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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1. 9. 20:21

1박2일의 PARMA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그저께 밤에 돌아왔다. 어제는 그 피곤함 때문에 아침에 성당에서 마련한 이탈리아 수업도 빼먹고 꼼짝없이 집에만 머물렀다. 무사히에 방점을 찍은 이유는 도착은 했으나 그 여정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 파르마에서 만난 노양의 극진한 환대에는 그녀가 우리를 위해 배터지도록 선보인 요리와 그녀에겐 이젠 필요없어진 전기장판과 한국산 먹거리들, 그리고 볼로냐 발 베로나 행 열차티켓도 포함돼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노양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

다음날 아침 11시, 귀국짐을 이끌고 밀라노행 기차를 타야하는 그녀와 함께 집을 나와 파르마역에서 작별인사를 나눈 뒤 우리도 기차에 올랐다. 행선지는 베로나가 아닌 볼로냐. 파르마에서 베로나로 직행하는 기차는 없고 아랫동네인 모데나까지 좀 더 내려가 갈아탄 뒤 다시 베로나로 올라가는 시스템인지라 이왕 그렇다면 좀 더 아랫쪽인 볼로냐까지 내려가 거기서 노양이 우리에게 선물로 준 티켓으로 올라가 경비를 다소나마 줄이자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혹시 환승시간이 좀 남는다면 볼로냐를 잠깐 둘러보는 것도 좋지 않은가? 이탈리아 북부의 정중앙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만들어낸 독특한 환경은 먹거리에도 영향을 끼쳐 이곳만의 독특한 식문화를 가꿔가고 있을꺼라는 근거없는 기대도 볼로냐 행을 거든 배경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볼로냐에 도착해보니 다음 베로나행 기차까지 주어진 시간은 고작 30분. 이왕 왔는데 역 밖까지는 나가보자해서 길을 건너 웬 길거리 중고책 좌판이 크게 열렸길래 그 구경을 잠깐 하고 다시 역으로 돌아왔다. 사실 앞서 파르마에서 볼로냐로 올 때 기차가 이미 30분을 연착해 미리 나와있던 시간 30분을 더해 1시간을 꼼짝없이 서서 대기해야 했던 경험이 끔찍했던지라 열차 출발 몇 분을 남겨놓고 역으로 돌아온 거였는데 베로나로 떠나는 기차가 있어야 할 3번 플랫폼에는 베네치아 행 기차가 버티고 있는게 아닌가?

우리 기차가 1시 48분 기차인데 베네치아 행이 46분 출발이라면 벌써 떠났을리는 없고, 그렇다고 2분 간격으로 같은 자리에서 열차가 떠난다는 것이 어째 논리적으로 가능해 보이지 않고 전광판을 보니 48분 베로나행 열차가 곧 출발한다고 경고등이 깜빡거리고 있고.. 뭔가 큰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사람들을 붙잡고 진상파악에 나섰지만 마음속은 '아뿔싸, 늦었다'!는 직감이 전해졌다.

진상은 이랬다. 볼로냐가 내륙의 중앙이다보니 나름 교통의 요지여서 한 자리에 중앙역과 서부역이 함께 있는 시스템이었던 것. '3W'라는 표시를 마냥 3번 플랫폼이라고만 판단했던 우리의 불찰이었다. 그게 '서'(West)의 사인이었을 줄이야.. 겨우 길을 확인한 뒤 전력질주로 지하도를 거쳐 서부역에 도착했으나 기차는 이미 떠나고 플랫폼은 쓸쓸한 바람에 휴지조각만 뒹굴고 있었다. 아.. 그 허망함이란.. (그 망할 연착은 이럴 땐 또 없단 말인지..)

다음 기차를 찾아보니 저녁 6시 37분이란다. 거진 5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하는 상황. 이왕 이렇게 된거 볼로냐 시내 구경이나 하자고 위로하지만 짐도 만만찮았고 파르마의 노양 집을 나설 때 어차피 기차만 갈아타면서 곧바로 집으로 갈테니 개인위생정비는 집에가서나 하자고 생각해 간단히 세수만 마친 덕에 몰골이 다소 추레한 상태였으니 이것도 여간 신경 쓰이는게 아니었다.


>> 앞서 사진에서 봤듯 30분 사이에 책도 구경하고 피자집서 피자도 한 조각 사먹고.. 그 사이 기차는 떠나고.. 


허나 어쩌겠나? 등 떠밀리듯이 거리로 나설 수 밖에는.. 볼로냐에 대한 간단한 인상기로 마치자. 두터운 구름과 스산한 바람이 허망한 우리의 가슴속을 파고들었지만 중앙 거리의 넘쳐나는 인파는 곧 우리의 시선과 신경을 사로잡았다. 회랑식의 길고 긴 거리(결코 비 맞을 일 없는 이런 식의 길은 주변의 골목까지도 이어지며 그때문에 길은 전반적으로 어둡다. 그런 분위기 탓에 인적없는 골목에선 오랜 시간의 자취를 더듬기에 안성마춤이다), 오른쪽으로는 자잘한 상점들이 쇼윈도를 밝히고 있고 왼쪽은 어설픈 좌판과 거리 공연가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오가는 사람을 피해 걷느라 사색에 젖기 힘든 것이 다소 불편했지만 거의 1km에 이르는 길이는 끊어지는 필름처럼 길 위의 단상들을 겨우겨우 연결시켜 줬다.

베로나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알콩달콩(?) 사랑얘기가 쓰어진 무대였던 만큼 현대에 이른 모습은 그 명성에 힘입은 관광으로 부를 축적한 관광객을 위한 도시같은 느낌, 이를테면 '보여지기 위한' 도시로써 애쓰는 느낌이라면 볼로냐는 시끄럽고 냄새나고 어수선한 것이 오히려 이게 사람사는 곳 같다는 편안함을 줬다. 파르마도 부분적으로나마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규모면에선 역시 볼로냐가 한 수 위다. 파르마 집값이 싸다면 옮길 용의가 있다는 얘기를 노양과 주고받았지만 볼로냐도 싸다면 아마 볼로냐를 선택할 것 같다는..^^ 그런 볼로냐를 방문하도록 기회를 마련해 준 노양에게 다시 한 번 감사. 그녀의 진수성찬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역시 곧 정리해 올려야겠다.


>> 볼로냐 역 앞 횡단보도. 길거리 책좌판 광장으로 가는 사이에 찍은 것으로 이후 정작 볼로냐 시내 구경에 나섰을 때는 카메라 밧데리가 소진돼 시내 사진이 없다. 다시 방문하겠다는 의지를 다지지만 과연 저 길에 다시 설 수 있을까?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