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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20 에르베 광장과 아레나 PIAZZA ERBE & THE ARENA in Verona 4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0. 20. 22:04

휴일, 볕도 좋고 공부도 안되니 좁은 집구석을 빠져나온다. 산책 겸 강양 입을 겨울 외투를 둘러볼 겸. 베로나의 중심인 PIAZZA ERBE는 사람들로 언제나 붐빈다. 요전 포스트에서 늦은 밤,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찼던 광장도 같은 장소다. 아래는 에르베 광장으로 들어서는 가장 큰 길목의 풍경.


에르베 광장의 주인공은 바로 아래의 탑.



베로나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이름은 타워 람베르띠(Torre Lamberti). 238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베로나 시내 전체를 한 눈에 품게 해준다. 딱히 베로나의 역사공부를 할 처지가 아니어서 이 유서깊은 돌탑의 사연을 구구절절 소개하지 못함이 아쉽다. 단, 조선이 건국되고 얼마 후인1463년에 완공되어 600년 가까운 세월을 저 자리에서 꼼짝없이 버티고 있는 중이고 가운데 시계는 여전히 한치의 오차없이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고. 베로나를 떠나기 전 한 번 올라가보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평소 지나쳐가곤 한다.

람베르띠가 높이에서 앞도하지만 베로나를 상징하는 건축물은 단연 바로 아래다.

<사진 : www.arena.it>

The Arena. 현존하는 원형경기장 중 가장 큰 규모는 로마의 콜로세움, 두 번째는 모르겠고 세 번째가 바로 아레나다. 1세기 경에 세워진 이 무식한 '돌집'이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규모면에서 콜로세움에 뒤지지만 2천년이 흐른 지금에도 당시 로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이곳에서 재미난 볼꺼리를 즐긴다는 점 때문. 콜로세움이 제 기능을 다하고 그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이 됐다면 아레나는 여전히 제 힘으로 굳건이 살아 숨쉬는 역사인 셈이다.  

거의 연중 공연이 펼쳐지는 이 매력적인 극장에선 우리같은 사람에겐 이름만으로 익숙한 투란도트,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등의 오페라는 물론 R.E.M과 같은 뮤지션의 대중음악 공연도 펼쳐지니 거금을 내고 입장한다면 문화적 감동에 푹 젖었다 나올 수 있을테다.  

아레나의 외벽은 상당부분 파괴되고 일부만 남아있는데 로마 콜로세움과 거의 똑같아 깜짝 놀랐다. 아레나 외벽은 1117년 닥친 지진으로 대부분 무너져 내리고 일부만 남았다고. 아래 사진은 부서지고 그 일부의 흔적만 남기고 있는 콜로세움의 외벽. 아레나와 쉽게 비교될 뿐만 아니라 규모도 파악이 쉽다. 콜로세움의 외벽 역시 지진으로 파괴되기도 했지만 로마제국 멸망 이후 관리가 소홀해진 틈에 무분별하게 벽체를 뜯어 다른 건축용으로 사용했던 점 또한 파괴에 큰몫 했다고.


콜로세움의 떨어져 나간 외벽 모서리는 말끔하게 보수돼 있어 파괴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파괴된 외벽이 만들어낸 조형성은 오늘날 콜로세움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사실 거대한 규모와 세월의 무게 앞에 나 자신이 한없이 작음을 느끼지만 저 굳건한 돌덩이(사실 모든 거대 건축물)를 마주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생각 하나는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건축 과정에서 떨어져 죽거나 깔려 죽었을까 하는 점이다. 

제국을 넓히는 황제의 명으로, 한 때는 신을 앞세운 교황의 힘으로 세워진 엄청난 규모의 건축물들은 오늘날 인류에게 더없는 보물로 남아 있지만 그 앞에서 절망해야 했던 무수한 영혼들 또한 저 차가운 돌덩이와 함께 하고 있는 것도 사실. 그들의 존재을 느껴보기 위해 못질 흔적 하나도 오래도록 응시하게 된다.



아레나가 제공하는 넓은 광장의 이름은 PIAZZA BRA. 이태리로 떠나기 전, 한동안 살았던 일산에서 호수공원을 걸을 때 마주쳤던 사람들의 발걸음과 이들의 발걸음은 그 템포가 같다. 저물어 가는 휴일 오후의 햇살의 따스함이 알수없는 고독을 던져준다는 점 또한 닮았다. 다만 코오롱 건설, 삼성 건설 간판의 단조로운 직사각형 오피스텔과 아파트를 바라보며 돈을 떠올렸다면 간판없는 제각각의 건물과 아레나 앞에서 시간을 떠올린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

이름을 알 수 없는 오랜 건물로 올라서는 계단에 앉아 잠시 다리를 쉬는데 풍경 하나가 눈길을 끈다.



개구장이들이 계단의 넓은 난간을 미끄럼틀 삼아 열심히 놀고 있다. 저 꼬마들은 물론, 저들의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도 저곳에서 똑같이 저러고 놀았겠다는 추측을 했는데 이는 돌표면 때문. 대체 얼마를 저래야 표면이 반질반질해지는지 모르겠지만 이 도시는 사소한 눈길 하나에도 끊임없이 시간에 대해 묻는다.

우리는 '시간 참 빨리 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근데 시간이 정말 저 혼자 빨리 흘러간 걸까? 시간이 빨리 간게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돌아보지 않고 빨리 지나온 것일 뿐.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