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10.12 제주도 2박3일 17
  2. 2009.01.19 '나무다' 6
  3. 2008.10.14 아르바이트의 첫 걸음 Preparing for a part time job
  4. 2008.09.07 와인과 보드카, 그리고 너구리 4
한국 Korea 160409~2009. 10. 12. 07:54
지난 화요일,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가게 오픈을 앞두고 선결과제 하나는 와인.
까다로울 수 밖에 없는 이것은 아무래도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기에
마일리지를 긁어모아 티켓을 끊었다.

몇 차례 얘기했지만 작년 봄,
로마의 한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소믈리에와의 만남은
우리에겐 색다른 경험이었고 돌아오면 언젠가 다시 보겠구나 내심 짐작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번 여행을 통해 이뤄지게 된 것이다.

이번 여행은 지난 만남 이후의 회포를 풀고
동시에 와인과 관련한 비즈니스적 도움을 받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곁들여서 이왕 내려간 제주도인만큼 일정을 하루 더 늘려
올레길을 걸어보는 것까지 포함시켰다.
 


국내선이라도 오랫만에 비행기보니 좋구나.



강양은 아시아나 마일리지로 공짜로 끊었지만
김군은 포인트가 모자라 제주항공을 탔다.
헌데 프로펠러기일줄 알았더니 당당히 제트엔진이다.
저가항공, 그 가운데 제주항공은 어느새 일본노선에 이어 동남아 노선까지
확장했다는데 재주도 좋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김미경씨가 손수 차를 몰고 마중을 나와줬다. 
작년, 베로나 공항에 도착해 우리를 마중나와 준 엘리자베따의 그 상황과 똑같다.
 '마중' 만큼 진정스러운 환영 세레모니도 없지 않을까?
그리고 보니 올 봄, 일본에서 게이코가 왔을 때는 우리가 마중을 나가 그녀를 환영했다.

김미경씨는 우리에게 대접할 점심을 신중히 고민했던 모양이다. 
결국 그녀의 제안은 '고기국수'.

"이것저것 생각해봤는데 그래도 고기국수만큼 특별한 메뉴는 없는 것 같아서요"


소박한 비주얼.
탁도높은 육수에 굵은 중면, 고명으로 실파와 깨소금, 고기가 올랐다.
국물 한 술 떠마시니 오호..  맛이 깊다.
돼지사골국물이 기본 베이스겠지만 잡내 하나 없고 '맛'을 내주는 감칠맛은 어디서 온건지 궁금하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할 부분은 다름아닌 고기. 
밝은 핑크빛에서 고기의 신선함이 전해지고 
포실한 살점과 잡내 하나없이 깨끗한 비계 역시 꼬소한 맛이 수준급이다. 

어쩜 이렇게 고기를 맛있게 삶아낼 수 있을까 싶지만
역시 좋은 재료가 맛의 90%를 결정짓는게 아닐까?
제주도의 돼지고기는 좋은 물과 공기의 영향으로 그 맛이 남다르다는 것이
여행중 만난 제주도 사람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제주시 연동에 있는 올래국수.
 제주도 왔으니 고기국수 한번 먹고가자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가시라.



와인샾 <빵과 장미> 도착.
이곳 주소가 제주시 노형동?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제주시의 유명 찜질방 '부림랜드' 혹은 '부림사우나' 바로 옆이다.




김미경씨와 와인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비즈니스에 관한 의견도 나누고..
우리로선 모호했던 부분들이 좀 더 분명해졌고
김미경씨와는 향후 저렴하고 맛있는 와인을 구매하는 공동전선을 구축하기로 했다.


화이트와인을 밀겠다는 우리의 기본 방침에 대해 김미경씨는 
레드의 대중성을 들어 적잖은 우려를 표명했지만
홍대라는 트렌드의 특성에 기대를 걸어보겠단다.
사실 우리도 걱정이긴 하지만 장사하는 주인의 입맛이 화이트니 어쩔수 없다.



어느덧 저녁.
지난 로마의 추억을 떠올리며 꺼내든 술은 다름아닌 네로 다볼라(Nero D'avola).
시칠리아에서 짜내는 이 술은 김미경씨와 로마의 숙소에서 처음만나 나눠마셨던 그 품종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음료라는 김미경씨의 칭송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변주력을 지닌 와인은 그 자체로 즐겁다.



막걸리는 들이켜야 맛, 소주는 꺾어야 맛,
잔 돌리고 색 감상하고 코 박아 향 맡고.. 
와인은 또한 그래야 맛이다.



마침 와인샾 바로 옆이 파스타 가게라서 파스타 두 접시를 주문해 먹었다.
가격이 모두 1만원 아래인데 만원을 훌쩍 넘어서는 서울의 가게들에 견줘 부족함이 한치도 없다.
특히 계란 노른자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손수 얹어주는
까르보나라는 무늬만 까르보나라인 다른집 파스타들에 비해 재료의 솔직함이 좋다.
손 크게 썬 양파는 빼는게 좋을 듯.




서울의 큰 프랜차이즈에서 다년간 요리를 하다가
몽땅 정리하고 가족들과 제주도로 내려와 파스타 가게를 열었다는 젊은 오너쉐프는
그러나 신통치 못한 매출에 근심이 많다.
 누구나 꿈꾸는 제주도의 로망을 직접 실천한 모험이
이래저래 근심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여간 안타까운게 아니다.



늦은 저녁, 매일같이 모여 술을 마신다는 '멤버'들과 뒤섞여
아주 가뿐하게 4병을 비워냈다.
화이트 1병에 레드 3병.

 제각각 술이 가진 장기가 있더라도 우리의 즐거움은 결국
알콜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저기 바쿠스가 이미 오래전에 증명하지 않았던가?

Posted by dalgonaa

부산에 문 열었다는 '쿠'의 놀이터, 카페 '나무다'를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경남공무원동호회의 카페글에 한 줄 떠있는걸 보고 잽싸게 클릭, 뭔가 단서 좀 잡아볼까 했는데 사진 다 깨져나오고 달랑 한 장 제대로 뜬다. 벽면에 전봇대 그려져있고 전깃줄 위에 새 한 마리 앉아있는 모습의 사진. 아무튼 페인트집에서 칠한 벽이 아니라 누군가 정성을 들여 나름의 감성을 옮겼다는 얘긴데 나머지 공간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죽겠다. 부천시민이 반상회 멤버들과 함께 다녀왔다니 그 궁금증이 더 커지는 곳. 기대된다, 봄, 부산, 비린내, 와인, 사람들, 나무다.

<사진출처:http://cafe.daum.net/memory2006/I3n2/3>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14. 06:33

리자는 작은 가게를 운영한다. 이름은 St. Thomas Cafe. 성인의 이름은 가게 바로 앞에 있는 성당에서 따왔다고 한다. Cafe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사실 이 가게는 이탈리아식으로 치자면 Bar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는 동네 어귀어귀 마다 작은 Bar가 곳곳에 있는데 주로 커피와 와인, 그리고 간단한 먹거리를 판다. 리자네 Bar도 아침 7시에 문을 열어 출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샌드위치류의 먹거리와 커피를 팔고 낮과 밤에는 스프리쯔와 와인 등의 술도 판다. 대박을 칠 만큼 좋은 자리도 아니고 값싼 먹거리와 음료가 주메뉴기 때문에 그녀는 이른 아침부터 손님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애를 쓴다.


가게도 그렇고 듣자 하니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그렇고 속시원한 행운이 따르지 않는 요즘의 그녀지만 큰 소리로 웃는게 특징인 그녀의 얼굴에서 어두운 낯빛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 리자네 가게를 다녀왔다. 다른게 아니라 술을 취급하는 그녀니 만큼 와인너리와 관련해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다.

잠시 설명을 하자면, 우리가 이곳에서 생활하기 위해선 수중에 가진 돈만으론 당연히 부족하기 때문에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기회되는대로 찾아 해야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모 방송사의 해외소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에 작품(?)을 납품하는 일. 혹시나 프로그램이 가을개편에서 사라질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도 살아남았다고 한다. 담당 PD와도 연락이 닿았으니 우리가 준비되면 그쪽으로 연락을 넣고 작업에 들어가면 될 듯 한데 바로 그 아이템의 하나가 와이너리다.

작은 앞치마를 두른 리자가 우리를 반긴다. 맨입으로 필요한 것만 취하고 갈 수는 없으니 맥주 작은 잔 하나와 와인을 한 잔 시켰다. 리자와 마주 앉아 잠시 지나가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은 뒤 본격적으로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놓았다. 

달고나 : 언제가 포도 수확철이냐?
리자 : 바로 지금이다. 9월부터 10월까지 한다. (그리고 당장은 중요치 않은 긴 설명이 이어졌으므로 SKIP)
달 : 혹시 아는 와이너리 있냐?
리 : 있다. My sister의 시댁이 아주 작은 와이너리를 한다. 그리고 작은 레스토랑도 함께 운영한다. 베로나에서 차로 40분만 가면 되는 거리다. 
달 : 오호~ 그거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이미 전에도 얘기했지만 우리가 비디오 작업을 하는데 가을을 맞아 와이너리를 취재하려 하는데 그곳이 가능하겠냐?
리 : 문제 없을꺼다. 가능하다면 나와 함께 가서 그곳 구경도 하고 식사도 함께 하고 오자. 그들은 굉장히 친절한 사람들이고 일종의 농원같은 식으로 레스토랑과 숙소, 와이너리를 함께 운영한다. 내가 뭘 하나 보여주겠다. (그리고 잠시 사라졌다가 와인 한 병을 들고 나타난다)  My sister 시댁에서 담근 와인이다. 라벨에 그려진 그림이 그곳이다.  


리 : 오른쪽 건물이 숙소고 왼쪽이 레스토랑이다. 작년에 개업선물로 주신건데 너희들 가져가서 마셔봐라. (처음엔 "For you"라고 해서 잠시 귀를 의심했는데 헤어질 때 끝내 우리손에 안겨준다. 맘씨좋은 리자.. 혹시 개업선물로 한 병만 주신건 아닐테니 받아왔다. 아무튼..)

달 : 언제 함께 갈 시간이 되겠냐? 평일엔 장사를 해야할테니 너는 일요일밖에는 시간이 안되지 않느냐?
리 : 먼저 내가 그곳에 연락을 취해보겠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자. 다행히 My syster의 시어머니가 옛날에 영어교사여서 영어를 할 줄 안다. 
달 : (영어선생이란 말에 살짝 기가 죽었지만)오호.. 참 잘됐다. 그럼 연락해보고 우리에게 알려주라.
리 : 알았다. 

얘기를 마칠 즈음 갑자기 손님 셋이 들이닥쳐 이것저것을 주문했다. 일손이 바빠진 그녀와 작별인사를 한 뒤 가게를 빠져나왔다. 조만간 리자를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할 요량이었는데 오늘 공짜술도 얻었으니 재료를 아끼지 말아야겠다. 누들 종류는 뭐든 좋아한다니 뭔가 근사한걸로 반쯤 '죽여야'할텐데 뭐가 좋을지.. 일산의 칼국수나 을밀대의 냉면을 먹이고 싶은 생각 굴뚝같으나  쩝..  



리자네 가게 외관. 테이블에 앉은 이들이 그녀 가게의 손님들이고 서있는 사람들은 바로 옆 피자가게에 몰린 손님들이다. 리자가게의 단골손님은 저 사람들이 아니라 피자가게의 웨이터들.

Posted by dalgonaa

 변덕스러움에 있어서 계절만큼 당혹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없지 싶다. 가을이 왔다고 호들갑을 떤게 얼마전이었건만 요즘 몰타의 날씨는 한 여름 한국의 날씨를 고스란히 닮아있다. 시간이 꺼꾸로 간 때문은 물론 아니고 9월로 접어들면 다습한 공기가 지중해 일대를 뒤덮었기 때문. 이 불쾌한 '손님''은 점차 그 범위를 키워 겨울로 접어들 무렵엔 유럽으로까지 뻗친다고 한다. 우리와는 달리 여름엔 건조하고 겨울에 다소 습해지는 것이 이곳 기후의 특징. 겨울에 유럽에 안개가 많이 끼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다 아는 얘기일 터.

그래서 요즘 무척 덥고 쉽게 지친다. 끈적거리는 피부와 어느새 눅눅해져 기분나쁘게 달라붙는 옷은 '어서 바다로나 뛰어들라'고 재촉하는 것 같고 실제로 그러기도 한다. 그러던 지난 금요일, 밤이 되자 기온은 좀 더 낮아졌지만 습도는 여전한 가운데 15명 안팎의 사람들이 모여 차에 몸을 실었다.  




일행이 향하는 곳은 몰타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에 하나라는 Mdina. 에어컨이 고장나서 그냥 창문열고 달리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은 제법 시원하다. 서먹한 일행들은 모두 말이 없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GROTTO라는 이름의 카페 앞. 학원에서 주관하는 체험 프로그램, 이른바 'Activity'의 일환으로 1인당 22유로(한화 34,000원)를 내고 참여하는 Malta Wine Tasting 을 체험하기 위해 온 것이다. 몰타 출국을 이제 한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우리로써도 이제 슬슬 몰타의 숨겨진 재미를 찾아 나서야 할 때다.








GROTTO는 프랑스와 몰타 요리를 선보이는 제법 오래된 식당이지만 이미 저녁식사를 마치고 모인 우리들의 목적지는 어디까지나 와인이다. 하지만 그 기대가 썩 높은 것만은 아니다. 이미 전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대륙의 와인명가가 즐비한 마당에 자국 시장조차도 지켜내기 벅찬 품질이 이곳의 현실일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양조는 몰타에서 했다지만 포도는 대부분 이태리산 아닌가!

다만 낯선 체험이기도 하고 금요일 밤, 밥도 두둑히 먹어뒀으니 다양한 와인으로 주말밤을 기분좋게 포식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선뜻 참여한다. 낯선 동행들과 거나하게 한 잔 즐기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줄테다.








식당은 지상이 아니라 지하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인 만큼 제법 쓸만한 규모의 크고 작은 동굴들이 널려있고 그 가운데 가장 쓸만한 것들은 이처럼 식당으로 꾸며져 있다. 바깥보다는 서늘하니 좋지만 여기 공기도 꽤나 축축하다.






 

대략 지하 3층 정도 되는 깊이까지 내려오자 마지막에 닿은 와인 바. 사방의 벽은 모두 용암이 식어 굳어진 암석이다. 제법 깊고 긴 규모에 살짝 놀랐는데 이곳은 어디까지나 식당일 뿐 와이너리는 아니다. 길게 이어지는 통로는 오크통이 아닌 식사를 즐기는 테이블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와인 테이스팅을 진행하는 Sandra. 몰티즈인 그녀는 스위스에서 수학했고 지금은 주방을 맡은 프랑스 출신의 남편과 더불어 이곳 식당을 운영하고 있단다. 이날 등장한 와인은 모두 몰타 와인들로 왼쪽에서부터 샤도네이 화이트로 시작해 달콤한 로제를 거쳐 멜롯과 카버네 쇼비뇽, 그리고 그녀 말로 가장 바디감이 크다는 시라즈로 마무리되는 순서다.








그녀의 에너지 넘치는 설명이 시작됐다. 영어로 진행되는 설명은 어떤 것은 들리고 어떤 것은 안들린다. 하지만 들린 것 가운데 우리의 예측을 깨는 몇 가지 이야기들이 있어 우리를 놀래켰다. 적지 않은 포도를 이태리에서 수입해 양조만 하기도 하지만 몰타 자체의 엄선된 품종으로 담그는 포도주도 있고 그것들 대부분은 기계가 아닌 손으로 직접 따 술을 만든다는 것. 소량이기 때문에 쏟는 정성이 크고 그 덕에 품질도 좋다고 한다. 정부에서도 와인산업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지원을 늘리는 추세라고도 하니 무작정 무시하고 볼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그녀의 재치넘치는 설명은 모두 비디오 카메라에 담았으니 후에 찬찬히 반복해 돌려보면 그 내용이 좀 더 또렷해질테다.








열심히 사진도 찍고..








자잘한 먹거리도 정성스레 준비됐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전방위 먹거리 워터 비스켓도 보이고 옥수수, 쇠고기, 토마토, 참치를 베이스로 하는 4가지의 소스도 다소곳이 마련됐다. 과자에서 얹어먹지만 주로 빵에 발라 먹는다.








바삭한 바게트. 올리브를 담은 접시가 눈길을 끈다.








와인 안주로 손색없는 다양한 먹꺼리들이 한 가득이다. 오른쪽 위에 작은 알갱이들은 케이퍼인데 몰타 농산물의 대표 주자 가운데 하나라고.. 살라미와 프로슈토, 치즈를 가득 담은 접시도 있었는데 그건 미처 카메라에 담질 못했다. 와인의 톡 쏘는 듯한 산미는 오른쪽의 차가운 소세지가 풍부한 육기로 감싸주고 뻑뻑해진 입맛은 다시 와인이 상큼하게 되돌려주고, 쫓고 쫓기는 맛의 재미에 어느새 빠져든다.








바게트 위에 토마토와 참치 드레싱을 얇게 바르고 그 위에 올리브를 얹었다. 촉촉한 빵을 베어물 때까진 좋지만 막판에는 손으로 꽉 잡고 이빨로 물어 뜯어야 한다. 그래도 맛은 좋다. 참치와 마요네즈가 둔탁하지 않게 섞였고 어딘가 익숙한 그 맛에는 잘게 다진 바질의 풋풋함이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이것만으로도 훌륭하건만 올리브가 색다른 풍미를 얹어준다. 한낱 핑거푸드지만 맛의 향연이 놀랍다. 살짝 허기가 있는 사람들에겐 더 없이 좋을 요기꺼리.








바삭하게 구워낸 바게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채소 다짐 소스(?)를 얹어냈다. 그 맛이 독특해 열심히 카메라로 내용물을 자세히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여의치가 않다. 파, 양마, 당근까지는 육안으로 알겠고 입으로는 살짝 고기 국물맛이 나는 것 까진 알겠는데 나머진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까짓 안주꺼리에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는건 아닌가 모르겠다. 그런가?..








산드라의 숨가쁜 설명이 끝난 뒤 모두들 주거니 받거니 와인을 나눠 마신다. 산드라의 특별 서비스를 포함해 이날 총 17병의 마개를 땄으니 한 사람당 한 병 이상씩의 와인을 마신 셈이다. 이것저것 골고루 맛은 봤지만 이러쿵 저러쿵 입을 놀리는 것이 부담스럽고 사실 그 느낌도 아직은 모호하다. 와인 맛의 각성도 쉽지 않고 그 경계를 구분하는 입맛의 기준도 아직은 없다. 꼭 그래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모호한 맛의 경계를 시시콜콜 논하진 않으련다.








수퍼마켓의 5유로 짜리 와인 앞에서도 손길이 주저되는 것에 비하면 이날의 지출은 턱없이 비싼 것이지만 단지 병입된 와인의 가치만이 아니라 제법 맛난 안주들과 공간의 독특함, 그리고 과묵했던 일행들과 어느새 잔을 부딪치며 왁짜하게 떠드는 재미에서 와인에(나아가 모든 알코홀에) 기대하는 궁극의 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그 묘미에 열광하는 이들은 때론 아래 포즈로 표현을 대신하기도 한다.








독일서 온 미녀 '카리나'와 독일사람처럼 생긴 이태리 청년 '패트릭'.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어섰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 올 때와 달리 갈 때는 분위기가 180도 돌변했다. 카메라 플랫쉬가 터지고 유쾌한 비명이 오가고 전염성 높은 웃음이 좁은 차 안을 흥건히 적셨다.  








와인에서 시작된 인연들은 파쳐빌로 자리를 옮겨 마침내 보드카로 좀 더 강렬하게 다져지고..

이곳에서 2차를 즐기고 3차까지 이어진 끝에 4시 무렵이 되서야 자리가 정리됐다. 오랫만에 달린 하루, 어쩐지 술이 점점 약해져가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술맛을 즐기는 입은 섬세해지고 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음식의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가급적 술과는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 옳지 싶다. 반주로 가볍게 즐기는 술은 식욕은 물론 음식의 맛을 더욱 돋궈주지만 어느 선을 넘어서는 그 순간부터 음식은 섬세한 맛의 결정체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씹어 삼키는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뭐, 경험으로 익히 아는 사실이다. 나도, 당신도.

술에 혹사당하는 입과 몸에 조금 미안함이 없지 않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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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이것이 있어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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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에 대한 단상. 재미로 읽으라. 동의해주면 고맙고.. )

이름하여 해장라면. K-mart에 드디어 고추장과 간장이 들어왔다. 그편에 너구리도 들어왔길래 몇 봉지 사다놓은 것 중 '한 마리'를 잡았다. 반찬도 없이 달랑 저거 한 냄비. 그래도 맛도 좋고 제 역할을 벗어난 임무까지도 훌륭히 수행한다. 이쯤에서 새삼 깨닫는 거지만 술자리의 진정한 완성은 역시 해장이다. 그것이 한 봉지 라면이 됐건 값비싼 생복 지리탕이 됐건 망가진 몸을 원래의 상태로 복구시키는 '의식'에서 술자리는 진정한 마무리가 된다.

그 의식의 '성지'가 한국만큼 발달한 곳도 없지 않을까? 콩나물국밥집, 북어국집, 올갱이국집, 선지국집.. 일일이 열거하는게 어리석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곳의 음주문화는 폭음으로 파열된 몸뚱이를 위한 '복구문화'가 그닥 발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 수 아래다. 물론 고급 위스키와 와인은 숙취의 부작용이 근본적으로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모든 사람들이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술도 아니고. 근사한 대문으로 들어가서 쪽문으로 나오는 느낌..

이점에 있어 해장문화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한다. 허나 우리모두 경험으로 알듯이 한국의 해장국집은 진정 '해장(酲)'하는 집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지난 밤의 상처를 치료하고 그리고 그곳에서 또 다시 새로운 상처에 몰입한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