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클링 와인'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4.05 비니탈리 Vinitaly (1) 2
  2. 2009.03.29 '상혼'속에서 건진 맛 2
  3. 2008.11.11 파르마에서 즐긴 점심식사. Lunch in Parma. 1

일요일. 비니탈리 행사도 이제 월요일 하루만을 남겨놓고 있다. 와인에 대해 전문지식이 있었다면 이것저것 떠들 얘기도 많았을텐데 짐작하듯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경험과 지식이 있다고 해도 이곳 사람들과 속시원하게 소통이 안된다면 그것 또한 답답한 노릇이긴 마찬가질 터. 관심분야에 대해 전문가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인데 그게 또한 술이라니!! 기품있는 수염을 가진 노신사가 와인을 시음하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떼지어 몰려다니며 술을 해치우는 혈기왕성한 젊은 친구들이 와인 프로듀서들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고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분위기가 고조되는 모습은 우리의 호기심과 답답함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부족한 지식과 경험, 언어를 원망하면서도 한국에서 소주라는 종목 하나만 놓고 이런 행사가 열린다면 눈과 입으로만 어슬렁거리다가 마는게 아닌, 만든이와 먹는 이가 자신들의 경험과 느낌에 대해 속 깊게 얘기나눴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동시에 들게했으니.. 우물쭈물이 아닌 오랫동안 다져진 경험과 자신감, 그리고 자신의 안목을 갖고 말이다!^^ 

비니탈리는 판매자와 구매자간의 치열한 비즈니스 장이다. 짐작컨데 COEX 전시장은 비교가 안되고 일산의 킨텍스 전체를 통틀은 공간에 와인 부스가 마련돼 있다고 보면 맞을 정도의 규모. 그곳에서 이탈리아 전역에 걸친 거의 모든 와이너리들이 참가하고(헌데 우리가 꼭 만나려 했던 시칠리아의 Cielo와이너리의 언니를 참가하지 않았더라는..) 한국은 물론 전세계에서 질좋은 와인을 구입하기 위해 바이어들이 몰려온다. 일본은 밀라노 등지에 상주 사무실을 차려놓고 와인을 수입해가고 있고 한국에서도 많은 바이어들이 행사장을 찾는다. 다만 올해는 경기침체와 고환율의 직격탄을 맞아 한국 바이어들의 발길이 많이 줄었단다. 1년 전 로마 체류할 때 만났던 소믈리에를 혹시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그 역시 이번 행사는 건너뛰기로해 여간 아쉬운게 아니다. 

행사 이틀째에는 '한국과 카자흐스탄 시장의 공략기법(?)'이란 주제로 세미나가 열려 눈길을 끌었는데 아침 10시 30분 행사여서 가보지는 못했다. 볼로냐에서 오전에 베로나로 출발하는 기차는 7시와 10시, 11시에 있고 집을 나서 행사장까지 도착하는데는 2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아침 7시차를 타는건 우리에겐 아무래도 무리다. 존재감이 카자흐스탄과 비슷하다는 점은 한국의 주당들에겐 좀 서운하게 들리지 모르겠다. 헌데 세미나까지 열린거 보면 한국 와인시장이 여전히 개척의 여지가 많다는 반증. 유행이 아닌, 시류에 편승한 거품이 아닌 진정한 입맛으로 기회가 넓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우리도 굴뚝같다. 값싸고 질좋은 화이트와인, 스파클링 와인을 집에 재놓고 마시고 싶단 말이다.

그럼 행사 첫 날부터 어제 토요일까지 찍었던 사진들을 중심으로 떠들어보자.


베로나 역에 내리고 보니 셔틀버스 운행 간판이 눈에 띈다. 저 뒤로 녹색 칼라에 와인병 그림. 베로나의 중심인 BRA광장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이곳으로 와 다시 사람을 태우고 행사장으로 가는 식인데 버스가 도착하면 필사적으로 뛰어들어 타야한다. 안그럼 20분을 마냥 기다리던지 걸어가던지 비싼 택시타던지. 사진에서 보듯 첫 날에 비가 내리더라는. 출발 당시 볼로냐엔 비가 안내렸건만..



콩나물 버스에서 내리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저 건물. 한때 이탈리아 음식의 수도 볼로냐가 주도로 있는 에밀리아 로마냐의 행사장이 눈길을 잡는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와인, 환상의 세계'라는 조금 싱거운 카피..^^


저런 보기드문 차도 주변에 어슬렁거려야 분위기가 띄어지는 법. 그래도 토리노 슬로푸드때 처럼 비행선 정도는 띄어야..



출입 ID카드를 만들어주고 계신 프레스 신청 데스크의 관계자들.  와인 행사라고 모두 빨간 유니폼을.


프레스센터. 규모는 슬로푸드 프레스센터의 4배 정도 규모. 아무래도 와인 산업이 훨씬 더 클뿐 아니라 관련 매체도 더 많을테니 당연하다. 취재보단 경험이 목적인 우린 이곳에서 오래 지체할 이유가 없다. 쌓여있는 홍보책자 중 자료로 삼을만한 것 뭐가 있을까 좀 둘러보다가 기자실에서 제공하는 와인 한 잔씩을 마시고 물 한 병 꿰찬 뒤 행사장으로 나갔다.



마침 프레스센터가 입주해 있는 건물이 롬바르디아주의 행사장이니 자연스레 롬바르디아주의 와인들이 제일 먼저 우리를 맞는다. 길게 깔린 카페트와 반짝이는 조명이 고급스러움을 더해주는 공간. 다만 천정고가 낮아 조금은 답답한 느낌. 허나 무슨 상관이랴? 와인맛 보러왔지 인테리어 구경하러 왔나?



기자실의 와인을 빼면 행사장에서 처음으로 맛본 와인, 끼아레또와 루가나. 끼아레또는 좀 생소하고 루가나는 처음 이탈리아에 도착해 베로나에 머무는 동안 가까이 두고 마셨던 와인. 친구인 엘리자베따의 추천으로 찾게 된 것이 어느새 우리 입맛과도 친숙해졌다. 돌이켜보면 와인을 잘 모를 때는 무조건 레드를 찾았지만 이것저것 맛을 보고난 지금은 화이트에 기호가 더 기울어져 있지않나 싶다. 고기를 먹을 때도 화이트가 더 땡기니 말이다. 좀 더 미묘한 맛의 변화를 알아가는 중이기도 하지만 역시 화이트의 시원한 청량감을 더 선호하는 탓 때문이 아닌가도 싶고.. 특히 날씨가 조금씩 따뜻해지고 기분이 살짝 들뜨니 그것을 뒷받침하는데는 화이트만한게 없지 싶다. 비단 우리만이 아니더라도 알맞게 식혀져 있는 맛있는 화이트는 사람들의 기분을 정말 좋게 해주는 술임에 틀림없다. (물론 축제주로 최고인 스파클링 와인이 있지만..^^) 



왼쪽은 로제와인 끼아레도, 오른쪽이 화이트와인 루가나. 사실 드넓은 우주에 지구가 티끌 하나일뿐인 것 처럼 수천 수만의 와인을 두고 이런 나열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 그러니 그냥 우리 아는 사람들끼리만 보고 낄낄, 끄덕끄덕 거리며 보자구요~



스파클링 와인의 등장.  스파클링 와인은 정말 지구상 최고의 만찬주, 축제주가 아닐까? 물씬 피어오르는 기분좋은 향, 조금만 머금어도 입안 가득 꽉 차는 과일과 꽃내음의 달콤함, 혀를 마비시키는 발포의 청량감. 이런저런 수사를 동원했지만 먹고죽자식의 자리가 아니라면, 정신놓지 않으면서 유쾌한 기분을 쭉 끌고 가줄 수 있는 술이 바로 스파클링 와인 아닐까? 그래서 궁금해 죽겠다. 과연 한국에 돌아가 소매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스파클링 와인을 무엇이 있고 가격이 얼마일지..



개인적으로 맘에 들어하는 디자인의 병. 모두 스파클링 와인.



저분들도 모두 스파클링 와인 마시는 중. 잔 모양이 다소 특이한데 스파클링 와인 전용 잔이다. 좁고 긴 몸통을 가진 잔이 일반적이지만 이탈리아는 대개 저런 디자인. 바닥면적을 좁혀 기포의 발생량을 줄여 맛과 향을 오래가도록 하는 것이 스파클링 와인잔의 설계 포인트가 아닐까 하는데.. 맞나요?

부스를 지나면서 한 잔 청해 마실 수 있고 일행이 있다면, 그리고 와인에 관련해 좀 더 자세히 얘기들으며 마시고 싶다면 안쪽에 자리를 잡아도 얼마든지 환영이다. 허나 이런 자리에서 단연 최고의 손님은 수입업자, 즉 바이어. 프레스가 회색 비표, 단순 입장객이 노란 비표라면 그들은 목에 빨간색의 비표를 매고 다니는데 가장 HOT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어느 프로듀서가 그들을 무시하겠는가? 



호사로운 와인 버켓. 얼음을 채워넣은게 아니라 버켓 자체가 얼음이고 꽃도 함께 얼려 신비감까지 더했다. 


와인에 있어 문외한이지만 멀쩡히 보이는 산 정상을 오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와인도 산과 비슷해서 흔히 사람들이 얘기하는 이른바 '정상'이 있다. 우리같은 초보자는 딴거 없다. 그저 주변을 볼 겨를도 없이 정상만을 향해 열심히 올라가면 그만. 삐에몬테주의 바롤로, 베네토주의 아마로네, 토스카나주의 브루넬로 몬탈치노 등등. 비니탈리가 우리에게 좋은 이유는 그 정상이 한 자리에 모여있고 오르기도 쉽다는 점 때문이다. 가서 한 잔 청하면 정상을 얼마든지 맛보게 해주니 말이다. 허나 산이 어디 정상만의 맛이겠나? 이름없는 실개천도 지나고 넓은 들녘도 지나고 거친 바위도 오르고 하면서 도달하는 것이 산. 그 여정에 배어있는 향기, 바람, 색깔을 즐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와인도 비슷한 여정을 되풀이하며 즐기는 여행이고 그 길도 참으로 다양하다는 점이 와인을 마시는 매력이지 싶다. 그 매력은 또한 즐거운 사람들과 함께 마셔야 배가 된다. 사실 그게 젤 중요하지 않을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언제나 그렇듯 처음 한 병은 와인이지만 그 다음 와인은 그냥 술일 뿐이다.


 
베네토의 자존심, 아마로네. 그 가운데 아마로네의 명성을 이끌어가는 주역 베르따니. 다시 설명하겠지만 참 예상치못한 쟌 마테오와의 만남으로 사진에서 보는 1967년 빈티지를 맛보는 것은 물론 결국 베르따니 아마로네 생산의 심장부중 심장부인 빌라 노바레(Villa Novare)까지 방문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으니 그 이야기를 포함한 또 다른 얘기는 잠시 후에.

Posted by dalgonaa

베네치아를 다녀오던 아침, 부지런히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를 만들었다. 사진을 못찍었네 이런.. 암튼, 오니기리는 만들기 간편할뿐 아니라 맛도 좋고 갈 길 바쁜 여행자, 또는 '바쁜 현대인'의 출출한 속을 달래주는데 그만이다. 재료도 간단해서 너무 딱딱하게 굳지 않은 찬밥, 물과 소금, 김 한 장, 밥 속에 넣을 짭짤한 소만 준비하면 끝. 짭짤한 소는 고추장에 볶은 다진 멸치와 역시 고추장에 볶은 살시치아, 이렇게 두 가지. 삼각김밥 먹어봤을테니 취향껏 소를 만들면 된다. 짭짤한 날치알도 좋고 젓갈도 좋고 짱아찌도 좋다. 복어알 구해 넣어 늘 마음속을 헤집는 '그분'에게 전해도 좋고..

먼저 깨끗히 씻은 손에 물을 잔뜩 뭍히고 소금 살짝 집어 씻듯이 손바닥 전체에 비벼준다. 짭짤해진 손으로 밥을 큼직하게 한 줌 쥐고 둥글둥글 손으로 굴려주다가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 굴을 판다. 거기에 짭짤한 멸치볶음이나 살시치아 볶음 등을 넣고 입구를 막는다. 김 한 장 반 갈라 그 위에 둥근 주먹밥을 가만히 굴려 싸주고 랩으로 한 바퀴 돌리면 끝. 쉽다. 소가 부족하다 싶으면 굴을 넓게 파면 된다.

베네치아 여행에 오니기리를 만들어가기로 결정한건 경비를 아끼자는 것 보다는 베네치아의 상혼에 젖은 음식에 실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잖이 들어서다. 뻔히 알고서 당하는 사기, 피서지에서 곧잘 당하는 그런 경험이 결코 기분좋을리 없고 그 상처는 꽤 오래 가기도 한다. 베네치아의 좋은 풍경, 음식으로 망치지 말자. 근데 어라? 식당에 나붙은 가격들을 보니 그닥 비싸지 않을 뿐더러 얼핏 넘겨본 음식들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음.. 호기심이 슬슬 발동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저녁을 이곳에서 해치우기로 했다.

산마르코 광장으로 향하던 중에 지나쳤던 적잖은 식당들을 떠올렸지만 다시 찾아가기에는 시간도 그렇고 거리도 만만찮아 역에서 멀지 않은 곳 중에 뒤지기 시작, 봉골레 스파게티+채소샐러드+해산물 튀김, 이 세 가지를 13유로에 내놓는다는 한 식당을 발견하곤 그리로 들어섰다. 실내는 식사보다는 아페리티보(식전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제 겨우 6시니 당연하다. 그래도 과감히 착석. 식사 되느냐고 물으니 된단다. 청년이 영어를 좀 해서 강양이 "저녁먹기엔 좀 이르죠?" 했더니 "그렇죠"하며 웃는다. 입구에 써붙여 놓은 13유로 식사를 두 개 주문하고 테이블 와인 하프리터를 시켰다.


이곳은 레스토랑 개념보단 BAR의 색채가 좀 더 짙은 곳이다. 그래선지 테이블에도 별 다른 격식이 없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동네 사람들. 관광객은 몇 안띄어 오히려 안심이다. 삼삼오오, 또는 짝을 이룬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와인 한 잔, 스쁘릿츠 한 잔씩을 마시곤 잠깐, 또는 한참을 왁자하게 수다를 떨다가 다시 몰려 나간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태리 식당보다 BAR, 특히 아페리티보가 강한 BAR를 하고싶은 생각이 굴뚝이다. 가벼워서 좋고 다종다양한 술의 향연, 그 깊은 세계에 젖어보는 것도 꽤나 매력있고 특히 폭음이 일반화된 우리와는 분명히 다른 어떤 멋과 여유를 주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와인 한 잔씩을 마시고 나간 후 빈 잔을 치우는 바텐더 겸 까메리에레. 

요즘 강남에 이런 식의 BAR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쉽진 않아 보인다. 아무리 가볍게 한 잔 술이라지만 '서서 마신다?' 한국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 더욱이 BAR에서 내놓는 술들이란 대개 단가가 높은 술이어서 다른 서비스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발길 붙잡기가 쉽지 않다. 안그러면 유행이란 것에 기대는건데 그건 오래 못가고.. 무엇보다 우리가 생각하는 BAR는 젊은층 상대의 '술집'이 아니라 동네사람들이 손쉽게 찾는 편의점 같은 느낌이어야 하기 때문. 아무튼 한국 돌아가면 이 멋과 맛을 못즐긴다니 심히 아쉽다. 


먼저 테이블 와인을 내준다. 한국에선 거의 없겠지만 이곳에서 테이블 와인은 생맥주와 똑같이 밸브를 당겨 병에 담아준다. 우리가 시킨건 화이트. 근데 어라? 살짝 스파클링이다. 향과 맛, 나쁘지 않다. 정말 싼거는 레드의 경우 풀맛과 비린맛이 심하고 화이트는 향과 맛이 무겁기 마련인데 요놈은 비록 스파클링이지만 주문한 요리에 곁들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오호.. 조연의 연기력이 뒷받침 되니 남은 주연의 활약.
 

어김없이 나오는 빵. 볼로냐 마르코 식당에서 프랑스산 갓구운 바게뜨를 맛본 후로 이제 웬만한 빵에는 덤덤.. 베네토주의 빵은 표면이 매끈한 것이 특징.


나왔다. 엥?? 봉골레라고 하길래 화이트와인으로 담백하게 맛은 낸 봉골레인줄 알았더니 토마토 소스로 맛을 낸 봉골레다. 살짝 당황하지만 티는 안낸다. 애초 메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우리의 실수가 크다. 어차피 한국에서 먹던 익숙한 맛을 찾아온건 아니니 이 자체로 새로운 경험이라며 충격 수습. 훑어보니 봉골레는 크기가 재첩 수준, 냉동조개란 얘기. 면도 많이 익었고.. 이모저모 아쉬움이 크다. 다만 허기가 반찬이라고 배고픈 마당에 먹으니 이것도 맛은 좋다. 특히 썩어도 준치라지? 작아도 봉골레, 나름 깊은 맛이 있는데 감미료의 힘인 듯..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그 사이 가게 안은 아페리티보를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이다가 텅 비었다를 반복, 곧 빈접시 퇴장, 그리고 잠시후 풍겨오는 고소한 튀김냄새. 뒤에 앉은 사람이 보꼰치니(한입 먹거리) 진열장에서 가져온 튀김꼬치의 냄새인줄 알았는데 강양 왈 "우리 튀김 냄새야"라고 단언한다.


그 예언은 적중했는데 오징어와 새우 튀김이 든 접시 두 개, 샐러든 두 접시가 테이블에 놓였다. 보기엔 참 없어 보이는 못난이 튀김, 허나 예사롭지 않은 후반전의 시작이다. 아니나 다를까, 냄새로 이미 기선을 제압한 오징어 튀김, 허한 입맛을 잔기술 없이 정면으로 파고든다. 연속득점 성공, 여기에 레몬의 상큼한 측면 지원과 탄탄한 기본기의 스파클링 와인이 후방에서 불을 뿜었다.


추가로 500ml '재장전'하자 승부는 손쉽게 끝났다. 오징어 튀김과 레몬, 화이트와인이 일궈낸 깔끔한 승리. 전반의 부진이 싹 씻겨나갔다. 모든 바다요리, 특히 튀김요리와 레몬의 만남은 언제나 훌륭하다. 오징어 자체로만 보면 한국의 품질이 더 우수하건만 왜 이 맛을 못즐겼을까 하는 반성이.. 레몬, 너를 배신하지 않으마.
질척한 밀가루 반죽을 입혀 튀기는 우리와 달리 이탈리아는 대개 밀가루 자체만 입혀 튀겨낸다. 밀가루가 기름을 금방 망가뜨려 장사하는 입장에선 아쉽겠지만 먹는 입장에선 담백하니 좋다.근데  맥주로 반죽해낸 튀김이 일식집 튀김의 비법이라는데 이곳에서도 통하지 않을까? 튀김의 생명은 신선함과 더불어 크리스피(바삭)함이니 말이다.


바야흐로 봄. 한국에서 냉이, 드룹이 봄맛의 전령이라면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미식가들에게 손꼽히는 봄맛은 아스파라거스. 베네치아 어느 골목길의 채소 좌판에서 한묶음 구입, 땅의 봄기운을 가득 머금은 냉이만큼의 강렬한 맛은 아니지만 슴슴하고 신선하니 좋다. 스페인산은 좀 얇고 이탈리아산은 좀 굵길래 굵은 놈으로 선택. 계란 반숙 후라이와 곁들어내는 저 요리의 이름을 '비스마르크'이라고 부른다나..

Posted by dalgonaa
이딸리아 Italia 300908~2008. 11. 11. 03:54



PARMA로 가는 길. 먼지로 더러워진 창문 밖으로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파르마 역에 도착.

파르마 여행의 컨셉은 결론적으로 '맛의 경험'이 되었다. 이는 순전히 우리를 위해 며칠 간 고민한 노양의 노력이자 배려였는데 그녀는 일찌감치 시내 식당을 물색해놨고 집에서 선보일 저녁 메뉴는 물론 아침까지도 계획해놓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살짝 넘긴 시각, 역에 도착해 노양을 만났다. 토리노에서 한 번 만났을 뿐, 속 깊은 얘기 한 번 나누지 않은 사이지만 오랜 친구 만나는 양 반가웠고 그녀도 그래 보였다.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 받으며 시내의 한 작은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진의 분량이 상당하니 이 점 참고하시길..)


파르마는 세 가지로 유명하단다. 하나는 전에도 얘기했던 대로 파마산 치즈이고 또 하나는 TV 광고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세가 높은 파르마 프로슈토,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나머지 하나는 오페라의 아버지, 베르디의 고향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베르디도 좋건 싫건 즐겼을 치즈와 프로슈토를 맛볼 기회를 맞은 셈. 노양이 안내한 곳은 파르마 사람들에겐 맛집으로 소문난 '쏘렐레 픽끼'(SORELLE PICCHI-픽끼 집안 자매들)이다. 외관은 프로슈토와 치즈를 파는 일반적인 가게지만 좀 더 안쪽으로 들어서면 작은 식당을 겸하고 있다. 파르마에선 꽤나 오래된 집이라 하고 우리 외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이 집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한껏 끌어 올렸다.

 
기다리며 이야기를 주고받거니 하는 동안 쇼윈도의 전시물을 구경해보자. 

도톰하게 썬 양파 위에 당신이 짐작하는 그것을 얹어 오븐에 구웠다. 우리가 짐작하는 것은 폴렌타(옥수수 죽?) 반죽이나 치즈를 섞은 감자 으깬 것.


우리로 치면 고로케쯤 될 것 같은 저것. 내용물도 그게 떠오르지만 분명 아닐꺼라는.. 한 입 집어먹기 좋겠지만 가격은 분명 1유로(1,700원)를 훌쩍 넘을테다.

색감의 조화속에 '먹으면 건강해져요'라고 외치는 듯한 채소들. 가지, 파프리카, 호박 구이가 있고

그 주위에 파스타, 즉 라비올리도 계시다. 라비올리 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다면 곧 등장할 사진에서 확인이야 하겠지만 맛까지는 못보여주니 쩝.. 허나 내년에 돌아가면 그 맛을 보여줄테니 너무 섭섭치 마시길.. 낄낄 

가게 안의 풍경. 선반 너머로 와인과 과일잼이 질서정연하고 

소금에 절이는 것 외에 별다른 첨가물 없이 세월만으로 숙성된 귀한 햄들이 손님을 즐겁게 기다리고 있다.
 

벽에 걸린 프로슈토와 바닥에 차곡차곡 쌓인 둥그런 파마산 치즈. 그야말로 돈 덩어리라 할 수 있는데 오랜 세월, 전통을 고수하는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입으로 즐기는 명작(名作)이니 섣불리 덤빌 가격이 아니다.  그 사이로 허기진 손님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저들보다 앞서 와 이미 예약을 해놓았으므로 밖에서 호출을 기다리며 사진이나 찍고 놀고 있는 중이다.

앞서 예약을 하면서 노양의 이태리어 솜씨를 접하곤 슬쩍 놀라면서 기가 죽었는데 영어로 진행되는 학교 수업 와중에도 파르마시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강좌(우리도 애초 시도했다가 경찰서 퍼미션을 받아오라는 말에 발길을 돌려야 했던 프로그램) 틈틈이 나가 익힌 솜씨라고. 애써 겸손을 펴는 노양이지만 노력의 흔적을 엿보기에 충분했고 은근히 자극제가 됐다.



20여 분을 기다려 테이블 하나를 꿰차고 앉았다. 넓지 않은 공간, 요란하지 않은 실내 장식에서 편안함과 실속이 엿보였다. 10개가 조금 넘는 테이블. 만석이 돼봐야 30명이 채 안될듯한 작은 공간이다. 사실 이태리의 많은 식당들이 이런 정도의 규모로 운영되는 곳이 많은데 아마 오래된(古) 건물에 따른 증축이나 확장공사의 어려움과 값비싼 임대료도 한몫 하는 탓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만약 운영주가 운좋게 식당을 확장해 우리나라의 회센터 마냥으로 4층짜리 건물을 통으로 터 장사를 한다면 이태리 사람들이 이를 선호할까?  한상 푸지게 먹는 것도 좋지만 RESTAURANT이 아닌 CENTER에서 밥을 먹는 우리의 정서와 비교해 본다면 이런 작고 알찬 공간이 훨씬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하나만 더 짚자면 방송출연 경력이나 유명 연예인들의 사인으로 차고 넘치는 우리 식당의 실내도 이젠 좀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 얄팍함을 믿고 찾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꺼라고 무당집 장군상 마냥으로 빼곡히 붙여놓는지 볼 때마다 안쓰럽다. 식당 개업식 사진도 좋고 그림 좋은 달력이나 식당 직원들 가을맞이 단합대회 사진이라도 걸어 놓는게 더 정감있고 애착이 가겠건만.. 요즘들어 점차 보여지기 위한 개성이 아니라 요란하지 않게 있는 대로의 모습을 잘 살려낸 식당들도 늘어가는 듯 한데 이런 현명한 장사꾼들이 앞으로 더 많아지겠지.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서, 이태리의 경우 메뉴판 구성은 다음과 같은데 혹시 이태리 여행할 일 있을 때 익혀두면 식당에서 주문할 때 도움될테다. 대개 첫 페이지에는 안띠빠스띠(ANTIPASTI-전채들)라고 해서 식사에 앞서 간단히 즐기는 햄이나 치즈, 샐러드 등을 구성해 놓는데 치즈나 프로슈토, 또는 이를 적당히 섞어서 내놓기도 한다. 



다음으로 쁘리미삐아띠(PRIMI PIATTI-첫 번째 접시들)로 넘어가고 여기서 바로 파스타들이 등장한다. 스파게띠, 라비올리, 라자냐, 뻰네, 또르뗄리니 등, 우리에게 친숙한 그분들이 바로 여기서 각자의 기량을 뽐내시게 되고 퇴장해 주시면 바로 세꼰도삐아띠(SECONDI PIATTI-두 번째 접시들), 육류나 조류, 해물류 등의 기름진 식사가 올라와 주신다.

접시를 모두 비웠으면 후식을 먹을 차례, 디저트(DESSERT)로도 부르지만 때론 돌치(DOLCI- 앞서도 그렇고 단어 끝에 I가 붙는 이유는 복수형이기 때문. sweet의 이태리 말로 '단맛들'이란 뜻)라는 말로 대신하기도 한다. 띠라미수가 우리에게 친숙한 돌체(DOLCE-단수형)이고 이 외에도 다양한 케잌과 무스, 젤라또 등이 포진해 있다. 음료나 와인 등은 맨 뒷면에 있으며 식사 때 반주로 즐길 잔 와인의 경우 2.5유로에서 3유로, 한 병을 시키면 최소 12유로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봐야 할테고 적지 않은 식당은 별도의 와인 리스트를 갖추고 메뉴판과 동시에 제공하기도 한다.

그럼 이것들을 다 주문해야 하느냐?  아니다. 이날 우리가 주문한 메뉴를 보자. 먼저 물 한 병과(유럽 어느 식당이든 물 공짜로 안준다) 딱 3잔이 나온다는 화이트 와인 작은 병을 하나, 파르마 왔으니 프로슈토를 안먹을 수 없어서 살라미를 곁들여 주는 안티파스토 한 접시(첫 사진의 첫 번째 메뉴. 셋이 각자 접시에 덜어먹으면 됨), 그리고 쁘리미삐아띠로 파스타 두 접시(세 접시가 아님)를 시켜서 역시 각자 접시에 덜어 먹었다. 제법 저렴하게 먹은거지만 그래도 계산서에는 42유로가 찍혔다. 우리돈 6만원을 훌쩍 넘은 금액이다. 이거 원망할꺼면 유럽에서 밥사먹어선 안된다. 기분좋게, 맛있게 먹자.

그럼 테이블 위로 등장하신 선수들을 차례대로 확인해보자.

어느 식당을 가나 바구니에 빵은 공짜. 모양 그대로 '꽃빵'이다. 지역마다, 또는 식당마다 내놓은 빵의 모양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손쉽게 모양을 꾸며 개성을 과시할 수 있으니 왜 아니겠나?

식당을 나서는 순간까지 우리를 일본인으로 생각한 웨이터 총각이 물을 따르고 있다. 노양은 그런 그를 향해 '사요나라~' 라고 인사를 건네더라는..^^ 그녀의 재치에 한 표. 사실 우리도 그렇지만 심각한 오해를 사는 일이 아니면 애써 국적문제로 왈가왈부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말바시아'라는 품종의 스파클링 화이트 와인으로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식전에 즐기기에 그만이다. 역시 화이트는, 더욱이 스파클링 와인은 차게 마셔야 제격이다. 와인병답지 않게 생긴 미끈한 외관도 세련돼 보이고 가운데 베르디 선생님이 등장, 품격을 높여주신다. TERRE VERDIANE MALVASIA, '베르디의 땅에서 난 말바시아'라는 억지 해석을 내려본다.

안티파스토, MIXED ITALIAN COLD CUTS이 나왔지만 촬영이 한 템포 늦는 바람에 절반 이상이 비워졌다. 수퍼에서 싸게 파는(그것도 상대적일 뿐 결코 싸진 않다) 프로슈토의 경우 간혹 잡냄새를 내거나 비리고 질긴 경우가 적잖은데 그것들과는 쉽게 비교되는 맛이다. 잡내 없고 훨씬 덜 비리고 부드럽다. 염장한 탓에 이미 간은 베어 있으나 짜지 않아 좋고 입안에 한입 머금으면 돼지고기의 기름진 풍미와 산뜻한 허브향이 입안에 맴돌아 맛으로 양껏 즐기겠다면 지갑 꽤나 가벼워질테다. 얇게 저민 프로슈토와 살라메, 그리고 이름 까먹은 다른 종류이 햄이 살포시 접시를 덥고 있는 정도의 양으로 근수로 치면 100그램 좀 넘을까 싶은 정도.



참으로 야박하다 싶겠지만 잊지 말자. 안티파스토는 양으로 승부하는 접시가 아니라 식욕을 돋구기 위한 조연일 뿐이라는 점. 게다가 저 요리는 그 자체를 즐기기 보다는 대개 빵과 함께 즐기므로 그게 은근히 포만감을 준다. 한 가지 불편은 프로슈토가 얇으니 칼로 썰면 썰리는게 아니라 찢어진다는 점. 뜻대로 조종이 안되니 먹는 동안 어쩐지 내 꼴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는데 적절한 연장이 있어주면 좋을 듯. 주방 차원에서 먹기좋게 손질을 할 법도 하건만 종이처럼 얇게만 저밀 뿐 다른 추가 손질을 안한다는 점은 어쩌면 고급 재료를 있는 그대로의 맛으로, 혹은 속임없이 대접한다는 의도가 깔려있는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부지런히 먹고 와인 한 잔 머금어 주고..



안티파스토를 끝내자 새로운 접시로 교체된다. 없던 숟가락이 새로이 등장하셨는데..

바로 요놈 때문. 이제 쁘리마삐아띠(첫 번째 접시) 순서로 주인공의 이름은 SMALL RAVIOLI TYPE IN BROTH로 '육수속의 작은 라비올리' 정도 되겠다. 맛? 갈비탕집의 탕국물을 그대로 퍼 담은 국물에 치즈와 고기를 소로 품은 라비올리를 넣었으니 그 맛이 짐작이 되려나? 라비올리는 피가 단단히 물려져 있으니 소가 국물과 섞이는 일은 없다. 국물만 떠먹으면 의심할 여지없이 짭짤하고 진한 갈비탕이나 라비올리와 함께 떠먹으면 전혀 새로운 맛이 된다. 낯선 조화가 나쁘진 않았지만 사실 입안은 친숙한 갈비탕 국물맛으로 인해 라비올리의 맛이 자꾸 낯선 이방인으로 취급되는 형국이 돼버렸다. 그 모호함은 꽤 오래갔다.

이런 식의 맑은 수프로 즐기는 라비올리는 이곳 파르마가 속한 주(州) 에밀라 로마냐(EMILA-ROMAGNA) 지방에서 즐기는 별식이라고..


제법 친숙한 모양의 라비올리. 넓은 파스타에 돼지고기나 모짜렐라, 혹은 파마산 치즈를 섞거나 개별 소로 넣어 다시 파스타를 덮은 뒤 톱칼로 잘라내는 것으로 완성되는, 간단하고(?) 그래서 대중적인 모양의 라비올리 되겠다. 물론 요즘엔 우리가 가정에서 냉동만두를 사먹듯 이탈리아에서도 완제품으로 나온 라비올리를 사먹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지만 그 가격은 우리가 손쉽게 사먹는 만두 가격의 개념보다 훨씬 비싸다.


속을 살피니 연한 분홍빛의 소가 숨어있고 그 맛은 단호박. 그냥 단호박만이 아니라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배가시켜 줄 재료를 섞어 넣어 호박의 맛이 한결 진하다. 따라서 메뉴 이름 역시 SQUASH FILLED RAVIOLI (WITH ZUCCA), '으깬 호박 소를 넣은 라비올리' 되겠다. 이 맛이 친숙했던 이유는 베로나에 도착한 첫 날, 엔리코와 엘리자베타가 이끄는 식당에서 먹는 라비올리 역시 바로 이 맛이었기 때문. 

최근 텔레비전에선 PARMA 프로슈토 광고가 한창이니 그래서 더 친숙한 PARMA. 가게 진열대마다 자신들의 자부심을 자랑스럽게 걸어놓고 있다.

다시 거리로 나섰다. 퇴적된 시간이 촘촘한 돌사이에 이끼처럼 끼어있는 거리를 어슬렁 어슬렁 걸어 노양의 집으로 향했다. 5시만 되면 주위는 금새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것이 요즘의 이곳이다. 중세를 '암흑의 시대'이라고도 부르는데 5시만 되면 어두워지기 때문에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  허나 구름끼고 어두워지는 요즘을 보노라면 당시의 불길하고 음울한 정취를 느끼기에 딱 좋지 않나 싶고 그래서 이 때마다 묘한 판타지에 젖어보려 애쓰곤 한다. 그레고리 성가대의 낮고 으스스한 합창, 촛불을 밝혔으나 여전히 어두운 성당, 그 뒤로 보이는 예수와 그 아래 무릎꿇고 도열한 수도사들. 그리고 내일 있을 마녀 화형식에 쓰일 장작이 쌓여가는 소리 등등.. 

Posted by dalgon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