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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15 유로 2008

유로 2008의 광풍은 이곳 역시 영향권에 두고 있다. 코딱지만한 나라가 자국 리그나 팀을 갖고 있을리 만무하지만 이탈리아나 잉글랜드를 이들은 모국팀처럼 응원한다. 몰타에는 이 두 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이 섞여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잉글랜드는 초반부터 탈락해 이들에게 큰 아쉬움이겠지만 다행히 이탈리아가 남아 있다는 점이 이들에겐 희망이다. 그러나 로마의 후예들도 지난 두 번의 경기에서 '작살'이 나다시피 해서 탈락 위기에 몰려있으니 유로 2008 경기를 바라보는 이들의 심정은 이래저래 착찹하기만 하다.

강양반에서 함께 수업을 듣고 있는 Aldo는 이탈리아에서 온 40대 남성이다. 작은 키에 어딘가 이탈리아인 특유의 음흉함이 묻어나는 그는 유머와 재치로 수업의 흥을 이끌어나가는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해서 모든 학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귀염둥이(?)기도 하다.

지난 첫 번째 경기에서 이탈리아가 네덜란드에 3:0으로 대패한 다음 날, 수업 시작에 앞서 학생들 사이에는 전날 축구 결과를 소재로 Small talk가 오갔다. 그리고 홍콩에서 온 에이드리안은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을 알도에게 던졌다.
"어제 축구 봤냐?"

그러자 알도의 반응은 이랬다.
"축구? 어제 축구 있었니? 이런.. 나만 못 봤군"
예상치 못한 반응에 모두들 살짝 놀라기도 하고 실망감이 스쳐지나갈 즈음, 선생인 조세핀이이 알도를 바라보며 폭소를 터뜨렸다. 전날 경기 결과가 너무나도 참혹했던 나머지 그가 능청을 떠는 거라는게 조세핀의 지적이었다.

그제서야 알도도 머리를 감싸쥐며 믿을 수 없는 어제 경기의 결과에 대해 순순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래, 질 수도 있어, 내가 다 이해한다구. 근데 어떻게 3:0으로 질수 있냐는거야? 난 그 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모두 알도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한편 재밌어 죽겠다는 웃음을 저마다 삭이느라 애먹었다. 역시 알도는 참 재밌는 이탈리아 친구라는 생각들을 하면서. 같은 시각, 어느 반의 네덜란드 친구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입안 가득 안고 있었을 것이다.

거리의 펍과 카페에는 저 마다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놓고 손님을 불러모은다. 입구에는 오늘의 주방장 특선 대신 경기 일정이 적혀 내걸려 있다. 유럽 전역에서 놀러온 관광객들과 학생들은 자기 나라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이곳을 찾아 한 손엔 맥주를 들고 목청껏 응원하며 경기를 즐긴다.

강양과 김군은 지직 거리는 TV를 앞에 놓고 이들 경기를 지켜본다. 딱히 축구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유럽에서 축구는 사교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 왼쪽이 알도다. 그 옆에는 스위스 루체른에서 온 알렉산드라. / 지지직 거리는 TV화면. 조만간 케이블을 신청할 계획이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