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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20 저 배에 실어보낼 것은..

아침 일찍 발레타에 있는 몰타 이민국을 찾아가 무사히 비자연장을 마치니 9시가 조금 못됐다. 서둘러 버스를 타면 지각이야 하겠지만 수업은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왕 발레타까지 온 김에 오전 첫 수업은 제끼고 발레타 항구를 돌아보기로 했다.

그간 먼 발치로만 봐오던 대형 크루즈가 정확히 어디로 들고 나는지를 몰라 궁금해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대략 20여 분간 바다쪽을 향해 걷자 마침 크루즈 한 대가 모습을 나타낸다. '앗싸 저 놈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겠구나'

서둘러 길을 재촉하니 이내 항구가 보이고 그곳을 향해 물살을 가르는 크루즈도 점점 내게 가까워지면서 제 모습을 키워간다. 저렇게 큰 배를 가까이서 보는 것도 김군 생에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다.

웅장한 자연을 보는 것 못지 않게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의 구조물, 그 가운데서도 크고 높고 게다가 움직이기까지 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짜릿한 흥분을 낳는다. 그 순간 대형 크루즈와 나 사이에는 어떤 교감이 오가게 되고 그것은 언제나 이렇게 요약된다.

'한 번 타보고 싶다'.



>> 조용히 미끄러져 들어오는 크루즈 한 대. 분명 시칠리아에서 어젯 밤을 흥청거린 사람들이 저 배에 타고 있을 것이다.

크루즈를 보자 김군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뭘까?.. 맞다, 타이타닉.. 참 방정맞은 생각이겠지만 아무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에 살아도 일년은 커녕 5년에 배 한 번, 그것도 나룻배까지 포함해서 배를 탄다는 것이 엄청 희박한 경험인 김군에게 배, 특히 '크루즈'라는 것의 문화적 밑바탕은 용감한 디카프리오의 타이타닉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자 지난 시간이 더욱 서글프게 느껴졌다. 어떤 선택의 삶은 망망한 바다와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터전삼아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고 이곳저곳을 누비며 사는 반면 어떤 삶은 1,700원짜리 교통카드를 찍고 탄 짐짝같은 버스에서 하루 두 시간씩 내내 시달리며 매일 똑같은 곳을 오가는 삶이 있지 않던가?

어린 치기로 들리겠지만 누구도 후자의 삶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러고 산다.  



>> 뒤로 보이는 것은 언뜻 보면 빌딩같겠지만 Holland American Line이라는 글씨를 새겨넣은 크루즈.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