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9.07 사라져가는 것들 1
  2. 2009.03.23 이탈리아, 먹을게 없다? 4
한국 Korea 160409~2010. 9. 7. 01:56
쉬는 날,
인사동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친구 A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정확히는 친구의 형이 사진을 찍고 있고 
친구는 작년에 강남으로 '용감하게' 분사했고 그 빈자리에
또 다른 친구 B가 친구 형을 도와 일하고 있다.
아무튼 15년째 인사동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참 꿋꿋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남아 있으나 점차 없어져가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필름이다.
디지털이 해일처럼 들이닥친 세상에서
떠내려가는 것은 LP판뿐만 아니라 필름도 포함됐단 말이지.
어디 그뿐이겠냐마는.

암튼 다소 충격적이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친구 형은 불안정한 필름공급에서 벗어나고자 언젠가
 후지코리아에 필름 1,000롤을 주문했더니 돌아온 답변은 이랬단다.

"주문대금의 60%를 현찰로 선불하셔야 하고 수령까진 4개월 가량이 걸릴 예정입니다"

필름생산을 중단한 후지는 수요가 작살난 상황에서 확실한 판매물량이 확보되고
그 마저도 생산의 한 싸이클이 될 만큼의 물량이어야 공장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란다.

종로에 그 즐비하던 필름가게는 대부분 사라졌고
그나마 하나 남은 가게의 사장님은 생존을 찾아 최근 인근에 작은 쌀국수집 하나를 인수했단다.
마침 지나다 보니 손님들에게 국수그릇을 나르는 모습이 창 너머로 보인다.
그 앞을 지나며 친구 B는 필름, 그리고 자신같은 사진쟁이의 쇠락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아까 스튜디오 있으면서 봤지?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디지털, 인터넷, 파일 따위를 모르는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야. 젊은 사람들은 갈수록 줄고 있어. 이 일도 오래가지 못할꺼란 얘기지"


 생멸(生滅)이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전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마주할 때,
쓸쓸함을 넘어 황망하다.
투석으로 하루하루 가느다란 생을 이어가고 있는
큰 삼촌을 뵙고 온 오늘,
그도 필름을 닮아 있었다.

Posted by dalgonaa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드는 의문점 하나는, 도대체 이 나라는 먹을게 없다는 거다. 요리 강국으로 불리는 프랑스도 사정은 비슷하지 싶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요리란게 비단 고급 식당에서 폼잡고 먹는 음식만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라면 이 나라들은 길거리에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그닥 많지 않다는 얘기다. 프랑스는 일단 미뤄두고, 이탈리아만 보자. 어제 우리는 뻬루자를 출발해 몇 군데 유명도시를 경유해 베로나에 도착했다. 5시간이 넘는 여정동안 쫄쫄 굶을 순 없으니 뭘 먹어야 하는데, 그럼 뭘 먹을까? 피자? 그래, 피자가 있다.


길에서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조각피자. 가격도 부담이 없지만 간혹 요란한 재료를 넣을 경우 가격이 껑충 뛰니 조심. 사진의 것들은 한 조각에 1.5유로. 볼로냐의 우리 단골집.

지난 번 볼로냐를 다녀올 때 아레쪼에서 열차를 갈아타던 중 인근 피자집에서 피자를 한 조각 사먹었고 볼로냐에서 허기진 배를 채워준 단골메뉴도 피자였다. 심심해서, 귀찮아서, 간편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싸니까 손쉽게 선택하는 음식이 바로 피자다. 근데 이제 지겨울만도 한 음식 또한 피자다. 그럼 이탈리아에서 피자를 대신해 선택할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을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딱히 떠오르질 않아 강양에게 물어보니 이런다.
"케밥? 아니면 BAR에서 파는 샌드위치?.."


이탈리아 모든 BAR에는 저 같은 간단한 간식거리(브리오슈)를 갖춰 에스프레소 한 잔의 심심함을 달래준다.

나만 특별하게 느끼는건가 싶었는데 아니다. 오늘날 서양요리를 이끌어가는 두 축의 하나로 평가받는 이탈리아 음식의 종류와 레시피는 무궁무진할 정도로 많지만 길거리에 배고픈 이들에게 손쉽게 다가가는 먹거리는 참으로 빈곤하다. 어제 베로나로 오는 도중 피렌체역에서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가장 만만하게 생각해 선택한 간식은 결국 캔맥주에 감자칩이었다. 새삼 돌아보면 이탈리아, 참 먹을거 없는 나라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우리 여기 왜있는거니?^^) 그러니 한국의 대학생 여행자들이 이탈리아에 오면 먹어봐야 피자고 혼자서는 두려우니 삼삼오오 모여 식당에 들어서 쁘리미니, 세꼰도니 복잡한 순서 건너뛰고 시키기 만만한 것 역시 피자다. 


식당에 편하게 앉아 웨이터의 시중을 받으며 시켜먹는 피자.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가며 먹는다. 맥주나 음료수 하나 시키고 테이블 차지가 붙고나면 10유로 훌쩍 넘는다.

때론 이런 사건도 생긴다. 한 번은 4명의 학생들이 식당에 들어가 피자헛에서 시키는 것 처럼 딱 한 판을 시켜놓고 먹었단다. 먹는 동안 웨이터들이 자신들을 향해 키득거리며 기분 나쁘게 웃어 입맛이 확 떨어졌다는 얘기를 하는데 듣는 우리도 안타까운 한편 얼굴이 화끈거렸다. 웨이터들도 좀 심했지만 학생들도 심했다. 식당에서 주문해 먹는 피자의 경우 1인 1판이 기본. 한국의 백반집에서 김치찌개 하나 시켜 4명이 나눠 먹을 수 없는것과 같은 이치다. 피자헛이 아닌게다. 하나 더, 오래전 베로나에서 엘리자베타와 식당에서 피자로 저녁을 먹은 뒤 남는 건 포장을 부탁했는데 웨이터의 태도가 좀 거시기 했다. 엘리 왈,
"여기선 남는 거 포장해가는 사람 없어. 왜냐면 거의 안남기거든" 

맛의 또다른 제국, 현대 요리의 선두주자로 일컬어지는 이탈리아에 친숙한 길거리 음식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은 여간 섭섭한게 아니고 온당치도 않게 느껴진다. 그런점에서 터키와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한국과 중국, 일본. 아시아의 요리가 서양요리와 다르게 지니는 뚜렷한 차이점은 길거리 음식이 동시에 발달했다는 점이고 요리의 깊이와 폭이 훨씬 더 깊고 넓다고 볼 수도 있다. 혹시 한국의 이탈리아 요리들이 때론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리는 이유가 다양한 길거리 음식이 발달하지 않아선가? 뭐.. 대단할 것도 없는 베트남 쌀국수가 여전히 비싸게 팔리는 점을 보면 꼭 그런것 만은 아니고.. 근데 한국에 이탈리아 가정식이라고 간판을 내건 식당에서 내는 요리들이 과연 가정식의 기본을 충실히 따르고 있을까? 가정식의 덕목이라면 소박함, 정성, 그리고 후한 인심을 빼놓을 수 없는데 어디어디식 가정식이라고 나오는 요리들의 소개를 보면 요란한 장식에 양은 짜증날 정도로 적어서.. 외국인이건 한국인이건 한국 가정식이라는 간판을 내건 식당을 들어설 때의 기대는 '엄마의 손맛대로 푸짐하게 먹어보자'일텐데 꽃모양 낸 궁중요리 깨작거리며 내오면 짜증나지..

미식의 관점에서 더 없이 훌륭한 요리. 비주얼, 구성, 맛 모두 뛰어나지만 음식의 1차 목적, 허기의 충족에는 때론 못미치는 감이 종종 있다. 쉐프 마르코로부터 받은 독일 어느 레스토랑의 요리 사진.

이탈리아 북부, 베르가모의 한 가정식. 북부답게 버터 많이 써 기름지고 고기가 빠지지 않는다. 볼품은 없어도 주인의 정성과 후한 인심이 더해져 있다. 시계방향으로 폴렌타, 토끼구이, 버섯볶음, 살라미. 노란 폴렌타 밑에는 고르곤졸라 치즈가 은폐돼 있다.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