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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08 로이, 요커, 소니아, 마크스, 그리고 김, 김, 김.. 4

로이와 요커는 홀랜드에서 온 남녀다. 요커는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고 좀 더 높은 수준의 공부를 위해선 영어가 필수적인 관계로 학원을 찾았다고 했다. 로이 역시 영어가 필요해 왔겠지만 무엇 때문인지는 기억 안난다. 소니아는 정열의 나라 스페인에서 온 20대 초반의 여자인데 치아교정기 때문에 낯선 사람들 앞에서 속시원히 웃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어제 밤에 라면을 먹진 않았겠지만 어쨌든 얼굴이 좀 퉁퉁 부어 보였다. 마크스는 다른 반에 배정됐다가 그곳 수준이 자신에겐 다소 높다는 판단에 따라 하향지원을 한 신념가다. 그는 독일에서 왔고 의자를 만든다고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한국에서 온 들이다. 김군까지 포함하면 무려 4명의 한국인에 라스트 네임이 씨인 사람이 4명이다. 재미보다는 끔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학원측의 반 배정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지만 첫 날이니 잠자코 수업을 경청했다. 앞서 밝혔다시피 나의 리스닝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절감케 한 시간이었고 특히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한 자리인 만큼 이만저만 긴장된 게 아니었다.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는 요커가 새파란 눈을 치켜뜨고 반에서 가장 훌륭한, 그리고 정확한 발음과 문장으로 내게 Where are you from을 물었고 나는 반에서 소니아 다음으로 형편없는 발음으로 Im from Korea라고 답했다. Korea는 너무 천편일률적이라 I came from Il-san in Korea라고 답할까 잠깐 생각했었으나 그렇게 되면 낯설기만 한 Il-san이 혹시 요커의 호기심을 자극할까 순간 걱정이 됐고 결국 천편일률을 택했다.

 

초급자들을 떠맡은 캐서린은 몰타 출신의 영어 선생이다. 60대를 바라볼 나이로 추측되는 그녀의 영어 발음은 오늘 인터넷을 설치해주고 돌아간 기사 아저씨보다 결코 낫지 않았다. 몰타의 모든 학원들이 모든 수업을 영국식 발음으로 진행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은 바 있었다. 몰티즈나 영국인이나 인종적으론 모두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닮아 있으나 언어적으로는 아무래도 이탈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아 된소리의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캐서린도 이에 속했고 그 경향이 기대하지 않게도 뚜렷했다.

 

반면 강양을 지도하는 Julie의 발음은 영국 본토에 가까운 발음을 구사한다고 한다. Job~이라거나 Not~옷이라거나..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녀는 런던의 구질구질한 날씨와 지중해 햇살을 맞바꾼 잉글리쉬이기 때문이다. 레벨1과 레벨2의 수준 차이는 종이 한 장일 수도 있으나 그 현실은 이처럼 다르다.

 

아무튼,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동안은 바보로 살아가야 하는 답답함을 참아야 할 테다. 별 수 없다. 그저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외우는데 장사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돌파해 볼 생각이다.

하지만 정작 걱정되는 문제는.. 혹시라도 뒤늦게 문제는 결국 내가 바보라는 거야 를 확인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지금 막 나가려는 '웰컴 파티'는 어쩌면 그것의 힌트를 줄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