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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1 파르마에서 즐긴 점심식사. Lunch in Parma. 1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1. 11. 03:54



PARMA로 가는 길. 먼지로 더러워진 창문 밖으로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파르마 역에 도착.

파르마 여행의 컨셉은 결론적으로 '맛의 경험'이 되었다. 이는 순전히 우리를 위해 며칠 간 고민한 노양의 노력이자 배려였는데 그녀는 일찌감치 시내 식당을 물색해놨고 집에서 선보일 저녁 메뉴는 물론 아침까지도 계획해놓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살짝 넘긴 시각, 역에 도착해 노양을 만났다. 토리노에서 한 번 만났을 뿐, 속 깊은 얘기 한 번 나누지 않은 사이지만 오랜 친구 만나는 양 반가웠고 그녀도 그래 보였다.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 받으며 시내의 한 작은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진의 분량이 상당하니 이 점 참고하시길..)


파르마는 세 가지로 유명하단다. 하나는 전에도 얘기했던 대로 파마산 치즈이고 또 하나는 TV 광고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세가 높은 파르마 프로슈토,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나머지 하나는 오페라의 아버지, 베르디의 고향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베르디도 좋건 싫건 즐겼을 치즈와 프로슈토를 맛볼 기회를 맞은 셈. 노양이 안내한 곳은 파르마 사람들에겐 맛집으로 소문난 '쏘렐레 픽끼'(SORELLE PICCHI-픽끼 집안 자매들)이다. 외관은 프로슈토와 치즈를 파는 일반적인 가게지만 좀 더 안쪽으로 들어서면 작은 식당을 겸하고 있다. 파르마에선 꽤나 오래된 집이라 하고 우리 외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이 집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한껏 끌어 올렸다.

 
기다리며 이야기를 주고받거니 하는 동안 쇼윈도의 전시물을 구경해보자. 

도톰하게 썬 양파 위에 당신이 짐작하는 그것을 얹어 오븐에 구웠다. 우리가 짐작하는 것은 폴렌타(옥수수 죽?) 반죽이나 치즈를 섞은 감자 으깬 것.


우리로 치면 고로케쯤 될 것 같은 저것. 내용물도 그게 떠오르지만 분명 아닐꺼라는.. 한 입 집어먹기 좋겠지만 가격은 분명 1유로(1,700원)를 훌쩍 넘을테다.

색감의 조화속에 '먹으면 건강해져요'라고 외치는 듯한 채소들. 가지, 파프리카, 호박 구이가 있고

그 주위에 파스타, 즉 라비올리도 계시다. 라비올리 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다면 곧 등장할 사진에서 확인이야 하겠지만 맛까지는 못보여주니 쩝.. 허나 내년에 돌아가면 그 맛을 보여줄테니 너무 섭섭치 마시길.. 낄낄 

가게 안의 풍경. 선반 너머로 와인과 과일잼이 질서정연하고 

소금에 절이는 것 외에 별다른 첨가물 없이 세월만으로 숙성된 귀한 햄들이 손님을 즐겁게 기다리고 있다.
 

벽에 걸린 프로슈토와 바닥에 차곡차곡 쌓인 둥그런 파마산 치즈. 그야말로 돈 덩어리라 할 수 있는데 오랜 세월, 전통을 고수하는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입으로 즐기는 명작(名作)이니 섣불리 덤빌 가격이 아니다.  그 사이로 허기진 손님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저들보다 앞서 와 이미 예약을 해놓았으므로 밖에서 호출을 기다리며 사진이나 찍고 놀고 있는 중이다.

앞서 예약을 하면서 노양의 이태리어 솜씨를 접하곤 슬쩍 놀라면서 기가 죽었는데 영어로 진행되는 학교 수업 와중에도 파르마시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강좌(우리도 애초 시도했다가 경찰서 퍼미션을 받아오라는 말에 발길을 돌려야 했던 프로그램) 틈틈이 나가 익힌 솜씨라고. 애써 겸손을 펴는 노양이지만 노력의 흔적을 엿보기에 충분했고 은근히 자극제가 됐다.



20여 분을 기다려 테이블 하나를 꿰차고 앉았다. 넓지 않은 공간, 요란하지 않은 실내 장식에서 편안함과 실속이 엿보였다. 10개가 조금 넘는 테이블. 만석이 돼봐야 30명이 채 안될듯한 작은 공간이다. 사실 이태리의 많은 식당들이 이런 정도의 규모로 운영되는 곳이 많은데 아마 오래된(古) 건물에 따른 증축이나 확장공사의 어려움과 값비싼 임대료도 한몫 하는 탓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만약 운영주가 운좋게 식당을 확장해 우리나라의 회센터 마냥으로 4층짜리 건물을 통으로 터 장사를 한다면 이태리 사람들이 이를 선호할까?  한상 푸지게 먹는 것도 좋지만 RESTAURANT이 아닌 CENTER에서 밥을 먹는 우리의 정서와 비교해 본다면 이런 작고 알찬 공간이 훨씬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하나만 더 짚자면 방송출연 경력이나 유명 연예인들의 사인으로 차고 넘치는 우리 식당의 실내도 이젠 좀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 얄팍함을 믿고 찾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꺼라고 무당집 장군상 마냥으로 빼곡히 붙여놓는지 볼 때마다 안쓰럽다. 식당 개업식 사진도 좋고 그림 좋은 달력이나 식당 직원들 가을맞이 단합대회 사진이라도 걸어 놓는게 더 정감있고 애착이 가겠건만.. 요즘들어 점차 보여지기 위한 개성이 아니라 요란하지 않게 있는 대로의 모습을 잘 살려낸 식당들도 늘어가는 듯 한데 이런 현명한 장사꾼들이 앞으로 더 많아지겠지.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서, 이태리의 경우 메뉴판 구성은 다음과 같은데 혹시 이태리 여행할 일 있을 때 익혀두면 식당에서 주문할 때 도움될테다. 대개 첫 페이지에는 안띠빠스띠(ANTIPASTI-전채들)라고 해서 식사에 앞서 간단히 즐기는 햄이나 치즈, 샐러드 등을 구성해 놓는데 치즈나 프로슈토, 또는 이를 적당히 섞어서 내놓기도 한다. 



다음으로 쁘리미삐아띠(PRIMI PIATTI-첫 번째 접시들)로 넘어가고 여기서 바로 파스타들이 등장한다. 스파게띠, 라비올리, 라자냐, 뻰네, 또르뗄리니 등, 우리에게 친숙한 그분들이 바로 여기서 각자의 기량을 뽐내시게 되고 퇴장해 주시면 바로 세꼰도삐아띠(SECONDI PIATTI-두 번째 접시들), 육류나 조류, 해물류 등의 기름진 식사가 올라와 주신다.

접시를 모두 비웠으면 후식을 먹을 차례, 디저트(DESSERT)로도 부르지만 때론 돌치(DOLCI- 앞서도 그렇고 단어 끝에 I가 붙는 이유는 복수형이기 때문. sweet의 이태리 말로 '단맛들'이란 뜻)라는 말로 대신하기도 한다. 띠라미수가 우리에게 친숙한 돌체(DOLCE-단수형)이고 이 외에도 다양한 케잌과 무스, 젤라또 등이 포진해 있다. 음료나 와인 등은 맨 뒷면에 있으며 식사 때 반주로 즐길 잔 와인의 경우 2.5유로에서 3유로, 한 병을 시키면 최소 12유로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봐야 할테고 적지 않은 식당은 별도의 와인 리스트를 갖추고 메뉴판과 동시에 제공하기도 한다.

그럼 이것들을 다 주문해야 하느냐?  아니다. 이날 우리가 주문한 메뉴를 보자. 먼저 물 한 병과(유럽 어느 식당이든 물 공짜로 안준다) 딱 3잔이 나온다는 화이트 와인 작은 병을 하나, 파르마 왔으니 프로슈토를 안먹을 수 없어서 살라미를 곁들여 주는 안티파스토 한 접시(첫 사진의 첫 번째 메뉴. 셋이 각자 접시에 덜어먹으면 됨), 그리고 쁘리미삐아띠로 파스타 두 접시(세 접시가 아님)를 시켜서 역시 각자 접시에 덜어 먹었다. 제법 저렴하게 먹은거지만 그래도 계산서에는 42유로가 찍혔다. 우리돈 6만원을 훌쩍 넘은 금액이다. 이거 원망할꺼면 유럽에서 밥사먹어선 안된다. 기분좋게, 맛있게 먹자.

그럼 테이블 위로 등장하신 선수들을 차례대로 확인해보자.

어느 식당을 가나 바구니에 빵은 공짜. 모양 그대로 '꽃빵'이다. 지역마다, 또는 식당마다 내놓은 빵의 모양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손쉽게 모양을 꾸며 개성을 과시할 수 있으니 왜 아니겠나?

식당을 나서는 순간까지 우리를 일본인으로 생각한 웨이터 총각이 물을 따르고 있다. 노양은 그런 그를 향해 '사요나라~' 라고 인사를 건네더라는..^^ 그녀의 재치에 한 표. 사실 우리도 그렇지만 심각한 오해를 사는 일이 아니면 애써 국적문제로 왈가왈부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말바시아'라는 품종의 스파클링 화이트 와인으로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식전에 즐기기에 그만이다. 역시 화이트는, 더욱이 스파클링 와인은 차게 마셔야 제격이다. 와인병답지 않게 생긴 미끈한 외관도 세련돼 보이고 가운데 베르디 선생님이 등장, 품격을 높여주신다. TERRE VERDIANE MALVASIA, '베르디의 땅에서 난 말바시아'라는 억지 해석을 내려본다.

안티파스토, MIXED ITALIAN COLD CUTS이 나왔지만 촬영이 한 템포 늦는 바람에 절반 이상이 비워졌다. 수퍼에서 싸게 파는(그것도 상대적일 뿐 결코 싸진 않다) 프로슈토의 경우 간혹 잡냄새를 내거나 비리고 질긴 경우가 적잖은데 그것들과는 쉽게 비교되는 맛이다. 잡내 없고 훨씬 덜 비리고 부드럽다. 염장한 탓에 이미 간은 베어 있으나 짜지 않아 좋고 입안에 한입 머금으면 돼지고기의 기름진 풍미와 산뜻한 허브향이 입안에 맴돌아 맛으로 양껏 즐기겠다면 지갑 꽤나 가벼워질테다. 얇게 저민 프로슈토와 살라메, 그리고 이름 까먹은 다른 종류이 햄이 살포시 접시를 덥고 있는 정도의 양으로 근수로 치면 100그램 좀 넘을까 싶은 정도.



참으로 야박하다 싶겠지만 잊지 말자. 안티파스토는 양으로 승부하는 접시가 아니라 식욕을 돋구기 위한 조연일 뿐이라는 점. 게다가 저 요리는 그 자체를 즐기기 보다는 대개 빵과 함께 즐기므로 그게 은근히 포만감을 준다. 한 가지 불편은 프로슈토가 얇으니 칼로 썰면 썰리는게 아니라 찢어진다는 점. 뜻대로 조종이 안되니 먹는 동안 어쩐지 내 꼴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는데 적절한 연장이 있어주면 좋을 듯. 주방 차원에서 먹기좋게 손질을 할 법도 하건만 종이처럼 얇게만 저밀 뿐 다른 추가 손질을 안한다는 점은 어쩌면 고급 재료를 있는 그대로의 맛으로, 혹은 속임없이 대접한다는 의도가 깔려있는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부지런히 먹고 와인 한 잔 머금어 주고..



안티파스토를 끝내자 새로운 접시로 교체된다. 없던 숟가락이 새로이 등장하셨는데..

바로 요놈 때문. 이제 쁘리마삐아띠(첫 번째 접시) 순서로 주인공의 이름은 SMALL RAVIOLI TYPE IN BROTH로 '육수속의 작은 라비올리' 정도 되겠다. 맛? 갈비탕집의 탕국물을 그대로 퍼 담은 국물에 치즈와 고기를 소로 품은 라비올리를 넣었으니 그 맛이 짐작이 되려나? 라비올리는 피가 단단히 물려져 있으니 소가 국물과 섞이는 일은 없다. 국물만 떠먹으면 의심할 여지없이 짭짤하고 진한 갈비탕이나 라비올리와 함께 떠먹으면 전혀 새로운 맛이 된다. 낯선 조화가 나쁘진 않았지만 사실 입안은 친숙한 갈비탕 국물맛으로 인해 라비올리의 맛이 자꾸 낯선 이방인으로 취급되는 형국이 돼버렸다. 그 모호함은 꽤 오래갔다.

이런 식의 맑은 수프로 즐기는 라비올리는 이곳 파르마가 속한 주(州) 에밀라 로마냐(EMILA-ROMAGNA) 지방에서 즐기는 별식이라고..


제법 친숙한 모양의 라비올리. 넓은 파스타에 돼지고기나 모짜렐라, 혹은 파마산 치즈를 섞거나 개별 소로 넣어 다시 파스타를 덮은 뒤 톱칼로 잘라내는 것으로 완성되는, 간단하고(?) 그래서 대중적인 모양의 라비올리 되겠다. 물론 요즘엔 우리가 가정에서 냉동만두를 사먹듯 이탈리아에서도 완제품으로 나온 라비올리를 사먹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지만 그 가격은 우리가 손쉽게 사먹는 만두 가격의 개념보다 훨씬 비싸다.


속을 살피니 연한 분홍빛의 소가 숨어있고 그 맛은 단호박. 그냥 단호박만이 아니라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배가시켜 줄 재료를 섞어 넣어 호박의 맛이 한결 진하다. 따라서 메뉴 이름 역시 SQUASH FILLED RAVIOLI (WITH ZUCCA), '으깬 호박 소를 넣은 라비올리' 되겠다. 이 맛이 친숙했던 이유는 베로나에 도착한 첫 날, 엔리코와 엘리자베타가 이끄는 식당에서 먹는 라비올리 역시 바로 이 맛이었기 때문. 

최근 텔레비전에선 PARMA 프로슈토 광고가 한창이니 그래서 더 친숙한 PARMA. 가게 진열대마다 자신들의 자부심을 자랑스럽게 걸어놓고 있다.

다시 거리로 나섰다. 퇴적된 시간이 촘촘한 돌사이에 이끼처럼 끼어있는 거리를 어슬렁 어슬렁 걸어 노양의 집으로 향했다. 5시만 되면 주위는 금새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것이 요즘의 이곳이다. 중세를 '암흑의 시대'이라고도 부르는데 5시만 되면 어두워지기 때문에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  허나 구름끼고 어두워지는 요즘을 보노라면 당시의 불길하고 음울한 정취를 느끼기에 딱 좋지 않나 싶고 그래서 이 때마다 묘한 판타지에 젖어보려 애쓰곤 한다. 그레고리 성가대의 낮고 으스스한 합창, 촛불을 밝혔으나 여전히 어두운 성당, 그 뒤로 보이는 예수와 그 아래 무릎꿇고 도열한 수도사들. 그리고 내일 있을 마녀 화형식에 쓰일 장작이 쌓여가는 소리 등등..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