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1. 14. 19:00


 


한국을 떠나기 전, 직장동료가 사무실서 꿍쳐놓고 먹던 프룬을 뺏어먹곤(?) 했던 기억이 나는데 쫄깃하고 덩어리 큰 과육이 달콤하기까지 해서 속으로 '이런 별스런 먹거리도 있군' 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집앞 수퍼에서 1kg에 5천원의 저렴한 가격에 사다가 배불리 먹고 있는데 멀리 배타고 대서양을 건너온게 아닌 모데나에서 봉고타고 100km를 달려 온, 요즘같은 글로벌 교역이 일반화된 처지에서 보자면 한 마디로 동네 과일이다. 쫄깃하고 달콤한 녀석이 씨가 들어있어 그게 좀 불편했는데 달리 보면 그만큼 가공을 덜 거쳤다는 얘기 아닌가? 헤어지는 그날까지 열심히 먹어주리라 다짐한다.


최근 쏟아져 나왔던 청포도의 경우도 아무리 멀리서 온것이라봐야 시칠리아고 그나마 장시간 여행으로 피곤한 과일이라면 여기서 재배가 쉽지 않은 바나나나 파인애플이 전부다. 그 외 그때그때 판매하는 버섯이나 양상추, 감자, 피망 등의 일상채소는 대부분 도시를 조금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밭에서 캐온 것이 대부분이니 이같은 신선 재료를 매일같이 접하는 주부들로선 재료를 한꺼번에 사다놓고 묵힐 이유가 없다. 매일같이 장바구니를 들고 나와 물건을 보고 만지고 냄새 맡아본 뒤 껍질콩 한 움큼, 버섯 한 움큼, 루꼴라와 파슬리 한 다발씩, 토마토 5개, 콜리플라워 작은 걸로 한 통 사면 그만이고 실제 이런 식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매장에는 50km 떨어진 바르돌리노산 와인이 쌓여있고 100km 떨어진 파도바산 살라메가 가공식품 코너를 채우고 있어 지역 안에서의 생산과 공급, 소비 체제가 비교적 튼실하다 하겠는데 그 비결은 또 뭘지 궁금해진다.) 

베로나도 그렇지만 이태리 도시 어디를 가든 사는 곳 가까이에는 풍성한 녹색 채소와 붉은 빛의 과일을 파는 가게를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다못해 COOP이나 PAM 따위의 수퍼마켓일지라도. 도시를 살짝 벗어나기만 하면 포도밭, 시금치밭, 호박밭, 양배추밭, 밭밭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베로나가 속한 베네토주(州)나 바로 아래 파르마가 속한 에밀리아 로마냐주(州)의 경우 롬바르디아 평야가 해마다 쏟아내는 과실의 혜택을 직격으로 받는 동네다보니 식탁이 빈곤할 수가 없다. 

상공업이 발달한 북부가 이러니 농업이 산업의 주요 기반인 중남부의 경우는 말해 뭣할까? 우리가 흔히 이태리 요리를 말할 때 그 맛과 솜씨에서 북부보다는 남부를 쳐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 특히 북부 사람들도 인정하는 이야기니 만큼 오늘날 인정받는 이태리 요리의 명성이란 남부의 투박한 손맛이 만들어낸 결실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테다. (같은 반도국가로 우리와도 닮은 점이 많다)
 
하지만 여기엔 아픔이 있다. 이탈리아 남부는 북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되고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하다는 사실. 한국사람들도 얼추 아는 사실일 뿐더러 우리와도 쏙 닮은 점인데 남부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상대적 박탈감은 단지 맛있는 음식 하나로 위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닐테다. 전에도 얘기했다시피 남부 칼라브리아주(州)의 어느 마을의 경우 연간 소득이 640만원에 그쳤다고 하고 유럽 통화당국을 골치아프게 만드는 위조지폐의 온상 가운데 하나가 이태리 남부 풀리아(州)라는 사실은 이들이 처한 어려움을 암시하는 단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허나 비록 공치사긴 해도 여전히 오늘의 이탈리아를 요리의 강국으로 지탱케 하는 힘은 여전히 이들에게 있다. 빈한한 시골, 냄새풍기는 농가더라도 자식의 자식을 거쳐 집안 대대로 이어오고 있는 맛의 전통은 세계인들에게 매혹을 선사하고 있고 적잖은 이들이 이들의 자취를 밟아보기를 자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을 넘어 세계 요리계의 재간둥이가 된 제이미 올리버 역시 이들속으로 들어가 견문을 넓히고 자신의 요리 기량을 검증(?)받았는데 그 경험은 한 권의 요리책으로 이미 엮여져 나와있다.

이 책의 서문을 보니 제이미는 이태리 요리가 세계적인 요리로 거듭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는데 그의 관점을 의역을 섞어 옮겨보면,

"이탈리아에 가보면 왜 이탈리아 요리가 세계적일 수 밖에 없는지 알 수 있는데 질 좋은 땅, 천혜의 기후 외에도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사람들이 농사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에서 노동자 계급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갖는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근데 나는 오히려 선택이 많아지면 진짜 중요한 뭔가를 잃게 된다고 생각한다. 가족과 전통이 그렇다. 

올리브 수확철이 되면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노인들도 올리브 따기에 나선다. 하루 평균 1인당 100kg의 올리브를 수확하는데 이들은 올리브 수확의 댓가로 6리터 정도의 신선한 올리브를 얻어간다. 영국에서라면 노인이 노동에 나서는 건 상상도 할 수 없고 더욱이 돈이 아닌 기름을 댓가로 받아간다는건 더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이탈리아는 아이슬란드,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 장수국가다. 이들이 기름진 식사와 단 음식을 매일같이 숭배함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적당한 노동과 충분한 채소 섭취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결국 의도하지 않게도 옛것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이런 뜻하지 않은 명성과 건강한 삶을 가져다 준 것이란 얘기일 수 있겠다. 물론 상대적 빈곤에 대한 이들의 불만은 여전히 존재한다. 허나 제이미는 이들의 불가피한 현실을 언뜻 안타가워 하면서도 그 결과로 영국에는 없는 전통과 삶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한없는 존경과 부러움을 보내고 있음에 분명한데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단지 밀가루와 물, 계란만으로 그 수 많은 종류의 파스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들은 천재들이다! 그리고 당신 그거 아냐? 난 이탈리안의 피를 갖고 태어났어야 했다! 왜! 도대체 왜 나는 사우스엔드 바닷가에서 태어났냔 말이다! 그렇다고 나의 조상을 탓하는건 물론 아니지만.."



담배 문 이탈리아 아저씨들과 그 앞에서 어쩐지 엉거주춤한 제이미의 자세가 인상적이다. 이들에게 제압(?)당했단 얘기겠지. 사진의 물고기가 지중해의 대표적 생선인데 우리는 몰타에서도 먹었고 이곳에서도 먹고 있다. 이름? 하도 낯설어서 기억 못하겠지만 돔류임엔 틀림없을 터. 염장해 말린 뒤 약불에 오래익혀 쫀쫀해진 살을 발라먹거나 아니면 역시 말린 놈은 새우젖 넣고 매운고추 썰어 넣어 끓여 밥과 함께 먹으면 그 맛이 또한 일품이다. 이탈리아식 요리는 과연 어떤 것일지.. 시칠리아를 꼭 가봐야겠군.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