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마드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10.30 토리노 슬로푸드 축제 이야기 (1) Slow Food Festival in Torino 10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30. 10:07


안드레아의 이탈리아 수업을 마치고 나니 진이 다 빠진다. 거진 70%는 못알아 듣고 나머지 30%는 순전히 눈치로 진행되는 수업. 들어도 들어도, 외어도 외어도 혼란스럽기만 한 동사변화 앞에 사기가 꺾인다. 

5박 6일의 토리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뒤 강양은 비실 거리더니 그 틈을 놓칠세라 감기께서 방문하셨다. 마침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오전엔 온수보일러도 고장났었으니 감기에겐 호조건. 약 몇 알로 쫓아보려 하는데 어떨런지.. 인근 채소가게에서 제법 큰 걸로 한통에 2,500원 하는 배추를 토리노 가기전에 사다놨는데 여전히 씽씽해 오늘은 배추국이나 푹 끓여서 고춧가루 팍팍 뿌려 뜨끈한 밥에 말아먹어야겠다. 몰타에서 다시멸치가 똑 떨어진 탓에 그저 된장만 풀어 끓여먹는 배춧국. 구수한 국물맛의 아쉬움을 뭘로 채워야 할까 고민하다 밀라노에서 사온 새우젓을 생각해냈다. 그놈이면 맛이 좀 우러나겠지. 원래 김장철 배추국에는 새우젖을 넣어 간을 보기도 하지 않던가? 


>> 배추가 정말 싱싱하다.

올해에는 슬로푸드 축제가 열리지 않는걸로 우리는 알고 있었다. 베로나 시내의 한 BAR에서 스쁘릿츠를 마시며 베로나 일간 L'Arena를 무심코 뒤적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금쪽같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행사가 끝난 뒤 그 소식을 이태리 TV에서, 혹은 한겨레 ESC에서 고나무 기자가 쓴 기사로 접했다면 우리는 한동안 깊은 절망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참으로 아찔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휴.. (참고로 취재 온 한국언론은 한겨레가 유일)



>> 바로 이 신문. 안드레아 말로는 형편없는 신문이라고.(조중동쯤 되나?) 

이번 토리노 슬로푸드 축제가 우리에게 남긴 경험은 눈부시도록 값지다. 눈으로 보고 맛보고 들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행사를 즐기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했음은 물론, 몇몇 프로듀서, 즉 생산자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면서 우리만 준비되면 언제든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일상속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게 된 것이 그렇다. 더불어 축제에서 얻은 깨달음과 감동은 오래도록 지속될 듯 싶다.


                                                                             +++


곳곳에서 프로슈토와 살라미가 넘쳐났지만 앞서 소개한 대로 프랑스 남부에서 온 가족이 판매하는 살라미와 프로슈토는 특유의 잡내도 없고 아주 맑은 맛을 내는 것이 감동을 자아냈다. 돼지의 품종은 흑돼지로 넓은 들판과 우리를 오가며 자유롭게 자라고 특이한 것은 허브를 먹인다고. 살라미를 만든 아저씨, 말이 필요없다는 듯 살라미를 썰어 우리 손에 안긴다. 하얀 지방이 눈처럼 촘촘히 박힌 얇은 살라미를 혀 위에 올려놓으니 거짓말 조금 보태 그냥 사르르 녹았다. 어딜가나 흑돼지는 맛이 좋은가 싶지만 이 집의 살라미는 수많은 참가부스의 다른 곳들과 비교해 정말 압도적이다.  

>> 사진은 이탈리아 살라미

살라미는 우리가 피자 위에 올려먹는 바로 그 얇고 동그란 소시지다. 우리는 주로 익혀먹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 자체를 얇게 썰어 와인과 함께 즐긴다. 와인 한 모금, 살라미 한 입. 한국에서도 와인소비와 더불어 점차 그 맛을 아는 이들이 늘어갈텐데 좋은 와인과 더불어 이 처럼 좋은 안주를 곁들인다면 깊은 술맛이 한층 더 깊어질 테다. 부산에서 와인으로 일을 벌이려는 지인에게 꼭 연결시켜주고 싶은 농장이다.  


>> 이 사진 역시 언급한 내용과는 동떨어진 사진. 근데 애도 맛있어 보이네.

토스카나 아레쪼(AREZZO)의 앙기아리(ANGHIARI)에서 온 20대 청년은 1880년부터 집안 대대로 전수되고 있는 손맛을 이어받아 할머니가 만들던 솜씨가 깃든 파스타를 들고 나왔다. 할로겐 조명을 받아 더욱 빛을 발하는 노란 색의 파스타가 단박에 시선을 잡아 끌고 먼 옛날 할머니가 사용했을 당시의 낡은 주방도구들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아 호기심을 자극한다. 벽면에는 중세의 고성이 고스란히 남은 시골 사진이 걸렸는데 그곳이 자기네 동네라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종이접시에 담아 맛보이는 것은 손가락 반마디 크기의 귀여운 복주머니같은 파고띠니(FAGOTTINI). 안에는 돼지고기와 치즈, 그리고 비법의 재료가 들어있고 뜨거운 물에 삶아 올리브유에 살짝 볶아내면 그만이란다.


>> 바로 이놈. 뜯어서 끓는 물에 삶은 뒤 올리브유에 볶아먹으면 그만.

이쑤시개로 콕콕 찍어가며 맛을 보니 오호.. 쫄깃한 식감의 피와 안에서 퍼지는 고기와 치즈의 조화가 고급스러우니 아주 좋다. 촬영을 마친 뒤 집에서도 요리해 먹고 싶어서 구입하려는데 두 팩을 척 담아 선물이라고 건넨다. 살짝 예감은 했지만 한치의 주저함도 없는 행동.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이탈리아가 좋은 이유다. ^^ 라비올리, 토르텔리, 스파게티, 라자냐, 왠만한 파스타는 모두 취급하니 파스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러 가기에 아주 적절한 곳이라 생각되는 곳. 언젠가 가보지 싶다.


2년 전, 김군은 스위스 남부의 LUGANO로 출장을 다녀왔었다. 이탈리아와 가까운 탓에 말도 이탈리아말을 쓰고 방송도 이탈리아 공영 RAI를 본다. 음식문화야 말해 뭣하랴. 이때 프로슈토를 처음 맛봤는데 뭣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새하얀 돼지비계로만 된 프로슈토. 그걸 'Lard'라고 하는데 그 자체로 기름덩어리지만 입안에서 천천히 굴리면 살살 녹으면서 은은한 맛을 낸다. 이 또한 와인과 궁합이 좋다.


>> 저렇게 붉은 살점이 섞인 것이 아닌 진짜 새하얀 비계다. 현장의 비슷한 사진으로 대체.

잠시 무료함에 젖어 있던 LARD'd Muncale 부스는 바로 이 돼지비계 프로슈토 집이다. 콧수염 아저씨가 우리를 붙잡아 끈다. 강양이 호기심을 보인 탓인데 나름 이쁘게 말아서 시식용 접시에 담아놓은 것을 이쑤시개로 콕 찍어 건넨다. 그 맛을 아는 김군만이 덥썩 입에 넣고 맛을 보는데 부드러움은 여전하고 튀는 맛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래서 더 좋다. 영어를 못하는 아저씨는 우리가 금새 자리를 뜰까 초조한 듯 끊임없는 제스춰로 우리를 붙잡은 뒤 부스 안쪽에서 뭔가를 하고 있던 다른 동료를 연신 부른다. "삐에뜨로! 삐에뜨로!"

이윽고 삐에뜨로씨 등장. 물기젖은 손을 앞치마로 서둘러 닦으며 나온 그는 영어를 하지만 서툴기는 마찬가지다. 엉금엉금 삐에뜨로씨의 설명이 이어지지만 콧수염 아저씨의 바디랭귀지는 삐에뜨로씨의 설명을 앞서간다. 자신이 영어를 잘 하거나 우리가 이태리어를 알아들었으면 좋겠지만 어느 것에도 들어맞지 않는 상황. 콧수염 아저씨는 답답함에 제스쳐가 더 커졌고 그 심정이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콱 막혀왔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비계덩이가 삐에뜨로씨와 콧수염 아저씨에겐 큰 자부심이라는 점.

삐에뜨로씨에게 그냥 속시원하게 이탈리아어로 설명해달라고 했고 그거 잘됐다는 듯 이탈리아어가 스피디하게 쏟아져 나왔다. 뭔 소린지 하나도 못알아 들었지만 가슴에 막혔던 뭔가가 뚫겨 나가는 느낌. 삐에뜨로씨와 콧수염 아저씨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촬영을 마치고 자리를 뜨려니 콧수염 아저씨, 포장판매하는 주먹만한 돼지비계를 봉지에 담아 건넨다. 이런 경우가 몇 번 더 있었는데 이탈리아 사람들, 특히 농사를 짓거나 시골에서 온 사람들의 인심은 우리나라의 시골장터 인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카메라를 들고 설치는 만큼 그 앞에서 계산된 행동도 있었겠지만 그래봐야 호기심과 재미일뿐이라는 점을 서로 알기에 그 순박함이 깎여나가진 않는다.  


>> 손님들에게 열심히 프로슈토를 잘라 제공하고 있는 한 부스.

맛있는 음식도 있었지만 입맛에 맞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푸른 곰팡이가 핀 고르곤졸라 치즈, 이른바 블루 치즈는 특유의 꼬리함 때문에 오랜 습관이 들지 않으면 그 맛을 즐기기란 쉽지 않은데 산양치즈에 비하면 이는 엄살일 뿐이다. 화장실 옆에서 서성이다 치즈부스의 한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고 외면하기 힘들어 치즈 한 점을 콕 찍어 먹었다. 

어으.. 참으로 형언하기 힘든... 사실 맛 보다는 향기가 악몽인데 여물통의 악취를 농축해낸 것이 바로 산양 치즈의 맛이  아닐까? 청국장, 또는 홍어를 접하는 외국인들이 이런 심정이겠지 싶은데 내 짐작으론 그것을 훌쩍 넘는 쇼크였다. 


>> 사진중에 산양치즈가 섞여 있을까? 모르겠다. 행사장의 다른 부스에서 한 컷.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