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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16 칼 구입 Buying a kitchen knife 5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16. 07:56


안드레아의 이탈리아어 수업이 끝나고 곧바로 시내로 나갔다. 그간 '눈팅'만 하던 칼을 오늘은 꼭 구입할 요량으로 나선 것. 어제 우연찮게 발견한 시내의 주방용품 가게에서 63유로에 판매하는 도마 겸 칼집으로 구성된 5종 셋트 칼은 우리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중국산일까 싶어 물어보니 토스카나에서 만들었단다. 

허나 부엌 칼을 제외한 나머지 칼들이 앞으로 여정에 분명히 짐이 되리라는 우려와 이왕 구입하는 칼, 좀 좋은 것을 사겠다는 각오를 다진 마당에 5종 세트에 10만원에 겨우 미치는 가격은 어쩐지 품질을 의심케 했다(사실 국내에서도 그 가격이면 비싼 가격) 예쁜 아줌마의 친절한 설명 앞에 '우리도 이 칼이 정말 맘에 들지만 여행자이기 때문에 짐 고민이 되니 좀 더 생각해보고 오겠다'며 가게를 나와 좀 더 발품을 팔았다. 그게 어제 상황. 

그러니 오늘은 어떻게든 결정을 볼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시내로 직결되는 다리를 건너기 전, 고급스런 쇼윈도우가 우리 시선을 잡아 끈다. 디스플레이도 그렇고 취급하는 품목도 그렇고 풍기는 포스가 심상찮다. 꽤나 비싸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문을 열려고 하니 잠겨있다. 자세히 보니 문이 건물 오른쪽이란다. 문을 찾아걷는 걸음 치곤 한참이란 느낌이 들 정도로 걷고 나니 문이 나타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멋쟁이 아주머니가 다른 손님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다. 칼을 봤던 쇼윈도쪽으로 가려고 하니 가벼운 인사말로 우릴 붙잡는다. 칼을 보고 싶다고 하자 전화를 걸었고 이내 젊은 여성이 나타나 우리를 안내했다.

매장을 나가 마당같은 공간으로 가더니 다시 매장으로 들어서는 요상한 구조가 은근히 사람 기를 죽인다. 가게 안은 온갖 고급스러운 식기와 주방 인테리어 용품으로 반짝인다. 한쪽 코너에 칼이 눈에 들어왔다. 점원은 그 가운데 하나를 찍어 권해준다. 나뭇결 같은 무늬가 칼에 새겨져 포스가 좔좔 흐르는게 범상찮은 칼, 가만 보니 한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 일본제품임을 암시했다. 근데 한쪽엔 Henkel이라는 영문도 새겨져 있으니 헷갈린다. 헨켈이라면 독일의 이른바 '쌍둥이'칼 아니던가? 헨켈에서 일본 컨셉으로 만든 제품이겠거니 나름 정리하고 가격을 물으니 185유로란다. 칼 한 자루에 30만원, 우리가 각오한 선을 넘어도 훨씬 넘었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른 칼로 관심을 돌렸다. 좀 더 낮은 진열대에 있는 칼을 집어들어 보니 적당해 보인다. 가격을 물으니 56유로란다. '그렇지! 우리가 찾는 건 바로 이런 거라고!' 칼을 붙잡고 한참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그녀가 알아들을 수 없는 유창한 한국말로 강양과 의견을 주고 받았다.

다 좋은데 두 가지가 걸렸다. 하나는 칼이 다소 작게 느껴진다는 점과 또 하나는 시내에 있는 FAZZINI라는 제법 고급 주방매장에도 한 번 가봐야 한다는 점이었다. 사실 그간 시내를 산책하며 쇼윈도로만 접해왔던 FAZZINI였기 때문에 오늘은 매장에 들어가 그곳의 칼을 둘러보겠다는 다짐이 이미 있었다. 결국 가게를 나서 파지니로 향했다. FAZZINI의 가격 역시 터무니없이 비싸다면 당연히 이 가게로 와야한다


도착한 FAZZINI, 좀 전에 봤던 가게보다 한결 숨통이 트이는 분위기다. 벽 한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칼이 대번에 눈에 들어온다. 우리를 본 점원, 선뜻 나서질 않는다. 우리가 외국인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가 영어가 능숙치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도 능숙치 않긴 매 한가지..



아무튼 간섭이 없으니 편안하게 칼들을 훑어본다. 가격은 과연 어떨런지.. 이왕이면 마늘을 빻을 수 있게 손잡이 밑이 평평한 칼을 찾아보지만 유럽에서 그런 칼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하는 수 없다. 먼저 좌측열 위에서 두 번째 칸 오른쪽 열의 중앙에 있는 칼을 요청해본다. 조심스레 건넨 칼을 받아 이리저리 살펴보니 칼과 손잡이로 이어지는 부분의 접합이 좀 걸린다. 취향의 문제 이전에 접합부의 마무리가 야무지지 않다면 오랜 사용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위생상으로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가격을 물으니 24유로. '엥? 싸네?'

다른 칼들에 대한 자신감이 솟았다. 이번엔 좀 오래 살피다가 역시 같은 칸, 맨 왼쪽에서 두 번째 칼을 요청한다. 방금 본 칼과 달리 유난히 반짝인다. 표면이 거울처럼 광택이고 칼 목이 길게 뻗어 구조상으로나 위생상으로나 믿음이 간다. 클래식해 보이는 손잡이도 맘에 들고 전에 들렀던 매장에서 본 칼에 비해 묵직한 느낌이 전해오는 것이 드디어 임자를 만나는 느낌. 가격을 물으니 70유로!  '읔..' 


피차 영어가 딸리니 길게는 못묻겠고 생산회사와 생산지를 묻자 상표는 FAZZINI니지만 제조사는 DELBEN이라는 회사고 지역은 슬로베니아에서 멀지 않은 북부의 PORDENONE라는 지역이란다. 추측컨데 주방전문매장인 FAZZINI가 DELBEN에 일종의 OEM방식으로 기획상품을 의뢰했고 이를 지역 매장별로 주문제작해 결국 ANASTASIA란 품명으로 나온게 아닌가 싶다. 칼이라면 DELBEN도 이태리에서 나름 알아주는 브랜드이니 품질에 신뢰가 간다. 이걸로 결정하기로 하고 이번엔 와인 오프너를 찾아본다. 

서툰 영어지만 점원은 친절하다. 진열장을 열어 보여주는 오프너는 이미 몰타에서 사용하던 날개펴지는 오프너. 저렴하다며 보여준건데 우리가 찾는 것은 휴대하기 좋게 작은 오프너라 설명하자 그는 대번에 "아, 소믈리에"라 외치며 우리가 찾는 것을 보여준다. 진열장에 가지런히 전시된 오프너는 프랑스에서 제조된 것이고 가격도 제법 고가. 디자인도 우아하고 대리석인지 상아인지 아무튼 빛깔좋은 외관으로 마무리된 것이 비싸보인다. 좀 더 싼건 없냐고 하자 몇 가지를 보여주는데 그 가운데 고른 놈이 바로 이거다.

저렴하다는 가격이 28유로. 칼을 포함하니 거의 100유로, 우리가 각오한 금액을 살짝 넘어선다. 더 이상 주저할 수는 없다. 두 개의 상품을 선택했고 계산을 요청하니 점원 왈 "8유로는 깎아줄께요"  '엥? 요구하지도 않은 에누리라니?' 아무튼 깎아준다니 기분은 좋다. 아무래도 오프너의 가격에서 좀 빼주는게 아닐까 싶다. 품질을 믿고 오래오래 쓰자는 각오로 지출한 돈이니 아깝지는 않다. 


혹시 칼집이 있냐고 물으니 그냥 두꺼운 종이 반 접어 딱풀로 붙인듯한 것이 유일한 칼집이란다. 칼 들고 다닐 일 많지 않으니 요란한 상자야 필요 없겠지만 70유로짜리 칼에 대한 서비스치고 넘 심하다 싶다. 뾰루퉁해진 마음, '껍데기에 연연하지 말자' 다스리면서 가게를 빠져나왔다.



사진에서 보듯 요리에 관심있는 이라면 FAZZINI는 오래도록 찬찬히 둘러보기 좋은 공간이다. 주방에서 펼칠 창작의 즐거움을 한껏 돋궈줄 진기하고 유용한 연장들을 한가득 갖추고 있기 때문인데 김군이 탐낸 것은 아래 제품.


프로슈토 슬라이더.



강양의 완소, 에스프레소 머신.
바람일 뿐 어쩔수 있는 것은 없다. 특히 프로슈토 머신은 프로슈토가 없으면 아무짝에 쓸모도 없다. 아, 차돌박이 썰때 쓰면 좋겠네. 국내엔 주방에서 사용할 용도로 나와있는 제품은 못본거 같은데 하나 있으면 좋긴 하겠구지만 과연 냉동고기도 썰어낼 수 있을까? 지금은 쓸데없는 걱정.

마음은 풍요해졌으나 지갑은 허해진 오후, 아래 사진으로 포스트를 마무리하자. 잭팟이라 쓰인 팻말을 보라. 


88,200,000유로. 계산해보니 한화로 1천5백억원, 그렇다. 이번 주 로또 당첨누적금액이다. 뉴스에서도 이 소식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몇 회째 당첨금이 이월되어 현재의 금액에 이르고 있는 것. 이탈리아의 로또는 우리처럼 6개의 번호를 고르지만 선택 범위 수는 우리의 딱 두배인 1~90까지다.

금액은 우리보다 조금 저렴해서 '한 게임'에 50센트, 즉 850원. 한국에서 지지리도 없던 행운, 이곳이라고 다르겠냐만 재미삼아, 경험삼아 어깨너머로 주변 사람들 요령을 살핀 뒤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1유로치 긁었다. 터질까? 파지니 칼이 아니라 파지니를 살 수 있겠네. 미래의 공상도 즐겁고 앞으로 두꺼운 무 썰때 스테이크 칼로 찌질거리지 않아도 돼 기쁘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