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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7 La vitta e vella! 3
  2. 2008.08.16 바람불어 좋은 날

8월 23일이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處暑)다. 처서 바로 전의 절기가 입추(立秋)니까 이것만으로 보자면 가을이 곧 코앞에 다가와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고온습한 무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곳은? 지중해의 한 복판 몰타에는 오늘 아침 가을이 찾아왔다. 그야말로 한국의 전형적인 가을날씨다.

걷어차고 차던 이불을 새벽부터 끌어당기기 시작했고 눈 비비고 일어나 발코니에 서니 공기가 살짝 차갑게 느껴진다. 바람이라도 제법 세게 불라치면 피부에 살짝 소름이 돋는 수준이다. 매일 웃통을 벗고 지내던 김군은 아침에 티셔츠를 주어 입었고 함께 사는 여자들은 온수 보일러를 작동시켜 샤워물을 데피고 있다. 집안에서 들이키는 공기의 질감은 가을 어느날, 차례상을 준비하는 그 아침의 것을 쏙 빼닮아 있다.

아무래도 어제의 범상찮았던 바람이 몰고온 결과임에 틀림없다. 어제까지만도 바닷물에 들어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면 오늘 아침 발코니서 바라보는 바닷물은 어제와 사뭇 달라 보인다. 살짝 발끝만 담가봐도 그 차가움이 온 몸을 얼릴 것 같다. (이건 좀 오바군..) 아무튼 더위도 8월이 절정이라고 얘기하는 이곳에서 그 8월의 딱 중간인 어제가 최고 절정이었다면 그 다음날인 오늘은 본격적인 내리막이라고 얘기해도 될 듯 싶은데 어제의 바람이 그만 과속을 저질렀다.  

이른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또 다른 표현으로 '독서의 계절'은 지금 이곳의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파란빛깔의 주인이 하늘이었는지 바다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둘은 서로를 닮아가듯 더욱 짙은 빛깔로 성숙돼 갈테고 몸이 움추러지니 벌서부터 열량 높은 음식이 그리워진다. 동생이 부쳐준 책도 선반 한 구석에 든든하게 쌓여있으니 재주껏, 양껏 음식을 요리해 먹으며 하늘과 책을 번갈아 쳐다보면 그것만으로 이곳에서의 시간은 충분히 가치있을 듯 싶다.

가을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점은 또 있는데 이곳 몰타를 떠나 이제 본격적인 지중해 기행에 들어간다는 점 때문이다.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욕심내면 북아프리카의 몇 나라까지.. 짊어지고 다녀야 할 짐이 많아 그게 맘 한 구석을 무겁게 하지만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면 방법이 나올테다. 가을은 생각하기에도 좋은 계절 아닌가!  오늘 아침, 가을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 가을이 느껴지는지.. 저 앞 야자수땜에 혼란스럽긴 하지만 발코니에서 서면 아침공기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이 반가운 가을을 음악없이 맞을 순 없으니.. 고르고 고르다 선택한 음악, La vitta e vella. 가을이 있어 인생은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Posted by dalgonaa

모처럼 바람이 거세다. 평소 아래로 늘어져 있던 야자수 잎은 제 몸을 부러뜨릴 기세로 요란하게 요동치고 있고 옥상의 빨래들은 빨래집게 하나에 의지해 날아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럴 때 컴컴한 구름도 덮히고 비라도 뿌려주면 간만에 우울증에 젖어 지내볼텐데.. 그렇다면 이를 근사하게 장식해줄 점심으로 호박부침개를 할지, 아니면 수제비로 할지에 대한 진지한 궁리가 좀 더 즐거울 수 있겠건만 하늘은 석 달째 그렇듯 구름 한 점 없이 햇볕 쨍이다. 그 변함없음이 징글징글하다.

아침일찍 바다에 나가 수영이나 할까 하던 계획을 접고 그냥 거실에서 풍욕을 즐기고 있다. 비록 시원한 빗줄기는 없지만 초콜렛 빛으로 그을린 몸통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느낌은 여간 부드럽고 달콤한게 아니다. 같은 계절을 살아도 한국과는 전혀 다른 뽀송뽀송 메마른 공기가 만들어내는 감촉은 한국을 떠나기 전 꿈꿨던 지중해의 낭만이란 어쩌면 이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지중해를 상징하는 태양과 푸른바다, 그 속에서 한 없이 낙천적으로 보이는 이곳 사람들의 기질은 바로 이 바람이 없다면 분명 불가능했을 테다. 바람은 나무도 흔들고 빨래도 흔들지만 사람 마음도 흔들어 놓는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