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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10 The best book you've read..

지난 금요일, 야외 카페테리아에서 각자 음료수를 한 잔씩 시켜놓고 진행된 이날 수업은 '현재완료시제'를 중심으로 한 프리토킹 수업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각자 경험했던 것들 즉, 영화, 책, 장소, 행운, 사고 등등을 현재완료시제로 작성하고 이를 한 명씩 돌아가며 짧막하게 발표하고 나면 옆에 앉은 파트너와 손짓발짓 섞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뭐 그런 시간이었다.

미리 나눠준 유인물의 질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고민케 한 질문은 'The best book you've read'. 지금껏 읽은 책 가운데 최고라.. 중학교 시절, 기술시간에 몰래 읽다가 선생에게 들켜 야단까지 맞아 가며 읽었던 '수호지'도 떠오르고 어린 가슴에 방랑의 불을 질러준 고우영의 '유럽만유기'도 떠오르고 한국을 떠나기 직전 읽었던 정이현, 김탁환, 박현욱의 소설도 떠올랐다.

그러나 정작 질문에 적어넣은 답은 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였다. 왜 이걸 적어 넣었는지 그 이유를 나도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아마 어디선가 이 소설의 영문제목을 봤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던 것 같다.

'추락'의 Fall과 '날개'의 'Wing'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가운데 이걸로 '쇼부'를 보자는 생각이 들었던게 아닐까 싶다. 아, 물론 이 책을 감명깊게 읽은 건 사실이다. 비슷한 시기에 읽었던 '악녀 두 번 살다'라는 추리소설도 비슷한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아무튼 이 소설의 영어 제목을 떠올려 내는데도 무척 애먹었고 결국 발표한 답은 'The thing falling down has a wings'. (중간에 관계대명사 which나 that이 들어가주는게 맞을 듯 싶기도 한데 문학의 파격에서 보자면 뭐 대충 이해될 법도 하고..)

신기하게도 함께 수업을 듣는 타군은 몇 번 되새기더니 그 답을 떠올린 반면 다른 외국 친구들은 물론 선생도 고개만 갸우뚱 거렸다. 학국문학작품의 제목을 이들이 알리 없으니 당연한 반응. 다만 문법적으로 이 표현이 과연 맞는지 선생이 지적해주기를 바랐지만 카페테리아의 어수선함과 그닥 흥미와 공감대를 일으키는 내용이 아니다보니 이내 다른 주제로 넘어가버려 김군만의 숙제로 남고 말았다.

이날 수업에서 가장 많은 답이 몰린 질문은 'The best film you've seen'. 내 인생 최고의 영화로 'Last samurai', 'Lord of the Rings', 'Harry Forter'가 속속 소개되는 가운데 'Terminator 2'도 등장했다. 국적은 다양하지만 흡수한 문화는 하나같이 헐리우드라니.. 어쩌면 좀 더 쉬운 공감대를 고민하다 찾은 답일 수도 있겠거니 하고 딴 생각으로 넘어간다.

새삼 인터넷을 뒤져보니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비극을 맞는 곳은 오스트리아의 그라쯔. 그리고 보니 12년 전, 김군이 100일간 유럽을 떠돌 때 하룻밤 묵었던 동네가 그곳이기도 하다. 놀라울 정도로 맛있는 청포도가 가격도 저렴하길래 왕창 사다가 숙소에서 밤새 혼자 까먹었던 기억이 떠오르는데 그런 비극의 무대였을 줄이야..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