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3.22 베로나, 석 달 만에 다시 그 자리로. 8
  2. 2008.08.13 소포가 도착했다는데.. 5
  3. 2008.06.25 At last!! 소포 도착! 3

베로나에 조금 전인 3시 20분에 도착했다. 뻬루자, 피렌체, 볼로냐, 베로나로 이어지는 여정은 총 5시간 30분이 소요됐고 2명 기차요금만 12만원 가까이가 깨졌다. 좀 짜증나는건 오는 내내 표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 이런 예가 종종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한 코스에선 할 줄 알았는데 퍼펙트하게 검표를 안하니 애써 뭍어두고 있는 무임승차에 대한 욕망이 또다시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것 같아 그게 짜증이다. 사람 시험하는 것도 아니고.. 완벽한 인간이 되질 못했으니 제발 그런 싹이 트지 않게끔 미리 잘라달란 말이다. 

어제 뻬루자의 날씨가 오락가락하며 눈발을 살짝 뿌리더니 새벽부터는 제법 무서운 기세로 함박눈을 쏟아냈다. 찬바람까지 쌩쌩 불어대니 오랫만에 침대에 누어 창문을 통해 눈보라를 감상했다. 어찌나 잠이 안오던지.. 다음날 일찌감치 뭔가 중요한 일(가령 멀리 떠나거나..)을 해야하는 경우엔 대개 그렇기도 하지만 뻬루자에서의, 특히 그 집에서의 마지막 밤잠이니 괜히 마음 한구석이 싱숭생숭해진 탓도 있다. 누워서 고개만 까딱 세워 바라보던 저 아래 도심의 불빛도, 휘영청 보름달이 제길 따라 움직이는 모습도, 멀리 아스라한 아씨지와 그 아래 봄기운이 피어오르던 찰나의 들녘도, 그리고 집의 윗층을 떠받치고 있는 육중한 나무들보의 천정도 이제 특별한 인연이 없는 한 마주할 일이 없다. 그게 아쉬워 하나하나에 마지막 시선을 던져줬고 그러다가 동태를 이용해 파스타를 만들면 어떨까에 대해 한참 고민을 하다가 겨우 잠이 든 듯.. 


새벽의 눈은 아침까지도 이어졌고 바람은 칼처럼 차가웠는데 8시 14분, 언제나처럼 아레쪼로 출발하기로 돼 있는 열차는 연착이 아니라 아예 없어져 버렸고 1시간 30분 후에 피렌체로 출발하는 열차가 유일해서 그걸 대신 잡아타고 와야 했다. 아무튼 어느 구간에서도 표검사를 하지 않더라는..

그제와 어제에 걸쳐 한국으로 보내야 할 자잘한 짐과 책들 대부분을 소포로 부쳤다. 총 40kg의 무게에 책만 30kg. 배로 보냈으니 아마 우리가 귀국할 즈음으로 해서 받을 수 있지 싶은데 시간은 얼마가 걸려도 좋으니 제발 무사히 배달돼 다오. 책 부치고 나니 어찌나 홀가분하던지.. 위태롭게 겨울을 나게했던 이불은 그 집에 고스란히 남겨놓고 왔고 파르마 노양이 주고 간 전기장판도 그곳에서 다른 누군가를 데피도록 남겨놓고 왔다. 그 전기장판 없었다면 우린 모두 얼어죽었을 것. 플라스틱 밥그릇, 스텐 양재기, 사기 대접, 도마, 후라이팬 등을 꾸역꾸역 짊어지고 왔고 아직도 한참은 먹을 감자와 양파, 올리브유, 간장, 고춧가루, 멸치등도 배낭 구석구석에 쑤셔넣어 지고 왔다. 빵빵하게 부푼 가방들의 지퍼를 열면 양말, 빤스와 더불어 이것들이 마구마구 튕겨나올 태세니 절대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진 이것을 열어선 안된다는 다짐을 되새기며. 애네들도 다음달 1일 베로나를 떠날 때면 모두 우리손을 떠난다. 그 때면 짐이 대폭 줄어든다. 물론 그 공백은 감사의 선물들로 다시 채워지겠지만. (자~ 김치국 뜬 수저 언능 내려 놓으시고..)

낭패가 하나 생겼다. 다음달 중순 경으로 알고 있던 비니 이탈리 행사가 2일부터 6일까지라고 한다. 그때문에 데이빗 숙소가 딱 그 기간에 풀북(FULL BOOK-예약만땅)이 되서 방이 없다는 것. 그러나 우리에겐 당장 방이 없는 문제보다도 예상보다 훨씬 일찍 행사가 시작된 점이 더 큰 낭패다. 그렇게 되면 지금 편집중인 작업 일정을 어떻게 조정해야할지 다시 계획을 세워야 할 판. 그러면 귀국일정도 영향을 받지 싶은데 좀 더 일찍 들어갈 수도 있을 듯.  이거이거 일에 쫓겨서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면 안되는데..

어제 간만에 옛 회사 동료와 메신저를 주고받다가 그 친구가 물었다.  "영영 들어오는거에요?"
잠깐 당황하다가 "아마 한국, 이탈리아를 자주 오가도록 노력하겠지"라고 엉거주춤 답했다.   '영영'이라..
6개월, 어찌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인생이 새롭게 '포맷'된 후 처음으로 기록된 새로운 삶의 파일들이 이탈리아여서 그 바탕은 좀 더 오래 가지 않을까? 생각날테고 그리울테고 어쩌면 좀 더 현실적인 이유로 필요할테고. 그리고 아직 젊은데 '영영'이란 말은 좀 안어울리지 않나?  

 

Posted by dalgonaa
학원으로 왔다가 학원문이 잠겨 다시 우체국으로 되돌아 갔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학원측 사람으로부터 전달받은 것은 그런 내용을 알리는 달랑 문서 한 장. 도대체 언제 어떻게 왔길래 이런 사태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학원측의 안일한 일처리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된다. 아무튼 그걸 되찾기 위해선 버스를 두 번 갈아타가며 집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Marsa라는 곳으로 가야하는데 우체국은 오후 1시까지만 문을 연다고 하니 천상 내일 아침 학원을 제끼고 책을 찾으러 가야할 듯..

서울의 동생이 보내준 것은 책. 무려 10권이 넘는다. 그 무게만도 10킬로에 이르며 이걸 짊어지고 다닐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그 전에 몽땅 읽어치워 머리속에 집어넣어야 겠지만 아무래도 가능한 수준에서 책을 이끌고 다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현재 향후 일정에 대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9월 사이로 터키를 한 번 짧게 여행하고 다시 몰타로 돌아와 짐 챙겨들고 이탈리아 베로나로 넘어가는 것이 그것이다. 그곳에 가면 엘리자베타가 기다리고 있고 그녀를 통해 이탈리아 여정(또는 짧으나마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과 도움을 받을 예정이다.

동생을 통해 부탁한 책의 목록은 이렇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 한길사
<문화의 수수께끼> - 한길사
<유럽의 음식문화> - 새물결
 
<죽음의 밥상> - 산책자
<희망의 밥상> - 사이언스 북스
<권력자들의 만찬> - 넥서스 북스
 
<빵의 역사> - 우물이 있는 집
<진기한 야채의 역사> - 눈과 마음
<그림으로 본 음식의 문화사> - 예담
 
<감자 이야기> - 지호
<세팅 더 테이블> - 해냄
<음식의 심리학> - 인북스
 
<미식예찬> - 서커스
<요리소설 맛> - 황금가지
<달콤 쌉싸름한 초콜렛> - 민음사

Posted by dalgonaa

9시, 학원에 막 도착해 수업준비로 어수선한 틈에 강양이 김군 교실에 다급히 찾아와 전하는 말,
"소포 왔대!"

최근 들어본 소리 가운데 가장 듣기 좋은 소리였다. 낄낄낄~ 한 달여를 기다렸는데 까짓꺼 3시간을 못기다릴까 싶었는데 수업은 마냥 길게 느껴졌다. 1교시만 땡치고 갈까 하는 생각까지 불쑥불쑥 솟을 지경이었으니..

수업이 끝난 뒤 학원 사무실에서 사인하고 넘겨받은 소포 두 상자. 비록 만신창이가 된 모습이지만 그래도 탐스러운 저 놈의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에 정신이 없다. 어떻게 옮길까 짧은 궁리끝에 가까운 웸블리 택시 회사에 가서 차를 부르기로 했다.

학원부터 집까지는 걸어서 대략 20여분. 택시로는 채 5분이 안걸릴 거리지만 요금은 무려 8유로다. (한화 15,000원) 그래도 손꼽아 기다린 소포가 온 마당에 이 놈을 낑낑대며 짊어지고 가는 것은 이 더운 날씨에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니면 더욱이 멀리서 오랜 시간을 날아온 소포에 대한 예의는 더더욱 아니다. 10분 후 벤츠 한 대가 학원앞에 섰고 땟국물이 좌르르 흐르는 낡은 행색의 소포 두 상자를 뒷 트렁크에 얌전히 실었다. (이때 김군은 예우를 생각해 뒷 자리에 실을까 짧게나마 생각했었다는..)

그리고 한 달이란 긴 시간의 여행을 마친 녀석은 드디어 목적지인 몰타의 낯선 플랫에 무사히 도착했다. 바로 이놈들이다.



>> 고향의 가족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  곧 내용물을 뜯어본 뒤 남다른 소회나 감상이 있다면 좀 더 적어보겠습니다. ㅋㅋ

(그리고 보니 오늘 집을 찾는 손님이 많다. 우선 소포가 그렇고 김군의 교실 친구인 줄리아와 나지아가 저녁식사를 위해 집에 오기로 했다. 우리집의 이른바 'Senior'인 지희는 본인이 자신있어 하는 요리인 월남쌈으로 이들에게 충격적인 맛을 선사하겠다고 단단히 벼르는 중이다.)

Posted by dalgonaa