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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26 나는 요리한다 3

인터넷 한겨레에 실린 '윌리엄 레이몽'과의 서면 인터뷰 기사를 흥미롭게 읽던 중 유럽에 머무는 동안 제작하려는 다큐멘터리에서 중요한 개념이 될 힌트 하나를 얻었다.

Q :
한승동 기자
"
항생제와 살균.살충.제초용 농약, 포장용 가스,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 방사선 살균, 액상과당 등도 심각하다. 도대체 안전한 먹을 거리는 없다는 얘긴가?"

A :
윌리엄 레이몽

“정말 큰 문제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싸워서 우리의 음식을 되찾아야 한다. 될 수 있는 한 가공식품을 피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요리를 해야 한다. 자연식품의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깨달아야 하며, ‘적게 천천히’(small and slow)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목숨을 이어가는 본능적 행위에 더해 혀로만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을 경험하고 즐기는 행위이기도 하다. 여기에 넉넉한 시간과 즐거운 대화, 함께 해서 좋은 사람들과 그들을 좀 더 끈끈하게 결속시켜 줄 잘 익은 술이 더해지면 삶은 그때마다 환희로 가득 찰 수 있다.

 

그 예술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삶을 환희로 채우려는 노력의 일환이 바로 '요리'다. 근래에 와서 요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보다 깊은 생각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요리는 재료의 신선도와 안전성, 가격과 구입, 손질과 조리, 지역과 기후, 환경과 역사, 전통과 실험 등.. 먹는 행위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그리고 고민될 수 없는 많은 인식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은 물론 그 같은 문제들에 적극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다.

 

단지 끼니를 때우기 위한, 때론 귀찮고 번거로운 행위를 지나 풍요로운 미각을 통해 삶이 즐거워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거쳐 이제는 나를 비롯, 가족과 친구들을 외부의 환경적 재앙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또 다른 생존의 행위로 차원이 넓어져 가고 있는 것이 오늘에서야 새삼 주목받는 요리의 또 다른 정체성은 아닐까? 작금의 쇠고기 파동과 유전자 변형 음식물 수입에 따른 이런저런 걱정의 목소리는 그것을 웅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탈리아는 전통에 대한 고집, 재료를 보는 높은 안목, 이미 자신들의 먹거리 문화를 속도와 이윤으로 괴사시킨 미국과는 달리 식사를 여전히 고귀한 의식의 하나로 바라보는 관점과 느리다 못해 게으른 그들 삶의 템포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쩌면 더 많은 가능성이 있는 곳이 한국이 아닐까?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 중심에 요리가 있다. 비록 저마다 손재주는 타고나지 않았을 망정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맛의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곳에서 오랫동안 길들여져 온 까다로운 입맛을 갖췄다는 것은 이미 절반은 해결된 것 아니겠는가?
 

요리라는 행위를 통해 어쩌면 우리가 미처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몇 가지 문제들은 풀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에게는 있다. 적어도 달고나는 지리산에서 어렵사리 농사를 지으며 결코 땅을 포기하지 않을 친구와 공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매개의 하나는 요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이는 매우 창조적이며 각기 다른 삶을 거미줄처럼 탄탄하게 엮어줄 작업이다.

 

요리를 하자. 주부도 자취생도 군인아저씨도 모두 요리사가 될 수 있다. 주방에서 감자를 깎고 계란 하나를 휘젓고 숟가락으로 간을 보는 순간 요리사 아니겠는가? 그게 어렵다면 이윤만을 위해 '조작된' 맛을 거부할 수 있는 건강한 입맛으로라도 바꾸는 노력이 땅과 바다가 최소한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을 테다.

그러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가령 청계천에서 촛불을 드는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맛있고 건강하고 즐거운 식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즐겁게 넘어갈 산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오가닉'으로 섣불리 결론내지 않길 바란다. 오가닉은 장기적 목표일 뿐 당장의 대안은 아니다. 자칫 그렇게 오해할 여지가 있어 노파심에 덧붙인다. 천천히 하나씩..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