생을 환영하는 학원 주최의 웰컴파티가 열린다. 국내에선 보기 힘든 250ml 작은 병 맥주 하나를 공짜를 마실 수 있는 이 자리는 비단 신입생들만을 위한 자리는 아니어서 공짜 술에 눈이 먼 한국인들이 대거(그래 봐야 20명 안팎) 참석하기도 한다. 김군과 강양도 모처럼 참석했고 김군은 이 자리에서 도모미를 다시 만났다.

 

처음 교실에서 봤을 때와 달리 다소 짙은 마스카라에 머리를 틀어 올린 그녀를 보자 김군은 이번엔 전성기 시절의 계은숙을 떠올렸다.

 

도모미는 영어를 좀 한다. 4년에 걸쳐 미국 보스톤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 공부도 마쳤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이력에 비춰본다면 지금 그녀의 영어 실력은 김군에 비해 월등히 낫지만 결코 우수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제 화요일,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서면서 김군이 도모미에게 저녁식사 제의를 했고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 소식을 강양과 주변의 한국인들에게 전했고 외국인과의 첫 단독 식사자리를 격려하는 응원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도모미에게 가졌던 제1의 궁금증은 그녀의 나이였다.

 

얼굴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로 봤을 때 어림잡아 30대 중반은 되지 않았겠느냐 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특히 가장 가까이서 볼 기회가 많은 김군은 평소 피부 관리를 공들여 해왔다면 40대 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짧은 갑론을박을 뒤로 하고 김군은 그녀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김군을 이끌고 도모미가 향한 곳은 몰타를 소개하는 엽서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레스토랑이다. 이름은 Paparazzi. 불륜을 즐기는 커플이라면 피해야 할 식당이 아닐까? 아무튼 꽤나 엉뚱한 이름의 이 식당은 그러나 위치와 전망만큼은 몰타에서 가장 훌륭한 곳에 속하는 식당이다. 가격도 결코 비싸지 않아 두 사람이 2만원 안팎이면 파스타 정도는 거뜬히 즐길 수 있다.



 

>> 김군이 시킨 알리올리오. 파프리카가 듬뿍 올려져 있어 보기는 그럴듯 하나 내가 만든 것 보다 훨씬 맛 없다. 마늘 풍미가 하나도 안난다는 것이 문제. (6.5 Er : 10,000원)   / 샤프란으로 지은 밥에 토마토 소스에 볶은 해산물을 덮었다. 돈부리가 먹고 싶었던걸까? (가격 모름) / 도모미가 대뜸 시키고 만 샐러드. 케이프와 올리브, 콩을 삶아 으깨것이 마치 된장을 닮은 콩 매쉬, 파프리카 말려 절인 것, 그리고 소세지와 토마토 소스 바른 바게뜨, 그리고 몇 가지 야채. 여기에 생맥주 한 잔과 과일 스무디 한 잔을 곁들여 총 32유로, 우리돈 45,000원이 나왔다. 샐러드는 몇 점 집어먹지도 못한채 김군이 몽땅 싸들고 왔다. 사진에선 잘 못느끼겠지만 모든 식사의 량이 꽤 많다.

제법 하는 영어와 아주 서툰 영어가 삐끄덕거리면서 식탁 위를 오고 갔다. 몇 가지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김군은 애초 오가닉 푸드 회사를 생각했으나 그녀에 따르면 비누를 비롯한 다양한 화장품을 만든다고 하고 자신은 고등학교 일부 시절과 대학을 미국에서 보냈고 이 때에 미국 유명 도시는 물론 유럽 여러 나라와 아시아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고 한다.

 

한국에도 여러 번 왔었는데 모두 음식 관광이었으며 잡채와 김밥에 매료됐고 한국산 조미김은 물론 매운 맛도 익숙해져 신라면도 한 상자 사 갖고 집에 간 적도 있다고 한다. 다음 여행은 남태평양의 팔라우를 갈 생각이고 귀국하면 가족들과 오키나와로 여행을 가야 한다고 한다.

 

이 외에 몇 가지 내용은 맨 처음에서 살짝 언급한 바와 같고 자신은 BMW를 몰고 부모님은 벤츠를 몬다고 한다. 김군은 애써 한국에 있을 때 90만원 짜리 차를 몰았다는 얘기는 하지 않으면서 ‘Your hobby’ 를 물었다. ‘Travel’이라고 답하길래 ‘Expensive hobby’를 가졌구나 라고 말하니 ‘No!’라 답하면서 웃는다.

 

그리고 최대한 격을 갖춰 물었다. “How old are you?”.  맞춰 보라는 말에 김군,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그만 자기 생각을 털어 놓고 말았다. “I think maybe 31, 32, 33.. I don’t know..” 그러자 우리의 도모미 상, “I’m 24” …

 

사태를 수습해야 했으나 딱히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이미 뱉은 말이니 주워 담을 수도 없었고 허둥대며 거듭 ‘I’m Sorry’를 반복하는 만큼 차분하고 낮은 톤의 ‘It’s O.K’만 그만큼 반복돼 돌아왔다. 어찌나 무안하고 미안한지..

 

2시간에 걸친 식사를 마친 뒤 먹다 남긴 샐러드를 싸 들고 터벅터벅 돌아와 강양과 몇 명의 한국인들에게(작은 맥주 파티가 벌어져 있었다) 결과를 전하자 곧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뭔가 속임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웰컴파티 현장에서 도모미를 봤던 사람들은 그녀가 최소 30대라는 데에 의견을 모았고 오늘 김군이 찍어온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그 확신은 더욱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24살이라니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몰타에서의 논쟁은 이처럼 하릴없다. 그래서 좋다)

 

하지만 그런들 어쩌겠나? 비록 엉망이었으되 오로지 영어만으로 2시간을 보냈고 후쿠오카와서 연락하면 자신이 즐겨가는 스시집을 안내하겠다고 하고(이 대목은 확신이 안선다. 자신이 대접한다는 건지 알려만 주겠다는 건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레스토랑 Paparazzi도 마침내 그 맛을 봤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이 같은 식사 기회를 점점 더 늘려갈 계획이다. 이는 김군이나 강양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유럽 각국의 요소요소에 전화기만 들면 도움의 손길을 뻗쳐올 아군을 시급히 육성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전 세계라면 더 좋다. 강양은 이미 엠마율크라는 비슷한 또래의 스위스 친구를 심어 놓은상태다.

 

도모미는 토요일 오전 9 비행기로 독일 뮌헨으로 날아간 뒤 그곳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로 갈아 탈 예정이다. 좀 더 많은 친구를 사귈 의향이 있는 그녀지만 누군가 다가오기 전에는 선뜻 나서지 못하는 성격인 듯 싶다. 결코 뒤떨어지는 영어실력이 아님에도 수업시간에 워낙 조용하니 말이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온 껄렁대는 젊은 친구들을 만나길 바라지만 현재 학원은 동구권에서 온 아줌마, 아저씨들로 넘쳐난다. 물론 그녀와 내가 공부중인 Level 1의 교실도 그렇다. 문득 동구권의 빠른 개방의 물결과 경제성장을 실감한다.



>>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건너편에서 찍은 'Paparazzi' 식당의 모습. 앞에 작은 만을 이루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즐기는 식사는 꽤나 낭만적이어서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 도모미. 결국 큰 실수를 범하고 만 셈이지만 그녀의 화장법과 패션은 잘못된 억측을 낳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Posted by dalgonaa

일본 사회에 들어가 살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니 흥미로운 이야기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가운데 하나만 소개한다.

 

동경 생활 4년째에 접어든 물주의 부인은 어느 날, 딸의 생일을 맞아 딸의 일본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단다. 부인은 팔을 걷어 부치고 손수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었다. 이윽고 ~. 반가움과 설레임으로 문을 여는 순간, 엄마는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을 몰랐다.

맞은편에는 고운 드레스를 입고 한 손에는 꽃을 든 딸의 친구와 정장 차림에 핸드백을 다소곳이 든 아이의 엄마가 나란히 서있었던 반면, 음식을 준비하다가 뛰쳐나온 엄마의 옷차림이란 수제비를 만들다 나온 한국의 여느 엄마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일본 엄마와 아이의 옷차림이란 일본 왕실 가족의 외출 장면을 떠올리면 될 듯 하다.

 

화요일 저녁, 우리는 김치찌개를 안주 삼아 일본에서 유명하다는 청주를 주고 받으며 위와 같은 에피소드를 상 위의 안주로 부지런히 옮겨 날랐다.(아 참, 결국 그저께 저녁 식사의 주제는 집에서 해먹는 김치찌게였다. 일본 생활에서 정통 한국식 식사란 베푸는 입장에서 엄청난 용기다. 이와 더불어 맛볼 수 없는 청주와 일본식 소주, 그리고 한국에서도 광고를 시작한고시히까리쌀밥을 양껏 먹고 마실 수 있었다. 이건 후에 좀 더 자세히 쓰도록 하자)

에피소드 결말이 더 재밌는데 일본 엄마들 왈, 사실
자신들도 딸의 친구 생일에 초대받아 남의 집을 방문하기는 거의 처음이라는 것이다. , 파티라는 이름으로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경우가 일본 사회에선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익숙한 집뜰이 조차도 없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남의 집을 거의 처음 방문하는 일본 엄마는 자신이 갖춰야 할 예의를 최대한 갖추기 위해 아이에겐 드레스와 꽃, 자신은 정장 차림으로 문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결국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한국 엄마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심정을 고백(당신들의 격식에 당황스러웠다는)하자 정장 차림의 일본 엄마들도 박수를 치고 깔깔대며 사실 우리도 남의 집에 초대받아 가기는 처음이라 어찌할 바를 몰라 이런 차림으로 왔다고 고백하더란다. 결과적으로 이날의 사건은 이들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드는 기회가 됐다고 한다.

 

반면 이런 일도 있단다. 물주가 말하길 우리의 경우 각종 경조사에 직접 연락 받지 않더라도 이미 소식을 아는 상황이면 가급적 참석하는 것이 예의인 반면, 일본에선 직접 연락이나 초대장을 받지 않으면 그 사실을 안다 하더라도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직장 동료가 가족 상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직접 연락이나 초대를 받지 않았으면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평소 술도 자주 마시고 속 이야기도 흉금 없이 털어 놓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팩스나 전자 메일의 에러로 초대장을 받지 못하고 주변 사람을 통해 소식을 접하게 되면 그 사람은 초대받지 못한 사실에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후에 오해가 풀릴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그 상처가 꽤나 클 수밖에 없다.

 

아키하바라를 오가며 지하철에서 너무도 쉽게 마주치는 일본인들의 모습에서 그런 상황을 짐작해보자니 왠지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동행의 말처럼 어쩌면 오타꾸라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생겨나게 된 환경이라는 것도 결국엔 이 같은 요인이 작용한 측면도 있지 않겠나라는 추측에 고개가 살짝 끄덕여 진다.




>> 아키하바라는 전자상가로 유명하지만 우리에겐 그에 못지 않게 500엔짜리 돈까스 덮밥집의 기억으로도 유명하게 남을 듯 싶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Bar 형식으로 꾸며진 테이블에 홀로 온 손님들이 나란히 앉아 자신 앞에 놓인 그릇에 담긴 음식을 아주 진지한 자세로 열심히 먹는 모습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