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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05 집-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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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샬롯, 저녁에 조를 만나기 전 방황의 시간들.마침 비가 내리고 날씨는 추워서 진짜 집없는 설움을 절감했다. 점심은 1.9유로짜리 피자 한 조각씩.

5시 반에 만나기로 한 조는 6 넘어서야 나타났다.

미팅 때문에 늦어질 거라고 오전 중 강양과의 통화에서 미리 얘기를 했단다. 하지만 강양은 전화 걸 당시에 미팅 중이었다라고 이해했었다. 항상 이런 식으로 언어의 장벽에 부딪힌다. 게다가 몰티즈의 영어라면 그 장벽은 한 층 더 높아진다.

 

여하튼 우리는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조와 마주앉았다.

우리가 구할 집의 정보를 컴퓨터 화면을 보며 뒤지고 있는 조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오늘 적어도 2개에서 4개는 보여준다고 얘기했던 조의 얼굴에 뭔가 안 풀리는 듯한 기색이 비친다. 예산이 너무 낮아서 매물이 많지 않다는 것이 조의 이야기다. 하지만 지난 토요일에 조는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조는 이른바 공인중개사다.

여러 가지 매물을 가지고 고객들에게 이런 저런 조건으로 저울질을 하면서 이윤을 남기는 것이 그의 직업이다. 우리는 당장 집이 필요하다. 하지만 영어는 미숙하다. 조와 거래를 할 때 우리가 꿀리지 않으려면 오늘 아침에 지금 묵고 있는 유스호스텔을 이미 체크아웃 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나름 작전까지 세웠었다. 만일 오늘 집을 구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김군은 1인당 20유로가 넘는 호텔에 북을 지언 정 절대 유스호스텔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강조했었다. (‘사람들란의 코브라 참조)

 

이런 저런 조건에 대해서 다시 확인하고 정보를 맞춰보는 사이 10분여의 시간이 흘렀다. 조는 생줄리앙 근처에 하나가 있으니 일단 보러 가자고 한다. 침실 하나에 욕실 하나라는 말에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단 따라 나섰다.

 

협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나름 배수의 진을 쳤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왠지 처음 보았던 그 집으로 그냥 들어갈 걸 하는 후회가 생겼다. 혹시 그 집이 나가버렸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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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cm가 훨씬 넘는 키에 크고 우렁찬 몰티즈 목소리의 '조'. 선글라스를 벗으면 더 호남형인데 사진은 왠지 박진영이 떠오른다.(좌) 스위히에 집 보러갔을 때 김군이 뒤에서 찍은 사진. 하늘과 구름이 우리가 봐도 합성 같다.


조가 운전하는 차는 공사중인 지역을 돌고 돌아 제법 멀리까지 온듯했다. 인적도 드물고 낮게 늘어선 집들 하며생 줄리앙에도 이런 집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곳은 오전에 갔었던 스위히를 닮았다. 적당한 곳에 주차 한 뒤 문을 열고 내리는 데 왠지 어디 선가 본듯한 풍경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데쟈뷰인가 생각하며 앞장서는 조를 따라 걸어가는 데, 아뿔싸! 오전에 샬롯이 소개 해준 세 번째 집이 아닌가!

 

강양은 김군에게 다급하게 이야기 했다.

이거 우리가 오전에 본 집 아니야? 풀장 있는 집!’

타고난 지리감각으로 똘똘 뭉쳤다라고 자신하는 김군은 한 번 쓱 둘러보더니

아냐, 그 집 아냐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앞장 선 조에 뒤를 이어 김군, 그리고 불안한 마음의 강양이 따라 걸어가는데 갑자기 김군이 획 뒤 돌아서며 말한다.

, 아까 그 집 맞다!’

 

우리 둘은 다급하게 걸음을 멈추고 긴급작전을 짰다.

이 지역은 우리가 원하는 곳이 아니다, 그냥 처음에 본 그 집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라고 조에게 말하기로. 다행이 집주인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거의 집안으로 들어간 조를 불러내서 작전대로 이야기 했다.

조는 우람한 체격에 시원시원한 매너답게 그래, 이해해. 대신 그 집이 안 팔렸기를 기도해 보자구!’라고 우리에게 동의한 다시 후 차에 오른다. 조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왠 젊은 청년이 집 안에서 나오며 조에게 아는 채를 한다. 조가 뭐라고 큰 소리로 말을 하니 한 손을 번쩍 들었다가 내리며 청년은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사실 조에게 우리가 두 군데 부동산을 통해서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해도 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언어다. 한국어로 한다면 별 문제 없을 것도 영어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바로 민감한 사항으로 변한다. 게다가 오늘은 무조건 집을 구해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까지 겹치니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던 굳은 결의도 사라진다. 만약 처음 봤던 집이 벌써 팔렸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만 앞선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마자 조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건다. 우리는 그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숨죽이면서 조가 통화하는 내용을 경청하지만 몰티즈 언어로 통화하는 내용을 알아 들을 리 없다. 생각보다 전화가 길어진다.

집 나갔냐? 안 나갔으면 이 사람들이 들어간단다. 오케? 면 끝날 것 같았는데 조는 거의 5분이 다 되도록 통화 한 후 수화기를 내려놨다.

 

일단 집은 다행히 안 나갔어. 하지만 문제는 오늘 들어갈 수 없다는 거야. 왜냐하면 집주인이 침대시트를 다 준비해 놓지 못했는데 마침 몸이 아퍼서 오늘 준비 해 줄 수가 없데.’

 

그럴 순 없다. 우리는 벌써 아침에 유스호스텔에서 체크아웃하고 나온 상태다. 침대보는 없어도 상관없다. 다른 건 다 괜찮은 것 아니냐. 그냥 들어가겠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오늘 집에 들어가겠다는 의지를 조에게 밝혔다.

다시 집주인과 몇 마디를 더 나눈 조는 우리에게 얘기한다.

 

좋아. 오늘 들어가는 것으로 얘기 됐어. , 이제 계약서를 쓰자구

 

, 김군과 강양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결국 우리에게 집이 생기는 구나. 오늘은 집에서 잘 수 있겠구나.

 

4페이지가 넘는 계약서를 조가 몰티즈식 영어로 빠르게 읽어 갔다.

혹시 계약 잘 못해서 어떤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감에 조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으로는 계약서의 어려운 단어들을 빠르게 쫓아갔다. 하지만 머리 속에는 어서 집에 들어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다. 싸인을 하고, 돈을 지불하고 모든 것이 끝났다.

 

친절한 조(2시간 전 만 해도 협상 대상이었지만)는 자신의 차로 유스호스텔에서 우리 짐을 실어 날라주었다. 뿐만 아니라 짐을 3(실제로는 4)까지 올리는데 같이 들어주고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 준 후 내일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시간은 거의 8 다 되었다. 40평 규모의 집에 우리 둘만 덩그란이 남겨진 것 같았다. 조명도 어둡고 온기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집.

하지만 우리 집이다.

물론 남의 집을 6개월 만 빌린 것이지만 우리에게도 집이 생긴 것이다.

갑자기 시장기가 느껴졌다.

 

강양 - 오늘 저녁은 뭘 먹지?

김군 - 된장찌개 어때?

강양 - 오케이! 밥은 니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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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 어머니가 직접 담그신 된장을 풀어 끓인 된장찌개. 감자, 멸치, 마늘 밖에 들어 간 것이 없어도 꿀맛이었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