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1. 6. 08:43

그저께, 집에서 버스로 5분 거리의 '에쎄룽가'라는 수퍼에서 삼겹살을 사왔다. 삼겹살은 우리가 즐기는 그것과 거의 똑같다. 몰타에서 즐기던 삼겹살은 애기 팔뚝만한 고깃덩이에 갈빗대가 하나 붙어 있어 제대로 맛보려면 초벌구이를 해서 뼈를 발라내고 다시 칼로 적당히 썰어 마저 굽는 대단히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이태리 삼겹살은 깔끔하게 모양까지 잡아 판매하고 있다.

260그램에 우리돈 2천원을 조금 못받으니 한국보다 저렴하다. 불판에서 익어가는 돼지 뱃기름의 고소한 맛을 이곳 사람들은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그 맛을 높이 치지 않는 것인지, 수요가 많지 않으니 가격이 쌀테다. 대신 이들에겐 우리가 별로 쳐주지 않아 가공소세지로나 만들어 먹는 돼지 뒷다리살을 염장 숙성해 즐기는 프로슈토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같은 재료를 갖고서 어쩜 저리 다른 문화로 갈라지는지 그 비밀을 캐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테다.

프로슈토는 이미 우리가 맛을 봤으니 알겠고(물론 그 깊은 맛을 즐기는데는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기회되면 삼겹살을 한 번 더 사다가 이곳 친구들에게 한 번 먹여봐야겠다. 파채를 곁들여도 좋을테고 기름장도 좋겠지. 꼭 빼먹지 말아야 할 것은 쌈으로 싸서 먹여보는 것. 마늘과 고추도 싸먹이면 좋겠지만 이건 선택으로 남겨두고 다만 고추장은 맛의 핵심이니 빼먹어선 안될테다.

사실 낯선 맛을 보인다는게 문화를 소개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불판을 가운데 놓고 직접 구어가며 먹는 것이 제 맛을 즐기는 방법이면서 그 식문화를 제대로 체험하는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여기는 한계가 있다. 사실 한국의 고기맛이란 구워먹는 행위 빼면 참으로 싱겁기 짝이 없지 않던가?  특히 우리에겐 너무 익숙해 하찮게 지나치는 테이블 가운데 둥근 뚜껑, 그걸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미스테리에서 헤어나올 방법이 없다.

김군이 생애 최초로(?) 담가본 김치. 배추, 무, 젓갈, 마늘, 생강 다 있는데 결정적으로 고춧가루가 없다. 조금 남은 놈을 저기에 쏟아붇기 두려워 근처 필리피노 상점에서 인도산 고춧가루를 5분간 살펴보고 구입해 넣었다. 빨갛다고 다 같은 고춧가루가 아닌데 어떤 건 독특한 향을 내뿜기 때문에 잘못 사면 돈만 버리고 만다. 다행히 별다른 향 없이 제대로 매운 고춧가루다. 근데 무슨 고추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맵다.

결국 백김치도 아닌 어중간한 김치가 탄생했지만 이틀 정도 익혀 먹으니 그런대로 맛이 난다. 허나 이태리까지 와서 김치나 담가먹는 식생활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슬쩍 돌아보게 되더라는..  베로나를 벗어나 토스카나나 남부로 내려가게 될 즈음엔 가가호호(?)를 방문해 그들의 손맛을 엿보게 될텐데(과연?..) 우리도 줄 것이 있어야 할테니 그때를 대비한 훈련과정이라고 핑계를 대본다. 특히 불고기와 계란말이, 김밥, 부침개를 우리의 필살기로 삼아보려 하는데 혹시 추가할게 있을까?


오늘 목요일, 1박 일정으로 PARMA에 다녀온다. 베로나에서 남쪽으로 차를 몰아 1시간이면 족히 당도할 동네지만 기차를 타면 좀 더 아랫동네인 MODENA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거슬러 올라오는 탓에 2시간 반이나 걸리는 가깝고도 먼 동네다. 당연히 기차타고 간다.  PARMA, 어딘가 익숙한 이 이름.. 그렇다. 바로 피자나 파스타에 뿌려먹는 그것, 파마산 치즈의 원조 동네 되시겠다. 우리나라에서 '파마산'이라 부르는 이 이름의 유래가 혹시 PARMA산(産)을 나타내는 말인가 했는데 이탈리아 말로 '빠르미지아노'(PARMIGIANO-파르마 사람)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PARMASAN에서 따온 말이라고.  파마산 치즈가 궁금하다면 꾸욱.

파르마를 찾는 이유는 지난 토리노 여행중에 만난, 바로 위 '꾸욱'의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다. 한국에 있는 동안 음식관련 분야서 일하다 좀 더 배우고자 이탈리아를 찾았고 그 가운데서도 아는 사람들에겐 이미 명성이 자자한 '식문화 종합대학(UNIVERSITA DEGLI STUDI DI SCIENZE GASTRONOMICHE)'에서 1년간 수학했다 하니 그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가 없어서다. 더욱이 그녀가 다음주에 한국으로 귀국한다 하여 발길을 서둘렀다. 마침 그녀가 사는 집의 룸메이트가 일찍 방을 비워 숙박이 해결돼 발걸음이 더욱 가볍다. PARMA 고유의 치즈에 와인을 곁들여 즐길 점심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종합식문화대학은 이탈리아 정부가 돈을 대고 슬로푸드협회가 운영하는 대학으로 국제슬로푸드협회장이 교장(CARLO PETRINI 라고 노구에서 뿜어내는 카리스마와 열정이 장난 아닌 할아버지)을 맡고 있기도 한데 이 대학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미식가를 키워내는 곳이 아니라 GOOD, CLEAN, FAIR라는 슬로푸드 이념에 입각한 식문화를 가르치는 곳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는 곧 자연과의 공생, 종(種)의 보존, 식재료 본연의 맛과 산업화로 사라져가는 지역별 고유 맛의 발굴과 보존 등, 다분히 진보적 이념에 입각한 관점에서 먹는 문제를 다루는 특이한 공간이란 얘기다. 

이런 훌륭한 곳이 수업료도 좀 싸면 좋겠지만 1년 수업료로 4천만원이라는 큰돈이 든다. 허나 숙박과 식사를 비롯한 일체의 체류비용이 포함되고 무엇보다 50일 가량은 유럽 전역을 돌며 생산자를 만나고 맛을 보고 현지 풍토와 문화를 몸소 겪는 실질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학생들로 부터 반향이 높다고. 파르마의 대학원 과정이 이렇고 피에폰테의 BRA에 있는 또 다른 캠퍼스는 4년의 정규 학사과정을 밟을 수 있는데 여기선 이탈리아, 유럽을 거쳐 전세계를 도는 한 차원 높은 프로그램을 운영한단다. 물론 학비는 더 비싸다. 허나 1년의 공부를 마친 그녀는 '과연 학교가 이 돈으로도 남는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수업료 이상의 것을 얻고 간다'며 만족감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러니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얘기를 안들을 수가 없다.

가자! 덜컹덜컹 기차타고 가을 정취 감상하며 한때 파마산 치즈의 원조자격을 잃을까 가슴 쓸어내려야 했던 사람들이 사는 곳, 파르마로~!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